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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무의식과 소비

안다는 느낌의 ‘지식 착각’은 화를 불러
의식에 속지 말고 무의식 적극 활용하라

고영건 | 276호 (2019년 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소비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의식과 무의식은 어느 경계선을 기준으로 쉽게 나눠지는 건 아니다. 기업이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서든, 소비자 입장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든 우리는 다음 네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스스로 ‘안다는 느낌’을 경계해야 한다. ‘지식 착각’은 ‘화(禍)’를 부르는 지름길이다.
둘째, 의식만을 편애하기보다는 무의식의 역할에 대해서도 늘 열린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개인의 선호보다는 집단의 선호가 더 ‘우위(優位)’에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넷째, 소비는 즐거움만을 선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고통도 동반하는 활동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본질적으로 무의식적인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기 행동의 의미를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는 형태로 소비가 이뤄지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소비의 욕망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주로 ‘필요’에 따라 소비가 이뤄졌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마법의 본질은 ‘필요 이상의 소비’를 미덕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데 있다. ‘시기심이 민주주의의 근간’ 1 이듯이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과 감정의 원천은 바로 무의식에 있다.

무의식적 소비의 주요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은밀함이다. 따라서 무의식적 소비의 특성상, 일반인이 자신의 활동에서 그러한 면을 인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애플의 아이폰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폰을 날마다 만지작거리는 성인 중 아이폰의 스크린이 그 옛날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의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장식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 또 아이폰의 메시지 아이콘이 자신이 어린 시절 읽던 만화책의 말풍선 모양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unconsciousness)’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최초로 주창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의식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의식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의식되지 않는 일종의 ‘자동화된 사고’를 말한다. 이 둘의 차이는 ‘동기’에 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사람들이 특별히 의식하고 싶어 하지 않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을 말한다. 대조적으로 자동적 사고로서의 무의식은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작동한다기보다는 ‘적응적인 형태의 정신적 분업’에 해당된다. 많은 사람은 이들을 서로 혼동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 둘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는 무의식적 소비에는 이 두 가지 정신 과정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심리학의 관점에서 무의식적 소비의 특징을 소개한 후 우리가 소비의 무의식적 특성을 간과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식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은 ‘합리적 소비’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합리적 소비는 존재한다. 다만 개념상 합리적 소비는 무의식적 소비에 대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필요한 만큼 소비했다(합리적으로 소비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의 소비가 없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사람의 소비 활동에 무의식적인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비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는 하나의 입증 사례면 충분하다. 하지만 사실상 ‘없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경험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백만 번의 관찰 경험을 바탕으로 ‘흑조’가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백만 한 번째로 시도했을 때 흑조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거의 대부분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안다는 느낌’은 우리의 삶을 함정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실제로는 잘 모르면서도 자신이 잘 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을 ‘지식 착각’이라고 부른다. 2007년의 세계 금융 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에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명언이 등장한다.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3

사람들은 스스로 잘 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무의식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한다.

사람들이 무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과소평가하게 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안다는 느낌’이다. 만약 삶에서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는 ‘안다는 느낌’, 즉 의식에 대한 근거 없는 편애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기를 원한다면 다음의 질문에 답해 보라! 4

먼저, 운전 중에 자동차의 위치를 한 차선 옆으로 변경하는 과제에 대해서 떠올려보라. 당신이 만약 운전자라면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핸들을 어떻게 조작하겠는가? 눈을 감고 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차선을 변경하기 위해 핸들을 조작해 보라. 만약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속단하지 말고 실제로 직접 답을 해보기 바란다. 그 후 아래의 설명을 끝까지 읽어보기 바란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과제를 위해 먼저 핸들을 잠시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5 하지만 만약 운전자가 핸들을 그렇게 조작하면 자동차는 주행 중인 도로를 결국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 얘기가 믿기지 않으면 직접 실험해보라! 차선을 변경하는 정확한 조작법은 먼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은 후 다시 중앙 쪽으로 돌렸다가 이번에는 왼쪽으로 그만큼 꺽은 후 다시 한 번 더 핸들이 중앙에 오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동차 방향 전환 문제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전형적인 지식 착각에 해당되는 답변을 한다. 바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의식은 우리의 실제 모습을 좀처럼 따라가지 못한다.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많이 받는지 예를 들어 보겠다. 야구 경기에서는 가끔 투수가 고의로 타자 머리를 향해 던지는 빈볼(bean ball)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경기에서 빈볼이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림 1]에 그 답이 있다.



[그림 1]이 보여주는 것처럼 야구 경기에서 빈볼이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기온이다. 무더위가 투수로 하여금 빈볼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경기장에서 빈볼 때문에 난투극을 벌이는 선수들은 자신이 왜 싸우는지 잘 모를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난투극이 벌어진 다음에 기자가 질문을 하면 적당히 둘러대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주먹을 날렸다고 변명을 하겠지만 실제로 그들이 싸운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단지 무더운 날이었다는 점이다.


무의식을 애써 배척할 이유는 없다!

자동화된 사고로서의 무의식이든 아니면 동기적인 요소가 가미된 무의식이든지 간에 무의식을 멀리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선택이다. 무의식의 막대한 영향력을 도외시한 채 굳이 의식의 관점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무의식의 내용 중 스스로 의식하고 싶어 하지 않을 만한 것이 있는 경우, 우리는 그럴수록 내면의 무의식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삶에서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문제는 주로 무의식이 주연을 맡는 대표적인 무대, 즉 성(性)과 공격성의 영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림 1] 사례처럼 (자신이 생각한 이유와 달리) 무더위 때문에 난투극을 벌이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왜 싸우게 됐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야 다음번 무더위 때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굳이 애를 써서 무의식을 배척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우리가 잘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의식적 의사결정과 무의식적 의사결정 간 장단점을 비교하기 위한 과제를 수행했다. 6 연구진은 참여자들에게 자동차와 아파트 임대를 위한 조건들 중 가장 좋은 조건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에게는 선택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이 제공됐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경우 연비, 가격, 신뢰도, 호화로움 등의 정보가 주어졌다. 이러한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종합함으로써 참여자들은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참여자들이 자동차와 아파트에 대한 정보를 다 읽으면 한 실험조건에서는 참여자들이 바람직한 선택을 위해 고민을 하도록 지시하고 나머지 조건에서는 참여자들이 자동차와 아파트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절차를 포함시켰다. 이때 방해 과제로는 643에서 출발해 7씩 계속해서 빼나가는 산수 과제가 주어졌다. 흥미롭게도 의식적 사고 조건보다는 무의식적 사고 조건의 참여자들이 최상의 조건을 선택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 검증됐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촬영된 뇌 영상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방해 과제 때문에 자동화된 사고(의식적으로 자동차나 아파트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의식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때 활성화됐던 뇌 부위와 동일한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동화된 사고를 진행하면서 같은 부위가 더 많이 활성화될수록 의사결정의 질도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에 따르면 자동차를 고르거나 아파트를 구입할 때처럼 고려해야 할 정보가 많은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자동화된 사고에 기초한 선택이 더 효과적이었다.

개인이 인정을 하건, 안 하건 간에 경제 활동에서 무의식의 역할은 중요하다. 다음의 사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무의식을 굳이 배제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그와 동시에 무의식을 지혜롭게 고려할 때의 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보여준다.

앨터(Alter)와 오펜하이머(Oppenheimer)는 기업 이름이 실제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했다. 7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 주식을 거래하는 사람이 회사의 이름을 보고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그러한 상식과 달랐다.

연구자들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회사 10개의 주식과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가진 회사 10개의 주식을 조사했다. 1000만 원을 투자했을 경우 상장 첫날,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가진 회사의 주식 가격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회사의 주식가격보다 112만 원 더 높았다. 1년 후 그 차이는 333만 원으로 벌어졌다. (그림 2)

물론 장기적으로 이러한 차이는 점차 사라져 가게 된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기업에 대한 정보가 축적될 경우,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이름이 주는 익숙함과 안정감 이외의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주식이 상장된 후 1년 정도 지날 때까지 기업에 대해서 투자자가 그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정보를 장기적으로 수집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혜롭게 활용할 수만 있다면 무의식은 충분히 좋은 것이다! 따라서 굳이 의식만을 부당하게 편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의식과 선호 판단

소비 활동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선택은 무의식적인 선호 판단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 심리학 실험에서 연구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여러 명의 여성 사진을 보여준 후 가장 매력적인 여성이 누구인지를 질문했다. 8 자극으로 사용된 사진은 전형적인 프로필 사진이었다. 그중 절반은 동공이 미세하게 확대된 사진이었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사진이었다.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동공이 확대된 여성들에게 더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실험 후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동공의 크기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사진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고 보고하는 남성은 없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왠지 자신이 선택한 사진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연구 참여자들은 어떻게 해서 매력적인 여성 사진을 고를 수 있었을까? 바로 뇌가 선택을 한 것이다. 연구 참여자들의 뇌가 동공이 확대된 이성이 성적으로 흥분된 것으로 지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뇌가 아는 것과 우리가 의식적으로 아는 것 사이에는 갭(gap)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뇌는 정말 많은 일을 하지만 정작 우리의 의식은 뇌의 활동을 모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당신이 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떠올려보라. 너무나도 매력적이라서 황홀경에 빠지도록 만드는 사람 말이다. 만약 당신이 분명하게 누군가를 떠올렸다면 당신의 선택 과정은 분명 진화 프로그램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어떤 대상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의 그러한 의식적 판단이 진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우리는 ‘진화의 프로그램’ 내에서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한다. 예를 들면,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허리-엉덩이 비율(WHR, waist to hip ratio)이 낮은 여성들을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WHR은 허리둘레를 엉덩이둘레로 나눈 값이다. 주로 잡지에 실리는 매력적인 여성들의 WHR은 보통 0.7 수준을 유지한다. 9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과정에도 자동화된 사고로서의 무의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10 먼저 당신이 메릴 스트리프(Meryl Streep)라고 가정을 해보라. 만약 당신이 메릴 스트리프라면 과연 [그림 3]의 사진들 중에서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 사진을 더 좋아하겠는가? 정답은 바로 우측 사진이다. 메릴 스트리프라면 굳이 둘 중 더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우측 사진을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측 사진이 거울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순노출효과(The Mere Exposure Effect)’로 인해 자신이 더 많이 바라본 모습인 거울상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한다. 물론 의식적으로는 정작 메릴 스트리프는 왜 자신이 우측 사진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지 잘 모를 수 있다. 어쩌면 혹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거울상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에서 자동화된 사고로서의 무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소개해 보겠다.

한 심리학 연구에서 135커플에 해당되는 270명을 대상으로 결혼 전 파트너에 대한 의식적인 평가 그리고 파트너에 대한 무의식적인 평가를 진행했다. 11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 연구에서 파트너에 대한 무의식적 평가는 긍정단어와 파트너를 짝짓는 데 걸리는 반응시간, 그리고 부정단어와 파트너를 짝짓는 데 걸리는 반응시간을 활용해 계산됐다. 파트너에 대한 ‘무의식적 평가’는 연구 참여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트너를 긍정단어와 빨리 연합시키고 부정단어와는 느리게 연결 짓는 경우, 높은 점수를 받도록 구성됐다. 그리고 파트너에 대한 ‘의식적 평가’는 자기보고식 검사로 측정됐다.

이 커플들이 결혼 생활을 한 지 4년 후 만족도를 측정해봤다. 파트너에 대한 ‘의식적 평가’는 커플들이 실제 결혼했을 때의 결혼만족도를 사실상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결혼 전 파트너에 대해 의식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갖고 있는 경우(의식적 긍정평가를 한 경우) 결혼 후에는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감소했다. 반면에 결혼 전 파트너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갖고 있는 경우(무의식적으로 긍정평가를 한 경우) 결혼 후에도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들 마음속의 반려자들: 의식과 무의식

의식과 무의식의 문제를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인간의 사고 과정을 단순히 의식과 무의식 두 가지로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의식과 무의식 두 가지로 양분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 복잡한 시스템에 해당된다.

우리의 사고 과정에서 의식과 무의식은 상대적인 것에 해당된다. 사실상 순수한 의식(순도 100%의 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무의식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 수준은 적어도 지구상에서만큼은 최고에 해당된다.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바로 대뇌화 지수(encephalization quotient, EQ)다. 대뇌화 지수는 사고 과정에 할애할 수 있는 뇌의 비율을 뜻하는 것으로서 뇌의 상대적 용적을 재는 척도다. [그림 4]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인간은 지구상에서 EQ가 가장 높은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의식은 회사의 CEO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CEO는 회사에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각 부서에 업무를 할당한다. 그러나 CEO라고 해서 각 부서가 실제로 진행하는 업무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까지 모두 다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모름지기 CEO는 어느 부서가 무엇을 맡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필요에 따라 업무 요청을 하고 보고를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특정 시기에 누가 통제권을 가질지만 정해주면 회사의 시스템은 CEO가 회사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지 않더라도 특별한 문제없이 잘 운영될 수 있다. 여기서의 핵심 사안은 어디가 더 중요하냐가 아니라 언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적절하게 배분하는 문제다.

인공지능(AI)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 마빈 민스키(Marvin L. Minsky)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연 우리를 지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는 마술은 무엇일까? 그 비법은 바로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적인 힘은 어떤 단일한 원칙이 아니라 바로 광활한 다양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12

무의식과 의식은 상호 장단점이 존재한다. 의식의 장점은 합리적인 판단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의 약점은 야구장에서의 빈볼 사건에서처럼 자신이 잘 모르는 일들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꾸며내는 것이다.

반면에 무의식의 장점은 자동적인 사고를 통해 사고 과정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의 약점은 당사자는 그 세계를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지혜로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 선호와 집단 선호가 선택에 미치는 영향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선택이 이뤄지는 과정을 심리학적으로 정교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개인 선호와 집단 선호 간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뇌 영상 장비인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을 활용한 한 심리학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두 개의 얼굴이 한 쌍으로 제시되는 과제를 수행했다. 13 이때 참여자들은 두 개의 얼굴 중 자신이 더 좋아하는 얼굴을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연구진은 참여자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fMRI를 활용해서 그들의 뇌 영상을 촬영했다.

뇌 영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얼굴을 볼 때, 뇌 부위 중 측핵(NAC, nucleus accumbens), 복내측 전전두피질(VMPC, 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뇌섬엽(insula) 세 군데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이 중에서 뇌섬엽은 다양한 인지적 의사결정 과제에서 활성화되기 때문에 실험 과제에 특화된 반응 양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주로 측핵과 복내측 전전두피질의 반응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면 결과는 다음과 같다.



측핵과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선호 판단에 관여를 하기는 하지만 이 두 구조물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그림 5·6) 첫째, 측핵은 얼굴 사진이 제시되자마자 사실상 반사적인 수준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얼굴에 반응했다. 하지만 두 가지 자극 중 자신이 선호하는 반응을 선택하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누를 때는 그러한 반응 양상이 사라졌다.



대조적으로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측핵과는 반대되는 활동 양상을 보였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처음에 사진이 제시되는 순간에는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뒤에 연구참여자가 두 가지 자극 중 자신이 선호하는 반응을 선택하는 순간에 활성화됐다. 따라서 측핵은 처음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이 순간적으로 선호하는 대상에 대해 반응을 하지만 최종 선택을 하는 과정에는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관여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더 중요한 것으로는 측핵과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선호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측핵은 자신의 개인적인 선호 가치보다는 전체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선호 가치에 높은 활성화를 보이는 반면에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개인이 선호하는 가치에 높은 활성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측핵은 개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수의 사람이 공유하는 집단 선호 혹은 사회적인 선호와 관계된 외부 자극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측핵은 흔히 쾌감중추라고 불리는 뇌의 중추적인 보상회로의 일부다. 측핵은 쾌감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뉴런들의 신호를 가장 많이 받는 부위에 해당된다.

또 다른 심리학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다양한 얼굴의 매력도를 평가했다. 14 참여자가 제시된 얼굴 사진에 매력도를 평가하면 동일한 얼굴에 대해 다른 참여자들이 평가한 매력도의 평균값이 제시됐다. fMRI를 통해 개인의 선호 판단이 다른 사람들의 선호 판단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의 뇌 영상을 분석해보면 뇌의 중추적인 보상회로의 일부인 측핵의 반응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조적으로 개인의 선호 판단이 다른 사람들의 선호 판단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는 측핵의 반응이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는 나의 선호 판단과 다른 사람의 선호 판단이 일치하는 경우 그 자체로 보상을 받을 때와 유사한 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선호보다는 집단의 선호가 심리적인 보상에 더 큰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프랑스 심리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Serge Moscovici)는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아시(Solomon Asch)가 진행한 ‘동조실험’을 변형한 실험을 진행했다. 15 아시의 실험에서는 개인이 집단의 명백히 잘못된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실험에서는 개인이 집단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의해 단순히 거짓으로 그렇게 응답을 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자신의 잘못된 응답 내용이 스스로 정답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스코비치는 사람들이 특정 색을 오랫동안 응시한 후 백지를 보게 되면 앞서 봤던 색상의 보색이 흰 종이에 잔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현상을 이용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초록색을 오랫동안 바라본 후 흰 종이를 보면 초록색의 보색인 빨간색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만약 파란색을 바라본 다음 흰 종이를 보면 파란색의 보색인 주황색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실험 결과, 실제로는 99%의 사람들이 초록색이라고 보고하는 색을 참여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참여자인 척하는 실험 진행자 여러 명이 문제의 초록색을 파란색이라고 보고했을 때, 참여자들은 그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험진행자(실제 초록색을 파란색이라고 말하며 동조효과를 만들어냈던 사람들)와 마찬가지로 초록색을 파란색이라고 응답했던 참여자들은 나중에 흰 종이를 봤을 때도 파란색의 보색인 주황색 잔상을 보고했다. 실제로 그들이 봤던 색은 초록색이었기에 흰 종이를 보면 빨간색이 나타나야 했으나 아까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실제로는 초록색이었던 것을 파란색으로 인식해 버렸기 때문에 파란색의 보색인 주황색 잔상이 나타난다고 인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연구 참여자들의 뇌는 실제로는 초록색을 봤을 때조차도 (동조효과로 인해) 그것을 파란색으로 지각한 셈이다. 이처럼 집단의 선택이 우리들의 뇌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는 힘은 정말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 선호 정보만을 활용할 때 빠질 수 있는 함정

이상의 연구 결과들은 선호 판단에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회적인 선호 판단이 개인적인 선호 판단보다 상대적으로 더 우위에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소비자의 행동을 조사할 때 개인적인 선호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실제 행동의 방향을 예측하는 데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전 세계의 경영대학원에서, 그리고 필자가 이 글을 투고하는 DBR에서도 가장 유명한 마케팅 실패 사례로 자주 다루는 것 중 하나는 코카콜라(Coca-Cola)사의 뉴코크(New Coke)일 것이다. 16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것과는 약간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만 해도 무려 60%가 넘던 코카콜라의 시장점유율은 1980년대에 25%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펩시 챌린지(Pepsi Challege) 광고까지 등장하자 코카콜라사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콜라 시음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 무려 3분의 2가 코카콜라보다 펩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을 경쟁사가 반복해서 유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카콜라사는 시음회에서 기존 코크보다 맛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펩시보다도 맛이 더 좋다는 평가를 받은 신제품 뉴코크를 출시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뉴코크 출시 후 코카콜라사의 고객센터에는 항의 전화만도 40만여 통이 걸려왔다. 특히 신문과 TV 방송 등에서 신제품 광고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 결국 코카콜라는 기존 제품을 다시 시장에 내놓았고 뉴코크는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에 많은 연구에서 이 유명한 사례와 관련해서 블라인드 테스트 절차의 생태학적 타당성 문제를 제기했다. 블라인드 테스트가 진행되는 상황과 실제 소비자의 구매 상황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소비자도 판매대에서 상표가 가려진 채로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뉴코크 사례를 단순히 생태학적인 타당성 문제로만 조망하는 것은 본질적인 측면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뉴코크의 실패 사례는 개인 선호에 대한 집단 선호의 우위현상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코카콜라 상표가 집단선호에 대한 증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소개한 얼굴 매력도 평가 실험에서 개인 선호가 집단 선호와 불일치할 때 뇌의 중추적인 보상회로의 일부인 측핵의 활동은 저하되고 오직 일치할 때만 측핵의 활동이 증가한다는 점을 상기해 보라! 소비자는 선택 과정에서 개인 선호가 아니라 뇌가 예측하는 집단 선호 신호에 더 강하게 이끌리는 법이다.

fMRI를 활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블라인드 테스트로 펩시를 시음했을 때와 달리 자신이 무엇을 마시는지 아는 상태에서 펩시를 시음했을 때 사람들의 뇌 반응은 달랐다. 17 알고서 마실 때에 비해 모르는 상태에서 펩시를 시음했을 때 뇌의 복측 피각(ventral putamen)이 5배나 더 강하게 활성화됐다. 개인적인 선호 측면에서 볼 때 확실히 펩시의 맛은 코크보다 시음자의 뇌에 더 강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시음자들은 자신이 펩시를 마시는지, 코크를 마시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늘 그러했듯이 코크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음자가 집단의 선호를 반영하는 코크를 마실 때는 뇌의 내측 전전두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이 활성화됐다. 이 부위는 보상 및 손실과 관련된 의사결정, 기본적인 정서적 반응, 그리고 행동 계획 등과 관계가 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마시는지 모를 때만 펩시를 더 선호했으며 사람들이 코크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히 맛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상 뇌가 대중의 집단 선호를 반영하는 제품인 코크를 더 좋아했던 것이지만 우리의 의식은 이것을 잘 알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불의 고통과 그 슬픈 영향력

흥미롭게도 우리는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하는 중에도 불쾌한 감정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들의 뇌 속에 보상 경로뿐만 아니라 반-보상 경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18 반-보상 경로는 특정 대상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산출하는 뇌 영역 간의 네트워크를 말한다. 이러한 반-보상 경로는 싫어하는 대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활성화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편도체를 포함하는 영역으로서 전두피질과 연결돼 있으며 신경전달물질인 부신피질자극호르몬방출인자(CRF)와 다이놀핀(dynorphin)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CRF는 자살로 인한 사망자의 척수액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나며 다이놀핀은 스트레스 및 우울과 관계가 있다. 한마디로 반-보상 경로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마약중독자는 사실상 쾌락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반-보상경로로 인한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마약을 투약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음주, 흡연, 불량식품을 섭취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해로운 활동에 빠져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비의 어두운 측면의 예로는 ‘지불의 고통(pain of paying)’ 문제를 들 수 있다. 19 지불의 고통은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하면서 돈을 지불할 때 심리적인 고통을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fMRI를 활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사람들이 돈을 지출할 때 신체적인 고통을 처리하는 뇌 영역을 자극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지불의 고통은 소비의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상품을 구입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죄의식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선불방식일 때 상대적으로 많이 구매하게 되고, 후불방식일 때 상대적으로 더 적게 지출하며, 개별 항목을 구입할 때마다 지불을 해야 하는 방식을 취하면 가장 지출을 적게 하게 된다. 곧바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여행상품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액티비티와 코스를 한꺼번에 다 결제하는 풀패키지 여행 상품을 선택할 경우 한 번에 큰돈을 쓰지만 딱 한 번만 결정을 하면 더 이상 ‘죄의식의 세금’을 낼 필요가 없기에 총액이 커도 고통이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부분 패키지여서 여행지에서 몇 가지를 옵션으로 선택해 후불 방식으로 지출해야 한다고 하면 궁극적으로 한두 개 옵션상품에서 빠짐으로써 총액은 줄일 수 있겠지만 지출할 때마다 다시 고통을 겪게 된다. 만약 여행사의 자유여행 상품을 선택하게 되면(자유여행 자체의 알뜰함과 즐거움은 차치하고) 매번 관람료나 식비 등을 결제를 할 때마다 ‘죄의식의 세금’도 함께 내게 될 것이다. 물론 여행상품마다 사람들의 선호가 있고 느끼는 즐거움의 크기가 다르기에 상쇄효과를 감안하면 어느 것이 일반적으로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오직 ‘죄의식의 세금’ 차원에서만 생각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지불의 고통 문제와 관계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아마존의 ‘원클릭’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아마존이 자사가 보유했던 특허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방어 전략을 썼던 핵심 아이템이었다. 이 시스템에서는 고객이 마우스를 단지 한 번만 클릭함으로써 원하는 모든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스템은 지불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효과적인 책략 중 하나다. 페이팔(PayPal) 혹은 애플페이(Apple Pay) 등과 같은 간편 결제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대조적으로 다음의 사례들은 소비생활에서 지불의 고통 문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 2012년 제이시페니(JC Penny)백화점의 신임 CEO 론 존슨(Ron Johnson)은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백화점에서 상품의 가격을 고의로 높게 책정한 뒤 마치 할인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격표를 만들어 붙이는 관행을 없애버린 것이다. 20 론 존슨은 자신이 취임하기 전 20년간 시행해 왔던 이 정책을 일종의 사기로 간주하고서 백화점이 소비자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기 위해서는 공정한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백화점의 고객들이 이러한 공정한 가격 정책을 상당히 혐오했다는 점이다. 관행과 새로운 가격 정책의 차이는 실제 150달러짜리 물건을 150달러 가격표가 부착된 채 사느냐, 아니면 동일한 상품을 일단 200달러의 가격표를 부착한 후 다시 25% 할인해서 원래 가격인 150달러에 판매하느냐 정도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고객이 백화점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어 버렸고, 백화점은 1년 만에 약 10억 달러에 달하는 치명적인 손해를 봤으며, 결국 론 존슨은 해고됐다.

지불의 고통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는 AOL의 일화를 들 수 있다. 1996년에 당시 세계 최대 통신 업체였던 AOL의 사장 밥 피트먼(Bob Pittman)은 인터넷 사용 요금 체계를 10시간 혹은 20시간 사용 후 추가 요금을 내는 시스템에서 무제한 접속이 가능한 정액제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AOL에서는 기존 사용자들의 인터넷 접속 시간 분포를 확인한 후 요금제가 변경되더라도 전체 사용량에서는 약간의 증가만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AOL로서는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AOL은 고객들이 무의식적으로 부과하고 있던 ‘죄의식의 세금’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하루 만에 AOL 고객들의 인터넷 사용량은 두 배가 됐다. AOL은 이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우리는 무의식적 소비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지금까지 심리학의 관점에서 무의식적 소비의 특징을 소개한 후 소비의 무의식적 특성을 간과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살펴봤다. 이 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스스로 ‘안다는 느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 착각’은 ‘화(禍)’를 부르는 지름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야구장의 빈볼 사건에서처럼 의식이 마음대로 지어내는 그럴듯한 이야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늘 의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해 경계 태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의식만을 편애하기보다는 무의식의 역할에 대해서도 늘 열린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무의식 그 자체가 우리의 적응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의식과 지혜롭게 파트너십을 맺을 경우 무의식은 의식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적응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 특히 결혼처럼 인생의 중요한 문제일수록 무의식적 선호 판단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셋째, 개인의 선호보다는 집단의 선호가 더 ‘우위(優位)’에 있다는 것이다. 소비 활동에서도 개인의 선호에 기초한 선택은 그 결과가 집단의 선호와 일치할 때에 한해서만 기쁨을 선사해 준다. 넷째, 소비는 즐거움만을 선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고통도 동반하는 활동이라는 점이다. 소비 활동이 주는 즐거움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지불의 고통도 함께 따라다니며 지불의 고통 문제의 영향력을 간과하는 것 역시 ‘화’를 부를 수 있다.

필자소개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lip@korea.ac.kr
필자는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삼성병원 정신과 임상심리 레지던트를 지냈고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와 한국건강심리학회 건강심리전문가 자격을 따기도 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박사 후 과정을 했으며 현재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고영건 고영건 |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필자는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삼성병원 정신과 임상심리 레지던트를 지냈고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 전문가와 한국건강심리학회 건강심리 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한국임상심리학회장을 지냈다.
    elip@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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