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R3. 룩시드랩스 채용욱 대표 인터뷰

개인의 생체신호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시대
뇌과학과 디지털 기술이 마케팅 혁신 이끈다

고승연 | 276호 (2019년 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무의식 마케팅’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건 ‘행동경제학’이나 ‘인지과학’ 등에 기반한 각종 실험이다. 하지만 ‘뇌과학’에 기반해 생체신호를 읽고 해석해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뉴로마케팅’ 역시 인간의 의식 이면에 숨겨진 진짜 감정과 반응을 알아내는 첨단 방법론이다. VR 기기를 만들어 가상/증강/혼합 현실 상황에서의 생체신호를 모아 분석하는 인공지능 개발 업체 룩시드랩스는 첨단 디지털 기술과 순수과학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인 뇌과학을 접목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채용욱 룩시드랩스 대표는 “행동경제학이나 기존 소비자 행태 연구에서는 밝혀내지 못하는 소비자 반응의 숨겨진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것부터, 철저히 개인의 특성과 생체신호를 반영하는 마케팅과 서비스까지 나아가는 데까지 뇌과학이 할 수 있는 게 꽤 많다”며 “기존 여러 방법과 상호보완적으로 조심스럽게 뇌과학을 활용한다면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 방법론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성식(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약 10년 전, 기아자동차 K 시리즈가 예상보다 큰 성공을 거두자 K7 등의 독특한 모델명의 탄생 배경이 화제가 됐다. 그 당시에는 다소 생소했던 시선 추적(Eye Tracking) 기법과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fMRI)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정재승 KAIST 교수는 DBR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인 100명, 외국인 100명 등 총 200명을 대상으로 시선 추적과 fMRI 활용 실험을 진행해 소비자들의 뇌 반응이 가장 활발한 알파벳 K, T, N, Y, Z 등을 찾아냈다”며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K에 행운을 의미하는 숫자 7을 조합한 K7은 세대와 국적에 관계없이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1 이때부터 fMRI, 시선 추적, 양전자 단층 촬영(PET), 뇌전도(EEG), 뇌자도(MEG) 등의 뇌과학을 활용하는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DBR mini box: ‘뉴로마케팅에 활용되는 방법들’ 참고.) 그 이전까지는 보통 ‘무의식 마케팅’ 혹은 ‘비의식 마케팅’이라고 하면 ‘너지(nudge)’나 ‘시스템 1’ 등으로 유명한 ‘행동경제학’ 2 을 떠올렸으나 이때부터 ‘뉴로마케팅’이라는 분야가 경영자들과 마케터들은 물론 일반 고객들에게도 중요한 방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치토스’로 유명한 프리토레이는 EEG 뇌파 측정을 통해 치토스를 먹고 있는 사람을 분석했다. 과자를 집을 때 손에 묻기 마련인 끈끈한 오렌지색 양념에 뇌가 강렬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아냈다. 더럽고 찝찝해서 싫어할 것이라는 예상, 실제로 그게 불편하다는 설문 조사와 표적 집단 면접조사(FGI, Focus Group Interview) 결과를 한 방에 뒤집는 실험이었다. 치토스는 이 결과를 토대로 광고에서 그 양념 가루를 강조했고, 포장지 색도 오렌지색으로 바꾸어 큰 성과를 냈다.

그 밖에도 뉴로마케팅, 뇌과학 활용 마케팅은 국내외 여러 기업에서 매우 다양하게 활용돼 왔다. 2006년에 이미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은 광고 반응 조사에 fMRI를 활용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게임기 XBOX의 ‘광고란’을 광고주에게 판매하기 위해 XBOX를 사용할 때 유저들의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을 연구했다. 폴크스바겐은 2011년 슈퍼볼 광고 제작에 뇌파 데이터를 분석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였고, 국내 온라인 유통 업체 11번가는 2010년에 뉴로마케팅을 활용한 광고 모델을 개발했으며, 신한은행은 2016년 뉴로마케팅을 접목한 상품 추천 모델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업체에서 EEG를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게 보도되기도 했다. 3 그렇다면 현재 뉴로마케팅의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와 있고, 실제 비즈니스와 마케팅에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DBR은 뇌과학을 활용해 기업을 돕는 스타트업, 룩시드랩스의 채용욱 대표를 만났다.



룩시드랩스는 사용자의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등을 통해 생체신호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해 사용자의 인지/감정 상태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스타트업 행사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샌프란시스코 2017 경쟁 부문’에서 본선 진출, CES 2018에서는 삼성, 구글에 이어 가상/증강현실 분야의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는 회사다.

룩시드랩스의 채 대표 역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해진 뉴로마케팅 사례, K7 네이밍 실험 당시 정재승 교수의 지도 학생으로 해당 프로젝트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DBR mini box: 뉴로마케팅에 활용되는 방법들

1.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마케팅에 활용되는 뇌과학 실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실제로 60∼70% 비중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 fMRI다. 혈류와 관련된 변화를 감지해 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인데 뇌 혈류와 신경세포의 활성화가 연관돼 있다는 사실, 즉 뇌 영역이 사용되면 그 영역으로 가는 혈류의 양도 증가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비용이 많이 들고 실험을 위한 큰 공간을 필요로 하며 뉴런의 처리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 6∼10초의 지연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마케팅 자극에 대해 뇌의 어느 부위에 피가 많이 흐르고 있는지, 즉 뇌 속의 어느 부위가 활발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보여주기에 뉴로마케팅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2. 양전자 단층 촬영(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의약품을 이용해 인체에 대한 생리화학적, 기능적 영상을 3차원으로 얻는 핵의학 영상법으로 fMRI와 마찬가지로 공간 해상도가 매우 높은 장점이 있으나 결과 수집을 위해서는 방사성 입자가 참가자의 몸에 스며들도록 해야 하는 매우 침습적인 기술이라는 한계가 있다.


3. 뇌전도(EEG, electroencephalogram)
EEG는 사람의 두피 여러 곳에 부착한 전극으로부터 뇌의 전기적 활동을 기록한 것으로 수면 연구, 깊은 마취 상태의 감시, 간질 진단 및 기타 뇌의 병 또는 역기능, 정상적인 뇌 기능의 연구에 종종 사용된다. 시간 해상도가 매우 높고, 장비의 이동이 가능하며,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피상적인 전기신호를 기록할 수 있을 뿐 심층적인 뇌의 구조를 측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공간 해상도 역시 낮다는 단점이 있다.


4. 뇌자도(MEG, magnetoencephalogram)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때마다 뇌에서는 여러 가지 작용을 거쳐 전기신호가 발생하고 이 전기신호는 다시 자기신호를 유도하는데 SQUID 센서를 이용한 뇌 자기신호 측정을 뇌자도라 한다. EEG보다 공간 해상도 측면에서 유리하다. 이 기술의 운용을 위해서는 방 하나 크기의 전자기장 차폐 시설이 필요하고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이나 유지비, 기기의 큰 규모 등의 불리한 점을 가진다.


5. 시선 추적(Eye Tracking)
fMRI, EEG와 같은 다른 기기들, 방법들과 함께 사용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기법. 참가자의 눈동자를 촬영해 조사 대상자가 언제,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를 분석한다. 눈 주위에 센서를 부착하거나 거울(mirror) 또는 탐지 코일(search coil)이 내장된 콘택트렌즈, 실시간 촬영된 이미지 분석 등의 방법이 이용된다. 동공의 확장 상태 등의 관찰 및 분석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정서가 주의(attention)의 초점이 됐던 부위와 관련됐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용어 정리는 추병완, “뉴로마케팅의 윤리적 문제 분석”, 『윤리연구』(97호) 논문과 네이버 지식백과/위키백과 등을 참고했음.



VR·AR·MR 상황에서 생체신호를 파악하고 사용자 인지와 감정을 분석한다고 하는데 좀 더 쉽게 룩시드랩스가 하는 일을 설명해달라.
일단 우리가 만드는 게 뭔지, 실제 하는 게 뭔지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예전 정재승 교수 연구실에서 K7 네이밍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최측근으로 지켜보고 이후 연구개발을 하고 뇌과학 분야에 몸담았는데 뭔가 ‘불편함’이랄까, ‘문제점’이랄까 이런 게 느껴지고 자꾸 맘에 걸렸다. 순수 연구 목적이든, 시장 조사 목적이든 뇌 연구를 하려면 사용자들에게 뇌파 헤드셋을 쓰도록 해야 하는데 그거 쓰는 데 30분씩 걸리고 다 세팅하고 나서 ‘자, 이거 보세요’ 하면서 실험조건 다 맞추고 하다 보니 피실험자도, 실험을 진행하는 사람도 모두 지친다. ‘이걸 좀 쉽게 할 수 없을까, 간단하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창업을 했고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사람 뇌에서 그래도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곳이 전전두엽인데 이곳의 변화를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선에서 뇌파를 측정하는 기기를 만들고 싶었다. 모바일 기반 VR 헤드셋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흔히 HMD(Head Mounted Display)라 부르는 VR 기기를 만들었는데 HMD를 쓰면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그 안에 작은 센서만 달아도 시선 추적이 가능하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제대로 입히기만 하면 EEG와 시선 추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고 나와 같은 연구자들 몇 명이 달라붙어 기술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개발한 이 기기를 씌우고 사람 뇌파의 상태나 생체신호에 따라 0부터 1까지 사이의 점수를 매겨서, 즉 가장 기분 좋았을 때를 1, 가장 나빴을 때를 0으로 처리해서 매핑하고 감정을 분석하는데 이 감정 분석 데이터를 모아서 기계학습을 시키는 거다. 이 인공지능을 우리는 감정분석 AI라고 부른다.


빅데이터 분석, 텍스트 마이닝에서 말하는 감성분석과는 다른 것인가?
전혀 다른 거다. 우리말로 하니까 비슷해 보이지만 영어로 쓰면 딱 차이를 알 수 있다. 흔히 데이터 과학 분야에서 하는 감성 분석은 영어로 ‘Sentiment Analysis’다. 사람들이 여러 사이트나 SNS 등에 감정적인, 감성적 단어가 나오는 대화를 쓰니까 그 데이터를 클러스터링도 하고 태깅을 해서 그 데이터양이 엄청 많아지면 ‘지금 이 제품/서비스에 대해 부정적인 담론이 형성되고 있어. 부정적인 정도는 얼마야’라고 파악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의 기술이자 방법론이다. 4 그런데 우리는 생체신호를 갖고 그 데이터를 모아 학습하는 거다. 영어로는 ‘Emotion Intelligence’라 한다. 예전에 이 분야를 연구하시던 분들은 이걸 ‘Affective Computing’이라 부르기도 했다. 생체신호라는 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신호다. 사람이 뭔가 감정을 느끼면 생체신호에서 바로 반응이 온다. 그 생체신호를 만드는 게 뇌에서 하는 일이고, 결국 그게 심장에서 하는 일이고, 이게 우리가 자율신경계라 부르는 시스템이다. 여기에서 뉴로시스템들이 균형을 잡아주는 일을 한다. 예를 들어보자. 이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연구들에 따르면 인간이 공포라는 감정을 학습하게 된 계기는 진짜 ‘생존’을 위해서다. 옆에 맹수가 나타나서 위협하면 공포를 느껴야 도망을 갈 것 아닌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사람의 감정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 생체신호라는 게 몇몇 감정을 강하게 인식하는 것 말고 미묘한 변화 자체를 ‘의식’할 수는 없는 특징이 있다. 나도 내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는지 미묘한 변화는 감지할 수 없고, 특히 내 뇌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방법이 더더욱 없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라는 게 나타나서 내 생체신호를 쭉 읽어가더니 그걸 분석해서 내가 지금 어떻게 느끼는지를 수치로 알려주는 것, 이게 뇌과학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룩시드랩스가 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거다. 10여 년 전부터 뇌과학 활용 마케팅, 뉴로마케팅이 각광을 받고 주목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는, 내 무의식적인 생체신호를 기계가 읽어주고 패턴을 분석해 내가 진짜 어떤 감정인지를 알려준다는 개념이어서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로 대접받았던 거다.


열광적이었던 반응에 비해서 대단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사실 뇌과학 관련 기술은 그 자체로 난도가 매우 높다. 사람마다 생체신호도 다 다르고, 감정의 기저선도 다 다르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마다 다른 이 생체신호와 감정의 베이스라인을 학습할 수 있는 거야?’라는 게 풀어야 할 문제이고, 우리 룩시드랩스가 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회사 이름이 ‘랩스’인 것은 우리는 스타트업이고 HMD 기기를 만들지만 결국은 뇌과학을 연구하고 뇌파와 시선 등 생체신호를 분석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더 많이 풀어내고 발전시켜야 비즈니스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뇌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뭔가 바로 마케팅 적용 지점을 찾아내고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고 조언하기는 어렵다. 물론 대단한 연구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뇌를 이해하기 위해 한 걸음씩을 계속 내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일단 뇌가 다른 기관과 결정적으로 다른 게 우리가 메커니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장 같은 경우 의사들은 좌심방, 우심실 이런 파트가 다 어떻게 연결돼 있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심전도 신호가 어떻게 나타나면 그걸 통해 심장 움직임을 굳이 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다. 그런데 뇌는 다르다. 뇌에서 나오는 신호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게 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다는 건지 알기 어렵다. 1000억 개의 뉴런이 10억 개의 연결망을 갖고 있다는 건 밝혀졌는데 1000억 개 뉴런의 움직임 하나가 잡히면, 그 신호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대체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사람마다 다르고, 한 사람이라도 커가면서 다르다. 뇌라는 게 태어날 때 만들어진 그대로 평생 가는 게 아니고 계속 변한다. 그건 밝혀졌다. 사람들이 특정한 업무를 계속하면 관련 영역의 연결이 더 많아지고 뇌가 움직이는 방식, 신호가 오가는 방식 등이 바뀐다. 예전에 뇌과학 연구할 때에는 뇌수술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람 머리를 열어놓고 뇌에 자극을 주면서 각 부분이 어디를 담당하는지 알아내야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미지의 영역이 많음에도 마케팅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건가?
그렇다. 그런데 일단 조심해야 할 부분부터 얘기하자. 앞서 강조했듯 우리는 뇌를 다 아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뇌는 이렇게 움직인다’ ‘소비자의 뇌는 이렇게 반응한다’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감정 분석을 하는 인공지능을 계속 개발하고 있지만 우리 역시 ‘사람들의 감정을 다 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일부만 몇 개의 신호를 통해서 알아내고 그걸 축적해서 인공지능을 만드는 거다. 보상과 관련된 선호도, 스트레스 정보, 사람들이 언제 집중하는지 정도를 파악하는 거다. 사람이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 희열감과 행복감, 이런 거는 특히 알 수 없다. 다만 언제 자극을 받고 흥분을 하는지, 어느 부분에 집중을 하는지만 유심히 파악해도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성공할 수 있을지, 어떤 정치인이 당선될지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때 fMRI를 통해 사람들 반응을 측정하는 알고리즘에 문제가 있었다던가, 아니면 죽은 연어에서도 뭔가 fMRI와 비슷한 반응이 잡히는 거 보니 엉터리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있었는데 사실 연구자들이 그렇게 허술한 건 아니다. fMRI든, EEG든, 시선 추적이든 굉장히 엄밀한 연구 방법, 신호 분석과 통계 분석, 기계학습 등의 방법을 쓴다. 다만 최근 몇 년 전, 혹은 10여 년 전 엄청난 주목을 받던 시절에 비해서 다소 침체된 느낌을 가질 수는 있는데 그건 미디어 변화와 관련이 깊다. 즉, TV나 신문/잡지 등의 기성 매체를 통해 광고를 만들고 백화점과 마트 등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통해 제품을 팔던 시절에는 기본적으로 프로모션, 마케팅과 홍보에 엄청난 돈이 들었고, 광고 문구나 장면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뉴로마케팅’이라는 게 기업들에 굉장히 신선하고 ‘만병통치약’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지금은 상당수의 비즈니스가 디지털/온라인에서 벌어지고 광고와 마케팅 역시 디지털과 모바일이 중심이다. 여기에서는 상시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더 인기가 있고, 소비자 반응이 좋은 걸 선택하는 이른바 A/B 테스트가 일어나고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 그냥 디지털 세상 자체가 실험실에 가깝기 때문에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빅데이터 분석에 관심이 많이 쏠리고 있는 거다.



그럼 뉴로마케팅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 것인가? 여전히 기업에서 필요로 하긴 하나?
물론 필요로 한다. 나도 맨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내가 일반 기업의 비즈니스를 돕는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고 어떻게든 VR 환경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고 그걸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만들어 다시 사람을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어떤 걸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걸 한다는 게 알려지니까 기업, 그것도 큰 회사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주로 시장 조사 단계에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많이 온다. 예를 들면, 최근에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서 도움 요청이 왔는데, 역시나 마켓 리서치 단계였다.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디자인이 굉장히 중요하고 돈도 많이 든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3D로 컨셉 디자인을 하고 나면, 그다음에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모크업, 즉 실제 크기로 물리적 실체를 만들어보는 거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는 이걸 잠재 고객들에게 보여주면서 평가를 받아본다. 그러면 글로벌 회사인 만큼 유럽, 아시아, 북미 등 각 지역으로 이 모크업을 실제로 실어다 날라서 보여주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시간도 엄청 걸리고, 운송비, 그리고 현지에서 공간을 빌리고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비용이 많이 든다.

그 회사는 우리가 VR 기반의 생체신호를 분석하고 인공지능을 만든다는 걸 알고 ‘자동차 VR CAR CLINIC’이라는 개념을 들고 왔다. VR 센터를 만들어 놓고 중국이든, 유럽이든 디자인 파일만 보내면 VR 기기를 쓰고 그 차를 실제로 보는 듯이 둘러보면서 반응을 파악하는 거다. 예전에는 실제 차를 갖다 놓고 사람들이 문항에 답을 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동차 회사 마케팅 담당자들, 분석가들이 그 사람들 표정까지 하나하나 기록하고 점검하면서 실제 어떤 반응인지, 해당 디자인이 정말로 시장에서 먹힐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런데 우리 회사 VR 기기와 분석 시스템을 가져가서 잠재 고객들에게 기기를 씌우고 그들이 몇 가지 디자인을 볼 때의 생체신호, 뇌파와 시선을 추적하고 분석했다. 어차피 조금씩 다른 디자인을 보여줘도 돈이 더 들지 않는다. 그냥 디지털 파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A/B 테스트도 하고, 나이대별로, 성별로, 인종별로 각각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쉽게 분석할 수 있었다. 10분짜리 게임을 하게 하고 그 안에서 차량을 선택하게 하면서 테스트를 진행하면 그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차를 알아낼 수 있다. 여기에 기계학습, 즉 인공지능 학습 방법이 들어가는 거다. 그 결과를 뽑아내 다시 자동차 회사에 주면 우리의 일이 끝나는 거다. 우리는 생체신호 데이터를 모아 인공지능 모델로 분석하고, 예측한 데이터를 파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이런 VR을 통한 생체신호 분석 방식은 지금 설명한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매대 진열을 다 바꾸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대형마트 등의 유통업체에서도 활용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이 쓰고 있다. 그리고 VR은 확실히 그 안에서 광고를 해도 효과가 좋고 반응을 즉각 알 수 있는데, VR 기기에서 보는 광고는 그냥 큰 TV로 보는 것과 달리 몰입감이 좋고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릴 수 없기 때문에 효과도 좋고 제대로 측정할 수도 있다. 뇌과학과 VR 기술이 만나면 해볼 수 있는 게 많아진다.


윤리와 관련한 문제는 없을까? 민감한 생체신호 정보를 다루는 것 아닌가.
보통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고민하고 문제 제기할 만한 내용이다. ‘내 생체 정보를 가져가서 내 마음을 읽는다’는 건 굉장히 찜찜한 일일 수 있다. 물론 마케터 입장에서는 그것 때문에 뇌과학이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고객이 찜찜하다면 그건 해결해야 할 문제 아닌가. 물론 현재 법으로 이 부분에 난감한 규제 같은 게 있지는 않지만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내가 어떤 나이대의, 어떤 인종의 남자 혹은 여자가, 어떤 VR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했다고 신체 정보를 기록했는데 그것만 갖고 그게 누구인지 알 방법이 있을까? 굳이 사람 이름과 정보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기록하지도 않기에 사실 알 방법이 없다. 거의 모든 실험에서는 흔한 전화번호 하나 남기지도 않는다. 다만 이렇게 뇌과학 활용 마케팅이 발달할수록 너무 사람들 마음을 잘 읽어내게 될 테니까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질 순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다 알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건 무서울 수도 있을 것이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기술 발달과 함께 차차 풀어야 할 과제다.


‘뉴로마케팅’에서 ‘행동경제학’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한 마케팅 도구가 될 것 같다.
일단 시장에서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는 건 ‘이거 성공할 것 같냐’인데 우리는 어쨌든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확률에 기반해 얘기할 수밖에 없다. 이건 훨씬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케팅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그 지점에 ‘무의식 마케팅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행동경제학이나 인지과학과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행동경제학, 인지과학에 기반한 소비자 행태 연구는 대부분 실험과 설문 등으로 구성이 되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유명한 ‘치토스 양념 가루’ 5 에 대한 소비자의 진짜 반응을 찾아내기는 어려웠을 거다. 또 기존 소비자 행태 실험 연구에서는 주로 ‘집단’의 특성을 밝혀냈고 실제로 좀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어, ‘차가운 커피를 들게 한 집단’과 ‘따뜻한 커피를 들게 한 집단’을 나눠서 각 집단이 커피잔을 들고 난 뒤에 어떤 브랜드를 접했을 때 갖게 되는 호감의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실험군, 대조군을 나눠서 어떤 자극을 가했을 때 어떤 집단이 어떻게 행동하나를 보는 건 그 나름대로 중요한 연구고 마케팅에 꼭 필요한 지식이다. ‘따뜻한 커피를 들었던 사람의 70%는 브랜드 선호도가 올라갔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그런 접근방법이다. 뇌과학, 뉴로마케팅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를 찾아내는 거다. 뇌의 특정 부분이 어떻게 반응했고, 어떤 신호를 보냈기 때문에 사람들이 따뜻한 커피를 들었을 때 브랜드 선호도가 더 올라갔다는 식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생체신호를 분석하는 뇌과학 특성상 개인마다 모두 다른, 즉 나이와 성별, 인종과 문화권 등에 따른 차이, 더 나아가 그냥 개인 차이까지를 알아볼 수 있다. 어느 게 더 우월하고 이런 게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FGI도 기업들이 설문 조사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이 많이 활용하지만 돈을 받고 참여한 패널들이 ‘뭔가 내가 돈값을 해야 된다’는 강박이 생겨서 비판할 거리를 만들어서 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광고회사 분들과 미팅할 때 들은 얘기다. 그런데 그냥 솔직한 생체신호를 알 수 있는 우리 회사 기기를 활용하고 뇌과학을 활용하면 FGI에서 중요한 의견은 충분히 얻어내면서도 동시에 솔직하지 못한 의견이나 ‘억지로 하는 비판이나 지적’은 걸러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뇌과학과 VR 기술이 만나면 사실 비즈니스에서는 마케팅 말고도 해볼 만한 게 더 있을 거 같다.
맞다. 실제로 우리가 요새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에 ‘직원들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고 회복을 돕는 기기’ 개발이 있다. 계란 모양의 의자에 편하게 앉아 우리가 만든 장비를 쓰면 VR로 마치 미래의 병원과 같은 공간을 보여주고 부착한 센서로 심장, 뇌파, 시선 등을 우선적으로 검사한 뒤에 자연스럽게 버튼을 누르면서 몇 가지 설문 조사에 답하고 나면 그전에 파악한 생체신호를 분석해서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힐링 공간’을 다시 VR로 제공하는 거다. 그 안에서 심호흡도 따라 하고 몇 가지 조치를 계속 따르다 보면 스트레스 수치가 낮아지고 마음이 좀 회복되는 거다. ‘마음을 위한 안마의자’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콜센터 직원이나 상담사같이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을 가진 분들에게 유용한 서비스일 거 같은데 일반 회사에서도 나중에 직원들 스트레스 관리 겸 능률 향상을 위해 도입해볼 만하다.

‘감정을 분석하고 다룬다’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감정은 사실 많은 노력을 해도 추상적으로 어떻다는 정도를 파악할 수 있지 구체적이고 미묘한 걸 다 파악할 수 없다. 본인도 잘 모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개인 맞춤형 마케팅이든,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서비스든 제공할 수 있다면 참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한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꾸준하게, 열심히 할 생각이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