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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품격

롤렉스가 중고 시장 히어로가 된 까닭

박찬용 | 316호 (2021년 0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눈에 띄는 트렌드로 명품 시장의 급성장을 들 수 있다. 명품 중 남자들이 특히 선호하는 명품 시계 시장이 뜨겁다. 그리고 그 인기를 선도하는 브랜드가 바로 롤렉스다. 롤렉스 신상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다 보니 중고 시장에서는 정가의 60% 이상 높은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롤렉스가 압도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는 교환 가치 때문이다. 롤렉스는 구하기도 어렵고 중고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금과 같은 안전자산이자 좋은 투자처로 분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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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Rolex)는 2020년 9월 신형 서브마리너(Submariner)를 발표했다. 서브마리너는 롤렉스를 대표하는 다이버 손목시계다. 신형은 전 세대에 비해 지름이 1㎜ 늘었고 그에 맞춰 시곗줄 폭도 조금 넓어졌다. 동력 성능을 대폭 개선한 신형 무브먼트(시계의 엔진) 3230도 장착됐다. 달라진 점이 또 있다. 가격도 올랐다. 2021년 2월 기준, 신형 롤렉스 서브마리너 스테인리스스틸 데이트 버전의 가격은 1130만 원이다. 호기롭게 말해도 저렴하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가격은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1130만 원의 여윳돈을 싸 들고 가도, 국내 백화점에서 신형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살 수 있을 확률은 0%에 가깝다. 다 팔려서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비싼 시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터넷에 하나는 남아 있다. 중고 명품을 판매하는 모 사이트에서 2020년 12월 날짜가 찍힌 신형 서브마리너 ‘126610’을 판매하는 중이다. 이 사이트에서 책정해 둔 시계 가격은 1800만 원이다. 신제품 가격인 1130만 원에 비해 59% 높은 가격이 붙어 버린 것이다. 지금 소비자가 신형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사려면 이 정도의 추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롤렉스는 매년 생산량과 한국 내 공급량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롤렉스를 사려고 시도해봤다면 모두 느낄 수 있는 사실이 있다. 롤렉스를 사기란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다. 제품은 늘 없고, 롤렉스 매장 앞에서 줄을 서야 하며, 매장에 앉아 제품을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팔 수 있는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애플워치 출하량이 스위스에서 생산하는 모든 시계의 출하량보다 많아졌다고 해도 롤렉스의 위용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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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의 다양한 가치

확실히 답할 수 있는 건 롤렉스가 기계적으로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롤렉스는 처음부터 기능으로 승부하던 시계였다. 롤렉스가 처음 만들어진 1900년대 초반에는 시계를 손목에 찬다는 개념 자체가 확립되지 않았다. 방수 시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롤렉스는 이런 상황에서 방수 케이스를 선보였고, 방수 성능을 알리기 위해 오이스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굴처럼 꽉 닫겨서 물이 새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 이름이 롤렉스의 기본 컬렉션인 ‘오이스터 퍼페추얼’로 아직 남아 있다. 무브먼트의 정확성이나 내구도 역시 스위스 시계 중 최상급이다. 시계 수리 전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계가 롤렉스다. 정비가 편하고, 잔고장이 많지 않으며, 한 번 고치면 또 고장 나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식으로 설명하면 앞서 언급한 롤렉스의 가치는 사용가치다. 사용가치 면에서 훌륭한 시계는 롤렉스 말고도 많다. 실물 세계에서 롤렉스만의 저력은 교환가치다. 롤렉스는 중고 가격이 놀라울 만큼 떨어지지 않는다. 가장 시세가 저렴한 시기의 상태 나쁜 롤렉스라도 브레이슬릿이 온전하다면 여전히 수백만 원은 족히 받을 수 있다. 심지어 중고 롤렉스 시계의 시세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다 비슷하게 통용된다. 서울에서 800만 원 정도 받는 중고 롤렉스가 있다면 그 시계는 도쿄, 뉴욕, 런던에서도 비슷한 값을 받을 수 있다. 전 세계 대도시 어디에나 보석상은 있으니 금괴 수준으로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롤렉스를 자산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한때 지역별 자산가치를 이용한 롤렉스 차익 거래도 가능했다. 약 20여 년 전 일본인들이 빈티지 서브마리너를 연도별로 분류하며 열광할 때 한국에서 빈티지 서브마리너는 중고 롤렉스일 뿐이었다. 일본인들이 그런 롤렉스를 대거 사서 일본으로 돌아가 두 배의 값으로 팔았다는 이야기가 그 옛날 남대문 시계 골목에 남아 있다. 지금은 이베이나 일본 야후 옥션, 크로노24(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 온라인 거래 플랫폼)등을 통해 시계 시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이렇게 극적인 스프레드 거래도 옛날 일이다.

동시에 중고 시계 거래의 리셀(resell, 재판매)은 더 늘어나는 분위기다. 인기가 있는 특정 시계는 계속 수요가 많아지고, 그럴수록 2차 시장에서의 거래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한정판 운동화처럼 시계 역시 구매만 할 수 있다면 즉시 차익 실현이 가능한 자산이라고 볼 수 있고, 실제로 롤렉스를 비롯한 일부 시계는 유의미한 수익률을 낸다.

영국의 부동산 컨설팅 업체 나잇프랭크는 2019년 흥미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고가 사치품의 가격이 얼마나 상승했는지를 보여주며 해당 사치품의 투자수익률을 계산한 것이다. 우표는 64%, 와인은 142%, 희귀 위스키는 540%를 기록하는 가운데 시계 역시 63%의 수익률을 보였다. 크로노24에서 공개되는 시계 가격 상승 곡선을 봐도 롤렉스 시세는 꾸준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저금리로 각종 자산 가치가 일제히 상승하고, 시계 역시 그 바람을 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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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명품 업계 이상 현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2020년부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고가 시계의 소비 행태에도 이상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배경은 이렇다. 첫째, 급여 생활을 하는 일부 중산층은 재택근무를 통해 안전과 월급을 동시에 챙길 수 있게 됐다. 이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주식시장이나 암호화폐 등의 자산 시장도 폭등했다. 이 바람을 타고 일부 중산층은 재산 증식에 성공했다. 지금은 해외여행이나 외식 등 야외 활동이 극도로 제한된다. 갈 곳 잃은 돈은 ‘보복성 소비’라는 이름으로 명품 소비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 나비효과의 바람이 롤렉스 시세에까지 미친다.

이런 변수들이 모여서 코로나19 시대의 럭셔리 시장은 예상치 못한 훈풍을 맞고 있다.
2020년 말 신형 서브마리너가 나올 때, 다른 롤렉스 신제품도 몇 개 함께 출시됐다. 2021년식 자동차가 나오면 2020년식 자동차를 출고하지 않는 것처럼 롤렉스 신제품이 출시되면 해당 라인업 구형이 단종된다. 그런데 롤렉스가 특정 신제품을 출시하며 해당 제품의 구세대를 단종시키자 롤렉스가 단종시킨 시계의 시세 역시 약 1000달러 치솟았다. 단종된 롤렉스는 늘 가격 상승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관계없이 고가 사치품 시장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경매에서도 드러난다. 20세기의 기계식 손목시계들은 현대사회의 공예품 및 수집품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소더비나 필립스 등의 예술 경매에도 출품돼 거래된다. 영국은 이런 경매가 가장 발달한 나라다. 2020년 7월 영국은 코로나19 감염자 30만 명에 사망자 4만5000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경매계에서는 작은 기록이 하나 세워졌다. 영국 소더비에서 진행한 경매에서 ‘존 플레이어 스페셜’ 버전 데이토나가 154만 달러(약 17억 원)에 낙찰된 것이다. 이 시계는 영국에서 경매로 팔린 시계 중 가장 비싼 시계, 온라인 경매로 팔린 시계 중 가장 비싼 시계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롤렉스의 중고 시세 강세는 지속될까? 한국의 롤렉스 매장에 가 보면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최근 매장을 가본 사람들은 모두 “구매 대기자가 60명이다” “4000만 원쯤 하는 금시계 말고는 물건이 없더라”라고 말했다. 이 강력한 인기가 중고 시세로 이어져 인터넷 전당포 사이트엔 1100만 원짜리 시계가 1800만 원에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시세는 세태를 반영한다. 롤렉스 시계의 2차 시세도 마찬가지다. 투자처가 된다면 어디에든 돈이 몰리는 시대다. 와인, 위스키, 우표, 시계 등 수요가 꾸준한 고가 사치품 중 안전자산으로 분류될 확실한 명품은 꾸준히 값이 오를 것이다. 손목시계 세계에서 안전자산은 단연 롤렉스다. 세상에 고가 시계와 고급 시계는 많다. 하지만 롤렉스처럼 확실하게 전 분야에서 가격 방어가 가능하거나 투자 금액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시계는 드물다.

롤렉스를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초적인 질문이 남는다. 대체 롤렉스가 뭐길래? 애석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깔끔한 답을 줄 수는 없다. 롤렉스의 탁월한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그리고 그 둘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증은 분명 좋은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롤렉스가 ‘튼튼한’ 시계인 건 사실이지만 사람들의 롤렉스 애호에는 분명히 비합리적인 구석이 있다. 지금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정확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 역시 엄청나게 많다. 그런 세상에 왜 롤렉스가 100년 이상의 신뢰와 선망을 받을까? 신뢰와 선망이 이어지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건 경영인 동시에 철학이고, 공예인 동시에 엔지니어링이고, 사람을 홀리는 홍보와 마케팅의 영역이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철저히 숨기는 롤렉스라는 기업에 대한 이야기다. 객관적인 자료가 모자란 상황에서 명쾌한 해석을 할 수는 없다. 롤렉스라는 유일무이한 기업이 자사 상품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정리할 뿐이다.

대신 ‘투자용 롤렉스는 무엇이 좋으며,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스포츠 시계 라인업이다. 구체적으로 서브마리너, GMT-마스터 2, 데이토나를 구할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는 게 좋다(밀가우스나 익스플로러2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하다). 박스와 보증서, 영수증과 쇼핑백에 이르는 모든 부속을 보관해야 투자 상품으로의 가치가 극대화된다. 정말 투자 목적이라면 착용은 시도하지도 말고, 비닐도 벗기지 않은 채 그대로 두는 게 좋다.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좋은 정보가 되길. 하지만 모든 투자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길 바란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iaminseoul@gmail.com
필자는 서강대 영미문학과를 졸업하고 크로노스, 에스콰이어, 매거진 B 등에서 라이스타일 잡지 에디터로 일했다. 주 담당 분야는 시계, 자동차, 호텔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다. 2018년 『요즘 브랜드』를 냈고, 한국의 니치 브랜드에 대한 『한국의 요즘 브랜드』(가제)를 작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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