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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신재훈 블랙야크 마케팅본부장

“히말라야에 집중, 그 에너지를 전달했다”

최한나 | 136호 (2013년 9월 Issue 1)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상기(서강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실체가 없는 것들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최첨단 컴퓨터 기술과 현란한 그래픽 도구들은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로봇이나 괴물까지도 생생하게 구현해 낸다.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더 황홀하게, 더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이런 시대에 한라산보다 두 배 이상 높은 히말라야까지 가서 광고를 찍는 기업이 있다. 촬영이 허락되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3시간. 스태프나 모델이 고산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고 운 나쁘면 날씨 때문에 한 컷도 못 건질 수도 있다. 비용은 비슷한 장면을 담을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갈 때보다 두 배 이상 들어간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방법을 고집하는 이유를 심재훈 블랙야크 마케팅본부장을 만나 묻고 들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찍으려면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사실 아름다운 풍경만 담아내려고 한다면 미국이나 뉴질랜드 가서 찍는 것이 훨씬 낫다. 비용도 시간도 덜 들고 한결 편하게 찍을 수 있다. 미국이나 뉴질랜드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입국 수속이나 현지에서의 인력 동원, 안전 문제 등에서 비교할 수 없게 유리하다.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그대로 그림이 된다. 반면 히말라야는 굉장히 열악한 여건이다.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헬기다. 비싸기 때문에 주요 스태프와 모델만 헬기를 타고 나머지는 걸어간다. 그림이 나올 정도가 되려면 해발 4000m 정도는 올라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한라산 높이가 2000m가 채 안 된다. 한라산 정상을 찍고, 올라온 만큼 더 올라가야 한다는 의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높이 올라가면 산소가 희박하기 때문에 호흡이 어렵고 심하면 고산병에 걸린다. 모델과 스태프들의 건강과 안전을 챙기는 일에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전체적인 비용은 미국이나 뉴질랜드 대비 2배 이상 나온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람이 어찌해볼 수 없는 조건들이 많다는 점이다. 광고 하나 찍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10가지라면 그중 사람이 컨트롤할 수 있는 조건은 절반이 안 된다. 모델과 장비 상태, 진행 인력을 아무리 잘 갖춰도 막상 현장 상황이나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못 찍는다. 일단 오전 8시부터 오전 11시까지만 찍을 수 있다. 오전 11시가 넘어가면 구름과 가스가 차오르면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상태가 된다. 일교차가 워낙 크고 날씨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허탕치고 돌아와야 한다.

 

가기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한번 가면 1년치를 다 찍어 온다. 봄여름 시즌과 가을겨울 시즌에 각 2편씩 잡고 총 45편을 찍는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에서 길어야 열흘, 이 안에 못 찍으면 그냥 접고 귀국해야 한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스태프들도 모델들도 모두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다.

 

올해는 4월에 갔다. 봄여름 편을 찍어야 하는데 올라갔더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눈발 날리는 봄을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눈물을 삼키며 아까운 하루를 그대로 날렸다. 밤새 잠 한 숨 못 자고 기도했다. 다음날 깨보니 눈도 그치고 전날 내렸던 눈이 다 녹아서 하루 사이에 딱 봄에 맞는 날씨로 바뀌어 있었다. 하마터면 며칠 손 놓고 허비하거나 아예 취소해야 했을 텐데 정말 천우신조였다. 물론 눈발 날리는 중에 일단 찍고 한국에 돌아와서 CG로 눈을 지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콘티를 짤 때도, 연출을 할 때도 가급적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에 눈을 일부러 지워내는 방식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허용되는 시간이나 공간이 제한적인 만큼 사전답사를 최대한 활용한다. 올해는 2월에 감독과 조감독, 촬영기사 등 핵심 스태프들과 답사를 갔다. 안나푸르나 쪽으로 올라가는데 겨울이라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걸음을 한 번 옮길 때마다 1m씩 빠졌다. 10m 전진하기 위해 1시간을 다지고 가야 했다. 걸어 올라가다가 감독과 내가 첫 번째 헬기를 타고 조감독과 촬영기사가 두 번째 헬기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첫 번째 헬기만 뜨고 두 번째 헬기는 뜨지 못했다. 결국 감독과 둘이서 사전답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감독이 휴대용 카메라를 들고 이런저런 배경을 담아보고 나는 모델 대역으로 감독이 시키는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 이 장면에는 이런 포즈를 담고, 저 장면에는 저런 포즈를 담자는 구상을 마치고 내려왔다. 이래야 나중에 진짜 모델을 데려다 찍을 때 시간 낭비 안 하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실제로 찍을 때는 한 장면 담을 때마다 카메라를 6대씩 돌린다. 어느 각도에서든 전부 담아내기 위해서다. 그래야 한국에 돌아와 편집할 때 놓치는 부분 없이 원하는 장면들로 연결할 수 있다. 다시 찍자고 덤빌 수가 없기 때문에 한 번 찍을 때 가급적 많이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블랙야크는 만들어질 때부터 히말라야를 염두에 둔 브랜드다. 히말라얀 오리지널이라는 슬로건이 그래서 붙었다. 히말라얀는 블랙야크에 고향 같은 곳이다. 히말라야 오리지널을 표방하면서 뉴질랜드나 미국에 가서 광고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풀자면 나는 원래 블랙야크 광고를 맡아 만들던 대행사에서 근무했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블랙야크 광고를 맡았을 때다. 제작에 앞서 기업 측의 설명을 듣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야크멘터리라는 큰 틀이 떠올랐다. 야크멘터리는 블랙야크와 다큐멘터리의 합성어다. 블랙야크라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core value)는 등산을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대감 같은, 꾸며내지 않은 리얼리티다. 다른 광고 찍듯 화려하거나 감각적으로 풀어낼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연출을 배제하고 일종의 다큐멘터리처럼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연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그때 했다. 자연 그대로의 히말라야, 그리고 그것과 교감하는 사람의 모습을 꾸밈없이 담자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블랙야크 광고를 보면 블랙야크에 대한 설명이나 브랜드 로고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브랜드를 부각시키기보다는 히말라야 풍광을 가급적 많이 담고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담기 위해서다. 우리가 느끼는 히말라야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올해의 테마는 힐링이다. 히말라야가 가진 힐링의 의미를 도시인들에게 전달하자는 취지였다.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과 어울리면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해 한다. 이런 모습을 담고 싶었다. 도시인에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강할 것으로 봤다. 사실 히말라야는 사계(四季)라는 시간을 공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히말라야라고 하면 높은 산이 떠오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춥기만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은 적도와 가깝기 때문에 매우 덥다. 평지에서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점점 떨어진다. 고도 100m씩 올라갈 때마다 기온이 0.6도씩 낮아진다. 평지에서는 한여름이었다가 올라가면서 점점 겨울로 바뀐다. 같은 위도에 있는데도 높이에 따라 봄도 있고, 겨울도 있고, 여름도 있는 셈이다. 동일한 장소, 동일한 시간에서 어느 고도에 있느냐에 따라 봄·여름·가을·겨울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신비를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다. 히말라야가 가진 신비로움과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을 담고 싶었다. 이것이 복작복작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계절을 느낄 틈도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히말라야를 내세워 얻는 광고 효과는 얼마나 될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점이 가장 큰 효과라고 생각한다. 광고를 해서 인지도가 몇 퍼센트 오르고, 선호도가 얼마나 높아지고, 매출이 얼마나 좋아지고 이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다. 보다 진정한 효과는 이 광고를 통해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정서를 소비자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작년에 에베레스트 중간쯤에 있는 베이스캠프에 갔을 때다. 중간에 있는 언덕 끝에 에베레스트 뷰호텔이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호텔이 있다. 이름에 걸맞게 창을 열면 에베레스트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어느 날 한참 대역모델 노릇을 하고 돌아와 지친 몸으로 창문을 열고 산을 보는데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3시간 동안 넋을 잃고 멍하게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눈물도 흘렸다.

 

광고 찍는 일을 하면서 좋은 곳 많이 가봤다. 눈 덮인 알프스도 가보고, 광활한 뉴질랜드 평원도 가보고, 날카로운 로키산맥도 가봤다. 그런 곳에 갔을 때 나오는 감탄사는 영어로 하자면 wonderful, fantastic 이런 표현들이다. 그런데 히말라야를 보면서는 그런 단어조차 나오지 않았다. 저 웅장한 산을 보면서 뭔가를 표현하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곳은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느꼈다.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히말라야에서 받은 감동의 10분의 1이라도 광고를 통해 전달됐으면 좋겠다. 이 감동에 공감하고 이런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블랙야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를 좋아해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연애의 정석 아닌가. 이런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매출이나 기업 선호도 등 가시적인 수치로 나타나는 것이다. 대놓고 우리 제품이 좋다, 최고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향하는 가치를 보여주고 그것에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다.

 

소속을 아예 블랙야크로 옮기는 데도 그때 받은 감동이 톡톡히 작용했다. 광고를 만들면서 블랙야크가 경쟁사들보다 스토리가 강하고 브랜드 콘셉트가 명확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닿아서 아예 둥지를 틀기로 했다. 상황이 잘 맞아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때 산에서 받은 감동이 없었다면 산과 관련된 회사로 옮기겠다는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중에 블랙야크는 전문적인 산악인 이미지가 강하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산에 갈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아웃도어를 많이 입는다.

히말라야 같은 전문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면 오히려 역효과도 있을 것 같다.

 

그럴 수도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산을 타는 사람들에게 히말라야는 일종의 성지이자 메카,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이다. 마치 시내에서 시속 1000㎞로 운전할 일도 없는데 F1용 고성능 자동차를 꿈꾸는 것처럼. 궁극적으로는 업의 본질 또는 해당 카테고리에서 최고의 기대치이기 때문 아닐까. 아웃도어를 입고 시장에도 갈 수 있고 예식장에도 갈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산, 그중에서도 히말라야를 항상 꿈꾸고 그리는 것은 반드시 히말라야에 직접 가거나 도전하지는 않더라도 아웃도어를 택하고 입는 사람이라면 막연하게나마 품고 있는 동경 같은 것이다.

 

기능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핵심 가치를 가장 높은 산에 두고 있는 브랜드는 갖고 있는 원천 기술 자체가 다르다. 운동화 만드는 곳에서 만든 워킹화와 등산화 만드는 곳에서 만드는 워킹화 중에 어떤 것의 기능이 더 우수할까? 히말라야 8000m에서 버틸 수 있는 기능이라면 국내 어디서든 통한다. 꼭 산에서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기능만큼은 어떤 곳에 가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우수하다. 히말라야를 염두에 두고 만든 신발이기 때문이다. 근원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다.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진정성이란 있는 그대로의 것, 처음과 끝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상태다. 다른 요소들이 개입되는 순간, 사심이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로마인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탄탄티누스라는 로마의 집정관에 대한 에피소드다. 이 사람이 고위 관직까지 올랐다가 아들이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지느라 평민으로 내려왔다. 한참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로마에 위기가 발생했다. 시민들이 이 사람을 다시 불러야 한다고 나섰고 결국 계엄사령관 자리에 올랐다. 임기가 6개월이었다. 능력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에 단 17일 만에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됐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쟁기를 들고 곧장 떠났다. 자신에게 맡겨진 것은 위기를 해결하는 역할이었다며 다시 밭으로 향한 것이다.

 

초심이 중요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히말라야였고 앞으로도 히말라야일 것이다. 기업이다 보니 이윤도 물론 추구해야겠지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중심축에 항상 히말라야가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근원이자 가야 할 방향이고 이제까지 소비자와 공유해 온 핵심 가치다. 이것을 계속 지켜가는 것이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 아닐까.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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