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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지 마세요, 추천 하세요

안병민 | 279호 (2019년 8월 Issue 2)
“쿨하게 이겨낼 것인가, 핫하게 이겨낼 것인가? 활전복 vs. 삼계탕” 모 대형마트 식품 코너에 걸린 광고 문구입니다. 입맛 없는 여름,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고민하는 고객을 겨냥한 메시지입니다. 수많은 먹거리의 유혹 앞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고객에게 상황에 맞춤한 선택지를 추천해주는 겁니다. ‘큐레이션’의 현장입니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구매 상황에서 엄청난 선택지를 쥐게 됐습니다. 자동차 한 대 살 때도 따져 봐야 할 브랜드와 차종, 옵션의 조합이 수백 가지가 넘습니다. “베이지색 셔츠를 입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검은색 셔츠가 나을까요?” “카톡 프로필 사진 좀 골라주세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올라오는 얘기들입니다. 내 삶의 간단한 선택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구매를 위한 선택은 커다란 고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풍요의 역설’이자 큐레이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큐레이션은 ‘전문가’와 ‘선별’ ‘추천’이라는 키워드로 이뤄집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특유의 안목을 통해 선택지를 추려 최적의 옵션을 추천해주는 겁니다. 미술관에서나 들을 수 있던 단어 큐레이션은 그렇게 세일즈의 한복판으로 성큼 들어왔습니다.

독일 할인점 ‘알디’는 큐레이션의 모범 사례입니다. 무작정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안 알디는 카테고리별로 제품의 가짓수를 대폭 줄여 고객의 선택을 쉽게 만들어줬습니다. 줄어든 재고 부담과 절감된 관리비용은 좀 더 큰 할인폭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알디의 성장 이유입니다. 개성 넘치는 패션 피플을 겨냥한 롯데의 미니 백화점 ‘엘큐브’(가로수길점)는 또 다른 큐레이션 사례입니다. 운동할 때 듣는 신나는 음악, 집중할 때 듣기 좋은 재즈음악 등 음악도 상황에 맞춰 큐레이션해주는 세상입니다.



전문가, 즉 사람을 통해 이뤄지던 큐레이션도 기술 혁신에 발맞춰 진화합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한 추천 말입니다. 이젠 쇼핑을 할 때에도 평소 축적된 쇼핑 데이터를 통해 나의 구매패턴과 취향을 분석한 인공지능 시스템이 내게 맞는 아이템을 추천해주는 식입니다.

큐레이션은 결국 ‘편집’을 통해 덜어내는 겁니다. 고객이 싫어하는 것을 안 보이게 제거해줌으로써 고객의 현명한 선택을 도와주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할 것 많은 복잡한 세상. 나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외면할 고객은 없습니다. 시간뿐만 아니라 비용도 절약되니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 격입니다. ‘Less is more’라는 표현은 작금의 세일즈 현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 큐레이션을 통한 구매의 과정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정기구독’이 됩니다. 구독. ‘살 구(購)’자에 ‘읽을 독(購)’자를 써서 ‘신문이나 잡지, 책 따위의 간행물을 사서 읽다’라는 의미로 쓰이던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그 구독의 대상과 범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상 속 많은 것이 구독 경제에 속속 편입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버거킹에서는 월 5달러만 내면 매일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았습니다. 일종의 ‘커피 구독’ 서비스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월정액을 내면 원하는 영상을 무제한 볼 수도 있고(넷플릭스), 전자책을 맘껏 볼 수도 있습니다(밀리의 서재). 매월 새로운 침구로 바꿔주는 서비스도 있고(클린베딩), 매월 새 양말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나왔습니다(미하이삭스). 매일매일 업체에서 보내준 새로운 셔츠를 입고 출근할 수도 있고요(데일리셔츠). 주간 단위로 반찬을 배송받아 식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더반찬). 그림은 또 어떻고요. 똑같은 그림을 매일 걸어놓으니 지겹기만 한데 일정 금액을 내면 주기적으로 그림을 바꿔줍니다(오픈갤러리). 정기적으로 예쁜 꽃을 구독할 수도 있습니다(꾸까). 최근에는 자동차도 정기 구독이 가능해졌습니다. 월 3대의 차종을 마음대로 교체해 타고 다닐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온 겁니다(현대셀렉션).

일정한 금액을 내고 이처럼 정기적으로 원하는 상품을 배송받거나 기간을 정해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독 경제’라 부릅니다. 이런 구독 시장의 성장은 눈부십니다.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2000년 2150억 달러(약 253조2900억 원)에 머물렀던 글로벌 구독 경제 시장이 2020년이면 5300억 달러(약 624조3900억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입니다.

다다익선. 지금껏 기업들은 고객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할수록 좋은 거라 생각했습니다. 없는 게 없으니 맘껏 골라보라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빼고, 줄이고, 제거하고, 추려줘야 합니다. ‘제품’이 아니라 ‘취향’을 팔고, ‘소유’가 아니라 ‘경험’을 팔아야 합니다. 단순한 판매를 넘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겁니다. 큐레이션에서 정기 구독으로 이어지는 비즈니스의 성패는 결국 ‘맞춤형 추천’에 달려 있습니다. 전문가의 안목을 통해서건, 인공지능의 분석을 통해서건 고객의 욕망과 취향을 제대로 저격해야 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편집을 통해, 어떤 선택지를 추천해줄지가 관건입니다. 내 제품과 내 서비스의 큐레이션? ‘고객 푸시(Push)’가 아닌 ‘고객을 끌어당기기(Pull)’ 위한 기업들의 새로운 고민입니다.


필자소개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에서 MBA를 마쳤다.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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