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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기획사-팬의 탄탄한 3자 구도
소통-공감하는 ‘감성지능’ 파워가 바탕

박영은 | 304호 (2020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인간의 마음을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IT가 발전할수록 로봇이나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서 과학을 보완하는 인문학과 예술이, 그리고 인간의 감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그 변화를 이끄는 열쇠로서, 감성지능은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전 세계를 사로잡는 방탄소년단(BTS)과 소속사 빅히트, 그들을 지지하는 글로벌 팬클럽 ‘아미(ARMY)’는 3자 구도를 형성하면서 협력, 동반 성장을 해왔고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 가는 중이다. 이런 빅히트의 빅히트를 가능하게 한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감성지능’에서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편집자주
최근 BTS의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또다시 여러 글로벌 차트를 휩쓸며 K-pop의 새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꺾일 줄 모르는 글로벌 한류 열풍을 중동에서 몸소 체험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린스슐탄대 박영은 교수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경영 전략’을 분석하는 시리즈를 정기 연재합니다. 연재의 첫회는 BTS를 낳은 빅히트의 성공 요인을 감성지능 관점에서 분석한 두 편의 글 중 上편입니다.

BTS와 빅히트, 그리고 글로벌 아미 ‘3자 구도’

지금까지 K-팝은 ‘아이돌과 기획사’ 중심의 ‘양자 구도 시스템(A Two-Party system or Structure)’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음악으로 한류를 이끌고 있는 아이돌은 기획사 주도하에 어린 시절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 실력을 갖춘다. 그리고 데뷔 이후의 활동과 삶, 사생활의 A to Z가 기획사 중심으로 관리, 통제된다. 이 과정에서 팬은 그저 이들의 성공에 뒤따라오는 부산물이자 수동적인 객체였다.

그러나 이제는 글로벌 음악 시스템이 ‘아이돌과 기획사’의 양자 구도가 아닌, ‘아이돌-기획사-팬’이라는 ‘3자 구도(A Three-Party Structure)’ 시스템으로 확연히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K-팝을 이끄는 새로운 주역인 BTS와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 그리고 글로벌 팬클럽인 ‘아미(ARMY)’ 간의 협력과 동반 성장에서 잘 드러난다. 즉, 팬은 더 이상 뒤에서만 따라오는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다. 그들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체이며, 스타 뮤지션과 그들의 소속사 앞에 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나서서 우리의 음악 세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제 BTS의 글로벌 성공 요인을 논하는 데 있어서 아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BTS, 빅히트, 그리고 글로벌 아미. 이 같은 3자 구도 시스템으로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첫째, 무엇이 ‘생산자(소속사 혹은 기업)’와 ‘실연자(아이돌, 즉 기업의 내부 구성원)’, ‘소비자(팬, 즉, 기업의 외부 구성원)’ 간의 탄탄한 3자 구도 시스템을 만들었을까?
둘째, 3자 구도는 양자 구도와 비교해 어떠한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셋째, 이 3자 구도를 제대로 확립하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스마트 전략은 무엇이며, 왜 중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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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트는 2005년 설립 이후 매년 눈부신 성과를 기록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5872억 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987억 원으로 국내 3대 기획사의 영업이익 합계를 뛰어넘었다. 이 같은 실적은 걸그룹 여자친구의 소속사인 ‘쏘스뮤직’ 인수, CJ ENM과 합작 법인인 ‘빌리프’ 설립 등 멀티 레이블을 구축하면서 일궈낸 성과라 더욱 놀랍다. 또한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주가수익비율(PER, Price Earning Ratio, 현재 시장에서 매매되는 특정 회사의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주가의 수익성 지표를 의미)을 기준으로 추정한 빅히트의 기업 가치는 약 4조∼5조 원에 달한다. 최대 추정치를 기준으로 보면 코스피 시가총액 40∼50위권에 오를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모두 20대인 BTS 멤버들의 입대 문제가 남아 있어 빅히트의 미래 가치를 미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동종 업종, 경쟁 기업과 비교하지 않고 이 수치 하나로 주식 가치의 적정성을 논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빅히트가 엔터 업계의 새로운 대장주로 부상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중소 기획사로 출발한 빅히트는 어떻게 그들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었을까? 감성지능의 파워, 특히 ‘중용을 지닌 감성지능의 파워’를 가지고 앞서 던진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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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 구도’에 날개를 달다: 감성지능의 힘

일반적으로 경영학에서는 성공적인 개인 혹은 조직의 리더가 갖춰야 할 능력으로 세 가지를 뽑는다. 재무, 회계, 마케팅, 인사 등과 같이 경영학의 세부적인 전문 영역을 잘 아는 ‘기술적 능력(Technical Skills)’, 조직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고 분석적 추론을 하는 ‘인지 능력(Cognitive Skills)’, 마지막으로,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식해 관리하는 능력, 즉 ‘감성지능(EI, Emotional Intelligence 혹은 EQ, Emotional Quotient)’1 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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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이 2020년 이후 꼭 필요한 10대 기술로 꼽은 감성지능은 대체 무엇일까?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이 개념의 대중화에 기여한 대니얼 골먼은 감성지능을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즉,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타인의 감정을 알고 이해하며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관리자에 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효과적인 리더는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감성지능을 유지한다.

인공지능(AI), 5G,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 기반의 신기술이 이끄는 혁신의 한가운데 인문학과 밀접한 감성지능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10대 기술 안에 포함된 게 의아할 수 있다. 그러나 구글 자이가이스트(Google Zeitgeist)에서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은 현대 자본주의에 심리적인 요소가 실종돼 있기 때문에 그 부재의 대안으로서 인공지능에 ‘인공 감성지능(Artificial Emotional Intelligence)’을 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기계에 없는 인간의 감정을 더욱 강조하고, 과학과 인문학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각 기업에서 더 높은 직위에 도달하려면 지능지수와 기술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업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도 감성지능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조직 인사관리에 감성지능을 사용하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나아가, 직장 생활을 비롯해 웰빙, 우정, 가족생활 등 삶의 전반적인 성공과 관련해 감성지능이 지능지수보다 더 정확한 예측 변수가 될 것이란 연구 결과도 많다. 사람들의 삶과 커리어 성공을 위해 감성지능이 지능지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2

그렇다면 이 감성지능과 BTS를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감성지능을 구성하는 주요 요인들을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한다. 골먼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04)에 실은 아티클 ‘무엇이 리더를 만드는가(What Makes a Leader)’에서 감성지능을 구성하는 5가지 요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먼저, 자기를 관리하는 기술부터 살펴보자.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란 자신의 기분과 감정은 물론이고 강점과 약점, 추진력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자기 인식이 높은 사람들은 지속적인 내적 대화를 통해 감정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통제하며, 자신의 가치와 가능성, 능력을 신뢰한다. 같은 맥락에서 자기 규제(Self-regulation) 역시 자기 조절 능력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하며 유용한 방식으로 이를 전달한다. 즉, 행동에 앞서 생각하고, 판단은 연기한다. 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차단하고 숨겨 가짜 페르소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상황과 타이밍에 맞춰 융통성 있게 조절한다. 이런 모습은 타인에게 신뢰감을 주고 정직한 목소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BTS 같은 스타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소속사에 이 같은 ‘자기 인식 및 자기 규제’ 능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스타성을 드러내기 이전에 먼저 갖춰야 할 요인임이 확실하다. 2019년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린 ‘YG 사태’도 결국은 자기 인식과 규제가 부족했던 스타와 소속 기업의 실체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동기 부여(Motivation)가 되는 사람들은 돈, 직위, 사람들의 인정과 찬사, 명예 등의 외적 보상을 넘어 개인의 내적 욕구와 성취에 의해 강한 자극을 받는다. 따라서 이들은 여러 장애물과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도전 의식과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간다. 이들은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일에 대한 자부심 등 일 자체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모든 업계에서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돈과 인기 등의 부침이 심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와 스타들에게 이런 동기 부여는 더욱 중요한 요소다. 소위 잘나가는 소속사와 스타들이 ‘능숙함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과 환경이 변해도 지속될 수 있는 내적 동기 부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자신을 관리하는 것만큼이나 타인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감(Empathy)은 감성지능에서 절대적인 구성 요소로서 감정이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처지와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기 때문에 센스 있는 리액션을 할 줄도 안다. 많은 연구자가 BTS의 최고 성공 요인으로 바로 이 공감 능력을 꼽는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기술(Social Skill)은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협동 혹은 협업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경청하거나 설득하는 기술을 비롯해 각종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소통 역량, 리더십, 팀워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숙련된 사회적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며, 많은 사람이 동의할 만한 공통의 근거를 찾아 교감한다.

BTS라는 그룹과 그들의 음악, 그리고 멤버
7명 각각에게는 이 감성지능을 구성하는 5가지 요인이 매우 쉽게 발견된다. 물론 BTS 멤버의 감성지능 수치가 객관적으로 측정돼 발표된 적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의 성과와 행보를 살펴봤을 때, 이 5가지 감성지능의 주요 영역이 평균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충분하다. 특히 BTS의 글로벌 성공 요인을 논하는 많은 글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단어가 바로 ‘팬과의 소통과 공감’이다. 감성지능의 네 번째 요인인 ‘공감’이 BTS를 설명하는 키워드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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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13일에 데뷔한 BTS에 대한 관심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먼저 시작됐다. 보통 물리적인 공간에 기반을 두는 전통적인 커뮤니티에선 혈연, 지연, 학연 등이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 커뮤니티(online brand community)3 에서는 공통의 관심사나 취미, 가치, 신념 등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각종 상품이나 서비스 브랜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는데, 이러한 커뮤니티들이 이제는 국경을 초월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소비자가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BTS의 글로벌 팬클럽인 ‘아미’4 역시 온라인 브랜드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예다. 지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BTS라는 특정 브랜드에 대해 관심과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 등 컴퓨터를 매개로 커뮤니케이션(CMC,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온라인 브랜드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감성적 유대감을 공유하고, 장기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브랜드와 해당 기업에 대한 충성도를 높인다. 실제로 BTS는 이 아미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거뒀다.

BTS는 데뷔 이래 공식 홈페이지,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틱톡, 티스토리, 브이로그, 위버스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 채널과 플랫폼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며 여러 볼거리와 놀거리, 멤버들의 소소한 일상 등을 나눠 왔다. 이런 행보가 지금의 ‘찐(진짜의 줄임말) 아미’를 만들어 낸 파워다. 아미들은 BTS의 모든 영상을 복습하고 재가공해 또 다른 2차 편집 영상을 만들어 냈고, 이를 가지고 다른 아미들과 소통했다. 이 과정에서 팬덤의 크기는 엄청나게 커졌고 영향력과 결속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BTS가 만들어낸 음악의 기본 철학에도 ‘공감’이 깔려 있다. BTS 모든 멤버는 직접 노래의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는데 보통 본인들의 이야기를 메인 주제로 삼아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들의 가사에는 꿈과 행복, 불안과 위태로움이 뒤섞인 10∼20대 청년층의 고민과 함께 학교 폭력, 자살, 입시 등의 사회적 이슈가 담겨 있다. 이처럼 BTS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법한 메시지를 가사에 담아 뛰어난 기량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서사 구조를 가진 앨범은 스토리텔링 시리즈로 구성돼 있어 향후 선보일 BTS의 다음 곡에 대한 기대감을 꾸준히 유발했다. 이처럼 꾸준한 소통과 공감은 BTS의 인기가 식지 않고 이어지는 이유다. 영국의 방송 매체 BBC는 ‘BTS: 케이팝 왕자들의 지속적인 힘’이란 제목의 보도에서 “싸이가 2012년 강남스타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그 인기는 곧 잠잠해졌다. 그러나 BTS는 어느 K-팝 스타도 하지 못했던 악명 높은 미국 시장을 점령했고, 몇 년이 지난 지금 2020년에도 그 지속력을 증폭시키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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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구도 시스템 vs. 3자 구도 시스템

그렇다면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기획사(기업) 아이돌(기업의 내부 구성원), 팬(기업의 외부 구성원)’이 중심이 된 ‘3자 구도 시스템’은 기획사와 아이돌만으로 구성된 ‘양자 시스템’과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이 시스템은 어떠한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첫째, 기획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기업은 ‘갑’의 위치에서, 소속 스타나 직원은 ‘을’의 자리에서 관계를 맺어 왔다. 이러한 구도에서 두 주체의 관계는 절대 평등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지배하고 누군가는 지배당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3자 구도 시스템’에서는 세 주체가 ‘갑, 을, 병’이 아니라 평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고 서로를 이끌어는 주인이 될 수 있다. 상호 협업과 소통이 가능하며 동반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아이돌 산업은 철없는 10대들이 한때 잠깐 즐기고 마는 ‘10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령 및 지역을 뛰어넘어 전 세계 시장으로부터 충성도가 높은 고객을 양산하는 명실상부 ‘글로벌 산업’이다. 그리고 그 업적을 만드는 데 있어 기업과 스타, 팬클럽과 지역사회의 균형적인 공헌이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빅히트의 방시혁 대표는 낱장의 앨범으로 어필하는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아이돌 브랜드를 구축하고 장기간 지속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브랜드는 기업이 가진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그는 이 브랜드를 고객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선명하게 새기려면 스토리를 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빅히트는 ‘BTS의 아이덴티티’와 ‘아미의 아이덴티티’를 함께 쌓아 나가는 데 주력했다.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함으로써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기본 전제로 삼았다. 기업이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스타와 팬을 동일선상에 놓았다는 방증이다. 여러 연구자가 논의했듯이5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글로벌 팬덤은 ‘공유된 자원(shared resources)’ ‘공통 가치(common values)’ ‘상호 호혜적 행동(reciprocal behavior)’ ‘신뢰의 유대감(bonds of trust)’ 등이 있을 때 강화된다. 빅히트는 이런 신념을 기반으로 기존의 양자 구도 시스템을 바꿔 나갔다. 즉, 내부 구성원뿐 아니라 외부 구성원과 모든 것을 공유했고 공유된 가치를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나갔다.

둘째, 스타들의 마음가짐과 태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과거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아이돌은 기획사의 철저한 계획하에 훈련을 받았고, 데뷔 이후에도 기획사의 철저한 관리와 통제 아래에 놓였다. 물론 이 양자 시스템이 어느 정도 뮤지션들의 실력 향상과 물질적인 성공, 글로벌 인기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우선이라는 생각’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마음’ ‘공인으로서의 책임감 및 타인에 대한 솔선수범’ 등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됐다. 팬들은 스타들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수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스타들은 학생으로서 정규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기도 전에 연습생으로서, 가수로서 그저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해내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스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팬과 지역사회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타인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문제, 책임감 혹은 솔선수범에 관한 문제에는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3자 구도 시스템은 팬들과 타인을 대하는 스타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스타들이 팬들을 배려하고, 팬들의 행동에 책임을 느끼는 등 더 주체적인 존재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여러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논란의 중심에 섰던 스타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소위 ‘연예인병’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팬들은 잘난 척하는 스타와 진심으로 팬들을 위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공인을 구분한다. 갑작스럽게 바뀐 삶에 당황하지 않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 그리고 단순히 이미지 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전반적인 삶을 주체적으로 관리하고 돌보는 것이 팬들의 마음을 얻는 데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태도를 유지하려면 감성지능의 5가지 요소를 높여야 한다. 보통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 및 전반적인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스트레스에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나 욕구를 분명하게 알리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 기울인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에 따라 스타들을 위한 감성 코칭이나 전반적인 인성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팬덤은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핵심이다. BTS의 글로벌 성공도 결국 팬들이 만들어 준 것이며, 앞으로 나올 제2의 BTS도 팬들에 의해 날개를 달고 날아갈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의 지속적인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한 감성지능 함양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셋째, 팬클럽의 모든 구성원, 즉 고객과 지역사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도 영향을 줬다. BTS라는 아이돌 스타가 세계관을 형성하고 소통 창구를 만들면 이제는 팬들도 그 세계관과 소통 창구를 그대로 따라간다. 이에 따라 BTS라는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와 여기서 파생되는 시장의 영향력은 매우 커졌다. 한 예로, BTS가 2017년부터 유니세프(UNICEF)와 함께 ‘LOVE MYSELF’ 캠페인을 시작하자 팬들도 기꺼이 힘을 보탰다. BTS는 ‘진정한 사랑의 시작은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라는 그들의 음악 LOVE MYSELF의 핵심 메시지를 토대로 선한 영향력을 실천했다. 빅히트와 팬들까지 가세한 이 캠페인은 전 세계 아동과 청소년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목적을 띠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사회적 책임이 녹아 있는 기부와 사회공헌 활동은 결국 지역사회 및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들과 공생하기 위한 활동이다.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6 라고 불리는 BTS의 이 같은 행보야말로 그들의 감성지능이 발휘된 결과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주시할 것은 이 스타들을 지지하는 팬클럽의 변화다. 얼마 전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숨진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흑인 인권운동 캠페인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그런데 BTS와 소속사가 이 캠페인을 위해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미도 기부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금액은 이미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BTS 팬들은 소액 기부 프로젝트 ‘원 인 언 아미(One in an ARMY)’를 운영하면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 단체에 소액을 기부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개설했고, 이를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이처럼 이제 BTS의 팬들은 단순히 그들이 따르는 스타만을 위한 팬이 아니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타인을 생각하고 지역사회 및 전 세계인을 생각하는 공동체로 거듭났다. 일련의 변화는 3자 구도 시스템, 그리고 높은 수준의 감성지능이 작용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못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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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공감, 기업의 글로벌 성공 공식

이처럼 3자 구도 시스템 안에서 감성지능은 기획사, 아이돌, 팬이라는 각 주체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중대한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BTS의 글로벌 성공을 낳았다. 감성지능이 가지는 힘은 BTS뿐 아니라 최근 관찰형 예능의 압도적인 인기에서도 확인된다. TV 화제성 조사 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서 발표한 2020년 7월 첫째주 비드라마 부문의 화제성 상위 10개 프로그램을 보면 관찰형 예능이 대세임을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이 관찰형으로 분류되며 이들이 대체로 시청률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SBS의 ‘미운 우리 새끼’, MBC의 ‘나 혼자 산다’,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tvN의 ‘삼시세끼’, 채널A의 ‘하트시그널’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출연진에게 주제나 소재, 미션 등을 던져주고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자 시점에서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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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에는 주로 패널들이 존재하고, 이들 패널은 영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청자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출연자와 시청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맥락을 풀이해주는 일종의 중간자 역할인 셈이다. 이를 두고 ‘액자형 관찰 예능’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출연자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다 보니 시청자들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마이크를 몸에 차고 카메라에 비춰지는 모습을 의식하다 보면 ‘100% 리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런 프로그램들은 출연진에게 가면을 씌우고 모든 상황을 예쁘게 포장하는 대신, 일부 정돈되지 않고, 갈등과 불편함도 따라오는 삶의 단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도 그 상황에 공감하면서 보다 친근감을 갖고 출연자들을 지지한다. 스타들의 삶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순간 알 수 없는 이유로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 주어진 상황에서 대리만족이나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감성지능, 그중에서도 공감의 힘이다.

한편, 소통과 공감의 힘은 과거와 현재 국내 기업 총수들의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비단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국한된 성공 공식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재는 온라인에 수많은 SNS 소통창구가 존재하지만 35년 전에는 기업이 대중과 소통할 창구가 마땅치 않았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대중과 소통한 최초의 CEO는 1946년 설립돼 간장 업계 1위를 달렸던 샘표간장의 고(故) 박승복 회장이었다. 그는 SNS가 없던 시절인 1985년, 샘표의 CF에 직접 출현했다. 1985년은 무허가 간장 제조업자들이 소금물에 검은색 색소를 타 간장으로 속여 판매했던 ‘간장 파동’이 일어난 해였다.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이 사건으로 간장 회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판매 실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샘표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당시 CEO였던 박 회장은 절박한 심정으로 CF에 나와 호소했다. “샘표의 간장은 안전합니다. 마음 놓고 드십시오.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기업 총수가 직접 전달한 이 간단한 메시지는 그동안의 불식을 종식했고, 기업 리스크 관리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됐다. 외부 고객뿐 아니라 내부 고객인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을 중시했던 기업 총수 덕분에 샘표의 매출은 1년 뒤인 1986년 원상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여러 기업 총수의 소통은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를 가져왔다. 엔씨소프트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2017년 광고에 직접 출현해 ‘택진이 형’으로 친근한 인상을 남긴 김택진 대표, 2020년 5월 딸 함연지의 유튜브에 출현해 ‘한 자녀의 아버지’로서 푸근한 이미지를 심은 오뚜기의 함영준 회장이 대표적이다. 인기 유튜버로 활약 중인 딸 함연지는 어버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오뚜기 제품을 활용한 음식을 요리해 아빠인 함영준 회장에서 대접했고, 애틋하고 남다른 부녀지간의 모습은 많은 네티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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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사례도 눈길을 끈다. 정 부회장은 대학생이 뽑은 ‘닮고 싶은 CEO’의 유통, 물류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그의 SNS을 접한 어린 학생들의 롤모델로 떠올랐다. 그는 2009년 부회장으로 선임되자마자 바로 SNS를 개설하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SNS를 통해 꾸밈없이 사생활을 공개했고, 회사 홍보팀이 아닌 본인이 직접 SNS를 관리하면서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는 ‘소통 리더십’을 강조해온 어머니 이명희 회장의 영향이 크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정 부회장만의 소통 철학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 같은 경영자의 친근한 이미지는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와 연결돼 TV 광고보다 더 영향력이 크고 확실한 홍보 효과를 낳았다. 정 부회장이 SNS에 올린 사진 덕분에 이 회사의 ‘빈대떡’ 매출은 6.6% 올랐고 S사의 과자 매출은 94.5%나 상승했을 정도다. 기업 총수가 신세계 최고의 홍보맨이자 마케터를 넘어서 젊은 사람들의 ‘슈퍼 인플루언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들 사례는 소통과 공감이라는 감성지능이 엔터테인먼트 세계를 비롯해 모든 국내•외 기업들이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핵심 전략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IQ가 아닌, EQ(EI)가 떠오르는 시대에 팬과의 소통과 공감이 BTS를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려놨듯이 글로벌 성공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감성지능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대중에 다가갈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박영은 프린스슐탄대 경영학과 교수 ypark@psu.edu.sa
박영은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린스슐탄대(Prince Sultan University) 경영학과 교수이며, 이 대 학의 전략센터(Strategic Planning & Development Center) 센터장이다.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마케팅 전공)와 박사(전략 및 국제경영 전공) 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을 거쳐 영화진흥위원회의 전문 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주요 저서로는 『엔터테인먼트 경영학(2019)』 『K-콘텐츠,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성공전략(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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