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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팬데믹이 바꾼 헬스케어 비즈니스 트렌드

원격으로(remote) 집에서(home) 혼자(self) 구독(subscribe)
헬스케어 비즈니스에 새로운 기회 열렸다

김진길,류정원,반호영 ,윤선일,김윤진 | 296호 (2020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헬스케어 비즈니스는 어떤 모습일까. 전 세계적으로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실시되면서 의료 및 헬스케어 산업에서도 ‘비대면(Untact)’이 뉴노멀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피트니스 분야에서는 오프라인 중심의 전통 피트니스에서 원격, 구독형 온라인 홈트레이닝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둘째, 원격의료 분야에서는 국내외에서 규제 완화 바람이 불면서 온라인 진료와 처방, 상담이 본격화되고 있다. 셋째, 진단 및 모니터링 분야에서는 휴대용 모바일 기기 등 의사들이 생소하게 여기던 디지털 헬스케어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치료제와 백신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AI와 유전체 분석 기술의 도입 속도가 빨라지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도 어느 시점에서는 끝이 나고 사람들은 결국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러나 헬스케어 업계의 서비스와 대중들의 소비 및 생활 패턴에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감염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보수적인 헬스케어 업계에서마저 ‘비대면(Untact)’이 뉴노멀로 부상했다. 원격으로(remote), 집에서(home), 혼자(self), 구독해(subscribe) 이용하는 서비스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 일명 스페인독감이 휩쓸고 난 뒤 북미권에서 한동안 여행이 끊기고 교회나 사교모임 등에서 인파가 급감했듯이 지금 당장의 위기가 지나가도 비대면에 대한 요구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홈트레이닝, 원격의료,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사용자들의 경험이 누적되고 심리적, 제도적 장벽이 낮아지게 되면서 비대면 서비스는 점차 니치 마켓에서 벗어나 메인스트림 마켓으로 진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으로 인해 진단과 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대대적인 변화가 생겼다. 긴급하게 밀려드는 수요에 의료진이 가용 자원과 인프라를 총동원하게 되면서 신기술에 대한 시장의 수용도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먼저, 진단 및 모니터링 분야에서는 스마트폰과 연동된 휴대용 무선 기기 등 디지털 헬스케어가 유용성을 입증하면서 의료 현장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또한, 백신과 치료제 등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AI와 유전체 분석의 도입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도 제약 바이오 업계에서는 신약 개발 기간 단축이 핵심 과제였다. 그러나 약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사상자가 불어나는 팬데믹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글로벌 제약사, 바이오 벤처들은 ‘스피드(speed)’의 중요성을 더욱 체감하게 됐고, 이는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기술 채택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지금부터 팬데믹이 앞당긴 헬스케어 비즈니스 트렌드의 변화를 세부 분야별로 살펴보겠다.


피트니스 -
‘확찐자’ 막는 홈트레이닝의 대중화

코로나19 발발 이후 가장 격변을 겪은 헬스케어 산업 중 하나는 바로 피트니스다. 국내에서는 GX(Group Exercise)룸의 줌바댄스 교실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난 뒤 피트니스센터를 기피하는 이들이 늘었으며, 덩달아 요가나 필라테스 등 단체 운동 시설에까지 발길이 끊기면서 업장들은 문을 닫고 트레이너들은 대규모 실직 사태를 맞이했다. 이에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팬데믹이 오프라인 센터들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코로나 사태는 원래부터 진행 중이던 오프라인 중심의 전통 피트니스에서 원격, 구독형 디지털 피트니스로의 전환을 가속화했을 뿐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은 수많은 ‘확찐자(갑자기 살이 확 찐 사람)’를 양성했고, 야외 활동과 운동량이 급격하게 저하돼 면역력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역으로 사람들의 지방은 늘고 근육은 줄었다. 이에 따른 건강 악화를 막기 위해 사람들은 자연히 실내 운동으로 눈길을 돌렸다. 유명 스타들이나 인플루언서가 의자나 타이어, 주방기구 등을 운동기구 삼아 홈트레이닝을 하는 모습도 SNS 영상으로 심심치 않게 소개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프라인 피트니스 업체들은 비대면 트레이닝이 가능한 피트니스 네트워크 플랫폼화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기업들은 비대면 서비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코로나 사태를 PR 기회로 삼았다. 웨어러블 헬스케어의 강자 핏빗(fitbit)은 블로그를 통해 팬데믹 기간 자사 서비스인 ‘핏빗 프리미엄’과 ‘핏빗’ 코치를 90일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고, 집에서 스마트폰이나 PC로 150가지가 넘는 운동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다고 홍보하며 고객 유치에 박차를 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온라인 전용 구독형 운동 강좌 서비스인 오베(Obé)의 가입자 수도 크게 늘었다. 밖에서 뛰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키즈밥(KidzBop) 등 어린이용 운동 콘텐츠도 많아졌다.

이번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이 같은 변화를 낳은 사회적 거리 두기나 유행성 질병 예방을 위한 생활 패턴은 일부 남게 될 것이다. 기존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팬데믹 기간 동안 임시방편으로 디지털 서비스를 활용하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과감히 자사 비즈니스 모델에 플랫폼 서비스를 정식 도입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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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 사례로는 영국의 피트니스 프랜차이즈인 데이비드 로이드(David Lloyd)와 퓨어짐(PureGym) 등이 있다. 이들은 전 지점 폐쇄 조치가 내려지자 일시적으로 멤버십 앱(App)을 통한 운동 강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점 방문이 힘들어진 회원들이 온라인에서 앱을 통해 임시 강좌를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너필드헬스(Nuffield Health)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운동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버진액티브(Virgin Active)는 소셜미디어와 웹사이트를 통해 강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북미를 중심으로 유럽에까지 지점을 개설한 요가 프랜차이즈 모도요가(Modo Yoga)도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무료 강좌를 풀었다. 이들은 모두 디지털 피트니스를 지점이 문을 닫는 동안 운영하는 임시 수단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에 반해 디지털 피트니스를 정식 서비스로 도입했거나 도입하려 하는 기업들도 있다. ‘피트니스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미국 펠로톤은 실내 자전거 등에 설치된 모바일 기기로 실시간 수업을 따라 할 수 있도록 유명 트레이너 강좌를 월 12.99∼39달러에 제공한다. 말 그대로 넷플릭스 같은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다. 펠로톤은 하드웨어 기기와 모바일 코칭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 홈트레이닝계의 대표 플랫폼으로서 2019년 기준 매출 1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주가가 폭등하는 등 기업가치는 더욱 치솟고 있다. 물론 이들도 뉴욕과 런던의 오프라인 스튜디오를 폐쇄하는 등 일부 피해를 입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집에서 하는 1인 운동, 원격 코칭 트렌드가 가속화하면서 명실상부한 수혜 기업이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북미의 유명 사이클 스튜디오인 소울사이클(SOUL CYCLE)도 별도의 온라인 강좌를 운영하지 않았다가 올해 하반기부터 ‘더 앳-홈 바이크(The At-Home Bike)’라는 서비스를 개시하기로 했다. 이미 구축해 놓은 오프라인 스튜디오와 사이클링 강사 인프라를 바탕으로 펠로톤의 대항마가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오프라인 피트니스 업체가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소규모 스튜디오의 피해가 심각하다. 구독형 운동 강좌 서비스 업체인 니오유(NEOU)의 CEO인 네이선 포스터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팬데믹이 끝나고 피해를 입은 모든 스튜디오가 정상화하길 바란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재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운동을 맛보기로 체험할 수 있는 미국의 공유형 피트니스 클래스패스(ClassPass)의 CEO인 프릿츠 란만은 “전 세계 30개국에 자리한 3만여 개의 피트니스 관련 파트너 중 90%가 잠재적으로 영업 중지에 돌입하고 영업점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이런 스튜디오를 돕기 위해 클래스패스는 2000여 개 운동 강좌를 무료 배포하고 온라인 플랫폼 구독료를 받지 않는 대신 사용자들에게 강좌를 등록한 오프라인 스튜디오에 직접 기부하라고 권장했다. 사용자들이 이에 동참한 결과, 총 100만 달러가 기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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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 한국에서도 최근 일본 닌텐도 스위치의 게임인 ‘링피트 어드벤처’가 재미와 운동 효과를 모두 잡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또한 G마켓 조사 결과 아령, 케틀벨, 덤벨 등 홈트레이닝 관련 상품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하는 등 실내 운동이 각광받고 있다. 또 국내 유튜브 채널 중 평범한 30대 부부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 동작들을 소개한 ‘땅크부부’ 채널이 구독자 수 2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피트니스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에서도 스타트업들이 비대면 1인 운동이 가능한 홈트레이닝 서비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꾸내컴퍼니가 운영하는 온라인 홈트레이닝 서비스 ‘리트니스’가 대표적이다. 리트니스는 영상통화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트레이너 코칭을 받으며 운동할 수 있는 서비스로 최근 출시 후 콘텐츠를 늘려가면서 벤처캐피털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아울러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인 올해 3월 국내 홈트레이닝 서비스 기업인 엠투웬티도 피트니스센터 기반의 플랫폼 서비스 모델로 130억 원 규모의 북미 진출 계약을 따냈다. 이 회사는 무중력 우주공간에서 우주 비행사들의 근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발명된 EMS(전기근육자극요법, Electrical Muscle Stimulation) 기술이 적용된 피트니스 장비를 개발해 유럽에 수출하고 있다.

엠투웬티의 장비에는 거울(mirror) 디스플레이 화면이 달려 있어 비대면으로 트레이너를 따라 할 수 있는 영상이 제공된다. 또 기기 본체에 체성분 분석, 체형 분석 기능이 포함돼 있어 여기서 나온 인체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휴대폰으로 전달하며 체계적인 개인 맞춤형 운동 계획과 식단까지 상담해준다. IPTV 등 셋톱박스와 연계해 거실 TV로도 EMS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상품도 곧 출시될 예정이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비대면, 셀프, 홈트레이닝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원격의료 –
비대면 진료로 의료진 공백 해소

한편,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이 헬스케어 업계의 뉴노멀이 되면서 확진 검사 등을 책임진 의료 시장에서는 ‘원격의료’가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도 비대면 상태로 영상, 전화, 채팅 등을 통해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한 생활 방역 특성상 원격의료를 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원격의료가 코로나 사태 발발 전부터 꾸준히 성장해온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트렌드이긴 하지만 팬데믹이 트렌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정부가 2월24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이전까지 금지됐던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등 처음으로 비대면 원격의료 서비스 규제의 빗장을 풀었다. 2003년 의료인들 간 원격의료를 허가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고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서비스가 전례 없는 감염병 위기상황에서 급물살을 타게 된 셈이다. 원격의료는 감염 우려를 줄이고 의료진의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원격의료는 대구•경북 지역에 의료진이 집중 투입된 상황에서 의료진 공백을 해소하는 수단이 됐다. 가벼운 증상에 대한 일반 진료와 처방을 원격으로 함으로써 병원 내 집단감염을 막고, 환자 격리 병상을 확보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도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효과를 거뒀다. 또 서울 등 대도시와 달리 의료진과 시설이 부족한 도서•산간 주민들도 편리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료 접근성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를 통해 환자들도 건강 상태 모니터링, 진단 키트 및 처방약 배송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았고, 막대한 의료 비용 및 시간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현재 5대 대형 병원을 비롯한 전국 상급 종합병원 21곳, 종합병원과 병원은 94곳이 전화 상담과 처방을 시행 중이다. 간단한 결과를 듣거나 이전과 같은 약 처방을 받기 위해 오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루 평균 250건의 전화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기업 근무 형태도 달라지고 교육 등의 서비스가 원격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는 원격의료의 전면적 도입을 논의할 기회를 열어줬다. 기회를 틈타 의료 분야 스타트업들은 한시 허용된 원격의료 시장에 뛰어들어 환자와 병원, 약국을 연결하고, 비대면 진료와 약 처방을 가능케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굿닥’ 서비스를 운영하는 헬스케어 플랫폼 업체 케어랩스가 정부의 원격의료 한시 허용 발표 이후 발 빠르게 대응했다. 원격의료 기관 모아 보기, 전화 진료 등의 기능이 있는 원격의료 지원 앱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현재 굿닥에서 원격의료가 가능한 병원은 120개 정도이며, 이 원격의료 사이트 방문자 수는 지금까지 19만 명에 달한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인 환자들, 암이나 당뇨를 앓고 있는 기저질환자, 영•유아 부모 등이 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스타트업 메디히어도 원격 영상 진료 앱을 출시했다. 당초 미국 시장을 겨냥했지만 국내에서도 한시적으로 규제가 풀리자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 앱에 증상을 입력하면 의사와 일정을 잡아 영상과 채팅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고객은 사전에 등록한 결제 수단으로 진료비를 지불하고 처방전은 지정 약국으로 전송하면 된다. 디지털 헬스 전문 기업 라이프시맨틱스도 일부 종합병원과 원격의료 솔루션 제공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체온이나 혈압 등 생체 정보를 측정할 수 있는 전용 장비를 제공하고, 측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전화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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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네오펙트의 원격 재활 애플리케이션 (왼쪽)과 재활 치료사 가이드 솔루션(오른쪽)


물론 이렇게 국내 시장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스타트업도 있지만 사실 원격의료 비즈니스의 기회는 미국 시장에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이전에도 원격의료가 시행되고 있었다. 넓은 국토로 인해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지역 간 의료 수준 차이가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가적 문제로 거론될 만큼 높은 의료 비용, 비효율적인 의료 체제를 해결할 수단으로도 원격의료가 주목받았다. 미국은 의료비가 OECD 국가들 중 가장 비싸고 1인당 헬스케어 관련 지출이 가장 많기 때문에 환자들도 대면 진료보다 불필요한 의료비를 절감해줄 수 있는 원격의료를 선호한다.

여기에 코로나 이후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최근 미국 FDA는 팬데믹 기간 동안 의료장비 사용과 관련한 원격의료 지침을 새롭게 발표했다. 감염병이 유행하는 동안 원격의료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특정 모니터링 장치에 대한 사전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의료진과 환자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비침습적 환자 모니터링 장비의 사용을 강화한다는 게 골자다. 또한 최근 의회가 승인한 코로나19 관련 긴급 예산 83억 달러(약 9조8000억 원)에 연방의료보험제도를 포함했다. 미국에서도 이전까지는 원격의료 서비스 가능 범위를 보건의료 전문가가 부족한 지역 환자 등으로 제한했는데, 이제는 의료진이 주 면허와 관계없이 미국 전역에서 원격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아가 미국 보건사회서비스(HHS)와의 공조로 메디케어 보험 대상자들에게 원격의료 제공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에게는 어떠한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원격의료에 음성 및 화상통화가 가능한 스카이프나 페이스타임, 구글의 그룹 화상 통화 기능을 가진 행아웃 등의 플랫폼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잠재력이 큰 미국 원격의료 시장을 겨냥해 곧바로 진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국내 의료 솔루션 전문 기업 네오펙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원격의료 시장인 미국과 독일에 법인을 설립했다. 네오펙트는 AI와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뇌졸중과 치매 등 신경계 및 근골격계 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홈 재활 훈련을 위한 플랫폼을 개발하는 회사다. 이 회사의 원격 재활 애플리케이션인 ‘네오펙트 커넥트’를 활용하면 기존에 병원에 방문해야만 할 수 있던 반복 기능 훈련, ADL(일상생활 동작 훈련, Activities of Daily Living) 등을 혼자서도 집에서 수행할 수 있으며, ‘네오펙트 텔레리햅’ 솔루션을 통해서는 재활 치료사의 가이드를 받을 수도 있다. 의료기관과 치료사 부족으로 충분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의 원격 재활과 회복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회사는 미국 시장에서 안착하기 위해 2017년부터 B2B뿐 아니라 B2C 고객을 대상으로 홈 재활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꾸준히 원격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2020년 1월에는 아예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재활 클리닉인 ‘커뮤니티 리햅 케어(Community Rehab Care)’까지 인수했다. 네오펙트처럼 미국 현지 클리닉이나 병원을 인수하는 것은 점차 이용자 수가 늘고, 관련 법안이 마련되고 있는 글로벌 원격의료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참고할 수 있다. 이처럼 코로나 사태는 의료 시장의 규제를 완화하고,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진 저항의 문턱을 낮췄다. 원격의료 서비스 제공업자들 입장에서는 이해 당사자인 의료진과 환자들이 원격의료와 재활을 경험하게 된 지금이 중대한 기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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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및 모니터링 -
모바일 휴대기기로 위급 상황 예방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감염병을 진단할 수 있는 다양한 진단 기술이 대중에 소개됐다. 검체나 혈액에 있는 면역 항원과 항체를 검출하는 항원/항체 진단법, 검체나 혈액에 있는 유전자 RNA/DNA를 증폭해서 검출하는 분자 진단법, 배양 환경에서 병원균을 배양해서 검사를 하는 배양법 등이 있다. 그러나 이번 의료 현장에서는 익히 알려진 진단 키트 외에도 스마트폰과 연결된 휴대용 기기를 이용한 영상 진단 기법이 활용되면서 응급 상황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저력을 보여줬다. 의료진이 생소하게 느끼던 폐초음파 진단이 휴대용 무선기기에 접목돼 감염병 확진에 활용, 위급 상황에서 유용성을 입증했다.

한 예로, 대구 지역 병원이나 중국 우한 대학 부속 병원 등에서는 국내 스타트업 힐세리온의 무선 휴대용 초음파 기기 ‘소논(Sonon)’이 사용됐다. 의사들은 초소형 스마트 진단기에 내장된 무선통선기가 전송하는 영상을 태블릿PC나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환자를 진찰했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의 주요 특징은 호흡기 관련 심한 증상이 나타나기 전 폐렴이나 급성 호흡 부전 등의 폐질환을 일으켜 사망에 이른다는 점인데, 이런 질환은 CT로 확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감염병 상황에서는 모든 환자를 CT로 검사할 수도 없고, 엑스레이는 검사 정확도가 낮아 한계가 있다. 이럴 때 휴대용 초음파 기기를 활용하면 선별 진료소나 생활 치료 센터, 음압 병동 안에서도 보호복을 입고 간단히 폐질환 유무를 알아낼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의 소논은 클라우드 영상 저장 서버를 바탕으로 무선통신이 되는 곳 어디서든 코로나19 진단을 도왔다. 엑스레이보다 높은 정확도로 경증 환자가 입원하는 생활 치료 센터에서는 중증 환자로의 이행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증 환자가 입원하는 음압 병동에서는 수시 모니터링으로 위급 상황에 대비하는 데 활용됐다. 선이 없는 휴대용 기기의 특성상 멸균 커버를 이용하면 감염원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이점도 확인됐다.

마찬가지로, 해외 현장에서는 지난해 FDA 인증을 받은 미국의 기술기업 마시모의 손가락용 디지털 산소 포화 측정 장치도 코로나19 환자의 급성 호흡 부전 등 전조 증상을 예측하고, 원격 모니터링하는 데 활용됐다. 이 장치는 산소 포화도뿐만 아니라 호흡수까지 손가락 센서를 통해 측정한 뒤 블루투스를 통해서 스마트폰이나 서버에 데이터를 전송한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질병 진단, 모니터링 분야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활용은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다. 최근 애플과 구글도 코로나19 공동 대응을 위해 감염자 동선을 추적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올해 5월 중순 iOS와 안드로이드 API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오픈소스를 활용하면 기업들은 감염자 동선 관리의 디지털화를 통해 코로나19의 전파 속도도 늦추고, 인구 이동 및 물류 관리 등의 영역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가 경기도 성남시에 적용한 ‘클로바케어콜’의 경우도 디지털 기술을 효과적으로 접목한 코로나19 대응 사례에 속한다. AI 상담사가 자가격리자에게 하루 2번 자동으로 전화로 발열, 호흡기 증상 등을 확인하고 필요시 의료진에게 전송한다. 네이버는 라인 AI콜을 통해 일본에도 AI 상담 서비스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챗봇, 비대면 전화 상담은 팬데믹이 종식되고 출입국이 자율화되더라도 감염병 검역의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사태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에는 분명한 기회다. 한국의 팬데믹 대응 능력과 디지털 헬스케어, 진단 키트, 마스크, 방호복 등의 우수한 품질이 널리 알려진 만큼 과거 국내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지 못했던 해외 조달 시장의 문턱을 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는 유리한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공공 조달 시장의 문을 섣불리 두드리지 못했고, UN이나 WHO 등의 조달 시장에서도 말라리아 텐트, 일부 진단 키트 공급 외에는 조달 성과가 미미했다.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까다로운 인증, 복잡한 조달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하지만 한국의 모범적인 팬데믹 대응과 의료 기술이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지금, 그간 막혀 있던 해외 조달 시장을 뚫기 위해 개별 기업도 인증, 조달 지원 등을 활발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한 신규 비즈니스 기회를 개척하기 위해 환자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에 모으고 AI 엔진을 지속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신약 개발 -
AI를 통한 치료제, 백신 개발 기간 단축

근본적인 감염병 처치와 예방을 위해서는 결국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신약이 출시되려면 험난한 산을 넘어야 한다. 수년간의 비임상을 거친 뒤 규제기관 승인을 받아 수년간의 임상 1∼3상을 추가로 진행하고, 시판 허가까지 받아야 한다. 이는 곧 코로나19처럼 새로운 유형의 감염병이 창궐했을 때 치료제 개발을 시작하면 허가를 받을 때쯤이면 이미 한참 때를 놓치고 질병 자체가 소멸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예외지만 보통은 감염병이 선진국보다는 개도국에서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인센티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 의사들이 내성 문제로 신규 항생제의 처방을 꺼린다는 점 등이 맞물려 감염병 치료제나 항생제는 제약 바이오 업계의 대표적인 ‘시장 실패’ 영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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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입장에서는 치료 효과가 너무 뛰어나도 문제다. C형 간염 치료제의 경우 글로벌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소발디(Sovaldi)와 하보니(Harvoni)를 2014년 출시하면서 연 매출 10조 원의 거대 시장을 형성했는데 약효가 지나치게 좋아 약 복용을 시작한 C형 간염 환자들의 95% 이상이 3개월 내 완치되는 바람에 약 3년쯤 뒤부터는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이렇게 잠깐이나마 상업적 성공을 거둔 기업이 상당히 운 좋은 사례에 속할 정도로 이 분야에는 항상 시장 실패의 위험이 도사린다. 항생제 시장에서는 거의 20년 가까이 신규 계열 항생제의 FDA 승인이 없었다가 글로벌 제약사 나브리나 테라퓨틱스가 2019년 개발한 레파무린(Lefamulin)이 가까스로 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현재 나브리나의 시가총액은 5100만 달러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항생제 개발 회사가 자본시장에서 받는 평가는 이와 유사하다.

감염병 치료제에 대한 수요는 항상 존재하지만 돈이 안 되는 이상 공급을 늘릴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이는 공급자인 개별 제약사가 코로나19처럼 신종 호흡기 감염병이 갑자기 발생할 때 치료제 개발로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짐작케 한다. 인프라와 인적 자원이 부족하고, 신종 감염병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데다 개발을 위한 투자를 시작해도 언제 갑작스레 전염병이 소멸할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사스나 2014년 메르스 치료제 개발 투자도 병이 소멸되자 후속 투자들이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감염병이 출현할 때 제약 바이오 기업들의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은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방식의 신약 개발이다. 약물 재창출이란 기존 약을 새로운 용도로 변경해 쓰는 접근법이다. 코로나19가 예외적으로 상당 기간 지속된다 하더라도 하루에만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이 사망하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이 걸리는 통상적인 신약 개발 방식은 성공이 요원하다. 이미 승인된 약물에 대한 임상을 빠르게 다시 진행해 신종 질환에도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더 빠르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현재 코로나19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이 진행 중인 의약품들도 모두 이미 코로나가 아닌 다른 질환에 대해 시판 승인을 받았거나 최소한 인체 안전성이 확인된 약물들이다.

이처럼 코로나19 발발 이후 유수의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들은 약물 재창출 방식으로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표 1) 이 같은 경쟁에서 스피드의 우위를 점하고 개발 기간을 단축하려면 결국 AI와 유전체 분석의 힘을 빌려야 한다. 병원체의 단백질 타깃을 분석하고 이 타깃에 달라붙는 후보물질을 빠르게 탐색하는 게 핵심인데, AI와 유전체 분석이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바이러스 표면 단백질 예측, 목표 단백질에 결합하는 물질 구조 예측, 임상시험 참여 환자들의 모집 효율성 상승, 약물 효능 데이터 라이브러리 구축으로 신종 병원체에 대한 대응 역량을 높여줄 수 있다. 이는 코로나 이후 그동안 AI와 유전체 분석 기술 도입 속도가 더뎠던 국내 신약 개발 업계에서도 약물 재창출과 임상시험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이 두 가지 신기술이 적용될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AI 기반 신약 개발 분석 회사인 벤치싸이(BenchiSci)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의 AI 신약 개발 전문 스타트업들은 약 230여 개에 달하며, 한국에도 약 8개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 AI 신약 개발이라는 하나의 유형으로 묶여 있다 해도 저마다 집중하려는 방향이 다르고 강점과 약점도 다르다. 어느 부분에서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을지는 직접 대화를 해 보고 솔루션을 적극 활용해 보면서 깨닫게 될 것이다. 또 유전체 분석 기술을 도입할 때에는 관련 분야의 경험이 많은 의료진과 생명정보 분석 서비스 솔루션 제공사와 협업할 필요가 있다. 의료진에게선 고객 시각에서의 피드백을 듣고, 분석 서비스 회사에선 안정적인 백엔드 운영과 상업적 성공을 위한 조언을 들어야 한다.

인간의 면역 체계는 병원체가 침입해 들어오고 그들을 격퇴하고 나면 추후 감염이 발생할 때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면역세포들이 그 병원체들의 특성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업 면역 체계도 마찬가지다. 이번 범세계적 감염병 창궐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앞으로 언제든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에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제라도 신약 개발 업체들이 AI와 유전체 의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입을 시작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력의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소개
김진길 엠투웬티 대표 jingle.kim@m20.co.kr
김진길 엠투웬티 대표는 SBS 시사교양 PD로 근무하다 2011년 외주 제작을 하는 엔터테인먼트사 ‘온에어미디어’를 차렸고, 2014년 엠투웬티를 창업했다.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 DrRyu@healcerion.com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2000년 정밀 보안장비로 첫 창업을 한 후 실패를 맛보았다. 뒤늦게 뇌과학을 연구하겠다며 2005년 가천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2009년 의사 생활을 시작했고, 응급실에서 일하다가 2012년 힐세리온을 창업했다.

반호영 네오펙트 대표 hyban1013@neofect.com
반호영 네오펙트 대표는 카이스트 항공우주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TV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고구려TV 엔터테인먼트를 창업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미국 버지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치고 2010년 네오펙트를 창업했다.

윤선일 신테카바이오 이사 sunil.youn@syntekabio.com
윤선일 신테카바이오 이사는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강북삼성병원 임상조교수를 지낸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와 셀트리온 제품기획, 신사업 기획 부서에서 일했으며, 현재 신테카바이오 사업개발총괄(BD Director) 이사로 있다.

정리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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