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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활명수의 120년 브랜드 전략

힙합세대의 취향까지 모두 소화, 120살 장수 비결은 ‘소통 마케팅’

김동원,장재웅 | 232호 (2017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활명수’는 1897년 개발돼 120년의 역사를 이어온 국내 최장수 제품이다.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소화제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고 지금까지 85억 병이 팔렸다. 활명수가 여전히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지속적인 변화를 모색한 덕분이다. 고객 세분화를 통한 제품 라인업 강화, 유통 채널 강화뿐만 아니라 시대를 앞서나간 브랜드 관리와 가격 정책 등 활명수의 장수에는 근대적 기업 경영의 원칙들이 숨어 있다. 최근에는 소비자와의 소통에 중점을 둔 마케팅 전략을 통해 젊고 쿨한 브랜드 이미지 확립에 주력하고 있다.


스카치테이프, 호치키스, 포스트잇.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바로 상표가 보통명사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스카치테이프는 셀로판테이프, 호치키스는 스테이플러 등 원래 해당 제품을 부르는 보통명사가 있지만 이들 제품이 워낙 큰 인기를 끌면서 브랜드명이 보통명사의 자리를 대신했다.

브랜드가 고유명사화된 경우는 국내에도 있다. 초코파이, 진로, 딱풀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활명수는 부채표라는 상표와 함께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될 때 마시는 소화제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동화약품이 판매하는 활명수는 올해로 출시 120주년이 된 스테디셀러 브랜드다. 1897년생으로 아스피린과 동갑이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1호 브랜드’다. 두 세기 전 만들어진 제품이지만 여전히 1년에 1억 병씩 팔린다. 동화약품이 활명수로 벌어들이는 매출만 1년에 540억 원에 달한다. 제품 인지도가 99.3%(출처: 갤럽 2015)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도 있으니 활명수라는 브랜드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활명수는 임금을 경호하던 궁중 선전관 노천(老川) 민병호 선생이 급체나 토사곽란에 걸려 목숨을 잃는 백성을 위해 궁중 비방과 서양의학을 접목해 만든 의약품이다. ‘생명(命)을 살리는(活) 물(水)’을 뜻하는 활명수는 민 선생이 한약건재를 넣고 달인 원액에 중국에서 수입한 아선약과 정향, 박하 등을 추가해 탄생했다. 활명수는 당시 백성들에게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활명수는 일본의 식민 지배, 한국전쟁 등 불안한 정세 속에서도 꾸준히 국민 소화제로서의 지위를 지켜왔다. 특히 시장 상황과 소비자 기호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다양한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지속적으로 사랑받았다. 탄산을 첨가한 까스활명수를 내놓은 것이나 최근 여성과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미인활명수’와 ‘꼬마활명수’ 등을 선보인 것이 그 예다. 또 초기에는 고가 가격 전략을 통해 프리미엄 제품 이미지를 구축했다가 이후 용량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면서 대중적인 제품으로 리포지셔닝했다. 또 1910년대부터 신문 전단 광고 등을 공격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동화약품이 1910년 활명수를 정식 상품으로 등록하고 부채표를 상표 등록했다는 점도 당시 우리나라에 상표권이나 특허의 개념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놀랍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동화약품은 1996년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제약회사, 국내 첫 등록상품과 등록상표 등 4개 부문 인증을 받기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활명수를 만든 동화약품이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한 기업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동화약품의 초대 사장인 민강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운동 자금과 정보를 건네기 위해 ‘서울 연통부’란 비밀단체를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에 뒀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한 병에 50전(당시 시세로 설렁탕 두 그릇 가격)이나 하는 활명수를 들고 중국으로 가 현지에서 활명수를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았던 한국의 시장 상황에서 활명수가 무려 120년 동아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활명수 사례는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은 현대 경영 환경에서 장수 브랜드를 육성하고 싶은 많은 마케터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활명수가 어떻게 브랜드 자산을 관리해 장수 브랜드가 될 수 있었는지 DBR이 집중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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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동안 국민 건강 책임진 활명수

활명수는 대한제국 원년인 1897년 9월 세상에 나왔다.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장면 중 하나인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즈음 친일 내각이 단발령을 내려 민심이 흉흉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요즘으로 치자면 경호실 간부쯤에 해당하는 선전관(조선시대 선전관청에 속한 무관 벼슬로 품계는 정삼품부터 종구품까지) 출신의 노천(老川) 민병호 선생이 궁중 비방으로 활명수(活命水)를 개발하고 동화약방을 창업한다.

 

활명수의 초기 성공 요인(∼ 한국전쟁)

1. 한의학과 양의학의 컬래보레이션

활명수를 개발한 동화약방의 초대 회장 노천 민병호 선생은 당시 선전관으로 있으면서 평소 의약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전의(조선 후기 때 궁내부의 태의원에 속해 왕실의 의료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던 주임관)들과 교류하면서 궁중 비방을 습득했다. 또 그는 기독교 신자로 서양 선교의사들과 접촉하면서 서양 의약에 눈을 떴다. 활명수는 바로 궁중 비방에다가 양약의 이점을 더한 한의학과 양학의 협업으로 탄생한 제품인 셈이다. 한약처럼 오랜 시간 달여서 먹어야 하는 약이 전부였던 시절에 활명수는 그 편리함과 신속한 효력 덕분에 출시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왕정국가였던 당시 상황에서 궁중의 비방을 바탕으로 일반 대중을 위한 약을 만들었기 때문에 활명수는 출시 초기부터 소비자들의 높은 신뢰를 받았다. 요즘에도 재벌가나 연예인들이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식의 광고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당시에 궁중의 비방을 활용해 만든 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았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2. 탁월한 네이밍

활명수는 특히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네이밍 전략을 활용했다.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이다. 활명수 출시 시점에 국운이 기울어 많은 국민들은 끼니를 걱정했다. 당장 언제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한 번 먹을 것이 생기면 폭식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1890년대 한양을 찾은 영국인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이 남긴 자료에는 ‘조선 사람들은 한 사람이 3∼4인분을 먹어 치우고 3∼4명이 앉으면 20∼25개의 복숭아와 참외가 없어지는 건 다반사’라고 적혀 있다. 임진왜란 피란기 <쇄미록>에는 당시 성인 남자가 한 끼에 7홉(밥 5공기)이 넘는 양의 쌀을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보다 몸집도 작은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밥을 많이 먹은 이유는 다음 끼니를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한 번에 대식을 하다 보니 불규칙한 식사로 배앓이가 잦았다. 하지만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급체와 토사곽란만으로도 목숨을 잃은 이가 많았다. 활명수는 당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양약이었고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네이밍은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다.

3. 시대를 앞서간 브랜드 관리

활명수 출시 당시에는 브랜드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브랜드를 방어해야 한다는 개념도 없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활명수는 당시 브랜드 보호 측면에서 대단히 선구적인 선례를 남긴다. 동화약방은 활명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부채표를 1910년 8월15일에 우리나라 최초로 상표 등록한다. 특허와 상표의 중요성을 발 빠르게 인식한 조치였다. 이어 같은 해 12월16일에는 활명수도 상표 등록을 한다. 이후 1912년경부터 활명수의 인기에 편승해 활명수의 이름을 모방한 유사 상표가 속속 등장하자 동화약방은 1919년 활명수 상표 보호를 위해 ‘활명액’이라는 유사 상표를 방어용 상표로 등록한다. 이러한 방어 전략은 요즘엔 보편적이지만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4. 고가 가격 전략을 통한 프리미엄 이미지 확보

현재 활명수의 병당 가격은 75ml 제품 기준 800∼1000원이다. 라면 1개 가격과 비슷하다. 그러나 1910년 활명수의 가격은 무려 40전이었다. 현재 시세로 치면 대략 1만8000원 정도의 가격이다. 당시 설렁탕 두 그릇 가격과 맞먹는다. 활명수가 발매 초기 궁중 비방이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활용해 고가 전략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고급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다가갔음을 알 수 있다. 신제품에 대한 가격 결정 방식에는 초기 고가 전략과 초기 저가 전략이 있다. 활명수가 활용한 초기 고가 전략은 처음에 고급 이미지로 오피니언 리더 고객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가격을 낮춰 고객층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활명수는 이후 1930년대 30전, 1965년에 23원 등으로 가격을 낮추면서 점차 대중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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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명수는 탁월한 품질과 시대를 앞서가는 마케팅 전략으로 초기에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다. 하지만 일제강점 이후 급변하는 국내 정세로 인해 동화약방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활명수 역시 시장에서 많은 부침을 겪게 된다. 특히 동화약방의 초대 사장인 민강 사장은 1919년 3·1 만세 사건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와 한국 간 비밀 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동화약방 사무실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일제로부터 지속적인 탄압을 받아 사업이 어려워진 동화약방은 파산을 면하기 위해 회사를 회생하고 키워나갈 수 있는 인물에게 회사를 넘기는데 그 인물이 바로 보당(保堂) 윤창식 선생이다. 보성전문(고려대의 전신)상과를 졸업한 윤창식 사장은 동화를 맡아 당시로써는 현대적인 경영기법을 도입해 회사를 키워나간다. 하지만 일제 치하 이후 광복,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로 이어지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활명수도 국가의 운명만큼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활명수의 고도 성장기(60∼70년대)

한국전쟁 이후 혼란이 잦아들면서 활명수는 제2의 도약을 위한 힘 고르기를 시작한다. 
1962년 사명을 주식회사동화약방에서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이후 1963년 보당 윤창식 사장의 장남인 윤화열 사장이 6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동화약품은 고도 성장기를 맞이한다. 1960∼70년대는 제약산업에 대한 국가적 기틀이 잡히던 시절이자 생산부터 제조까지 근대화가 진행된 시절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1967년 까스활명수의 출시는 활명수라는 제품이 120년을 이어올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1. 제약산업의 도약과 생산 및 제조의 현대화

1960년대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10년 동안 연평균 35.5%의 폭발적 성장세를 기록했다. 제약산업의 도약과 함께 생산 및 제조설비 현대화도 진행했다. 동화약품의 경우 1963년 회사 매출액이 1억 원을 돌파하면서 생산 설비가 부족해졌다. 직원도 빠르게 늘어 100명을 넘어서면서 생산시설뿐만 아니라 사무실 공간도 필요했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증축해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을 활용했으나 그마저도 한계에 봉착했다. 이에 1964년 동화약품은 공장 신축을 추진한다. 당시 정부는 원료공업 육성책을 펴면서 국내에서 원료를 생산하면 비슷한 모든 원료를 수입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정부 시책에 부응해 동화약품도 소화효소의 원료 생산을 구상한다. 동화약품은 일본의 효소제 전문 업체 모리모토산업과 기술 제휴를 맺고 효소 공장 신축을 추진한다.

1차 신축 공장은 1965년 3월 준공됐다. 이 신축 공장에서는 국내 최초로 최고 단위 효소의 추출과 정제 작업이 진행됐다. 2차 공장 신축은 1966년 7월 완료됐는데 활명수 조제탱크, 활명수 혼합기와 초고속도 원심분리기가 국내 최초로 설치됐다. 원심탈수기 진공농축기, 효소교반기, 효소침출기 등도 설치됐다. 생산 설비의 현대화를 이룸과 동시에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이에 따라 동화약품의 생산액은 1967년 3억3100만 원을 시작으로 1968년 7억300만 원, 1969년 12억3400만 원, 1970년 17억900만 원으로 5배 이상 늘었다.

2.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해 개발한 ‘까스활명수’

1960년대 초반 활명수의 기세는 눈부셨다. 하지만 활명수가 인기를 끌자 경쟁업체들이 속속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삼성제약이 활명수와 유사한 액체 소화제에 탄산가스를 주입해 청량감을 높인 신제품 ‘까스명수’를 선보이면서 활명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활명수의 인지도를 활용한 유사 상품들이 난립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단발성에 그쳤다. 하지만 까스명수는 조금 달랐다. 60년대 중반 당시 사이다와 콜라 등 탄산음료가 크게 유행했다. 삼성제약은 이런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착안해 액체 소화제에 탄산가스를 넣은 제품을 선보였고 소비자들은 이 제품에 반응했다. 그러나 70년 전통 활명수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던 동화약품은 초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 까스명수도 과거의 유사 제품들처럼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상황이 심각함을 인식한 동화약품은 발포성 소화제를 만들지를 고민하지만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후발 제품을 모방한다는 것이 결국 그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섣불리 활명수에 탄산을 집어넣기를 주저한 것이다.

결국 활명수에 탄산을 첨가해 ‘까스활명수’라는 이름을 단 제품을 만들었지만 이를 출시할지를 두고 또 한번 논쟁이 벌어진다. 동화약품의 역사이자 핵심 상품인 활명수를 두고 까스활명수를 더 좋은 제품이라고 소개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렇게 망설이는 사이 까스명수는 야금야금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결국 동화약품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 1966년 12월 까스활명수를 출시하며 탄산 소화제 시장에 진출한다.

게임의 양상이 탄산 대 비탄산에서 탄산 대 탄산으로 재편되면서 시장에서는 오히려 오랜 역사와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까스활명수의 인기가 올라갔다. 결국 1969년에는 까스활명수가 시장점유율에서 까스명수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시장 리더 자리를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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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라인업·유통 채널 다각화를 통한 성장기 (80년대 ∼ 현재)

동화약품은 1976년 3월24일 공모증자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한다.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등을 통해 현대적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한다. 이 과정에서 활명수는 1980년대에도 변함없이 동화의 성장을 견인한다. <약업신문>이 2004년 발간한 ‘한국 약업 100년’에 따르면 1982년 완제 의약품 상위 10위 중 까스활명수는 생산 실적 61억7100만 원을 기록, 5위에 랭크됐다. 1984년에는 드링크류의 강세에 밀려 상위 
10대 품목에서 밀려났으나 이후 절치부심해 1987년 9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도 활명수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세를 이어간다. 1993년 200억 원을 돌파한 활명수 매출액은 이후 꾸준히 올라 최근에는 450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동화약품의 2016년 전체 매출액이 2375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활명수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에 육박한다고 할 수 있다.

1. 제품 및 채널 세분화를 통한 라인업 확장

활명수는 120년의 역사 동안 쉬지 않고 효능을 개선한 신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최근에는 여성과 아이들 전용 라인업까지 선보이며 고객층을 세분화하고 있다. 1967년 기존 활명수에 청량감을 더한 ‘까스활명수’를 시작으로 ‘알파활명수’에 이어 1991년에는 기존 까스활명수를 개선한 ‘까스활명수-큐’를 선보이며 라인업 다변화에 나섰다. 동화약품은 2015년에는 하복부 정장 작용과 지사 효과가 있는 ‘오매(훈증한 매실)’가 들어간 여성용 ‘미인활명수’를 새로 선보였다. 이어 급체 현상을 겪는 어린이가 많지만 활명수 1병은 아이들이 먹기엔 다소 양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천연 딸기향을 넣은 스틱형 10㎖ 제품 어린이용 ‘꼬마활명수’도 출시했다.

또 유통채널 세분화를 위해 ‘까스활’이라는 제품을 2012년에 내놓으며 편의점 등 일반 유통 시장에도 진출했다. 일반 의약품인 까스활명수에 비해 까스활은 의약외품이기 때문에 편의점, 할인점, 슈퍼 등에서 판매가 가능하다. 두 제품의 효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편의점이라는 새로운 유통채널 확장을 통해 활명수 판매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 젊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컬래버레이션

120년 된 활명수의 최대 고민은 바로 ‘올드한 이미지’였다. 너무 오랜 기간 브랜드명이 유지된 까닭에 젊은 세대 사이에선 너무 고전적인 제품 아니냐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활명수가 젊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 선택한 장르는 ‘힙합’이다. 활명수는 8월부터 인기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6’와 컬래버레이션에 나섰다. 브랜디드 콘텐츠 캠페인을 통해 활명수에 쇼미더머니의 트렌디한 스타일을 입힌다는 계산이다. 브랜디드 콘텐츠 캠페인이란 기업이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동화약품은 지난해에도 제약업계 최초로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언프리티랩스타3’와 처음으로 미인활명수 브랜디드 콘텐츠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프로듀서 도끼와 자이언트핑크가 함께 만든 ‘미인’ 뮤직비디오를 제작·발표한 바 있다.

더 젊은 활명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동화약품은 힙합과의 접목 외에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0월엔 우리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캐릭터 ‘카카오 프렌즈’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활명수 119주년 기념판(450㎖·4종)’도 선보였다. 카카오 프렌즈 인기 캐릭터인 프로도, 라이언, 네오 등을 활용해 네 종류의 병 디자인을 구성했다. 병 전면에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들이 활명수 탄생 119주년을 축하해주는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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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명수의 사회적 가치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와 함께하며 국민 브랜드 반열에 오른 ‘활명수(活命水)’의 지난 120년은 우리나라의 역사만큼이나 역동적이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활명수의 제조사인 동화약품은 1897년 민병호가 활명수를 개발하고 동화약방을 창업한 것으로 시작된다. 동화라는 사명은 주역에 나오는 글귀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其利斷金)”에서 동(同)자와 “시화연풍 국태민안(時和年豐 國泰民安)”에서 화(和)자를 선택해 조합한 것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도 자를 수 있으며,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이 평안해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120년 동화약품과 활명수의 역사 속에는 의약품을 통한 대중구제를 결심해 활명수를 개발하고 동화약방을 창업한 민병호, 그의 아들인 독립운동가 초대 사장 민강, 어려웠던 동화약품을 인수해 다시 일으킨 사회운동가 윤창식, 일제 말기 광복군으로 활약하며 동화약품의 근현대화를 이끈 아들 윤광열 등 민족 기업인의 자부와 긍지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동화약품은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 것을 향한 뚝심서민의 애환을 토대로 성장한 모범적인 기업 사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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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즈니스 생태계를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

활명수는 발매 초기 고급 제품이라는 이미지로 소비자에게 다가갔지만 그렇다고 활명수가 서민과 거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략적으로는 초기 고가격 정책을 폈지만 100년 전부터 비즈니스 생태계의 주요 참여자인 중간상에 대한 지원과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했다. 창업 초기부터 유통경로 구성원들과 동반자 관계를 설정하고 서로 간의 장기적 이익을 추구했다.

2. 기능적 편익에서 경험적 편익으로 브랜드 연상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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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표와 활명수(생명을 살리는 물)라는 상표명은 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된 좋은 브랜드 네임의 조건인 연관성(이름 자체가 제품이 가져다주는 이익과 특성을 잘 나타냄), 기억용이성, 독특성을 충족하고 있다.

켈러(Keller)의 ‘소비자 관점에서의 브랜드자산’ 모형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기억 속에 형성한 브랜드 지식을 토대로 특정 브랜드의 마케팅 활동에 노출되면 경쟁 브랜드에 비해 차별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게 소비자 입장에서의 브랜드 자산이 된다. (그림 5)

예를 들어, 브랜드가 부착되지 않거나 가상의 브랜드가 부착된 제품에 비해 활명수나 부채표가 부착된 제품의 마케팅 활동에 대해 소비자가 호의적으로 반응한다면 활명수는 긍정적 브랜드 자산을 갖는 것이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차별적 소비자 반응은 그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가 기억하는 지식에 영향을 받게 되므로 브랜드 자산은 소비자의 마음속에 형성된 브랜드 지식에 의해 결정된다. 브랜드 자산은 소비자의 기억 속에 바람직한 브랜드 지식이 저장돼 있을 때 발생하는데 브랜드 지식은 브랜드 인지도와 브랜드 이미지로 구성된다.

브랜드 이미지의 하위 구성 요소인 브랜드 연상의 유형 중 하나인 제품편익 측면에서 활명수는 기능적 편익에서 점차적으로 경험적 편익으로 브랜드 연상관리를 해 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편익이란 소비자가 제품 혹은 서비스 속성에 부여하는 가치 혹은 의미를 말하는데 기능적, 경험적, 상징적 편익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기능적 편익은 제품구매를 통해 소비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소비자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말한다. 소화제의 경우, 복통 해소가 여기에 해당한다. 경험적 편익은 제품 사용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소화제의 경우 복용과정에서의 심리상태나 즐거움 요소, 포장 및 사용의 특이성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상징적 편익은 제품구매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자아와 자긍심을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한다. 동화약품이 2015년 출시한 미인활명수의 경우 사용자가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사회적 자아를 얻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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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의약품 업체들은 기능적 편익을 위주로 브랜드 자산을 관리했다. 가격, 약효, 사용방법 등 기능적 편익은 소비자 입장에서 쉽게 인지할 수 있고 기억으로 정보를 전이하기는 쉽다. 하지만 경쟁자나 경쟁제품이 기능적 편익 측면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하거나 중요 속성을 개선시키면 경쟁우위를 잃게 된다. 이에 반해 경험적 편익과 상징적 편익은 소비자의 기억 속에 자리 잡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소요되지만 소비자의 기억 속에 각인되면 장기적인 경쟁우위를 얻게 된다. 미국의 철도업체가 경쟁자를 고속버스, 항공기 같은 동종업종으로 규정한 기능적 편익으로 브랜드를 관리해오다가 여행의 즐거움 같은 경험적·상징적 편익을 강조한 경쟁 운송업자에 시장 지위를 넘겨준 사례가 있다. 반면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영화, 테마파크, 뮤지컬, 콘서트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를 경쟁자로 규정하고 시간 점유율 관점에서 즐거움, 박진감 등 경험적, 상징적 편익을 브랜드 자산 관리의 초점으로 삼아 생존하고 있다.

활명수는 복통 해소, 소화라는 기능적 편익을 넘어서 사용상의 즐거움, 사용자의 사회적 이미지 등을 부각시키는 활동을 최근 시도하고 있다.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는 ‘쇼미더머니’ 컬레버레이션 활동 등은 고통 해소, 다시 살아남, 회복 같은 활명수의 브랜드 요소를 경험적, 상징적 편익으로 잘 대응시켰다. 또한 ‘활명수 기념판’으로 경험적, 상징적 편익을 시대에 맞게 강화하고자 했다. 2013년 박서원, 권오상, 홍경택 작가와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2014년 이용백, 이동기 작가가 해석한 활명수의 의미 기념판 패키지, 2015년 민족고유 공예기법 ‘나전칠기’를 모티브로 한 기념판, 2016년 카카오 프렌즈와 함께 한 ‘활명수 119주년 기념판’ 등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3. 마케팅 환경변화에 능동적 대처

소득이 증가하고 대안 의약품이 늘어난 데다 규제가 풀리면서 의약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따라서 과거 연구·개발 역량 이외에 시장기회의 감지 능력이 의약품 회사의 중요한 경쟁우위 요소로 부상했다. 또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등으로 영업력 외에 효율적 마케팅전략 수립, 실행능력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또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대인 젊은 층의 경우 정보처리나 구매행동, 공간이동행태(시간, 장소) 등에서 기존 소비자 집단과 크게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 이에 활명수는 미인활명수, 꼬마활명수 등 제품라인업을 다양화해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까스활과 2017년 4분기 출시 예정인 미인활 등의 제품으로 기존 약국뿐만 아니라 편의점, 드럭스토어를 커버해 신세대 소비자들의 공간이동행태에 대응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의 가속화 추세에 맞춰 동화약품은 ‘미인활명수’를 활용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마케팅으로 젊은 층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6년 10월 ‘제13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에 참여해 브랜드 부스를 운영했고 제약업계 최초로 브랜디드 콘텐츠 뮤직비디오를 공개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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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브랜드 자산관리 방향

최근 들어 브랜드 관리는 과거보다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스마트화로 인한 교섭력 강화, 경쟁 격화, 시장의 성숙화, 전통적 미디어의 영향력 감소,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대안의 등장, 브랜드 충성도 약화, 단기 성과지향성 강화 등으로 브랜드 관리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변화한 환경에서 향후 활명수는 어떻게 브랜드 자산을 관리해야 할까?

1. 브랜드 가치사슬 점검 및 재구조화

활명수는 120년간 사랑받으며 국민 소화제 반열에 올랐다. 120년이라는 시간이 말해주듯 활명수라는 브랜드의 가치는 엄청나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 상황별로 브랜딩 전략을 수정하다 보니 브랜드 가치사슬을 정확하게 점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브랜드 가치사슬은 브랜드에 대한 가치 창출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브랜드 마케팅 비용 및 투자의 재무적인 영향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분석틀이다. (그림 6) 브랜드 가치사슬은 조직 내 수많은 개인들이 잠재적으로 브랜드 자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때문에 구성원 모두가 브랜딩 효과를 인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각 개인은 상이한 브랜드 관련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브랜드 가치사슬은 브랜드매니저, 마케팅책임자, 최고경영자처럼 상이한 형태의 정보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한다.

브랜드 가치사슬 모델은 어떤 브랜드의 가치가 궁극적으로는 고객들에게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첫 번째 단계로, 브랜드 가치 창출 과정은 고객들을 상대로 한 마케팅 프로그램에 투자했을 때 시작된다고 가정한다. 잠재적으로 브랜드 가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제품 조사 및 개발, 설계, 거래 및 중간상 지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의 마케팅 프로그램 투자들이 이 단계에서 해야 할 활동들이다. 두 번째 단계로, 그 프로그램과 관련한 마케팅 활동들이 브랜드에 관한 고객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중요한 5가지 핵심 척도는 브랜드 인지도, 브랜드 연상, 브랜드 태도, 브랜드 애착, 브랜드 활동이나 경험이다. 세 번째 단계로, 고객의 사고방식은 고객이 시장에서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6가지 핵심 성과는 가격프리미엄, 가격탄력성, 시장점유율, 브랜드 확장, 원가구조, 브랜드 수익성이다.

마지막 단계로 투자공동체는 주주 가치와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고 투자한다. 특히 중요한 지표는 주가, 주가수익률, 시가총액이다. 브랜드 가치사슬 모델은 수많은 연결요인이 각각의 단계에 개입한다고 가정한다. 이들 연결 요인은 다음 단계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가치나 다음 단계로의 승수 정도를 결정한다.

120년을 이어온 활명수의 브랜드 가치를 점검하고 향후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현시점에서 브랜드 가치사슬의 4단계 전략을 각각 점검하고 재구조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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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양한 고객접점에서 고객경험 강화

과거에는 제품 사용 장소, 구매 장소, 커뮤니케이션 매체 등이 주요 고객접점이었다. 의약품은 병원, 약국 등 통상적 접촉이 가능한 창구를 갖고 있었다. 과거 소비재 및 유통 업체들은 매장 내에서 자사 제품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많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공급 과잉, 경쟁 격화 등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은 넓어진 반면 소비자들의 자원 압박, 특히 시간 부족과 정보과부하로 과거 소비접점을 통한 관계 형성 및 유지 이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최근 O2O 전략이 유행하는 이유는 소비자의 24시간 행동과 동선을 연구해 소비에 즉시성과 편리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최근 서비스를 시작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카카오뱅크 역시 새롭고 편리한 고객과의 접점을 확보한 사례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활명수는 온·오프라인을 포괄해 고객 세그먼트별로 고객접점을 연구하고 소비자들의 공간이동행태(Personal Moving Network)를 고려해 다양한 접점에서 활명수의 브랜드 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온라인, 모바일 등 가상 접점을 통한 고객과의 상호작용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는 전통적 제약 회사인 동화약품의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120세의 활명수가 젊고 쿨한 브랜드 이미지를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김동원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tunakim@smu.ac.kr

김동원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한 뒤 부산외대, 덕성여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글로벌경영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신한카드, 메리츠화재, 한국야쿠르트 자문 교수를 하면서 마케팅 개념을 실제 적용하는 등 다수의 프로젝트와 교육 과정을 수행했다.

참고문헌

1.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예종석 지음, 리더스북)

2. 대한민국, 활명수에 살다(전병길 지음,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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