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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감성 마케팅 이론 종합

카메라 셔터 소리, 자동차 문 닫는 소리...
감각 경험이 제품 우수성을 결정한다

김병규 | 256호 (2018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기업 간 R&D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품 품질은 고객들이 감각적으로 차이를 쉽게 느끼기 어려운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앞으로 기업은 품질의 우수성을 고객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오감으로 전달하는 감각디자인에서 경쟁 우위를 찾아야 한다. 감각디자인은 제품의 우수성, 개성, 브랜드 철학을 제품의 감각적 요소들을 통해서 전달하는 작업이다. 감각디자인이 잘 구현되면 고객들은 제품 품질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 없이도 본능적으로 그 제품이 좋다고 느낄 수 있다.

감각 불일치의 시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쟁사에 대한 차별적 우위다. 경쟁사보다 우수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 가치의 원천이다. 기업들은 고객에게 경쟁사보다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시장에는 우수한 품질의 제품들이 넘쳐난다. 고객과 소비자에게는 유리한 환경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다고 호소한다. 굉장히 공들여 품질이 좋은 제품을 시장에 공급했는데 고객이 잘 알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객들은 늘 더 값싼 제품을 찾고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한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런 상황이 특정 기업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품질경영으로 시장을 선도하던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이 같은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연구 개발의 부족? 마케팅과 홍보의 부족? 아니다. 이 현상의 본질은 품질 수준과 인간 감각의 불일치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들의 좋음과 나쁨을 판단한다. 복숭아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복숭아를 고를 때 눈으로 색과 모양을 살펴보고(시각), 향을 맡아 본다(후각).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고서 복숭아의 단단함과 무른 정도를 살핀다(촉각).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서 나는 이 복숭아가 좋은 복숭아인지를 판단한다. 이처럼 감각을 통해서 대상의 좋음과 나쁨을 판단하는 과정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정보처리 방식이다.

지금 기업들이 맞닥뜨린 문제의 본질은 제품의 품질이 사람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그 좋음과 나쁨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에 있다. 사람의 감각기관은 사람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해 왔다. 사람은 자기 몸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나쁜 대상들은 감각을 통해 쉽게 구분해 낼 수 있다. 하지만 감각기관은 좋은 것을 그보다 더 좋은 것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하지는 않다. 이는 감각기관이 가진 ‘한계 민감도 감소현상(diminishing marginal sensitivity)’과 관련된다. 사람의 감각기관은 자극의 강도가 낮을 때는 자극 수준의 변화에 민감하지만 자극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자극 변화에 둔감해진다. 예컨대 무게 1㎏의 물건을 들다가 무게 2㎏의 물건을 들면 그 무게 차이가 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무게 20㎏의 물건을 들고 있을 때는 1㎏이 추가돼도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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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한계민감도 감소 현상은 제품에 대한 품질 인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낮은 품질의 제품을 사용하다가 그보다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사용하면 그 좋음을 쉽게 인식한다. 눈으로, 소리로, 감촉으로 그 좋음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 더 우수한 제품을 사용해도 그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 1]을 통해서 설명해보겠다. 과거에 제품의 품질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았던 경우에 객관적 품질에 있어서 [A]만큼 향상이 되면 사람들은 [a]만큼 그 우수성을 감각적으로 쉽게 인식했다. 하지만 품질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동일한 만큼의 품질을 향상해도[B], 사람들이 느끼는 차이는 [b] 정도에 불과하다. 요즘처럼 고객들이 어느 정도 만족하는 품질의 제품이 제공되기 시작하면 기업이 품질 향상을 이뤄내도 고객들은 그 차이를 감각적으로 쉽게 느끼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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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예로 들어보자. 예전에 사람들은 제품 간의 화질을 비교함으로써 텔레비전의 좋음과 나쁨을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화질을 비교해 봐도 어느 제품이 더 좋은지 느끼기 어렵다. 또한 뛰어난 품질의 신제품이 출시돼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제품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신제품이 출시돼도 제품을 교체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기술의 과도한 진보가 품질 수준과 감각적 인식 사이에 불일치를 가져온 것이다.

심지어 품질 수준과 감각 인식 자체가 반대가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예전에는 고성능의 자동차일수록 엔진소리가 크고 거칠었다. 엔진소리만 듣고도 자동차의 성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성능이 좋은 엔진의 소리가 반대로 더 조용하고 부드러워지고 있다. 품질과 감각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품질 수준’과 ‘인간 감각’ 사이의 불일치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기업이 아무리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도 고객들은 그 우수성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기업은 자사 제품이 경쟁사 제품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알지만 고객에게는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소비자는 품질보다 쉽게 체감되는 가격이나 혜택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기업이 힘들게 우수한 제품을 만들고도 결국은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우수성이 사람들에게 감각적으로 쉽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다. 제품의 우수성을 인간 본연의 판단방식에 충실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감각디자인이다.

감각디자인의 힘
감각디자인은 제품의 우수성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제품의 품질에 대한 이성적 이해가 없어도 신체에서 느껴지는 감각만으로도 제품의 ‘좋음’이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냉장고 문을 열 때 손잡이를 통해 느껴지는 감촉만으로도 그 냉장고가 좋은 냉장고라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의 화질을 볼 필요도 없이 묵직하게 울리는 셔터 소리만 듣고도 그 카메라가 좋은 카메라라고 느껴지게 하는 것, 자동차를 탈 때 차 문이 닫히는 소리만 들어도 이 차가 안전한 차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감각디자인의 예들이다.

감각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제품과 고객 사이의 ‘감각적 접점’을 찾아야 한다. 감각적 접점이란 고객이 제품을 사용할 때 자주 경험하게 되는 감각 자극을 말한다. 나는 노트북을 사용할 때 노트북을 손에 들어서 책상 위 적당한 자리에 위치시키고, 덮개를 열고, 자판을 두드린다. 노트북을 들 때 손에서 무게감과 재질, 덮개를 열 때 손끝에 전해지는 느낌, 자판을 두드릴 때의 소리와 감촉들이 감각적 접점들이다. 이 감각적 접점에서 좋음이 느껴질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제품이 좋다고 느끼게 된다. 가령 덮개를 여는 순간의 부드러움, 자판을 두드릴 때의 경쾌함, 피부가 제품 표면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감촉들은 사람들이 노트북이 좋다고 판단하는 감각적 증거가 된다.

제품의 좋음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감각 경험이 미치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사람들은 사람이나 사물의 가치를 판단할 때 자신의 신체가 보내는 정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 연구는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잘 모르는 외국의 화폐 단위로 표시된 금액을 보여주고서 그 금액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질문했다. 1

대학생들은 한 손에 클립보드를 들고서 설문지를 작성했는데 일부 학생은 가벼운 클립보드를 들고 설문에 답했고 다른 일부는 무거운 클립보드를 들고 설문에 응답했다. 응답 결과를 분석해보니 무거운 클립보드를 든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같은 화폐의 가치를 더 크게 평가했다. 손에서 느껴지는 무거움이 화폐가치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 다른 연구는 참가자들에게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를 주고서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해서 판단하게 했다. 2

실험에 참가하기 직전에 참가자들 중 일부는 뜨거운 커피를 손에 들었고, 다른 일부는 아이스커피를 손에 들었다. 실험 결과 뜨거운 커피를 들었던 참가자들일수록 자신이 평가한 사람을 ‘따뜻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이들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대상에 대한 판단에 신체 감각이 미치는 힘이다. 특히 제품의 가치나 우수성같이 사람들 눈에 직접 보이는 대상이 아닐 경우 사람들은 자기 신체가 보내는 정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감각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다.

감각디자인은 가치가 높은 제품인 경우에 더욱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제품을 구매한 후에 구입한 제품을 평가하는 과정을 거친다. 가격이 비싸지 않은 제품의 경우 사람들은 제품의 좋음과 나쁨을 쉽게 평가한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편의점에서 새로 나온 음료수를 구입한 후에 맛이 없으면 쉽게 맛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고가의 제품을 구매한 경우 사람들은 제품의 나쁨을 쉽게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다. 제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이 제품이 좋은 제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편향된 증거만을 찾게 된다. 큰 지출에 대한 일종의 자기 합리화 과정이다. 예전에 지인이 무리해서 외제차를 구입하고는 고급 가죽으로 된 열쇠고리에 매우 흡족해하던 모습을 봤다. 전문가가 아닌 경우 자동차의 성능 차이는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고급 가죽의 좋음은 누구나 쉽게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제품의 ‘좋음’이 신체적으로 쉽게 느껴지게 만드는 장치들은 고가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각적 접점들
감각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접점을 찾아야 한다. 제품마다 감각적 접점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은 고객이 자신의 제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순간순간을 세밀히 관찰해 자기만의 감각적 접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감각적 접점의 구체적인 예들을 알아보자.

와인 병의 무게 요즘 많은 사람이 와인을 마신다. 그리고 와인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와인의 가치를 제대로 가늠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에 대한 정보와 평가를 찾아보고서 머리로 그 좋음을 이해하려고 한다. 와인에 대한 가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감각적 접점은 어디일까? 와인 병의 무게다. 사람들은 와인을 선택할 때 와인 병을 손에 들고 라벨을 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라벨에 적혀 있는 정보를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몸은 그 순간에 와인 병의 무게를 경험한다. 클립보드를 사용한 연구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대상의 가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손에서 묵직한 와인 병의 무게가 느껴질 때 사람들은 그 와인을 좋은 와인으로 느낀다. 이 감각적 접점은 실제 와인산업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275가지 와인의 무게와 가격을 조사했다. 3 조사 결과 가격이 높은 와인일수록 와인 병 자체의 무게도 무거웠다. 좋은 와인일수록 무거운 병에 담아서 사람들이 와인의 가치를 감각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동차 문소리 자동차를 구매할 때 사람들은 성능, 디자인, 내장재의 고급스러움, 안전성 등 다양한 차원에서 자동차를 비교한다. 그런데 다른 품질 차원들과 비교해 안전성은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기가 어렵다. 자동차의 안전성은 문서상에 수치로만 표현돼 있을 뿐 사람들이 운전을 하면서 경험하기 어려운 품질이다. 사고가 난 후에야 비로소 경험할 수 있다. 즉 품질의 실제 수준과 사람들의 감각 경험 사이에 큰 불일치가 존재한다. 이때 사람들의 자동차에 대한 안전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의외의 감각적 접점이 존재한다. 바로 문이 닫히는 소리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구매하기 전에 전시장에 방문한다. 전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차 문을 열어보고 닫아보는 것이다. 이 간단한 행동을 통해서 사람의 몸은 자동차의 좋음과 나쁨을 판단한다. 이때 문짝 닫히는 소리의 안정성과 높낮이가 자동차의 안전성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리가 안정되고 낮을수록 차가 안전하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최근 생산되는 자동차들이 예전 자동차들보다 문짝 닫히는 소리가 오히려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자동차의 측면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 문 안에 임팩트빔과 같은 철제구조물을 넣는다. 이로 인해 문 안에 많은 빈 공간이 생기는데 차 문이 닫힐 때 얇은 철판이 부딪히는 듯한 불안정하고 약한 소리를 내게 된다. 감각적 접점에서 품질과 신체 감각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외국의 자동차 회사에서는 소리디자이너(aural designer)들이 제품 출시 전에 문짝 소리를 조정한다. 문짝 소리를 통해서 자동차가 안전하게 느껴지게 할 뿐만 아니라 고급 차는 고급스러운 소리가 나도록, 스포츠카는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조정한다.

생수병의 촉감 요즘은 많은 사람이 병에 들어 있는 생수를 사서 마신다. 생수에도 저렴한 물과 비싼 물이 있다. 미국 시장에는 500ml 기준으로 100원 정도 하는 제품부터 3000원 달하는 제품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생수가 팔리고 있다. 에비앙이나 피지처럼 고가의 생수를 마시는 사람들은 고가의 물맛이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본래 물맛은 냄새와 온도, 함유 무기질에 좌우된다. 하지만 냄새, 온도, 성분이 유사할 때 어떤 물이 다른 물보다 더 맛있다고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필자는 실제로 식품회사 연구원들에게 다양한 가격대의 물을 종이컵에 담아서 시음하게 한 적이 있었다. 이들이 가장 맛있는 물로 선택한 것은 에비앙과 같은 고가의 샘물이 아니라 병당 100원에 팔리는 정제수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물맛이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요소가 물맛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브랜드에 대한 정보, 다른 하나는 손에 느껴지는 촉감이다. 생수병을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감촉(질감, 무게감, 단단한 느낌)이 바로 생수 맛의 감각적 접점이다. 실제로 에비앙이나 피지 같은 고가의 물일수록 용기 자체가 더 단단하고 무겁다. 탄산수의 경우에도 플라스틱병에 든 제품들보다 유리병에 담긴 페리에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 이런 이유다.

카메라 셔터 소리 카메라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연 사진의 화질이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성능을 가진 고가의 카메라를 화질로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고가의 카메라에 대한 리뷰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카메라의 성능 자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셔터 소리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얼마나 크고 묵직한지가 카메라를 평가하는 근거가 된다. 예전 수동 카메라의 경우 고가의 카메라가 셔터 소리도 크고 묵직했다. 하지만 요즘 생산되는 대부분 카메라들은 셔터 소리와 카메라의 성능 사이에 큰 관련이 없다. 심지어 셔터 소리가 전자적으로 재생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고가 카메라를 평가할 때 셔터 소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셔터 소리가 제품을 쉽게 느끼게 해주는 감각적 접점이기 때문이다. 사진의 화질을 통해 카메라의 좋음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셔터 소리의 크기와 높낮이 같은 감각적 정보는 우리 몸에 쉽고 빠르게 다가온다.

향수병 마개의 무게 향수나 디퓨저 같은 제품은 향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향을 통해서 향수의 가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고급 향수일수록 향수병과 포장상자를 고급스럽게 디자인한다. 향수병과 포장의 재질, 감촉, 무게는 중요한 감각적 접점이다. 그런데 향수병에 숨겨진 감각적 접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마개다. 몇 년 전 프랑스에서 향수병 제조회사를 운영하는 프랑스 기업인을 만난 적이 있다. 향수 비즈니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사람이 필자에게 자기가 제조하는 향수병의 비밀 하나를 알려줬다. 향수병 제조사들은 용기의 모양이나 재질을 통해서 향수의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런데 향수병에서 사람들이 고급스러움을 잘 느끼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 바로 마개 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향수를 고급 향수병에 담아도 마개를 여는 순간 그 가벼움이 경험에 방해가 된다. 제품의 우수성과 감각적 인식 사이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그는 향수병 마개 안쪽에 작은 돌을 채워서 뚜껑 자체가 묵직하게 느껴지도록 디자인한다고 했다. 이처럼 감각적 접점은 의외의 곳에 존재하기도 한다.

위의 예들은 감각적 접점의 극히 일부분이다. 제품과 서비스에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수없이 많은 감각적 접점이 존재한다. 냉장고를 사용할 때는 냉장고 문이 열릴 때의 묵직함과 부드러움을 통해서 냉장고의 고급스러움을 감각적으로 경험한다. 식품을 구입하면 용기를 열거나 포장이 뜯길 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제품의 신선함을 감각적으로 경험한다. 캡슐 커피머신을 이용할 때는 캡슐에 구멍이 뚫릴 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커피의 신선함을 감각적으로 경험한다. 심지어 프랜차이즈 가맹 상담을 받을 때는 회사를 소개하는 브로슈어 종이의 재질과 무게를 통해서 회사의 크기와 안전성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이처럼 제품마다 사람들이 제품의 우수성을 경험할 수 있는 감각적 접점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감각적 접점들은 사람들이 제품의 품질에 대한 이성적 이해 없이도 그 제품이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감각적 접점을 찾아내고 디자인하는 것이 바로 감각디자인이다.

브랜드의 감각적 실체화
감각디자인은 브랜드가 가진 개성(personality)과 철학을 실체화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기업은 브랜드를 만들 때 브랜드 고유의 개성을 상정하거나 브랜드 철학을 만들곤 한다. 하지만 브랜드의 개성이나 철학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고객들이 제품을 선택하거나 사용할 때 쉽게 인지할 수 없다. 기업 내부에서는 브랜드의 개성과 철학을 잘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고객들은 이를 잘 모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각디자인은 추상적인 성격의 브랜드 개성과 철학이 신체적으로 쉽게 느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가령,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순간이나 매장을 방문하는 순간에 오감을 통해서 이 브랜드가 어떤 브랜드인지를 감각적으로 체감하게 만들 수 있다.

미니라는 브랜드는 1959년도부터 영국에서 생산되다가 단종된 자동차를 최신 자동차 기술로 새롭게 탄생시킨 자동차 브랜드다. 그렇기 때문에 미니는 브랜드의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흥미로운 것은 미니가 브랜드의 전통과 역사를 말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차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할 때 예전 미니에 존재하던 디자인 코드를 적용하고,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리들(가령, 경고음이나 문에 잠금장치 걸리는 소리)마저도 아날로그적으로 디자인해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쉽게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세븐스제너레이션은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친환경 생활용품 브랜드로 환경보호를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철학으로 삼는다. 하지만 환경보호를 위한 브랜드의 노력이 소비자에게 모두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세븐스제너레이션은 일부 세제 제품의 용기를 플라스틱이 아닌 재생용지로 제작했다. 재생용지로 만들어진 거친 느낌의 세제 용기를 손에 드는 순간 소비자는 환경보호에 대한 브랜드의 철학을 손끝으로 그대로 전달받는다. 화장품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제품에 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한국적임과 아름다움 모두 매우 추상적인 것으로 사람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설화수는 용기의 모양이나 재질, 포장, 그리고 매장 인테리어의 감각적 요소들을 통해서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철학을 감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4 이처럼 감각디자인은 추상적인 성격의 브랜드 개성과 철학을 고객들이 오감을 통해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사람은 직접 만질 수 있고, 향을 맡을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즉 신체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대상에 애정과 애착을 형성한다. 무미건조한 사람보다는 좋은 향기가 나거나 좋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좋은 감촉을 주고,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좋은 향을 제공할 때 사람들은 그 브랜드를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끼고 애착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애정을 가진 대상에 관대하다. 단점에 너그럽고 실수를 눈감아준다. 하지만 애정이 없는 대상에는 비판적이 된다. 차가운 이성적 잣대로 대상을 평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신이 애정을 가진 브랜드에는 매우 관대하지만 그렇지 않은 브랜드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한다. 브랜드에 대한 높은 애정이 기업 경영에서 최고의 지향점이 돼야 하는 이유다. 감각디자인은 제품을 하나의 도구가 아닌, 애착의 대상으로 만든다. 이런 점에서 감각디자인은 제품 디자인 전략인 동시에 브랜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디자인의 실행
감각디자인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제품의 어떤 점이 감각적으로 느껴지게 할 것인지, 즉 감각디자인의 목표를 결정해야 한다. 안전성을 추구하는 자동차라면 고객이 신체적으로 안전함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고, 높은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전자제품이라면 고객이 신체적으로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디자인의 목표가 정해지면 제품 안에 존재하는 감각적 접점들을 찾아야 한다. 특히 기업에서 과거에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던 자극들에 주목하면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가령 스프레이 제품이 분사될 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나 마이크를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적당한 무게감은 기업들이 디자인의 요소로 고려하기 어려운 감각적 접점들이다. 이러한 감각적 접점을 찾으려면 제품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오감을 통해서 제품이 어떻게 보이고, 어떤 소리가 들리고, 어떤 향이 나고, 어떤 감촉이 있는지 느껴볼 필요가 있다. 감각적으로 제품을 경험하는 것은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자나 개발자들에게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다. 이들은 제품의 감각적 요소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제품이 지닌 감각적 자극들에 둔감할 수 있다. 가령 사람들이 새집에 이사 오면 바꾸거나 꾸미고 싶은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띄다가도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럴 때는 제품을 감각적으로 ‘낯설게’ 대할 필요가 있다. 가령, 제품의 외관을 자신의 눈이 아니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바라보고, 제품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녹음해 듣게 되면 제품의 시각적, 청각적 요소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촉각이나 후각 자극처럼 자극 자체를 기록하는 게 어려울 때는 감각기관의 민감도를 올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컨대 한동안 어떤 자극에도 자신을 노출하지 않는 것이다. 오랜 시간 아무런 냄새도 맡지 않고 있으면 옅은 냄새에도 민감해진다. 이렇게 제품을 낯설게 경험해보면 전에는 깨닫지 못한 새로운 감각적 접점들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감각적 접점이 찾아지면 이들을 다양한 수준으로 조작해 보고 어느 수준에서 고객에게 ‘좋음’이 느껴지는지 찾아야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제품의 무게감은 고객들이 제품이 고급스럽다고 느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제품이 너무 무거워지면 사용감이 나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고객이 불편하게 느끼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럽게 느낄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무게감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찾아진 감각 수준이 제품 디자인에 제대로 반영되면 고객은 제품의 품질에 대한 이성적 이해 없이도 본능적으로 이 제품이 좋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감각디자인의 미래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많은 기업이 최근 감각디자인을 제품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많은 연구와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감각디자인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가령, 자동차의 안전성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자동차 문짝 닫히는 소리를 조정하고 있는 회사들은 많아도 소리를 통해 안전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엔진소리를 좋게 만들기 위해 엔진을 제작할 때 악기제조사인 야마하와 협업을 해 제대로 된 엔진소리를 만들려 노력한다. 하지만 BMW에서는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엔진소리를 운행 중에 스피커를 통해서 재생시키는 방식으로 손쉽게 해결하고자 한다.

감각디자인은 기업이 그 필요성을 인식해도 제대로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감각디자인이 단순히 제품디자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디자인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타깃 고객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만족감을 높여주는 신체적 감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 사람의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이해해야 한다. 감각적 요소들을 제품에 녹여내는 엔지니어링 능력도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디자인은 R&D, 디자인, 마케팅이 함께 힘을 기울여야 하는 세심한 작업이다. 제대로 하기 어려운 만큼 잘 구현된 감각디자인은 경쟁사가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중요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요즘처럼 품질만으로 경쟁하기 어려운 시대에 감각디자인이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감각디자인을 실행할 때 유의점을 당부하고자 한다. 감각디자인의 본질은 제품의 우수성이 신체적으로 쉽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지, 부족한 품질을 감각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츠 헤드폰과 관련된 사건을 하나 소개한다. 비츠 헤드폰은 2016년 기준으로 미국 시장 점유율이 60%가 넘는 히트 제품이다. 비츠 헤드폰이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때 음질이 가격에 못 미친다는 비판도 많았지만 많은 사람이 비츠 헤드폰의 고급스러운 착용감을 좋아했다. 몇 년 전 실리콘밸리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한 엔지니어가 비츠 헤드폰이 성공한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비츠 헤드폰을 분해해봤다. 헤드폰 안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쇳덩어리 네 개가 발견됐다. 그 무게는 나머지 모든 부품 무게의 반에 달할 정도로 무거운 부속물이었다. 고급스러운 착용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제품의 무게를 인위적으로 늘린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비츠는 미국의 음향전문가들 사이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 제품의 음질은 가격에 못 미치는데 착용감만 고급스럽게 꾸며냈다는 비난이었다. 이 사건은 감각디자인이 어떻게 활용돼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감각디자인은 제품의 우수성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사용해야지 품질이 우수하지 못한데 감각적으로만 우수함을 꾸며내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감각을 디자인하기 전에 품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필자소개 김병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kyukim@yonsei.ac.kr
필자는 서울대 심리학 학사, 경영학 석사를 받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USC마셜경영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마케팅협회의 최우수 논문상인 Paul E. Green Award와 William F. O’Dell Award를 수상했고, 미국 소비자학회에서 박사 논문에 기초한 논문 중 최우수 논문상인 Robert Ferber Award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감각디자인의 이론과 사례를 소개하는 ‘감각을 디자인하라’(미래의창)가 있으며 대기업의 마케팅 임직원을 대상으로 감각디자인의 원칙과 실행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
  • 김병규 |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김병규 교수는 서울대 심리학 학사, 경영학 석사를 받고 펜실베니아대 와튼경영대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USC마셜경영대학 교수를 거쳐 연세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마케팅협회 최우수 논문상인 폴 그린 어워드(Paul E. Green Award)와 오델 어워드(William F. O'Dell Award)의 유일한 한국인 수상자다.
    kyuki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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