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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경영

디자인을 기업 가치사슬에 녹여라

이철배 | 11호 (2008년 6월 Issue 2)
기업 경영에서 디자인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디자인을 어떻게 경영의 전략적 수단으로 삼아 가치 창출을 극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의가 부족한 실정이다.
 
좁은 의미의 디자인 경영은 주로 회사 안의 디자이너들을 어떻게 잘 훈련하고, 배치하며, 동기를 부여해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다. 그렇지만 넓은 의미의 디자인 경영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와 ‘디자인 자원(design re-source)’을 어떻게 경영의 가치사슬에 적절히 배치해 경영의 효율성과 혁신을 가속화할 것인지에 관련돼 있다.
 
즉 디자인 경영은 좁게는 디자인의 업무적 관점(In-job perspective)을 이르며, 넓게는 경영의 전략적 수단으로서의 디자인(Design as a strategic tool of management)을 이르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디자인 경영의 중요한 포인트로 가치혁신의 도구인 디자인 창의성과 합리성의 조화 디자인 경영의 범위라는 세 가지를 제시하고 그 각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디자인 경영을 통한 가치혁신
먼저 디자인이 상품가치 측면에서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자. 디자인을 통한 가치혁신은 매우 효율적인 전략 수단이다.
 
경제학적 개념에서의 가치(가격)는 제품·서비스의 원재료비 등을 지칭하는 본원적 가치(intrinsic value)와 생산과정에 부가가치를 추가한 공정가치(process added value), 그리고 적절한 이윤(margin)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러한 세 가지 가치요소만으로는 수익의 극대화라는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실제 현실에서도 경제학적 가치만큼만 가격을 부과하는 기업보다 가능하면 높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려는 기업이 더 많다.
 
이때 경제학적 가치와 기업이 상품을 판매하는 최종 가치의 차이는 보통 상품의 정신적, 심미적 의미에서 오는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라 할 수 있다. 같은 본원적 가치와 공정가치, 이윤을 가진 상품이라도 상징적 가치가 높으면 훨씬 더 비싼 가격에 팔리며, 고객의 만족수준도 높아진다.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은 그의 저서 ‘꿈의 사회(Dream Society)’를 통해 사회는 물질적 재화를 사고 파는 산업사회(Industrial Society)에서 정보와 지식을 사고 파는 정보사회(Information Society)를 거쳐 만족, 열망, 자부심, 스토리 등 꿈의 가치를 사고 파는 꿈의 사회로 진화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꿈의 사회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앞서 언급한 상징적 가치다. 그리고 상징적 가치를 혁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디자인이다. 꿈의 사회에 사는 고객들은 상징적 가치를 두 배 높이기 위해서는 본원적 가치나 공정가치를 같은 정도로 높일 때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디자인을 통해 원가 혁신이나 공정개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확대효과(leverage)를 얻을 수 있다. 레버리지가 높다는 것은 곧 ROI(Return on Investment)가 높다는 의미로, 디자인은 다른 분야에 같은 투자를 하는 것에 비해훨씬 높은 효과를 보장해 준다.
 
결국 디자인 경영에 의한 가치 혁신이란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의 디자인 혁신을 통해 큰 상징적 가치를 창출하고, 고객은 그것에 대해 높은 지불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이때 기업은 고객이 지불한 가격보다 더 높은 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과 고객이 모두 만족하는 윈-윈(Win-Win) 구도를 만들 수 있다.
 
루이비통 가방의 가치 혁신 구체적인 제품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루이비통(Louis Vuitton) 브랜드는 오랜 세월 여성용 가방 분야에서 큰 인기를 누려왔다. 루이비통 가방은 특유의 튼튼함에서 오는 실용성과 독특한 문양 및 가죽의 질감 등의 디자인 요소, 고급스러운 브랜드 가치 등을 조합해 대중적인 럭셔리 패션용품이라는 나름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이런 실용적이며 고급스러운 라인의 가방으로는 이름조차 빨리 짐을 싸서 떠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스피디(Speedy) 시리즈가 있다. 하지만 루이비통은 기존 고객보다 젊은 패션리더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소구(訴求)가 약한 문제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루이비통은 1997년 젊은 감성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아트디렉터(art director)로 영입해 ‘마크 제이콥스 라인’의 가방을 디자인하게 했다. 제이콥스는 파슨스(Parsons)에서 공부한 뉴욕의 유명 디자이너로 이미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성공의 발판을 구축하고 있었다.

제이콥스는 “만일 뉴욕 5번가를 멋진(chic) 뉴요커 여성이 거닐면서 루이비통 가방을 든다면 이런 디자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스토리라인(storyline)과 함께 유명 배우인 우마 서먼(Uma Thurman)을 모델로 내세워 새로운 가방 시리즈 ‘맨해튼(Manhattan)’을 만들었다.

맨해튼 시리즈의 소모델인 PM은 마크 제이콥스의 디자인 이미지를 그대로 빼닮은데다 루이비통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매력이 넘치는 상품이었다. 맨해튼 시리즈는 기존 스피디 30모델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가격에도 루이비통의 많은 매장에서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맨해튼의 성공은 이미 탄탄한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는 경우에도 디자인과 스토리를 통해 부가한 상징적 가치가 커다란 레버리지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창의성과 합리성의 조화
일반적으로 디자인은 창의성과 영감에 기반을 둔 예술적 감각에 크게 의지하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대적 개념의 디자인은 숨어있는 고객의 요구를 발굴하는 이성적 프로세스를 통해 디자인의 방향성을 추출하고, 이 방향성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사고를 통해 최적의 디자인 대안을 창출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디자인 경영은 이렇게 이성적 프로세스(합리성)와 감성적 프로세스(창의성)를 잘 조화시키고, 고객이 개발된 디자인을 선호하는지 검증하며, 디자인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업에 연계하기 위한 여러 마케팅 실행전략(Go-To-Market Strategy)과 브랜드 전략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창의성과 합리성의 조화를 위해서는 디자이너들이 합리적인 조사와 분석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할 환경을 만들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평가와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다학제적인 팀(interdisciplinary team)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구성한 팀이 제대로 디자인 작업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기업이 고객 중심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디자인 경영학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 이런 프로세스는 각각의 마케팅 세분시장(segment) 별로 고객의 생활과 삶을 관찰하고, 고객 인사이트(insight) 연구를 통해 숨어있는 니즈(latent needs)를 발견한 다음 그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가설적 디자인 대안을 창출하고 그것을 고객에게 검증받아 실제 상품의 개발에 들어가는 단계를 거친다.(그림1)
 
한편 디자인 평가에서도 합리적인 면과 창의적인 면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먼저 디자인의 심미성같이 창의성과 관련한 이슈는 철저하게 높은 전문역량을 가진 디자이너가 고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평가를 내리게 해야 한다. 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영자가 자신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경영자는 전문가가 우수하다고 평가를 내린 디자인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등의 2차적 이슈와 합리적인 근거에 따라 판단이 가능한 사안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디자인 경영의 범위
앞서 지적한 대로 디자인 경영은 단순히 외관이 아름다운 디자인을 개발해 몇몇 고객에게 만족을 주는 범위의 활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 경영은 경영의 모든 가치사슬에 디자인 요소와 디자인 사고를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제품 개발 단계에서의 디자인 경영은 고객 연구를 통한 인사이트(insight) 획득 인사이트로부터 고객 니즈 발견 니즈를 충족시킬 기능(feature) 개발 기능을 조합한 컨셉트(concept) 구성 컨셉트를 기반으로 한 제품 제조 제품을 전략적으로 묶은 비즈니스 구성의 단계로 이뤄진다.
 
흔히 ‘결정적 순간’이라고 번역하는 MOT(Moment of Truth) 사이클을 따라 전체 경영활동에 디자인 요소를 결합하는 방법도 있다. MOT 사이클은 제품의 구매를 위한 탐색(research) 매장방문 및 구매(purchase) 설치 및 시연(installation·setup) 사용(usage experience) 유지관리(maintenance) 수리 및 서비스(service repair) 폐기처분(disposal) 순으로 이뤄진다.(그림2)
 
기업은 구체적으로 MOT 사이클의 각 단계에서 고객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요소를 강화함으로써 제품 및 서비스 가치를 전반적으로 혁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제품 정보를 탐색하는 단계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자사의 웹사이트에서 원하는 제품의 정보와 특장점을 쉽고 재미있게 찾아보도록 그래픽 등 여러 디자인 요소를 강화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고객의 구매 의향이 높아진다.
 
제품을 실제 구매하는 매장 환경도 디자인을 세심히 고려해 개선할 수 있다. 전략적 프로모션 제품을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하고 자사의 강점 요소에 눈길이 갈 수 있도록 각종 판촉요소를 배치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한 직후 또는 제품을 개봉할 때 각종 웰컴키트(welcome kit)나 편리한 설치를 위한 장치(드라이버 등)를 제공하면 초기구입 만족도를 높여 제품환불(return)률을 낮출 수 있다.
 
또 사용이 편리하거나, 기대하지 않은 좋은 기능을 제품이 제공할 경우 소비자는 이를 사용하면서 지속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제품 유지보수와 서비스의 용이성은 브랜드 충성도를 높여 추가적인 전략적 가치를 창출해 준다.
 
이렇듯 디자인 경영의 범위는 고객이 제품과 조우한 순간의 심미적 첫인상을 높이는 데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지속적으로 만족시켜 더 많은 판매를 이끌어내고, 나아가 높은 브랜드 가치를 형성하는 폭넓은 영역을 포함한다.
 
필자는 마지막으로 디자인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의 열쇠 중 하나가 우수한 창의성을 가진 디자인 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디자인 경영의 성과도 결국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LG전자의 경우 디자이너들에게 최고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슈퍼 디자이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 대상은 상위 1% 내외의 최우수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최정예 인력이며, 이들에게는 최고의 작업환경과 금전적 처우가 제공된다.
 
최고의 재능을 가진 창의적 인력이 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의 창의성이 합리적인 전략적 프로세스와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고객 중시의 디자인 경영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KAIST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북미디자인분소장과 LSR(Life Soft Research) 연구소장을 거쳐 Strategic Design Planning 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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