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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전략 실행

조리법 같아도 셰프 따라 맛 다르듯 기술 다룰 핵심인력이 중요

최승환 | 135호 (2013년 8월 Issue 2)

 

 

성공적인 기술전략 실행의 길

특정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은 크게 사업전략과 기술전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업 조직에서는 일반적으로 리스크가 적고 확실성이 높은 단기 과제를 선호한다. 반면 기술 조직은 어느 정도 리스크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큰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과제를 선호한다. 성공적 기술전략 수립을 위해서는 사업과 기술의 경계 관리(Boundary Management), 즉 여러 전략과의 경계선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기술전략과 사업전략 간 관계는 <그림 1>처럼 벡터의 곱에 비유해 볼 수 있다. 기술전략과 사업전략은 때로 일치하기도 하지만 서로 상충될 때도 있다. 어느 한쪽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두 전략을 얼마나 잘 조율하는지의 문제다. 상호 방향성이 상충할 경우 어떻게 일관된 판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분명한 입장이 서 있어야 한다.

 

개별 기술만 놓고 봤을 때는 그 효과와 파급력이 뛰어나더라도 경영상 이유 때문에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과제가 있을 수 있다. SK의 경우 2차 전지 및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를 1990년대 중반부터 기술전략에 반영해 장기 연구 과제로 추진해 왔다. 하지만 급변하는 시장 환경 및 신규 사업 진출에 대한 리스크 등 관련 사업 전략과의 불일치로 인해 의사결정이 늦어져 사업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발생했다.

 

이는 일선 사업부서와 기술부서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에서 기인한다. 대개 사업 조직에선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거나 단기간에 성과를 올릴 수 있고 잠재적인 리스크가 적은 기술 과제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기술조직에서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 가치가 낮은 일로 폄하하며 중장기적으로 많은 투자가 필요해 리스크는 높지만 기술의 파급 효과나 기대 효과가 큰 과제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기술전략과 사업전략이 적절하게 일치되지 못할 때 과제 수행이 지연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프로젝트가 아예 중단될 수도 있다. 이는 담당자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뿐 아니라 상호 전략 방향 간 불신을 키워 중장기적인 기술전략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기술전략과 사업전략 간 시각 차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전략 초기 단계에서부터 사업 전략과의 연계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상호 전략 방향 간 불일치로 인해 지연되거나 중단된 기술과제가 발생할 경우 그간 확보한 기술적 성취 및 관련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내용 역시 기술전략에 포함돼야 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구성원들의 인식과 의견을 사전에 합치시켜 전략에 공감하도록 하는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기술전략의 방향성

기술전략을 수립할 때 흔히 빠지는 오류는 무조건 잠재성이 큰 과제를 찾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최선은 아니다. 물론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입이 쉽지 않다고 해서 단순히 지금까지 영위하던 산업군만 천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장 혁신적인 사고를 함과 동시에 이를 위한 준비는 철저히 보수적인 시각에서 관련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기술 개발의 목표 영역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요소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의 연계성이다. 아무리 잠재력이 큰 시장영역이라고 하더라도 내부에 관련 기술이 전혀 없다면 본원적인 경쟁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목표 영역을 설정할 때에는 회사 전체적인 측면에서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1차적으로 결정한 후 그 테두리 안에서 회사 내 유관 부서별로 구체적인 사업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쉐일가스를 예로 들어보자. 동일한 시장과 기술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도 계열사마다 이 자료를 바라보는 관점은 천차만별이다. 조직 A는 기존 LNG 대체 가능성, 조직 B는 액화천연가스의 처리, 조직 C는 가스액화를 통한 연료유 생산 기술, 조직 D는 북미 송유관 사업 등 계열사 특성에 따라 초점이 달라진다. (그림 2) 따라서 각 관련 조직들은 회사 차원에서 공유된 기술 전략 방향(쉐일가스)에 기초해 각 조직에 가장 적합한 사업 방안을 세워야 한다.

 

 

 

 

동적 기술 전략 수립

기술전략 및 기술기회 발굴 프로세스는 일반적으로 시나리오 분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필요 기술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현재와 미래의 모습 사이에 수많은 중간 단계를 가정하고 분석함으로써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을 기반으로 가장 최적의 경로를 찾는다면 보다 구체화된 전략을 도출해낼 수 있다.

 

신기술 발굴의 첫걸음은 전체 메가트렌드를 분석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특정 분야의 특정한 기술 발전 예상이 아닌 사람과 가정, 사회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 그래야 미래 인간의 삶에서 진정 필요로 하는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건 기술 개발의 단계뿐 아니라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가장 적합한 단기, 중기, 장기 과제를 선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 제품 개발기간을 R&D 프로세스에 따라 시기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 맞는 목표와 과제를 설정하되 여러 기술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동적인 기술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령화 사회라는 메가트렌드 분석을 통해 노령인구 증가에 발맞춰인공 관절 개발이라는 장기 과제를 선정했다면 이를 위한 단기 과제로는무독성 소재 개발’, 중기 과제로는생체용 소재 개발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 반도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포토레지스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제품은 현재 소수의 회사만이 공급하고 있어 대표적인 고부가 화학 제품으로 꼽힌다. 따라서 현재 보유한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해당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면 단기 과제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기술의 지속적인 개발에 따라 나노 임프린트 리소그래피, 나노 와이어를 이용한 셀프 어셈블리 등 기술 로드맵을 고려한다면 포토레지스트는 중장기 시장 변화에 부응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엔 단기적으로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함과 동시에 중장기 반도체 시장 대응을 목표로 나노 관련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이와 함께 포토레지스트용으로 개발한 화학제품의 또 다른 용도를 개발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리스크에 따라 차별화된 R&D 수행 전략

SK이노베이션은 R&D 수행에 있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Stage-Gate Model)을 기본적으로 적용한다. 이는 아이디어 발굴 단계에서부터 제품 사업화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를 스테이지별로 구분해 사전에 정의된 다양한 항목에 대한 확인사항을 모두 충족할 경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그림 3)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은 각 단계별 주요 리스크에 대한 사전 검토가 가능하므로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을제대로실행하는 건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모델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내에 해당 과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전문적인콜드 아이 리뷰(Cold Eye Review·경영자, 혹은 관련 사업부서 관리자들이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품질을 체크하기 위한 감사 활동)’를 수행할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의 성패는 객관적인 게이트 평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냉철한 눈을 통한 감사를 기업에서 실제로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규모가 큰 조직일수록 더 그렇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관리자가 해당 부서를 대표해 감사 활동에 대신 나오거나 실제 리뷰 활동에 참가하더라도 여러 정치적 이유로 충분한 의사 표명을 못하는 등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이 어느 프로젝트에나 적합한 모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분명히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R&D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하거나 접목하는 데 최적의 방법은 아닌 탓이다. 되레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을 곧이곧대로 따를 경우 개발 중인 제품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개발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위험도 있다. 미경험 신기술 사업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는 특히 그렇다. 콜드 아이 리뷰를 철저히 실행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제품의 특성을 고려하기보다 기존에 주로 영위하고 있던 산업을 토대로 심사한다면 잠재력 있는 기술 개발 기회를 초기에 잘라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R&D의 가속화 및 효율적인 기술개발을 위해선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SK는 사업에 끼치는 영향력(business impact)을 고려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그림 4, 5>에 나타난 것처럼 일반적인 R&D 과제는 기본적인 스테이지 모델을 따라 진행한다. 그러나 이른바급진적 혁신(radical innovation)’ 활동으로 시장 파급력이 큰 신성장 동력(Breakthrough) 과제의 경우 초기 검증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는 프로세스를 적용한다. 반면 기존 사업을 단순 확장하거나 개선하는 등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의 성격이 강한 프로젝트의 경우(Divisional R&D 과제)엔 각 스테이지마다 심사 소요 기간을 줄임으로써 거쳐가야 할 스테이지의 숫자를 줄여 개발의 신속화를 추구하는 접근방법을 택하고 있다.

 

SK그룹 내 각 계열사들도 서로 다른 사업의 특성과 과제 진행을 고려한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림 6>의 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계열사 A B를 비교해 보자. 소량 다품종 생산을 주로 하는 A사는 시장에서의 제품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제품을 적시에 내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이 경우엔 단계적으로 규모를 확대(scale-up)해 생산성을 확보하는 단계를 거치기 전에 생산성이 낮더라도 우선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량의 샘플을 개발, 시장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반면, 계열사 B는 제품 특성상 개발에 시간이 걸리지만 대부분의 제품이 타깃으로 삼는 시장이 이미 형성돼 있는 일반재 시장이다. 이 경우 원가 절감 및 안정적인 생산 역량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므로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규모를 늘려(scale-up) 리스크를 관리해 나가는 방법이 적합하다. 이처럼 동일한 산업군에 속해 있는 계열사라 할지라도 제조 기술의 난이도, 제품 특성 및 시장 파급력을 고려해 서로 다른 전략을 유기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심지어 한 회사 내에서도 필요에 따라 가변적인 모델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기업별로 최적화된 프로세스를 적용할 때 리스크는 줄여나가면서 R&D를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화 전략

과제 탐색에서부터 연구개발, 제품 생산, 마케팅 및 이 모든 것을 관리, 운영하는 전략체계는 하나의 회사 안에서 유기적으로 운영되는 게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이를 과감하게 분리해 과제 탐색부터 연구개발, 기술지원에 이르는 이른바기술력이 필요한 기능을 제외하고 기타 생산 및 사업 관리는 자회사 형태의 별도 회사(이를 내부적으로는 Operation Company라 호칭함)로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그림 7)

 

이러한 체계의 장점은 급변하는 시장상황에서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책임경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Operation Company는 각기 영위하는 제품군 및 해당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훨씬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고 외부 자본을 도입할 때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만일 SK이노베이션이 일반적인 회사의 형태를 유지했다면 전사 전략 방향하에서 제품군별로 발 빠른 대처가 어려웠을 것이고 기술 유출에 대한 부담으로 외부 자본 도입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술전략적인 측면에서는 SK이노베이션에서 개발 완료한 과제는 각 Operation Company의 자금력 및 사업화 지원을 받아 상용화된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상호 소통 및 의사결정 지원을 통해 시장 환경에 적합한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술전략의 추진 원동력 = 사람

일반적으로 기술력은형식지(explicit knowledge)’라고 인식되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 접할 기회만 있다면 상대적으로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과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런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기술은암묵지(tacit knowledge)’의 성격도 강하다. 기술을 체화하고 있는 사람이 없이는 완벽한 기술 지식의 이전은 불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기술을 확보한다는 건 해당 기술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력을 관리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술전략이 사업전략과 연계돼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완성도 높은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수행할 인력이 없거나 그 수준이 기대치에 못 미칠 경우, 혹은 초기 기술 개발에 참여했던 인력이 중간에 타 부서로 이동하거나 퇴직할 경우, 해당 과제는 상당 기간 지연되거나 심한 경우 중단될 수도 있다. 해당 인력이 기술에만 매몰돼 있어서도 안 된다. 해당 기술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는 물론 사업적 마인드까지 갖추고 있을 때 성공적인 기술전략을 실행할 수 있다. 시나리오 기반 미래 분석, 다양한 과제 발굴 방법론,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 등의 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사업 마인드를 갖춘 유능한 기술 인력을 적시에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면 기술전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회사의 기술전략은 비전을 제시하고 연구관리 및 기획, 프로젝트 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브레인이자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기술전략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바라보지만 현실 속에서 혁신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 때문에 핵심가치는 보수적인 자세로 유지하되 새로운 시도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양손잡이(ambidextrous)’ 문화를 실천해야 한다.

 

똑같은 조리법(recipe)대로 요리를 한다고 누구나 똑같은 맛의 음식을 만들 수는 없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chef)의 경험과 실력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기술전략도 마찬가지다. 성공적인 기술전략의 수립과 운영을 위해서는 잘 짜인 전략적 분석틀(조리법) 못지 않게 이를 제대로 운영하고 실행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 인력(셰프)이 필요하다. 기술전략은 체계적인 프레임을 통해 이미 보유한 역량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영역을 지정하고 그 영역을 잘 채워줄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기술전략이란 결국 사람을 관리하는 HR전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최승환 SK이노베이션 GT전략실장 shchoi@sk.com

필자는 서울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SK경영경제연구소 및 SK주식회사를 거쳐 현재 SK이노베이션에서 기술전략 수립, 연구기획, 신규 과제 발굴 및 전사 차원의 특허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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