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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Biz

간편식이 부른 주부해방 식탁에서 반찬이 사라진다

문정훈 | 202호 (2016년 6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한때 마트 반찬은 가정주부들을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역할을간편식이 대신하고 있다. 요즘 판매되는 간편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럴듯한 한 그릇 음식이 되고, 괜찮은 한 끼가 된다. 별다른 반찬도 필요없다. 하지만 간편식의 성장은 우리 전통의 반찬 문화를 바꾼다. 식탁 위의 반찬이 더 간단해지며, 서양의 식단처럼 단품 중심의 한 그릇 요리와 약간의 곁들임 음식을 놓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50년 후 우리 식탁 위에서 반찬은 거의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런 식탁의 변화는 앞으로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가져올까?

 

 

1980년대 말, 마트에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포장김치는 이를 구매하는 주부들에게 묘한 죄책감을 심어줬다. 내가 내 돈 내고 사면서 죄책감을 느끼다니 웃기지만 당시에는저 집은 김치도 제대로 못 담그고 사 먹네?’라는 은근히 따가운 시선에 포장김치를 마트 비닐봉지 아래 깊숙이 밀어 넣은 채로 은밀히 집으로 들고 와야 했다.

 

하지만 일본의 기무치를 제치고 우리 김치가 세계 표준이 돼야 한다는 전 국민적인 열망이 (그러기 위해서는 포장김치가 사회적으로 용인돼야만 했다) 가득했고, 90년대 들면서 맞벌이 부부의 수가 급증하면서 포장김치는 맞벌이 주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포장김치는 여성의가사노동 해방의 아이콘으로 등극했고, 주부가 포장김치를 구매하는 것에 대한 주홍글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포장김치에 이어 마트 반찬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주부들이 만들기 어려운 염장 발효 반찬을 중심으로 마트에서 판매가 시작됐고, 머지 않아 양념 불고기도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계란말이까지 마트에서 사먹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김치 정도는 괜찮지만 반찬까지 사먹는 것은 좀 심하다고 혀를 찼고, 반면에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주부에게 마트 반찬은 노동을 줄여주는 동시에 시간을 벌어주는 중요한 쇼핑 아이템이 됐다.

 

1999 910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모 백화점에서 육류를 구매하면 즉석에서 불고기 양념을 해주는즉석 무료 양념 서비스와 함께 주문에 따라 반찬을 만들어주는맞춤 반찬 코너를 소개하고 있다. 마트 김치와 반찬은 더 다양한 서비스로 주부들의 가사 노동 부담을 덜어 주고 있다. 이제 우리 주부들은 큰 저항감 없이 반찬을 구매한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5년간 추적조사하고 있는 수도권 700여 가구의 식품 구매 영수증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1년의 가구당 반찬류 구매액은 연 24000원으로 추산된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이렇게 마트 김치와 반찬은 우리의 식탁 위로 올라와서 우리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간편식의 성장

 

요즘 식품 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간편식이다. 간편식은 식사를 대신하는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통칭이다. 국내 간편식 시장은 2010년에 7700억 원이었는데 2015년에는 무려 17000억 원으로 성장했다. 모든 대한민국 식품 기업이, 모든 대한민국 마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만큼 간편식은 현재 가장 핫 한 아이템이다.

 

90년대 후반의 간편식이 삼각김밥, 컵라면 등의 말 그대로 한 끼 때우기용이었다면 지금의 간편식은 도시락, 볶음밥, 덮밥, 튀김 등의 제대로 된 한 끼 식사의 콘셉트로 출시되고 있다. 특히 편의점에서 출시되는 간편식은 가성비가 좋아서 요즘은 대학가나 상가 인근 식당의 가장 큰 경쟁자가 편의점이라고 할 정도이다. SNS에서는 각 편의점의 간판 도시락에 대한 맛을 비교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백종원 도시락이 더 맛있네, 혜자 도시락이 더 정성스럽네, 혜리 도시락의 구성이 더 아기자기하네 등의 글들이 올라오곤 한다. 웬만한 백반집 한 끼 식사보다 낫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젊은이들은 식당에 가서 5000원을 내고 백반이나 분식류를 먹을 바에야 편의점에 가서 3000∼4000원짜리 간편식을 먹는 것에 더 만족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혼식(혼자 밥 먹는 것)이 일반화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것은 창피하지만 혼자 편의점에서 간편식을 먹는 것은 창피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이런 간편식의 인기는 단지혼식족에 그치지 않는다. 농촌진흥청의 수도권 소비자 패널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주부들의 가구당 연평균 간편식 구매액은 19만 원에 이른다. 주부들이 구매하는 간편식이 무엇인지 장바구니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절반은 떡, 떡볶이, 즉석밥, 볶음밥, 덮밥, 컵밥, 쌀국수 등을 아우르는 쌀을 기반으로 한 간편식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볶음밥, 덮밥, 컵밥 등의 조리된 밥의 구매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조리된 밥은 전자레인지에 살짝 덥혀 먹으면 되는 단품 요리로 따로 반찬 없이 한 끼 식사로 거뜬한 제품들이다.

 

냉동 간편식도 주부들에게 인기이다. 냉동 만두는 역시 인기 아이템이다. 2014년 주부들이 구입한 전체 냉동식품 중 무려 66.8%가 냉동 만두다. 뒤를 이어 냉동 피자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제품군이다. 예전에는 없었던 제품들도 속속들이 간편식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명절에나 먹는 전을 이제는 언제든지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먹을 수 있게 됐다.

 

 

 

 

반찬의 쇠락

 

이렇게 간편식이 빠르게 성장하니 반대로 줄어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마트 반찬이다. 수도권 700여 가구의 주부들의 마트 반찬 구매액을 보면 2011년 연 24000원이었던 것이 2014년에는 9900원으로 줄었다. 3년 사이에 가구당 14000원씩의 마트 반찬이 식탁에서 사라져버렸다. 포장김치 이후 본격적으로 마트 반찬이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20년이 채 되지 않아 마트 반찬은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주부들을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던 마트 반찬이 이제 그 역할을 다 하고 시장에서 서서히 덩치를 줄여가고 있다.

 

요즘 판매되는 간편식은 그 하나만으로도 그럴듯한 한 그릇 음식이 되고, 괜찮은 한 끼가 된다. 별다른 반찬을 식탁 위에 올리지 않아도 간편식 하나면 문제 해결이다. 뭔가 아쉬우면 김치 정도 올리면 된다. 반찬을 직접 조리하는 빈도가 줄어든다. 이러니 전반적으로 우리 식탁 위의 반찬의 개수가 줄어들고, 식탁 위의 반찬의 수가 줄어드니 마트 반찬의 매출도 함께 떨어진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간편식으로 주부들은 더 편리해진다. 동시에 간편식의 성장은 우리 전통의 반찬 문화를 바꾼다. 식탁 위의 반찬이 더 간단해지며 서양의 식단처럼 단품 중심의 한 그릇 요리와 약간의 곁들임 음식을 놓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50년 후 우리 식탁 위에서 반찬이 거의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식탁의 변화는 앞으로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가져올 것인가?

 

간편식의 확대는 주부들에게 좀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준다. 집에서 반찬을 만드는 대신 바깥에서 더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고, 이는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됨을 의미한다. 주부들은 그 시간에 어떤 것을 소비할까? 또 다른 측면을 고려해보자. 가정에서 사용하는 소금, 간장, 설탕, 고춧가루 등의 조미료의 소매 판매는 더 위축될 것이고, 나물류에 사용되는 채소류의 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조리 도구와 작은 반찬 그릇의 사용도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역시 가정에서 조리에 사용하는 가스와 물의 사용도 줄어든다. 반면에 더 좋은 성능의 전자레인지에 대한 수요가 생길 것이다. 또한 식재료의 거래는 지금보다 B2B의 비중이 더 중요해지고, 고급 식품 포장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올라가게 된다.

 

이런 변화를 읽어내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은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 아쉬운 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밥상에서 5첩 반상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 Food Biz Lab 연구소장 moonj@snu.ac.kr

 

문정훈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 경영과학과를 거쳐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에서 식품 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있다. 국내외 주요 식품기업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컨설팅하고 있으며 주 연구 분야는 식품산업 기업전략, 식품 마케팅 및 소비자 행동, 물류 전략 등이다.

  • 문정훈 문정훈 | - (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부교수
    - (현) Food Biz Lab 연구소장
    -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moonj@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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