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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휠라의 턴어라운드 전략

어? 이 신발은 우리 취향을 잘 알아, 10대와 소통한 휠라의 ‘화려한 부활’

이승윤,김현진 | 234호 (2017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휠라는 국내 진출 초기인 1990년 대에는 젊은 이미지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됐다. 하지만 주 고객층이 중장년층으로 바뀌고 주력하던 아웃도어 시장이 쇠락하면서 약 3년 전부터 고전을 겪었다. 쇠락해가던 이 브랜드는 갑자기 지난해부터 중고생을 비롯한 젊은 고객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화제가 됐다. 브랜드 히스토리를 살려 테니스화를 재해석한 ‘코트디럭스’는 무려 70만 켤레가 판매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휠라가 재기에 성공한 주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혁신적인 생산방식과 유통방식 도입으로 제품의 질은 유지하면서 가격에 들어간 거품을 빼낸 것이 주효했다. 즉 10대, 20대 젊은 고객들이 인지하는 ‘프리미엄’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며 이들이 꼽는 핵심 가치인 ‘가성비’를 공략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경민(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지난 2월11일 오전. 서울 이태원의 휠라 이태원 메가스토어에서 열린 ‘휠라 더블 디럭스 데이’에는 영하의 한파를 뚫고 모여든 사람들로 줄이 약 100m가량 길게 늘어섰다. 휠라의 인기 슈즈 브랜드인 ‘코트디럭스 커플 운동화’ 1+1 세트와 커플 티셔츠가 담긴 스페셜 패키지를 운동화 한 켤레 가격(6만9000원)에 선착순 100커플에게 판매하는 이벤트가 펼쳐진 날이었다.

두 명이 함께 짝을 지어 방문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음에도 행사 시작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기 한참 전인 오전 7시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준비한 상품은 이벤트 시작 1시간도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이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본 휠라 직원들은 벅찬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혜택이 많은 이벤트였다 해도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해외 럭셔리 브랜드 또는 트렌드에 민감한 ‘핫’ 한 브랜드에서나 일어나는 깜짝 매진 행렬은 나름 ‘이변’이었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가 주최하는 행사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린 것은 최근 수년 새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근무해 휠라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직원일수록 ‘휠라의 귀환’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휠라가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된 1990년대, 신제품 출시 소식만 알려지면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는 바람에 판매 개시일 당일 오후 5시만 돼도 물건이 동났다던 ‘전설’ 같은 선배들의 증언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휠라는 국내 진출 초기인 1990년대, 젊은 이미지의 프리미엄 스포츠 제품, 그것도 잘나가는 해외 브랜드로 인식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고루한 이미지가 더해지고 주 고객층이 중장년층으로 바뀌는가 하면 주력하던 아웃도어 관련 시장의 쇠락까지 겹치면서 3년 전부터 매출과 브랜드 이미지 모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쇠락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던 휠라가 갑자기 지난해부터 중고생을 비롯한 젊은 고객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화제의 브랜드가 됐다. 테니스화를 재해석한 ‘코트디럭스’란 운동화는 중고생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10만 켤레만 팔아도 ‘대박’이라는 국내 운동화 업계에서 70만 켤레 판매(첫 출시 시기인 2016년 9월 말∼올해 9월 중순 누적)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2011년 인수한 미국 골프기업 ‘아쿠쉬네트’가 지난해 뉴욕주식거래소(NYSE)에 상장하고, 이 회사가 휠라의 자회사로 편입된 데 힘입어 올 상반기(1∼6월) 국내 패션 기업 가운데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내놓는 제품 모두 이른바 ‘대박’을 치면서 여전히 불황의 그늘에서 허덕이는 국내 패션 업계 내 경쟁자들조차 “요즘 장사가 되는 곳은 휠라밖에 없다”는 얘기를 할 정도다. 도대체 이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990년대에 이어 최근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받는 휠라의 턴어라운드 전략을 DBR이 집중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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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라의 흥망성쇠 ‘월급쟁이의 신화’.

윤윤수 휠라 글로벌·아쿠쉬네트컴퍼니 회장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언론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표현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영어를 무기로 미국의 유통회사 JC페니 및 국내 스포츠화 전문 브랜드 화승의 수출 담당 이사가 된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스포츠 전문 브랜드 시장에 눈을 뜨게 됐다.

이탈리아의 유명 브랜드였던 휠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0년대 초반 해외 출장길에서였다. 휠라 브랜드로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 잘 팔릴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는데 이미 이 브랜드의 미국 내 판매 라이선스는 한 미국인이 갖고 있었다. 사업권을 온전히 갖지 못하니 당장 큰돈이 되지 않더라도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에 윤 회장은 그와 동업해 미국 내에서 판매 채널을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휠라 글로벌 전체에서 신발 매출이 의류 매출을 뛰어넘을 정도의 성과를 냈다. 휠라 본사는 윤 회장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고 1991년 이탈리아 본사는 신발 판매 라이선스까지 부여하면서 윤 회장에게 직접 휠라코리아를 설립하라고 독려했다.

휠라코리아의 지분 90%는 이탈리아 본사가 소유하고 10%는 윤 회장이 갖는 조건으로 휠라 본사가 전문경영자로 윤 회장을 낙점한 셈이었다.

당시 연봉 100만 달러를 받은 덕에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그는 한국 사업은 물론 휠라 본사의 미국 내 운동화 사업도 주도하는 등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나갔다. 1991년, 자본금 3억5000만 원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해마다 평균 80.8%의 높은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본사도 놀랄 정도의 신기록을 경신해나갔다. 한국법인 창립 10년 만에 전 세계 휠라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매출 대비 순이익을 기록하는가 하면 외형적으로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글로벌 시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1


1992년 4월부터 내수 사업을 시작한 윤 회장은 전 세계에 판매하는 휠라 신발 재료 공급에 대한 관리, 즉 수출사업과 국내 비즈니스를 함께 담당했다. 당시 신발 사업은 디자인은 미국이, 개발 및 자재 공급은 한국이, 조립생산은 동남아에서 실시하는 삼각분업 시스템을 도입해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한국의 신발 사업이 1990년대 들어 완전히 사양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판단될 때 윤 회장은 사양의 양상이 조립 부문에서만 나타난 것이지 자재 부문에선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에 과감하게 신발개발센터를 국내에 설립함으로써 한국이 전 세계 휠라 운동화의 자재 공급 센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다.

국내에서 휠라는 이탈리아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1997년 12월, 외환위기와 함께 위기를 맞았다. 당시 국산품 애용 운동 붐이 불면서 휠라는 고가의 해외 브랜드라는 이유로 국민 정서에 반하는 사치품으로 인식됐다. 윤 회장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정면 돌파 전략을 썼다.

주요 일간지에 ‘무엇이 진정 국산인가?’ ‘WTO 체제하에서 국산품의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카피가 실린 광고를 실은 것이다.

비록 해외 브랜드 이름을 쓰지만 국내 판매 제품의 98%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연간 1조6000억 원에 달하는 신발을 수출하고 있는 휠라 제품을 과연 수입품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도적으로 논쟁을 일으킨 결과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위기 대처 능력은 이후 국내 경영학계에서 기업가정신을 연구할 때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됐다.2


스포츠의류가 주 상품군이었던 브랜드에서 운동화 사업을 적극 전개해 오히려 새로운 상품군이 기존 상품군 매출을 뛰어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2007년, 드디어 휠라코리아는 모기업인 휠라글로벌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인수 당시 81년 전통의 이탈리아 브랜드였던 휠라는 전 세계 50개국에 1만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었으며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등과 더불어 세계 4대 스포츠 브랜드 중 하나로 꼽혔다.

특히 한국에 진출한 해외 브랜드를 운영해 온 한국 지사가 다국적 기업 본사를 인수한 국내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휠라 측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성공의 기틀을 쌓은 뒤 글로벌 브랜드로서 세계 시장 장악에 나서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국내외에서 새로운 날개를 달고 탄력을 받아 비상하던 휠라는 그러나 2011년 즈음, 소비 침체와 트렌드 변화에 밀려 고전하게 됐다. 2000년대 중반까지 나이키, 아디다스와 함께 국내 스포츠의류 시장에서 ‘빅3’ 자리를 지켜왔지만 경쟁 브랜드의 약진 속에 부진의 늪에 빠진 것이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아웃도어 열풍에 가세해 2010년 ‘휠라 스포츠’란 이름으로 아웃도어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브랜드명을 ‘휠라 아웃도어’로 바꾼 뒤 사업을 본격 확장했지만 결국 시장 포화와 불황으로 영업을 중단했다.

한때 젊은이들이 사랑했던 브랜드는 이제 중장년층의 브랜드로 인식되며 경영진의 바람과 달리 빠르게 노쇠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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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를 삼킨 지사, 그 이후

윤윤수 회장의 장남, 윤근창 부사장(42)은 휠라코리아가 막 글로벌 본사를 인수한 시점인 2007년, 미국에서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자연스레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미국 현지법인, 휠라USA에서 사업개발 및 라이선싱·소싱담당자로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으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붕괴되는 미국의 신발 시장을 지켜봤다. 2008년 이후 사람들은 지출을 자제했고 가격 대비 품질, 즉 가성비를 꼼꼼히 살피며 보수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휠라로서는 지금까지의 상품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됐다. 2007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내 주식시장도 호황이었고, 사람들의 씀씀이도 컸던 만큼 휠라뿐 아니라 많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미국 시장에서 고가 제품 위주의 프리미엄 마케팅 전략을 썼다. 하지만 비싼 제품에 지갑을 닫은 고객들은 고가 제품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각 업체는 ‘프리미엄 포지셔닝’ 대신 ‘가성비(price value)’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상가에서 일부 마진을 희생하고 할인을 하는 디스카운트 전략은 마진에 미칠 타격이 커 보였다.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킬 위험도 있었다.

윤 부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에 소싱 전략에 손을 대기로 했다. “원가 관리로 소비자가는 낮추되 마진도 최대한 보호하는 방식을 택해 판매 사이드(Sell side)에서뿐 아니라 구매 사이드(Buy side)’에서도 가격 혁신을 도모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판매처인 휠라도 마진을 낮추지 않을 수 있었고, 소비자로서도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같은 구조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운동화의 전통적 제조 모델을 흔드는 ‘혁신’이 필요했다.

전통적으로 운동화 생산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머천다이저(MD)가 신발을 기획하면 특정 공장에 비용을 지불하고 샘플을 제작하거나, 구매단가에 샘플제작 비용을 추가한다. 그리고 나선 결국 이 샘플을 만든 공장에 생산을 의뢰한다. 자기 자본을 들여 공장을 짓고, 스스로 샘플을 제조하는 것보다 투자비가 덜 들고 인력시장 불안에 따른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세계 유수 브랜드들도 모두 이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先) 샘플 제작, 후(後) 주문 방식을 택할 경우 묘한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 딜레마였다. 여러 가지 편의상 샘플을 제조했던 공장에 관행적으로 대량 생산을 의뢰하다 보니 주문을 넣은 브랜드 입장에서는 생산과 관련한 협상 파워를 잃게 된 것이다.

특히 불황기에 이러한 생산 구조가 불리했다. 공장 측은 생산 단가를 낮추려 하지 않았고 소비자는 저렴한 제품만 찾으니 ‘마진의 덫’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싸게 사려는 소비자들이 많은 ‘Sell side’와 생산가를 낮추지 않으려는 생산 공장이 포진한 ‘Buy side’에서 모두 압박을 받았다. 휠라는 글로벌 선두주자들이 세운, 전통적 제조 구조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2008년, 오랜 현장 조사 끝에 기존 역학구조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다. ‘통 큰 투자’로 샘플 제작 공장 역할까지 수행하는 소싱센터를 중국과 홍콩지역에 설립하고 신발 샘플을 100% 자체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직접 개발한 샘플을 들고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거꾸로 가격을 제시하게 하는 입찰(bid out) 방식을 택하니 생산단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렇게 ‘Buy side’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 경쟁력을 소비자가에 그대로 반영해 판매가를 낮춤으로써 ‘Sell side’에서도 가격 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휠라코리아가 휠라글로벌을 인수해 처음으로 미국 법인을 운영하던 당시 매출액은 3500만 달러, 영업적자는 3500만 달러였다. 그러나 지난해 7월, 휠라USA의 최고재무책임자(CFO)까지 지낸 윤 부사장이 미국에서의 직함을 모두 내려놓고 귀국하던 당시에는 매출이 3억2000만 달러로 인수 당시 대비 10배가량 뛰었다. 순영업이익 역시 2200만 달러로 5700만 달러에 달하는 개선효과를 봤다. 신발 생산과 관련된 ‘패러다임 시프트’ 전략이 주효했다는 뜻이다. 이런 생산 구조가 안착되고 미국 사업이 흑자 전환되기까지는 약 3년이 걸렸다.

특히 샘플의 개발 거점을 자체 운영하는 ‘Buy side 전략’은 휠라의 성공 사례를 지켜본 경쟁업체들조차 쉽게 모방하지 못하는 휠라만의 경쟁력이 됐다. 이들은 샘플 개발에 따른 투자비와 그 리스크를 온전히 한 브랜드가 감당하기에는 버겁다고 판단했기에 쉽사리 추격자로 나서지 못했다. 이처럼 자체 샘플 제작을 통해 제조의 역학관계를 바꾼 휠라의 ‘Buy side 전략’은 이 브랜드의 재기에 있어 혁신의 단초가 됐다.

휠라코리아 역시 이 무렵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윤 부사장도 2016년 7월부터 휠라코리아 운영에 전력을 다하면서 기존의 틀을 깨는 브랜드 리뉴얼 및 혁신 작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윤 부사장은 미국에서 경험했던 성공 공식을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마침 국내에서도 2008년 무렵의 미국에서처럼 가치소비 트렌드가 전파되고 있었다. 미국에서 이미 성공이 검증된, 그리고 중국 내 샘플 공장이 이미 가동을 시작해 바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Buy side 전략’은 시작 6개월 만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운동화 생산 프로세스를 따르자면 신발 부자재에 들어가는 원가뿐 아니라 인건비, 공장 측 마진까지 합쳐 공장이 제시하는 가격을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휠라는 운동화 생산과 관련한 오랜 노하우로 공장 측에도 적정 이윤을 보장할 수 있는 가격을 제시하고, 소비자 가격을 낮춰 많이 팔 요량으로 생산 물량을 늘린다. 따라서 공장 입장에서도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볼 수 있어 휠라의 발주 내역이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다.

특히 휠라가 전 세계에 보낼 운동화를 생산할 목적으로 국내 공장에 생산을 의뢰하는 물량은 그 양이 압도적이다. 한국이 이 글로벌 브랜드의 본사가 위치한 곳이다 보니 국내 판매 물량뿐 아니라 일부 해외 부문 물량도 생산하게 되는데 그 물량이 연간 3000만 켤레에 달한다. 그 뒤를 잇는 2위 발주 업체와도 격차가 극심하기에 협상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경쟁자들이 따라 하고 싶어도 이 정도의 가격 협상력이 없어 마진 구조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모방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패션업계의 분석이다.

 



‘Sell side’ 전략, “당신의 소비자는 누구?”

하지만 한국에서는 생산 전략만으로 승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유통 구조와 관련해 복잡한 이슈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브랜드로부터 제품을 사들여 자신의 매장에서 판매하며 재고 리스크를 직접 지는, 이른바 직매입 방식이 정착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판매 공간을 각 브랜드에 임대할 뿐 재고 관리나 머천다이징 구성은 각 입점 업체가 도맡아 하는 모델이 발달돼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입점 브랜드들은 유통업체에 내야 하는 임대료까지 고려해 제품 가격을 다소 비싸게 매길 수밖에 없다. 가치소비가 자리 잡은 최근 몇 년 새, 온라인 쇼핑을 통해 해외에서 직접구매(직구)를 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것도 이러한 특수한 유통 구조 탓에 상당수 수입 제품에 대한 소비자 가격이 해외에 비해 비싸게 매겨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일한 제품에 대한 국내 판매가가 미국 내 판매가의 2배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이러한 구조로 인해 많은 고객들은 국내 오프라인 유통 업체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래서 소비자 가격을 적정가로 책정하는 ‘Sell side’에서의 혁신이 절실했다. 이미 가성비에 눈을 뜬 국내 고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거품을 제거해 매력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야 했다. 이에 휠라의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고민 끝에 윤 부사장의 주도로 도입한 것이 미국식의 도매(wholesale)모델이었다. 사실 주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는 물론 휠라USA(미국법인)마저도 90%, 심지어 100%를 소매 업체에 물건을 납품하는 도매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적인 유통 구조를 흔들지 않고서는 ‘Sell side’에서 진정한 혁명이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았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도매 모델이라면 유통업체가 주문하는 양만 생산하면 되기 때문에 제조업체 또는 브랜드로서는 리스크를 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매장 임대 방식으로 직접 소매 판매를 할 경우 판매가 부진하면 나머지 물량이 고스란히 재고로 남는다. 재고는 당해 년도에 마이너스 비용으로 인지되는데 경영자가 이 마이너스 수치를 남기지 않기 위해선 소비자 가격을 올려 최초 판매 시 마진을 높이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이렇게 소비자 가격이 높게 책정돼, 이후 아웃렛 채널을 전전하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마진을 보장할 수 있다. 따라서 재고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적정 가격을 유지하는 비결이 될 수 있다. 휠라 역시 이런 해결책에 집중했다.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백화점이나 마트보다 신발 편집숍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정착되는 가운데 휠라는 ‘ABC마트’ ‘슈마커’ ‘폴더’ ‘레스모아’ 같은 신발 전문 매장에 도매 형태로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소매 위주였던 기존 휠라의 운동화 비즈니스 모델에서 도매 비중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재고 부담률을 낮추자 소비자 가격도 내릴 수 있었다. 예컨대 베스트셀러인 휠라의 ‘디스럽터2’ 운동화는 미국 판매가(60달러)와 한국의 소매가(6만9000원)가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과거 국내 판매가가 미국 대비, 약 30%가량 비쌌던 데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던 셈이다.

사실 이렇게 ‘Sell side’와 ‘Buy side’를 통해 원가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경우 많은 브랜드들은 판매 가격에 손을 대지 않고 마진율을 높이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휠라는 유통 구조 탓에 생긴 거품을 빼고 ‘적정 가격’을 찾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게 판매가를 재정립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턴어라운드에 도움이 되리라고 봤다.

이 같은 가격 혁신 덕에 운동화의 평균 판매 가격은 10만 원대를 상회하던 것이 6만, 7만 원대로 대폭 하향 조정됐다. 디자인이나 품질은 오히려 높임으로써 기존 고객들도 만족했고, 높은 가격과 올드한 이미지 탓에 발길이 뜸했던 10대, 20대 초반 고객들이 매장에 제 발로 찾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입소문에 강한 이들이 자신과 휠라와의 다양한 ‘접점’을 사진과 글, 동영상 등으로 스스로 알리기 시작하면서 매장도, 제품도, 이들이 무심하게 입고 신고 있는 모습의 사진 한 장도 모두 홍보 수단이 됐다.

예컨대 20대 여성들이 즐겨 찾는 뷰티 커뮤니티 내 1993년 이전 출생자(24세 이하)들이 주로 모이는 게시판에는 ‘휠라 헤리티지 진심 존예 비욘세도 입은 듯’, ‘휠라 디스럽터 살까요, 말까요’ 등 휠라 제품 구매와 관련한 또래 친구들의 의견을 구하는 문의글이 지금도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가성비를 내세운 후속 제품들도 인기를 끌었다. 2만9000원대 티셔츠인 ‘헤리티지 빅로고 반팔 티셔츠’, 3만9000원대 캔버스화 ‘클래식 킥스’ 등 유명 브랜드 제품이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이 속속 등장하자 10대의 호응은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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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세대에 프리미엄이란?

일단 제조업의 핵심 뼈대가 되는 원가 관리 및 생산, 유통 구조가 효율적인 방향으로 확립되자 ‘가격 혁신’에 맞춘 브랜드의 성격이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가격 문턱이 낮아지자 10대, 20대가 기웃댔다. 휠라 특유의 빅 로고는 마침 불어닥친 복고 열풍에 힘입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휠라는 100년 역사의 브랜드 정체성을 살려 테니스화를 테마로 한 ‘코트디럭스’ 운동화를 지난해 9월 선보였다. 6만 원대임에도 10만 원대를 상회하는 글로벌 브랜드와 비교해 디자인적으로도 훌륭하다고 판단한 10대 고객이 몰리면서 한때 일부 학교에선 이 운동화가 ‘국민 신발’로 불리기도 했다.

올 1월에는 세계적인 패션모델 켄들 제너가 신예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 휠라가 협업해 내놓은 검은색 휠라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주요 잡지에 일제히 실려 젊은 층 사이에 화제가 됐다. 리한나, 비욘세 등 핫 한 스타들이 협찬이 아닌 자신의 일상복으로 휠라 티셔츠나 운동화를 착용한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등장하면서 관련 뉴스가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에 이어 산다라 박 등 국내 스타들이 휠라의 패션 아이템을 이용해 스타일링한 사진도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 고객들이 속속 휠라를 ‘쿨’ 한 브랜드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실 백화점을 주요 유통 채널로 삼아온 브랜드가 젊은 층을 공략하는 접근 가능한(accessible) 가격대의 상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리스크가 큰 전략일 수 있다. 프리미엄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휠라 측은 브랜드 턴어라운드의 1차 수단이자 목적을 밀레니얼세대를 주축으로 한 10대, 20대 젊은 층 고객의 재확보로 생각했기에 이들이 생각하는 프리미엄, 더 나아가 럭셔리의 정의는 다를 것으로 판단했다.

즉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 접근성이 낮고, 그래서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지 않는 브랜드보다 또래 소비자들 사이에 많이 노출되고 회자되는 가시성(visibility)이 이들 1020세대 사이에선 오히려 프리미엄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랜 논의를 거쳐 조심스럽게 내린 결정이었는데, 다행히 1020세대 고객군은 가격 하향 조정으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휠라가 지난 8월 평소 스포츠를 즐기는 전국 5대 광역시 거주 2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설문 조사 결과 휠라의 브랜드 스포츠군 내 브랜드 호감도는 6개월 사이 11위에서 7위로 네 단계 상승했다.

오히려 1차 가격을 고가로 책정한 뒤 여러 차례 세일을 하는 기존 판매 관행을 버리고 처음부터 ‘합리적인 가격을 매겼으니 세일은 하지 않는다’고 설득한 전략이 합리성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겐 잘 통했다.

브랜드 전문가로 수십 년을 살았던 임원들 중 상당수는 도매 위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고, 제품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것을 반대했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걱정한 것이다. 이들을 설득해 전략을 마침내 급선회한 데는 윤 부사장의 뚝심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가격이 비싸서 ‘있어 보이는 것’만이 과연 브랜드 가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고민했다.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남들이 입고 다녀 어디서든 눈에 띄고 이것이 친숙도로 이어지는 것이 밀레니얼세대 사이에선 브랜드 선호도로 연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휠라의 변신에 가장 먼저 반응한 10대 고객을 위해 ‘통 큰’ 이벤트를 준비한 것도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SNS 등 즉각적인 소통 수단을 통해 상대방과 직접적인 교류를 원하는 이들 고객층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에 민감하다.

‘코트디럭스’로 인기를 끌었을 때 진행한 ‘코트디럭스 우리반 [찍었]스’라는 온라인 캠페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의 중고생들에게 선생님과 함께한 재미있는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주면 10학급을 선정해 학생 전원에게 신제품 신발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이벤트는 예상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무려 660개 학급이 최종 신청했다.

예상 밖의 참여도를 확인한 경영진은 고민에 빠졌다. 1만8000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영상을 준비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관여도가 얼마나 높아졌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10학급만 뽑는 것은 이런 잠재적 팬층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여겼다. 이에 최고경영진의 결정으로 응모한 전체 학급, 모든 학생들에게 운동화를 증정하기로 했다. 이후 휠라 홈페이지는 ‘고객으로서 큰 감동을 받았다’는 학생들의 메시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결과적으로 ‘통 큰’ 이벤트로 아름답게 마무리했지만 여기에도 전략이 숨어 있었다.

당시 배포한 신발은 현재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앞으로 판매해야 할 전략상품이었다. ‘반스’ ‘컨버스’ 등 쟁쟁한 경쟁사들이 자리 잡은 캔버스화 시장에서 입소문이 나기 쉬운 채널을 통해 고객 감동을 먼저 실현하면서 이 제품 역시 베스트셀러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 디자이너에서부터 인기 식품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오가는 컬래버레이션 전략도 젊은 층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외 셀러브리티들이 휠라를 다시 보게 한 계기가 됐던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의 협업은 디자이너 측이 먼저 요청해 성사된 일이었다. 최근 트렌드 세터들에게 각광받는 신예 디자이너인 그는 휠라와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자신의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여 더욱 큰 화제가 됐다. 파스텔 핑크색으로 여고생들에 큰 인기를 끈 코트디럭스 ‘딸기우유’의 인기도 상당했다. 이어 빙그레 메로나 측에는 휠라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파스텔 민트색이 시그니처 컬러인 ‘코트디럭스 메로나’ 버전은 출시 첫 달인 올 5월, 초도 물량 6000켤레가 모두 판매돼 추가 생산에 들어가는 등 큰 인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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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휠라는 펩시콜라, 마운틴듀 등 유명 식음료 브랜드와 협업한 의류를 내놓는가 하면 일본의 대표 스트리트 편집숍 브랜드 ‘해브 어 굿 타임’과 함께한 의류 및 액세서리를 지난 6월 한일 양국에서 동시 출시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이종의 브랜드 또는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 전략은 가격을 낮추고도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디자인과 테마의 중심에는 철저히 브랜드의 역사, 즉 ‘헤리티지’를 담아 프리미엄 마케팅의 미덕을 이어나갔다.

1911년에 이탈리아에서 설립됐고 1972년 이탈리아의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그룹(Fiat)이 인수하면서 단순 의류 브랜드를 넘어 스포츠 레저 브랜드로 발전한 휠라는 1970년대 중반, 테니스 스타였던 비외른 보리에게 이 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착용하게 함으로써 스포츠 마케팅을 세계 최초로 시도한 역사가 있다. 테니스를 기반으로 한 유구한 역사는 최근 젊은 층들에게도 소구할 만한 스토리텔링 요소가 됐고, 이러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 8월 광주 동구 충장로 메가스토어를 브랜드 역사와 스토리를 담은 ‘헤리티지 뮤지엄’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한편 윤 회장은 2010년 이탈리아 비엘라에 브랜드 탄생 100주년 기념 박물관을 열었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럭셔리 브랜드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고안할 때 역사 속 ‘DNA’를 활용하게 함으로써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갖게 하는 것과 같은 전략을 취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마침 레트로 열풍까지 불면서 헤리티지 전략은 더욱 빛을 발했다.

윤 회장은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브랜드 대표 회의 ‘FILA 20th GCM 2016’에서도 ‘헤리티지’를 주제로 향후 브랜드 운영을 위한 발전 전략을 논했다. 연 2회, 주로 휠라USA 사무실이 있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됐던 휠라 GCM은 휠라코리아의 글로벌 브랜드 사업권 인수 1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무대를 서울로 옮겼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각국 지사 및 라이선시 대표 100여 명에게 윤 회장은 “스포츠 브랜드 중 드물게 휠라만이 가진 100년 이상의 헤리티지를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유구한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조합돼 탄생한 ‘휠라 헤리티지’ 라인은 휠라가 진출한 세계 곳곳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었기에 해당 라인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각국 대표들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예컨대 70만 켤레를 판매하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코트디럭스’에 이어 선보인 ‘디스럽터2’는 1997년 출시된 ‘디스럽터’의 후속 버전이다. 글로벌 론칭 19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 공식적으로 출시한 제품으로 복고적 감성을 재해석한 것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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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실적 개선이 가시화됐다. 올 들어 1분기(1∼3월) 휠라코리아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 늘어난 662억 원을 기록했다. 증가율이 높진 않지만 약 3년 만에 분기 실적이 흑자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전국의 휠라 매장 매출도 급등해 서울 이태원, 광주 충장로, 부산 광복동 등 주요 상권에 있는 메가 스토어(대형 매장) 11개의 매출 합계(5, 6월)만 놓고 보면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휠라코리아는 지난해 말 뉴욕주식거래소에 상장된 골프 용품 브랜드인 아쿠쉬네트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아쿠쉬네트 상장 후 20% 추가 지분을 인수해 총 52.8% 지분을 보유한 지배주주가 됐다.

휠라코리아에 아쿠쉬네트 실적이 편입되면서 올 상반기(1∼6월) 휠라코리아 매출은 1조 3466억 원에 영업이익 1304억여 원으로 국내 전체 섬유, 패션 상장기업 중 영업이익 1위를 차지했다. 물론 휠라가 보유한 지분율로만 치면 순위는 달라질 수 있지만 글로벌 기업의 결합이 앞으로 일으킬 시너지가 크다는 데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휠라는 도매 유통 전략을 의류로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는 편집숍 ‘원더플레이스’에서 휠라의 헤리티지 라인 티셔츠에서부터 펩시와 협업한 트렌디한 라인까지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생산 및 유통구조가 원활하게 돌아가니 키즈, 의류, 골프 등 신발 외 다른 사업에도 힘 쓸 여유가 생겼다. 자연스레 다른 비즈니스에도 운동화에서 달성한 ‘패러다임 시프트’ 성공 공식을 적용할 예정이다.

한편 운동화로 시작된 가격 혁신 전략을 펼치기 위해 고민한 결과, 다른 부문에서의 위기 역시 좀 더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골프 패션 시장에는 운동화 못지않은 ‘거품’이 끼어 있었다. 유통사 입점에 따른 리스크 때문에 제조업체나 브랜드가 일제히 가격을 ‘적정가’ 대비 높게 매기고 있었던 것이다. 휠라코리아는 악성 재고 우려에도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무리하게 생산량을 늘렸던 아웃도어 업체들의 대차대조표 패턴이 골프 의류 관련 업체들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한 결과 올 6월, 소매 유통사업을 접고 모든 제품을 도매로 편집숍 또는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내년 봄/여름 시즌부터 당장 도매 유통 모델을 겨냥한 신제품이 나올 예정인 것만 봐도 상당히 신속하게 의사결정이 내려졌음을 알 수 있다.

유통 및 가격 관리에서부터 혁신을 시도하고, 새로운 젊은 고객층을 위한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는 휠라의 실험은 이제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레트로의 시대를 맞아 과거의 영광을 뛰어넘는 성공을 기대하고 있는 휠라의 미래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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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요인과 시사점 - 10대 타깃 마케팅

최근 휠라가 재기에 성공한 이면에는 혁신적인 생산방식과 유통방식을 도입해 제품의 질은 유지하면서 가격에 들어간 거품을 빼낸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가성비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생산방식과 유통 방식만으로 휠라의 최근 성공을 바라보면 안 된다. 휠라가 최근 돌풍의 중심에 선 데는 10대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휠라의 가성비 좋은 제품이 10대들에게 각광받게 된 데는 휠라가 이들 세대와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진행해 이들에게 ‘핫’ 하고 친근한 브랜드가 된 데 있다. 10대들에게는 또래 문화라는 중요한 코드가 있다. 즉,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그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20대와는 달리 10대들은 일정한 시간을 함께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한다는 특성이 있다. 당연히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거나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제품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발달심리학자들에 따르면, 10대들이 겪는 청소년기는 일생 중에 가장 자존감이 낮은 시기로 상대적으로 쉽게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속 욕구(Need to Belong)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시기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10대들은 끊임없이 또래집단을 향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를 하려고 애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또래들 집단에서 유행하는 상품을 함께 소비함으로써 친구들과 동질의식을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들은 아주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테크노 홀릭’ ‘Generataion Z’라고 불리는 10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 콘텐츠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문화들, 예를 들어 게임 문화 또는 유튜브 크레에이터와 같은 1인 미디어 문화에 아주 익숙하다. 또 다른 세대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SNS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이들 10대, ‘Generation Z’가 좋아하는 문화적 코드에 맞춰서 취향저격 마케팅을 따로 진행하고 있다.

이 10대들에게 한번 나와 잘 통하는, 즉 나와 ‘코드’가 맞는 제품이라고 평가받게 되면 그 인기가 빠르게 확산된다. 한때, 10대들의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패션 신발 브랜드 ‘스베누’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스베누는 10대들이 좋아하는 아이유나 AOA 같은 인기 아이돌을 CF 모델로 삼고, 10대들이 좋아하는 게임 관련 산업과 컬래버레이션을 하거나 후원을 하는 마케팅을 통해 단시간에 10대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잇(it)’ 한 아이템이 됐다. 강력한 브랜드 파워도 없고, 유명 해외 브랜드도 아니었지만 브랜드 출시 6개월 만에 10만 켤레를 판매하는 등 10대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것은 이 브랜드가 10대 소비층을 집중적으로 타기팅했기 때문이다.

휠라가 최근 10대 사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잇(it)’ 한 아이템으로 이 브랜드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휠라가 10대에게 접근한 방식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휠라가 정교하게 10대들의 취향을 분석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코드를 만들어내고,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채널들을 통해 활발하게 마케팅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10대 사이에 베스트 아이템인 코트디럭스 중 핑크 색상 제품은 ‘딸기 우유’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휠라는 타깃 고객의 코드에 맞는 애칭을 만들어내는 형태로 광고를 제작해왔다. 휠라 운동화의 인기와 더불어 빅사이즈 티셔츠 역시 F자가 한글의 ‘ㅋ’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ㅋㅋㅋ 티’라는 장난스런 이름으로 불린다.

또한 다른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활동을 할 때도 평소 10대들이 친근하게 생각하는 브랜드를 엄선했다. 10대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제품군 중 하나가 스낵류다. 휠라는 ‘메로나’ ‘펩시’처럼 이들이 즐겨 먹는 스낵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해 한정판 모델을 내놓았다. 아이스크림과 운동화의 만남을 내세운 메로나와 휠라의 ‘맛있는 운동화’ 컬래버레이션 역시 전통적인 협업 공식에서 벗어나 ‘의외성’이라는 코드로 SNS상에서 큰 이슈를 만들어냈다. ‘먹지 마세요. 내 발에 양보하세요’라는 내용의 광고 카피 역시 10대들이 좋아하는 ‘병맛’ 코드를 적극적으로 살렸다.

또 10대 맞춤형인 다양한 SNS 캠페인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10대와 소통했다. 10대들은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싫어하고, 스스로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며, 다양한 쌍방향 SNS 캠페인을 만들어냈다. ‘코트디럭스 우리반 [찍었]스 콘테스트’ 이벤트 역시 휠라가 10대들이 크게는 학교, 작게는 학급이라는 집단을 통해 강력한 또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잘 알고, 이벤트 자체를 개인이 아닌 학급 친구들과 함께하며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함께 미션을 완수해나가는 형태로 만들었다.

10대들이 가장 많이 쓰는 인터넷 단어 중 하나가 ‘ㅍㅌ’다. 이 피읖티읕이 뜻하는 바는 ‘평균 타율’이다. 10대들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를 가면 많이 나오는 말들이 ‘남자 ㅍㅌ 치는 청바지 추천해달라’ ‘이 제품 사면 주변에서 ㅍㅌ 쳤다는 말 듣겠죠’ 등이다.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주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바로 10대란 의미다.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동시에 또래 집단에서 조금만 튀게 보이면 SNS 같은 곳에서 ’관심종자(관종)’이란 여론재판 형태의 비난을 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 역시 이들이란 뜻이다.

이런 이유로 10대들에게 통하는 코드만 잘 읽어낼 수 있다면 이들 집단에서 단시간에 사랑받는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이들 10대에 특화된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내 패션 브랜드 버커루가 10대 중고등학생들의 취향을 분석해 그들이 좋아할 만한 청바지 모델인 ‘업라이트4핏’을 내놓거나 뉴발란스가 10대들이 좋아하는 패션 트렌드인 ‘오버핏’과 ‘후드 탈부착’이라는 특징을 살린 ‘코치 재킷’을 선보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구매력이 약한 집단으로 취급되는 10대 맞춤형 제품 및 브랜드들이 앞으로도 많이 탄생할 것으로 본다.

과거 기업들은 10대 소비자들을 구매력이 크지 않는, 부모들의 재정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은 수동적인 소비자 집단이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이들 집단은 20대와 함께 묶여서 취급을 받거나 특별히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 세대가 도래하면서 이제 이들은 소비자 문화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집단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디지털 세상은 10대에게 최고의 놀이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인터넷 기기를 통해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해온 이들 세대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들을 양산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나간다. 이들은 능숙한 ‘디지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인 동시에 ‘무나(무료 나눔)’ ‘교신(교환 신청)’ ‘생정(생활 정보)’과 같은 인터넷 플랫폼 기반의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고 선도하는 세대다. 이제 기업들은 휠라처럼 10대와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모바일 시대의 출발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 세대인 지금 10대가 만들어갈 미래의 소비 지형은 현재 기성세대가 이해하는 것과 아주 다를 수 있다. 10대를 잘 이해하는 기업만이 미래 사회에서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seungyun@konkuk.ac.kr
 
이승윤 교수는 성균관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웨일스대에서 소비자 심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글로벌 마케팅 리서치 컴퍼니인 닐슨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국내외 마케팅 리서치에 참여했다. 캐나다 맥길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비영리 연구·학술 단체인 디지털마케팅연구소의 디렉터를 역임하며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바이럴-입소문을 만드는 SNS의 법칙, 구글처럼 생각하라-디지털 시대 소비자 코드를 읽는 기술, 디지털 소셜 미디어 마케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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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윤 이승윤 |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영국 웨일스대에서 소비자심리학으로 석사 학위,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에서 경영학 마케팅 분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영리 연구 기관 디지털마케팅연구소(www.digitalmarketinglab.co.kr)의 디렉터로 디지털 및 빅데이터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공간은 경험이다』 『디지털로 생각하라』 『바이럴』 『구글처럼 생각하라-디지털 시대 소비자 코드를 읽는 기술』 『커뮤니티는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등이 있다.
    seungyun@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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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진 김현진 | 동아일보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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