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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웅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소장 인터뷰

극단적 투명성과 공익성, 신권력 시대의 유일한 생존 비결

고승연 | 171호 (2015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마케팅

 

 

참여형 군중(crowd)은 곳곳에서 결합하고 흩어지면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업의 브랜딩이나 마케팅도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 ‘신권력을 가진 군중과 호흡하고, 이들과 함께 브랜드를 구축하고,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허웅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소장은신권력 군중을 상대해야 하는 기업들에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1) 극단적 투명성과 공익성을 확보해 캠페인을 전개할 것.

2) 크라우드 소싱, 크라우드 브랜딩을 수용할 용기를 가질 것.

3) ‘신권력 군중과 닮은, 혹은 그들과 소통하기 좋은 ‘유연하고 다양성이 확보된 조직을 만들 것.

4) 기술의 진화양상을 주시하고 그에 따라 미래의 그림을 그려볼 것.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상찬(성균관대 글로벌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16년 전인 1999, 휴양지인 세인트마틴에서 디트로이트를 향해 출발했던 노스웨스트항공 비행기는 폭설문제로 플로리다 마이애미를 경유했다. 만 하루를 더 지체한 뒤 폭설이 그친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전날의 폭설로 수많은 항공편은 밀려 있었고 인력과 탑승구(비행기에 붙여주는) 차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5시간 이상 수 백 명의 승객이 내리질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비행기 안에 음식도 떨어져 갔고 사람들은 짜증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셔댔으며 화장실에서는 악취가 났다. 몸이 안 좋은 승객, 아이가 있는 승객, 지병이 있는 승객 등 모두가 승무원을 붙잡고제발 내리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조종실에서 공항근무자들에게 연락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승객 중 하나가 항공사 사장 집 전화번호를 찾아내서 직접 연락을 취했지만 부인이 대신 받았다. 조종사가 승객에게 그 전화번호를 물어 다시 사장에게 전화하고 나서야 겨우 문제가 해결됐다. 공항 도착 7시간 만의 일이다. 그리고 7년 뒤, 시작은 비슷했지만 끝은 완전히 다른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2006 12, 아메리칸항공 소속 비행기 몇 대가 댈러스로 향하다 오스틴으로 회항했다. 그중 한 대는 8시간 만에 승객들을 내려줬고 그 비행기에 탔던 여성 승객이 인터넷에 오른 관련 기사에그때 피해 본 사람들은 제게 연락을 달라는 댓글을 남겼다. 아메리칸항공 소속 비행기뿐 아니라 그동안 불편을 겪은 많은 이들이 이 여성에게 연락을 취했고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그리고 이 사안은 언론에 보도되고, 의회에서 논의되면서승객권리장전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제 모든 항공사들은 1999년과 같이 미적미적 대응했다가는 곧바로 손해배상 소송에 대응해야 할 처지에 놓인 셈이다. 1999년 사건과 2006년 사건의 결정적 차이는사람들의 분노 수준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분노했다. 그러나 힘없던 개개인들은 기업을 상대로 모이고 뭉쳐서 자신들의 힘을 표출할 수 있는 인터넷, 모바일기기, SNS 등의 도구를 갖게 됐다. 다수의 참여형 군중(Crowd)이 만들어내는 무서운 힘, 바로신권력이다.1)

 

참여형 군중은 곳곳에서 결합하고 흩어지면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 곳곳의 독재국가들에서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시위 아닌 시위, 플래시몹이 벌어지면서 독재정권에 타격을 주기도 하고, 비행기에 기타를 실었다가 파손된 한 청년은 이를 노래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 불매운동을 일으키고 결국 대기업을 굴복시킨다.

 

그리고 위키피디아나 <허핑턴포스트>처럼지식권력을 허물고 다중지성의 결과물로 세상을 바꾸기도 하며, 은행과 같은매개권력없이 개인 간에 스스로 대출과 투자, 결제를 진행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국가의 허가권, ‘규제권력을 피해 생겨난 우버 등의 참여형 서비스와 각종 공유 서비스 역시 지속적으로 논쟁을 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그 어느 나라보다 인터넷/모바일 기기 보급률이 높고, SNS 사용률이 높은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2015 2월 현재 여전히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땅콩회항이 세상에 알려지고 퍼져나간 방식, 그리고 그 분노가 모아져서 국가기관과 기업에 압력을 가하는군중의 힘은 우리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머니옥션같은 P2P(Peer to Peer) 대출 사이트가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각각카카오톡을 탑재한 50대 이상 유권자와트위터페이스북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결집하면서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지속될수록 투표율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정치학자들의 오래된 믿음을 깨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다수의군중은 정치적 시민이면서 시장의 소비자다. 한국에서는소비자의 경험으로정치적 행위를 만들어낸 특이한 사례도 존재했다. 2010년 벌어진 대학생들의반값 등록금 시위’다. 이렇다 할 학생운동 조직도 없는 시대에, 여름방학 내내 그들이 모인 동력은 바로소셜커머스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모이면 싸진다는 걸 이미 체득한 젊은이들이 그들의 도구를 통해 시간과 날짜를 공유하면서 모였고, ‘반값을 요구했다. 비록 엄청난 예산이 드는 국가정책이 그 시위로 변하진 않았지만 정치권은 다수의 보완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 사회, 그리고 시장에서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모이고, 공유하며 힘을 만들어내는신권력 군중을 상대해야 하는 기업들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꾀해야 하지만 이렇게도구와 권력을 가진 소비자 군중에게 회사의 제품을 알리고, 브랜딩을 하고, 마케팅을 하는 과정 전반 역시 예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에서 먼저 생각한 브랜드 콘셉트나 브랜딩 방향성을 군중들이 바꿀 수도 있고, 마케팅 과정에서깜찍한 거짓말’을 했다가는 엄청난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1) 글에서 제시되는 많은 해외신권력 군중사례는 대부분 클레이 셔키 뉴욕대 교수가 쓴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등에서 차용해왔음을 밝힌다.

 

 

 

 

이 같은 신권력 군중과 온·오프라인 전 채널에서 만나고 있는, 아니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 이 바로 광고인들이다. 광고기획·대행사 오리콤의 허웅 브랜드전략연구소 소장은 2014년 내내 동료 연구원들과신권력과 군중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했다. 그들의 행태와 특성을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케팅 전략, 브랜드 전략을 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DBR이 그를 만나신권력 군중을 상대로 기업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허웅 오리콤 브랜드 전략연구소 소장은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광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사이버한국외대 미디어학부 겸임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두산그룹, 유한킴벌리, KB국민은행, 외환은행 등 국내 굴지 기업의 마케팅/브랜드 전략 수립에 참여했으며 <광고인이 말하는 광고인> <종합편성채널 도입 이후 광고시장 전망과 과제> 등을 공저했다.

 

‘신권력 현상’ ‘신권력을 창출하는 참여형 군중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어떤 현상이고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는

군중은 어떤 사람들인가?

참 규정하기 어렵다. 그나마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나름의 가설적 정의 정도를 내린 것 같지만 여전히 모호한 측면은 있다. 좀 서술적으로, 나열적으로 설명하면서 그 실체에 접근해 봐야 할 것 같다. 일단 디지털 시대가 처음 시작된 199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자. 네크로폰테 교수의 <Being Digital>이라는 책이 나온 게 1995년 전후일 거다. 거기에 이런 단초들이 다 써 있긴 하다. 세상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대중에게 퍼지고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이 쉽게 그 환경 속에서 참여하고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그리고 생각과 힘을 결집하는 시대에 대한 얘기들이 어느 정도 나와 있었다. 물론 그땐 그게 어떤 모습인지 실감이 안 났다. 그런데 요 몇 년 새, 그냥 상상이나 했던 그 모습이 다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예전에 소수만물리적 권력’ ‘제도적 권력을 갖고 있었다면 지금은 우리 모두땅콩회항을 비롯한 최근의 사건에서 확인했듯이 인터넷/모바일을 통해서 다수 군중이 새로운 형태와 방식의 권력을 갖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 권력은 물리적·제도적 실체는 없고 지속성도 없다. 그때그때 이슈에 따라 흩어지고 다시 뭉치는 권력이다. 물론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개개인 간의 교류가 어느 정도 지속성을 가지면서 P2P 비즈니스, 참여형/공유형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모두가 권력을 나눠 갖고 있으면서, 그 누구도 절대 권력을 갖고 있진 않은 상황이다. 가끔 헌법 1조의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결국 이제야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완벽한 디지털 공화국의 시민들이 탄생한 셈이다. 돈 탭스콧이 말했던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이민자들이 함께 만든 세계다.

 

최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인터넷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엄청난 독재권력도 결국 디지털 군중의 힘으로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당연히 이 신권력과 참여형 군중을 탄생시킨 바탕에는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이 있고, 소셜미디어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일대일, 일대다, 다대다 커뮤니케이션이 참여를 자극하고 공유를 이끌고 힘을 만들어낸다.

 

 

 

인터넷 중심의 디지털 시대에도 분명 다양한 소통은

가능했다. 플랫폼의 변화와 소셜미디어의 발달 이외에도

어떤 측면이신권력을 창출해냈을까?

2000년대 초반부터 사실 인터넷이 정치와 사회, 그리고 시장에서의 권력지형을 바꿀 것이라는 얘기는 많이 나왔고 실제로 그런 면도 있었다. 그리고 이후 소셜미디어의 활성화와 모바일로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진화가 지금처럼 신권력을 가진 군중을 만들어낸 건 부정할 수 없겠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터치기술이다. 예전에는 자판을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소통을 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비롯한 웹 기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의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모바일기기에서 이뤄지는 터치는 훨씬 더 간단하다. 직관적이다. 잡스의 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직관적으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면서 디지털 네이티브는 물론 디지털 이민자들, 즉 처음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건 아니었지만 이주해온 중년세대, 심지어 디지털 세상 밖에 있던 사람들 다수가 디지털 세계에 쉽게 들어왔다. 미국에 이민을 간 상황을 떠올려보자. 거기에서 태어난 2세는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그들의 부모, 즉 이민자들은 우리말처럼 편하진 않지만 필요에 의해서 열심히 배우고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민자들의 부모세대는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터치 기술이라는 것은 일종의 번역기 역할을 한다. 이민자들도 소통이 훨씬 편해지고, 심지어 이민자의 부모세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다시 디지털 세계 얘기로 돌아오면 예전에 싸이월드나 블로그를 하는 노인층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지금의 많은 어르신들은 카톡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분들이 글을 퍼 나른다. 텍스트나 사진을 손가락으로 지긋이 눌러서 저장하고 공유하는 건 자녀나 손주들이 한 번만 가르쳐주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전 세대가 디지털 세상에 속하게 됐고, 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디바이스는 하나의 감각기관이 돼버렸다. 다수의 군중이 새로운 감각기관 하나를 모두 탑재한 것이다. 이 감각기관은 소통과 공유에 최적화된 기관이고 참여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그런 힘이 있다. 이게 모아지니 군중의 권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권력의 특징은 온·오프라인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온라인에서의 담론은 그 안에서 머물고 오프라인은 또 따로 존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프라인 구분이 없어졌다. ‘나와 관련된 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공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은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움직인다.

 

기업들이 이렇게 변화한, 새로운 감각기관과 권력을 가진

소비자들과 만나 소통하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다. 브랜드 전략가, 마케터, 광고인. 멋진 광고 카피로 사람들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도 있었고, 브랜드 콘셉트는 그럴싸하게 한 번 세워서 매스미디어를 통해 주입하고 세뇌시키면 되던 그 시절 말이다. 산업혁명 이후 언제나 정보의 중심에는 기업이 있었다. 생산자 중심이었다. 제품과 서비스를 일단 만든다. 정보도 어차피 기업이 갖고 있다.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어 촘촘한 전략을 짜서 설득하고 쏟아붓는다. 그럼 통했다. 솔직히 어렵지 않았다. 최고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성공했고, 그런 전문가들을 잘 알아보고 함께 일하는 기업들도 승승장구했다. 지금? 마케터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시대다. 예전 습관대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군중을 움직여보려 했던 기업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이 군중 권력의 특징이 그렇다. 조금이라도 상업성의 냄새가 나면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 엄청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바보처럼 안 되는 걸 알면서 계속 실패할 순 없지 않은가. 마케팅의 변화, 광고와 브랜딩의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게 바로 칸 광고제다. 전 세계 광고인, 마케터들의 축제인 칸 광고제가 타이틀부터 바꿨다. 예전에는 말 그대로광고제였다. ‘Advertising Festival’이 공식 명칭이었다. 그런데 2011년부터 ‘Creativity Festival’로 이름을 바꾸고 혁신적인 제품에 상을 주는혁신상’이나 뛰어난 제품 디자인에 상을 주는디자인상등 창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기 시작했다. 대중매체에태우는광고만으로는 그 어떤 마케팅이나 캠페인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모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신권력 소비자 군중과 호흡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는 얘기다. 전 세계 광고인들이 현재 가장 우러러보는 사람 중 하나인 데이비드 드로가가 최근에 수상한 작품도 기존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다. 많이 보도된 내용인데탭프로젝트로 수상을 했다. 뉴욕 식당에서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돈 받고 물을 파는 프로젝트였다. 광고가 아니다. 과거 개념에선 마케팅도 아니다. 그냥 기부프로젝트다. 폭발성이 엄청났다. 신권력 군중이 가진참여 욕구’ ‘공유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아주 쉬운 방법으로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매력에 군중이 움직인 것이다. 비록 수익을 위한 기업의 캠페인이 아니라 유니세프의 캠페인이었지만 그 성공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캠페인이 대상을 받는 칸의 변화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탭프로젝트 성공에서 얻는 교훈, 앞서 말한 수많은

실패에서 얻는 시사점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달라.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극단적 투명성공익성이다. 이 두 가지가 있어야 성공한다는 걸 기업들이, 마케터와 광고인, 그리고 브랜드 전략가들이 알게 됐다. 이제 기업은 그저좋은 물건을 팔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내놓고 신권력 군중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우리 브랜드는, 우리 제품은 이런 역할을 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공유할 수 있는 가치는 공익성과 연관돼 있고 신권력 군중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건극단적 투명성과 연결돼 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진정성을 강조해왔는데 진정성이란 단어는 좋은 말이고 필요한 건 맞는데 신권력 현상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니다. 진정성 없는 기업이 과연 존재하나? 성공하고 싶고 멋진 브랜딩 하고 싶은 절절함, 그거 소비자들이 다 안다. 다만 그 진정성을 인정받고 진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시 개념을 쪼개야 하고 그렇게 등장하는 게 바로공익성이고극단적 투명성이라는 얘기다. 탭프로젝트 외에도 최근의 해외 기업 성공사례 하나를 들려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전 세계 호텔 체인을 가진 힐튼 얘기다. ‘힐튼 서제스천(힐튼의 제안)’이라는 캠페인이었다. 예전처럼 그럴싸한 이미지로 포장해서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파하는 그런 캠페인도 아니었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쿠폰 발행이나할인이벤트도 아니었다. 일단 이 캠페인의 핵심은 각 지역에 있는 힐튼호텔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호텔이 위치한 지역, 주로 관광지일텐데 그곳의 사정에 정말로 빠삭한 사람들이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 페이지를 만들거나 계정을 만들고 힐튼호텔이 있는 지역에 대한 모든 질문을 받았다. ‘어느 정도 가격에, 어느 수준의 호텔에 머물고 싶은데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격과 수준을 고려해서 다른 호텔을 그냥 추천해준다. 힐튼호텔 직원들이 다른 호텔을 추천해주는 황당한 상황인데 회사에서는 이를 장려한다. 그것만 물어보는 게 아니다. 각종 관광정보, 병원 안내 등 별별 질문이 다 나오면 각 호텔 직원들이 충실하게 알려주고 응대한다. 돈이 전혀 안 되는 일이다. 지독하게 투명한 커뮤니케이션과 솔직함, 이 커뮤니케이션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공익성. 군중이 반응해버렸다. 군중들 사이에서생큐 힐튼!’의 메아리가 퍼져나갔고, 이미지 개선이 엄청나게 이뤄졌으며, 브랜드 파워가 강해졌고, 매출도 올랐다.

 

그 밖에 또 신권력 군중과 소통하고 그들과 호흡해서

성공한 사례들이 있나?

많지는 않아도 찾아보면 분명히 있다. 남미에서는 축구가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지 않나. 아마 상파울루에 연고를 둔 브라질 축구팀이었을 거다. ‘이모탈(im-mortal) ’, 즉 죽지 않는 영원한 팬이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축구를 중심으로 참여하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팬들만큼 강력한 군중이 또 있을까. 이 클럽이 이 군중과 호흡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바로이모탈 팬이다. 클럽에영원한 팬으로 등록하면서 장기기증 서약서를 쓰기로 했다. “눈이 안 보이는 아이에게 내가 돌연사를 했을 때 내 눈을 기증한다는 식이다. 그러면 눈이 안 보이던 아이의 눈이 돼 그 팬은 죽었지만 죽은 게 아니고 영원히 그 클럽의 팬이 된다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공익성이 엄청난데다가사람의 장기를 기증한다는 숭고함이 있기에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렸고 그 팀의 팬클럽 회원 수는 더 늘었다. 물론 나중에 따져본 거지만 당연히 입장권, 티셔츠 등을 통한 수익도 올라갔다. 그 밖에 탐스슈즈와 비슷한 모델로 소캣이라는 휴대용 발전기 제조회사가 진행한 ‘99달러 축구공프로젝트도 꽤나 성공했다. 우리 돈으로 거의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 축구공을 팔고 하나가 팔리면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한다. 그런데 이 축구공이 보통 축구공이 아니다. 특수 소재가 들어가고 안에 엄청난 기술을 집어넣었다. 공을 차고 놀면 그 안에 전력이 충전된다고 한다. 나도 기술적인 방법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면 이 공에 스탠드를 꽂아 전기가 안 들어오는 가난한 아프리카 어린이가 밤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할 수 있다. 그 공이 벌써 1억 원어치가 팔렸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보면 어떤 것은 기업의사회적 책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건적정기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클럽팀 사례는 그저 아름다운 자선과 나눔의 캠페인처럼 비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걸 각각 다른 영역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되고, 그렇게 나눠서 봐도 안 된다. 모든 건참여욕구’ ‘공유에 대한 욕망’ ‘공유의 가치 추구를 하는 신권력 군중의 행태와 사고, 그들의 소통방식과 연결돼 있다. 다른 듯하지만 사실은 아주 비슷한 맥락에 놓인 사례들이다.

 

예전처럼 기업이 브랜드 콘셉트를 만들고 전략을 짜서

실행하는 게 어려워 보인다. 군중과의 소통과정에서

군중에 의해 기업의 의도와 상관없이 변할 수 있지 않나.

제품을 만들고, 네이밍을 하는 동시에 브랜드 콘셉트를 잡고 포지셔닝을 하고. 원래 이런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소수의 엘리트가 이끌었던 것들이다. 지금은 전부 다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일종의크라우드 소싱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본다. 무조건 군중에게 던지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리가 늘 주장하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것, ‘고객 중심’ ‘고객의 입장에서라는 말. 지금 그거 하기가 어느 때보다 쉬워진 것 아닐까? 지금의 상황이 꼭 나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제품 기획, 디자인 등 상당 부분을 소수 엘리트에게 의지하지 않고 놀라운 군중과 함께 만들어낼 수도 있게 됐다. 폴크스바겐 뉴비틀도 아예 디자인 콘셉트를 크라우드를 통해 만들어냈다. 플랫폼만 제공해주고 소비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도록 만들어서 성공하지 않았나. 만약 회사 내부 엘리트들이 어떤 브랜드를 출시하고 콘셉트를 잡았는데 회사 밖 신권력 소비자들이 이를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수정하려 든다면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를 순 있지만 이제 기업들이 그걸수용하는 용기를 가질 때가 됐다고 본다. 그러면 기업의 역할이 없나? 그건 아니다. 크라우드는 아이디어를 내고 기업은 용기를 내 이를 수용하고 실행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제품이나 브랜드 테스트 측면에서, 기업은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실패확률을 줄일 수 있는 실험실, 거대한 군중의 실험실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기업들이 대처하기 어려운힘을 가진 군중과 대면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반드시 어렵다고만 생각할 건 아니다. 물론 광고회사 다니는 입장에서 예전보다 정말 힘든 건 사실이지만. 광고기획사나 대행사들 역시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말고우리는 코디네이터다라고 생각하고 움직이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군중과 기업 중간의 코디네이터 말이다.

 

 

 

군중의 힘을 활용하거나 그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조직구조도 변해야 할텐데.

모든 기업이나 조직은 분명 제도가 있고 내부에 규칙이 있고 룰이 있다. 그걸 없앨 수도 없다. 없애면 안 된다. 다만 신권력 군중이 갖는 특성을 잘 살펴보고 그것과 유사한 조직을 하나 만드는 건 도움이 될 것 같다. 군중의 힘, 다중지성의 특징은 무엇일까. 일단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서로 막 떠들다가 재미있는 거, 멋진 일과 감동적인 사연, 올바른 일 등 공유할 수 있는 가치들을 나누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엄청나게 다른 영역에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것저것 하는 것. 이 모습과 유사한 팀을 하나 만들어보면 어떨까. 실제로 오리콤에는 최근이것저것 팀이라는 팀이 하나 생겼다. 정말 다양한 전공과 베이스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 팀이다. 출신 부서도 천차만별이다. 이들이 모여서 온갖 일을 한다. 공간 배치를 바꿔보는 것부터 회사 화장실 바꾸는 아이디어도 제안하고, 고객사의 상품 패키징을 바꾸는 아이디어까지 내고 직접 실행한다. 실제로 고객사의 상품 패키징을 바꾸는 아이디어는 고객사에서 채택하기도 했다. 그냥 모여서 진짜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되는 모든 것, ‘이것도 해보고저것도 해보는 거다. 그래서 팀 명도 진짜이것저것 팀이다. 물론 각 기업마다 자신이 위치한 산업군의 특성, 해당 기업이 만들어내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꼭 그런 팀을 만들라고 제안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유연한 사고로 접근하는 건 어느 기업에나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런군중과 닮은 유연하고 다양성이 확보된 팀은 회사 밖 군중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은 조직으로 만들어 만나게 하면 그 자체로코디네이터역할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군중의 권력, 신권력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더 강해질 것이다. 미디어의 진화와 기술 발전을 연결시켜 차례차례 따져보자. 원래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릴 때에는기술의 진화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술이 변화의 모든 걸 대변해주진 않지만 창의성에 엄청난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지인 중 유명한 마케터가 한 명 있는데 그는 아침에 두 시간은 항상 해외에서 나온 신기술이 뭔지 살펴보는 데 시간을 보낸다. 어쨌든 하나하나 따져보자.

 

산업혁명 직후에는 오직 기업에만 힘이 있었다. 매스미디어도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신문이 많아지고 TV 방송국이 생기면서 매스미디어가 발달했고, 기술적으로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대중 소비사회가 탄생했고, 이는소비자 운동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기업만큼은 아니지만 소비자에게도 나름의 힘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때엔 역시 소비자 운동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미디어를 소유한 사람들, 즉 소수가 권력의 대부분을 가졌던 것으로 봐야 한다. PC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깔리면서인터넷 미디어가 생겼고 드디어 개개인들의 힘, 작은 집단의 힘도 강해졌다. 그러나 아직신권력이라고까지 부르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모바일 디바이스가 발달하고 소셜미디어가 생기면서 드디어신권력 군중이 탄생했다. 그 힘도 막강하다. 순수하게 미디어 차원에서만 보면 현재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으로, 다시 인스타그램으로 약간씩 중요도가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다.

 

, 그럼 다음 기술은 뭘까?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는 뭘까? 기술적으로는 IoT 3D 프린팅, 미디어 측면에서는 더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그 무엇인가가 될 것으로 본다. 이건 뭘 의미할까? 미래의 일이다 보니 상상을 해볼 필요가 있다. 틀릴 수도 있다. 그래도 상상해보자. 예를 들어 자동차에 결함이 있다는 의심이 든 소비자가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SNS를 통해 이 문제를 제기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내용을 공유한다. 그리고 웹 기반 커뮤니티에서도 아마 토론이 이뤄질 것이다. 이렇게 시끌시끌해지면 기존 매스미디어도 보도를 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은 일단 공론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오해라고 해명을 하든지, 소송을 하든지 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IoT 시대에 자동차 간에 상호 인터넷으로 다 연결돼 자동차끼리 서로를 스캔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상황에서 브레이크에 어떤 이상이 있다고 말하고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결함이 의심되는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이 동호회에서 한날한시에 차를 몰고 나와 실험을 해보면서 같은 결함이 나타나는 걸 서로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굳이 같은 장소에서 모일 필요도 없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특정 부품의 결함을 의심해 3D 프린터로 자기가 직접 올바르게 설계한 부품을 넣어본 뒤 결함을 수정해버리면서 이를 근거로 제조사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당연히 이 모든 과정은 세상에공유되고 다른 군중의참여를 이끌어낼 것이다.

 

두렵지 않나? 기업 입장에서는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이 무서운 크라우드는 잘못된 정보나 기업에 대한 오해를 걸러내는 엄청난 순기능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군중이기도 하다. 요새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무리수를 둬서 기업을 억지로 문제 삼으면 군중이 이를 바로잡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군중은 동전의 양면 같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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