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名에서 使命을 읽다: 일본의 ‘사자커피’

‘자, 앉아서(且座)’ 커피에 담은 스토리텔링

266호 (2019년 2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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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업계에서 전설적인 질문 중 하나가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는가”다. 물? 재미가 없다. H2O, 살얼음 등도 재미없는 답이다. 창조적인 답을 내놓기 위해서는 아이의 눈으로 보라고들 한다. 어린이는 ‘봄’이라고 답한다. 얼음에서 추위와 겨울을 연결하고 얼음이 녹는다에서 봄이 온다고 생각한다.

커피와 사람을 연결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 ‘커피 칸타타’로 유명한 바흐, 하루에 40∼50잔의 커피를 마신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떠오른다. 일본에서는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떠오른다. 150여 년 전 개화기의 실세였던 그는 외국인들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커피를 많이 마셨다. 그의 커피 사랑은 130여 년이 지나 ‘도쿠가와 쇼군 커피’로 부활했다. 이 상품을 기획한 이는 스즈키 요시오(鈴木誉志男)다. 그는 20대 시절 영화 흥행 프로듀서로 근무하면서 아무리 영화가 좋더라도 ‘화제성(話題性)’이 없으면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화제성, 즉 스토리텔링은 그에게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항상 화제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그는 1998년 NHK 대하 드라마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마지막 쇼군인 그가 1867년 구미 공사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프랑스 요리사를 고용해 커피를 대접하는 장면이었다. 문헌을 뒤져보니 당시 전 세계 커피 유통의 6할을 네덜란드가 담당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또한 커피 생산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그는 커피콩으로 인도네시아산 최고급인 만데린을 선택했다. 스토리를 만들어 낼 때는 진정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요시노부의 증손자인 요시도모(慶朝)를 섭외했다. 사진사이기도 한 그는 커피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증조할아버지가 마시던 커피를 증손자가 재현했다.” 도쿠가와 쇼군 커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영화 마케터가 왜 커피를 만든 걸까? 요시오 회장의 부친은 1942년부터 극장을 경영했다. 도쿄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이바라키현의 작은 마을에서였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요시오 회장도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방 극장의 경영은 점점 악화됐다. 겸사겸사 1969년 극장 한구석에 커피숍을 차렸다. 커피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마케터답게, 흥행사답게 그는 브랜드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회사 이름을 지을 때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왜 그 이름인지,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는지, 창업자의 경영 철학이 제대로 반영돼 있는지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최종적으로 ‘차좌끽다(且座喫茶)’라는 단어를 골랐다. 이 단어는 중국 당나라 말기 고승인 임제의현(臨済義玄)의 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자, 앉아서 차라도 한잔하시죠”라는 뜻을 가졌다. 여유를 갖고 차를 즐기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 커피숍에는 시계가 없다. 시나가와역, 도쿄역에 점포가 있는데 종종 기차를 놓치는 손님도 있다고 종업원은 웃으며 말한다. ‘차 한 잔의 여유’는 어떤 의미일까? 실은 고가전략이 숨어 있다.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평일 점심식사 후 한 잔이다. 테이크아웃을 할 때는 물론 커피숍 안에 앉더라도 15분을 넘기기 어렵다. 일본에서 이 시장은 잔당 300엔을 넘지 못한다. 스타벅스에서도 드립커피를 280엔에 마실 수 있는 이유다. 퀄러티가 뛰어난 편의점 커피가 100엔대에 포진돼 있어 가격을 높이기 힘들다. 또 다른 장면은 주말에 마시는 여유 있는 한 잔이다. 이때는 최소 1시간 이상 머무르면서 독서를 하거나 분위기를 즐기며 마신다. 잔당 600∼700엔도 가능하다. 요시오 회장은 이 시장을 노렸다.

그는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커피에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1974년에는 자가 배전을 시작했다. 독학을 통해 커피 맛을 높이기 위한 각종 혁신을 거듭했다. 1991년에는 사명을 ‘사자 커피(Saza Coffee)’로 바꾼다. 차좌(且座)의 일본 발음인 ‘사자’에 커피를 붙였다. 기존 극장은 결국 1984년에 망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사자커피 본점이 들어섰다. 도쿄에서 2시간이나 걸리는 시골마을에 그저 커피 한잔 마시러 갈 이유는 별로 없지만 계절이 좋을 때는 절경을 즐길 수 있고 넉넉한 공간이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을 준다. 혼자 온다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상으로, 둘이 온다면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다.

사자커피는 스스로 ‘제4의 물결’을 창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1의 물결은 인스턴트커피를 말한다. 제2의 물결은 스타벅스로 상징되는 커피 체인을 말한다. 집이나 사무실(또는 학교)에 이은 또 다른 공간, 경험경제의 제공이 제2의 물결의 성공 요인이다. ‘강하게 볶은 커피를 에스프레소로 빠르게 추출한 커피’가 특징이다. 원두의 산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블루보틀(Blue Bottle Coffee)’이 대표하는 제3의 물결은 속도에서 맛으로, 에스프레소에서 드립으로 진화한 형태를 말한다. 그만큼 여유로움을 중시한다. 사자커피는 이런 커피 경험을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제4의 물결이라고 정의한다. 그러고 보니 매장 안에 다양한 커피 제조 기구들이 놓여 있다. 모두 판매용이다. 제3의 물결도 막 시작되는 상황에 제4의 물결은 이른 감이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컨셉을 개발하는 모습이 전직 마케터답다.

사자커피 본점이 들어선 마을은 이바라키현 히타치나카시(ひたちなか市)라는 인구 15만6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밀리지 않는 스타벅스가 유독 이곳에서만큼은 사자커피에 밀려 약세를 보인다. 사자커피의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집중 출점 전략이다. 일본 내 13개 점포 중 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바라키현 안에 있다. 다른 2개 점포에서는 매출을 기대하지 않는다. 큰 기차역이 있는 도쿄와 시나가와에 점포를 내서 이바라키현에 이런 커피점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매장을 집중적으로 낸 데 이어 최소한 이바라키현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은 모두 사자커피를 알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현 내 많은 커피집이 사자커피의 원두를 구매해서 쓰고 있기 때문.

이 같은 사자커피의 모습은 우리나라 군산에서의 이성당, 대전에서의 성심당과 비슷한 포지셔닝으로 보인다. 이성당과 성심당은 지역에서 매우 유명하고 이를 토대로 인지도를 높여 대도시로 진출한 케이스다. 하지만 전국 브랜드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지역을 중심으로 더욱 사랑받는 브랜드로 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단골들은 그 빵집의 역사와 고유의 매력을 구매한다. 대형 빵집 체인에서는 공유할 수 없는 브랜드 히스토리가 소비자를 이끈다. 사자커피도 그렇다. 가격 면에서는 스타벅스와 경쟁하기 어렵다. 비가격 경쟁에서 품질은 기본이다. 기본은 기본일 뿐 여기에 스토리가 덧입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자커피는 좋은 교훈을 준다.

필자소개 신현암 팩토리8 대표 nexio@factory8.org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 윈윈!』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71호 HR Analytics 2019년 4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