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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Trend in Japan

‘대기업병’ 극복하니 ‘동물의 숲’도 히트

이지평 | 304호 (2020년 9월 Issue 1)
연속적인 히트, 다 이유가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시기에도 잘나가는 기업은 있다. 닌텐도도 이 중 하나다. 올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닌텐도는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4배 증가한 1064억 엔, 매출액은 2.1배 증가한 3581억 엔을 기록했다. 닌텐도의 실적은 언제, 어디서나 편안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기인 스위치와 인기 게임 콘텐츠인 ‘동물의 숲’의 판매 호조에 힘입은 결과다.

닌텐도는 이미 세계적인 대기업이 됐다. 하지만 바로 대기업의 룰을 탑재하는 다른 일본 대기업과 달리 벤처기업 정신을 유지하며 기업 문화를 지키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창조 지향적 경영을 공고히 하고 있다. 후루카와 슌타로(古川 俊太郎) 닌텐도 CEO가 기업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는 메시지에는 독창(獨創)의 정신이 다음과 같이 강조되고 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것, 다른 사람과 다른 것에 가치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독창의 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사원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숨 쉬고 있고 앞으로도 계승될 닌텐도의 DNA이다.”

즉, 닌텐도는 기존 기업과의 경쟁이나 점유율 쟁탈전보다 새로운 시장, 고객을 창조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게임 인구를 더 확대하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들에게 필수 소비재가 아닌 게임을 계속 사고 싶게 만들기 위해 창의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장려하고 시대의 감각, 고객의 트렌드를 읽는 것이 목표다.

닌텐도는 이러한 혁신 DNA를 살리기 위해 관료화된 ‘대기업병’을 억제하는 데 집중한다. 개발자의 감성을 살린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품이 출시될 때까지 살리려 애쓰는 것이 대표적 예다. 많은 기업이 흔히 경험하는, 즉 첫 구상 단계에서 돌출된 참신한 아이디어가 조직 내부의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날카로움이 무뎌져 둥글둥글한 그저 그런 아이디어로 전락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사장을 지내면서 스위치 개발에 주력한 이와타 사토루(岩田 聡)는 게임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늘 ‘직함은 사장이지만 머릿속은 게임 개발자, 마음은 게이머’라고 말할 정도로 현장에 주목하는 인물이었다. 한 사람의 유저라는 시각으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개발하겠다는 사고가 경영 최고위층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큰 강점이 됐다.

한편 닌텐도에선 직원들이 연구개발비를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고 프로젝트와 관련 각종 지출도 복잡하지 않게 승인돼 개발자들이 개발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고 있다.

이러한 개발자 중심 경영 지원 체제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둔 게임 개발자들이 타사로 이적하는 일도 드물다. 대신 전설적인 개발자가 지금도 현장에서 개발 업무를 담당하면서 젊은 개발자와 팀을 구성하는 것이 이 기업의 특징이다. 이들이 과거의 성공에 매몰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 감각, 트렌드를 가진 젊은 팀원과 뜻을 공유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히트 작품의 개발에 매진하는 것이 훌륭한 인재풀이 이어지는 큰 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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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hinking 기법으로 개발한 게임기
‘스위치’

닌텐도 스위치는 2017년에 출시된 게임기다. 집에서 TV와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밖에서도 휴대용 게임기로 사용할 수 있다. 야외에서도 충분히 몰입감을 높일 수 있도록 게임 장면에 맞는 충격을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것이 특징 중 하나다. 또한 부모들이 자녀의 게임 시간이나 게임 내용을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별도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 스위치의 성공은 다양한 각도에서 고객을 유도하는 전략의 성과다.

스위치를 개발할 때, 먼저 제품 콘셉트를 잡는 데 주력했다. 게임 산업의 트렌드 변화를 고려하기 위해 게임기가 실제 출시되기 5년 전인 2012년부터 제품 콘셉트에 대해 관련자들이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 개발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다카하시(高橋伸也) 기획제작본부장과 코이즈미 부본부장에 따르면 이러한 토론의 결과, 2개의 분리식 컨트롤러인 ‘조이콘’을 사용해 두 사람이 편안하게 게임을 같이할 수 있고, 야외로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휴대성을 갖춘 디자인이 탄생했다.

이렇게 콘셉트를 만드는 데는 신중하지만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선 기민하게 움직이는 점 또한 독특하다. 닌텐도는 스위치 개발 과정에서 제품을 완전히 개발하기 이전에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이를 세계 각국의 선택된 유저들에게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개선점을 찾고 수정하면서 제품을 완성하는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 기법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각국의 소비자가 같이 모여서 게임을 할 때 보다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닌텐도는 모여서 게임할 때 나타나는 고양감, 몰입감을 높일 수 있도록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예를 들어, 게임을 통해 친구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즐기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했다. 게임 유저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유저가 게임 화면을 쉽게 SNS에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보통 기업의 제품 개발에서는 소비자의 수요를 예상해서 비밀리에 제품 개발을 마치고 제품을 공개한다. 이런 관행과 달리 닌텐도는 소비자의 의견을 들으며 함께 개발해나가는 전략을 취했다. 사실 원래부터 닌텐도는 설문 조사 등의 일반적인 소비자 조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미래의 수요를 예측하는 데 있어 과거의 경험에 기초한 소비 조사보다도 개발자가 소비자를 깊게 관찰하고 사회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콘셉트를 찾는 데 주력해 왔다.

닌텐도가 만드는 게임에서도 이런 성향이 잘 나타난다. 닌텐도는 유저에게 자유성을 부여하고 직접 뭔가를 만들어나가는 부분을 강조해 게임을 만든다. 게임의 일반적인 규칙이나 조작법도 설명이나 교육 방식을 피하고 유저가 직접 찾아내는 방식을 선호한다.

소비자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
제품에 신속 적용

이처럼 닌텐도는 고객이 선험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내재돼 있는 욕구를 충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신작인 ‘동물의 숲’은 이른바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의 감정과 상황에 맞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강조되고 있는 게임 참가자와의 투쟁이나 미션 달성 단계 통과와 같은 경쟁적인 요소가 약한 대신 느긋하게 게임 공간 내의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춰 집을 꾸민다. 유저는 이 게임 공간 내에 친구들을 초대하고 같이 낚시 등의 놀이를 할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로 못 다하는 오프라인에서의 소통과 여유를 게임 내에서 충족하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느긋함, 여유로움, 소통, 자연이나 교류 등 평화롭고 소박한 요소가 강조되면서 그동안 게임을 즐기지 않았던 여성층, 장년층 등으로 고객을 확대했다.

젊은 층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 취향도 게임에 반영됐다. 자기의 마을을 가꾸기 위해 도끼와 같은 도구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거주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DIY(Do It Yourself) 감성을 가미한 것이다. 현실의 계절처럼 변화와 함께 각종 물건의 시세가 변화하는 데 대응하면서 매매, 쇼핑, 투자 경험의 재미도 더했다. 이를 통해 유저를 이 가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유도한다. 물론 동물의 숲의 성공은 단순히 코로나19 호재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닌텐도는 슈퍼마리오, 피카추, Wii 등 각종 히트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에도 그러한 저력이 충분히 발휘됐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 jplee@lgeri.com
필자는 1963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 호세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으로 건너와 1988년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통령 자문 기구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남북 대외협력 전문위원회 위원, 산업자원부 제조업 공동화 대책회의 위원, 미래부 미래성장동력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LG경제연구원 상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 『일본식 파워경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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