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시장 성공조건은 ‘타이밍’과 ‘사람’ ‘새로운 경험’으로 시장에 감동을 줘야

224호 (2017년 5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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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락앤락, 신한베트남은행, 뚜레쥬르. 베트남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이들 3개 한국 기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1. 해외 진출에는 타이밍이 생명: 락앤락은 중국에서의 임금 상승 추이가 심상치 않자 사드문제가 불거지기 전 일찌감치 생산기지를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신한은행은 베트남이 시장 개방과 더불어 해외 은행들에 은행업 라이선스를 부여할 때 첫 티켓을 거머쥐었다.
2. 브랜드 구축에 심혈: 베트남 국민들은 한 번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로열티가 강한 편. 이 같은 베트남 소비자들을 상대로 락앤락은 최고급 백화점에 매장을 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뚜레쥬르 역시 카페형 매장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무장한 프리미엄 베이커리로 포지셔닝했다.
3. 경쟁력은 ‘사람’: 결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들을 상대로 발로 뛰며 영업을 벌이는 것은 현지 직원들. 현지 직원을 지점장으로 임명하는 등 현지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한을 부여한 신한은행을 비롯해 3개 기업은 모두 현지 직원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오너십을 주입시키는 데 주력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신지원(고려대 영어영문학과·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수는 지난해 말 기준 600개에 이른다. 1992년 수교한 지 24년 만의 성과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누적 투자금액은 역시 500억 달러를 넘어선 상황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보다 낮은 임금, 전력, 수도 등 다양한 산업 인프라 때문에 앞으로도 베트남을 향하는 기업들의 발걸음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철저한 준비와 학습 없이 향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쉬운 곳이 해외시장이다.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결코 순순히 문을 열어줄 리 없다. 따라서 10∼20년 전 한발 앞서 베트남 시장에 진입,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 한국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현지에서 직접 살펴본 신한베트남은행, 락앤락, 뚜레쥬르의 전략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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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1

‘금융의 삼성전자는 나올 수 없다’(?)



은행의 해외 진출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신한베트남

한국 은행들은 해외만 나가면 고배를 마셨다. 해외 은행을 멋모르고 인수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거나, 아니면 교민들을 상대로 손쉬운 장사만 하는 데 그쳤다. 현지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 성공을 거둔, 진정한 해외 진출 성공 모델은 드물었다. “금융의 삼성전자는 왜 나오지 않는거냐”며 금융당국은 해외로 은행들의 등을 떠밀었지만 성공 스토리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같은 우울한 은행의 해외 진출사에 새로운 가능성을 비춰준 곳이 있으니 바로 신한베트남은행이다. 글로벌 은행들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더니 최근에는 HSBC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외국계 은행 1위로 올라섰다. 숫자만 봐도 규모와 질적 성장세를 알 수 있다. 2014년 2241만 달러이던 당기순이익이 2016년 4263만 달러로 점프했다. 점포(법인, 지점, 사무소 등) 수도 같은 기간 10개에서 18개로, 직원 수는 631명에서 992명으로 늘었다.

12일 찾은 신한베트남은행 본점에서도 성장하는 신한베트남은행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한창 근무 시간인 오후 3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점 은행 창구는 현지 고객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창구 안쪽의 사무실에서는 RRM(Retail Relationship Manager)들이 삼삼오오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20여 개가 넘는 로컬은행, 글로벌 은행들과의 리테일 전쟁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한베트남은행 신동민 법인장과 글로벌 사업 담당 허영택 부행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본 신한은행의 성공전략을 소개한다.



해외 시장 진출은 타이밍이 생명

은행업은 정부당국으로부터의 인·허가가 필요한 업종이다. 따라서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진출 ‘타이밍’이 생명이다. 먼저 시장에 진입을 해 인·허가가 주어지는 시점에 이를 따내야 영업을 확대하며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 그런 면에서 신한은행은 빨랐고, 또 운도 따라줬다. 신한은행이 현지 사무소를 설치한 것은 1993년. 신한은행이 리딩뱅크로 시장을 이끌던 시절이 아니라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등 당시 5대 시중은행을 지칭하던 용어)와 같은 대형 은행들에 밀리던 시절이었다. 상대적으로 대기업 고객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신한은 신발제조업체 등 거래 중소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할 때 그들을 따라서 베트남 시장에 들어오게 됐다. 일동의 ‘동반 진출’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일찌감치 사무소를 개설하고 현지에 진출한 중소기업들과 거래를 지속하던 신한은행에 기회가 찾아왔다. 2006년 베트남이 WTO에 가입하며 마지못해 은행 시장을 개방하기로 하고 해외 은행에도 은행업 라이선스를 내주기로 한 것. 최종적으로 2008년 5개 은행이 함께 라이선스를 받았는데 그때 티켓을 받은 곳이 HSBC, 스탠더드차터드, ANZ, 말레이시아계 홍릉은행, 신한은행이었다. 그때 이후로 베트남 정부는 한참 동안을 해외 은행들에 라이선스를 내주지 않다가 2016년부터 다시 기회를 주고 있다. 만약 그때 ‘첫 티켓’을 거머쥐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8년의 시간을 허비하며 기다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설령 중간에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하더라도 이미 HSBC 등 외국계 은행들이 시장을 잠식한 뒤였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진출을 했기 때문에 글로벌 강자들에게 밀리지 않고 동일 선상에서 경쟁을 할 수 있었다.



교민들 상대로 한 쉬운 장사 대신 현지인 겨냥, ‘잘하는 곳’에서 승부

언제 진출했느냐는 진출 시기도 중요하지만 진출을 해서 어떤 방식으로 영업을 했는지도 중요한 키포인트. 사실 우리나라 은행들이 뉴욕, 도쿄, 오사카 등등에 진출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렇게 일찌감치 진출했으면 확고히 자리를 잡았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다수 은행들은 교민이나 국내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해 시장을 뚫지 못한 것. 그런데 신한은행은 베트남에서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짜 영업을 했다. 90% 이상이 베트남 현지 고객이고, 금액 비중으로 따져도 여·수신의 50%가량이 베트남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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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베트남 제1의 항구도시 하이퐁 개점식 당시의 모습. 조용병 당시 행장(현 회장)이 직접 참석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비결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한 것이다. 기업금융에 있어서는 다양한 경험들로 무장한 글로벌 은행들에 비해 뒤처졌다. 하지만 까다롭고 성질 급한 한국 고객들을 상대하며 다져진 리테일(소매금융) 서비스의 수준이나 속도는 세계 무대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어떤 은행들도 이렇게 업무처리 속도가 신속하지 못하며 친절하게 고객에게 응대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리테일 영업에 집중하기 시작한 신한은행은 특히 대출에서 공격적인 영업을 벌였다. 신한베트남의 1년짜리 정기예금금리가 6% 수준일 때 로컬은행들은 7∼8%의 금리를 지급했고, 영업점도 신한은행은 하노이, 호찌민에 집중돼 있는 반면 로컬은행은 전국에 수천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편하게 예금을 맡길 은행이 아니지만 ‘대출을 받기엔 최고의 은행’으로 포지셔닝을 취했다. 이를 위해 대출금리를 경쟁 은행보다 1%포인트 낮췄다. 신한은행의 높은 신용도 때문에 자금 조달 코스트가 베트남 로컬은행들보다는 훨씬 싼 편인데 이 강점을 활용해 대출상품의 경쟁력을 키운 것.

로컬은행들이 간과하고 있는 시장을 겨냥한 적극적인 대출상품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공장 근로자 대출. 정확한 상품명은 ‘로열 임플로이 론(Loyal employee loan).’ 한국계 공장에는 종업원들이 보통 1만 명 정도 근무하고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은행권 대출을 잘 이용하지 않고 사채를 쓴다든가 계모임 등 사금융을 많이 이용한다. 신한은행은 그들에게 급여의 4∼5배 정도까지 돈을 빌려주고 분할 상환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이 이직을 하면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등 ‘연체 리스크’가 있는데, 과연 이 상품을 운용해도 되는 것인지 우려가 있었다. 솔직히 1000달러, 2000달러를 상환받자고 베트남을 누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직률이 낮은 업체만 잘 골라서 대출을 해주면 은행과 고객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는 상품이었다. 이렇게 등장한 로열 임플로이 론은 리테일에서 큰 몫을 하고 있다. 의외로 연체율도 1% 미만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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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일 대출 잔액이 2012년 7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올해 목표는 4억 달러다. 신한은행이 베트남에서 리테일 영업을 할 때 상당수 한국계 은행들은 우려를 표했다. 베트남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대출을 해주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전하게 교민들이나 한국 회사들만 상대해서는 결코 저변을 확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신한은행은 적절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적극적인 현지 영업을 했고, 실제 수익이 났다. 한국계 기업들을 상대로 한 영업은 치열한 경쟁 때문에 이미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신한의 성장은 현지인 대출이라는 과감한 도전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고속성장 경험이 귀중한 자산

더불어 한국이 경험한 고속 압축 성장의 경험도 신한은행의 베트남 시장 공략에 있어 큰 자산이 되고 있다. 베트남은 현재 6%대의 꾸준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 같은 고속성장을 수십 년 앞서 경험한 우리는 과거의 발전 경험에서 이들의 미래, 이들에게 향후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예전에는 은행에서 모기지론도 안 해주고 심지어 자동차 파이낸스 상품도 없었다. 그런데 소득이 상승함에 따라 모기지론, 자동차 파이낸스 상품, 여행적금이 생겨나고 이제 은퇴상품까지 출시됐다. 이렇게 계속 발전을 하다 보면 어떤 상품에 대한 니즈가 생기고,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압축 성장을 몸으로 경험한 신한은행은 선진국 은행보다 더 정확한 분석과 예측을 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 글로벌 은행들에는 없는 경험이다.

실제로 한국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가계대출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처음에는 주택담보대출 시장 위주로 가다가 전문직 위주의 신용대출, 그 다음 시장은 일반신용대출, 이렇게 단계적으로 변했는데 그 같은 흐름이 베트남 시장에서도 서서히 나타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아직은 신용대출 시장이 미미하지만 신한은행은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전문직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고 대비에 나섰다. 티처론(선생님 대출), 급여 수준이 높은 은행원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뱅커론(은행원 대출) 등을 이미 판매하고 있다. 고속발전 사이클을 한 차례 먼저 경험했다는 점이 중요한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고 있다.



결국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현지 직원들에게 신한 DNA 심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신한베트남은행의 경쟁력은 바로 ‘사람’이다. 현재 지점이 18개인 신한은행이 베트남 로컬은행들처럼 앉아서 고객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그 때문에 이들은 별도의 리테일 조직을 두고 찾아가는 영업을 벌이고 있다. RRM(Retail Relationship Manager)과 같은 현지 영업직원들이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누비며 신한은행을 알리고, 상품을 안내하고,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것. 그렇다보니 이들 현지 직원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신한은행이 현재의 입지를 확보하게 된 데는 현지 직원들이 신한 DNA와 주인의식을 갖고 발로 뛰게 만들었다는 점이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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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 중심가에 위치한 신한베트남은행 본점의 모습

물론 발로 뛰는 리테일 영업을 시작할 때 직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사람들이 신한은행을 잘 모른다” “계좌를 안 터준다” 등등 불만이 끝이 없었다. 그러나 신한은행이 모기지론 등 탁원할 상품을 연달아 개발해내고, 그를 여타 로컬 및 글로벌 경쟁은행들이 모방하는 모습을 본 뒤엔 직원들이 ‘신한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알아서 스스로 영업을 뛴다.

여기에 신한 DNA를 심어주기 위해 전 직원의 체육대회 격인 ‘신한올림픽’과 가족들을 초대하는 ‘신한 패밀리데이’ 등 각종 행사를 베트남에서도 진행했다. ‘일’만 하고 인간적인 관계는 없는 글로벌 은행과는 달리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식자리도 함께하고 함께 고민하는 이 같은 문화를 다행히 같은 유교문화권인 베트남에서는 쉽게 받아들였다.



현지 직원들에게 적극적인 ‘인센티브’도 줬다. 2013년 현지 지점장 육성프로그램을 가동해 부지점장들에 대한 권한을 확대하고 트레이닝한 뒤 2014년 말 드디어 첫 베트남인 현지 지점장을 임명했다. 지점장에게는 한국과 똑같은 ‘권한’을 부여했다. 전결권도 갖고, 기사 딸린 차도 나오고, 법인카드도 나왔다. 이제 베트남에 현지인 지점장과 본점 부장이 총 10명이나 된다. 요새는 부지점장이 되면 지점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알아서 직원들이 공부를 시작한다. 이와 더불어 이익 증가 금액을 직원들한테 별도로 지급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이제 은행이 잘되면 나에게도 직접적인 혜택이 있다는 것을 직원들이 인식하고 스스로 영업을 하고, 일을 한다.

사실 현지 영업은 주재원들이 결코 할 수 없다. 주재원들이 현재의 발전 단계에서 지금쯤 어떤 상품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거기에 그 나라만이 가지는 특징을 더해 상품을 개발하고 영업을 하는 것은 현지 직원들의 몫이다. 신한은행은 적극적인 권한 위임과 모티베이션을 위한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 현지 직원들에게 신한 DNA를 심어주고, 이들이 스스로 뛰게 만들었다.



Case 2

‘고급화 전략’으로 과감하게 베트남 주방 파고든 락앤락



베트남에 둥지 틀고 세계 시장과 베트남 시장 동시 공략

호찌민에서 1시간여 떨어진 붕따우 공단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파란 글씨의 락앤락 마크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붕따우 공단에 들어선 락앤락 공장은 플라스틱 생산공장, 내열유리제품 공장, 쿡웨어 생산공장 등 3곳으로 그 규모가 27㏊에 달한다. 여기에 동나이 지역에 자리한 플라스틱 공장 1곳을 더한 총 4곳의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베트남은 명실상부한 락앤락의 생산거점. 이를 통해 플라스틱, 유리, 쿡웨어 등 모든 제품을 합쳐 하루 약 130만 개 정도의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가격 경쟁력과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베트남 인근 아세안 국가, 유럽, 북미 등 전 세계 70여 개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찾은 11일 오전 무더위 속에서도 락앤락 공장은 숨 돌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원료가 투입돼 제품 틀이 갖춰지고 검사가 이뤄지는 모든 라인이 자동화돼 돌아가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손길도 필요한 법. 모자와 마스크 등 꼼꼼한 복장 규정을 갖춘 베트남 현지 직원들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넘어온 제품에 흠집이나 균열이 없는지를 꼼꼼히 살폈다. 전체 2249명의 임직원 중 간부 50명을 제외한 2199명은 모두 베트남 현지 직원들이다.

공장에서 생산기지를 엿본 그날 저녁 호찌민 시내 대형 백화점 빈콤센터에서는 베트남 소비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락앤락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빈콤센터 지하 1층 에스컬레이터 정면에 위치한 락앤락 매장에는 플라스틱, 유리제품에서부터 프라이팬, 보온병 등 인기 제품이 깔끔하게 전시된 가운데 삼삼오오 짝을 이룬 젊은 여성들이 물건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사실 락앤락의 가격은 베트남 국민 1인당 GDP를 감안한다면 결코 만만치 않지만 주요 백화점, 마트에서는 락앤락 매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베트남 시장을 ‘생산거점+소비시장’으로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는 락앤락의 전략은 아래와 같다.



빠른 의사결정, 베트남으로 발 빠르게 수출기지 옮겨와 생산비용 절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중국 현지의 한국 기업들이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에 반해 락앤락은 이미 2007년부터 베트남에 공장을 설립해 현재 베트남에 생산거점을 이전한 상황이다. 중국에만 3개의 생산기지를 설립한 락앤락이었지만 중국의 임금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한발 앞서 대안을 모색, 베트남을 선택한 것. 올해 사드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락앤락은 이미 중국 웨이하이 공장을 폐쇄했으며 중국에 자리한 나머지 2개 공장도 점점 생산규모를 줄여나가겠다는 밑그림을 완성해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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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의 대형 백화점 빈콤센터 내 락앤락 매장

베트남 현지 생산라인을 책임지고 있는 임광빈 전무는 “중국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전사 차원에서 과감하고 빠른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배경에는 비용절감이라는 목표가 자리한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유리의 원료가 규사인데 베트남의 해안선에 모래사장이 발달해 있어서 각종 유리제품의 원재료를 구하기에 용이한 상황. 게다가 전기요금도 ㎾당 약 0.65달러 정도로 중국의 반값이다. 가스배관이 바로 공단을 지나가는데 천연가스 비용도 그때그때 수요에 따라 가격이 조정되지만 중국의 80% 수준이다. 이렇듯 무시할 수 있는 비용 메리트가 베트남을 선택하게 만든 셈. 전기 및 가스 사용량 등을 감안했을 때 베트남 이전으로 에너지 코스트를 20%가량 절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 중국에는 생산제품에 수출세를 매기는데 베트남에서는 그런 세금이 없다는 점도 이득이었다.



생산비 측면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판단이다. 베트남에 4개 공장 및 물류센터를 설치하는 데는 2억 달러가량의 만만치 않은 비용이 요구됐다. 결국 이 같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데는 김준일 락앤락 회장의 ‘현장경영’이 한몫했다. 현재도 김 회장은 한 달의 절반가량을 베트남에서 보낸다. 회장이 현지에서 직접 시장 상황을 지켜보니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김 회장은 당시에도 중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베트남 사람들의 반중 감정, ‘메이드인 차이나’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니 베트남이 원산지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브랜드 확립에 전부를 걸었다, 고급화+CSR

락앤락은 2008년부터 총 40개 매장을 열고 베트남 소비시장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락앤락의 이 같은 성공에는 베트남 소비자들의 가슴속에 ‘락앤락=믿고 사용할 만한 고급스러운 주방제품’으로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킨 것이 주효했다. 사실 처음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마당에 그것도 한국보다 아직 국민소득이 떨어지는 베트남 시장이니만큼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한국보다는 낮게 잡을 수도 있었다. 얼른 매출을 올리고 고객들에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게 더 쉽고, 빠른 전략일 수 있었다. 하지만 락앤락은 그 대신 베트남의 상류층을 겨냥해 철저하게 고급화 전략을 사용했다. 한국보다 가격을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한국 못지않게 높은 가격을 설정했다.

“한 번 고객들의 가슴속에 박힌 이미지는 바꾸기 힘들다”며 고급스럽고, 주부들이라면 사용하고 싶은 안전한 주방제품으로 포지셔닝한 것. “한국에서 수입된 한국 제품이고, 안전하고 우수하며, 그렇다보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어필했고 그 대신 성능을 확실히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어항에다가 락앤락 밀폐용기를 담가 내부에 물이 스며들지 않음을 보여주며 밀폐력을 부각하는 등 각종 품질 테스트를 매장에서 직접 진행했다.

그 같은 전략에 맞게 매장부터 호찌민의 외국인들과 부유층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이른바 ‘호찌민의 강남’ 푸미흥으로 잡았다. 당시 베트남으로의 외국인 직접 투자 1, 2위를 다투던 곳이 일본과 싱가포르. 베트남에 진출한 일본, 싱가포르 주재원 가족들이 거주하던 곳이 푸미흥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고가 제품으로 포지셔닝한 락앤락을 구입하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또 이곳의 아파트나 빌라의 소유주들은 이미 해외여행을 통해서나 한국 드라마를 통해 락앤락 제품을 접해본 베트남의 최상류층이었다. 락앤락 호찌민 영업법인장 천해우 전무는 “어떤 날은 베트남 손님이 전화를 해 여러 제품을 섞어 5000달러어치만 배달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다”며 “위치 선정 때문인지 매장을 열자마자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8년 4월 첫 매장을 개설하고 그해 12월까지 무려 13개 매장이 추가로 문을 열었다.

고급 백화점에 입점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당시 베트남 최고 백화점으로 군림했던 호찌민 다이아몬드백화점. 처음에 입점 제안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락앤락은 플라스틱 밀폐용기가 아니냐. 백화점 분위기에는 맞지 않는다”고 콧대 높게 거부한 그들이었다. “밀폐용기뿐만 아니라 쿡웨어 라인 등 여러 가지 제품을 갖추고 있으니 매장 자리를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당시 한 글로벌 주방용품 업체가 백화점 수수료를 내지 않으려고 다이아몬드백화점 매장에서 매출 처리를 하지 않고 직거래식으로 물건을 판매하다가 매장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갑자기 매장 자리가 생기자 ‘대타’ 격으로 다이아몬드백화점에 들어간 락앤락 매장은 2개월 연속 전체 주방용품 매장 중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이후 백화점 측에서는 락앤락을 붙잡아야 하는 반전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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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용기뿐만 아니라 프라이팬 등도 볶음 요리를 즐겨 먹는 현지인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그 후 락앤락은 팍슨백화점, 빈콤 등 고급 백화점에 줄줄이 매장을 냈다. 쿱마트, 빈마트와 같은 로컬 유통기업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백화점에서 먼저 “입점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브랜드가 됐다. 천 전무는 “락앤락 물병이나 도시락가방을 과시하듯 가지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본다”며 “락앤락이 이곳에서는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락앤락은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 고급화 전략만 사용한 게 아니라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8년 매장을 열기 전에 이미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5명을 선발해서 한국 유학을 보냈다. 한 명당 2만 달러∼2만5000달러를 투자해 장학금을 지급한 것. 5명에게 약 12만 달러를 지급했는데 당시 직장인 한 달 월급이 200달러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5년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장학금으로 수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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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해우 전무는 “베트남 사회는 ‘입소문’이 중요해 일단 직접 써본 사람들이 만족을 해야 알음알음 고객들이 확산되는 곳”이라며 “하지만 한 번 그 브랜드에 대한 믿음과 로열티가 생기면 그 같은 호감이 오래 지속되니 브랜드를 잘 인식시키는 데 충분한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락앤락은 베트남 대표 경제지 <베트남 이코노믹 타임스(Vietnam Economic Times)>와 소비자 잡지 <컨슈머가이드(Consumer Guide)>가 조사·선정하는 ‘소비자가 신뢰하는 100대 브랜드(Top 100 Brand Product of Trust & Use award)’에 2012년부터 5년 연속 포함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단 10개 브랜드에만 주어지는 ‘2016년 소비자가 신뢰하는 10대 브랜드’에도 이름을 올렸다.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특판 거래도 활발해졌다. 특판 거래는 락앤락의 베트남 매출 가운데 약 40%를 차지했다. 현지의 삼성전자, LG전자는 물론 비나밀크와 같은 현지 기업, 유니레버, 존슨앤드존슨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과 거래하며 특판 매출액이 매년 30%씩 성장하고 있다. 락앤락의 브랜드 인지도 때문에 각 기업들이 행사 사은품으로 다른 제품이 아니라 락앤락을 선택하고 있다. 예컨대 TV나 냉장고를 사면 락앤락 밀폐용기 세트나 락앤락 여행가방을 주는 식이다.



선제적인 변화 추진

물론 베트남 로컬 브랜드들이 락앤락의 성공을 지켜보기만 할 리는 없다. 많은 로컬업체들이 품질을 떨어지지만 싼 가격을 내세워 ‘락앤락 따라잡기’에 나섰다. 현지 업체들은 다수의 매장을 내는 등 공격적인 전략을 취했지만 락앤락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를 따라오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락앤락은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 락앤락의 고급 제품에 접근하기 어려운 소비자들과 공격적인 저가 후발업체들을 감안해 매장을 3가지 종류로 차별화하기로 했다.



일단 기존 락앤락 매장은 현재처럼 고급스러운 기조를 유지하며 락앤락 제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 제품들을 가져와 판매한다. 한국의 쿠쿠밥솥, 휴롬 주스기 등을 비롯해 독일이나 유럽의 유명한 명품 주방 브랜드 제품을 입점시켜 함께 파는 것. 베트남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베트남 상위 1%를 위한 제품들을 선택해 선보이는 식이다. 한국산 루셀 금고가 대표적인 예. 은행을 잘 이용하지 않고 집에 현금을 쌓아두는 베트남인들의 성향을 겨냥해 내놓은 상품으로 락앤락 매장을 통해 베트남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락앤락 매장을 이렇게 더 고급스럽게 꾸민다면 락앤락 F2C(Factory to Customer) 매장은 20∼30% 할인된 가격으로 락앤락 제품을 공급한다. 또 대형 매장답게 큰 공간을 활용해서 가구, 베딩 등의 상품을 배치해 종합적인 라이프 스타일 숍 형태로 꾸민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Price & Quality’라는 새로운 형태의 저가 매장을 5월부터 베트남에 오픈할 예정이다. 이는 그동안 락앤락을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15달러 수준의 제품들이 진열된다.

이 밖에 제품군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밖에서 길거리 음식을 사먹던 사람들이 이젠 위생이나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회사에서 점심에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자 발 빠르게 그를 겨냥해 도시락 제품 라인을 확대했다. 또 물병이 많이 나가는데 얼음을 넣어 다닐 수 있게 보냉 텀플러 라인도 보강했다.

사실 많은 기업들이 매출이 늘어나고 성장세가 이어질 땐 현실에 안주하고는 한다. 하지만 락앤락은 베트남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매출이 연 65% 성장하는 등 지금도 충분히 사업이 잘되고 있지만 추후 심화될 후발주자와의 경쟁, 그리고 고객군을 더 확장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변신을 선택한 것이 그 예다. 매장을 3가지 종류로 차별화하고 단순한 주방용품 매장이 아니라 다양한 상품군을 보강한 락앤락은 ‘IKEA’ 같은 종합 라이프 브랜드로 나아가기 위해 보폭을 확대하고 있다.

덧붙여 베트남 현지 인력에 대한 투자도 지속하고 있다. 우선 붕따우 공단 내 여타 업체들과 함께 투자해 4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을 개설할 계획이다. 베트남은 산후휴가를 6개월 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직원들이 출산휴가를 마치고 아기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공장을 떠나고 있다. 숙련된 직원을 육아문제로 떠나보낼 수 없다는 판단으로 락앤락은 생후 6개월∼6세 어린이들이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을 공단에 마련하기로 한 것. 여기에 더해 관리자급 베트남 직원들을 위한 ‘아파트’도 건설할 계획이다. 대상 직원들에게 아파트는 특별한 임대료 없이 무료로 제공된다. 천 전무는 “해외 시장에서는 HR전략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올해부터 건강검진, 직원들을 위한 복지시설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직원들의 행복감이 판매도, 생산도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Case 3

베트남의 女心 홀리며 베이커리 업계 1위로 올라선 뚜레쥬르



12일 오후 호찌민 시내 뚜레쥬르 지점. 매장을 들어서자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뚜레쥬르, 신짜오(안녕하세요. 뚜레쥬르입니다)”라고 인사한다. 매장에는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깨끗한 유리창을 통해 직접 주방에서 빵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카페처럼 꾸며진 좌석 10여 개 가운데 절반은 차 있었다. 데이트를 하는 남녀, 아이폰을 들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여성들 앞에는 뚜레쥬르 빵과 커피가 놓여 있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는 2007년 베트남에 진출, 10년 만에 프리미엄 베이커리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주요 타깃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30∼40대 커리어우먼으로 피크타임은 오후 5시경. 이들은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뚜레쥬르에 들러 저녁 또는 아침 대용으로 먹을 빵을 사간다. 베트남의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빵 가격이 결코 싼 편이 아니지만 저녁 때가 되면 대부분의 제품이 동이 난다. 2017년 2월 현재 베트남 전체에 문을 연 매장만 33곳. 직영 30곳에 CGV에서 운영하는 가맹점 3곳이다. 치열한 베트남 베이커리 시장서 입지를 굳힌 뚜레쥬르의 성공요인은 철저한 현지 및 경쟁업체 분석, 새로운 고객경험 제공, 장기적 관점에서의 CSR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몇 달간 경쟁 베이커리 옆에 숙소 잡고 시장분석

해외 진출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첫 단추가 잘 끼워져 소비자들에게 ‘입소문’이 나야 그 다음 매장을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자신감 있게 성장 전략을 실행할 수 있다. 특히 베트남 시장은 ‘구전 마케팅’이 중요하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직접 체험한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뚜레쥬르는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운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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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레쥬르에서 베트남 소비자들을 겨냥해 출시한 과일 페스트리 메뉴

1호점 매장 위치는 호찌민의 중심가 하이바쭝 거리였고 매장 규모는 200평에 달했다. 로컬베이커리 업체 중 1∼2위를 다투는 킨도베이커리 매장도 바로 인근에 있었다.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뚜레쥬르는 경쟁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처럼 극한 환경에서 싸워가면서 시장을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격적이었지만 준비는 냉정하고 철저했다. 2007년 6월 베트남 호찌민의 중심가인 하이바쭝 거리에 1호점을 내기 전까지 3개월 동안 뚜레쥬르 몇몇 임직원들은 최대 경쟁업체인 킨도베이커리 근처에 방을 얻고 아예 거기서 살면서 경쟁업체와 현지 시장을 살폈다. 킨도베이커리의 영업 스타일은 어떠한지, 주로 팔리는 빵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베트남은 과거 프랑스 문화의 영향으로 빵을 주식으로 먹는 문화가 일찍부터 형성됐지만 당시 주요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빵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경쟁업체들이 보통 40종 정도의 빵을 판매하는 것에 비해 뚜레쥬르는 80종가량의 빵을 진열했다. 고급스럽고 믿을 만한 베이커리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경쟁업체들과는 달리 오픈형 키친을 꾸몄다. 이런 전략 덕분에 200평 규모의 대형 매장은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로 북적였다. 새로운 경쟁자 뚜레쥬르의 등장에 고전하던 킨도베이커리는 뚜레쥬르가 문을 연 지 8개월 만에 문을 닫고 하이바쭝 거리를 떠났다.



새로운 ‘경험’ 제공

사실 뚜레쥬르가 베트남 시장에 진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의 베이커리는 철저히 공급자 중심이었다. 빵을 파는 것 외에 별도의 고객 서비스는 없었고, 고객들이 컴플레인을 해도 무신경했다. 하지만 모든 베이커리가 이와 비슷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별다른 불만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뚜레쥬르에 앞서 시장에 진출한 KFC나 커피빈 등 글로벌 브랜드들도 고객 중심의 획기적인 서비스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뚜레쥬르는 철저히 ‘소비자 중심’의 베이커리를 선보이며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매장을 방문하는 모든 고객들에게 ‘뚜레쥬르 신짜오’라며 환영인사를 했다. 현재는 뚜레쥬르식 고객응대가 다른 베이커리 업체에도 확산됐다. 또 1대1 원스톱 고객서비스도 제공했다. 손님이 들어오면 옆에서 빵에 대한 설명부터 계산까지 직원들이 하나하나 도와줬다.

매장도 완전히 다르게 꾸몄다. 빵과 음료를 전시하고 판매만 했던 기존 관행과 달리 뚜레쥬르는 좌석과 테이블을 둔 ‘카페형’ 베이커리를 선보였다. 마침 경제적 성장과 함께 베트남 젊은이들은 집과 직장 외에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을 만날 ‘제3의 공간’을 원했다. 오토바이에서만 데이트를 즐기던 베트남 젊은이들은 뚜레쥬르를 데이트 장소로 애용하고 있다.

위생적인 면에서도 철저하게 한국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다. 당일 생산한 빵은 당일 모두 판매하고 남은 빵을 폐기 처리하고 있다. 포모사 사태1 로 안전 먹거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위생 기준을 철저히 준수하는 뚜레쥬르에 대한 호감도는 더욱 상승하고 있다.



베트남 소비자들의 입맛과 눈높이를 맞춰라, 철저한 현지화

베트남 고객들을 위한 철저한 현지화도 주효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아침을 바게트나 크루아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착안해 바게트 관련 상품을 늘렸다. 또 고기를 집어넣은 육송빵, 반미(쌀로 만든 바게트) 샌드위치 등도 인기를 끈 제품. 과거에는 연구개발 담당자를 베트남에 파견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아예 연구개발을 위한 R&D 부서를 베트남 현지에도 꾸렸다.

베트남의 주요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라는 점을 감안해 ‘오토바이 무료 주차 서비스’도 제공했다. 매장 입구에서부터 직원이 고객을 환대하며 고객의 오토바이 또는 자전거를 인계받아 무료로 주차까지 대행하는 일종의 ‘풀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기존 매장들은 주차공간이 부족하거나 주차공간이 있어도 본인이 직접 주차를 하고 주차료를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현지화 과정에서도 고급스러운 프리미엄 베이커리라는 이미지는 철저히 유지했다. 일단 환한 조명과 원목 테이블과 의자 등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내부부터 차별화했다. 때마침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선호하기 시작한 베트남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할 때 적절한 선택이었다. 유럽을 연상시키는 테라스가 있는 매장을 선보이는가 하면,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서도 소비자들과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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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 뚜레쥬르 남키커이냐점에서 손님들이 빵을 고르고 있는 모습

‘뚜레쥬르=프리미엄 베이커리’라는 이미지가 확고히 자리를 잡으면서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는 뚜레쥬르 매장에서 찍은 셀카 사진이나 제품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 일부는 뚜레쥬르 케이크나 음료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자기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사실 맞벌이가 활발하고 여성들의 사회생활 때문에 외식문화가 발달한 베트남이지만 1인당 소득이 2000달러 남짓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뚜레쥬르의 빵은 베트남인들에게 분명히 고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뚜레쥬르가 ABC베이커리와 같은 로컬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1위로 올라선 데는 이 같은 프리미엄 베이커리로서의 차별화가 주효했다. 싼 편은 아니지만 좋은 품질과 맛을 가졌으며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주 타깃인 중산층 30∼40대 여성 고객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준 것.



멀리 내다보고 사람도 키운다

현재 6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정규직은 200∼250명가량으로 본사에서 파견된 한국 직원 몇 명을 제외하곤 99%가량이 베트남인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응대를 해야 하는지에서부터 기본적인 빵 생산과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교육이 이뤄진다. 아르바이트생들도 모두 이틀에 걸쳐 3∼4시간씩 교육을 받고 정규직원들의 경우 2달 인턴기간 동안 철저히 이를 숙지하게 된다.



이렇게 현지인을 고용할 뿐만 아니라 뚜레쥬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사람을 키우고 핵심 기술도 이전하고 있다. 2013년 코이카와 공동으로 응에안성 한베기술전문학교에 ‘CJ제과제빵학과’를 개설해 제빵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연 2회 회당 40∼50명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뚜레쥬르에 취업해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 CJ푸드빌 베트남 뚜레쥬르법인의 송인혁 매니징 디렉터는 “베트남 소비자들은 기업들의 CSR에도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며 “뚜레쥬르의 경우 이렇듯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 고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뚜레쥬르는 계속해서 지점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신규 지점 입지는 까다롭게 선정된다. 매장에서 빵을 즐기는 사람보다 테이크아웃해가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점 때문에 최우선 고려사항은 통행량이다. 수주에 걸쳐 오토바이 통행량을 체크하는 등 입지 선정에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는 설명이다.

시장 전망은 나쁘지 않다. 베트남의 베이커리 시장 규모는 2014년 기준 9229억 원에서 매년 성장해 2018년이면 1조1586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처분소득이 60%에 달할 정도로 소비성향이 강하고 외식을 즐기는 특성상 급속한 성장이 예상된다. 또 GDP가 연평균 6∼7%대 성장을 현재처럼 지속할 경우 2020년 베트남 중산층이 33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게 컨설팅 업계의 분석이다.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고가,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가고 있다. 게다가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니즈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도 뚜레쥬르와 같은 ‘프리미엄 베이커리’를 지향하는 곳으로서는 호재다. 베트남 정부는 안전 먹거리를 원하는 베트남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위생기준을 강화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노점상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론 호찌민 내 외국 기업 투자 등으로 임차료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으며 매년 5% 이상 상승하는 인건비는 부담 요인이다. 게다가 현재까지는 개인사업자를 믿고 프랜차이즈 지점을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CGV에서 운영하는 점포 3곳을 제외하고는 100% 직영점포인데 직영점포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성장하고 있는 로컬 베이커리,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의 연이은 진입도 리스크 요인이다.

결국 ‘답’은 뚜레쥬르가 지난 10년과 같이 계속해서 더 새로운 고객경험을 제공하고 철저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현지인들의 ‘입맛’과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호찌민=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인터뷰: 신한베트남은행 법인장을 거쳐 글로벌 사업을 맡은 허영택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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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선 핀테크보다 어떻게 영업하느냐가 중요”

우리은행, KB국민은행 등 한국 여타 은행들이 베트남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데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사실 ‘은행업’ 자체가 쉬운 상황이 아니다. 가장 큰 변수가 규정 주순을 위한 ‘컴플라이언스 비용’이다. 한 번 규제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가는 은행의 존망을 흔들 수 있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맞는다. 지점이 하나든, 50여 개든 똑같은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갖춰야 하며 그 나라 감독당국의 규제를 받는다. 상대적으로 베트남과 같은 이머징국가의 규제가 지금은 강도가 약하지만 바젤2, 바젤3, IFRS 등을 결국 시간에 따라 도입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점 하나로는 그 같은 컴플라이언스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요즘 글로벌 은행들의 경우 그 때문에 현지 은행에 지분 투자를 많이 하고, 철수를 하는 은행도 있다. 컴플라이언스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은행들이 들어와 ‘나 홀로 점포’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것이다. 시스템을 깔아야 영업을 할 수 있는데 ‘나 홀로 점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신한은행을 따라오기에는 시스템의 차이가 너무 크다. 신한은행은 베트남에 매해 IT 비용만 400만∼500만 달러를 썼다. 한 달 거래건수가 1000만 건에 이른다. 다양하게 거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모두 갖췄고 매년 투자를 한다. 금년에 지점이 22개, 직원이 1000명까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신한은행은 이미 수익 증가분의 70∼80%가 리테일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한국계 은행들이 베트남에서 우리를 따라온다면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가 경쟁상대로 삼고 있는 것은 로컬은행들이다. 로컬은행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로컬은행들과 경쟁하려면 신한은행만의 확실한 경쟁우위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에서 갈고 닦은 핀테크가 경쟁력이 될까.

사실 핀테크, 모바일뱅킹을 한국 은행의 경쟁력으로 많이 꼽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로컬은행들이 금방 따라오고 있다. 오히려 신한은행이나 한국계 은행보다 빠른 부분도 있다. 한국은 공인인증서 등에 막혀 있고 복잡한데 그곳은 심플하다. 게다가 대다수의 로컬은행들의 CEO가 40대다. 젊은 사고로 받아들여서 변화가 매우 빠르다. 그리고 핀테크는 어디까지나 기술이다, 해외에 나가서 기술로 시장을 장악한다? 쉽지 않은 얘기다. 그리고 로컬은행들이 굉장히 빠르게 쫓아온다. 새로운 기술을 들고 와도 넉 달이면 다들 카피한다. 결국 핀테크라는 기술보다는 어떻게 영업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다른 은행들은 해외 전문가를 잘 키우지 않는데 신한은행은 베트남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키운 것 같다.

여타 은행들에서는 해외 근무를 3년 이상 잘 안 시키는데 3년 가지고서는 절대 사업을 할 수 없다. 신한은행은 근무 기간에 전혀 제한을 두지 않는다. 또 평가 시스템도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성과에 중점을 두게끔 유도하고 있다. 한 해 잘했다가, 못했다가 ‘퐁당퐁당’이 돼서는 결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대신 3년 이상 꾸준히 우상향하면 가점이 20%다. 해외에 나가서 장기적 관점에서 진정성 있게 할 수밖에 없다.



여러 기업들이 ‘포스트 차이나’로 베트남을 주목하고 있다. 베트남 진출을 준비 중인 기업들에 조언을 한다면.

업종별로 다르지만 큰 틀에서 이야기하자면 겸손하게 그 나라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진정성 있게 파악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진정성’을 실감하게 하려면 먼저 행동에 옮겨야 한다. 만날 “내년부터 인센티브 도입하겠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성과급을 지급하면 그 다음부터 모두가 믿게 된다. 봐야지 믿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해외 사업에서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많이 벌어서, 많이 주고, 많이 남겨야 된다고 말이다. 해외 직원들을 피고용인으로 생각하는 순간 직원들은 조직의 진심을 믿지 않는다. 그들로 하여금 내 인생을 바쳐도 되겠다, 이 조직은 나를 먹여 살리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베트남에 있을 때 “나는 당신들과 당신의 자식들이 신한은행에 계속 다니기를 희망한다, 그런 조직을 만들자”고 이야기했다.



올해 목표가 궁금하다.

일단 카드는 매년 100% 성장이 목표다. 그 다음은 디지털 뱅킹이다. 써니뱅크에서 아주 잘하고 있는데 실제로 한 달 거래건수 중 비대면 거래건수가 50%가 넘는다. 여기에 더해 베트남 특화상품 계획이 많다. 현지 직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다양한 상품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사실 일본, 베트남 빼고는 해외에서 실기(失期)를 한 측면이 없지 않다. 중국도 2012∼2014년 황금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 다양한 영업을 해서 역량을 축적했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쳐버렸고 그 뒤로는 갖가지 규제가 생겨났다. 은행업은 라이선스, 규제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한데 아쉽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41호 Beyond Competing 2018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