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휴롬 원액기

“원액기는 믹서나 주서기와 다른 카테고리” 체험마케팅, 고가정책으로 정당성 확보하다

최한나 | 118호 (2012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윤경미(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0 4, CJ홈쇼핑에 359000원 가격표를 단 가전제품이 방송을 탔다. 데뷔 무대였다. 업계 속설로 주부들이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홈쇼핑 방송에서 거리낌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는 10만 원 후반에서 20만 원 초반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30만 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도 이 가전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배정된 1시간이 다 지나기도 전에 준비했던 2000대가 동났다. 소위 말하는완판이었다.

매진의 주인공은 원액기휴롬’. CJ홈쇼핑에서 첫선을 보인 후 휴롬은 롯데와 GS 등 주요 홈쇼핑 채널의 황금시간대를 장악했다. 매진 행진도 이어졌다. 가전은 오래 두고 사용하는 특성상 구매에 신중하기 때문에 매진되기가 쉽지 않다는 통념이 깨졌다. 휴롬은 인기를 과시하며 홈쇼핑 채널을 종횡무진했다. 그리고 그해 홈쇼핑 히트상품과 매출 순위, 우수 협력사 순위에서 1위를 휩쓸었다. 지금도 인기는 여전하다. 내년에는 중국 시장을 교두보 삼아 세계 시장에서의 인지도 제고에 힘 쏟을 계획이다. 휴롬의 성공 요인을 집중 분석했다.

 

개발 또 개발

휴롬의 전신은 동아산업이다. 창업자 김영기 회장은 경영인보다 발명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본래 대기업에 TV 부품을 납품하다가 건강과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직접 개발에 나섰다. 1993년 처음으로 녹즙기를 개발했다. 칼날이 아닌 스크루(screw)를 활용해 과즙을 짜내는 방식의 녹즙기였다. 제품을 내놓은 지 1년 만에 악재가 터졌다. 다른 회사 녹즙기에서 중금속 성분이 검출됐다는 기사가 났다. 이른바쇳가루 녹즙기’ 파동이다. 녹즙기 업계가 통째로 고사(枯死)하다시피했다. 김 회장도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김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기능을 추가해 1999년 오스카 만능 녹즙기를 내놨다. 제품은 인기를 끌었지만 또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기능을 본떠 만든 유사품이 잇따라 나왔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값은 절반에 불과한 유사품이 쏟아지면서 매출이 뚝뚝 떨어졌다. 회사는 10년째 적자를 면치 못했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김 회장의 개발 열정은 더욱 커졌다. 그는 다른 업체에서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열의를 다졌다. 그리고 녹즙기에서 한층 진보한 형태의 원액기 개발에 매달렸다. 제품을 개발하면서 김 회장이 거듭한 실패와 도전 에피소드는 업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는 1주일에 두세 번씩 농산물 도매시장에 들러 짓무른 과일과 채소를 한 트럭씩 사가곤 했다. 스크루가 어떻게 작동해야 과일이나 채소를 효과적으로 짜낼 수 있을지를 실험하기 위한 재료였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기계에 넣어 짜봐야 하는데 멀쩡한 과일을 넣을 수는 없었다. 질이 좋지 않은 과일만 골라 사가는 그를 상한 주스나 파는 악덕업자로 보고 삿대질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꿋꿋이 도매시장에 들러 재료를 사가곤 했다.

스크루 모양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처음엔 눌러서 짜기만 하면 즙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통에 넓적한 스크루를 달아 누르는 형태의 제품이 먼저 만들어졌다. 이것저것 재료를 넣어서 짜보다가 솔잎에서 벽을 만났다. 아무리 세게 눌러도 솔잎에서는 즙이 나오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궁리하던 끝에 외피를 부순 후 눌러야 즙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크루를 세로로 세우고 칼날 모양으로 만들어 외피를 부술 수 있도록 고안했다. 그리고 압력이 가해지도록 구조를 변경했다. 그렇게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험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 휴롬이다. 휴롬은 2008년 처음 만들어졌다.

휴롬 판매에 가속도가 붙은 것은 2010년 홈쇼핑에 론칭하면서부터다. 2008 300억 원이 채 안 됐던 연 매출은 올해 10배 이상 불어난 3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김영기 회장은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다. 김성훈 휴롬 전략기획실 팀장은경영에서는 물러났지만 개발에 대한 관심만은 여전하다요즘은 회사 한편에 개인 연구실을 두고 발명과 개발에 몰두 중이라고 말했다.

 

이래서 다르다

휴롬의 가장 큰 특징은 SSS(Slow Squeezing System) 방식이다. 저속으로 짜낸다는 의미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돌아가면서 과일 혹은 야채의 즙을 내는 스크루다. 녹즙기에 썼던 스크루가 여기에 활용됐다. 일반적인 믹서기 혹은 주서기는 과일을 간다. 믹서기에 들어간 과일은 매우 잘게 부서지면서 즙을 낸다. 반면 휴롬은 과일을 짠다. 휴롬에 들어간 과일은 지그시 눌러지며 압축된다. 거기서 즙이 나온다.

 

단단한 과육을 잘게 갈아내려면 칼날이 매우 빠른 속도로 회전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마찰과 열은 과일이 지닌 영양분을 파괴할 수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찰과 열에 취약한 과일이 산화할 수도 있다. 휴롬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과일을 눌러 즙을 짜내는 방식을 고안했다. 과일을 갈지 않고 누르면 상대적으로 마찰과 열이 적고 손실되는 영양분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다.

과일을 짜는 것만으로 즙을 내기 위해서는 스크루가 매우 단단해야 한다. 단단한 스크루를 얻기 위해 여러 소재를 물색하던 중 김영기 회장은 울템(ultem)이라는 재료를 알게 됐다. 울템은 GE에서 개발한 신물질로 우주선의 외관을 만들 때 쓰일 만큼 강도가 높다. 울템을 알게 된 김 회장은 즉각 스크루를 만드는 재료로 시도해봤다. 기대했던 만큼 울템은 내구성이 강해 어떤 재료든 강한 압력으로 누르는 데 문제가 없었다.

모터도 중요한 부품이었다. 모터의 성능에 따라 압력이 달라진다. 휴롬은 기존 제품에서 사용되던 DC(Direct Current)모터 대신 AC(Alternating Current)모터를 택했다. 가격이 좀 올라가더라도 소음이 작고 내구성이 강한 부품을 넣기 위해서다. 김성훈 팀장은즙을 짤 때마다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는데 이는 그 재료가 갖고 있는 고유의 조직이 다르기 때문이라며각 재료마다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기계 자체에서 나는 소음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마찰에 강하고 오래 가면서도 힘이 센 소재와 부품을 활용하면서 휴롬은 갈지 않고도 과즙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갖게 됐다. 과일뿐 아니라 각종 야채와 콩 등도 문제없이 짜낼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 한번 휴롬을 써본 소비자들은 소음이 거의 나지 않으면서도 무엇이든 쉽게 즙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5년도 안 되는 기간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다.

지금도 휴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기술 개발이다. 다른 회사에서 따라오기 힘든 압도적인 기술 우위로 시장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다. 현재 300명이 채 안 되는 휴롬의 직원 중 20여 명이 R&D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또 식품영양분석실을 별도로 두고 원액기에 넣어 즙을 낼 수 있는 식재료 및 재료별 특성 탐구, 재료와 재료를 혼합했을 때 어울리는 맛과 영양 등을 연구하고 있다. 배재대와 산학협력을 맺어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입소문, 홈쇼핑, 카페에서 휴롬팜까지

휴롬을 개발한 후 판로 개척이란 과제가 부여됐다.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은 공략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땅한 수단이 없었던 회사는 온라인 마케팅을 중점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마케팅을 시작하며 부딪친 난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일단 원액기라는 개념이 생소해 믹서기나 주서기와 다른 점이 뭔지 모르는 소비자가 많았다.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가격은 몇 배나 비싸니 구매하는 고객이 별로 없었다. 둘째, 원액기 원리를 이해하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제품인 것까지는 알아도 휴롬을 단지 주서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만 인식하는 소비자가 많았다. 다시 말해 휴롬으로는 과일 주스만 만들 수 있다고 아는 소비자가 다수였다.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액기가 기존 믹서기나 주서기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더 좋은지를 설명해야 했다. 주스뿐 아니라 다른 음식을 만들 때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이는 단지 제품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신문이나 방송 광고는 당시 휴롬에 비싼 수단이기도 했지만 그 효용 면에서 적합하지 않았다. 대안으로 선택된 수단이 인터넷이다. 온라인에 휴롬 카페와 블로그를 설치해 원액기가 믹서기나 주서기와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자세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하기로 했다.

휴롬은 제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전부터 카페와 블로그를 만들고 운영했다. 제품이 거의 완성될 무렵이던 2007년 카페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휴롬은 원액기의 특징과 원리, 장점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어 휴롬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요리 레서피를 차곡차곡 쌓았다. 관건은 좀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휴롬은 무료 체험단 운영으로 잠재 소비자를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원액기를 사용해보고 싶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제품 판매 초기부터 체험단을 운영했다. 체험단은 일정 기간 휴롬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신 사용해본 후기를 제한 기간 안에 온라인에 올리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체험단에 응모해 휴롬을 사용해본 주부들이 사용하면서 느낀 장단점을 솔직하게 평가하고 카페에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또 구입한 소비자가 하나둘 늘면서 자연스럽게 카페 회원으로 포섭됐다. 그들은 휴롬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궁금증을 서로 묻고 답하며 해소했다. 각자 만든 요리 레서피와 사진을 올리며 공유하기도 했다.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홈쇼핑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방송시간을 배정할 테니 함께 팔아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가격이 문제였다. 홈쇼핑에서는 가전을 주로 구매하는 소비자가 주부들이라는 점을 고려해 가격을 20만 원 밑으로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원가를 고려했을 때 휴롬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회사 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당장은 손해를 보지만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저가에라도 팔아야 한다는 의견과 손해를 보면서까지 팔수는 없다며 반대하는 의견이 맞붙었다. 김영기 회장이 나섰다. 그는 여러 의견을 두루 청취한 후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는 내놓지 않기로 결심했다.

브랜드나 기업 인지도가 높지 않은 중소기업은 자체 제품으로 백화점 등 매장을 뚫기 어렵기 때문에 고정적인 판매 통로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 온라인과 입소문에만 의지하고 뚜렷한 판매 채널을 갖고 있지 않던 휴롬에 홈쇼핑 판매는 구미가 당길 만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휴롬은 당장 한 대 더 팔아 얻는 이득보다 저가 제품으로 인식되면서 발생하는 손실이 더 클 것으로 판단했다. 이제 막 시장에 이름을 알리고 인지도를 얻는 과정인데 한번 저가 제품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와의 형평성도 고려했다. 정가를 주고 먼저 구입한 소비자가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이후 휴롬은 온라인 마케팅(viral marketing)을 한층 강화했다. 온라인 카페를 더 활성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다양한 요리 레서피를 올리고 정기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해 소비자 참여율을 높였다. 주스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던 소비자들은 휴롬을 이용한 다양한 레서피에 호기심을 보였고 요리에 관심 많은 주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회원이 늘었다. 휴롬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휴롬 카페를 일종의 모임 장소로 활용했다. 회원이 늘면서 단일 제품 카페로 최대 회원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소비자들 사이에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매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매출은 미미하나마 상승 곡선을 그렸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자 높았던 홈쇼핑의 벽도 허물어졌다. CJ홈쇼핑에서 원하는 대로 가격을 맞춰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정가를 유지하는 대신 휴롬은 홈쇼핑 역사상 처음으로 1주일 무료 체험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 1주일간 휴롬을 무료로 써본 후 좋지 않다고 판단하면 반품해도 좋다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김성훈 팀장은고가 가전을 무료로 체험하게 한다는 일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체험단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었고 그 효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단을 내렸다제품의 성능을 믿고 진행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방송을 타면서 매출이 급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0 600억 원이었던 연 매출은 1년 새 1500억 원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현재 휴롬의 국내 원액기 시장점유율은 95%에 달한다.

지금도 휴롬에서 가장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체험 마케팅(experience marketing)이다. 제품을 알리고 인식시키는 단계에는 어느 정도 도달했다고 보고 이제는 휴롬이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되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휴롬을 한번 써보면 다른 믹서기나 주서기와 다른 점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토대로 일단 써보게 하거나 휴롬으로 만든 음식을 맛보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휴롬으로 만든 각종 주스를 마실 수 있는 휴롬팜(Hurom Farm)을 세운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휴롬팜은 경기도 분당에 1호점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2호점을 두고 있다. 더욱 많은 잠재 소비자들이 휴롬으로 만든 주스를 마시고 그 맛과 효능을 직접 체험하도록 한 것이다. 휴롬팜은휴롬팜이라는 별도 법인에서 관리한다. 10호점까지는 직영 방식으로 관리하고 이후 프랜차이즈 형태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이영애 앞세워 프리미엄 포지셔닝

“가족을 위해 휴롬하세요.”

배우 이영애가 등장하는 휴롬 CF의 멘트다. 이영애가 휴롬 CF를 맡은 지는 1년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출산 이후 찍은 처음이자 거의 유일한 CF인데다 제품과 워낙 매칭이 잘돼 이영애 하면 휴롬이 바로 떠오를 정도의 효과를 내고 있다. 휴롬이라는 제품명보다이영애 원액기로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CF 제작을 시작하면서 모델로 고려했던 여러 배우들 가운데 이영애는 압도적인 우선 순위였다. 화려한 배우 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평범한 주부이자 쌍둥이 엄마로 살아가는 그녀의 이미지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기능하는 휴롬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영애가 갖고 있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일반 믹서기나 주서기 대비 기능이나 가격 면에서 프리미엄급인 휴롬과 딱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워낙 빅스타인데다 출산 이후 스케줄을 거의 잡고 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 캐스팅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이수민 휴롬 전략기획실 대리는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면서도 제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연예인이라고 판단해 반신반의하며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제안을 받자마자 그녀는 흔쾌히 오케이했다. 휴롬에서 접촉하기 전부터 그녀는 이미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영애는 함께 일하는 스태프를 바꾸지 않기로 유명한데 오랜 기간 같이 일하던 스타일리스트 중 한 명이 휴롬을 사용해본 후 그녀에게 추천했고 직접 사용하면서 크게 만족하고 있던 차에 캐스팅 제의가 들어간 것이다.

애초 휴롬의 가격은 소형 가전치고 비싼 편에 속했다. 울템 스크루와 AC모터 등 부속품 가격이 높아 전체적인 가격을 일정 수준 아래로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주부들이 쉽게 살 수 없는 가전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가치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여기에 이영애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휴롬의 프리미엄 이미지는 한층 강해졌다.

 

성공요인

1. 원액기 시장 창조 휴롬은 기존 믹서기나 주서기 카테고리에 포함하기 어려운 제품이다. 일반 믹서기 및 주서기와는 과일이나 야채 등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아예 다르다. 이는 제품을 처음 만들었을 때 새로운 기술을 통해 완전히 다른 시장을 창조한 데서 비롯됐다. 창업자 김영기 회장은 스크루를 활용한 SSS 방식을 개발했고 제품에 적용해 기존에 없던 방식의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는 쇳가루 녹즙기 파동이나 유사품 등으로 수요가 줄고 경쟁이 치열했던 기존 시장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범주의 시장을 창조, 새로운 수요 창출을 가능하게 한 동력이 됐다.

2. 바이럴(Viral) 및 커뮤니티(Community) 마케팅 중소기업이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을 고정 판매처로 갖기는 쉽지 않다. 수수료가 비쌀뿐더러 입점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 언제 밀려날지 알 수 없다. 마땅한 판매처를 갖고 있지 않던 휴롬은 소비자 간 주고받는 입소문을 최대한 활용했다. 제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전부터 카페와 블로그 등을 열어 제품 사양과 활용법을 상세히 활용했고 이는 제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홈쇼핑을 판매 채널로 확보하고 매출이 늘어나면서 카페와 블로그는 휴롬 사용자들의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사용자들은 각자 사용해 본 휴롬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올리며 공유했고 이는 기존 사용자들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시켜 충성도를 높였다. 또한 잠재 소비자들의 구입 및 참여 욕구를 자극해 또 다른 매출로 이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3.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선택해 효과적인 유통 채널 확보 휴롬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매출이 수직상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가 시작된 일이다. 절대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을 타면서 자동적인 홍보 및 매출 증대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휴롬이 무작정 홈쇼핑 진입을 시도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홈쇼핑 쪽에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원하는 만큼 가격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과감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그리고 구전 및 커뮤니티 마케팅에 박차를 가해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결국 홈쇼핑에서 원하는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게 됐고 홈쇼핑 방송을 발판 삼아 매출이 상승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4. 과감한 체험 마케팅 35만 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을 무료로 써보게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반품해도 된다는 조건을 내건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직접 써보면 반드시 구입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휴롬은 자사 제품의 성능과 효과를 믿고 과감한 체험 마케팅에 나섰다. 제품 판매 초기 체험단 운영이나 홈쇼핑 방송 최초의 1주일 무료 체험 기회 제공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신제품이나 신기술의 혜택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인식하기 어렵다. 휴롬에서 마련한 체험 기회는 소비자들이 원액기라는 다소 낯선 제품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 제품에 만족한 소비자들이 자발적인 홍보 대사로 활약하며 긍정적인 입소문을 내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5. 프리미엄 포지셔닝 희소성을 앞세워 신분 상승 욕구를 자극하고 로열티를 높이는 마케팅을명품 마케팅(luxury marketing)’이라고 한다. 휴롬은 상대적인 고가와 흔치 않은 소재, 모델 이영애 등을 내세워 소형 가전 카테고리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지만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웬만한 가정에서는 볼 수 있는 믹서기나 주서기와는 달리 갖고 있는 가정이 상대적으로 적고(희소성), 이영애처럼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며(신분 상승 욕구),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하는(로열티 제고) 전략이 사용됐다. 그 결과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도 하나쯤 갖고 싶은 가전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단순히 유통망을 뚫기 위해 무작정 홈쇼핑 방송에서 요구하는 가격을 맞추지 않고 원가를 반영한 판매가를 고집한 영향도 있었다. 대체군으로 분류되는 다른 종류의 제품보다 다소 비싼 가격은 휴롬을 프리미엄급 가전으로 인식시키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윤경미(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