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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준비생의 도쿄

손해 같은 경매 계속하는 日 고깃집, ‘선심’ 속 치밀한 전략

이동진 | 230호 (2017년 8월 Issue 1)
편집자주

같은 장소에 여행을 떠나도 안정된 직장이 있으면 사업 아이디어를 거의 찾지 못하지만 퇴사를 준비하고 있거나 독립한 상황이라면 수많은 신사업 거리를 찾곤 합니다. 퇴사준비생의 시선에서 도쿄 여행을 하며 찾아낸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동진 대표의 인사이트를 소개합니다.
이 원고는 저서 <퇴사준비생의 도쿄(더 퀘스트, 2017)>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불황의 시대에는 절약이 미덕이다. 중고 판매점이 인기인 이유다. 하지만 중고 매장이라고 가격으로만 승부하면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일본의 ‘돈돈 다운 온 웬즈데이(Don Don Down on wednesday)’는 중고 상품 매매 방식을 차별화했다. 이 매장은 중고 상품을 10단계의 가격대로 구분해 각각에 과일 태그를 붙였다. 포도는 7000엔, 호박은 5000엔, 바나나는 4000엔 등으로 중고 상품의 등급을 매긴 것이다. 중고 상품의 가격을 단순화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재미를 더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과일 태그가 붙어 있는 상품은 매주 수요일마다 하위 등급의 과일 태그로 바뀐다. 같은 상품이어도 1주일 뒤에 사면 20∼67%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게임’의 요소가 숨어 있다. 1주일 뒤에 저렴하게 사려다 아예 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제품과 달리 중고 상품은 공급이 제한돼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판매 방식에 재미를 더하면 경쟁자가 난무한 영역에서도 눈에 띌 수 있다. 고깃집 ‘호우잔’도 경매라는 재미 요소를 가미해 넘쳐나는 고깃집 중에서 차별적 경쟁력을 찾은 가게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고기의 질, 가격 등으로 ‘승부’를 보려고 할 때 고깃집 호우잔은 경매를 끌고 들어왔다. 그것은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었다.



보통의 경매 vs. 호우잔의 경매

서로의 눈치를 보며 가격을 부르는 경매에 재미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매는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판매 모델은 아니다. 제품의 수량이 한정적이고 가격을 정하기 어려울 때 구매자 간 경쟁을 붙여 가장 높은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다. 경매를 하는 보통의 이유대로라면 호우잔의 경매도 재미를 더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특수 부위를 최고가에 판매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호우잔의 경매는 보통의 경매와 목적이 다르다. 판매자의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구매자의 만족 극대화가 목적이다. 특수 부위의 경매 시작가는 판매가의 10% 수준이고 낙찰가는 판매가의 30∼40% 정도에서 정해진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값비싼 특수 부위를 3분의 1 수준의 가격으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발상의 전환처럼 보이지만 호우잔의 선택은 논리적인 결론일 수도 있다. 고기 마니아라 하더라도 특수 부위가 구하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경매를 통해 판매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사 먹을 가능성은 낮다. 그래서 호우잔은 고객에게 재미와 만족을 제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경매를 시작하며 가격을 낮춰 고객의 참여를 유도했다. 그렇다면 호우잔은 경매를 할수록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것일까? 겉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호우잔의 경매에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

1. 경매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손해

호우잔에서 열리는 경매를 통해 특수 부위를 낙찰받는다면 분명 일반 고깃집보다 싸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경매에 참여하지 않고 주문만 해서 먹는다면 일반 고깃집보다 더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한다. 호우잔의 메뉴는 같은 동네의 고깃집들과 비교했을 때 5% 이상 높다. 호우잔의 가격 전략은 일반 판매를 통해 더 높은 수익을 챙기고, 경매 판매를 통해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반대로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면 주문을 해서 고기를 먹으면 손해고, 경매 참여를 해서 고기를 낙찰받으면 이득이다. 그래서 경매가 열리면 손님들은 승자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든다. 경매 분위기가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2. 이익은 남지 않아도 매출은 남는다

경매시간에도 ‘시사점’이 있다. 호우잔의 경매는 매일 저녁 8시에 시작된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7시경부터 저녁 식사를 시작한다고 하면 손님들은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다음 경매에 참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매로 낙찰받는 고기가 아무리 싸다 해도 많이 먹을 수는 없고, 식사를 마무리하기 전에 맛보기 정도로 구매한다. 호우잔 입장에서 보면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 고기는 추가 매출인 셈이다. 이미 배가 부른 손님들이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먹지 않았을 고기를 경매를 통해 구매하기 때문이다. 판매가의 30∼40% 수준에서 낙찰된다면 호우잔 입장에서도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이익은 남길 수 없다 하더라도 매출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3. 고객의 수준을 높이면 기회가 생긴다

30분가량 진행하는 경매에서 낙찰은 여섯 번 정도 이뤄진다. 한 번의 경매에 5분이 걸리는 셈이다. 이 시간의 대부분은 고기에 대한 기본 정보, 세부 특징, 최적의 조리 방법 등에 대한 설명에 사용한다. 경매에 참여하는 손님들에게 특수 부위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충분한 설명을 들은 손님들은 다음번에 고기를 먹을 때 이를 기억했다 주문할 수 있다. 또한 경매의 승자가 된 손님들은 맛본 고기에 더 애정을 느끼게 된다. 비싼 고기에 대한 설명을 듣거나 맛을 본다고 해서 모든 손님들이 지갑을 여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 지갑을 열 가능성은 더 낮을 것이다. 경매를 통한 판매는 손님들의 다음 방문을 위한 투자다.

4. 돈 없는 홍보는 힘이 세다

2013년 11월 오픈 이후, <닛케이>를 비롯해 여러 언론이 호우잔을 소개했다. 호우잔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서가 아니다. 업계 최초로 경매 방식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화젯거리가 될 만한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다. 호우잔은 경매를 소재로 언론에 가게를 알릴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경매 진행 현황을 외부 스피커를 통해 실시간 중계하는 것이다. 이 같은 외부 중계는 호우잔이 지하 1층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약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해 잠재고객으로 만드는 역할도 한다. 경매가 모객 측면에서도 효자 노릇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호우잔의 모기업 ‘하나켄’은 본래 라멘 가게로 출발했다. 라멘 사업에서 성공한 뒤 진출한 영역이 고기 사업이다. 고기 사업의 첫 번째 브랜드는 ‘호르몬 하나켄’으로 곱창류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라멘과 달리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고전하던 하나켄은 새로운 브랜드로 호우잔을 론칭하며 경매를 내세웠다. 넘쳐나는 고깃집들 속에서 고객의 눈치를 보기보다 세상에 없던 경매를 통해 고객이 눈치를 보게 하자 차별적 경쟁력이 생겼다. 호우잔 사례처럼 판매 방식만 바꿔도 고객의 반응이 달라진다. 재미와 혜택을 거부하는 고객은 없다.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 dongjin.lee@travelcode.co.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올리버와이만과 CJ E&M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여행의 가치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여행콘텐츠 기획사 트래블코드를 운영하고 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공동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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