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 Premium Frontiers: 문진희 LG생활건강 한방마케팅부문장 인터뷰

면세시장 스타로 등극한 화장품 ‘후’ ‘궁중’ DNA 살린 럭셔리 마케팅, 중국인을 사로잡다

172호 (2015년 3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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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마케팅, 세일즈

한방 화장품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만년 2로 굳어지는가 싶던 LG생활건강의더히스토리오브 후가 지난해 말 면세 시장에서 큰 이변을 일으켰다. 화장품 브랜드는 물론 해외 유명 럭셔리 브랜드를 제치고 면세 매출 1위로 선 것이다. 이 브랜드가 전성기를 맞게 된 배경에는 물밀 듯 밀려들어온요우커(중국인 관광객)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한방이 아닌궁중을 테마로 장기적인 브랜딩 작업을 펼쳤던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궁중’의 이미지가 갖는 상징성은 럭셔리 마케팅에 대한 정당성(legitimacy)을 부여했고 고객들이 값비싼 화장품에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할 만한 감성적 도화선이 됐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원 인턴연구원 한서연(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지난해 말 국내 면세점 시장에선 업계 관계자들마저 놀라게 한 이변이 발생했다. LG생활건강의 한방화장품브랜드더히스토리오브 후(이하 후)’ 10월 롯데면세점 전국 7개 점포에서 매출 1위 브랜드로 깜짝 등극한 것이다. 국내 면세 시장에서 만년 1등으로 군림해온 루이비통, 까르띠에, 샤넬 등 수입 럭셔리 브랜드를 제치고 일궈낸 값진 성과였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가 정상의 자리에 오르며 괴력을 과시한 이사건 LG생활건강 관계자들마저 놀라게 했다.

 

이 브랜드는 상승세를 이어가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두 달 연속 롯데면세점 소공점 매장에서만 1000만 달러( 109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는 기념비적인 기록도 세웠다. LG생활건강에 따르면 후는 롯데뿐 아니라 신라, 워커힐, 동화면세점 등의 주요 점포에서도 지난해 하반기(7∼12) 이후 잇따라 면세점 화장품 매출 1위에 올라서며 전성기를 누렸다.

 

‘대박’ 조짐은 지난해 중순 이후부터 꿈틀댔다. 지난해 7월을 전후해가 한방화장품 업계의 선두주자인 아모레퍼시픽설화수를 일부 면세점에서 추월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년 2였던 브랜드가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업계 관계자들은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힘’, 그리고 이들을 겨냥한럭셔리 마케팅을 꼽는다. 중국인 방문객이 지난해 사상 처음 500만 명을 돌파하며 면세점 매출이 급신장한 가운데큰손’ VIP 중국인을 겨냥한 마케팅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1∼11) 백화점의 매출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11.6% 떨어진 반면 면세점은 10.3% 성장하며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연간 판매액 기준으로 34년간 국내 유통업계 1위를 차지해온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매출을 같은 건물에 입점한 롯데면세점 본점이 추월하기도 했다.

 

이러한 유통 시장 변화 속에서 후가 중국인 VIP 관광객을 타깃으로 내놓은 최고가 라인환유세트는 크림, 아이크림, 에센스로 구성된 제품 3개 가격이 165만 원에 이르는데도 12월 한 달간 583세트나 팔렸다. 이처럼 면세 시장에서 선전하면서 후의 지난해 매출은 4300억 원으로 2013(2040억 원) 대비 110% 상승했다. 국내 전체 화장품 시장이 지난해 -3.3%(업계 추정치)로 역신장한 점에 비춰보면 놀라운 성과다.

 

올 설 시즌에 선보인 후 천기단 왕후세트

 

2003 1월 첫 출범 당시는 방문판매 시장에서 월등한 선두 주자였던 아모레퍼시픽설화수의 그림자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물론 당시에도 차별화 포인트는 있었다. 가격이 더 비쌌다는 점, ‘궁중을 브랜드의 테마로 잡았다는 점이다. 후는 우리나라 전통악기 해금의 이미지에서 차용한 한자 후()를 브랜드명으로 도입해 패키지에 적용했다. 궁중왕실의 비방이 적혀 있는 수백 권의 고서를 데이터화했고 고대 왕실의 여성들이 노화를 막기 위해 썼던 궁중처방을 개발 과정에 녹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가격이 비싸다 보니 진입장벽이 높았고상위 1%를 위한 제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고가 마케팅을 하자니 당시 국내 시장에서 고도의 성장기를 맞고 있던 해외 유명 브랜드들에 밀렸다.

 

당시담당자들의 고민은한방화장품 카테고리 내에서 어떻게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였다. 2005년 마침 LG생활건강에 부임한 차석용 부회장은구원투수가 돼줬다. 이런 직원들의 고민을 듣고는 선문답처럼 던진 한마디에 브랜드 담당자 사이에발상의 전환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방 브랜드(콘셉트로 승부 걸려하지) 말고, ‘궁중 브랜드’(로 차별화) 하세요.”

 

후 담당자들은 당시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후궁중 카테고리에 맞춰 브랜드를 정립하는 움직임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됐다. ‘한방 화장품의 굴레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영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no)모델전략에서 벗어나 왕후의 옷을 입은 연예인 모델을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최고급 크림환유고’(68만 원)를 내놓으며 백화점 화장품 시장의 판도를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까지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영애를 왕후로 내세운 TV CF는 여성들 사이에 큰 인기를 모았다.

 

“한방 브랜드(콘셉트로 승부 걸려하지) 말고,

‘궁중 브랜드’(로 차별화) 하세요.”

후 담당자들은 당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샘플 증정 행사도 최고급 호텔을 선별해 진행하고 여성지도자 콘퍼런스,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 패션쇼 등현대판 왕후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행사만 골라 후원했다.

 

 

 

이후 본격화된궁중 마케팅은 고가(高價)의 제품 소비를 합리화하는 정당성(legitimacy)을 부여했다. 거액을 지불하고라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려면 이성뿐 아니라감성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중국인을 타깃으로 한 제품 개발은 2007년 이후부터 진행했다. 당시 중국 법인 진출 시점에 맞춰 용기 디자인을 붉은색으로 제작하는 등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는 데 주력했다. 마침 후의 패키지는 중국인들의 기호와 딱 맞았다. 화려한 금장 장식 뚜껑이 달린 패키지는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등 아시아 문화권 소비자들을 매혹시켰다.

 

 

행운도 따랐다. 지난해 7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한 때 동행한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국내 활동 동선 중 우연히의 광고 이미지와 함께 사진이 찍힌 것이 도화선이 됐다. ‘현대판 왕후격인 그는 입고 쓰는 소비재들이 모두 중국 여성들 사이에 화제가 되는 트렌드세터다. 당시 찍힌 사진 속 모습이 후 제품을 구입하는 장면이 아니었는데도평소 그가 이 제품을 즐겨 쓴다더라는 입소문이 중국인 사이에 돌기 시작했고 이것이 중국의 상류층 여성들을 자극했다.

 

현재 후는 문진희 한방화장품마케팅부문장(41)이 이끌고 있다. 인하대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한 문 부문장은 1997 LG생활건강( LG화학) 제품개발팀에 입사해 약 10년간이자녹스브랜드에서 일했고 200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후의 브랜드 매니저로 근무했다. 지난해 7월 화장품 부문 최연소 부문장으로 임명돼 후와 LG생활건강의 또 다른 한방 화장품 브랜드인수려한의 마케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문 부문장은장기간 일궈온 브랜드의 힘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는 것 같다앞으로도 프리미엄 마케팅을 강화해 성장 동력을 이어나가는 것이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 이후 현재까지가 후 브랜드 출범 이후 최고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도약의 전환점은 언제인가.

 

지난해 2분기(4∼6)부터 조짐을 보이다 4분기(10∼12)에 본격적으로 탄력이 붙었다. 당시 요우커 방한 숫자가 크게 늘면서 한국산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중국인들이 전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니고 쇼핑 경험이 늘면서 점점 더 품질이 좋고 고급스러운차별화된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경쟁 브랜드 대비 고가 세트 기획을 탄력적으로 운용했던 점, 중국 내 매장 확대로 인지도도 이미 높았던 점 등이 밑거름이 돼 매출이 고공행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펑리위안 여사에 앞서 중국의 배우 겸 모델인 안젤라 베이비가 지난해 초 국내 한 면세점 매장을 방문해환유라인을 구입한 것도 의도치 않은 스타 마케팅 효과를 보는 계기가 됐다.

 

 

경쟁사 브랜드인설화수의 아성 속에만년 2를 유지하다 면세 시장에서 이를 추월하는 성과를 냈다. 어떤 차별화 전략이 유효했다고 생각하나.

 

경쟁사는 우리보다 한참 앞서 한방 화장품을 선보였다. (아모레퍼시픽은 1966년 세계 최초로 인삼을 원료로 한 화장품 ‘ABC인삼크림을 선보였다. 한방 화장품 브랜드설화수 1997년 탄생했다.) 후발주자로서 차별화된 포지셔닝은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궁중 모티브를 채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브랜드 출범 당시부터 글로벌 시장, 그중에서도 아시아를 염두에 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점은 브랜드 네이밍이다. 한자를 사용하는 아시아권 고객들은 왕후(王后)를 떠올리게 하는 후()만 봐도 총체적인 브랜드 콘셉트를 파악할 수 있다. 발음 자체도 각 국가별로 비슷하게 읽힌다. 패키지에 새겨진 한자는 미학적으로 쓰여 마치 영어 ‘fu’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자를 잘 모르는 영어권 소비자들 역시 쉽게 읽을 수 있는 이름이다. 출범 초기부터한국적이되 글로벌 할 것을 염두에 둔 덕분이다.

 

 

‘후’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문진희 LG생활건강 한방화장품마케팅부문장

 

한류나 중국 관광객 증가는 모든 국내 브랜드에 호재였다. 이 가운데 후가 유독 큰 성과를 내게 된 비결은.

 

경쟁사 브랜드 대비 고가 제품의 라인업이 풍부하게 갖춰진 점이 주효했다고 본다. 165만 원짜리환유세트는 이전에는 환유고(크림), 환유진액(에센스), 환유동안고(아이크림) 등 개별 제품이 각각 제법 부피가 큰 박스에 담겨 판매됐다. 중국인 관광객들이세 제품을 모두 사고 싶은데 여행 가방에 넣고 귀국하기엔 너무 크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고 이 세 제품을 모두 합쳐 하나의 세트로 구성한 것이다. 제품을 담은 패키지에는 자개 등 고급스러운 디테일을 곁들였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8각 모서리 디자인을 반영했다.

 

지난해 말에는 럭셔리 한방 라인후 천기단 화현 골드 앰플’(35만 원 대) 출시 1주년을 기념해 이 제품을 빨간색 악어가죽 무늬 케이스에 담아 면세점에서 판매했다. 금색의 제품, 빨간색 패키지 등 중국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결과 한 달여 만에 5000여 개가 팔려나갔다. 이처럼 고객의 니즈를 그 귀 기울여 들은 점이 큰 성과를 내는 비결이 됐다.

 

 

그러나고객들이 브랜드를 추종할 수 있게 장기적으로 로열티를 쌓게 하라는 럭셔리 마케팅의 본질을 생각할 때 발 빠른 기획력이 오히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후의 진율향 라인

 

후의 최고급 라인인 환율 라인

 

신속하게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한다는 것은 사실한류라는 콘텐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약점이라기보단 능력이 아닐까. ‘의 기획 제품들은 예쁘게 포장한 세트형 선물을 선호하는 중국인 관광객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대신흔하게 보이지 않게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려 애썼다. 패키지는 점점 더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하고 디자인도 때때로 바꾸면서 매번 신선하게 느껴지게 했다. 1인당 판매 수량 제한 등을 통해동경의 가치(aspiration value)’를 높이려는 노력은 계속했다. 제품 자체의 품격을 높이려고 한 점도 고가의 세트 제품에도 기꺼이 중국인들이 지갑을 열게 한 비결이 됐다.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대에 이르는 고급 화장품을 소비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 특히 제품 자체의 품질뿐 아니라 이 제품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제품에 투영해 제품 자체에품격이 있는지 꼼꼼히 따진다. 최고급 크림인후 환유고’(68만 원) 디자인은 전통 토기 항아리를 모티브로 삼았고 뚜껑에는 금속공예로 제작한 봉황의 모습이 담겨 있다. 턱밑에 여의주를 끼고 날개를 활짝 피고 날아가는 봉황의 모습은 국보 제287호인 백제의금동대향로에서 차용한 것이다. 제품 패키지에도 왕실의 브랜드 스토리를 충실히 반영하며 이들이 원하는품격 욕구를 자극했다.

 

 

한국의 궁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해외 소비자 공략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진 않았나.

 

현재 면세점 판매 1위 제품은후 천기단 화현 3종 세트’(31만 원대)로 한 달간 3만여 세트가 판매되는 효자 상품이다. 이 라인에는 청나라 자희태후(慈禧太后)가 애용했다는 황후미용비방을 녹였다. 후가 투영하는 궁의 이미지가 꼭 한국의 궁이 아니라는 뜻이다. 청나라 자희태후가 애용한 미용비방을 녹인 제품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이 아닌동양의 왕후를 내세우는 점은 아시아 고객들에게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사실 궁을 모티브로 한 패키지 자체도 자세히 살펴보면 단아한 한국의 궁보다는 화려한 중국의 궁 이미지에 가깝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한국적이되, 글로벌하게이미지를 풀어가는 것은 앞으로의 브랜드 확장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다.

 

 

국내 면세점 영업활동만으로 중국인 VIP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기는 쉽지 않을 텐데.

 

현재 회사 차원에서 중국 내 매장을 확대하는 추세다. 특히 중국 법인에서는 가장 먼저 육성해야 할 브랜드로를 선택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 현재 중국 내 매장 수는 후가 설화수보다 많다. 해외 총 11개국에 진출해 중국(85), 대만(24), 베트남(25), 홍콩(3) 등지에서 총 137개의 백화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6년 처음 진출한 중국에서는 지난해 143%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국내 프리미엄 화장품 최초로 진출한 홍콩의 럭셔리 백화점레인 크로포드타임스퀘어점과 IFC몰을 필두로 아시아권 해외 백화점 매장 수를 더욱 늘려나갈 예정이다. 아시아권 내 면세점 시장은 더욱 폭발적이다. 지난해 중국 143%, 홍콩 257%, 대만 26% 등의 고신장세를 보였다.

 

특히 중국의 부유층이 즐겨 찾는 고급 백화점에 집중적으로 입점하다 보니 타깃 고객층이 한국에 여행을 올 때 꼭 사야 할머스트 바이(must-buy)’ 제품으로 자연스레 인식되는 효과도 낳은 것 같다.

 

중국의 부유층이 즐겨 찾는

고급 백화점에 입점하다 보니

타깃 고객층이 한국에 여행을 올 때

꼭 사야 할머스트 바이(must-buy)’

제품으로 자연스레 인식되는

효과도 낳은 것 같다.

 

후가 최근 벌인 럭셔리 마케팅 활동에는 어떤 것이 있나.

 

브랜드 DNA에 담겨 있는 궁중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서는 고객이 예측하지 못하는 감동을 줘야 한다. 신년을 맞아 시작한헤리티지 캠페인의 일환으로 올해 처음 제작한 복주머니 패키지는 옛 왕과 왕후가 신년에 선물로 받았다는궁중지낭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굳이 이런 특별 패키지를 만들지 않아도 잘 팔리는 제품이지만 예술적인 디테일을 추가한 것은 이 제품의 가치가 돈으로만 매길 수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옛 왕실에서 복을 기원하기 위해 선물했던 복주머니를 증정하며 이 제품을 접하는 고객들에게 행복을 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쟁사 대비 발 빠르게 출시한 최고가 제품환유고는 이 제품을 둘러싼 예술 활동에 특히 주력하고 있다. 고가의 제품에 가격 이외의 예술적 가치를 더하기 위한 활동이다. ‘환유 메세나 활동이 대표적인데 1년에 한 번씩 고객을 초청해 해금 연주회를 갖는다. 이 연주회 때메세나 키트를 특별 제작해 정상가 대비 저렴하게 팔고 수익의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201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후 루브르를 만나다패션쇼

 

 

 

사실 이런 활동들은 다른 브랜드들도 비슷한 형태로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성공한 활동은 무엇이고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각종 VIP 행사 중에서도 경복궁에 고객들을 초청한 뷰티 클래스 성과가 가장 좋았다. 과거 궁중의 여인들이 즐겨 먹던 다과를 먹으며 궁의 운치를 즐기게 했다. 럭셔리 마케팅의 핵심은뜻밖의 경험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으면서 최고의 여성이 된 듯한 꿈을 꾸게 하는 곳이 어딜까 고민한 끝에 궁을 떠올렸다. 궁이라는 곳이선택된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다는 정서적 우월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다. 경제적인 여유를 갖춘 계층일수록물질적 가치’보다경험적 가치를 주는 이벤트를 선호한다. ‘궁에서 다과를 하고 왔다는 것 역시 특별한 경험에 속할 것이다. 물론 후가 행사를 했던 곳은 화장품 이외 업종의 브랜드도 대관을 해서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게 허가된 공간이다. 하지만 어떤 업체도 후가 누린 만큼의 정서적 성과를 내진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후의 브랜드 이미지와 정말 잘맞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행사를 하더라도 그냥 비싼 식사 한 끼만 대접하는 데 그치면 큰 효과가 없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고객들의 머릿속에 브랜드와 행사의 내용이 일관된 이미지로 남아 있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백화점 고객 대상으로 여는 VIP 행사에서 옛 궁중 여인들이 쓰던 팔찌 디자인을 고증해 현대적으로 제작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같은 목적에서다. 행사를 통해궁중이란 브랜드 키워드 하나만 제대로 각인 시켜도 성공한 것이다.

 

 

반대로 럭셔리 마케팅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했는데 성과를 내지 못했던 사례를 꼽는다면. 그리고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실패한 사례도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웃음) 확실히 럭셔리 제품은 스토리텔링을 가미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후도 화장품 시장의 전반적인 개발 트렌드를 반영해 기획한 제품들은 잘 안 됐다. 예를 들어 재작년 출시한재연고는 성형외과에서 시술을 받은 뒤 바르도록 고안된 재생 콘셉트의 제품이었다. 제품 이름이며 패키지는 최대한후 답게만들었는데 소비자들은 왠지 후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스토리텔링 없이 반짝 트렌드에 귀를 기울인 결과였다고 반성했다. 또 최근 백화점에 입점한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들이가치소비트렌드를 반영해 너도나도 용량은 크게 늘리고 가격은 그 만큼 늘리지 않은 알뜰 제품들을 선보였는 데 후의 경우 성과를 크게 보지 못했다. 스토리텔링이 필요한영혼 충만한브랜드를 이성적으로만 접근한 결과다. 일정 기간 동안만 팔거나 한정 수량만 판매하는 제품일지라도 럭셔리 브랜드라면 각 제품마다 영혼(스토리텔링)’을 불어넣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반면 매년 연말에만 내는궁중팩트는 매년 패키지 디자인을 달리해 내놓는 제품인데 5년째 매번 품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품에는 이 디자인이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 등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보통의 브랜드는올인원 트리트먼트’(여러 기능이 한 개의 제품에 담겼다는 의미)모이스처라이징 스킨’(보습용 스킨)처럼 기능 위주로 제품이름을 지어도 되지만 후처럼 감성적인 브랜드는 그런 이성적인 이름을 달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경험한 바 있다. 브랜드의 이미지와 마케팅 활동이 일관되지 못할 경우 고객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후 공진향: 미백 수분광 크림

 

 

얼마 전 차석용 부회장이 임원 회의에서 후의 성공 방정식 중 하나로 ‘재구매를 부르는 품질이라고 정의했다고 들었다.

 

모든 업종에서 마찬가지겠지만 화장품 업계에선 특히 마케팅보다 품질 자체가 우선순위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화장품만큼 품질에 민감한 영역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럭셔리 패션은 해당 시즌의 트렌드와 본인의 취향에 맞춰 구입하기 때문에 품질이 재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지만 화장품, 특히 럭셔리 화장품은 철저히 품질 위주로 재구매를 결정한다. 아무리 마케팅이 훌륭하고 패키지가 예쁘다고 한들 소중한 얼굴에 트러블을 내는 제품을 비싼 돈을 치르고 또 사려는 고객이 있을까. 옷은 취향에 따라불편하기를 감수하고서라도사는 제품이라면 화장품은불편하면 절대로 사지 않는 제품이다.

 

 

한류가 일부 국가에서 시들해질 조짐을 보이면서 한류의 후광 효과를 입은 국내 브랜드들도 걱정하고 있다. 앞으로 화장품 업계한류 마케팅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먼저 한류에 편승하지 않고도 브랜드만으로 힘을 가질 수 있는 자생적인 성장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지나치게 한국적인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것은 혹시라도한류 마케팅의 빛이 바래지거나 돌발적인 이슈로 해당 지역 국민들에 한국이 부정적으로 인식됐을 때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품질이나 각 국가 소비자와의 소통이 이를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후도 국내 마케팅 활동을 메인으로 삼으면서 해외 소비자들과도 이를 공유하는 형태로 운영해왔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마케팅을 최대한 해외에서도 똑같이 적용해야 브랜드 이미지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외에 국내 브랜드를 알려야 하는 초기 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안전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많은 수입 브랜드들도 국내 시장 진출 초기 비슷한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점점 고객들이 똑똑해지고 있고 과거의 럭셔리 마케팅 전략처럼우리 브랜드가 최고니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주장할 순 없는 시대가 왔다. 각 국가별로 동일하게, 동일한 홍보 채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해선 성과를 낼 수 없다. 점점 더 소비자 지향적으로, 각 국가뿐 아니라 각 피부의 특성을 세분화한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여야 한다.

 

 

후의 남성용 화장품인 공진향: 군 라인(위쪽)과 천기단 군 라인

 

후도 지금까지는 주로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등을 진행해 제품을 개발했지만 각 해외 진출국 소비자들의 사용 행태, 피부 특성 등을 고민해 제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실제 소비자 조사결과 중국인들은 한국의 전통문양을 모티브로 한 고급스러운 패키지는 선호하지만 한방 화장품 특유의 향이나 끈적이는 질감은 꺼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니즈를 반영해 제작한 라인(‘천기단 화현라인’)에는 한약재 특유의 냄새를 배재하고 목련처럼 동양적인 느낌의 향을 적용했다. ‘후 비첩 자생에센스에는 끈적이지 않는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이른바포스트잇기술을 개발해 적용하기도 했다. 실제 이 제품들은 중국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후 역시 전성기가현재가 아닌미래가 되기 위해 이런 타깃 마케팅 전략에 힘쓸 예정이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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