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대박보다 달콤한 ‘대박의 꿈’

정재승 | 10호 (2008년 6월 Issue 1)


미국 월스트리트에 떠도는 오랜 격언 중에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주식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 격언의 숨은 뜻은 이렇다. 단기 차익을 노려 빠르게 회전하는 스마트 머니를 운영하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소문이 은밀히 돌면 주가는 오르게 된다. 주식투자자라면 이때를 놓치지 말고 반드시 사야 한다. 얼마 후 이 사실이 TV와 신문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질 즈음이면 이미 주가는 최고가를 친 후다. 노련한 투자자라면 이때 주식을 팔아 장을 빨리 빠져 나와야 한다. 조만간 주가가 곤두박질 칠 테니.

이 격언이 흥미로운 이유는 ‘주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뉴스로 보도될 만큼 확실한 기업의 이익이나 성장이 아니라 앞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소문 혹은 기대’라는 사실이다. 주가는 기업의 성장보다 한발 먼저 올랐다가 한발 먼저 떨어진다.

투자자 기대 부풀 때 주가 폭등
기대심리로 인해 주가가 급상승했다가 그것이 현실화하자 오히려 주가가 떨어진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0년 미국의 생명공학회사인 셀레라 지노믹스 그룹이다. 저명한 생물공학자이자 공격적인 벤처사업가인 크레이그 벤터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간의 DNA를 구성하는 30억 쌍의 분자를 빠른 속도로 파악하는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대단한 성과를 얻는다. 셀레라의 눈부신 사업 비전이 세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할 때 투자자들은 열광적인 기대에 부풀었고 주가는 연일 폭등했다. 이 사업을 시작할 무렵 셀레라의 주식은 17.41달러였으나 2000년 초엔 무려 244달러까지 올랐다.
 
2000년 6월 26일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셀레라 지노믹스사의 크레이그 벤터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완수했다는 역사적인 발표를 했다.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돼 샴페인을 터뜨리는 날이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발표를 하기 전까지 연일 치솟던 셀레라의 주가는 공식 기자회견이 열린 날에는 10.2%, 그 다음날에는 12.7%나 떨어진 것이다. 셀레라의 주가는 다음 비전을 발표하기 전까지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셀레라의 주가는 왜 떨어졌을까? 아마도 투자자들은 그토록 오래 기다린 낭보가 막상 발표되자 흥분이 사라진 모양이다. 이제 셀레라에는 더 이상 흥분할 사건이 없다는 사실이 투자자들을 다른 곳으로 떠나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주식은 기대심리로 인해 오르며 그것이 실현되면 곧바로 흥미를 잃고 마는 것이다.
 
주식 투자에는 보상과 관련한 인간의 뇌가 관여한다. 음식이나 섹스, 돈, 마약, 사랑, 초콜릿 같은 것이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동안 측위신경핵(Nucleus accum-bens)이라는 뇌 영역이 자극을 받는다. 거부할 수 없는 보상이 제공되면 측위신경핵은 도파민을 분비하며 요동을 친다. 그 짜릿함을 맛본 사람은 다시 그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포기할 수 없는 당첨의 맛
금융 칼럼니스트인 제이슨 츠바이크가 쓴 ‘머니 앤드 브레인’(까치, 2007)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최하 100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당첨자의 82%가 횡재를 한 후에도 정기적으로 복권을 구입한다고 한다. 당첨의 짜릿함을 한번 맛본 사람은 그것을 다시 얻기 위해 승산 없는 확률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측위신경핵 영역이 가장 활발히 요동을 칠 때는 강력한 보상을 받았을 때가 아니라, 강력한 보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동안이라는 사실이다.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예측이 실제로 돈을 버는 자체보다 더 큰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종목의 주식을 사면서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할 때 쾌감은 증가한다. 막상 주가가 오르면(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한) 흥분은 오히려 줄어든다. 돈을 버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만큼 강한 짜릿함을 주지는 못한다.(섹스도 마찬가지다. 섹스 자체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지만, 곧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장시간의 전희가 섹스의 절정보다 더 짜릿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원숭이나 사람을 이용해 측위신경핵을 관찰한 과학자들이 여러 차례 증명한 바 있다. 목마른 원숭이에게 주스를 줄 때 사전에 간단한 도형을 보여주는 실험을 한다. 사각형이 나오면 맛있는 주스가 2초 후에 나오고, 삼각형이 나오면 주스가 나오지 않는 식이다. 그러면 원숭이는 주스를 먹을 때보다 사각형 도형이 제시되었을 때 측위신경핵에 더 큰 반응을 나타낸다. 주스를 먹지 않더라도 이미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은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짜릿한 행복감은 보상이 주는 만족을 만끽할 때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우리는 보상 자체에 흥분하지 않고 보상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동안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왜 우리 뇌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오리건대 생물학과 폴 슬로비치 교수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뇌 속의 기대회로(이 회로에는 측위신경핵 외에 안와전두엽 등이 포함돼 있다)는 보상 자체보다 그에 대한 기대에 더 큰 쾌락을 제공함으로써 인내와 헌신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장기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미래의 보상을 기대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오래 인내할 수 있는 동기 부여는 불가능할 것이다.
 
오지 않은 미래가 더 즐겁다
만약 기대회로가 손상되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 루돌프 카디널과 베리 에버릿 교수는 간단한 쥐 실험을 통해 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들은 2개의 레버가 있는 통 안에 쥐를 집어넣었는데, 그중 한 레버를 누르면 사탕 1개가 즉시 제공된다. 반면 다른 레버를 누르면 사탕 4개가 한꺼번에 나오는데, 문제는 이 사탕들이 1분 정도 기다려야 나온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쥐들은 매우 조바심을 내긴 하지만 절반 정도는 시간이 지연된 후에 나오는 더 큰 보상을 선택한다.
 
하지만 측위신경핵이 손상된 쥐들은 욕망을 곧바로 충족하지 않으면 그것을 기다리지 못한다. 그들은 80% 이상 작지만 빠른 보상을 선택한다. 기대회로가 망가진 쥐들에겐 눈앞의 보상이 중요하며 미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렇듯 기대는 우리를 미래의 보상 가능성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하고, 기대회로는 실현된 보상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더 즐거울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으로 우리를 인내하게 만든다.
 
기대심리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보상의 크기 변동에는 매우 민감하면서도 보상을 얻을 확률의 변화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둔감하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로또의 당첨금이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10배 오른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지만, 당첨 확률이 1000만분의 1에서 1억분의 1로 10분의 1이나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당첨 확률이 100%가 아니라 어느 정도 불확실성이 있을 때 사람들은 더 큰 쾌감을 느끼며 그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하버드대 신경과학과 한스 브라이터 교수는 매번 딸 수 있는 도박보다 딸 확률과 잃을 확률이 공존하는 도박을 사람들이 더 많이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러한 실험결과에서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이유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잭팟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위험에 둘러싸여 있을 때 보상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이다. 제이슨 츠바이크의 표현처럼, 국화를 꺾을 때보다 가시 돋친 장미를 꺾을 때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며 이때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신경과학자들의 연구가 주식투자자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가능성이 희박한 수익의 전망에 당신이 골몰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지금 큰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가 주는 짜릿함을 즐기느라 주식시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식시장은 당신과 같은 투자자들의 기대심리를 빨아먹으며 오늘도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마쳤다.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로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