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휠라의 턴어라운드 전략
Article at a Glance
휠라는 국내 진출 초기인 1990년 대에는 젊은 이미지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됐다. 하지만 주 고객층이 중장년층으로 바뀌고 주력하던 아웃도어 시장이 쇠락하면서 약 3년 전부터 고전을 겪었다. 쇠락해가던 이 브랜드는 갑자기 지난해부터 중고생을 비롯한 젊은 고객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화제가 됐다. 브랜드 히스토리를 살려 테니스화를 재해석한 ‘코트디럭스’는 무려 70만 켤레가 판매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휠라가 재기에 성공한 주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혁신적인 생산방식과 유통방식 도입으로 제품의 질은 유지하면서 가격에 들어간 거품을 빼낸 것이 주효했다. 즉 10대, 20대 젊은 고객들이 인지하는 ‘프리미엄’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며 이들이 꼽는 핵심 가치인 ‘가성비’를 공략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경민(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지난 2월11일 오전. 서울 이태원의 휠라 이태원 메가스토어에서 열린 ‘휠라 더블 디럭스 데이’에는 영하의 한파를 뚫고 모여든 사람들로 줄이 약 100m가량 길게 늘어섰다. 휠라의 인기 슈즈 브랜드인 ‘코트디럭스 커플 운동화’ 1+1 세트와 커플 티셔츠가 담긴 스페셜 패키지를 운동화 한 켤레 가격(6만9000원)에 선착순 100커플에게 판매하는 이벤트가 펼쳐진 날이었다.
두 명이 함께 짝을 지어 방문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음에도 행사 시작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기 한참 전인 오전 7시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준비한 상품은 이벤트 시작 1시간도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이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본 휠라 직원들은 벅찬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혜택이 많은 이벤트였다 해도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해외 럭셔리 브랜드 또는 트렌드에 민감한 ‘핫’ 한 브랜드에서나 일어나는 깜짝 매진 행렬은 나름 ‘이변’이었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가 주최하는 행사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린 것은 최근 수년 새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근무해 휠라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직원일수록 ‘휠라의 귀환’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휠라가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된 1990년대, 신제품 출시 소식만 알려지면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는 바람에 판매 개시일 당일 오후 5시만 돼도 물건이 동났다던 ‘전설’ 같은 선배들의 증언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휠라는 국내 진출 초기인 1990년대, 젊은 이미지의 프리미엄 스포츠 제품, 그것도 잘나가는 해외 브랜드로 인식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고루한 이미지가 더해지고 주 고객층이 중장년층으로 바뀌는가 하면 주력하던 아웃도어 관련 시장의 쇠락까지 겹치면서 3년 전부터 매출과 브랜드 이미지 모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쇠락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던 휠라가 갑자기 지난해부터 중고생을 비롯한 젊은 고객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화제의 브랜드가 됐다. 테니스화를 재해석한 ‘코트디럭스’란 운동화는 중고생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10만 켤레만 팔아도 ‘대박’이라는 국내 운동화 업계에서 70만 켤레 판매(첫 출시 시기인 2016년 9월 말∼올해 9월 중순 누적)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2011년 인수한 미국 골프기업 ‘아쿠쉬네트’가 지난해 뉴욕주식거래소(NYSE)에 상장하고, 이 회사가 휠라의 자회사로 편입된 데 힘입어 올 상반기(1∼6월) 국내 패션 기업 가운데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내놓는 제품 모두 이른바 ‘대박’을 치면서 여전히 불황의 그늘에서 허덕이는 국내 패션 업계 내 경쟁자들조차 “요즘 장사가 되는 곳은 휠라밖에 없다”는 얘기를 할 정도다. 도대체 이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990년대에 이어 최근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받는 휠라의 턴어라운드 전략을 DBR이 집중 탐구했다.
‘Sell side’ 전략, “당신의 소비자는 누구?”
하지만 한국에서는 생산 전략만으로 승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유통 구조와 관련해 복잡한 이슈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브랜드로부터 제품을 사들여 자신의 매장에서 판매하며 재고 리스크를 직접 지는, 이른바 직매입 방식이 정착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판매 공간을 각 브랜드에 임대할 뿐 재고 관리나 머천다이징 구성은 각 입점 업체가 도맡아 하는 모델이 발달돼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입점 브랜드들은 유통업체에 내야 하는 임대료까지 고려해 제품 가격을 다소 비싸게 매길 수밖에 없다. 가치소비가 자리 잡은 최근 몇 년 새, 온라인 쇼핑을 통해 해외에서 직접구매(직구)를 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것도 이러한 특수한 유통 구조 탓에 상당수 수입 제품에 대한 소비자 가격이 해외에 비해 비싸게 매겨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일한 제품에 대한 국내 판매가가 미국 내 판매가의 2배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이러한 구조로 인해 많은 고객들은 국내 오프라인 유통 업체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래서 소비자 가격을 적정가로 책정하는 ‘Sell side’에서의 혁신이 절실했다. 이미 가성비에 눈을 뜬 국내 고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거품을 제거해 매력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야 했다. 이에 휠라의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고민 끝에 윤 부사장의 주도로 도입한 것이 미국식의 도매(wholesale)모델이었다. 사실 주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는 물론 휠라USA(미국법인)마저도 90%, 심지어 100%를 소매 업체에 물건을 납품하는 도매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적인 유통 구조를 흔들지 않고서는 ‘Sell side’에서 진정한 혁명이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았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도매 모델이라면 유통업체가 주문하는 양만 생산하면 되기 때문에 제조업체 또는 브랜드로서는 리스크를 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매장 임대 방식으로 직접 소매 판매를 할 경우 판매가 부진하면 나머지 물량이 고스란히 재고로 남는다. 재고는 당해 년도에 마이너스 비용으로 인지되는데 경영자가 이 마이너스 수치를 남기지 않기 위해선 소비자 가격을 올려 최초 판매 시 마진을 높이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이렇게 소비자 가격이 높게 책정돼, 이후 아웃렛 채널을 전전하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마진을 보장할 수 있다. 따라서 재고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적정 가격을 유지하는 비결이 될 수 있다. 휠라 역시 이런 해결책에 집중했다.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신발 편집숍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정착되는 가운데 휠라는 ‘ABC마트’ ‘슈마커’ ‘폴더’ ‘레스모아’ 같은 신발 전문 매장에 도매 형태로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소매 위주였던 기존 휠라의 운동화 비즈니스 모델에서 도매 비중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재고 부담률을 낮추자 소비자 가격도 내릴 수 있었다. 예컨대 베스트셀러인 휠라의 ‘디스럽터2’ 운동화는 미국 판매가(60달러)와 한국의 소매가(6만9000원)가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과거 국내 판매가가 미국 대비, 약 30%가량 비쌌던 데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던 셈이다.
사실 이렇게 ‘Sell side’와 ‘Buy side’를 통해 원가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경우 많은 브랜드들은 판매 가격에 손을 대지 않고 마진율을 높이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휠라는 유통 구조 탓에 생긴 거품을 빼고 ‘적정 가격’을 찾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게 판매가를 재정립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턴어라운드에 도움이 되리라고 봤다.
이 같은 가격 혁신 덕에 운동화의 평균 판매 가격은 10만 원대를 상회하던 것이 6만, 7만 원대로 대폭 하향 조정됐다. 디자인이나 품질은 오히려 높임으로써 기존 고객들도 만족했고, 높은 가격과 올드한 이미지 탓에 발길이 뜸했던 10대, 20대 초반 고객들이 매장에 제 발로 찾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입소문에 강한 이들이 자신과 휠라와의 다양한 ‘접점’을 사진과 글, 동영상 등으로 스스로 알리기 시작하면서 매장도, 제품도, 이들이 무심하게 입고 신고 있는 모습의 사진 한 장도 모두 홍보 수단이 됐다.
예컨대 20대 여성들이 즐겨 찾는 뷰티 커뮤니티 내 1993년 이전 출생자(24세 이하)들이 주로 모이는 게시판에는 ‘휠라 헤리티지 진심 존예 비욘세도 입은 듯’, ‘휠라 디스럽터 살까요, 말까요’ 등 휠라 제품 구매와 관련한 또래 친구들의 의견을 구하는 문의글이 지금도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가성비를 내세운 후속 제품들도 인기를 끌었다. 2만9000원대 티셔츠인 ‘헤리티지 빅로고 반팔 티셔츠’, 3만9000원대 캔버스화 ‘클래식 킥스’ 등 유명 브랜드 제품이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이 속속 등장하자 10대의 호응은 더욱 커졌다.
밀레니얼세대에 프리미엄이란?
일단 제조업의 핵심 뼈대가 되는 원가 관리 및 생산, 유통 구조가 효율적인 방향으로 확립되자 ‘가격 혁신’에 맞춘 브랜드의 성격이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가격 문턱이 낮아지자 10대, 20대가 기웃댔다. 휠라 특유의 빅 로고는 마침 불어닥친 복고 열풍에 힘입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휠라는 100년 역사의 브랜드 정체성을 살려 테니스화를 테마로 한 ‘코트디럭스’ 운동화를 지난해 9월 선보였다. 6만 원대임에도 10만 원대를 상회하는 글로벌 브랜드와 비교해 디자인적으로도 훌륭하다고 판단한 10대 고객이 몰리면서 한때 일부 학교에선 이 운동화가 ‘국민 신발’로 불리기도 했다.
올 1월에는 세계적인 패션모델 켄들 제너가 신예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 휠라가 협업해 내놓은 검은색 휠라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주요 잡지에 일제히 실려 젊은 층 사이에 화제가 됐다. 리한나, 비욘세 등 핫 한 스타들이 협찬이 아닌 자신의 일상복으로 휠라 티셔츠나 운동화를 착용한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등장하면서 관련 뉴스가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에 이어 산다라 박 등 국내 스타들이 휠라의 패션 아이템을 이용해 스타일링한 사진도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 고객들이 속속 휠라를 ‘쿨’ 한 브랜드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실 백화점을 주요 유통 채널로 삼아온 브랜드가 젊은 층을 공략하는 접근 가능한(accessible) 가격대의 상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리스크가 큰 전략일 수 있다. 프리미엄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휠라 측은 브랜드 턴어라운드의 1차 수단이자 목적을 밀레니얼세대를 주축으로 한 10대, 20대 젊은 층 고객의 재확보로 생각했기에 이들이 생각하는 프리미엄, 더 나아가 럭셔리의 정의는 다를 것으로 판단했다.
즉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 접근성이 낮고, 그래서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지 않는 브랜드보다 또래 소비자들 사이에 많이 노출되고 회자되는 가시성(visibility)이 이들 1020세대 사이에선 오히려 프리미엄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랜 논의를 거쳐 조심스럽게 내린 결정이었는데, 다행히 1020세대 고객군은 가격 하향 조정으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휠라가 지난 8월 평소 스포츠를 즐기는 전국 5대 광역시 거주 2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설문 조사 결과 휠라의 브랜드 스포츠군 내 브랜드 호감도는 6개월 사이 11위에서 7위로 네 단계 상승했다.
오히려 1차 가격을 고가로 책정한 뒤 여러 차례 세일을 하는 기존 판매 관행을 버리고 처음부터 ‘합리적인 가격을 매겼으니 세일은 하지 않는다’고 설득한 전략이 합리성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겐 잘 통했다.
브랜드 전문가로 수십 년을 살았던 임원들 중 상당수는 도매 위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고, 제품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것을 반대했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걱정한 것이다. 이들을 설득해 전략을 마침내 급선회한 데는 윤 부사장의 뚝심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가격이 비싸서 ‘있어 보이는 것’만이 과연 브랜드 가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고민했다.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남들이 입고 다녀 어디서든 눈에 띄고 이것이 친숙도로 이어지는 것이 밀레니얼세대 사이에선 브랜드 선호도로 연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휠라의 변신에 가장 먼저 반응한 10대 고객을 위해 ‘통 큰’ 이벤트를 준비한 것도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SNS 등 즉각적인 소통 수단을 통해 상대방과 직접적인 교류를 원하는 이들 고객층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에 민감하다.
‘코트디럭스’로 인기를 끌었을 때 진행한 ‘코트디럭스 우리반 [찍었]스’라는 온라인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의 중고생들에게 선생님과 함께한 재미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주면 10학급을 선정해 학생 전원에게 신제품 신발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이벤트는 예상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무려 660개 학급이 최종 신청했다.
예상 밖의 참여도를 확인한 경영진은 고민에 빠졌다. 1만8000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영상을 준비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관여도가 얼마나 높아졌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10학급만 뽑는 것은 이런 잠재적 팬층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여겼다. 이에 최고경영진의 결정으로 응모한 전체 학급, 모든 학생들에게 운동화를 증정하기로 했다. 이후 휠라 홈페이지는 ‘고객으로서 큰 감동을 받았다’는 학생들의 메시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결과적으로 ‘통 큰’ 이벤트로 아름답게 마무리했지만 여기에도 전략이 숨어 있었다.
당시 배포한 신발은 현재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앞으로 판매해야 할 전략상품이었다. ‘반스’ ‘컨버스’ 등 쟁쟁한 경쟁사들이 자리 잡은 캔버스화 시장에서 입소문이 나기 쉬운 채널을 통해 고객 감동을 먼저 실현하면서 이 제품 역시 베스트셀러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 디자이너에서부터 인기 식품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오가는 컬래버레이션 전략도 젊은 층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외 셀러브리티들이 휠라를 다시 보게 한 계기가 됐던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의 협업은 디자이너 측이 먼저 요청해 성사된 일이었다. 최근 트렌드 세터들에게 각광받는 신예 디자이너인 그는 휠라와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자신의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여 더욱 큰 화제가 됐다. 파스텔 핑크색으로 여고생들에 큰 인기를 끈 코트디럭스 ‘딸기우유’의 인기도 상당했다. 이어 빙그레 메로나 측에는 휠라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파스텔 민트색이 시그니처 컬러인 ‘코트디럭스 메로나’ 버전은 출시 첫 달인 올 5월, 초도 물량 6000켤레가 모두 판매돼 추가 생산에 들어가는 등 큰 인기를 모았다.
성공요인과 시사점 - 10대 타깃 마케팅
최근 휠라가 재기에 성공한 이면에는 혁신적인 생산방식과 유통방식을 도입해 제품의 질은 유지하면서 가격에 들어간 거품을 빼낸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가성비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생산방식과 유통 방식만으로 휠라의 최근 성공을 바라보면 안 된다. 휠라가 최근 돌풍의 중심에 선 데는 10대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휠라의 가성비 좋은 제품이 10대들에게 각광받게 된 데는 휠라가 이들 세대와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진행해 이들에게 ‘핫’ 하고 친근한 브랜드가 된 데 있다. 10대들에게는 또래 문화라는 중요한 코드가 있다. 즉,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그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20대와는 달리 10대들은 일정한 시간을 함께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한다는 특성이 있다. 당연히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거나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제품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발달심리학자들에 따르면, 10대들이 겪는 청소년기는 일생 중에 가장 자존감이 낮은 시기로 상대적으로 쉽게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속 욕구(Need to Belong)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시기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10대들은 끊임없이 또래집단을 향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를 하려고 애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또래들 집단에서 유행하는 상품을 함께 소비함으로써 친구들과 동질의식을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들은 아주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테크노 홀릭’ ‘Generataion Z’라고 불리는 10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 콘텐츠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문화들, 예를 들어 게임 문화 또는 유튜브 크레에이터와 같은 1인 미디어 문화에 아주 익숙하다. 또 다른 세대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SNS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이들 10대, ‘Generation Z’가 좋아하는 문화적 코드에 맞춰서 취향저격 마케팅을 따로 진행하고 있다.
이 10대들에게 한번 나와 잘 통하는, 즉 나와 ‘코드’가 맞는 제품이라고 평가받게 되면 그 인기가 빠르게 확산된다. 한때, 10대들의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패션 신발 브랜드 ‘스베누’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스베누는 10대들이 좋아하는 아이유나 AOA 같은 인기 아이돌을 CF 모델로 삼고, 10대들이 좋아하는 게임 관련 산업과 컬래버레이션을 하거나 후원을 하는 마케팅을 통해 단시간에 10대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잇(it)’ 한 아이템이 됐다. 강력한 브랜드 파워도 없고, 유명 해외 브랜드도 아니었지만 브랜드 출시 6개월 만에 10만 켤레를 판매하는 등 10대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것은 이 브랜드가 10대 소비층을 집중적으로 타기팅했기 때문이다.
휠라가 최근 10대 사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잇(it)’ 한 아이템으로 이 브랜드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휠라가 10대에게 접근한 방식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휠라가 정교하게 10대들의 취향을 분석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코드를 만들어내고,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채널들을 통해 활발하게 마케팅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10대 사이에 베스트 아이템인 코트디럭스 중 핑크 색상 제품은 ‘딸기 우유’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휠라는 타깃 고객의 코드에 맞는 애칭을 만들어내는 형태로 광고를 제작해왔다. 휠라 운동화의 인기와 더불어 빅사이즈 티셔츠 역시 F자가 한글의 ‘ㅋ’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ㅋㅋㅋ 티’라는 장난스런 이름으로 불린다.
또한 다른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활동을 할 때도 평소 10대들이 친근하게 생각하는 브랜드를 엄선했다. 10대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제품군 중 하나가 스낵류다. 휠라는 ‘메로나’ ‘펩시’처럼 이들이 즐겨 먹는 스낵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해 한정판 모델을 내놓았다. 아이스크림과 운동화의 만남을 내세운 메로나와 휠라의 ‘맛있는 운동화’ 컬래버레이션 역시 전통적인 협업 공식에서 벗어나 ‘의외성’이라는 코드로 SNS상에서 큰 이슈를 만들어냈다. ‘먹지 마세요. 내 발에 양보하세요’라는 내용의 광고 카피 역시 10대들이 좋아하는 ‘병맛’ 코드를 적극적으로 살렸다.
또 10대 맞춤형인 다양한 SNS 캠페인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10대와 소통했다. 10대들은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싫어하고, 스스로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며, 다양한 쌍방향 SNS 캠페인을 만들어냈다. ‘코트디럭스 우리반 [찍었]스 콘테스트’ 이벤트 역시 휠라가 10대들이 크게는 학교, 작게는 학급이라는 집단을 통해 강력한 또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잘 알고, 이벤트 자체를 개인이 아닌 학급 친구들과 함께하며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함께 미션을 완수해나가는 형태로 만들었다.
10대들이 가장 많이 쓰는 인터넷 단어 중 하나가 ‘ㅍㅌ’다. 이 피읖티읕이 뜻하는 바는 ‘평균 타율’이다. 10대들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를 가면 많이 나오는 말들이 ‘남자 ㅍㅌ 치는 청바지 추천해달라’ ‘이 제품 사면 주변에서 ㅍㅌ 쳤다는 말 듣겠죠’ 등이다.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주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바로 10대란 의미다.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동시에 또래 집단에서 조금만 튀게 보이면 SNS 같은 곳에서 ’관심종자(관종)’이란 여론재판 형태의 비난을 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 역시 이들이란 뜻이다.
이런 이유로 10대들에게 통하는 코드만 잘 읽어낼 수 있다면 이들 집단에서 단시간에 사랑받는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이들 10대에 특화된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내 패션 브랜드 버커루가 10대 중고등학생들의 취향을 분석해 그들이 좋아할 만한 청바지 모델인 ‘업라이트4핏’을 내놓거나 뉴발란스가 10대들이 좋아하는 패션 트렌드인 ‘오버핏’과 ‘후드 탈부착’이라는 특징을 살린 ‘코치 재킷’을 선보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구매력이 약한 집단으로 취급되는 10대 맞춤형 제품 및 브랜드들이 앞으로도 많이 탄생할 것으로 본다.
과거 기업들은 10대 소비자들을 구매력이 크지 않는, 부모들의 재정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은 수동적인 소비자 집단이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이들 집단은 20대와 함께 묶여서 취급을 받거나 특별히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 세대가 도래하면서 이제 이들은 소비자 문화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집단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디지털 세상은 10대에게 최고의 놀이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인터넷 기기를 통해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해온 이들 세대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들을 양산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나간다. 이들은 능숙한 ‘디지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인 동시에 ‘무나(무료 나눔)’ ‘교신(교환 신청)’ ‘생정(생활 정보)’과 같은 인터넷 플랫폼 기반의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고 선도하는 세대다. 이제 기업들은 휠라처럼 10대와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모바일 시대의 출발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 세대인 지금 10대가 만들어갈 미래의 소비 지형은 현재 기성세대가 이해하는 것과 아주 다를 수 있다. 10대를 잘 이해하는 기업만이 미래 사회에서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seungyun@konkuk.ac.kr
이승윤 교수는 성균관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웨일스대에서 소비자 심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컴퍼니인 닐슨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국내외 마케팅 리서치에 참여했다. 캐나다 맥길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비영리 연구·학술 단체인 디지털마케팅연구소의 디렉터를 역임하며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바이럴-입소문을 만드는 SNS의 법칙, 구글처럼 생각하라-디지털 시대 소비자 코드를 읽는 기술, 디지털 소셜 미디어 마케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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