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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무선 이어폰 점유율 70%, 에어팟의 혁신 방정식

경쟁사가 빠른 출시와 스펙에만 빠질 때
고객 불편 덜어주는 ‘애플스러움’에 집중

장재웅 | 309호 (2020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애플 에어팟은 2016년 12월 출시와 함께 스스로 무선 이어폰 시장의 표준이 됐다. 에어팟 이전에 시장에서 팔리던 다양한 형태의 블루투스 헤드셋들은 에어팟의 등장과 함께 귀에 꽂는 이어폰 형태로 통일됐다. 에어팟은 이전까지 무선 이어폰들이 갖던 고질적인 문제들, 즉 음질이 유선 이어폰보다 떨어지고, 완전한 무선이 아니며, 배터리 사용 시간이 짧고, 무엇보다 페어링(Pairing)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이슈를 해결했다. 이를 위해 애플은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블루투스 이어폰 관련 특허를 취득하고 필요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인수합병해 ‘가장 완벽한 제품’을 만들 역량을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단순히 기술적인 완벽함이 아닌 소비자의 니즈와 감성을 아우르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 결과 에어팟은 애플의 매출 효자 제품으로 떠 올랐고 전체 무선 이어폰 시장점유율 70%라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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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2017년 3월 1호(220호)에 게재된 케이스 스터디1 를 통해 LG전자의 넥밴드형 블루투스 헤드셋 ‘톤플러스’의 글로벌 성공 스토리를 다뤘다. 당시 LG전자는 음악 감상이 가능한 스테레오 블루투스 이어폰이라는 미개척 시장에 발 빠르게 뛰어들어 고객의 숨겨진 니즈를 찾아냈고 목에 거는 넥밴드형 헤드셋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시장에 안착시켰다. 그 결과 2011년 86억 원에 불과했던 LG전자의 무선 헤드셋 매출액은 2016년 3371억 원으로 정점을 찍으며 전성기를 맞았다. 시장점유율 역시 국내 시장에서는 40%를 기록했고 경쟁이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도 30%에 육박했다. 내로라하는 전통적 음향기기 전문 업체들을 제치고 LG전자가 해외에서 만든 혁신 사례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에 들어서며 매출액은 2033억 원으로 떨어졌고 2019년에는 576억 원까지 폭락하며 시장 지배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애플의 ‘에어팟’ 출시가 있다. 애플이 2016년 12월 에어팟을 출시하자 관련 시장이 에어팟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애플 에어팟은 후발 주자임에도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시장을 독식할 수 있었을까. 동시에 왜 LG전자는 애플의 시장 진입을 예상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에어팟이 출시된 지 4년이나 지난 지금, 에어팟의 시장 진출 전략을 분석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애플이 항상 비슷한 방식으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고 시장을 잠식해 나가기 때문이다. 즉, 에어팟의 성공과 경쟁사들의 실패를 살펴보는 것은 향후 다른 제품 카테고리에서 애플과 경쟁하는 많은 기업에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조롱을 환호로 바꾼 에어팟

많은 비평가가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 제품에서 혁신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애플의 신제품에서 세상을 바꿀 만한 새로운 기술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을 때도 애플은 기술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아니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애플 제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애플 제품들은 대부분 해당 카테고리의 최초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애플을 있게 한 아이폰 이전에도 이미 스마트폰을 출시한 휴대폰 제조사들이 있었고 아이팟 이전에도 MP3플레이어는 있었다. 애플 제품들은 대부분 출시 초반에 오히려 “저런 제품을 누가 쓰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기존에 출시된 경쟁사 제품들보다 기술적 스펙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드는 혁신을 추구하지 않는다. 애플이 잘하는 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제품을 소비자 기준에서 조금 더 편하고 감각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음악을 듣는 경험을 바꾼 아이팟이나 스마트폰이 과연 필요할까라는 의구심을 날리며 스마트폰 대중화를 이끈 아이폰,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이에 태블릿 PC가 꼭 필요할까라는 의심을 뛰어넘은 아이패드까지, 모두 출시 초기에는 비평가들의 비아냥을 들었던 제품들이다. 그리고 최근 애플의 제품 중 가장 애플다운 혁신을 보여주는 사례는 블루투스 이어폰인 ‘에어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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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은 2016년 9월 아이폰7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애플은 아이폰7에 3.5㎜ 이어폰 잭을 제거하고 이어폰 단자와 충전 단자를 겸하는 라이트닝 포트로 대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곧바로 새로운 블루투스 이어폰인 ‘에어팟’을 선보였다. 9월7일 열린 애플 스페셜 이벤트에서 발표자로 나선 필립 실러 당시 애플 마케팅 수석 부사장(현 애플 펠로)은 에어팟 출시에 대해 발표하면서 “아이폰에서 이어폰 잭은 뺀 것은 우리의 ‘용기’다. 미래 스마트폰은 이제 유선 이어폰 시대에서 무선의 시대로 넘어갈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실러 부사장의 발표 후 언론과 비평가들은 하나같이 에어팟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일단 갑작스럽게 이어폰 잭을 제거함으로써 기존에 쓰던 이어폰들이 무용지물이 된 게 문제였다. 당황스런 소비자들에게 강제로 가격도 싸지 않은 무선 이어폰을 쓰라며 신제품을 소개하니 유쾌할 리 없었다. 당시 SNS에는 “애플이 ‘돈독’이 올랐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디자인 역시 비평가와 일부 소비자에게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에어팟의 외관을 ‘콩나물’이나 ‘전동 칫솔’에 비유하며 조롱 섞인 비난을 했다. 또한 가격이 비싸고 무엇보다 크기가 작아 분실 위험이 높다는 점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았다. 인터넷상에서는 에어팟을 착용한 남성이 춤을 추다가 에어팟을 하수구에 계속해서 빠뜨리고, 그때마다 새 에어팟을 사는 우스꽝스러운 동영상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비난이 일자 애플은 분실 방지용 ‘스트랩’을 구매할 것을 권고했다가 오히려 더 큰 비난에 직면한다. 실리콘 재질의 끈 모양인 이 제품은 두 개의 에어팟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일단 가격이 20달러로 비쌌고 이 스트랩을 부착하면 에어팟 외형이 기존 유선 이어폰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만큼은 애플이 틀렸다”는 여론이 주를 이뤘고 에어팟은 출시 전부터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비아냥은 곧 찬사로 바뀌었다. 에어팟이 시중에 출시되면서부터였다. 에어팟은 2016년 12월 출시 후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렸다. 시장 조사 업체 슬라이스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애플 에어팟은 출시 2주 만에 온라인 무선 이어폰 시장점유율 26%를 차지하며 단숨에 해당 카테고리 1위로 올랐다. 애플의 마케팅 담당 수석 부사장인 그렉 조스위악(Greg Joswiak)은 에어팟의 판매 추세를 “얼마나 빨리 확산되는지 마치 산불과 같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에어팟의 인기는 파죽지세였다. 시장 분석 기업인 트레피스(Trefis)에 따르면, 출시 첫해 1400만 대였던 에어팟 판매량은 2018년 3000만 대에 이어 지난해에는 6000만 대를 넘어섰다. 올해는 1억 대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따라 매출은 22억 달러에서 올해 180억 달러(약 20조 원)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어팟의 출시는 무선 이어폰의 대중화를 불렀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라 할 수 있다. 한때 무선 이어폰의 용도를 ‘전화 통화’에 한정했던 다수의 업체가 앞다퉈 무선 이어폰 시장에 참전하면서 시장 규모는 2018년 4600만 대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1억3000만여 대를 넘어섰고 올해는 2억 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에어팟의 출시로 무선 이어폰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의 무선 이어폰 개발사

음악은 오늘날의 애플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애플은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며 화려하게 부활했고 2003년 문을 연 유료 음원 사이트 ‘아이튠즈(iTunes)’를 발판 삼아 성장했다. 아이튠즈는 세계 최대 음원 소매상으로 성장하며 애플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고 아이튠즈를 통해 돈을 번 애플은 이후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을 잇따라 출시하며 시가총액 2조 달러가 넘는 거대 기업이 됐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애플은 음악을 재생하는 디바이스(아이팟, 아이폰)와 음악 유통(아이튠즈)에 비해 음악을 듣는 장치인 헤드셋에는 초기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블루투스 헤드셋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는 생전에 스티브 잡스가 블루투스의 오디오 품질 문제와 충전 문제를 지적하며 무선 헤드셋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를 가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2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2011년을 전후해 시장 수요는 빠르게 유선에서 무선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코덱 기술의 발전 덕이다. 그리고 일부 업체는 이런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초기 가장 발빠르게 대응을 한 업체는 LG전자다. 영국의 블루투스 칩셋 회사인 CSR가 2010년 aptX 오디오 코덱 기술을 가진 APT Licensing을 인수하면서 LG전자에 이 코덱 기술을 활용해 스테레오 블루투스 헤드셋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탄생한 제품이 LG전자의 넥밴드 타입 스테레오 헤드셋 ‘톤플러스’다. 이후 2012년 블루투스 SIG(Special Interest Group)가 CSR의 aptX를 기존의 SBC(sub-band codec)를 대체하는 블루투스 A2DP(Advanced Audio Distribution Profile) 표준으로 제안하면서 더 많은 회사가 블루투스 헤드셋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삼성전자 역시 LG전자의 블루투스 넥밴드 헤드셋이 휴대폰 액세서리로 인기를 끌며 급성장하자 2012년 블루투스 칩셋 기술 확보를 위해 CSR의 블루투스와 와이파이 부문을 3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3 이후 전통 오디오 업체도 블루투스 헤드셋 제품을 속속 출시하기 시작하며 경쟁이 치열해진다.

1. 이어팟(Earpod)을 통한 고객 니즈 확인

이에 반해 애플은 2010년 전까지는 이어폰에 큰 투자를 하지 않았다. 적어도 2009년 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2009년 전까지 애플에 이어폰은 아이팟이나 아이폰에 들어가는 번들 액세서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이전에도 고객의 주머니 속 아이팟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팟용 이어폰을 ‘글로시 화이트(Glossy White)’색으로 통일해 애플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형성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이전까지 애플은 이어폰에 있어선 디자인에 대한 관심에 비해 성능이나 음질에 관한 관심은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애플 고객들 사이에서는 애플이 제품과 함께 제공하는 이어폰의 음질과 착용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다. 2009년 애플은 이런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미국 스탠퍼드대와 손을 잡고 3D 스캐닝 기술을 활용, 수천 명의 사람들의 귀 모양과 치수에 대한 데이터를 모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수의 사람에게 편안한 착용감과 음질을 선사할 수 있는 이어폰 디자인을 찾아낸다. 그리고 2012년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음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이어팟(earpods)’을 선보인다.

이어팟은 둥근 항아리 형태의 오픈형 이어폰으로 독특한 디자인과 착용성, 아이폰 특유의 글로시 화이트색으로 인해 인기를 끈다. 애플은 이 제품을 아이폰이나 아이팟 구매 시 함께 제공하기도 했고 별도로 30달러에 판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짭짤한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어팟의 인기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인기를 등에 업은 것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애플 내에서 이어팟은 별도의 비즈니스라기보다는 아이폰용 액세서리 정도의 지위에 머물렀다. 다만, 이어팟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얻은 인사이트와 고객 반응은 향후 에어팟 론칭에 자양분이 된다.

2. 특허 확보를 통한 역량 강화

그렇다고 애플이 마냥 유선 제품에 머무르려고 한 것은 아니다. 시장의 흐름이 유선에서 무선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애플은 2011년부터 다수의 관련 특허를 출원하며 무선 헤드셋 시장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다진다. 2011년 애플은 무선으로 분리 가능한 유선 이어폰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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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애플의 특허만으로는 무선 헤드셋의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사용 편의성을 위해서는 무선 헤드셋이 작고 가벼워야 하는데 그럴 경우 배터리 지속 시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애플은 이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외부에서 찾는다. 2013년 8월 애플은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무선 칩셋 개발 업체인 패스이프(Passif)를 인수했다. 패스이프는 소형 단말기용 블루투스LE 기술을 포함한 초절전 무선 통신칩을 개발하는 회사로 버클리대 박사 출신 벤 쿡과 액셀 버니가 설립했다. 패스이프의 인수는 이후 에어팟과 애플워치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 이유는 인수 당시 패스이프가 무선 기기의 전력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08년 출원한 US 8,086,208 특허는 무선 수신기 집적회로의 능동소자를 수동소자로 대체해 전력 소모를 줄이는 기술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전력 효율성 개선은 2011년 패스이프가 출원한 US 8,768,252 특허를 통해 가능했다.4 이 특허는 모바일 기기가 하나의 블루투스 채널로 스테레오 음원을 송출하고 각 이어폰은 동일한 블루투스 신호에서 자신의 위치에 맞는 음원만 추출하도록 한 후 음원 재생을 위해 이어폰끼리 서로 신호를 주고받아 싱크를 맞추는 기술이다. 만약 이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한쪽 이어폰이 음원을 전송받아 자기 위치에 맞는 음원만 추출하고 나머지 음원을 다른 쪽 이어폰으로 재전송해주거나 모바일 기기가 아예 두 개의 블루투스 채널로 음원을 전송해 이어폰 각각이 서로 다른 채널의 신호를 받아야 한다. 전자는 한쪽 이어폰의 전력 소모가 커져 배터리 용량을 늘려야 하므로 부피가 늘어난다. 후자는 모바일 기기의 전력 소모가 늘어나고 주파수 간섭으로 인해 끊김 현상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기존의 블루투스 전송 방식으로는 이어폰 양쪽을 연결하는 선을 없앤 완전 무선 제품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력 소모가 커서 배터리 용량을 늘려야 하니 제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온쿄나 LG전자처럼 별도의 대용량 충전 케이스를 제공하거나 넥밴드에 대용량 배터리를 추가로 장착해 전력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미니멀리즘 디자인 철학을 추구하는 애플과는 거리가 있었다.

패스이프의 특허는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기 때문에 무선 이어폰 제작에 핵심 기술이었다. 애플은 완전 무선 이어폰 시장이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내다보고 2013년 과감하게 패스이프를 인수함으로써 패스이프가 보유한 특허를 활용해 기존 방식 대비 전력 소모량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애플이 블루투스 스테레오 오디오 음원 전송에 대한 원천 특허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은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전력 효율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는 애플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애플은 패스이프의 특허를 바탕으로 2016년 자체 제작 칩셋인 ‘W1’을 선보이는데 이 칩셋 덕분에 2016년 이후 무선 이어폰 시장 경쟁에서 다른 경쟁사들 대비 압도적인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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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츠일렉트로닉스 인수와 무선 이어폰 가능성 실험

에어팟 탄생에 있어 패스이프 인수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수합병 건이 바로 2014년 5월 진행한 비츠일렉트로닉스 인수 건이다. 이 인수합병은 애플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합병이자 이미 잘 알려진 기업을 인수한 몇 안 되는 사례라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수합병 금액만 무려 26억 달러(약 3조 원)에 이른다. 애플이 3조 원 가까운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비츠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한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다운로드 중심의 애플 아이튠즈가 가진 사업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인수를 통해 무선 이어폰의 성공 가능성을 테스트해보고 싶어서였다.

먼저, 비츠를 인수하던 시기 애플은 기존 아이튠즈의 실적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운로드 중심의 아이튠즈 서비스 대신 스트리밍 중심의 다른 서비스들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애플 역시 ‘아이튠즈 라디오’라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스포티파이 등 경쟁사들에 비해 점유율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또한 아이튠즈 라디오는 애플의 운영 체제인 iOS에서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잡을 수 없었다. 반면, 비츠뮤직(Beats Music)은 장점이 많았다. 일단 유명 힙합 가수 닥터 드레(Dr. Dre)와 공동 창업자이자 미국 음반 시장의 ‘핵인싸’인 지미 아이오빈이 창업을 한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일단 음반 제작 업계와의 관계가 매끄러웠다. 그 결과, 경쟁사들보다 쉽게 콘텐츠 라이선스를 따낼 수 있었다. 또한 애플은 안드로이드 진형에서는 전혀 영향력이 없었기 때문에 안드로이드에서 작지만 소비자군을 형성하고 있는 비츠뮤직을 발전시키는 것이 사업적으로 볼 때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애플의 이 같은 판단은 어느 정도 옳았다. 애플은 비츠를 인수하면서 비츠의 지미 아이오빈과 닥터 드레를 애플의 경영진으로 임명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뮤직’을 론칭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애플뮤직은 론칭 후 2019년 기준 6000만 가입자를 넘어서며 업계 선두주자였던 스포티파이를 위협하는 강력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떠올랐다. 이로써 애플은 상징과도 같은 음악 서비스 비즈니스에서 명예 회복에 성공하게 된다.

비츠일렉트로닉스 인수는 애플의 핵심 사업인 음악 산업에 대한 투자 측면도 있지만 더 나아가 애플이 비츠를 활용해 무선 헤드셋이나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 진입을 위한 초석을 다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애플은 비츠 인수 후에도 비츠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했고 에어팟 출시를 전후해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애플은 비츠의 제품 디자인이나 감성은 유지하면서도 애플의 기술력이 담긴 W1 칩셋 등을 넣어 음질과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며 블루투스 이어폰 제조에 필요한 노하우를 쌓아갔다. 특히 애플은 비츠의 헤드셋 제품들이 시장에서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으로 포지셔닝됐다는 점과 젊은 소비자들이 비츠 브랜드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밖으로 자랑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DBR mini box I
애플의 반도체 기업 인수와 ‘수직 계열화’

많은 사람이 애플을 아이폰이나 맥북을 만드는 하드웨어 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애플의 비즈니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훌륭하게 통합된 개인용 ‘컴퓨팅 기기’의 제조 판매다. 둘 중 한쪽에 집중하는 많은 기업과 다르게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고 통제해 최선의 사용자 경험을 주는 데 중점을 둔다. 특히 하드웨어를 직접 설계하는 애플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외부에 가장 많이 의존한 분야가 바로 ‘반도체’다. 그 때문에 애플은 스티브 잡스 생전부터 자체 칩셋 역량 확보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투자를 했다. 일찌감치 애플 내부 칩 설계팀을 만들고 자체 모바일 칩셋 개발에 집중했다. 특히 애플은 반도체 관련 인력 스카우트와 함께 반도체 기업의 인수합병에 집중했는데 2008년 저전력 설계에 강한 반도체 기업 ‘PA세미’를 2억7800만 달러(약 3150억 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2010년에는 프로세서 디자인 회사 ‘인트린시티’를 1억2100만 달러(약 1370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들 기업의 인수합병은 2010년 애플이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A4 개발로 이어졌고 2010년 이후 애플은 새로운 아이폰 및 아이패드 시리즈에 자체 개발한 AP를 선보이며 삼성전자 등 경쟁사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실제 애플은 2013년 9월 업계 최초로 64비트 모바일 AP인 A7을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모바일 AP의 절대 강자인 퀄컴보다 3개월이나 앞섰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애플은 2019년 세계 태블릿 및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점유율 44%와 24%로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모바일 AP 분야에선 자체 제품만으로 이미 굴지의 반도체 기업이 된 것이다.

또한 애플은 2011년 플래시 메모리 컨트롤러를 만드는 아노비트를 3억9000만 달러(약 4400억 원)에 인수한 데 이어 2013년에는 저전력 블루투스 칩 제조 기술을 보유한 패스이프(Passif) 세미컨덕터도 인수했다. 특히 패스이프의 인수는 애플이 애플워치와 에어팟에서 경쟁사 대비 가볍고 전력 사용이 적은 제품을 만들어 경쟁우위를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의사결정으로 평가를 받는다. 또한 저전력 칩셋 설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18년 10월에는 다이아로그 반도체(Dialog Semiconductor)를 6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2019년 7월에는 인텔의 스마트폰 모뎀 사업을 10억 달러에 인수해 자체 모뎀 칩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인 맥의 프로세서 역시 자체 개발한 프로세서로의 대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6월22일 열린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WWDC) 2020’ 행사에서 팀 쿡 애플 CEO는 올해 말부터 자사 데스크톱 및 노트북에 자체 설계한 시스템온칩(SoC) ‘애플 실리콘’을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애플 실리콘은 기존 칩셋보다 전력을 더 적게 소모하면서도 고성능 그래픽을 구현할 것으로 보인다. 자체 설계 칩을 탑재한 맥은 아이폰 및 아이패드와 같은 구조를 갖게 돼 효율성과 성능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모바일 기기에 이어 컴퓨터까지 자체 개발한 ARM 기반 프로세서를 쓰게 되면 애플은 모든 제품의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거의 완전히 수직계열화하게 된다. 이는 다른 기업의 개발 속도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로드맵에 따라 필요한 때 신제품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아이폰과 아이패드 앱을 맥에서도 쓸 수 있어 앱 생태계가 더 풍성해지고 사용자 선택권이 넓어진다. 모바일과 PC 환경을 아우르는 완벽한 통합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된다.

DBR mini box II
비츠일렉트로닉스

비츠일렉트로닉스는 뮤직 프로듀서이자 래퍼인 닥터 드레와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레이블이자 음반사 인터스코프 대표 지미 아이오빈이 손을 잡고 2006년 설립했다. 주요 제품은 고급 헤드폰과 스피커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유명 스타를 활용한 스타 마케팅과 이들의 이름을 내건 한정판 제품 판매를 통해 ‘헤드폰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 미국 헤드폰 시장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고 특히 젊은 고객들 사이에서는 프리미엄 헤드폰으로 인지도가 높다. 비츠는 초기 AV플레이어 케이블 회사인 몬스터케이블과 파트너십을 맺고, 제품을 생산했다. 브랜드명은 인지도가 높은 닥터 드레의 이름을 따서 ‘비츠 바이 닥터 드레’로 정했고 제품 디자인과 기술에 대한 권리를 닥터 드레가 보유했다. 생산과 케이블 공급 및 마케팅은 몬스터가 담당했다. 이후 몬스터와 협력을 중단한 후에는 직접 생산에 나섰다. 2011년 대만 스마트폰 제조사인 HTC가 지분 50.1%를 사들여 대주주가 되기도 했다. HTC는 비츠 브랜드 영향력을 활용해 타 스마트폰 회사와 경쟁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하지만 2012년 비츠가 HTC 지분을 다시 사들이면서 HTC 지분은 25.1%로 줄었다. HTC는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다 이 지분을 칼라일그룹에 매각했고, 2014년 8월 애플이 이 회사를 약 3조 원에 인수한다. 비츠는 무선 헤드셋 시장에서 특이하게 품질보다는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성공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매출액 대비 마케팅 비용을 30% 이상 사용하며 빠른 속도로 인지도를 쌓았다. 그 덕분에 경쟁 헤드셋 대비 좋지 않은 음질과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2016년 무선 헤드셋 시장점유율 40%에 육박하는 실적을 거두며 에어팟이 출시되기 전까지 업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경쟁사와의 스펙 경쟁에 매몰돼 시장을 놓친 LG

애플이 특허 및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와 그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음향 기기 제조 역량 확보에 집중하던 2013∼2014년은 본격적으로 무선 헤드셋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던 시기였다. 2010년까지만 해도 헤드셋 시장은 자브라(Jabra), 플랜트로닉스(Plantronics) 등이 주도하던 전화 통화용 블루투스 헤드셋 시장과 음악 감상용 유선 헤드셋 시장으로 양분돼 있었다. 하지만 블루투스 기술이 발전하고 고음질의 스테레오 음원을 블루투스로 전송할 수 있게 되면서 2013년을 전후로 두 시장이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두에서 설명한 대로 이런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바로 LG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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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는 2008년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Verizon)의 제의로 미국 시장용 모노 블루투스 헤드셋을 만든 경험을 계기로 2010년 11월 넥밴드형 무선 헤드셋 제품인 ‘톤플러스’를 출시해 직장인들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다. 이 과정에서 칩셋 제조 업체인 영국 CSR사와의 협업이 큰 역할을 한다. 톤플러스 시리즈는 출시 5년 만인 2015년 5월, 전 세계 1000만 대 판매를 돌파한 데 이어 불과 1년도 안 된 2016년 3월, 1500만 대 판매고를 기록하며 블루투스 헤드셋 시장점유율 30%를 달성한다. 당시 LG전자보다 점유율이 높은 기업은 애플에 인수된 ‘비츠일렉트로닉스’ 정도였다. 비츠가 애초에 헤드셋과 음악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성장한 음악 전문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LG전자가 무선 헤드셋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LG그룹 내부에서도 조성진 당시 LG전자 CEO가 2017년 신년사에서 회사의 주요 혁신 사례 중 하나로 소개할 정도였다.5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2016년 12월 에어팟이 출시되면서 시장 트렌드가 넥밴드에서 완전 무선형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빠르게 바뀌었고 이 변화의 속도를 LG전자가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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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LG전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바일 기기와의 연계 전략이 부족했다. 블루투스 헤드셋을 여전히 스마트폰의 액세서리로만 치부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마케팅의 중요성을 등한시하고 기존의 통신사 중심 유통에 집중한 것이다. 일례로 비츠는 매출액의 30% 이상을 광고판촉비로 쓰며 비츠만의 젊고 힙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LG전자는 톤플러스에 마케팅 예산을 적극 투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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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LG전자는 새로운 사용자를 발굴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소비자 니즈의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LG전자가 공략한 초기 무선 헤드셋 시장은 통화량이 많으며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직장인과 가정주부가 주 고객이었다. 그러나 무선 헤드셋 시장 수요가 확대되면서 소비자 니즈가 사용자 경험, 디자인, 착용감 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에 경쟁사는 소비자들의 무선 헤드셋 사용 행태 변화에 집중해 컬러풀한 색상에 운동 등 여가 활동에 특화된 제품을 만들어내거나(Beats) 심플하고 깔끔한 디자인과 제품 편의성을 앞세워 패션 아이템으로의 무선 이어폰(애플 등)을 선보였다. 반면, LG전자는 넥밴드형 이어폰의 고객 가치를 과신한 나머지 이 모델에 투자를 집중했고 그 결과 시장을 완전히 잃게 됐다.6

셋째, LG전자는 무선 이어폰 시장의 성장성을 간과했다. 무선 이어폰이 기술적 한계로 주류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LG전자는 무선 이어폰에 자원을 투입하기 보다 기존 넥밴드라는 제품 원형를 고수했다. 2016년 LG전자가 내놓은 넥스트링과 2017년 내놓은 넥밴드 탈부착형 이어버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두 제품은 에어팟 출시를 전후해 급하게 시장에 선보인 제품으로 음질의 개선을 이뤄졌지만 디자인 측면이나 사용성이 불편해 철저하게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소비자들이 에어팟의 편의성과 감성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에어팟과 비교해 싸고 배터리 사용 시간이 더 길며 분실 위험이 적다는 장점만을 부각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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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보단 완벽하게, 고객의 편의성에 연결된 애플

LG전자가 경쟁사와의 스펙 경쟁에 집중해 빠르게 변하는 고객의 취향을 맞추는 데 실패한 반면 애플은 처음부터 경쟁사를 의식하기보다는 고객 가치에 집중했다. 또한 빠르게 제품을 출시해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 대신 완벽한 제품을 내놓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한다. 그 사이 경쟁사들이 속속 무선 이어폰 제품을 내놓는데 그중 가장 빠르게 제품을 출시한 회사는 일본의 프리미엄 오디오 회사인 온쿄(Onkyo)였다. 온쿄는 2016년 3월 W800BT를 출시했는데 이전까지 무선 이어폰의 한계로 지목됐던 몇 가지 문제점을 해결한 제품이었다. 당시 무선 이어폰들은 ▲유선 이어폰의 음질을 따라가지 못했고 ▲목에 밴드를 차거나 이어폰을 케이블로 연결해야 하는 등 대다수가 완벽한 무선화를 하지 못했으며 ▲완벽한 무선 제품은 작동 시간이 1∼2시간에 불과해 쓰임새가 낮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온쿄는 별도의 보관 및 충전 케이스를 제공함으로써 적은 사용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등 나름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온쿄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보이자 삼성전자는 2016년 7월 아이콘(Icon)X를 내놓으며 뒤를 이었다. 넥밴드 형태로 블루투스 헤드셋 시장을 선도했던 LG전자 역시 2017년 3월, 넥밴드와 결합한 형태의 블루투스 이어버즈 제품(모델명 HBS-F110)을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빠른 시장 진입이 항상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애플은 제품 출시 시기가 경쟁사들보다 느렸지만 소비자들이 무선 이어폰을 통해 얻고자 하는 니즈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있었고,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를 오래 연구해 왔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그 이유는 ‘애플스러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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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스러움의 핵심은 단순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에어팟 역시 이 철학을 잘 계승한 제품 중 하나다. 에어팟은 이전까지 다른 무선 이어폰이 가지고 있던 연결의 불편함을 해결했다. 보통 블루투스 이어폰은 ‘페어링’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친다. 먼저, 버튼을 몇 초간 눌러 이어폰 전원을 켜고, 또 다른 버튼을 눌러 이어폰과 스마트폰이 블루투스로 연결되도록 하는 과정으로 보통 약 10여 초 이상 걸린다. 이에 반해 에어팟은 작동 방식이 간단하다. 전용 케이스에서 꺼내 귀에 꽂는 순간 에어팟이 이를 인식해 전원이 켜지고 페어링이 바로 진행된다. 적외선 센서를 탑재했기에 가능한 기술이다. 페어링 시간도 5∼6초로 획기적으로 줄였다. 페어링이 완료되면 곧바로 음악을 자동 재생해준다. 귀에서 빼면 재생을 멈추고, 다시 꽂으면 멈췄던 부분부터 음악을 이어서 들려주기도 한다. 별 차이가 아닌 듯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선 이어폰의 사용성을 획기적으로 편리하게 만든 것이다.

또한 에어팟은 기존 경쟁 제품들의 단점, 즉 전력 소모가 많아 배터리 용량이 커지고 그래서 이어폰이 크기가 크거나 무거운(Bulky) 단점을 없앤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선보였다. 실제 에어팟 이전 무선 이어폰 모델에 대한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바로 부피와 무게였다. 실제 [표 2]에서 확인할 수 있듯 2016년 7월 출시한 삼성의 아이콘X는 52g, LG HBS-F110 제품이 46g일 때 에어팟은 38g에 불과했다. 이는 애플이 저전력 기술을 기반으로 배터리 용량을 경쟁사 대비 절반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실제 에어팟의 배터리 용량은 25㎃h로 LG의 60㎃h, 삼성의 47㎃h 대비 절반이었다. 하지만 통화 및 음악 재생 시간은 LG와 온쿄 제품이 3시간, 삼성은 1.5시간, 에어팟은 2시간 수준이었다. 훨씬 적은 배터리 용량으로 비슷한 퍼포먼스를 내는 최적화에서 애플이 경쟁사를 압도한 것이다. 가격 역시 애플의 제품이 비싸지 않았다. 애플이 에어팟을 내놨을 때 많은 비평가가 에어팟의 가격이 비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무선 이어폰을 내놓은 온쿄의 W800T는 299달러, 삼성의 아이콘X와 LG의 HBS-F110은 각각 199달러였다. 애플 에어팟은 초기 159달러에 출시됐으니 그리 비싼 편이 아니었다.

에어팟 출시 이후인 2017년 5월 시장 조사 기관 크리에이티브 스트래터지가 발표한 에어팟 만족도 조사에서 무려 98%의 이용자가 에어팟의 사용성에 만족한 것은 에어팟이 고객 편의성에 최적화된 제품이라는 방증이다.

이후 에어팟 1세대로 큰 재미를 본 애플은 2019년 3월 에어팟 2세대를 내놨다. 이때부터 에어팟에는 기존 W1 칩셋보다 진보된 H1 칩셋이 탑재된다. H1 칩셋은 새로운 칩셋은 연결성을 대폭 강화시켰고 덕분에 끊김 현상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통화 시간도 50% 늘었다. 또, 2019년 10월에는 디자인과 기능을 혁신한 에어팟 프로를 내놓는다. 에어팟 프로는 기존 에어팟의 프리미엄 버전으로 오픈형이던 기존 에어팟과는 다르게 세미커널형(인이어•in ear) 타입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에어팟 프로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및 ‘주변 음 허용’ 모드가 추가됐는데 노이즈 캔슬링(Noise-cancelling•소음 감쇠) 이어폰 중 비교적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 내에 기존의 무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끝판왕으로 불리던 소니의 WF-1000XM3을 넘어서는 성능과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실용성이 아닌 소비자 감성을 공략하라

많은 전문가가 에어팟의 성공은 고객 편의성과 심플한 디자인의 승리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에어팟은 소비자들에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에어팟은 외부로부터 나를 차단해주는 보호막이자, 내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이며, 나를 표현하는 패션 아이콘이자, 함께 즐기는 놀이문화다. 특히 에어팟 프로가 제공하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어떤 순간에도 내가 원하면 나와 외부를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강남역을 걸으며 ‘노이즈 캔슬링’ 모드로 음악을 들으면 뮤직비디오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에어팟 프로 사용 후기는 에어팟의 노이즈 캔슬링 기술 수준을 잘 나타낸다. 이런 에어팟의 감성적 기능이 잘 활용되는 공간이 사무실이다. 미국 월간지 디 애틀랜틱은 2019년 4월, “고용주에게 벽을 빼앗긴 직원들이 에어팟을 사랑하게 됐다”라는 기사를 실었는데, 이 기사에 따르면 2016년 애플이 출시한 무선 이어폰 에어팟이 시장의 부정적 전망과 달리 큰 인기를 얻게 된 배경으로 개방형 사무공간의 증가에 맞선 사무직 노동자들의 개인적 공간 추구 성향을 지목했다.7 즉, 사무실에서 반강제적으로 요구하는 상호작용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젊은 직장인들은 에어팟을 귀에 꼽아 자신이 현재 ‘Unavailable’한 상태라는 것을 알린다는 주장이다. 이는 국내 기업 현장에서 자주 목격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에어팟은 MZ세대들에게는 나를 표현하는 패션 아이콘이자 일종의 놀이문화가 되기도 한다. 일단 에어팟은 심플하지만 예쁜 디자인으로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SNS에선 에어팟 케이스, 키링(key-ringㆍ열쇠고리) 등 액세서리로 ‘에어팟 꾸미기 인증샷’이 인기다. MZ세대들에게 에어팟의 듣기 기능 자체보다는 부수적 요소인 케이스, 키링, 철가루 방지 스티커(에어팟에 내장된 자석에 철가루가 묻는 것을 보호하는 스티커) 등을 패션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에어팟은 MZ세대에게는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경쟁사들이 따라잡기 어려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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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치열해질 웨어러블 시장 속 애플이 그리는 미래

에어팟은 애플이 선보인 두 개의 웨어러블 기기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에어팟은 단순히 스마트폰용 액세서리가 아니다. 애플이 가진 강력한 하드웨어와 향후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진입할 인공지능(AI)과의 결합을 용이하게 할 매개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AI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집에 있는 스마트 스피커다. 스마트 스피커는 AI 음성 비서를 내장한 인터넷 연결형 무선 기기로 사용자 목소리 인식을 위한 마이크가 내장된다. “음악을 재생해줘”라고 말하면 음악이 재생되는 식이다. 음성으로 인터넷 검색이나 일정을 확인하고 스마트폰과 연동해 전화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스피커의 한계는 가까이 다가가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에어팟과 같은 무선 이어폰은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애플을 포함해 삼성전자, LG전자, 샤오미 등 하드웨어 제조업체와 구글, 아마존 등 플랫폼 기업들이 모두 무선 이어폰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무선 이어폰 시장에서 점유율 60% 이상을 달성한 애플은 향후 아마존, 구글 등과의 AI 패권 경쟁에서 유의미한 지분을 챙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하나의 번들 액세서리가 회사의 핵심 제품으로

에어팟은 2016년 12월 이후 애플의 효자 상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2019년 매출 기준으로 보면 에어팟•애플워치 등 액세서리 제품 매출이 전체의 10%에 육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미 아이패드의 매출을 넘어 맥 시리즈의 매출에 견줄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에어팟의 성공은 팀 쿡의 애플이 만든 최초의 하드웨어적 성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애플이 향후 애플 생태계로 소비자들을 통합하려 할 때 필수적 요소인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에서 초반 우위를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 스펙이 아닌 고객 경험에 주력

첫 번째 시사점은 애플이 제품 가성비보다 차별화된 고객 경험 제공에 주력했다는 것이다. 2011년 블루투스 칩셋 업체인 CSR의 도움으로 LG전자는 넥밴드 형태의 블루투스 무선 헤드셋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초의 스테레오 블루투스 헤드셋이었다. 초창기 LG 톤플러스의 성공은 핸즈프리 제품의 주 고객인 비즈니스맨에서 벗어나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소비자층을 공략했기 때문이다. 실제 세련된 디자인의 후속 모델은 핸즈프리의 주 고객층인 남성보다 여성 소비자의 비중이 높아졌다. 그러나 블루투스 헤드셋 혹은 이어폰이 점점 보편화되면서 유선 이어폰 고객이 무선 이어폰 시장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2014년 비츠나 보스 같은 전통 오디오 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점유율을 늘려갔다. 비츠는 스포츠용 제품에 주력했고 보스는 핵심 역량인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특화한 제품을 출시했다. 음질이나 브랜드 같은 전통적인 오디오 시장의 경쟁 요소가 중요해졌다.

오디오 전문 업체가 아닌 애플이 이들과 경쟁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애플은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자체 제작 칩셋을 활용해 여러 편의 기능을 추가했다. 페어링과 사용 편리성 강화가 그 예다. 무엇보다 가볍고 콤팩트한 디자인과 착용감이 고객을 사로잡았다. 마케팅 활동 역시 단순한 기능 소개가 아니라 음악으로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키려는 디지털 세대의 취향에 부응했다. 반면 LG는 넥밴드 형태를 버리지 못하고 가성비나 긴 사용 시간에 소구했다. 생산성이 중요한 비즈니스맨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제품이었으나 무선 이어폰을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간주하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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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업 인수를 통한 핵심 역량 확보

두 번째 시사점은 애플이 핵심 역량 내재화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애플은 에어팟의 성공 요인이 저전력 기술에 있음을 깨닫고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해 2013년 패스이프 반도체를 인수했다. 경박단소(輕薄短小) 디자인 구현을 위해 배터리 용량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으며 여러 부가 기능을 넣고도 제품 사이즈를 줄이려면 칩셋 기술 확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이미 스루지 i 라는 핵심 기술 인력을 중심으로 아이폰용 칩셋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 외부 역량을 내재화할 수 있는 내부 핵심 인력이 있었기에 기업 인수를 과감히 결정할 수 있었다.

이처럼 애플은 외부 역량 활용에 있어 내부 역량 확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실제 애플은 자신이 직접 생산하지 않는 부품까지도 핵심 기술 인력을 확보한 다음 아웃소싱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애플이 국내 업체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경우 해당 분야 박사급 전문 인력을 국내에 파견해 해당 부품의 설계부터 제조, 납품까지 모든 과정에 대해 질문하고 논의한다. 애플은 만약 해당 부품에 대한 기술 이해도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작은 업체를 인수하거나 관련 업체의 전문가를 채용하기도 한다. 다시말해 애플은 웨슬리 코헨 듀크대 교수와 다니엘 레빈탈ii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주창한 ‘흡수능력(absorptive capacity)’을 확보한 상태에서 기업 인수 등의 외부 역량 활용 전략을 전개한다. 여기서 흡수능력은 “기업이 새로운 외부 정보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동화시키며, 조직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그것을 적용하는 정도”를 말한다.

반면, 애플의 비츠 인수는 마케팅 역량 내재화와 더불어 운영상의 시너지를 창출했다. 비츠는 매출액 대비 광고판촉비가 30% 이상일 정도로 마케팅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업체다. 그리고 애플은 비츠 인수를 통해 애플 뮤직이라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었다. 2015년 출시한 애플 뮤직은 2019년 6월 기준 가입자 수가 6000만에 달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비츠 인수가 에어팟의 초기 성공에 기여한 점은 W1 칩셋의 규모의 경제 확보라고 생각한다. 애플은 2016년 W1 칩셋을 장착한 비츠 솔로3(Beats Solo3), 파워비츠3(Powerbeats3), 비츠엑스(BeatsX)를 출시했다. 비츠 브랜드와 시장점유율을 감안했을 때 상당한 수준의 규모의 경제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애플은 칩셋 개발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이고 원가 절감을 실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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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액세서리 제품을 통한 고객 록인(Lock-in)

세 번째 시사점은 애플이 에어팟과 같은 액세서리는 아이폰의 제품 차별화 및 고객 록인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액세서리를 통한 제품 차별화를 추구한다. 애플의 주력 제품인 아이폰의 경우 세대가 거듭될수록 제품의 성능을 개선하고 시리(Siri), Touch ID, Face ID 등 기능 측면의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기능적 측면은 경쟁사의 모방을 방어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자체 칩셋 개발로 경쟁사 제품보다 월등한 성능을 보이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기능 자체의 모방을 막을 수는 없다. 이에 애플은 2014년 이후 애플워치와 에어팟 등의 액세서리를 통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애플 기기 간의 연결성과 편의성을 높여 고객 록인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아이폰을 이용하는 사람이 애플워치나 에어팟을 구매하는 경우 안드로이드 제품으로 넘어가기 쉽지 않다. 반대로 에어팟과 같은 액세서리 제품을 통해 안드로이드 이용 고객을 아이폰 진영으로 유입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강신형 충남대 경영학부 조교수 sh.kang@cnu.ac.kr
필자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경영대학에서 경영공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LG전자 본사 전략기획팀에서 신사업 기획, M&A, J/V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LG전자 스마트폰사업부에서도 근무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영 혁신으로 개방형 혁신, 기업 벤처캐피털(CVC) 등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충남대 경영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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