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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전통적 기업이 배워야 할 ‘디지털 변혁의 트렌드’

제품이 아닌 서비스와 자신감을 팔고
수익에 집착 말고 초기 진통 이겨내야

김윤진 | 312호 (2021년 0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전통적인 기업들이 시장을 파괴하고 고객들을 빼앗아가는 스타트업과 테크 기업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과 같이 디지털 변혁의 10가지 트렌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1. 제품 기반에서 서비스 기반으로 옮겨가라.
2. 핵심 역량에만 집중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라.
3. 만들지 말고 관리하라.
4. 혁신을 연기하지 말고 진짜 혁신을 하라.
5. 제품이 아닌 자신감을 팔아라.
6. 제품이 아닌 결과를 팔아라.
7. 수익을 따지기 전에 근본적인 체질을 바꿔라.
8. 마진 비즈니스에서 중개 비즈니스 모델로 바꿔라.
9. 기존 채널들을 다시 생각해보라.
10. 돈보다 가치를 창출하는 데 역점을 두라.



탈레스 테이셰이라
『디커플링』 저자 겸 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디지털 혁신 전문가. 오바마 정권 시절 미국 FDA 전문 평가 위원으로 활동했다. 바이엘, 유니레버, 넷플릭스, 나이키, 지멘스, 유튜브 등 미국의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중 15개 기업의 고위 경영진을 상대로 경영 자문을 수행한 바 있다.

구글, 아마존, 에어비앤비, 우버를 비롯, 지난 몇 년 동안 성공을 거둔 많은 기업은 태생부터 디지털 기업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디지털 기업이 아니었던 전통적인 산업군의 기업들은 어떻게 디지털 변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변혁을 직접 겪은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어떤 점을 벤치마킹해야 할지, 피해야 할 함정은 무엇인지, 기업들이 이런 도전과제를 잘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례 연구를 통해 살펴본 10가지 디지털 변혁의 트렌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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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기반에서 서비스 기반으로 전환

첫째, 제품 기반의 전략에서 서비스 기반의 전략으로 이행해야 한다. 오늘날 고객의 가치사슬(CVC•Customer Value Chain)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존디어(John Deere)’라는 농업기계 회사 사례를 살펴보자. 이 회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농업 기자재 제조사였다. 농부들이 어떻게 토양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종자를 심고, 무슨 살초제와 농약을 뿌려야 하는지 경작에 필요한 업무를 A부터 Z까지 수행해 왔다. 그런데 몇 년 전, 작은 스타트업인 ‘블루리버(Blueriver)’가 등장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블루리버는 존디어가 만든 트랙터 뒤에 부착하는 기자재를 발명하고 여기에 카메라를 장착함으로써 트랙터가 밭이나 논에 씨앗을 쭉 뿌리는 모습을 컴퓨터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메라 모니터링을 통해 어떤 식물이 잘 자라거나 허약한지, 살초제를 더 뿌려야 할지, 덜 뿌려야 할지를 기록했다. 판단 능력이 향상되자 존디어가 하던 기존 사업 영역들을 빼앗아 갔다.

위협을 느낀 존디어는 결국 블루리버를 인수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뒤 농업 분야에 다른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 생기더니 또 존디어의 활동 영역을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Farmers Business Network)라는 신생 회사는 미국 중부 지역의 농경지들은 대체로 똑같은 종자를 뿌리고 옥수수 수확량이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데이터를 수집해 농부들끼리 서로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수확량은 어떤지 등의 정보를 교류하도록 했다. 정보를 공유하면서 농부들이 서로 경작을 도울 수 있게 한 것이다. 스타트업의 추격에 존디어는 수익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기업의 경우 이미 규모가 어느 정도 컸기에 인수를 통해 경쟁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추격자들의 위협에 세계 1위 기업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존디어를 방문했을 때,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0년간의 전략을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잘(Bigger, Faster, Better)’이라고 요약해 소개했다. 그동안 회사가 엔지니어들을 고용해 더 크고, 더 빠르고, 농경 활동을 더 잘하는 트랙터를 만드는 데 주력해 왔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존디어는 40년간의 R&D를 통해 농기자재를 개발하고 농부들에게 판매했다. 한창 기술 혁신이 이뤄지던 이런 시기, 소비자인 농부들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트랙터를 버리고 4∼5년마다 신제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농부들은 더 이상 신제품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됐고, 혁신도 미미하다고 느꼈다. 굳이 짧은 주기로 트랙터를 구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뒤로는 교체 주기가 10년, 12년으로 점점 길어졌고, 15∼20년 동안에도 트랙터를 교체하지 않는 농부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존디어는 수익성이 악화됐고 기존 사업마저 스타트업들에 빼앗기는 처지가 됐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존디어는 지난 40년간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했다. 이사회와 경영진이 제품 기반 전략을 서비스 기반 전략으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다. 농기자재 판매로만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고, ‘농부들의 농경 활동을 돕는 일’을 새로운 업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회사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 사례는 전통적인 기업들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기업의 수익은 대부분 역량, 특히 직원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시장이 파괴되기 시작하면 기업이 새로운 역량을 구축하는 속도보다 기존 역량을 잃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 존디어의 엔지니어들도 끊임없는 R&D를 통해 새로운 장비들을 만들었고 영업사원들은 이렇게 생산된 제품을 팔았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쳤다. 이때 존디어는 기자재가 아닌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설팅 회사가 되기로 마음가짐을 바꾸면서 활로를 찾았다. 즉, 농부들에게 직접 가서 농부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컨설팅을 해주는 서비스 기반 회사가 됐다. 이처럼 시장에 큰 파괴적 전환이 발생할 때, 제품 기반의 전략을 서비스 기반의 전략으로 바꾸면 좀 더 많은 가치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둘째, 핵심 역량에만 집중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 마스터카드의 사례를 살펴보자. 마스터카드 CEO였던 아제이 방카는 4개의 신용카드 회사가 경쟁을 하는 상황에 놓여 고민에 빠졌다. 비자카드가 48%로 가장 점유율이 높았고, 마스터카드가 32%, 아메리칸익스프레스카드가 12%, 디스커버가 그 뒤를 이었다. 마스터카드는 경쟁에서 이기려고 노력했지만 비자를 공략하면 할수록 일부 점유율을 또다시 뺏기는 사례가 이어졌다. 이에 방카는 이런 출혈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경쟁 자체가 아닌 시장에 시선을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즉, “미국 소비자의 60%가 신용카드를 사용한다면 40%는 무엇으로 결제할까”를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혁신적인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스터카드가 만든 직불카드를 사용하게 하기로 한 것이다. 일례로 마스터카드는 런던시 교통카드인 ‘오이스터카드’를 대체해 줬다. 원래는 영국에서 지하철, 기차,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려면 이 일회용 교통카드를 사서 충전해야 했다. 그런데 런던시는 오이스터카드 관리에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런던 교통당국이 인프라에서 벌고 있는 매출의 14%를 이 종이 카드를 만드는 데 지출하고 있었을 정도다. 이에 마스터카드는 런던 교통당국의 대중교통카드 제작을 대행해주기로 했다. 런던시 교통당국 역시 이를 통해 지출을 세수의 14%에서 9%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현재 6%를 목표로 계속해서 비용을 줄이고 있다.

마스터카드는 이렇게 오이스터카드를 대신 제작해주는 과정에서 런던시의 대중교통 이용량이 퇴근 시간인 오후5시10분에 정점을 찍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대중교통이 이 시간대에 포화 상태가 된다는 것을 간파하고, 피크 시간대 퇴근하려는 사람들에게 5파운드짜리 공짜 커피를 제공함으로써 10분 정도 일찍 혹은 늦게 퇴근하도록 했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런던시의 교통 혼잡을 막는 데 기여했고 런던 교통당국은 마스터카드 덕분에 설비 확충에 들어갈 수억 파운드를 절약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마스터카드는 시장 내에서 신용카드를 이용하지 않는 40%의 경쟁자 파악에 나섰다가 대중교통카드의 존재를 파악했고, 교통당국의 지출을 줄이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다가 인프라 집중의 해결책까지 떠올렸다. 방카는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의 비즈니스를 이해하면 혁신을 만들 수 있다고 봤고, 역량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기업 내 무수히 많은 혁신가를 배출해 냈다.

셋째, 단지 만드는 것(Building)에만 집중하지 말고 잘 관리(Managing)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관리에 실패한 GE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GE는 디지털화를 시도하면서 GE디지털이라는 별도의 부서를 만들고 프리딕스(Predix)라는 이름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원래 GE는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주로 R&D에 집중하면서 풍력발전소나 항공기 엔진, 교통 로코모티브, 중공업 장비들을 만들었다. 거대한 하드웨어를 팔기 위해 영업사원은 고객사의 니즈를 파악하고, 상품을 주고 돈을 받아왔다. 즉, 간단한 계약서로 거래 판매를 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GE디지털은 단순히 산업 기자재를 만들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사가 이미 갖고 있던 하드웨어를 굳이 교체하지 않고도 최적화할 수 있도록 거래 판매에서 컨설팅 판매로 방향을 틀었다. 이를 위해 기자재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을 했고, 공장에서 사용되는 기자재의 활용률을 5%에서 10%로 높일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GE가 GE디지털을 별도 회사로 만들고 보스턴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실리콘밸리로 이전하면서 생겼다. GE디지털은 하드웨어 엔지니어, 영업사원과 함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고용하는 동시에 다른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GE의 철학과 아이디어를 주입하기보다는 “실리콘밸리에서 알아서 자유롭게 일해볼 것”을 주문했다. 그 결과 GE디지털은 GE 본사와는 아예 다른 소프트웨어 기반의 서비스 회사가 됐다. 그러나 지리적 간극이 너무 컸다. 이로 인해 GE디지털이 수집해 분석한 데이터, 수년간 막대한 돈을 투자해 만든 소프트웨어가 본사에 효과적으로 적용되지 못했다. GE의 장비 활용률을 높이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 결과 GE 본사가 만든 장비는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됐고, GE는 디지털화를 위한 조직을 이렇게 동떨어진 곳에 두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다시 말해, 디지털 변혁을 위해서는 통합이 중요하다. 신규 조직이 어느 정도 분리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기존 조직과 통합되지 못하면 제아무리 최고의 기업일지라도 디지털 혁신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 있다.

넷째, 혁신을 연기(act)하지 말고 진짜 혁신을 해야 한다. 화장품 리테일 기업인 세포라의 고객 가치사슬을 살펴보자. 고객들은 매장을 방문해 다양한 화장품을 보고, 원하는 상품을 골라 구매한다. 그런데 2009년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한 졸업생은 세포라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좀 더 편리하게 화장품을 써볼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버치박스(Birchbox)’란 회사를 만들었다. 한 달에 10달러만 내면 샘플이 가득 든 화장품 박스를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였다. 고객은 이 박스를 열고 다양한 화장품을 편리하게 테스트해볼 수 있게 됐다. 스탠퍼드의 한 졸업생 역시 한국에서 비슷한 모델의 ‘미미박스(Memebox)’를 창업했다. 또 다른 화장품 스타트업인 ‘입시(Ipsy)’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2014년 기준, 거의 100만 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확보하며 선발 업체인 버치박스를 추월했다.

세포라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회사 안에서도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저렴한 가격에 고객들에게 화장품 샘플을 보내는 사업을 시작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세포라 CEO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맞섰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세포라 매장을 직접 관리하고 운영하면서 매출 증대에 크게 기여한 주인공이 정작 혁신적인 제안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는 값싼 샘플 박스를 고객들의 집으로 보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직접 매장을 방문해 샘플을 테스트해보고 구매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수천 개의 매장에서 이로 인해 매출 하락이 발생하게 되면 연봉과 보너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조직 내 입지 역시 약해질 것까지 염려했다. 이에 회사 내부에 있던 혁신가들은 이 CEO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화장품 샘플 박스를 무료로 나눠 주되 반드시 세포라에 직접 방문을 해야만 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세포라는 직접 매장을 방문해 로열티 카드를 보여주는 고객들에 한해 무료로 ‘플레이(Play)’라는 이름의 샘플 박스를 받아 가도록 했다.

그러나 결국 소비자들을 강제로 매장까지 가게 하는 이 서비스는 진짜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애초에 버치박스가 생겨난 이유는 소비자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포라는 단 한 명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혁신의 가치를 스스로 줄였고,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결국 세포라는 200만 명이 가입한 입시, 80만∼90만 명이 가입한 버치박스와 달리 20만 명의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그쳤다. 돈도 많고 막강한 대기업이었던 세포라가 스타트업에 밀린 이유가 무엇일까? 사내 입지 약화를 두려워한 임원들끼리 갈등이 일어났고 이런 다툼이 혁신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이슈가 결국 혁신을 가로막는 불행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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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결과를 보장해 고객 안심시켜야

다섯째, 제품이 아닌 자신감(assurance)을 판매해야 한다. 다시 한번 세포라의 예를 살펴보자. 화장품의 경우, 사람들이 어떤 제품이 내 피부에 맞는지, 내 머리에 맞는지 직접 체험해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샘플링이 중요하다. 세포라 매장에 가면 뷰티 컨설턴트가 샘플링을 직접 도와준다. 이렇게 소비자는 자신에게 잘 맞는 브랜드와 제품명을 알게 되고, 세포라에서 재구매를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가치사슬이 끊어지면서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앞서 농업 장비 관련 스타트업들이 존디어의 가치사슬 가운데 연결고리가 약한 부분을 찾아 ‘파괴’를 이끌어냈듯 뷰티 업계에서도 세포라의 가치사슬 중 약한 부분을 찾아낸 기업들이 생겨난 것이다. 아마존이나 키엘 등의 기업이 바로 이 고객들의 재구매로 이어지는 사슬을 파고들었다. 대형 기업인 로레알 산하 브랜드인 키엘은 남녀를 불문하고 소비자들이 “나에게 맞는 화장품을 항상 구매할 수 있다” “품절되지 않는다” “매장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길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키엘은 앱을 만들어 소비자들로 하여금 한 주 동안 화장품을 언제, 얼마나 쓰는지 기록하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이 제품이 떨어져 재주문하기도 전에 수요를 예측해 해당 제품을 집으로 배송해줬다. 많이 쓰는 소비자에게는 많이 보내고, 덜 쓰는 소비자에게는 덜 보내는 방식으로 제품이 소진되지 않게 계속 상품을 제공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입 모델을 만들고 BaaS(Beauty as a Service, 서비스로서의 뷰티)를 선보인 결과 회원들은 “우리 집에 내가 쓰는 화장품이 떨어지지 않겠구나”에 대한 안도감을 얻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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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이 찾는 제품은 끊임없이 달라진다. 그러나 일부 제품은 정말 자주 구매하기 때문에 아예 계약을 맺고 매일 쓸 수 있게 되길 원한다. 건강보험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건강보험은 매일 필요하지만 우리가 늘상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계약을 하거나 결제하진 않는다. 유효기간을 두고 회원제 서비스에 가입한다. 그런데 아침 식사처럼 우리가 다양하게 먹기를 원하고, 찾는 것이 항상 달라지는 경우라면 회원제 서비스라는 것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모든 제품군에 있어 구독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결정하는 게 귀찮은 소비자들에게는 회원제가 솔루션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고객마다 느끼는 가치가 다르고 각기 다른 고객이, 각기 다른 데서 가치를 얻는다면 모두를 충족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여기서 여섯째 트렌드를 살펴봐야 한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서 나아가 결과(outcome)를 보장해야 한다. 호주에는 오리카(Orica)라는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케이블, 화학물질 등을 만들고 판매한다. 오리카의 고객들은 건물 철거나 광물 자원 획득 등 다양한 목적으로 폭파 작업이 필요할 때 제품을 구입한다. 과거 오리카는 제품을 팔고, 고객들에게 제품 사용 방법에 대해 설명해왔다. 그러나 점차 이 기업은 폭파하는 대상, 깨뜨리는 바위의 크기에 따라 점점 맞춤형으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즉, 이 제품을 사면 ‘확실하게 폭파할 수 있다’는 보증을 주면서 폭파 대상에 가장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한 것이다.

이런 B2B 영역에서의 디지털 변혁 사례는 제품이 아닌 솔루션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가령, 드릴이라는 제품 자체를 필요로 하는 고객은 없다. 벽이든, 땅이든, 나무 위든 어떤 구멍을 뚫기 위해 그 드릴을 필요로 할 뿐이다. 드릴을 만드는 회사가 너무 제품을 중심으로 생각하다가 구멍을 뚫는 게 목표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면 금세 더 간단하고 빠르고 저렴하게 구멍을 뚫을 수 있게 하는 레이저에 대체될 수밖에 없다. 드릴 제조 업계는 결국 파괴되고 말 것이다. 회사들이 제품이 아닌 솔루션을 중심으로 생각을 전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곱째, 수익을 따지기 전에 진통을 감수하고라도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번에는 브라질의 잡지사 루이자(Luiza)의 예를 들어보겠다. 이 회사는 신뢰도, 수익도 잃어 역성장을 하고 있었는데 디지털 변혁을 통해 테크 회사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매장도 테크 허브로 탈바꿈했다. 이런 루이자 잡지도 처음에는 손해를 봤다. 보통 전통적인 기업들이 기술 분야에 투자를 할 경우 수익성은 V자 형태를 그리게 되기 때문이다. 전통 비즈니스 영역을 줄이고 디지털 비즈니스를 병행할 때, 처음에는 전환 과정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때 기업의 리더나 직원, 이사회 등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강력한 리더라면 이런 V자 형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궁극적으로 수익성이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루이자도 결국 수익을 냈고, 2015∼2020년 사이에 주가가 3만% 증가했다. 이처럼 디지털 변혁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기업이 부정적이고 힘든 과정을 거치는데, 리더라면 이런 진통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을 조직 내에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여덟째, 마진(margin) 비즈니스 모델에서 중개 모델로 바뀌어야 한다. 유통업은 이미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사람들이 유통업체를 한번 둘러본 뒤 아마존이나 다른 전자상거래 업체의 앱을 통해 구매하는 패턴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베스트바이는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구경을 하고, 온라인에서 구매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매장을 ‘구경하는 공간’으로 바꾸었다. 그런 뒤 이렇게 매장에 제품을 진열했을 때 가장 혜택을 보는 고객이 누구인가를 떠올렸다. 바로 삼성처럼 TV와 같은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었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매장에 전시된 제품을 눈으로 확인한 뒤 구입하기 때문에 ‘전시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했고,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든, 온라인에서 구매하든 삼성에는 매출이 발생했다. 이에 베스트바이는 제품을 전시하는 대가로 가전 업체들에 비용을 지불하게 했고, 이를 통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이처럼 베스트바이는 마진에 기초한 비즈니스 모델에서 중개, 즉 미디어 모델로 전환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관심에 대한 대가를 제조업체로부터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사례는 디지털 변혁이 반드시 새로운 기술의 채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스트바이는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드는 기술에 대한 투자 없이도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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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채널과 가치 창출 기회

아홉째, 기존 채널들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금융 서비스의 변화를 살펴보자. 과거 보험 판매원 등에 의존해 왔던 금융 분야도 최근 들어 기술을 활용해 영업사원들을 줄여나가고 있다. 주택보험회사인 호버(Hover)의 경우 집이 망가지거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온라인에서 간단히 보험을 가입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먼저, 보험에 가입할 때 집의 사진을 찍어 놓도록 한다. 그런 뒤 화재 등 재해가 발생하면 또다시 집의 사진을 찍게 한다. 이렇게 비교 가능한 전후 사진을 확보해두기만 하면 큰 분쟁 없이 보험금을 준다. 많은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비싼 영업사원이나 금융 관련 직원들의 숫자를 줄이는 추세다. 젊은 고객을 온라인에서 저렴하게 유치하는 D2C(Direct to Consumer) 모델로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어가면서 고객들 스스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객들에게 부과되던 비용도 낮아졌다.

열 번째, 돈보다 가치를 창출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혁신을 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다. 몇 년 전 중국 상하이에 있는 핑안보험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핑안보험에서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최고경영진까지 허가를 받아야 했고,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먼저 수익성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허가를 받기 위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핑안보험의 ‘굿닥터’라는 앱은 이 같은 절차 없이 만들어졌다. 뚜렷한 수익화 전략을 발표하지 않고도 개발을 개시한 것이다. 굿닥터는 어떤 의사를 만나야 하는지, 특정 병원에서 어떻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앱이었다. 이 앱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몰랐던 회사는 일단 앱을 무료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앱을 통해 병원 방문 일정을 잡을 수 있는 예약 기능도 추가했다. 이런 일련의 기능을 무료로 제공한 결과 굿닥터는 곧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핑안보험은 이 굿닥터를 주식시장에 상장했고, 11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조달했다. 현재 굿닥터의 시가총액은 140억 달러에 달한다. 무료 사용자는 7300만 명, 유료 사용자 수는 300만 명이다. 지난 한 해 매출 증가율은 107%였다. 여전히 수익성은 없지만 업계에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매출을 늘려가고 있는 만큼 조만간 수익을 내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과거의 중국 대기업이라면 이런 시도를 감히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혁신도 초기 단계에서는 매우 취약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인큐베이터가 있어야 한다. 혁신의 초창기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오히려 혁신을 해칠 수 있다. 오늘날 가장 강력한 회사들, 즉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구글, 에어비앤비, 우버 등도 수익을 내기 전 몇 년 동안은 손해를 감수했다. 투자자들이 언제 수익을 낼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고 투자를 했기 때문에 이 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훌륭한 기업들이 수익을 내게 하려면 역설적으로 너무 일찍 수익에 역점을 두면 안 된다.

코로나19의 세 번째 유행이 온다는 이야기가 돌고, 이 사태가 언제 끝날 것인가, 끝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그때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예측할 수 있는 징조는 있다. 새로운 규칙이 생겨나고 있고, 대기업보다 민첩하게 움직이는 스타트업들은 이미 새로운 규칙을 통해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더 저렴하고, 더 빠르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찾던 소비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안전한’ 제품과 서비스까지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짧은 시간 내에 시장에서 큰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제품과 서비스 제공자가 대기업인지, 스타트업인지 따지지 않는다.

2000년 초반 닷컴버블 때 많은 기업이 사라졌지만 아마존, 구글, 이베이는 번성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유수의 통신사들과 은행들이 사라졌지만 리프트, 에어비앤비, 우버는 투명성과 효율성을 입증하면서 성공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기업이 또 사라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크게 번성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건강, 안전, 유연성의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하는 기업이 그 기회를 잡게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뒤처지겠지만 기회에 역점을 맞춰야 한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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