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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마르 시몬슨 교수 강연

우리 제품 좋다고 설득할 시간에 소비자들의 평가에 귀 기울여야

이타마르 시몬슨(Itamar Simonson),조진서 | 216호 (2017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인터넷의 발달로 소비자가 마케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게 됐다. 조직 안에서 마케터들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1) 고객 선호도를 설문조사한 후 이에 바탕해서 신제품을 기획하던 시대는 갔다. 여러 신제품을 직접 고객들에게 실험해보고 그 반응 에 대응하라.
2) 세그먼트, 포지셔닝, 타기팅 등 과거 마케팅의 원칙에 집착하지 마라. 소비자들은 이미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으므로 그들의 자율 적인 선택을 존중하라.
3) 신제품의 특징은 적극적으로 알려라. 하지만 품질에 대해 소비자를 설득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품질에 있어서 소비자는 M(마케   터)이 아니라 O(Other people)의 목소리를 신뢰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민혁(연세대 사회복지학과·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동아비즈니스포럼 2016의 두 번째 세션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이타마르 시몬슨 교수가 맡았다. 그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루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UCLA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5년간 모토로라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듀크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따고 UC버클리 조교수로 근무한 후 1993년부터 스탠퍼드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소비자 의사결정, 시장 조사, 마케팅 전략 등에서 뛰어난 연구 업적을 냈다. 특히 소비자들이 겉보기에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결정을 내리는 원인에 대한 일련의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날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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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가치’ 시대의 마케팅

지난 10∼20년 동안 마케팅 전략은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 표준화된 마케팅 전략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무엇일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소비자들에 대해 우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소비자들은 합리적이다’라고 생각해왔다. 소비자들은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기존 마케팅 담당자들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 제공해왔다. 소비자들은 품질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마케팅 전문가들이 주는 정보를 받아들였다. 제품의 브랜드, 가격, 생산지, 유통방법 등이 품질을 측정하는 잣대였다. 물론 소비자는 아직도 합리적이다. 하지만 품질에 대한 정보는 다른 방법으로 찾고 있다.

그럼 기업은 어떤 해결책을 동원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소비자를 좀 더 이해하려 하고, 브랜드와 광고에 좀 더 투자하고, 제품을 더 알리려 했는데 이젠 그런 노력들이 효과가 없어 보인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소위 말하는 ‘마케팅 믹스’도 바꾸려 한다. 제품, 가격, 홍보방법, 유통채널을 모두 다 바꾸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우리 사고의 폭을 넓혀서 과거의 변화가 마케팅 전문가들에게 어떤 함의를 주는지 생각해보자.

과거의 소비자들은 관리를 당했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소비자들을 이끌며 이것 혹은 저것을 선택하라고 강요할 수 있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어떻게 소비자들을 좌지우지했을까? 몇 가지 예를 통해 소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아보자.

6달러를 당신에게 주고 볼펜을 살지 말지 결정하는 실험을 해보자. 볼펜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크로스’라는 브랜드의 예쁜 볼펜이고, 다른 하나는 ‘셰이퍼’라는 덜 예쁜 볼펜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크로스 펜만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에겐 크로스와 셰이퍼 두 종류를 다 보여준다. 이때 실험 참가자들에게 ‘크로스 펜이 당신에게 어떤 가치를 주나요?’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한다. 단 하나의 제품만 제시됐을 때 이 제품이 주는 ‘절대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마케팅 전문가라면 두 종류의 볼펜을 사람들 눈앞에 나란히 둘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를 서로 비교하면서 ‘셰이퍼’에 비해 ‘크로스’가 좋다는 상대 가치를 인지하게 된다.

이런 예는 수백 가지를 들 수가 있다. 내가 오래 전에 미놀타라는 카메라 브랜드를 두고 한 실험이 있다. 169.99달러짜리 모델 A와 239.99달러짜리 모델 B가 있는데, 여기에 469.99달러짜리 모델 C를 추가하면 어떻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이 세 모델을 비교하면서 ‘나는 제일 비싼 모델은 필요 없지만 가장 싼 건 사기 싫다’며 중간 것을 고른다. 즉 타협을 한다. 이것이 ‘타협효과’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고를 때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럼 현재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 홈디포에서 판매하는 LG 세탁기가 있다. 이 제품의 웹페이지에는 106명의 소비자가 댓글을 올렸고 평균 평점 별 4개를 받았다. 그중엔 별 1∼2개를 주고 안 좋은 얘기를 쓴 사람들도 있다. 홈디포는 왜 이렇게 나쁜 댓글을 지우지 않고 남겨 두었을까? 정말 그 리뷰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좋지 않은 세탁기라면 홈디포에서 판매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댓글도 있어야 소비자의 신뢰가 형성된다. 리뷰에 너무 좋은 얘기만 있으면 사람들은 그 정보를 믿지 않는다.



미국에서 전자상거래의 40%가 아마존 몫이다. 아마존에는 여러분들이 상품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정보들이 후기로 올라와 있다고 보면 된다. 온라인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잡지에도, SNS에도 온갖 정보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정보가 많다면 소비자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과연 제품과 제품을 비교하고 상대평가를 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제품인지 의심이 들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예전 실험과 마찬가지로 소비자에게 카메라 2개 모델을 제시했을 때와 3개 모델을 제시했을 때 반응을 비교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제품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과거에 나타났던 타협효과가 보이지 않았다. 즉 3개를 제시했을 때 가운데 모델을 많이 선택하던 현상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편견을 갖고 한쪽을 더 선호하지 않는다. 각각의 제품의 절대 가치, 진정한 가치를 두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너무나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1990년대에 노트북을 산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우선 브랜드를 고를 것이다. 또 어느 나라에서 만든 물건인지도 고려할 것이다. 가격도 선택 기준이 된다. 미국에는 ‘돈 낸 만큼 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가격을 보면 품질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일정한 가격대에 도달한 제품들이 비슷한 품질을 보여줄 것이라고 하는 것 역시 상대적인 선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미국에는 제품과 서비스의 리뷰를 하는 사이트들이 매우 많다. 옐프(Yelp)는 음식점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웹사이트다. 한국에는 아직 이런 사이트가 없는 것 같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곧 보급되리라 생각한다. 이런 음식점 리뷰 사이트의 경우 사용자들은 그 리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조작된 리뷰가 없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음식점 주인의 가족이 쓴 건 아닌지, 길 건너 경쟁자가 쓴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결국 사이트의 신뢰도가 올라간다. 제품의 인기도 역시 중요한 정보다. 스마트폰을 살 때 일반적으로 인기 있는 제품을 골라야 액세서리의 종류도 많고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이런 인기도 역시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제품의 정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전통적인 마케팅 툴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제품 세그먼트와 카테고리에 따라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크게 볼 때 소비자들에게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마케팅 툴에는 덜 의존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이 마케팅의 영향력을 줄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M의 시대는 갔다. 이제는 O의 시대다.

이번엔 소비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을 살펴보자.

우선 ‘P’가 있다. Prior preference. 사전 선호다. 우리 머리 안에 이미 저장돼 있는 성향들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극단적인 편에 서길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중간에 서길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타협하는 걸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타협을 피하길 좋아한다. 이런 건 유전에 의해 타고나는 요소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두 번째 요인, ‘M’은 마케터다. 광고, 브랜드 구축 등이 M의 영향력이다.

세 번째 요인은 ‘O’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other people)에게 듣는 이야기다. 가족일 수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인터넷의 경우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자,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소비자들의 큰 삶에 변화를 준 것인가? 소비자 결정에 미치는 O의 영향력은 늘어나고 M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 물론 제품에 따른 차이는 분명히 있다. 만일 당신이 옷걸이나 종이클립을 판매하는 업자라면 O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비자는 그런 제품의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지 않는다. 구매할 때 정보를 검색/확인하지 않는 제품은 O에 독립적인 제품(O-independent)이다. 반면 O에 계속적으로 의존하는 제품(O-Continuum)도 있다.

제품이 팔리는 채널에 따른 차이도 있다.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몰은 사람들이 타인의 의견을 볼 수 있도록 한다. 반면 물리적인 매장에서 쇼핑할 때는 온라인처럼 많은 물건을 비교하기 힘들다. 매장에서는 타인의 의견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보는 정보에 따라 구매결정을 내리게 된다. 국가에 따라서도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미국에선 소비자가 여러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직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O의 영향력이 커지고 M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다.

이제부터 이 O에 의존하는 제품들의 특징에 대해 얘기해보자.

현대의 소비자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머리가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다.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줄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브랜드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말한다. “인터넷에 정보가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정보 과부하에 걸려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브랜드에 좌지우지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정보를 소비자가 다 소화할 필요는 없다. 내가 헤드폰을 산다고 해보자. 나는 헤드폰을 착용했을 때 얼마나 편안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타인이 작성한 리뷰들을 보고 내가 원하는 정보만을 골라서 처리한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정보, 모든 정보를 처리할 필요는 없다.

레스토랑의 경우를 보자. 시즐러, 올리브가든, 루스크리스 스테이크하우스 등 미국의 유명 레스토랑 체인은 각기 특징이 있다. 루스크리스는 훌륭한 스테이크를 판다. 시즐러는 그럭저럭 맛있는 스테이크를 판다. 올리브가든은 저렴한 이탈리안 요리를 판다. 이런 체인점 브랜드를 보고 선택하면 위치에 상관 없이 똑같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스타벅스에 가면 똑같은 품질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이것이 체인점의 장점이다. 그런데 절대 가치의 시대는 어떨까? 옐프에 들어가면 각 지역 식당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다. 요리 사진도 있고 리뷰도 있다. 얼마나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젠 레스토랑 체인점들이 경쟁우위를 상실한 것이다. 개별적인 식당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스타벅스나 루스크리스 같은 브랜드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개별 식당에 대한 정보를 보고 얼마나 좋은지를 판단할 수 있다. 옐프가 시애틀에 진출한 이후 레스토랑 시장에 대해 조사해봤더니 실제로 체인점은 줄어들고 독립 식당들이 늘어났다. 물론 브랜드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특히 럭셔리나 자동차 등에 대해서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브랜드의 중요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물론 가짜 리뷰의 문제는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가짜 리뷰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개선되고 있는 추세다. 기업은 가짜 리뷰를 올리는 사람들에 대해 법적인 조치도 취하기도 하고, 실제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한 고객만 리뷰를 올릴 수 있게 시스템을 개선하기도 한다. 수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의심 가는 리뷰는 자동으로 걸러내는 사이트들도 있다. 아마존은 상위 1000명의 리뷰어에게 포상을 한다. 이들은 아주 신뢰감 있는 리뷰를 쓰기 때문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앞으로 온라인에 올라오는 리뷰들이 점점 더 많은 신뢰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브랜드, 고객 충성도는 과거의 유물이다

그렇다면 브랜드가 갖는 함축적 의미 변화는 무엇일까.

대만의 아수스라는 컴퓨터 브랜드는 굉장히 빨리 성장했다. 원래는 OEM 회사였다. 이들이 자기 브랜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온라인에서 아주 좋은 리뷰를 받았다. 이제 아수스는 노트북, 태블릿 시장에서 세계 5위권 업체가 됐다. 이렇듯 오늘날 좋은 제품을 파는 회사는 소비자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다. 시장점유율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다.

과거 미국에서 팔렸던 현대 엑셀을 기억하는가. 처음엔 잘 팔렸지만 금새 평판이 안 좋아졌다. 현대차는 신뢰할 수 없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일부 프랑스 자동차 회사들은 같은 이유로 미국 시장을 떠나야 했다. 현대는 훨씬 현명했다. 그냥 떠나지 않았다. 품질 향상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새로운 모델로 시장을 다시 공략했다. 오늘날의 현대차는 미국에서 종종 품질, 신뢰도 관련 상을 받곤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혹시라도 여러분이 실수를 한다 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제품을 낸다 해도,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얼마든지 실수를 시정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전 제품이 아니라 앞으로 출시할 제품을 갖고 여러분을 평가할 것이다.

이젠 다변화도 쉬워졌다. 과거엔 브랜드가 너무 많은 제품 카테고리에 걸쳐 있으면 좋지 않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삼성이란 브랜드가 핸드폰에 적용되든, 전자레인지에 적용되든 관심이 없다. 단지 찾고 있는 제품이 개별적으로 좋은 제품이면 될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카테고리든지 간에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 팔면 된다.

이제 고객 충성도(loyalty)에 대해 말해보자. 고객의 충성심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1% 고객의 충성도를 늘리면 수익성은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외에 고객 충성도 관련 많은 측정잣대가 있다. ‘이 고객의 평생가치는 얼마인가’ ‘고객 한 명 확보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가’ 등이다. 그런데 이제 바뀌고 있다. 소비자는 브랜드에 예전만큼 충성하지 않는다. 각각의 제품을 그 자체의 의미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우디 자동차를 좋아한다 해도 다음에 아우디를 산다는 보장이 없다. 핸드폰도 마찬가지다. 나는 2009년에 아이폰을 썼다가 그 다음엔 모토로라였고, 그 다음은 삼성 노트2, LG G4를 썼다. 이번 봄엔 갤럭시 S7 엣지를 구매했다. 내년 봄엔 내가 어떤 핸드폰을 살지 모르겠다. 나는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중에 수많은 옵션이 있다. 브랜드 충성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호텔 체인에 대한 한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중에 일관적으로 같은 호텔 체인에 투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8%에 불과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자들이 묻는다. “그럼 애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매장에 줄을 서서 사려고 한다. 이걸 보고도 고객 충성도가 의미 없어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같은 사례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흔히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만일 애플 제품에 잘못된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다른 제품으로 갈아탈 것이다. 이는 즉 애플의 인기는 (브랜드가 아니라) 진짜 품질에 기반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내가 이런 강연 자리에서 애플에서 안드로이드로, 혹은 안드로이드에서 애플로 옮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든다. 충성도의 중요성은 하락 추세에 있다. 소비자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면서 각 개별 제품은 로열티가 낮아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어떤 함의가 있을까? 성공은 현 제품에 의해 주도된다. 나쁜 제품이든, 좋은 제품이든 ‘이번 제품’이 중요하다. 과거의 제품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상황이다. 브랜드 충성도와 소비자의 생애가치의 연관성도 줄어들었다. 소비자들은 계속 제품을 옮겨 탄다. 그러므로 충성도를 측정하려는 방법론은 이제 시간낭비일 수도 있다. 고객을 평생 모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포지셔닝, 타기팅, 설득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마케팅 강좌를 들으면 으레 나오는 얘기들이 있다. 시장을 분할하고, 거기에 따라 제품을 포지셔닝하라고 한다. 즉 고객이 나의 제품을 경쟁사 제품 대비 어떤 제품이라고 인식하길 바란다. 마케터는 소비자가 그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소비자들이 마케터에 대한 의존 없이 스스로 여러 가지 정보를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터들은 자기 이익을 취하는 방향으로 편향이 돼 있다. 마찬가지로 소비자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찾는다. 몇 년 전 ‘페이스북 폰’이라는 이름으로 마케팅돼 나온 폰이 있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소비자 리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그 제품을 마케터들이 바라는 대로 페이스북 폰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최초의 태블릿은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시했다. 빌 게이츠가 직접 시연했었다. 좋은 리뷰를 받았다. 하지만 시장에선 완전히 실패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태블릿이 헬스케어 등 특정 세그먼트와 특정 애플리케이션용으로만 쓰일 것으로 생각하고 판촉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태블릿은 그런 분야에서 잘 쓰이지 않았다. 그래서 실패했다. 그 다음 애플 아이패드가 2010년에 출시됐다. 다른 제조사들도 태블릿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타깃 세그먼트를 따로 정하지 않았다. 어떤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이라고 먼저 정해주지 않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소비자 각자가 정하게 했다. 이것이 유기적 세그먼트다. 누가 이 제품을 필요로 하는지는 시장이 결정한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청중 중에 내 말이 맞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 좋다. 이것 역시 우리가 절대 가치의 시대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다.

기본적인 마케팅 이론들은 과거처럼 유효하지 않다. 포지셔닝, 세그멘테이션은 과거보다 효과가 떨어진다. ‘설득’은 광고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우리 제품이 가장 좋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절대 가치 측면에서 이것은 시간 낭비다. 소비자들은 제품에 대한 더 좋은 정보 출처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신제품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이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더 좋다고 설득하는 건 다른 문제다. 그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더 좋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장조사 분야를 살펴보자. 시장조사 활동은 많은 부분 오늘날의 소비자 선호를 측정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다. 소비자들이 냉장고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마트 온도계에서, 휴대폰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다. 소비자가 얼마나, 무엇을 얘기해줄 수 있느냐에 따라서 기업은 완벽한 제품을 만들 수 있고 또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게 과거의 생각이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우선 많은 경우 소비자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또 소비자가 무엇을 사기로 결정할 때 그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지는 정보를 찾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 새로운 콘셉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잘 모른다. 소비자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다른 환경,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 사례를 통해 말해보겠다. 아이폰은 2007년 6월에 출시됐다. 그해 3월에 전 세계적으로 아이폰에 대한 소비자 조사가 있었다. 아이폰을 좋아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 조사의 결론은 ‘선진국에서는 실패하고 개도국에서 성공할 것이다’였다. 굉장히 잘못된 조사였다. 이렇게 시장조사는 현재와 굉장히 다른 제품이 나오는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조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컨조인트 분석 같은 기법이 친숙할 것이다.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한 선호를 서로 연관시켜서 측정하는 것인데, 이런 설문조사 방식은 이제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다. 오늘날에는 과거 제품에 대한 선호도 조사보다 미래의 콘셉트에 대한 실험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것을 실험해보는 것이다.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제품을 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저런 제품을 주면서 어느 쪽이 더 긍정적인지 알아보라. 실험은 완벽하진 않지만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O의 시대임을 인정하라

오늘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O’가 중요하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기업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추적해야 한다. 사람들이 신뢰하는 웹사이트는 어디이고 리뷰어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우리 회사 제품이 다른 회사 제품보다 더 좋다고 설득하기보다 사람들이 우리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빨리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절대 가치 환경에서는 ‘O’의 영향력이 대단하다.

정리해보자. 가장 중요한 건 상대적 사고에서 절대적 사고로 이행하는 전반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제품 카테고리에서 브랜드가 사라지고 충성도가 사라지고 있다. 세그멘테이션과 포지셔닝, 설득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 마켓 리서치의 효과 또한 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 가격, 원산지, 판매처 등 상대적인 지표들은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고객 충성도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으므로 마케터의 역할은 바뀌어야 한다. ‘O’에 더 집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더 집중하고, 추적하고, 대응해야 한다.

하룻밤 사이에 바뀔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마케팅 부서의 역할과 의무는 앞으로 상당히 바뀔 것이다. 지금은 절대 가치의 시대다.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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