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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이상엽 동부대우전자 아중동 영업총괄 수석부장

커다란 첨단제품 좋아하는 사람들 그러나 흥분말라, 그들은 느리게 움직인다

최한나 | 131호 (2013년 6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진선(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분명 중동은 쉬운 지역이 아니다. 인종도, 문화도, 말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 그곳에서 새로 터를 닦고 관계를 쌓으며 물건을 사도록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 중에 쉽고 간단한 일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그 매력이 너무 크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전략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폭발적인 수요와 활기찬 소비가 넘치는, 그래서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중동을 대상으로 영업만 20년 넘게 해온 이상엽 동부대우전자 아중동 영업총괄 수석부장을 만나 이곳에 진출할 때 새겨야 할 팁을 들었다.

 

 

무슬림 소비자는 아시아나 북미, 유럽 소비자와 성향이

많이 다를 것 같다.

중동은 빈부 격차가 상당히 큰 지역이다. 중산층 이상만 되면 소비 수준이 확 달라진다. 소비 수준에 따라 사회적 계층이 분명히 갈리기 때문에 여유가 좀 있다 싶으면 크고 화려한 제품을 선호한다. 대표적인 것이 집이다. 중산층 이상 살면 대부분 집이 60평을 넘어간다. 더 부유한 계층은 현관에서 15분 이상 차를 타고 가야 나오는 집에 살기도 한다. 일반 소비제품도 크고 화려해야 잘 팔린다. 예를 들어 중동 지역에서는 인터넷이 잘 안 된다.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기능이 들어가 있는 TV가 훨씬 잘 팔린다. 인터넷 속도를 생각하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복잡한 기능이 많이 들어가고 비싼 제품을 좋아한다. 풀옵션 다 들어간 대형 냉장고를 선호하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보니 자신들의 종교가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선호도가 확 올라간다. 무슬림이 크리스천들로부터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왔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데다 각종 테러와 관련해 오해가 많기 때문에 종교적인 부분에 굉장히 민감하다. 이런 점을 잘 파악하고 활용하면 호감을 사기 쉽다. 성공한 제품으로는 코란이 내장된 TV가 있다. 일종의 스크린세이버 같은 기능인데 TV를 일정 시간 이상 보지 않으면 절전 모드로 넘어가면서 신은 위대하다 등의 문구가 아랍어로 흐르도록 만들어서 인기를 끈 제품이다. TV에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알람기능을 넣은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탁기 중에는 여성들이 두르고 다니는 히잡 전용 세탁코스를 넣은 제품이 있다. 히잡은 천이 상당히 부드러워서 일반 코스로 빨면 망가진다. 그래서 히잡을 세탁할 때 특별히 선택할 수 있는 코스를 만들었다. 이슬람 율법에는 히잡을 빨기 전에 먼저 기도를 하고 흐르는 물에 오른쪽으로 몇 번, 왼쪽으로 몇 번 헹군다는 식의 규율이 있다. 히잡 코스에서는 그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 코스를 선택하면 세탁기가 그 방식대로 돌아간다.

 

자물쇠 달린 냉장고 얘기는 이미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사람들은 손수 살림을 하지 않고 하우스메이드를 둔다. 주방 일을 하는 사람이 냉장고에서 음식을 함부로 꺼내갈 수 없도록 자물쇠가 달린 냉장고를 선호한다.

 

중동 지역에 새로 진출하려는 기업이 유념해야 할 점은.

중동은 크게 아랍계와 비아랍계로 나눌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은 아랍계다. 아랍어를 쓰는 동일 민족이다. 하지만 이란은 다르다. 이란은 독일 계통의 아리안족이다. 인종도 다르고 말도 다르다. 아랍계 사람들은 좀 더 완강하고 고지식한 면이 있다. 산유국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부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아랍 왕족 사람들은 프라이드가 굉장하다. 반면 이란 사람들은 좀 더 섬세하고 개방적이다. 외부인에 대해서도 친절한 편이다. 중동 지역에 새로 들어간다면 지역별로 다른 특성을 인지하고 그에 맞게 접근해야 한다.

 

이슬람권 사람들과 일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역시 정치, 종교 이야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테러나 독재, 왕정 체제, 종교적 특성 등을 건드리는 것은 그 사람과 아예 비즈니스 안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 사람들도 다른 나라나 종교를 비판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네 나라나 종교를 자랑할 때가 많은데 그것을 굳이 지적하거나 반박하지 말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편이 좋다.

 

바이어를 제대로 공략하는 것이 중동 진출의 처음이자 끝이다. 중동 시장은 우리나라의 하이마트나 전자랜드 같은 가전전문매장이 발달돼 있지 않다. 만약 전국망을 가진 대표 가전전문매장이 몇 곳 있다면 새로 진입하는 사업자가 그 본사와 협의해서 물건을 넣으면 될 것이다. 그런데 중동 시장에 이런 전문매장의 비율은 전체 시장의 30%뿐이다. 나머지 70%는 개인 점주(shop owner)들이 소유한 개별 매장(Independent shop)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매장을 일일이 뚫어야 한다. 이런 개별 매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매출을 좌우한다.

 

이들을 공략하려면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중동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고 대화를 좋아한다. 함께 식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치열하게 협상하고 때로 다투기도 하지만 협상은 협상이고 저녁 시간에 개인적으로 만나는 자리는 별도다.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당신과 나 사이에 거리감이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으면 반드시 가야 한다. 친분이 좀 더 깊어지면 가족을 전부 초대하기도 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다 데리고 바이어 집에 가는 것이다. 저녁 식사에만 통상 3시간쯤 걸린다. 다 먹고 나면 여성들은 여성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린다. 남성들도 차 마시고 물 담배 피우면서 비스듬히 기대앉아 새벽 2∼3시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자리에서는 웬만하면 비즈니스 얘기는 안 한다. 그저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눌 뿐이다. 그렇게 여러 번 왔다갔다 하면서 친분을 쌓으면 서로 하비비(‘내 사랑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가족 동반으로 별장에 놀러가기도 하고 하룻밤 자고 오기도 한다. 이쯤 되면 깊은 신뢰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최소 1년이 걸린다.

 

관계를 형성하고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본사와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중동 시장에서 제대로 된 관계를 구축하고 비즈니스 토대를 닦으려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길다. 절대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다. 중동 바이어들은 한국 기업들의빨리빨리를 이미 잘 알고 있다. 한국 사람들 성격이 급하다는 것도 잘 안다. 그쪽에서 오히려 한국 사람들의 이런 특징을 약점으로 잡아 이용하기도 한다. 중동 사람들과 협상할 때는 최대한 편안하고 느긋하게 임해야 한다. 아무리 급하고 본사에서 재촉하더라도 중동 사람들 앞에서 티를 내면 안 된다. 안 되면 그만이라는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최대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차분하고 계획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지 기업과 합작할 때도 조바심을 내거나 서두르지 말고 우리가 우위에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강하게 나가야 한다. 현지에 투자하면서 정부나 합작사에 주도권을 맡겼다가 일정 시간 이후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해 손실이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발 빼는 사례를 많이 봤다.

 

본사에서도 충분히 관계를 다지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자꾸 다그치지 말고 기다려줘야 한다. 본사에서는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큰 자금을 들여 중동 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강조했듯 다른 곳보다 두 배, 세 배 시간이 더 필요한 시장이다. 지역적인 특성을 감안하고 좀 더 길게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 현지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본사와 현지 바이어 사이를 부드럽게 조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냉장고 1000대 주문이 들어왔다고 하자. 다음 달 들어가는 것 맞느냐고 바이어에게 여러 차례 확인을 했다. 바이어는 틀림없이 다음 달에 1000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사에 다음 달 주문이 들어왔다고 곧이곧대로 전해서는 안 된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것이다. 사전에 아무리 확인을 해도 주문이 이연될 가능성이 절반 이상이다. 그렇다고 본사에 아무 메시지를 안 줄 수도 없다. 실제로 다음 달에 1000대가 나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무자는 나름대로 미리 주문을 하기는 하되 틀어지거나 미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고해야 한다. 예를 들면서너 달 후쯤 1000대 정도 주문이 들어올 것 같은데 앞당길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는 식으로 전달하면 좋다. 그러면 본사는 크게 기대는 하지 않더라도 미리 물량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다가 정말 한 달 후에 주문이 성사되면 양쪽 모두에게 좋고, 혹시 미뤄지더라도 큰 타격 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중간에서 역할을 잘하면 양쪽을 만족시키면서 거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현지인을 채용했을 때 기업은 이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무슬림이라고 하면 무조건 하루 다섯 번 기도해야 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종교적 규율을 지키는 방식은 개인 성향에 따라 제각각이다. 다섯 번 전부 챙기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학력이나 부의 수준이 높을수록 덜 챙기는 편이다. 따라서 종교에 관련한 부분은 어느 정도 준수하는지, 어느 정도나 배려하면 좋은지 개인적으로 확인해보는 게 좋다.

 

현지인을 고용해서 쓸 때 주의할 점은 계급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분 계급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마케팅이나 재무처럼 고급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하급으로 여겨지는 일을 절대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차(tea)만 타는 사람이 따로 있고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식이다. 이들은 절대 위로 올라갈 수 없다. 차 타는 사람은 차만 타야 하고 청소하는 사람은 청소만 해야 한다. 사람을 새로 뽑을 때 마케팅 담당자를 찾는다고 공고를 내면 그 계급의 사람들만 지원을 한다. 그렇게 뽑았으면 그 업무만 담당하게 해야 한다. 관리자는 이런 문화를 알아둬야 한다.

 

중동 지역에서 오래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막에서 옮겨 다니는 유목 부족에게 TV를 팔았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이들은 날씨나 환경 변화에 따라 자주 옮겨 다닌다. 듣기로는 석 달에 한 번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옮겨 다닌다고 한다. TV는 무겁기도 하고 생필품이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전기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가지고 다닐 수 없는 품목이다.

 

그런데 2004년 어느 날, 유목민연합의 족장이 한국을 포함한 가전업체들에 문의를 해왔다. 우리도 TV를 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냐는 질문이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일단 사막에서 볼 수 있는 TV를 따로 개발해야 하는데 여기에 비용이 얼마가 들어갈지 알 수 없다.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잠재 수요가 적기 때문에 결국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많은 업체들이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한번 해보자고 결정했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서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영업적인 측면에서는 손실 가능성이 높았지만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겠다고 결정을 내리자 다음은 방법론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막에서 TV를 볼 수 있을까 연구를 시작했다. TV 말고도 필요한 게 많았다. 전기를 얻을 수 있는 자가발전기가 있어야 했고 방송 전파를 잡을 수 있는 수신기도 필요했다. 그런데 계속 이동하는 위치에서는 전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찾은 방법은 TV와 발전기를 묶어서 팔고 수신기 대신 VCR로 녹화한 테이프를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것이었다. 일단 TV와 발전기를 먼저 보내고 일주일치쯤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된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테이프를 보내줬다. TV가 도착했을 때 유목민들이 모두 둘러 앉아 밤새도록 TV를 봤다고 들었다. 처음 TV를 본 사람들은 일생에 못 잊을 경험이라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족장에게서도 여러 차례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는 현지인을 한 명 고용해서 하루 종일 녹화만 하는 일을 맡겼다. 그리고 그들이 옮겨 다니는 경로를 따라 주기적으로 테이프를 배달해줬다. 사막에 초대를 받아 하룻밤 자고 오기도 했다. 밤이 되니까 급격하게 추워져서 고생을 좀 했지만 하늘 가득 쏟아질 듯했던 별들을 잊을 수가 없다.

 

중동 시장은 왜 매력적인가.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석유다. 국민 사이에는 빈부격차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라 전체로 볼 때 돈이 많다. 그만큼 구매력이 높다.

 

그리고 내전이 많다. 현지에 들어가는 기업 입장에서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끊임없이 수요가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를테면 어떤 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났다가 그치면 재건과 복구를 위해 많은 물건이 필요할 것이다. 복구 과정에서 엄청난 수요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렇게 발생하는 수요는 먼저 들어가서 대비하는 기업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과일이다. 미리 들어가서 터를 닦고 유통망도 깔고 현지 네트워크도 확보해야 수요가 크게 일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사람들의 소비 성향도 높다. 국가에서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이런저런 재분배 정책을 쓰기 때문에 사람들이 들고 있는 돈이 많다. 저축보다는 당장의 소비를 선호한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시원시원하다는 점도 기업에는 장점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의 소비자는 제품을 살 때 성능과 가격 등 이것저것을 꼼꼼히 따지고 잰다. 구경만 하고 안 살 때도 많다. 중동 사람들은 안 그렇다. 성능이나 가격보다는 어느 것이 더 비싼지, 어느 것이 더 멋진지, 어느 것이 더 유행에 부합하는지가 중요하다. 현재 지불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고가의 제품을 산다. 마음에 들면 망설이지 않고 당장 사들인다. 전자제품을 1년 쓰고 바꾸는 사람도 많다. 신제품 수요가 많고 로테이션이 빠르다. 젊은 층 비중이 높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종합하면 중동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시장이지만 한번 관계가 형성되면 오래 유지할 수 있고 잠재 수요가 크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기업이라면 도전할 만한 곳이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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