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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Interview: 하상욱 시인

그리운 건 / 그대일까 / 그때일까
읽다보면 위안 되는 ‘가심비 높은 B급’

김성모 | 278호 (2019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시인 하상욱은 자신을 ‘시(詩)팔이(시를 파는 사람)’라고 소개한다. 그의 시는 정통 시와는 거리가 있다. 분량이 짧고 소재도 일상적이다. 내용도 심오하지 않다. 대신 재치가 있고, 여운을 준다. 사람들이 ‘B급 감성’을 느끼는 이유다. 젊은이들은 하상욱의 시에 현실을 반추하고, 위로받는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여러 편인 듯, 한 편인 듯 뻗어 나간다. 내용들 하나하나가 젊은이들의 일상과 직장인들의 삶이 잘 영글어진 느낌이다. 하상욱은 “노동을 많이 투자하지 않고도 만족감이 크니까 ‘가성비’가 좋다. 읽고 여운이 남는다니 ‘가심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둘 다 가진 좋은 상품을 파는 셈”이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성식(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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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 『시 읽는 밤 : 시 밤』 마지막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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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면 괜찮겠지만
나는 지나기 전이라서요
- 『어설픈 위로받기… 시로』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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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왜 이곳에
- 단편 시집 ‘지옥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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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편해
- 단편 시집 ‘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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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듯이.
- 『어설픈 위로받기…시로』 24쪽




시인의 언어는 유독 어렵다. 삶과 죽음, 사랑, 우정 등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들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다. 거창하고, 심오한 주제는 더더욱 거리를 두게 된다. 처음에는 짧고, 지나치게 함축적이어서라고 생각했다. 내면에 담긴 의미를 찾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때도 있었다. 공부가 부족한 ‘나’의 탓으로. ‘시’가 우리에게서 멀어진 이유다. 그런데 최근 20, 3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시인이 등장했다. 바로 하상욱이다.

2013년 광고회사에 다니던 하상욱은 디지털 공간에 전자책 ‘서울 시1’을 내며 등장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던 글들을 모은 것. 생각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크자, 이후 시집 『서울 시2』 『시 읽는 밤 : 시 밤』『어설픈 위로받기…시로』와 단편 시들을 내놓았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시집 대부분을 디자인했는데, 곳곳에서 재치가 돋보인다. ‘서울 시’의 표지는 지하철 노선도를 연상케 한다. 첫 장 ‘작가 소개’에는 하상욱과 소, 개의 사진을 실었다. 작가의 말에는 ‘말’ 사진이 등장한다.

하상욱의 시는 여러 편인 듯, 한 편인 듯 뻗어 나간다. 내용들 하나하나가 젊은이들의 일상과 직장인들의 삶이 잘 영글어진 느낌이다. 사람들은 그의 시가 짧지만 진한 여운을 남긴다고 말한다. 이유가 있다. 시가 전하는 공감과 위로 때문이다. 가벼운 웃음도 준다. 내용은 “보고 // 또 // 보고 (단편 시집 ‘합격자 발표’ 중에서)”, “잘못된 / 선택 // 뒤늦은 / 후회(단편 시집 ‘내 앞 자리만 안 내림’ 중에서)” 등 심오하기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7월4일 서울 홍대에 있는 그의 소속사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사무실에서 하상욱을 만났다. 그는 자신을 ‘시인’ 대신 ‘시(詩)팔이’라고 소개했다. “제가 지었다. 제가 만들어서 판다는 게 좋고, 파는 행위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니까 ‘시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하상욱의 말이다. 아픈 곳부터 찔렀다. “일각에선 하상욱의 시를 ‘B급’이라며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B급이면 어떠냐. 어쨌든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좋은 것 아닌가. 디지털 공간에서 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첫 사례가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뿌듯하게 생각한다. 어떨 때는 ‘정통 시인’ ‘정통 디자이너’ 이런 것들이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B급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B급도 B급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능성을 지닌다고 본다.” (하상욱) 다음은 하상욱과의 일문일답.



어떻게 시를 쓰게 됐나. 원래 문학에 관심이 많았나.
퇴근길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때 등록된 친구가 100명이 안 됐을 때다. 첫 작품은 ‘사람은 안 변해 / 그래서 사랑은 변해’였다. 글이 하나둘씩 계속 쌓였는데 동료들이 재밌다고 책을 내보면 어떠냐고 하더라. 그래서 전자책 ‘서울 시1’을 무료로 냈다. 그렇게 화제가 될지 몰랐다. 나중에 무료로 한 걸 ‘살짝’ 후회하기도 했다. 문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진 않았고 만화책을 정말 좋아했는데 그게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만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 스토리가 있고, 문학성이 있다. 심리 묘사나 유머 등 배울 게 엄청 많다. 가지고 있는 것만 3000권이 넘는다. 일본 만화 ‘20세기 소년’ ‘캠퍼스러브스토리’ 등은 진짜 뛰어난 작품이다. 심리묘사에서 디테일이 섬세하게 잘돼 있다. 자라면서 만화가를 꿈꿨고 그림을 배우려고 입시 미술을 해서 결국 디자인까지 전공하게 됐다. 이후 졸업해서 남들처럼 디자인 관련 회사에 취업해 직장 생활을 했다.



왜 하필 ‘시(詩)’를 택했나. 영상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가 이 시대의 주류 아닌가.
운율이 있고, 은유가 있어서 좋았다. 디자인하다 보니 콘셉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쉽게 제작할 수 있으면서도 저런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 보니, 답이 시였다. 시에 특별히 관심이 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따로 배우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열린 문학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전공한 디자인도 똑같다. 잘하는 사람, 그 계통에서 알아주는 사람, 소위 이너서클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혁신하기가 쉽지 않다. 배운 게 있고 짜인 형식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시라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기존에는 없었던 색다른 시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봐주면 좋을 것 같다. 영상은 주목을 끌기 위한 좋은 수단이다. 대신 글은 울림을 줄 수 있다. 물론 영상을 다루는 플랫폼이 지금 시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짧고, 여럿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영상들이 보통 주목받는데, 그런 흐름에 내 글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디지털 공간에 적합한 글을 쓰려다 보니 짧게 쓰게 됐고, 그래서 효과가 더 컸던 것 같다. 내 시의 가장 큰 소구점이 ‘디지털’인 것 같다. SNS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같이 공유된다. 글을 낮에 올리는지 밤에 올리는지, 퇴근길인지 출근길인지, 계절은 여름인지 가을인지 이런 것들을 읽는 사람과 함께 느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유사하게 느끼는 감정을 말할 수 있다. 책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다.


처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를 썼던 것인가. 유독 직장인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의 작품이 많다. 직장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2009년부터 회사 생활을 했는데 첫 직장은 광고 회사였다. 인턴으로 들어갔는데 그때 알게 된 것이 ‘내가 광고를 사랑하지만 광고회사를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창작 활동을 기대했지만 서비스업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광고주와의 관계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퇴근이 너무 늦었다. 그래서 대행사가 아니라 인하우스로 들어갔다. 그때 직장생활의 철칙을 만들었다. ‘내 생활을 지키자’였다. 정시 출근과 퇴근이 가능한 회사였다. 그러고 나서 직장 생활에서 떠올랐던 내용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서울 시1’은 제목도 직접 지었고, 표지와 내부 디자인도 직접 했다.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까 ‘서울 시’로 지었다. 잘 지은 것 같다. ‘시밤’까지는 내가 디자인했다. 당연히 도움이 된다. 직장 생활 하면서 상황마다 디테일하게 느꼈던 것들. 고민이나 목표들. 이런 것들이 결국 작품이 됐고,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공감해주는 것 같다.



일을 그만두고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인기가 많아졌는데, SNS 팔로우 수는 어느 정도 되나.
사실 예전에는 글 같은 것을 써본 적이 없었다. 기사에 댓글이나 좀 달았을까.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짧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공감과 애정을 받으면서 계속해오게 된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스트레스가 늘었다. 마감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SNS에 글을 올리다 보니 그에 따른 특성이 있다. 여긴 휘발성이 굉장히 심하다. 빨리 퍼지지만 쉽게 잊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업로드의 압박, 즉 사실상의 마감 압박을 받고 있다. 하루, 이틀 간격으로 계속 글을 올렸다. 하루 두 편을 올릴 때도 있고, 아무리 늦어도 이틀에 한 편은 올렸다. 요즘은 하는 일이 많아 2∼3일에 한 편 정도 올리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91만 명 정도 된다. 카카오스토리 100만 명, 트위터는 70만 명, 페이스북은 40만 명 정도 된다.


요즘엔 어떤 SNS에 주력하나. SNS마다 특성이 많이 다른가.
확연하게 차이를 보인다. 트위터는 조금 센 이야기가 많다. 직설적이고 논조가 강하다. 그리고 화자의 인지도보다 내용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조금 더 염세적인 이야기도 많고. 페이스북은 상대적으로 즐겁고 재밌는 콘텐츠, 유희 위주다. 인스타그램은 아무래도 사진이 많기 때문에 감수성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처럼 공유가 없기 때문에 ‘좋아요’가 되게 많다. 할 수 있는 표현이 ‘좋아요’밖에 없으니까. 댓글도 많은 편이다. 트위터는 댓글이 별로 없고 리트윗을 주로 한다. 즉, 트위터는 ‘내가 너의 의견에 동의 또는 반대한다’는 개념이 강하다. 인스타그램은 좋고, 나쁨으로 따지면 ‘호(好)’를 위주로 많이 움직인다. 콘텐츠를 다르게 접근한다기보다 반응이 완전 다르다. 트위터에서 리트윗 안 됐던 글인데 인스타그램에서는 ‘좋아요’가 많기도 하고 반응이 다르다. 그 안에서 사용자 특성도 반영되는 것 같다. 트위터는 익명이라 조금 다른데 ‘불호’를 더 나타내는 것 같다. 한마디로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좋으면 더 강렬하게 좋아해주시고. 트위터는 누군가를 ‘덕질’하기 좋은 공간이다.


많은 사람이 하상욱의 작품에 ‘위로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였나.
처음에는 나도 이상했다. 현실적인 내용이 많아서 위로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슬픈 것도 있고. 그래서 ‘위로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했다. ‘왜 위로일까’ 피드백을 받아보니 알겠더라. ‘내가 느낀 이별이나 아픔을 누군가도 똑같이 느끼는구나’ 이런 공감이 있었고, 같이 아프다는 것을 공유하는 과정이 오히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고 느끼는 것 같더라. ‘마음을 움직이겠다’고 작정하고 글을 쓰진 않는다. 글을 읽으면서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똑같은 글을 읽고 나서 ‘내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러면 안 되겠다, 변해야지’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앞부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소홀해지고, 이기적일 때도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것을 굉장히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고 접근한다. 일이 힘들고, 사회생활 하다 보면 지치고. 사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잘될 거야’ ‘더 나은 미래가 있잖아’ 이렇게 쓰면 글은 예뻐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게 싫은 거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고, 힘든 건 힘들다고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소비는 확실한 행복’이라고 풀었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동안 사람들은 이런(금전) 내용은 피하거나 감춰왔다.


사람들이 공감, 위로 이외에 하상욱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
한 가지 있다. 짧고 쉽기 때문이다. 길게 읽으려면 힘들고, 해석하려면 또 힘들다. 노동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을 얼마 안 들이고, 노동을 많이 투자하지 않았는데 만족감은 크니까 효과가 좋은 것 아닌가. 흔히 말하는 ‘가성비’가 좋은 것이다. 아,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뜻하는 ‘가심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 시는 가성비와 가심비를 다 가진 좋은 상품인 셈이다.


시 쓸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재는 어디서 찾나.
기본적으로 글을 쓸 때는 문장을 어떻게 하면 담백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내용적으로는 거짓을 담지 않으려고 신중을 기한다. 잘 보이려고, 단순히 글이 예쁘게 보이려고 쓰지 않는다. 또 과하게 주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조심하려고 한다. 소재 찾는 데 방법이 있겠나. 기자님하고 똑같다. 정말 쥐어 짜낸다. 노트 같은 데 끼적인 것들 다시 보고 그런다. 평소에 TV 보거나 대화할 때 떠오르는 것을 메모해놓는 편이다. 운율이나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는 펀치라인 같은 것이 떠오르면 잘 적어놨다가 내용을 맞춰서 쓰기도 한다. 내용도, 읽을 때 흐름도 모두 중요하니까.



개인적으로 어떤 시를 가장 아끼고, 본인은 자신의 시를 어떻게 평가하나.
하나만 꼽으라면 ‘그리운건 / 그대일까 / 그때일까’를 꼽는다. 이것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싶다. ‘내가 이걸 썼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럽다. 또 ‘끝이 / 어딜까 // 너의 / 잠재력’(단편 시집 ‘다 쓴 치약’ 중에서)이란 시도 좋아한다.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디지털 시’ ‘현대 시’라고 불러주시기도 하는데 나는 ‘상업 시’ ‘대중 시’ 정도로 생각한다. 음악에서도 다수가 즐기는 대중가요가 있지 않나. 여러 사람이 읽고 저장해두고 공유하니까 ‘대중 시’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누군가 지갑을 열고 내가 만든 작품을 소비해준다는 것. 그 정도면 큰 의미를 지닌 것 아닌가.


하상욱의 시는 ‘B급 감성’과 맞닿는다고들 말한다. 고급스럽거나 정교하진 않지만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이다.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B급은 완전히 허접한 게 아니다.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완성도가 아예 없고, 노골적인 것은 C급이다. B급에는 철학이나 콘셉트가 있다. 개별 글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모아졌을 때 ‘서울 시’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콘셉트를 고려한다. 그게 결국 철학 아닌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만드는 사람은 그런 콘셉트,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튜브나 SNS에서 ‘관심=돈’이 되다 보니 ‘어그로(관심을 끄는 사람)’가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나는 SNS로 돈을 벌진 않는다. 그래서 꾸준히 사랑받고 철학도 유지되지 않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요새 생각보다 SNS에 올라오는 콘텐츠가 대부분 과격하다. 과격하지 않으면 안 봐주니까. 그게 조금 우려스럽다. 사람들의 ‘니즈’에 비해 콘텐츠 공급이 확실히 과잉되고 격해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C급은 아니다.


‘B급 문화’의 가치는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B급 감성의 최고봉은 영화배우 ‘주성치’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만화가 ‘이말년’이 떠오른다. 공통점은 ‘철학’이 있다는 것이다. 웹툰 ‘이말년 시리즈’는 표면적인 그림의 수위나 작품의 모양새가 완벽해 보이지 않아도 철학이나 사유가 담겨 있다. 내용이 길고 짧은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길어도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콘텐츠도 수두룩하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 철학이 없으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어렵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B급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문화적 소양이나 수준이 낮아진 게 절대 아니다. 착각하는 것이 있다. 책을 덜 읽고 인터넷만 한다며 요새 젊은이들의 수준이 떨어진다고들 한다. 절대 아니다. 그들이 하루에 접하는 정보가 50년 전에 비해 수십, 수백 배는 될 거다.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인터넷이란 공간에 의견을 낸다. 사유의 과정이 있는 것. 그 결과물이 바로 ‘댓글’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판 ‘B급 콘텐츠’의 시초는 댓글이 아닐까. 정말 댓글들 보면 기가 막힌다. 댓글 하나에 고려된 것들이 엄청 많다. 본문 내용의 압축에 현재 시대 상황이라든가, 과거 역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캐릭터도 담는다. 운율을 넣는 사람도 많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지만 다수의 공감을 받은 댓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이런 수많은 콘텐츠가 디지털 세상을 떠다니면서 다양한 분야의 여럿에게 영감을 주는 것 아닐까. 파생되고 변형되며 작품을 만드는. 그것이 B급 문화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C급 콘텐츠가 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한 가지는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한테 확신이, 자신감이 있으면 안 된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지다 보면 100% 저질스럽게 가게 돼 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사람들이 이 정도 저질스러움은, 가벼움은 받아주겠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 그렇게 되면 실수를 하게 돼 있다. 내가 사람들을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금세 돌아선다.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너무나도 많은 세상 아니냐. 사람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중심은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한테 있는 것. 비즈니스랑 똑같다. ‘니즈’라는 단어로 응축할 수 있겠다. 시작도, 끝도 여기에 있다. 철학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C급인 것이다.


왜 사람들은 B급 콘텐츠를 좋아할까.
완벽하게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고, 그림이라면 예쁘게 예술적으로 그리고 그런 콘텐츠만 인정받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좀 덜 예쁘고 완성도가 떨어져도 사람들이 사랑해준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전문가가 아닌 비(非)전문가도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약간의 재미와 콘셉트, 철학만 담으면 된다. 이 때문에 제작자가 늘어났고 콘텐츠도 다양해졌다. 1인 미디어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도 여기서 나왔다. B급이라서 좋아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양적으로 B급 콘텐츠가 늘어난 것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니 당연히 좋아하지 않을까. 다만 문제는 절제가 어렵다는 점이다. 과거 기존 매체만 있을 때 연예인들은 방송뿐만 아니라 사생활도 조심했다. ‘공인’이라는 개념이 강했고 밥벌이기 때문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반면 유튜브나 SNS에서는 관심이 곧 돈이 되기 때문에 더 과도하게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잠깐 욕먹어도 알려지는 게 더 효과적인 것이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인 셈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도 크리에이터들을 선택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그들은 인지도를 얻을 수 있지만 자칫 브랜드 이미지에는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플랫폼의 규제나 자정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20, 30대 젊은 층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장기 불황 때문에 이런 가벼운 것을 좋아한다는 분석도 있다.
맞다. 요새 젊은이들은 기대감이 없는 삶을 많이 살고 있다. 과거 부모님 세대는 저축도 하고 돈 열심히 모으면 집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 않았나. 그런 기대감이 많이 꺾여 있다. 부모님 힘 없이는, 먼저 쌓아놓은 것들이 없으면 그대로 따라오는 그런 시대인 것 같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굉장히 큰 부를, 아니면 적정 수준의 부를 본인의 힘으로 축적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금수저론’이 나온 것 아니겠나.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자책을 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자책을 하지 말고, 그 마음가짐으로 무언가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대신 주변에서 긍정의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 긍정의 말이 힘을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책하게 된다. ‘이미 시작점부터 다른데…’라는 말이 나와 버린다. 자책하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말하고 싶다. 이건 누구의 탓이 아니다.


밀레니얼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도 예전보다 커진 것 같다.
기성세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막상 기성세대가 자신의 자식을 바라볼 땐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자식이 막 취업했다고 생각해보자. 내 자식이 ‘을’로 고생하고, 무시당하고 밤늦게까지 야근하길 원하나.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은 다르다. 과거에는 사회의 희생이 어느 정도 요구되던 시기였다. 자기 자식도 ‘사회에선 희생해야 한다’는 관념, 공감대가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변한 것 아니냐. 기성세대가 일단 자녀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너는 나처럼 고생시키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성장시켰다. 그래서 더 못 견디는 것도 분명 있을 거다. 부장이나 임원의 자녀가 대부분 신입사원 나이쯤이다. 이중 잣대를 버려야 한다. 과거의 기준으로 밀레니얼세대를 생각해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DBR 독자들에게 시를 한 편 추천해줬으면 좋겠다.
이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직장인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시다. ‘열정이 식은 줄 알았다 / 체력이 나빠진 거였다’ 결국은 체력이 문제다.(웃음)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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