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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게임 산업에서 배우는 메타버스 세계

가상화된 무대에선 ‘부캐’가 주역
고객 관리 노하우 근본부터 수정해야

김동은 | 317호 (2021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게임은 메타버스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앞서 있는 영역이다. 이에 게임 업계에서 선행된 이슈를 통해 메타버스의 고객을 이해해 볼 수 있다. 메타버스의 고객은 현실의 개인보다 훨씬 더 파편화되고 단편적인 특징의 ‘부캐’ 집단이며, 회사의 철학과 문화에 공감해 투자하듯 소비하기 때문에 기업은 ‘록인 효과’와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세계관과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도시의 폭동에 견줄 만한 거센 고객 항의를 받게 될 수 있다. 기업들은 현실의 모든 서비스를 메타버스로 옮겨 갈 준비를 해야 하며, 메타버스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캐릭터 로그 기록, 즉 고객 데이터를 활용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메타버스와 게임

페이스북이 2020년, 전 세계 20여 개국에 출시한 신형 무선 증강현실(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는 지난해 말까지 전 세계에서 약 110만 대 이상 판매됐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초, 판매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1만 대의 초판 물량이 매진돼 2차 판매에 들어간 상태다. VR의 대중화가 예고되면서 각종 게임 엔진도 본격적으로 메타버스에 어울릴 기능들을 지원하는 등 업계에선 본격적인 증강현실(VR), 확장현실(XR), 혼합현실(MR) 등의 콘텐츠가 힘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2025년 메타버스 관련 기기 매출만 약 3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처럼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말 그대로 ‘급증’하고 있는 지금, 메타버스를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은 게임 산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게임은 메타버스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앞서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최신 기술을 아낌없이 ‘낭비’하는 게임의 특성상, 다가올 메타버스 시대에서 게임이 주요 역할을 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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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언론이 메타버스를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처럼 VR 기기를 통해 접속하는 화려한 가상의 세계일 것이라 상상한다. 이에 따라 메타버스를 정의해보면 메타버스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즉 ‘오픈월드’를 기반으로 한 가상화된 체계이자 사회”를 말한다. 이와 가장 가까운 오늘의 콘텐츠가 바로 게임이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2020년 개최된 한 대형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메타버스 세계의 대표적인 사례로 마인크래프트와 포트나이트라는 2개의 오픈월드 게임을 꼽았다. 게임 유통 사이트 ‘스팀’에 따르면 오픈월드가 적용된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3000개가 넘는다.

메타버스는 콘텐츠나 IT의 영역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새로운 세계관, 문화, 질서를 가진 땅이다. 온라인 게임은 그 역할을 이미 20년 전부터 경험해오고 있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모든 식당이 온라인 배달 서비스로 전략을 선회하는 등 타 업종의 문법을 받아들이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도시와 사람, 문화, 기술이 등장하는 지금은 ‘메타버스 개화기’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업계에서 선행된 이슈를 통해 메타버스를 이해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메타버스라는 가상화된 사회의 구성요소와 파생 요소를 게임 산업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메타버스’라는 신대륙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발생한 ‘재스민혁명’ 1 은 인류가 가상사회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즉 SNS를 통해 현실 사회의 폐쇄성에 대항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재스민혁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SNS로 대표되는 가상사회는 단순히 스스로의 일상을 지인들에게 전하는 것을 넘어 사건에 대한 개인의 시각을 공유하는 문화 영토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상세계 문화영토에서 종래의 근대적 ‘국가’라는 개념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한때 돌풍을 일으킨 일본 닌텐도사의 게임 소프트웨어 ‘동물의 숲’을 보면 그 해답은 명료하다. 이 게임 소프트웨어는 한일 관계 경색으로 한때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걸쳐 성행했던 일본 불매운동, 이른바 ‘노(No)재팬 운동’의 충격을 피해갔다.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 중고시장에서 2배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기까지 했다. 이처럼 대중은 이 가상사회에 기존의 국가를 연결하지 않고 있다. 즉, 그들에게 있어 메타버스란 민족적 경계가 모호한 ‘비(非)국적’의 세계인 셈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메타버스가 새로운 콘텐츠가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콘텐츠는 그 종류에 따라 활동 무대가 규정돼 있지만 메타버스는 공간의 제약이 없다.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장비를 머리에 쓰고 고개를 돌리면 다른 장소에 온 듯한 360도 VR 배경과 가상의 AI 캐릭터가 ‘AI스러운’ 목소리로, ‘AI적인’ 대사를 주고받는 것이 메타버스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만이 메타버스의 본질은 아니다.

메타버스는 곧 현실의 상품과 디지털 상품 사이 간격을 연결하는 ‘입지’다. 우리 기업들이 특히 메타버스 현상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상품뿐 아니라 실물 상품의 제조 유통을 포괄하는 거의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활용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이미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는 연령대가 고령층까지 확대돼 온라인 상품 매출이 폭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메타버스의 입지적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다. 메타버스를 문화영토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영토에서 활동하는 국민과 이들이 요구하는 권리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특히 ‘MZ세대’라고 칭하는 우리 사회 신세대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온라인과 모바일 디바이스에 익숙하며,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메타버스의 흐름은 부득불(不得不) 이 신세대의 특성 및 습관을 따라가게 된다. 게임 업계에서 먼저 관찰된 메타버스 시대의 ‘고객’, 즉 수요자는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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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의 고객, ‘부캐’

게임에는 역할연기, 즉 롤플레잉(Role Playing)을 기반으로 하는 ‘RPG’ 장르가 존재한다. 최초의 RPG 게임은 소위 ‘D&D’ 시리즈라고 불리는 ‘Dungeons & Dragons’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롤플레잉 게임은 참여자들이 테이블에 직접 모여서 진행하는 보드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참가자들은 진행자가 설명하는 환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전사, 마법사, 성직자, 도적과 같은 ‘역할’을 연기하며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후 이 RPG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 다중 접속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게임 형태(MMORPG, 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로 발전했고 수많은 만화와 소설, 웹툰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메타버스란 무대에서는 이처럼 특별한 용도로 분리된 페르소나, 즉 ‘부캐’가 주역이 될 것이다. 메타버스의 고객은 부캐라는 캐릭터를 통해 소비한다. 부캐는 본디 게임 유저들이 쓰는 언어에서 유래한 말로, 게임 안에서 주력으로 키우는 ‘본캐’와는 별도로 즐기는 보조 캐릭터를 지칭한 게임 업계는 꽤 오래전부터 이 가상화된 유저 집단에 대응해왔다. 게임 산업을 제외하면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아이돌 산업 정도가 비슷한 경험을 해봤다고 할 수 있다.

메타버스 시대에는 이 부캐 고객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모든 회사에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유행하는 ‘부캐 신드롬’은 결국 우리 사회가 캐릭터와 그 안에 든 실제 사람을 더는 동일시하지 않고 캐릭터 자체를 별도의 인격체로서 인정할 수 있는 나름의 최저한도의 감수성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이 감수성이 단순히 일부 사람의 하위문화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공중파 TV에서도 공공연히 활용될 정도의 대중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은 괄목할 만하다.

메타버스의 고객을 부캐로 이해할 준비가 됐다면 기업의 ‘유효수요’ 역시 새롭게 정의를 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한 명의 고객이 다양한 메타버스에서 각기 캐릭터로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고객을 단순히 취향, 유행, 선호, 성별, 인종, 국가, 나이대 등으로 분류했다. 적어도 기업의 관점에서 각각의 고객은 몇 가지 한정적인 사회적 계층만을 대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메타버스에선 한 명의 개인이 수많은 메타버스 세계와 그 메타버스 내에서 차지하는 수많은 역할만큼이나 많은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앞으로는 개인이 가진 모든 페르소나를 각각의 인격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캐’를 유효한 소비력으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당장 우리 시장이 지닌 유효수요와 잠재력은 몇 배, 아니 그 이상의 가치로 확장된다.

두 번째로, 기업들은 메타버스 유저들의 입맛에 맞는 세계관과 캐릭터를 개발하고 고도화해야 한다. 캐릭터 꾸미기는 고객이 메타버스 진입에서 가장 먼저 경험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가 메타버스의 품질평가로 연결될 것이다.

게임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라고 부르는 캐릭터 만들기에 공을 들여왔다. 최근 다수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나는 난닝구에 팬티만 입어도 내 캐릭터는 잘 입히고 싶다’라는 말이 공감을 얻어 ‘밈(meme)’으로 공유되기도 했는데, 이를 ‘요즘 애들의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본캐와 부캐의 역할 분리로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직장에 번듯한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비싼 핸드백을 들고 가고 싶어 한다. 메타버스에선 이 같은 소비가 부캐를 통해 이뤄질 것이란 것이다.

세계관은 그들을 하나로 묶는 정서로 브랜드일 수도 있고, 스타, 작품, 철학이 될 수도 있다. 세계관은 작품 설정집이 아니라 ‘부캐’의 입장으로 선택하는 ‘가상세계에 대한 백서’로서 메시지와 스타(사람 혹은 AI)의 무대 공간을 만든다. 게임 산업의 매출 상당수는 이미 이런 감정이입과 가치 부여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가상 캐릭터가 가상세계에서 감정이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일치감을 이뤄야 핍진성2 이 세워진다. 세계관은 부캐의 행동을 규정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고객과의 관계 및 고객관리의 기초가 된다. 세계관은 부캐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마음가짐을 제공하는데 세계관이 엉성하면 소비자는 이를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팬덤 구성원 사이에선 ‘일반인을 흉내 낸다’는 뜻의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져 있다. 현실에서 굳이 부캐로서의 나를 드러내지 않겠단 의미다. 이 같은 표현이 공공연하단 것은 ‘부캐’의 활동이 현실의 ‘나’와는 철저히 분리돼 있단 뜻이다.

그러나 손을 놓고 있어서도 안 된다. 이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새로운 아이돌 가수들이 그룹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세계관을 가지고 데뷔한다.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세계관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각 회사가 ‘세계관 전쟁’을 치르고 있단 말 3 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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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체 빙그레가 빙그레왕국의 왕자 ‘빙그레우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등의 행보는 그저 ‘병맛’ 마케팅으로 볼 것이 아니다. 필자는 현실과 대비되는 가상세계를 고안해낸 ‘세계관 마케팅’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는 모든 기업이 ‘부캐’ 소비자들을 위한 세계관 만들기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부캐 고객집단, ‘길드’

게임 세계에서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캐릭터 단체를 ‘길드’라고 부른다. 이 길드는 게임 내에서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을 하고, 현실의 인간관계를 묶기도 하며, 여러 에피소드와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독특한 문화와 사상, 말투로 구분되며 자신들을 확인하는 행동강령을 가지고 있다.

2006년 리지니2 게임에서 발생한 ‘바츠 해방 전쟁’ 4 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은 특정 길드가 캐릭터 성장에 중요한 지역을 무력을 통해 일방적으로 점유하고, 일반 캐릭터들을 압제한 것에 반대해 일어난 대규모 게임 내 민중 저항이었다. 이 게임은 전투에서 죽을 때마다 아이템이나 레벨업을 위해 필요한 경험치를 잃는 등의 손해가 발생하는데 수많은 군소 길드와 개인이 이 같은 게임적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압제 길드를 무너트려 드라마틱한 성공을 이룬 후 분열을 통해 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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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는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공동의 가치관을 추구하며 강한 유대감으로 집단을 이룬다. 게임에서는 이미 약 20년 전부터 현실에서 전혀 공통점이 없는 10대, 30대, 40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게임 안의 사회에서 규율이 잡힌 집단을 형성한 바 있다. 게임 사용자들 사이에선 유저 모임에 나갔더니 절친 캐릭터의 현실 직업이 경찰과 조폭이었다거나, 수백 명이 활동하는 큰 게임 조직의 수장이 중학생이었다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회자된다.

외부에서는 지금까지 이 부캐 집단을 ‘하위문화 집단’ 혹은 ‘팬덤’이라는 말로 불러왔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브랜드에 충성도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배타적 지식 체계를 공유하는 특정한 무리다. 부캐 집단은 스스로를 소비자가 아니라 회사의 철학과 문화에 공감한 공동체로 규정한다. 또한 제품이나 콘텐츠를 제작한 회사에 대해서도 단순한 공급업체가 아닌 정서의 교감을 이룬 상태라고 믿는다. 회사를 동일한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투자하듯이 소비하기 때문에 ‘록인 효과’ 같은 긍정적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부캐 집단, 즉 길드화된 유저 그룹에 대응하는 일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최근 모 게임회사에서는 다른 국가에 서비스되는 동일 게임과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유저들의 문제 제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가 이들 부캐 집단이 크게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유저들의 항의는 오프라인 현실 세계의 집단행동으로까지 연결될 정도로 심각했다. 유저들은 돈을 모아 해당 회사 건물 앞에 전광판을 실은 트럭을 보냈고, 회사를 규탄하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결국 해당 게임회사의 프로젝트 책임자가 사임했지만 사용자 집단은 ‘여전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회사 최고책임자가 배석한 인터넷 생중계 유저 간담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고객이 회사를 상품•서비스 제공 업체가 아닌 문화 제공자로서의 자격을 검증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부캐가 현실의 개인 고객보다 훨씬 단편적이고 파편적이기 때문이다. 부캐는 현실 고객의 여러 특징 중 하나를 분리해 만들어진 캐릭터다. 사람은 가상사회에서 더 단편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SNS에서는 사람이 글자나 사진으로 존재하고 이 단계에선 메시지가 인간의 전부가 된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오프라인의 사람들보다 더욱 쉽게 선동된다는 뜻이 아니다. 현실의 집단보다는 부캐의 집단이 단순 명료한 메시지를 중심으로 뭉치기 쉽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부캐는 SNS나 게임 활동을 위해 최적화된 사고방식을 발달시켜왔다. 이로 인해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는 회사의 제품과 콘텐츠의 생산과 운영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는 더 구체적이고 감성적이다. 따라서 집단의 항의 정도나 강도 역시 단순하지만 파괴적이다.

부캐 집단의 불만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사례가 있다. 2018년 ‘메이플스토리2’라는 게임은 아이템 성공 확률과 관련한 조작 논란 의혹이 일자 게임 개발 담당자가 직접 ‘프로그래밍 소스코드’까지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사실이 아니라고 대응했다. 회사가 유저들에게 소스코드를 공개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모든 일반 유저가 전문가의 영역인 프로그래밍 소스코드를 이해할 리는 없다. 그렇지만 이를 이해하는 일부 유저가 해당 소스코드를 해석해주고, 이 같은 내용이 널리 알려지자 유저들이 회사의 진정성을 받아들였다.

게임에서처럼 메타버스 사회에서도 시민 참여 거버넌스가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다. 이를 소홀히 하면 소비자 항의가 아니라 ‘도시의 폭동’을 만나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 사회의 서비스

미국 경제학자 에드워드 카스트로노바(Edward Castronova)는 2001년 온라인 게임 1개가 러시아급 GNP와 비슷한 규모라는 논문 5 을 발표했다. 이미 이 시점에서 게임으로 구현된 국가급 가상사회가 메타버스의 태동을 예고했다고 할 수 있다. 메타버스 역시 게임처럼 수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만큼 부캐나 캐릭터로 이뤄진 집단이 생성되고 나아가 가상 도시 및 국가의 탄생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국가에는 여러 가지 일이 생긴다. 작게는 세무 처리부터 크게는 개인과 집단 간의 법적 분쟁, 재산권, 상속권 분쟁까지 다양하다.

이미 지금의 현실 사회에서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결과로 사회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 덕분에 손쉬운 방법으로 현실에서 직접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도 온라인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요구하고, 변호사 서비스를 사고, 해당 회사에 투자한다. 최근 미 증시를 뒤흔든 ‘게임스톱(GME)’ 사건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그 시작은 게임 소매점 ‘게임스톱’에 추억을 두고 있는 게임 애호가들의 투쟁이었다. 이는 온라인에서 결집한 소비자들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메타버스 국가 안에서는 서비스나 상품만이 디지털화, 메타버스화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나 조직체계, 종업원 역시 사용자와 함께 가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바리스타부터 원자로 내부 정비 인력까지 모든 직원에게 메타버스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각 회사에서도 기존 직원들 대상으로 메타버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또한 메타버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응하는 소비자 법률 서비스들이 필요하다고 예측해볼 수 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공급자 역할을 하는 각 회사는 고객이나 경쟁업체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디지털 법률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 카스트로노바 교수의 논문이 발표된 시점에 가상세계의 소유권과 전송권 같은 개념들이 여러 변호사 콘퍼런스의 주요 주제이기도 했다. 메타버스는 게임 산업에서 발생한 문제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관혼상제 역시 메타버스로 옮겨갈지 모른다. 앞서 소개한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같은 게임에는 캐릭터 간 결혼이 존재한다. 다른 게임 유저들이 하객으로 참석하기도 한다. 메이플스토리는 아예 결혼을 위한 예식 서비스와 결혼 반지 등을 판매한다. WOW, 웁티마온라인 등의 게임에선 유저 캐릭터를 추모하는 장례식이 열린다. 이것이 바로 메타버스에서도 현실에서만큼 무궁무진한 사회적 서비스 개발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다.

메타버스와 데이터 자산

1997년 이후 MMORPG(다중 접속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장르의 게임이 유행하자 전 세계 게임 회사는 수천 명이 활동하는 여러 게임 세계를 운영하기 위한 별도의 온라인 전담 서버를 수십여 대씩이나 둬야 했다. 특히 ‘로그서버’라는 장치는 오로지 캐릭터들이 발생시키는 데이터를 기록하고 또 보관하기 위해 존재한다. 유저들이 게임을 하면서 남기게 되는 이 캐릭터 활동 기록은 고객 상담 부서에서 고객 간 분쟁을 해결해야 할 때 사실 확인용으로 쓰이거나, 게임 개발 부서에서 게임 속 재화의 흐름을 파악하거나, 새로 추가된 지역•괴물•무기 등이 실제로는 얼마나 활용되는지를 확인하거나, 유저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데 사용됐다.

물론 게임 이외 분야에서도 PC통신 시대부터 인터넷 웹페이지의 로그 기록은 고객 활동 분석의 주요 수단이었다. 그러나 페이지의 이동을 단편적으로 분석했던 과거와 달리 캐릭터의 활동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메타버스에서는 고객 분석이 새로운 분기를 맞을 것이다. 또한 메타버스는 온라인 접속과 비접속의 상태가 명확히 구분되는 인터넷과 달리 현실과 가상세계가 분간되지 않는 공간이다. 즉, 가상세계의 활동 기록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의 활동 기록까지도 메타버스에서 융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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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닌텐도의 ‘링피트’라는 게임은 홈트레이닝을 연상시키는 운동 장비를 이용해 게임의 캐릭터를 조종하도록 설계됐다. 게임 유저는 캐릭터를 조종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운동을 하게 되고, 이 운동 실적이 캐릭터의 레벨을 상승시킨다. 게임의 캐릭터를 따라 오프라인에서도 자기 관리를 하는 셈이다. 이는 결국 현실의 데이터를 게임 속 캐릭터로 옮겨 부캐와 본캐의 경계를 허물고 메타버스를 실물경제의 영역으로 연결해준다. 앞으로 등장할 메타버스에서도 웨어러블 건강 측정 장비들이 가상세계 캐릭터와 연결되면 실제 사용자를 나타내는 고급 데이터가 될 것이다.

또 다른 게임 ‘디어다이어리(Dear Diary)’는 아주 오래된 표현으로 말하자면 일기장을 의인화한 프로그램이다. 유저들은 일기장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다이어리란 본래 개인의 방 깊숙이 보관되는 것이다. 그러나 디어다이어리처럼 현실 공간이 메타버스와 결합하면 지금까지 접근하기 힘들었던 개인 영역 역시 데이터의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명상’이나 ‘자기 관리’ 같은 콘텐츠는 역시 ‘개인-부캐-본캐’의 분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처럼 메타버스의 캐릭터 활동 데이터는 그 활용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실 세계의 배송•구독경제, 팬덤 경제, 각종 웨어러블 기기의 건강 데이터, 암호자산은 메타버스 안에서 하나의 실로 꿰어진 구슬과 같이 지금보다 더욱 가치 있는 보배가 될 것이란 뜻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 같은 기록은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의 데이터라는 점에서 기업에 조금 더 자유로운 활용 가능성을 열어준다. 현실적 가치를 더해가는 메타버스 속 데이터 자산은 메타버스가 발생시키는 핵심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 속에서 인류는 육체노동과 지식노동, 서비스•감정노동이 아닌 데이터를 발생시키는 소비노동의 시대를 맞이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인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또한 메타버스를 운영하는 서비스와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것에 대한 데이터 보안 문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가상화폐뿐 아니라 이메일, 메시지 등의 통신 수단을 포함한 모든 사회 인프라가 현실과 분리돼 메타버스 세계 전용의 망을 구성하고 모든 데이터가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에서의 삶

메타버스 논의 초기에는 메타버스에 최적화된 음향과 시야 범위, 그리고 그에 합당한 플랫폼의 형태 등을 고민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것들은 아무래도 현재 존재하는 현실 세계를 최대한 모방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궁극의 메타버스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메타버스에서 인류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를 준비하는 기업들이 VR와 AR(증강현실), 나아가 AI 기술까지 활용하려는 것도 사실 메타버스 세계 내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도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다.

그러나 게임 업계를 들여다본다면 아직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메타버스의 전개나 형태를 어느 정도 추측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AI 연예인 등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화제다. 게임 산업에선 이 같은 가상의 스타 탄생이 좀 더 일찍 이뤄졌다. 라이엇게임즈는 게임 캐릭터로 가상 걸그룹 K/DA를 만들어 2018년 이후 계속 앨범을 내며 애플뮤직 아이튠즈 1, 2위를 다투고 있고, 라인게임즈도 게임 내 케이팝 아이돌그룹 시너지의 데뷔 곡을 공개했다. 이외에도 많은 AI 캐릭터와 가상 아이돌이 데뷔를 앞두고 있다.

메타버스를 종래의 인쇄 혁명이나 산업혁명에 비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시대적 혁명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메타버스는 이제 겨우 초입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와 홈페이지 형태만 갖추고 있었던 초기의 인터넷에서 메타버스 담론이 나오기 시작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문화’가 있다. 이 온라인 인간 문화를 포착해낼 수 있다면 메타버스를 대비하는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동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세계관라이브러리파트장 dekim@bighitcorp.com
필자는 90년대 하이텔과 천리안의 게임 동호회를 설립, 운영했던 경험이 있으며 NHN게임즈, KTH, 아프리카TV 등에서 게임기획 및 제작 업무를 담당했다. 건국대와 성공회대에서 겸임교수 및 시간 강사로 ‘게임기획론’을 강의했다. 테이크원컴퍼니 재직 시절, 게임 ‘BTS월드’의 제작 총괄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세계관라이브러리파트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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