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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매드스퀘어의 커머스 플랫폼 ‘카리스’ 사례

제품이 아닌 콘텐츠를 소비하는 세상
인플루언서의 리뷰가 훌륭한 커머스

최한나 | 272호 (2019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동남아시아 지역 인플루언서들을 모아 커머스와 연결하는 플랫폼 ‘카리스’를 운영하는 매드스퀘어는 2018년 한 해 동안 4가지 화장품을 히트템으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인플루언서들에게 1차로 샘플을 발송하고 각자 콘텐츠를 만들어 팔로워들과 공유하게 한 후, 콘텐츠 조회 수나 구매로 전환된 비율이 높은 콘텐츠를 분석해 마케팅 컨셉을 수정했다. 그리고 2차로 다시 샘플을 발송해 수정된 컨셉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게 했다. 필요한 경우 3차 샘플 발송 및 콘텐츠 공유를 더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인지도가 낮은 제품들을 SNS상 라이징 스타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매드스퀘어 안준희 대표는 “인플루언서들이 다양하게 제작한 콘텐츠를 통해 대중이 원하는 마케팅 메시지를 찾고, 그것을 다시 확산시키는 과정을 통해 구매전환율을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성식(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이 토너의 분무기는 분사량이 많아서 불편하다. 개선 방법은 없을까?”

“이 쿠션은 좀 더 어두운 색상이면 좋을 것 같다. 동남아시아 지역 여성들의 피부 톤을 보정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2019년 4월15일 31명의 동남아시아 지역 인플루언서들이 제주도에 도착했다. 적게는 수십만 명, 많게는 수백만 명씩 팔로워를 거느린 이들은 매드스퀘어에서 주관한 ‘Beautiful Journey’라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매드스퀘어는 인플루언서가 직접 물건을 판매할 수 있도록 설계한 플랫폼 ‘카리스(Charis)’에서 매출을 많이 내는 이들을 모아 한국에 초청하는 자리를 가졌다. 타고 온 항공편부터 묵은 숙소와 세끼 식사는 물론 각종 간식, 화장품과 세안제, 입욕제 등 이들이 타고, 자고, 먹고, 쓰는 모든 아이템에 협찬이 붙었다. 이들이 SNS에 올리는 영상에 자사 제품이 조금이라도 노출되기를 원하는 기업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에 인플루언서들만 초청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을 통해 동남아시아 지역에 제품을 소개하고 싶은 화장품 업체도 20곳 참여했다. 업체 관계자들은 인플루언서들 앞에서 제품의 특징과 강점, 회사가 생각하는 마케팅 포인트 등을 설명했다. 인플루언서들은 각자의 자리에 놓인 샘플과 제품 설명서, 프로모션과 리워드 등을 꼼꼼히 살펴보며 설명을 들었다.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도 날카로운 질문을 수시로 던졌다. 제품에 대해 느끼는 아쉬운 점이나 보완하면 좋을 것 같은 점에 대한 의견도 솔직하게 이어졌다. 안준희 매드스퀘어 대표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면서 2분기 세일즈 계획을 함께 세워보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매드스퀘어가 인플루언서들의 SNS 활동을 커머스(commerce)와 연계하는 카리스 플랫폼을 구동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9월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와 동남아 진출을 노리는 국내 화장품 업체 등 플랫폼 참여자들을 모으고, 인플루언서들이 만드는 콘텐츠를 분석해 2차, 3차 수정 마케팅을 실행하며, 결제와 배송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등 각각의 단계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일부러 홍보하지 않아도 인플루언서와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을 정도로 활발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소속된 인플루언서는 2500명을 넘어섰고 이들의 콘텐츠를 구독하는 팔로워는 2억5000만 명에 이르렀다. 데이터 분석을 통한 마케팅 컨셉 수정과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 증대 등이 맞물리면서 영상 하나로 억 단위 매출을 내는 인플루언서도 점점 늘고 있다. 매드스퀘어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인플루언서 마케팅 사례를 취재했다.



첫 참여자 7명… 청사진 보여주며 참여 독려

처음부터 커머스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안 대표가 초기에 생각했던 사업 아이템은 유저들의 취향을 분석해 개인별로 맞춤형 동영상을 큐레이션해주는 서비스였다. 2015년 1월에 설립하고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6개월 만에 월 이용자 수(MAU)가 100만 명을 넘겼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였다. 문제는 ‘돈이 안 된다’는 데 있었다. 유일한 수익원은 동영상 앞과 뒤, 또는 동영상과 동영상 사이에 집어넣는 광고였는데 단가가 너무 낮았다. 월 사용자 수가 100만 명을 넘고 2000만 뷰, 3000만 뷰까지 조회 수가 올라가도 막상 회사에 떨어지는 매출은 억 단위를 넘지 못했다.

‘플랫폼’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용자가 아무리 많아도 매출로 연결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많은 수의 사용자가 회사의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으려면 플랫폼에 커머스 기능이 들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셀럽 커머스’다. 말 그대로 셀럽을 앞세워 전자상거래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2016년 2월의 일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에는 이미 왕훙 1 들이 영향력을 뽐내며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상당수 왕훙은 다양한 플랫폼과 연계해 커머스를 활발히 진행했다. 영향력이 큰 왕훙들은 단기간에 수백억 원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안 대표는 중국 왕훙이 가진 이런 모델을 잘 구현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을 선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젊은 인구가 많다. 둘째, SNS 사용이 활발하다. 셋째, e커머스(e-Commerce) 분야에 빅 플레이어가 아직 없다. (DBR mini box I ‘동남아 지역의 e커머스 시장’ 참고.)


DBR mini box I: 동남아 지역의 e커머스 시장
동남아시아에 속한 국가들은 대체로 인구가 많고(필리핀 1억800만 명, 인도네시아 2억7000만 명, 베트남 9800만 명, 태국 7000만 명 등),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인구가 많다. 덕분에 모바일을 통한 소셜미디어 활용도가 높다. The Asean Study Center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 중 55%는 활발한 소셜미디어 사용자(active users)며 특히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주요 국에서 조사한 결과에서는 응답자의 90%가 소셜미디어를 직접 통하거나 또는 SNS상의 콘텐츠에 영향을 받아 물건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동남아시아를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월간 이용자 수 기준 세계에서 페이스북을 두 번째로 많이 활용하는 곳이라는 분석도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모바일을 사용해 하루 평균 3.6시간 인터넷을 쓰는데 이는 중국(3시간), 영국(2시간), 일본(1시간)보다 많은 시간이다. 필리핀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주요 국들의 하루 인터넷 사용시간 및 소셜미디어 사용시간은 세계 상위권이다. (출처: 훗스위트)



싱가포르 투자기관인 테마섹홀딩스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전자상거래 시장은 2017년 기준 109억 달러(약 12조 원) 규모로, 2025년에는 881억 달러(약 1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소매 판매액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채 안 될 정도로 낮다. 반면 인터넷 쇼핑의 90% 이상은 모바일로 이뤄진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최근 싱가포르 쇼핑몰 업체 라자다(Lazada), 쇼피(Shopee), 베트남 쇼핑몰 업체 티키(Tiki) 등이 세력을 빠르게 확장해가고는 있지만 아직 지배적으로 시장을 장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안 대표는 우선 주요 SNS와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을 뒤져 동남아시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들을 찾았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을 방문해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 카리스 플랫폼 안으로 들어와 줄 것을 설득했다. 몇 달간 다방면으로 설득 작업을 펼친 끝에 2016년 9월 말레이시아 출신 인플루언서 7명을 데리고 카리스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인플루언서의 ‘진짜’ 영향력을 찾아라

매드스퀘어에서 운영하는 ‘카리스’는 간단히 말해 동남아시아 지역의 인플루언서들이 운영하는 쇼핑몰을 한데 모아 둔 플랫폼이다. 셀럽들끼리 소통하는 커뮤니티나 이들을 위한 이벤트, 자유게시판이나 공지사항 등의 부가적인 기능도 담겨 있다.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다. 앱을 설치하고 가입 신청 버튼을 누르면 담당자가 신청자의 SNS 등을 확인해 인플루언서로서의 자질을 판단하고 승인한다.

카리스에 가입한 인플루언서는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을 갖게 된다. 매드스퀘어는 국내 화장품 업체들에서 샘플을 받아 1주일에 두세 개씩 플랫폼에 상품 이미지와 기본적인 설명을 띄우는데 인플루언서들은 이 중 써보고 싶은 상품의 샘플을 신청하고, 한국 또는 현지 배송센터를 통해 샘플을 받는다. 해당 상품을 받아 본 인플루언서들은 상품의 언박싱(unboxing)에서부터 다양한 활용기까지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SNS에 올리고 하단에 구매좌표를 카리스 플랫폼으로 연결되게끔 설정해 팔로워들의 구매를 유도한다. 팔로워들에게는 정가보다 할인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카리스 플랫폼 안에서 판매된 제품 숫자에 비례해 수수료를 받는다. 인기 인플루언서의 경우 한 번에 억 단위 매출을 일으키고, 여기에 비례해 1000만 원 이상의 리워드를 받기도 한다.

현재 카리스에서 활동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인플루언서들은 2500명가량. 이들의 SNS를 구독하는 팔로워는 2억5000만 명에 달한다. 2 우리나라 인구의 다섯 배쯤 되는 사람들이 이들의 SNS를 구독하며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실 매드스퀘어는 2017년 이후 인플루언서나 팔로워 숫자를 주기적으로 집계하는 일을 그만뒀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매드스퀘어가 나서서 인플루언서를 모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들이 모이는 단계에 진입했다. 지금은 인플루언서 모집보다는 관리, 즉 소속 인플루언서들이 역량을 발휘해 구매전환율을 더 높일 수 있게끔 지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둘째, 단순히 ‘누적 팔로워 숫자’가 많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인플루언서와 서로 소통하며 긴밀하게 연결된 진성 팔로워가 몇이냐가 훨씬 중요하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것은 ‘팔로워 숫자가 많다’는 것을 곧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크다’ 내지는 ‘구매전환율이 높을 것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웃기거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몇 개만 올려도 팔로워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구매로 연결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팔로워를 100만 명 가진 인플루언서가 1만 명 가진 인플루언서보다 반드시 물건을 많이 판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1만 명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사례가 얼마든지, 사실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 팔로워가 지갑을 열고 직접 구매에 나서기까지는 단순한 ‘연결(following)’을 넘어서는 ‘신뢰(trust)’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인플루언서와 팔로워들 사이의 소통(engagement)이다. 팔로워가 인플루언서와 개인적으로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한 경험이 있어야 인플루언서에게 신뢰를 갖게 되고, 나아가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신규 인플루언서의 가입 신청이 들어왔을 때 또는 기존 인플루언서들이 어떤 제품에 대한 샘플을 신청했을 때, 매드스퀘어에서 해당 인플루언서의 ‘진짜’ 영향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우선 팔로워들의 댓글에 인플루언서가 직접 댓글을 하나하나 달아주는지 여부다. 평소 팔로워들과 얼마나 친밀하게 소통하는지, 팔로워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가지고 다가가는지 알 수 있는 척도다. ‘라방’이라고 불리는 라이브 방송을 얼마나 자주 진행하는지, 라방을 열었을 때 얼마나 많은 팔로워가 모이는지도 본다. 인플루언서가 라이브로 방송을 진행할 때 즉각적으로 참여하는 팔로워들은 해당 인플루언서의 SNS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며 관심 있게 보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이런 팔로워들이 많을수록 해당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으며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했을 때 구매로 연결되는 비율도 높아진다.

인플루언서 통해 대중에게 어필하는 컨셉 발굴

동일한 제품을 받은 인플루언서라도 콘텐츠에 담는 내용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제품의 기본 스펙도 샘플을 받는 모든 인플루언서에게 동일하게 제공되지만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 역시 개별 인플루언서의 몫이다. 각각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접한 팔로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어떤 콘텐츠는 그저 그런 반응을 받는 정도에 그친다. 어떤 콘텐츠에는 ‘좋아요’가 많이 찍힌다. 어떤 콘텐츠는 ‘좋아요’를 많이 받는 데 머물지 않고 나아가 많은 구매를 유도한다. 샘플 배송 후 매드스퀘어는 해당 제품에 대해 인플루언서들이 만든 콘텐츠와 그에 대한 팔로워들의 반응을 면밀히 살핀다. 그중 유난히 숫자가 튀는, 이를테면 팔로워들의 반응이 폭발적이거나 실제 구매로 많이 연결되는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해당 콘텐츠를 만든 인플루언서가 제품의 어떤 면을 부각했는지, 어떤 면이 팔로워들에게 잘 먹혀 들어갔는지, 다른 콘텐츠와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한다. 그리고 팔로워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판단되는 포인트를 해당 제품의 메인 컨셉으로 잡아 2차 샘플을 발송한다. 1차에서는 화장품 회사에서 원하는 국가나 나잇대, 샘플을 신청한 인플루언서들이 그동안 주로 다뤘던 화장품의 종류, 그들의 팔로워 숫자 등을 감안해 샘플을 제공했다면 2차에서는 새롭게 설정한 컨셉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인플루언서들을 집중적으로 선정해 샘플을 발송한다. 혹은 1차에서 팔로워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콘텐츠를 제작한 인플루언서에게 새롭게 설정한 컨셉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번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의도된 방향으로의 콘텐츠 제작을 독려하는 셈이다. 필요한 경우 3차까지 진행해 한 번 더 컨셉을 가다듬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방식을 적용해 소위 ‘대박’을 낸 제품이 2018년에만 4건이 나왔다. 이들 중 대부분은 한국에서조차 인지도가 제로에 가까운, 그야말로 무명의 아이템이었다.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해 여러 가지 방식의 콘텐츠를 만들어 대중과 공유해보고, 그중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 낸 컨셉으로 재무장해 시장에 다시 선보이는 과정을 반복하면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고 많이 팔리는 제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 사례였다. 카리스 플랫폼을 통한 커머스가 본격화한 것이 2018년 초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더 많은 히트작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국제약에서 내놓은 센텔리안24 마스크팩이다. 매드스퀘어는 우선 동국제약으로부터 받은 샘플 100개를 신청한 인플루언서들에게 발송했다. 인플루언서들은 각자 제품을 써보고 나름대로의 콘텐츠를 만들어 자신의 SNS에 올렸고 판매가 시작됐다. 다들 고만고만한 수치를 보이는 가운데 유독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라이자(Raiza)라는 인플루언서가 만든 콘텐츠에 대한 트래픽이 높게 나타났다. 왜 그런가 봤더니 다른 인플루언서들은 보습이나 재생 등 제품에 기재된 특성에 초점을 맞춰 콘텐츠를 만든 반면 라이자는 이 마스크팩을 썼더니 여드름이 치료되는 효과가 나타났다며 영상을 만들었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덥고 사람들이 땀을 많이 흘리니까 지성 피부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하루 종일 에어컨에 노출되기 때문에 건조함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유수분 밸런스가 깨진 탓에 여드름 피부를 가진 사람도 많다. 라이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마스크팩을 썼더니 충분한 보습으로 피부가 좋아지더라는 것이다. 라이자는 이 점을 강조해 영상을 만들었고 이것이 필리핀 여성들에게 어필했다. 그러면서 콘텐츠 조회 수와 ‘좋아요’ 숫자는 물론 구매전환율도 눈에 띄게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 점을 간파한 매드스퀘어는 이 제품의 컨셉을 아예 ‘여드름 치료’ 쪽으로 바꿔 가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보습이나 재생 쪽으로 제품 효능 및 마케팅 컨셉을 설정했던 동국제약 측에서는 컨셉의 전면 재수정 제안에 초기엔 당황했지만 매드스퀘어 측의 조언을 받아들여 시도해 보기로 했다. 2차 샘플 발송 및 콘텐츠 제작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여드름 치료 마스크팩이라는 점을 내세워 여기에 부합하는 인플루언서를 추려 샘플을 발송했고, ‘여드름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해 콘텐츠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라이자에게도 여드름 치료를 컨셉으로 콘텐츠를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라이자가 만든 2차 콘텐츠에서만 1억2000만 원 정도의 매출이 나왔다. 3 나아가 이 마스크팩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여성들에게 한 손에 꼽힐 만큼 인기 있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히트 상품이 잇따라 나왔다. 안 대표는 “1, 2차 과정을 합하면 총 6개월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정도 기간을 잡고 컨셉을 재정비해서 다시 선보이면 아무리 무명의 상품이라도 소셜미디어상에서 라이징 스타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셀럽형 커머스 성장 후 콘텐츠형 커머스 개시

커머스가 원활히 진행되기까지 매드스퀘어는 그동안 작지 않은 어려움들을 겪어 왔다. 첫 번째는 인플루언서를 모으는 과정이었다. 생판 모르는 한국 청년의 제안에 쉽게 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요 SNS의 DM(Direct Message)을 수십 차례씩 보내며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애원해야 했다. 초반에는 당연히 제품을 제공하는 화장품 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사비를 털어 화장품을 종류별로 쓸어 담은 후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수개월 동안 동남아 주요 국가들을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어렵게 성사된 만남에서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인플루언서 시장이 먼저 활성화된 선진국 자료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장기적인 플랜을 제시했다. “인구가 많고 시장이 크기 때문에 많은 국가, 많은 기업이 동남아 시장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그런데 동남아 지역을 지배하는 마땅한 마케팅 채널이 없기 때문에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하려는 수요가 많다. 이런 상황에 단순히 우리 플랫폼에 들어와 물건을 팔면 한 개 팔 때마다 1달러씩 주겠다는 논리는 먹힐 수가 없었다. 중국 왕훙들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롱런하는 인플루언서들은 결국 커머스로 가게 된다는 점, 다른 활동과 병행할 수 있다는 점, 평생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온라인 숍을 하나 가진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점, 콘텐츠 제작이나 공유에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점 등을 어필하며 참여를 이끌어 냈다.” 안 대표의 설명이다. 카리스 플랫폼에 합류한 인플루언서는 ‘셀럽(celeb)’으로 불린다. 활동 내역이나 성과에 따라 블랙, 퍼플, 레드, 블루, 그린 등 5개 등급으로 나뉜다. 분기에 한 번씩 등급이 조정되는데 등급에 따라 한국 방문 기회나 기업에서 제공하는 VIP 선물 세트 등 누리는 혜택이 달라진다.

또 다른 난관은 결제 서비스였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한국처럼 e커머스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웹에서의 결제가 원활하지 않다. 동남아에서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은 COD(Cash On Delivery), 즉 물건을 수령하면서 동시에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일대일 대면 방식인 셈이다. 계좌이체가 일부 사용되기는 하지만 웹이나 모바일에서 돈을 이체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 직접 방문해야 하고, 타행으로는 이체가 안 되는 등의 불편 때문에 비중이 높지 않다. 이렇다 보니 카리스 셀럽의 영상을 보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가도 결제까지 완료하지 못하고 10명 중 9명이 이탈하는 사태가 빈발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자나 마스터 등 국제 카드사에 문의하고 현지 금융당국에도 방법을 물었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결국 매드스퀘어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의 주요 지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COD 방식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갔다. 페이팔(PayPal)과 현지 로컬페이 등 구매수단도 다양하게 확보했다. 그 결과, 현재는 10명 중 1∼2명 정도로 이탈자가 줄어든 상태다.

2018년 말, 매드스퀘어는 플랫폼을 하나 더 열었다. ‘카리스(Charis)’라는 이름이다. 셀럽들만 접속할 수 있는 기존 플랫폼(앱 이름은 ‘Charis Celeb’)과는 달리 누구나 앱을 설치하면 쉽게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새로운 플랫폼에는 카리스 소속 인플루언서들이 그동안 만든 콘텐츠 중 웰메이드라고 여겨지는 1만 개를 모았다. 앱에 접속하면 동남아시아 지역의 인플루언서들이 각종 화장품을 써보고 리뷰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화장품 리뷰 동영상만 모아둔 잡지를 보는 느낌이다. 인플루언서를 클릭하면 해당 인플루언서가 다양한 화장품을 써보고 리뷰한 내용들이 모여서 노출되고, 제품을 클릭하면 해당 제품에 대해 다양한 인플루언서들이 리뷰한 내용이 모여서 노출된다. 그리고 하단에는 해당 제품 구매로 연결되는 URL이 링크돼 있다. 리뷰를 훑어보면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곧바로 구매할 수 있는 셈이다. 안 대표는 “요즘 소비자들은 제품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 즉 제품과 관련된 콘텐츠를 소비하기 때문에 리뷰들만 모아도 충분한 커머스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했다. 오픈한 지 몇 개월 안 됐지만 콘텐츠를 보면서 바로 구매로 연결되는 시스템의 특성상 구매전환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DBR mini box II : 안준희 대표 인터뷰
SNS에 콘텐츠를 올리면서 대놓고 제품을 홍보하거나 구체적인 URL을 걸어두면 팔로워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국가마다 문화가 다르다. 예컨대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대놓고 하는 제품 홍보를 좋아한다. 직접 써보니 이 제품 좋더라 하면서 실컷 칭찬해놓고 바로 구매로 이동할 수 있는 URL이 없으면 불편해한다.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면 구매로 연결되는 좌표까지 함께 줘야 친절한 인플루언서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 왕훙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고 이들을 활용한 마케팅이 엄청난 규모로 커질 수 있는 데는 이 같은 문화가 뒷받침됐다.

사실 동남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어떤 성향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카리스 소속 인플루언서들이 만드는 콘텐츠도 쇼호스트처럼 제품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를 하는 방식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하는 방식이 혼재돼 있다. 해보면서 계속 깨달아가는 단계인데 나라별로, 개인별로 성향이 다양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불과 몇 년 전 파워블로거가 글 하나 써서 100억 원씩 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표시규제법이 생기면서 ‘이 포스트는 협찬을 통해 제작됐습니다’는 식의 표기를 하게 됐고, SNS를 통해 광고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인플루언서들은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게 됐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팔로워가 인플루언서들의 광고 또는 제품 판매에 대한 거부 반응을 갖지 않고, 오히려 이왕 좋은 제품을 소개하려면 정보를 제대로 달라는 식의 반응을 더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Z세대는 또 다르다. 이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을 통한 웹 접속과 온라인 쇼핑, SNS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인플루언서들의 커머스 활동에 대한 거부감이 약한 편이다.



우리 기업 또는 제품과 맞는 인플루언서를 어떻게 찾을 수 있나.

모든 인플루언서가 물건을 잘 팔 수는 없다. 인플루언서도 자기가 무엇을 잘 팔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플루언서에게 꼭 맞는 제품을 연결해주는 일이다. 해당 인플루언서에게 꼭 맞는 제품을 연결해줄 때 구매전환율이 높아진다. 데이터를 토대로 인플루언서가 자신과 맞는 제품을 만날 수 있도록 설계를 잘해주면 아무리 작은 숫자의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라도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 계속 시도해보고 교훈을 얻어나갈 수밖에 없다. 문화가 다르고 팔로워 특성이 다른 해외 시장은 더욱 그렇다. 카리스에서 1차 샘플을 발송하고 교훈을 얻어 2차, 3차 시도해 가며 컨셉을 정교하게 가다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중이 원하는 마케팅 컨셉을 대중에게서 얻어내는 방식이다.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하고 싶은 기업에 조언을 해준다면.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해 진행하는 디지털 마케팅은 대체로 팔로워 숫자나 ‘좋아요’ 숫자를 핵심 지표로 놓고 출발한다. 잘못된 접근법이다. 팔로워 숫자는 누적으로 집계되는데 2010년부터 모은 1000만 명과 2019년에 모은 10만 명의 차이는 엄청나다. 10년에 걸쳐 모인 1000만 명보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모은 10만 명이 훨씬 파워풀하다. ‘좋아요’나 ‘하트’를 많이 받으면 구매전환율이 높을까? 전혀 아니다. 관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상관성이 약하다. 단순히 몇억 원 정도 예산을 설정해놓고, 유명 인플루언서를 섭외해서 제품 보내주고 리뷰를 쓰게 하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돈 받고 쓰는 리뷰는 진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이를 금방 알아차린다.

동국제약 사례에서 소개한 라이자의 경우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을 때 하루 새 조회 수가 1만9000 정도 찍혔다. 이날 라이자의 개인 숍, 즉 카리스 플랫폼으로 유입된 시청자는 4000명인데 이 중 10%가 물건을 구입했다. 구매전환율이 10%를 찍은 셈이다. 통상 11번가나 쿠팡 등 e커머스 회사에서 집계하는 구매전환율을 1% 정도로 본다. 100명 방문해서 1명 정도 물건을 구입한다는 의미다. 라이자가 기록한 수치와 차이가 크다. 그만큼 라이자가 평소 팔로워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신뢰를 쌓았고, 그것이 구매전환율로 확인됐다고 볼 수 있다. e커머스의 도전은 단순히 팔로워나 방문자를 늘리고 좋아요를 더 많이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100명을 불러 모았을 때 몇 명이 실제 지갑을 여느냐, 즉 구매전환율의 싸움이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시행하는 기업들도 결국 실제 구매전환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대중이 원하는 소통의 방식, 대중이 원하는 마케팅 메시지를 찾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좋아요’ 몇 개 더 받는 데서 만족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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