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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분석 실패가 금융위기 ‘뇌관’

DBR | 14호 (2008년 8월 Issue 1)

당신은 의자에 앉을 때 좌석 밑에 폭탄이 있는지 확인하고 앉지는 않을 것이다. 폭탄이 있다면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와튼 금융기관 연구소(Wharton Financial Insti-tutions Center)와 경영 컨설팅 회사인 와이먼 인스티튜트(Wyman Institute)가 주최한 연례 금융 위기 간담회에서 연사들은 위험에 대한 이 같은 일반적인 시각 때문에 은행, 은행 감독기관, 정부 기관들이 위험성이 높은 투자나 비즈니스 모델을 간과함으로써 국제 신용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지적했다.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는 생각이 신용 위기로
미국 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계 은행 노던 록(Northern Rock)의 붕괴는 ‘위험 분석 실패’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시티그룹(Citigroup), 베어스턴스(Bear Stearns), 메릴린치(Merrill Lynch) 등의 회사가 어려움에 처한 원인과 유사하다. 영국 록스버러 대학에서 재무를 강의하는 데이비드 T. 루엘린 교수는 영국의 거대 모기지 은행인 노던 록이 지난해 파산 위기에 처해 국유화되기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성과를 내는 은행 중 하나로 손꼽혔다고 말했다.
 
노던 록은 모기지론을 잘 운영하고 있었으며,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세계 신용 경색을 촉발하면서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노던 록은 필요한 자금의 3분의 2에 이르는 도매 금융시장 자금을 더 이상 차입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미국의 예금주들에 비해 보험 가입률이 낮았던 영국의 예금주들은 앞다퉈 노던 록 은행에 예치한 자금을 인출했다. 예금 대량 인출 사태를 일컫는 이른바 ‘뱅크 런’이 영국에서 100년 만에 처음으로 발생한 것이다. 결국 영국 정부는 노던 록을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
 
대출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노던 록이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소식이 아니었다. 단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루엘린 교수는 지적했다. “사람들은 ‘위험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아직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좌석 밑에 폭탄이 있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지만 아무도 자리 밑을 확인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노던 록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중재자가 없어진 시장
노던 록의 몰락이 영국의 은행업계 전체에 위협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봄에 터진 베어스턴스 사태는 미국의 주요 금융업 전체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3월 어떤 시점에 이르자 모든 것이 제각기 따로 돌아가면서 월 스트리트가 중재자 역할을 하던 기존 체제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시장에 중재자가 없어진 형국이었지요.” 국책 주택담보대출 기관인 패니메이(Fannie Mae)의 상무 겸 회계담당 데이비드 벤슨의 말이다. 모기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패니메이는 주택 경기 침체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극도의 금융 압박을 경험했다. 올해 1분기 동안 패니메이는 주택 시장 악화로 22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또 최근 재무 건전성 강화를 위해 현금 보유액을 20억 달러 늘렸다.
 
벤슨이 이끄는 회계팀은 시장 상황 파악을 위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선정 500대 기업 대비 패니메이의 주가 변동 등 여러 지표를 정기적으로 확인한다. 또한 시장 혼란으로 주식 매매가 어려울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 위험에 대처하기에 충분한 현금을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지도 확인한다. 예를 들어 패니메이는 적어도 90일간 무담보 부채를 발행하지 않고도 현금을 지급하기에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패니메이는 담보 없이 매각 및 대출을 통해 자금을 유입할 수 있는 자사의 능력을 주기적으로 시험한다. “우리가 원활히 자금에 접근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모의 훈련입니다. 우리는 현금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능력이 원활히 발휘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장 위기 상황에 대한 모의훈련 강화
시장 위기 상황을 가상으로 설정하는 ‘모의 훈련’을 실시하는 동안 벤슨은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모든 내용이 담긴 체크리스트를 참고한다. 이 체크리스트가 있기 때문에 실제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기억에 의존해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는 비상 계획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자본 시장에 시스템상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비상 계획이라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업들의 상호 의존도가 높아 한 기업에서 일어난 문제가 다수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기를 바랄 뿐이지요.”
 
미국 최대 모기지 회사 중 하나인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의 회계 담당자 로버트 J. 윌리엄스 역시 위기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2008년 1분기 동안 워싱턴 뮤추얼은 대출 손실에 대한 대손충당금과 관련해 주당 1.4달러에 해당하는 11억 달러의 손순실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6월 2일 이 회사의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케리 킬링거가 보상 정책과 위험 관리에 대한 투자자들의 비난에 부닥쳐 사퇴하기도 했다.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윌리엄스도 계속되는 신용 손실로 인해 내년에도 대손충당금이 높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잠재적 위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그가 어림잡아 계산한 바에 따르면 주택 관련 자산과 차입 자본, 신용 손실 등을 고려할 때 은행 업계는 현금 보유액을 1000억∼2000억 달러 더 늘려야 한다. 이는 부채와 자산 비율을 20대1이라 볼 때 은행업계가 현금 기반을 재구축하기 전까지 융자 가능 규모가 2조∼4조 달러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윌리엄스는 “우리가 다시 검토한 바에 따르면 이 수치가 상당히 크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워싱턴 뮤추얼은 1900억 달러 규모의 주택 대출 포트폴리오를 통해 앞으로 3∼4년간 120억∼19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회사는 포트폴리오가 여러 경제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를 고려해 변동 범위를 설정했다. 이 회사는 또 최근 잠재적인 시장 혼란에 대처하기 위해 현금 보유액을 70억 달러 더 늘렸다. 신규 자금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현금 비율에 대해 100억 달러의 완충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윌리엄스에 따르면 주택 시장 위기는 대규모 규제 체제 점검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은행법과 자본 요건 등의 법규에 대한 일련의 국제 권고안인 바젤2 협약(Basel 2 Accord)의 재검토도 포함될 것이다.
 
말썽 많은 지불 구조
‘기업의 유동성’을 주제로 논의한 첫 번째 패널 가운데 다른 연사들은 현재의 규제 법안들이 현 시장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적절히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루엘린 교수는 감독자들의 ‘이번엔 다르다’라는 어휘 사용을 불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모든 버블 사태 때마다 이 말이 등장했습니다. 수익을 창출해 내지 못하는 기술 기업의 주가가 급등할 때, 일반 가정이 구매할 수 없는 수준으로 주택 가격이 치솟을 때 사람들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 말을 했지요.”
 
그는 은행의 지불 구조를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했다. 인센티브 구조를 실제로 살펴보면 ‘따라 하기’ 열풍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예를 들어 남들을 따라 새로 뜨는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은 일단 신용이 부실한 사람들에게 주택 자금을 융자해 준 데 따른 높은 수수료로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은행들이 한 발짝 물러서서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소신있는 행동을 한다면 그다지 많은 대출을 해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집단적인 사고가 감독 담당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노던 록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이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이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감독 기관이 초기에 개입하지 못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신현송 교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현재의 자본 요건이 주식시장 폭락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은행 보유 주식의 가치를 공개하도록 정한 회계 법안을 의식해 은행들은 호황기에 투자를 확대하고 불경기에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감독 기관들은 이보다 유동성에 대한 기준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즉 기업들이 저가에 주식을 팔지 않고도 자산을 신속하게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신 교수는 또 베어스턴스처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의 문제가 전체 시스템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기업간 의존도가 매우 높은 오늘날의 금융 시장 상황에서 유동성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업간의 높은 의존도 또한 당사자 간의 분쟁을 야기시킨다고 강조했다. 주택 대출 손실로 인한 시장 혼란 때 위기에 처한 베어스턴스는 다른 회사들이 침착하게 기다려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베어스턴스의 채권자들이 긴축 재정에 들어간 것은 베어스턴스 입장에서 일종의 ‘뱅크 런’이었던 셈입니다.”
 
여전히 신용 위험이 남아 있는 은행들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이 있다면 주택담보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은 판매된 채권을 공유화함으로써 대출업자의 위험을 투자자에게로 돌릴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다는 것이다. 루엘린 교수는 “위험이 예상한 것만큼 많이 전이되지 않았다”며 “여전히 은행 쪽에 신용 위험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드렉슬대 베닛&르보 비즈니스 칼리지에서 금융을 가르치고 있는 조지프 메이슨 교수는 “투자자들도 증권 계약 조건에 따라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는 금융기관에 책임의 일부를 재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세계와 비즈니스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계약은 깨지지 않는다면 수정되기 위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투자자들은 ‘여기가 거의 끝이야. 잠시 침체기를 겪고 있을 뿐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경기가 되살아나면 이런 시장을 두고 죽은 고양이가 살아난 것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저 같은 고양이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메이슨 또한 현재의 시장 위기는 보는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이전 절정기에 주택을 마련한 사람도 연간 7%의 이익을 거뒀다. 물론 이 결과는 그들이 이 위기를 버틸 만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나온 것이다.
 
나이에 따라서도 지금의 위기를 바라보는 입장은 달라진다. 역사적인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경제 상황은 그다지 열악한 편이 아니다. 현재 실업률은 높지만 국내총생산(GDP)은 여전히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메이슨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진정한 불경기를 겪었던 것을 기억하려면 적어도 37세는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 주변의 몇몇 교수들은 1991년은 진정한 불경기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까 57세쯤은 되어야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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