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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어몽 어스’ 흥행으로 본 방구석 게임

친구들과 오프라인서 파티 게임 하듯
‘거리 두기’의 대안 놀이가 통했다

이경혁 | 310호 (2020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마피아게임의 온라인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게임 ‘어몽 어스’는 엄청 독창적이지도, 대단한 그래픽과 규모를 자랑하지도 않지만 2020년 대흥행을 일으키며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았다. 출시 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이 단순한 게임이 언택트 시대에 갑자기 역주행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성공 요인이 있겠지만 ‘어몽 어스’가 게임 밖 플레이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촉발하고 온라인 매칭을 넘어 원래 알던 지인끼리 모여 노는 파티 게임의 기능을 대리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게임의 흥행은 코로나라는 새로운 시대 상황과 맞물려 가상 공간 안에서의 게이밍이 아닌, 콘텐츠를 두고 현실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게이밍의 가치를 제시한다. 메타-게이밍(meta-gaming)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디지털 게임을 사람과 사람 간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으로 포지셔닝한다.



초등학교 앞 가게에는 아이들을 유혹하는 뽑기 장난감 기계, 이른바 ‘가챠퐁’이라는 상품 판매기가 있다. 가챠퐁이라는 이름은 생소할지 몰라도 동전 하나를 넣고 레버를 돌리면 플라스틱 캡슐 안에 든 장난감이 굴러 나오는 기계라고 하면 누구나 알아들을 것이다. 이 기계 안에 어떤 상품이 들었는지는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 무엇이 가장 유행하는지를 보여주는 유용한 척도다. 2020년 초반까지만 해도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무기나 아이템 장난감이 주를 이뤘던 가챠퐁의 트렌드는 2020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헬멧과 점프슈트로 얼굴을 가린 인형들이 가챠퐁 상품 트렌드를 완전히 점령했다.

폭풍과 같은 인기몰이의 주인공은 PC와 모바일로 발매된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 ‘어몽 어스’다. 우주복을 입은 원색의 캐릭터들은 어느 날 소리 없이 인기 순위를 역주행하면서 치고 올라오더니 이제는 아예 초등학생을 넘어 남녀노소가 가리지 않고 찾는 대세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갑작스럽게 등장해 순식간에 2020년 ‘올해의 게임’의 위상을 꿰찬 ‘어몽 어스’의 성공이 어떻게 가능했고, 어떤 배경 속에서 이뤄졌는지를 짚어보는 것은 비대면 시대 게임, 나아가 엔터테인먼트가 갖춰야 할 조건과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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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어몽 어스’의 영문 모를 역주행

‘어몽 어스’는 2020년 갑자기 대흥행했을 뿐 놀랍게도 올해 나온 게임은 아니다. 실제 출시일은 2018년 6월로, 이후 대단한 반향이 없다가 2020년에 이르러 갑자기 치고 올라온 독특한 케이스다. 제작사인 이너슬로스(Innersloth)는 전 직원이 3명밖에 없는 작은 인디 게임 개발사다. ‘헨리 스틱민 콜렉션’ ‘디그 투 차이나’ 같은 소규모 전작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도 사실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게임은 아니었다. 세 사람이 별도의 외주 없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어몽 어스’는 그 분량부터 매우 단출하다. PC 버전의 데이터 용량은 총 238메가바이트에 불과하다. 요즘 유행하는 대형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가 약 20기가바이트, ‘오버워치’가 약 30기가바이트의 용량을 가진 것과 비교하면 100분의 1 수준일 정도다.

데이터 용량이 가볍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이 그려내는 시청각 효과가 별 게 없다는 의미다. 요새 대규모 게임이 으레 갖고 있는 3차원 그래픽의 화려한 비주얼과 풀 서라운드의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를 ‘어몽 어스’에선 찾아볼 수 없다. 세 명이 모든 프로그래밍과 디자인, 기획을 다 처리하는 상황에서 방대한 분량을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던, 빨갛고 파란 원색 캐릭터들의 단순한 움직임, 만화의 표현 양식을 따온 간단한 애니메이션이 전부다. 그러나 실제 ‘어몽 어스’의 내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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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몽 어스’에서는 외계 탐사에 나선 우주비행사들과 그들의 우주선, 발사기지, 외행성 기지 등이 게임의 주요 배경과 인물로 그려진다. 알록달록한 우주복을 입은 이들은 모두 게임에 참가한 실제 플레이어들의 캐릭터이며 한 게임에 4명에서 최대 10명의 인원이 모여 플레이를 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참가 플레이어 중 1∼3명이 ‘임포스터’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나머지 인원은 그냥 ‘크루원’이 된다. 크루원은 일반적인 우주탐사대의 임무를 수행하지만 임포스터가 된 플레이어는 크루원들을 방해해 최종적으로 모든 크루원을 없애라는 임무를 받는다.

임포스터가 살해 버튼을 누르면 입에서 촉수 같은 것이 뻗어 나오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크루원을 살해하게 된다. 얼굴까지 가리는 우주복 때문에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은 같은 팀 속에서 누가 나를 죽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일게 하고 게임의 주요 동기가 된다. 그렇다고 임포스터가 아무렇게나 활개를 치고 다니면서 주변인들을 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크루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틈틈이 누가 임포스터인지 밝혀내려 들기 때문이다. 만약 빨간 우주복이 누군가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목격자 크루원은 바로 비상 소집 회의 버튼을 눌러 모든 이에게 “빨간 우주복이 임포스터다!”라고 선언하고 투표를 통해 그를 추방할 수 있다. 모든 임포스터를 추방하면 크루원팀이 승리하기 때문에 임포스터는 암살과 방해 공작을 최대한 은밀하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수행해야 한다.

여기까지 게임 설명을 본 사람들이라면 이즈음에서 이 게임의 원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MT나 워크숍 등지에서 자주 접해봤을 법한 파티 게임, 마피아게임이 ‘어몽 어스’의 중심에 깔려 있는 기본 규칙이다. 1980년대 구소련의 대학 심리학과에서 처음 고안된 마피아게임은 최초에는 심리 실험의 용도로 사용됐지만 특유의 재미가 부각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인기 게임으로 자리했다. 실제로 ‘어몽 어스’의 주요 등장인물과 상황은 마피아게임과 유사하다. 마피아, 임포스터는 누가 자기 팀인지 알 수 있지만 시민과 크루원은 누가 살인마인지 알 수 없는 정보 불균등 속에서 오직 심리 추리와 단서 수집을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다시 말해, ‘어몽 어스’는 마피아게임의 컴퓨터 게임 버전이다.

그러나 ‘어몽 어스’는 마피아게임의 모티프를 가져왔을 뿐 같은 게임으로 남지는 않았다. 기존의 마피아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이 정적으로 앉아 있는 상태에서 주로 대화를 통해서만 진행된다. 이에 반해 ‘어몽 어스’는 여기에 플레이어블 캐릭터라는 고전적인 PC게임의 형태를 얹었다. 플레이어가 직접 전후좌우로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시했고, 그 캐릭터가 움직이면서 게임을 수행할 수 있는 우주선과 연구기지, 발사기지를 세팅했다. 추상적이었던 마피아게임의 논리에 우주 탐험이라는 고독한 순간, 미스터리한 불의의 사고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부여한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은 더 많은 ‘할 것들’을 부여한다. 원래의 마피아게임에서 시민들은 마피아가 누구인지를 추리하는 것을 빼면 딱히 할 일이 없다. 이에 반해 ‘어몽 어스’의 크루원들은 게임의 승리를 위해 주어진 과업을 100% 완수해야 한다. 고장 난 우주선을 고치거나 기지에서 실험을 수행하는 과제가 완료되면 임포스터가 패배하고 크루원이 승리한다. 이는 임포스터의 위협을 앞뒤 맥락 없는 단순한 테러가 아니라 팀워크를 발휘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만들며 참가하는 플레이어들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종합하자면 2020년 대흥행을 일으킨 게임 ‘어몽 어스’는 완전히 새로운 게임, 새로운 장르라기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파티 게임인 마피아게임을 적절하게 발전시키고 계승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미 너무도 유명하고 재미가 입증된 마피아게임이 그동안 ‘어몽 어스’ 외에도 수많은 디지털 게임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굉장히 창의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잘 만든 마피아게임’이라는 것만으로는 2020년 ‘어몽 어스’가 돌풍을 일으킨 배경을 설명할 수 없기에 우리는 게임을 넘어 시대의 맥락을 좀 더 살펴봐야 한다.

가벼운 게임, 편리한 접근성

폭발적인 흥행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은 조금 뒤에서 이야기하고 ‘어몽 어스’가 가진 흥행의 배경 중 가장 근본적인 전제로 작용하는 요소는 바로 접근성이다. ‘어몽 어스’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세 명의 개발인력만을 보유한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고, 방대한 양의 자원을 투여해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 수 없는 환경에서 탄생했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 그래픽에만 몇 기가바이트를 쓰는 대형 게임 제작 스튜디오의 결과물에 비하면 비주얼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대단히 복잡한 게임 작동 방식이 등장하지도 않고, 방대하고 웅장한 시나리오나 개성 있는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는 단점이기도 하지만 가능성의 요소이기도 하다. 작고 가벼운 용량이 두 가지의 접근 편의성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구매 및 설치와 실행이 쉽다. ‘어몽 어스’는 PC와 모바일에서 모두 플레이할 수 있으며, 한국 기준으로 게임의 가격이 PC 버전은 5500원, 모바일 버전은 심지어 무료다. 대형 게임의 PC 버전 가격이 대략 6만 원 선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가격에 있어서 너무 큰 메리트가 있다. 모바일이 무료라는 점 때문에 누가 PC 버전을 굳이 구매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채팅이나 조작 면에 있어 PC 버전이 갖는 장점이 뚜렷하고 5500원이라는 가격도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열심히 해볼 요량인 사람들은 PC 버전을 선택하게 된다.

설치와 작동도 용이하다. 대형 게임처럼 복잡한 설정이나 사전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고, PC의 하드디스크 용량이 모자라 다른 어떤 게임을 지워야 하나 같은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추가 DLC(Downloadable Content, 본 게임 구매 이후 추가 캐릭터나 스토리 등을 해금하기 위해 별도로 구매하는 콘텐츠)에 돈을 쓸 일도 없고, 지속적으로 추가적인 요금 결제를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손쉽게 한 번쯤 설치해 플레이해볼 수 있는, 손쉬운 접근의 환경이 마련돼 있다.

두 번째, 게임의 이해가 쉽다. 현대의 디지털 게임들은 각각의 장르적 문법을 두텁게 쌓아 갔다. 혹은 지속적인 패치와 업그레이드를 거치면서 게임 초심자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할 만큼의 진입장벽을 쌓아왔다. 이를테면 가장 인기 있는 대전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만 150여 종에 이른다. 1개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4개의 스킬과 1개의 기본기만 계산해도 게임에는 총 600여 개의 스킬이 등장한다. 여기에 3개의 공격로, 수십 개의 아이템과 조합이 덧붙여지고, 이것들이 어우러지는 전략의 흐름 또한 수시로 변한다. 이 때문에 ‘리그 오브 레전드’는 출시 초기에 비해 이제는 입문이 상당히 쉽지 않은 게임으로 변했으며, 심지어는 출시 초창기에 즐겼던 플레이어들조차 최근의 버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접근성 문제는 특히 게임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초심자에게서 더욱 크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게임이 암묵적으로, 공통적으로 규정하는 특유의 문법을 아예 모를 경우 애초에 무슨 게임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 등의 화면 속 유닛을 선택하고 움직일 때 마우스 커서를 활용해 클릭한다는 것, FPS게임인 ‘서든 어택’이나 ‘오버워치’ 등 3차원 게임에서의 캐릭터 이동은 키보드 W-A-S-D를 사용하고, 시선의 이동은 마우스를 움직이면 된다는 것은 오랫동안 게임을 해온 이들에게는 마치 걸음마처럼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이들에게는 의외로 넘기 힘든 장벽으로 작용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몽 어스’는 초심자의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2차원으로 간결하게 그려진 맵 안에서 캐릭터를 이동하는 정도는 그리 많은 사용자 경험 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게임의 규칙 자체가 마피아게임이라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친구와 같이 ‘어몽 어스’를 하기 위해 게임을 설명할 때 “마피아게임이랑 똑같아!”라는 한마디로 핵심 개요를 전할 수 있다는 것도 게임 플레이의 대중적 확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디지털 게임이 서브컬처에서 대중문화로 넘어오는 과도기지만 한 콘텐츠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든 측면에서의 편리한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 고성능의 PC와 빠른 속도를 보장하는 인터넷, 이들 모두의 전제가 되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같은 면을 생각한다면 디지털 게임이 가진 하드웨어적 측면의 접근성이 다른 매체보다 낮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수십 년간 발전하며 쌓여 온 게임 특유의 문법 또한 초심자에게는 외국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어몽 어스’라고 그런 디지털 게임의 접근성 문제에서 자유로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대형 게임들에 비해 간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손쉬운 대중의 유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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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게임의 시대, 스트리머와 흥행

게임 경험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편의성은 ‘어몽 어스’의 흥행을 이끈 기초 요인이지만 직접적인 유행을 촉발한 티핑 포인트는 아니다. 실질적으로 ‘어몽 어스’의 역주행을 만들어낸 주체는 ‘보는 게임’ 시대의 대표주자인 스트리머다. 미국의 PC 게임 전문 잡지 ‘PC gamer’의 기자 웨스 펜론(Wes Fenlon)은 인터넷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에서 ‘어몽 어스’의 게임 스트리밍이 폭발하기 시작한 2020년 7월, 8월의 트래픽에 주목한다. 한국과 북미에서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한 ‘어몽 어스’ 플레이 스트리밍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트위치’에서 화제의 중심에 자리한다.

‘보는 게임’은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나눌 수 있다. 게임사 혹은 방송사의 주관으로 토너먼트나 리그와 같은 스포츠 대회 형식을 통해 높은 숙련도를 가진 프로 게이머들이 펼치는 대전을 관전하는 e스포츠의 형식과 개인 혹은 소규모 집단이 특정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 자체를 지켜보는 스트리밍 형식이다. ‘어몽 어스’는 한눈에 척 봐도 어렵지 않은 규칙으로 손쉽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지는 ‘어몽 어스’ 게임의 특징 중 하나는 주요 상호작용이 게임 안에서라기보다는 게임 밖에 위치하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어몽 어스’에서 사람들은 긴급회의 버튼을 눌러 누가 임포스터인지를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데 약 90초간 주어지는 이 시간 동안 게임 콘텐츠 자체는 멈춰서 있다. 게임 플레이는 콘텐츠가 멈춘 사이 각 플레이어가 채팅이나 음성통화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발생한다. 이러한 점은 실질적인 게임의 위치를 게임 그 자체보다는 ‘플레이어들’이라는 메타적 위치로 옮겨 놓는다. 이렇게 게임의 본질이 게임 밖에 위치하고, ‘보는 게임’으로서 플레이어 자신 또한 콘텐츠에 포함되는 스트리밍 방식에 있어 ‘어몽 어스’의 재미가 두드러진 것이다.

펜론 또한 이러한 지점을 살핀다. 그는 ‘어몽 어스’의 여러 스트리머가 온라인에서 완전히 무작위적인 사람들과 파티를 맺어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 개인의 실제 지인들을 모아 플레이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게임 콘텐츠가 제공하는 규칙 이상으로 서로 이미 친분이 있는 지인들이 ‘네가 임포스터지!’라고 우기며 투닥 거리는 장면 자체가 ‘어몽 어스’가 주는 즐거움의 원천이었던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어몽 어스’의 흥행은 몇몇 인기 게임 스트리머를 통해 촉발됐다. 아마도 최초의 흥행의 시작은 한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출시 후 약 반년 정도가 지난 뒤부터 ‘어몽 어스’가 한국 스트리머들에 의해 발굴돼 방송 콘텐츠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방송의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인기 콘텐츠가 스트리밍된 직후 ‘어몽 어스’ 접속자가 크게 몰리면서 서버가 멈춰버리는 현상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게임을 ‘보는’ 데 머물지 않고 스트리밍을 시청한 사람들이 바로 게임을 구매해 접속해 봤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손쉬운 접근성이 ‘보는 게임’ 콘텐츠가 직접 게임 참여로 연결되기 쉬운 환경을 만든 것이다. 이는 스트리밍으로 넓힌 저변이 곧바로 게임 플레이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어몽 어스’는 컴퓨터를 상대로 하는 게임이 아니라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다. 그 때문에 ‘어몽 어스’라는 게임을 원활히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서버에 참여해 함께 팀을 짤 수 있는 배경이 마련돼야 한다. 2018년 하반기에 출시된 ‘어몽 어스’는 최소한의 게임 매칭을 위해 일정 숫자 이상의 참가자 풀을 마련해야 했지만 출시 후 한동안 그 최소 이용자 수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트리머들은 이 게임이 가진 묘한 재미, 게임 콘텐츠 바깥에서 대화로 풀어나가는 재미를 발견했고, 이를 자신들의 콘텐츠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스트리머 콘텐츠들이 성공하면서 본래 콘텐츠인 게임 플레이로 시청자들이 손쉽게 유입될 수 있는 흐름이 나타났다. 출시 초반에 별 반응이 없었던 게임의 역주행은 접근 편의성과 게임 스트리밍이라는 두 환경의 교집합에서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파티 게임과 코로나, 그리고 음성 채팅

접근성과 스트리밍의 교차점에서 이뤄진 ‘어몽 어스’ 흥행의 부가적 배경으로 짚지 않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팬데믹 상황이다. 그러나 디지털 게임의 속성을 ‘언택트’라는 신조어로 조망하는 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예가 PC방의 존재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에 이르기까지 많은 온라인 게임이 원래부터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게임이었지만 사람들이 PC방이라는 공간에 모여 플레이하는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리 온라인 게임이라 할지라도 ‘모여서 노는’ 즐거움이 이들 게임 플레이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해 왔음을 보여준다. 콘텐츠는 완전한 비대면 환경을 제공할지라도 이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PC방에 모여 함께 게임하고 간식을 먹는 행위를 놀이로 다뤘다는 것을 한국의 PC방 문화가 증명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은 모여서 노는 문화에 크게 제동을 걸었고, PC방 게이밍을 포함한 많은 것이 중단됐다. ‘어몽 어스’가 전 세계적 흥행을 맞이한 시기가 2020년 7, 8월부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흥행의 배경에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함께 모여 노는 게임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PC방에 집결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어몽 어스’가 가지고 있는 파티 게임의 속성, 즉 모여 노는 속성의 재미가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모여 노는 파티 게임의 대체재로서 ‘어몽 어스’는 꽤나 강력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명 스트리머들도 ‘어몽 어스’를 플레이할 때 익명의 플레이어들과 매칭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인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꾸린다. 마찬가지로 ‘어몽 어스’는 온라인상의 매칭뿐 아니라 원래 알던 오프라인 지인들을 엮어내는 파티 게임의 기능을 대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보이스 채팅 앱인 ‘디스코드(discord)’를 활용하는 장면들이다. 게임의 핵심인 임포스터 대책 회의 토론에는 90초가 주어지는데 원래 게임 설정대로라면 텍스트 채팅을 활용해 토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텍스트로만 토론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지인 위주의 플레이에서는 상당수의 사람이 보이스 채팅 앱을 함께 활용해 육성으로 임포스터 잡기 토론을 하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난다.

최근 들어 많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게임 안에 내장된 보이스 채팅 기능을 사용하거나 디스코드와 같은 별도의 전용 프로그램을 활용해 채팅 대신 육성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물론 보이스 채팅 프로그램의 보편화와 코로나 팬데믹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단정 지을 근거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적어도 ‘어몽 어스’ 같은 파티 게임에서 지인 중심의 보이스 채팅을 포함한 플레이가 활기를 띠고 있는 현상은 이 온라인 게임이 단지 플레이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지인들의 모임을 대신하는 대체재의 기능도 수행한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게임 규칙이 직관적이고 구매와 설치가 쉽다는 접근의 용이성이 결합되면서 ‘어몽 어스’는 기존에 게임을 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손쉽게 불러 모아 함께 떠들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기존의 온라인 게임에서 찾던 재미가 아닌, 원래 알던 사람과 그저 모여서 즐기기 위한 소재로 활용됐다는 의미다.

단절된 관계를 다시 잇는 기술과 문화

‘어몽 어스’의 흥행은 여러모로 특기할 만하다. 화려한 그래픽과 웅장한 볼륨 대신 그리다 만 것 같은 단순한 인터페이스와 구성을 갖췄지만 이는 게임의 단점으로 부각되기보다는 접근 편의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손쉬운 접근성은 기존에 게임을 해 보지 않아 접근을 어려워하던 더 많은 사람에게 어필했고, 때마침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모여 놀기가 어려웠던 많은 이에게 만남의 대안을 제공했다. 이런 요소들이 맞물린 결과 ‘어몽 어스’는 2020년 초흥행작의 하나로 자리를 굳혔다.

‘어몽 어스’ 흥행이 가진 특징은 비슷한 시기에 함께 돌풍을 일으켰지만 상대적으로 ‘어몽 어스’에 비해 빠르게 인기가 식어버린 게임 ‘폴 가이즈’와 비교해볼 때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또 다른 파티 게임인 ‘폴 가이즈’도 2020년 여름 ‘어몽 어스’와 더불어 흥행 게임의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어몽 어스’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데 비해 ‘폴 가이즈’의 인기는 금세 사그라졌는데, 여러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는 두 게임이 가지는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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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가이즈’는 여러모로 ‘어몽 어스’와 비슷한 출발점을 갖는 게임이다. 마찬가지로 소규모 게임사가 적은 제작비를 들여 개발했고 가볍고 익히기 쉬운 게임 메커닉을 갖는다는 점 또한 공통적이다. ‘어몽 어스’가 마피아게임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처럼 ‘폴 가이즈’ 또한 한국의 ‘출발 드림팀’이나 ‘열전! 달리는 일요일’ 같은 기존 텔레비전 아마추어 운동 게임의 형식을 가져오며 대중의 접근성을 높였다.

하지만 두 게임은 팀 매칭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폴 가이즈’에서는 최대 60명이 한 게임 안에 들어와 여러 미니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단 한 명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60명이라는 게임 인원으로 인해 지인 중심의 팀을 꾸리긴 어렵다. 필연적으로 온라인에서 익명의 누군가와 매칭돼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인 것이다. 이는 비슷한 출발점과 구조를 가진 두 게임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였다. ‘어몽 어스’가 지인 중심의 소그룹을 만들어 수다를 떨면서 플레이하는 방식이라면 ‘폴 가이즈’는 지인 파티가 많아야 3명까지만 제공된다. 별도로 ‘디스코드’ 등의 보이스 채팅 앱을 통해 수다를 떨 만한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는 팬데믹 시대 파티 게임의 속성이 ‘어몽 어스’의 흥행 요소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이런 변화는 코로나 유행 이후 언택트 시대에 우선순위가 높아진 플레이어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온라인 게임은 먼 거리에 있는 누구든 손쉽게 게임을 통해 연결해 줌으로써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언택트 속성을 갖는다. 그러나 ‘어몽 어스’의 흥행은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단지 온라인에서 함께 게임하는 것만 바라는 게 아니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더 바란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멀어진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것은 마치 직접 만나서 함께 놀 수 있을 때 존재했던, 일상적이고 평범하지만 따뜻한 ‘대화’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어몽 어스’는 마피아게임이라는 주제를 통해 오프라인에 함께 모여서 놀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고, 게임만으로는 미처 다 채워지지 않는 플레이어의 감성을 일정 수준 만족시켜 주는 플레이를 만들어냄으로써 비슷한 유형의 ‘폴 가이즈’보다 팬데믹 시국에 더 오래, 더 많은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대규모 자본과 수많은 개발 인력, 방대한 마케팅을 통한 수익 구조 형성이 자주 언급되는 게임 산업에서 ‘어몽 어스’의 흥행 공식을 쉽게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러 노력과 환경, 상황의 복합적인 결과다. 그러나 그 복잡함 속에서도 우리는 대자본이 아닌 소자본 게임인 ‘어몽 어스’가 어떻게 간단하지만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게임을 가볍게 구축했는지, 어떻게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주목을 받게 됐는지, 직접 만남이 어려워진 시대에 그리운 사람과의 소통을 어떻게 대체해 냈는지를 살펴봤다.

‘어몽 어스’는 디지털 게임의 본질이 게임의 규칙 그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그래픽과 규모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 상황과 맞물려 게임이라는 가상 공간 안에서의 게이밍이 아닌, 콘텐츠를 두고 현실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게이밍의 위치를 제시한다. 메타-게이밍(meta-gaming)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디지털 게임을 단순한 콘텐츠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으로 포지셔닝한다. 이처럼 ‘어몽 어스’의 흥행 사례는 기술과 문화가 언택트 흐름 속에서 단절된 관계들을 어떻게 다시 연결해야 할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 이경혁 | 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게임문화 연구, 게임연구자
    현)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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