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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생명 ‘따뜻한 잔소리’ 광고 만든 양영옥 제일 기획 마스터

"내 몸 아프니 돈이고 뭐고 소용 없더라 삶에 녹아든 메시지, 그게 진짜다"

고승연 | 148호 (2014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희정(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10억을 받았습니다.”

 

활짝 웃는 한 여성이 자동차를 닦는 장면이 나오고 잔잔한 내레이션이 깔린다.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보험상품 덕분에 남은 이들이 꿋꿋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광고였다. 10년 전 방송 전파를 탄 이 광고에 대한 반응은 차가웠다. 오히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온갖 부정적 패러디가 난무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죽음, 가족의 죽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느낌이 만들어졌고 광고를 본 대다수는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꼈다는 얘기다.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만들었던 광고는 오히려 해가 됐다.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는역대 최악의 광고로 종종 언급되고 있을 정도다.

 

위 사례는 보험 상품이나 보험회사 브랜드 이미지 광고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보험 상품이 미래의 위험이나 불행을 대비하는 성격이 강하다 보니 함부로 혜택 얘기를 했다가는 오히려 소비자들의 거부감만 일으킬 공산이 크다. 최근 나오는 상당수의 보험회사 브랜드 광고에 멋지고 웅장한 풍경, 추상적이고 잔잔한 내레이션, ‘미래’ ‘희망등의 거창한 단어만 나열되는 이유다.

 

최근 색다른 보험회사 광고 하나가 등장했다. 한화생명의잔소리 베이비광고다. 첫 광고부터 화제를 모았다. 뜬금없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이 등장하고, ‘뱃속에서부터 말하는 아이가 뉴스거리가 되고, 모두가 그 아기의 탄생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태아가 말하는 장면을 형상화하기 위해 임신부의 배꼽이 입처럼 움직이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를 본 일부 시청자들은좀 징그럽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화제가 된 건 분명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본편 첫 회와 올해 초 2회가 나가면서잔소리 베이비는 일약 스타가 됐다. 첫 회운동편은 구레나룻을 단, 그러나 아주 귀엽게 생긴 주인공1  아기가 한화생명의 상징인 주황색 옷을 입고 나와 시청자를 쳐다보며 말하는 방식2 이다. “바쁘니까. 피곤하니까. 운동 못하는 핑계도 참 많다. 그러다가 숨쉬기 운동도 힘들어집니다. 지금 바로 운동하세요.” 이후 이 광고는 큰 화제가 됐다. ‘잔소리 베이비에게는따잔이(따뜻한 잔소리를 하는 아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올해 초에 나온새해편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엔 주인공 아기가 주황색 한복을 입고세뱃돈, 용돈, 보너스. 올해도 흐지부지 다 써 버릴 건가요? 연말에 후회할 텐데. 지금 바로 가계부를 쓰세요라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광고의 마지막은 1편과 마찬가지로당신밖에 모르는 한화생명으로 마무리된다.3  캐릭터가 한번 각인되고 나니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지도도 함께 올라갔다. 광고를 기획한 제일기획과 광고주 한화생명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포털 다음 티비팟 따잔이 영상 조회 수는 16만 건 이상이었고 관련 이벤트 참여자 수 역시 15만 명을 넘겼다. 캠페인 시작 후 한화생명 보험가입 의향률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도 모 보험회사의걱정인형이 화제가 된 적은 있지만 광고에 실제 아기가 출연해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DBR따뜻한 잔소리라는 새로운 유형의 보험회사 이미지 광고를 만든 제일기획 양영옥 마스터를 만나봤다.

 

이번에 만든 광고캠페인이 큰 화제가 됐다. 어떤 생각으로 캠페인 기획을 시작했나?

 

한화생명의 전신인 대한생명은 업계 2위였다. 근데 한화생명으로 바뀌면서 인지도가 굉장히 낮아졌다. 여전히 기존 가입자 수 등을 따져보면 업계 2위인데 인지도는 신생 보험사 수준이었다. 빅 모델을 쓰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띄워보려고 노력했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광고주(한화생명)의 주문도인지도 향상이 핵심이었다. 결국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한화생명이라는 네 글자를 각인시킬 수 있을까가 고민의 핵심이었다. 한화그룹 내부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던 터라 그 이전까지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제일기획) 경쟁 PT 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보험사업에 충실할 수 있는 콘셉트를 잡아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지도 향상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광고주들이 독특한 콘셉트를 잡은 우리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보험회사 이미지 광고 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른데

 

이번에 보험사 광고를 맡게 되고 본격적인 조사를 하면서 나 역시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에 보험사 정말 많더라. 그런데 그간의 광고들을 살펴보니 정말 다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당신의 미래’ ‘당신의 가족’ ‘당신의 행복을 위한 보험. 다 이런 메시지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완전히 다르게, 기존 보험사 광고와 차별화해 가자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까지 나온 보험사 광고 중 좋은 광고도 많이 있다. 문제는 성공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다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대부분빅모델을 쓰는 탓도 있을 것이고 보험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내 의문은왜들 그렇게 어렵게, 무겁게 얘기할까였다. 재미없고 일방적인 메시지보다는 뭔가 가벼우면서도 재미있는 메시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레나룻을 단 아기가 등장해 잔소리를 한다는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떻게 나왔나?

 

먼저 개인적인 뒷얘기를 해야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이번 광고 전략을 고민할 때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가족 한 명이 암에 걸렸다. 갑상선 암이었다. 당연히 집안이 난리도 아니었다. 사실 좀 흔한 암인데 워낙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강해서인지나도 너무 안타깝고 슬프고 안쓰럽고 그랬다. 다행히 치료가 잘됐다. 근데 보험료를 엄청 많이 받은 걸 알게 됐다. 인간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솔직히 약간 부럽기도 하더라. 큰돈을 받은 거니까. 그런데 그 다음엔 내가 많이 아팠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이고 뭐고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프면 돈이고 뭐고 아무 소용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직접 아파보고 완전히 깨달은 거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까 TV 광고에서 나오는당신 아프면 돈 줍니다라는 방식의 광고가 전혀 와 닿지 않더라. 이때 들었던 생각이진짜 나를 생각한다면 내가 아프지 않게 먼저 도와주는 보험사가 정말 내게 필요한 보험사가 아닐까였다. 물론 보험사가 병원이나 의사는 아니다. 그러나사후 관리는 어느 보험사나 말하는 거고 사전에 나를 위해 뭔가 얘기해주는 보험사가 진정 나를 생각해준다는 느낌을 고객들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까잔소리라는 콘셉트가 나왔다. 잔소리는 대부분 일이 나기 전에너 담배피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 “운동해라등을 얘기해주는 게 아닌가. 그렇게 잔소리 설정이 나왔다.

 

아기 모델보다잔소리콘셉트가 먼저였다?

 

그렇다. ‘잔소리라는 단어가 좀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건 맞다. 처음 경쟁 PT 할 때 아이디어는한화생명의 잔소리였는데 많은 분들이 매우 불안해했다. “사람들이 잔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하는데 다른 용어는 없을까라는 얘기도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따가운 충고라는 단어도 생각해 봤는데잔소리라는 단어의 어감을 절대 전달하지 못하더라. 광고주 역시 약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 방송을 타고 나니잔소리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놀랄 정도였다. 고객들에게잔소리란 당장에는 좀 듣기 싫은 말이지만 잔소리를 하는 마음은 따뜻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 순 있지만 나를 걱정해서 해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오히려 그리운 것 아닌가 싶더라. 남자에게 와이프의 잔소리도 자주 듣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걸 하는 마음은 느껴지는 게 아니냐 하는 거다. 어찌 보면 현재는 진짜 잔소리는 사라진 시대가 아닌가 한다. ‘돌직구’가 난무하는 시대일 뿐 실제 따뜻한 잔소리는 없고 사람들은 어쩌면 그 잔소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첫 편이 나가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다.

 

아기 모델은 연기를 시키기도 어렵고 보험처럼 어려운 상품에 적합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잔소리는 누가 하는지가 중요하다. 아마 굉장히 잘난 누군가가 잔소리하는 콘셉트였다면 거부감도 있었을 것이다. 자기 자식이아빠 담배 끊어!”라고 하면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지고 정말로 생각해보지 않나. 그래서 무조건 귀여운 아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아기를 모델로 삼고 나니 어려운 점도 분명 있었다. 일단 한화생명 광고 모델인 알렉스 군은 정말 활발한 아이라 촬영장에서 통제가 안 된다. 그러나 그건 부차적인 거고 실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미성년자는 보험사업에 대해 얘기할 수 없게 하는 규정이 있다. 이 역시 지켜야 한다. 아기 모델이 자기 입으로 뭔가를 절대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직 말을 잘하는 나이도 아니지만 이런 규제 자체가 제약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기가 잔소리를 하는 개념은 살리되 내레이션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잘 피해가야 했다.

 

보험광고는 아무리 포장해도공포심을 자극하는 게 기본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예전에 귀여운 아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 급 정색하면서내가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콘셉트의 광고도 있었다. 어느 보험광고나 혹시나 벌어질 수 있는 어떤 상황, 병이나 죽음, 사고 등에 대한 공포와 이에 대한 사전 대비라는 개념이 깔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광고가 사실은 그런 걸 강조했고 소비자들도 다 알고 있다. 굳이 또 그렇게 접근할 이유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소비자도 변했다. 보험은 더 이상 누군가가 공포를 자극하고꼭 가입해야 한다고 적극 권유해야만 사는 상품이 아니다. 소비자들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가입하는 시대가 됐다는 말이다. 누군가 주위에 암 환자가 있으면아 나도 하나 들어야겠구나생각하고 바로 알아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소비자들은 아주 똑똑해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 중요한 건공포를 자극해 상품구입을푸시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친숙도와 신뢰감을 높이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저 브랜드가 저렇게까지 얘기를 해주는 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게 오히려 효과가 더 클 수가 있다.

 

“소비자가 변했다는 얘기가 흥미로운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예전 어르신들은 보험이라는 걸죽으면 가족들을 위해 나오는 돈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결혼을 위해, 자녀를 위해, 또 주택 구입을 위해, 또 그다음에는 건강을 위해 보험을 든다. 방금 말한 건 20, 30, 40, 50대에 관심이 많은 순서이기도 하다. 이처럼 세분화된 상품을 각각 필요한 소비자들이 따져보고 찾아서 드는 방식이 됐다는 거다. 보험상품 자체가 일종의적금이자투자라는 개념도 강해졌다. 그래서 각각의 타깃별로 접근이 아주 달라야 하고 하나의보험업으로 묶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보험회사는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브랜딩이 중요한 상황이 됐고 개별 상품 마케팅은 세분화해 들어가야 할 필요가 생겼다. 보험 개념의 변화는 현 시대 상황, 경제상황과도 연결시켜 볼 수 있다.

 

장기불황이 이어지고 저금리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작금의 경제상황에서는 주식도 위험하고 부동산도 위태위태하다. 적금을 들어도 물가상승률을 못 따라가는 이자만 나오는 상황이다. 이럴 바에는 어차피 필요할 때 받을 수 있는 돈에 이런저런 혜택을 따져서 보험을 드는 게 나쁜 투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퍼진 것 같다. 여기에 하나 추가할 게공동체 해체. 특히 가족공동체 약화가 보험상품 발달과 밀접한 것 같다. 지역공동체는 물론 가족마저 사실상 해체된 지금 시대에는 내가 정말 위기에 처했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별로 없다. 예전에는 부모가, 형제가, 때로는 정말 친한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지금 어디 그런가. 그 빈자리를 보험회사가 상품으로 메워주면서 상품은 세분화되고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니즈에 맞춰 상품을 고르는 상황이 된 거다.

 

 

 

 

‘보험광고에는 철학이 담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다. 모 대형 보험회사 CEO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의 한화생명 광고가 가볍게 접근하는 건 맞지만 철학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광고를 오래 만들다 보니까 요새 든 생각은브랜드의 철학을 얘기해주는 것도 좋지만 소비자들에게 더 가까이 가서 뭔가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거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기업 얘기를 하고 이미지를 그려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카스 광고도 그렇다. 동아제약이 박카스를 50년 만들면서 왜 철학이 없겠나? 그러나 광고는 좀 다르게 가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얘기하면서피곤하지? 박카스 한 병 마셔’, 이 정도로 가는 거다. 이러면 브랜드가 굳이 거창하게 철학을 얘기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철학을 느낄 수가 있다. 브랜드의 철학이라는 건 멋진 단어로 표현되는 것도 좋지만 생활에서 자연스레 느끼는 것이 더 좋을 수가 있다. 아니 그게 더 중요하다. 요즘 광고는 다들 그렇게 간다. 굳이 지금 전파를 타고 있는 한화생명의 광고에 깃든 브랜드 철학을 말하자면사랑 섞인 잔소리가 사라진 시대, 따뜻한 잔소리를 복원하다정도가 아닐까.

 

이미지 전략이 너무 강해서 구체성이 결여된다는 문제는 없을까?

 

이미지 전략이 너무 강해서 위험할 수 있다는 질문인 것 같다. 상반기에는 한화생명이 어떤 생각으로 당신에게 잔소리를 하는지에 대해 전달했다면 하반기에는 잔소리를 통해 고객이 받는 구체적인 베네핏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고민 중이다. 다른 곳은빅모델을 통한 신뢰성 확보에 방점을 찍는다면당신을 생각하는 따뜻한 잔소리로 다른 측면에서의 신뢰도 제고를 하고 이를 다시 구체화해보겠다는 말이다. 구상 중이다.

 

지금처럼 광고전쟁이 치열한 시대에 성공하는 광고를 만드는 나름의 비법이 있나.

 

있긴 있다. 바로 나 스스로를 기준으로 모든 캠페인을 구상한다. 즉 내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사람, 브랜드를 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만드는 거다. 이게 굉장히 당연한 얘긴데 의외로 쉽지가 않다. 광고를 만들려고 고민하고 광고주와 미팅하고 하는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자꾸 공급자의 입장이 된다. 그래서 이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게 정말 중요하다. 이번 한화생명 광고도 가족 한 명의 암 투병과 보험료 지급, 곧바로 이어진 내 건강문제가 아이디어의 기초가 되지 않았나. 이번엔 우연하게 그렇게 바로 연결되는 경험이 나왔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항상 머릿속에 내가 광고해야 할 제품이나 브랜드, 서비스를 넣고 다니면서 주변을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나온 게 모 정수기 광고다. 수년 전 광고대상까지 받았는데 그 사례를 들어주는 게 좋겠다. 그 정수기 회사에서 최고 성능의 필터로 미세한 것, 현미경으로 수백 배 확대해야 하는 그런 미세한 이물질도 다 걸러낸다는 기능을 어필해달라고 주문해왔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걸 이미지화해 보여줘야 하나, 아니면 다른 비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면서내가 정수기를 고른다면이라는 관점에서 계속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집에 놀러갔는데 조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그 집에 광고를 해야 되는 바로 그 정수기가 있었다. 동생한테정수기 샀냐고 묻자애한테 아무거나 먹일 수 없잖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바로 그거였다. 온갖 수치가 순식간에 필요 없어진 거다. 자신의 아이가 마시는 물이라는데 그것만 한 메시지는 없는 거다. 그래서 임신부가 나오고 나중에는 아기가 태어난 걸 보여주면서생명이 마십니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말은 쉬운데 실제로 항상 그렇게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보는 게 좋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주위 사람들한테 계속 물어봐야 한다. 그 사람들이 해주는 피드백을 갖고 다시 생각하고. 이걸 끊임없이 반복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나는 중학생인 딸아이한테도 물어본다. 딸아이가엄마 좀 복잡한 거 같아.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하면 그건 폐기하는 거다. 기업들은 상품을 만들어 출시할 때 시장조사를 굉장히 많이 한다. 그런데 데이터나 수치에 파묻히면 자신들끼리는 다 아는 거고 좋은 거지만 실제 마케팅이나 광고를 접한 소비자들에게는 잘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야 제품을 만든 사람이나 이를 광고해야 하는 사람이나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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