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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사 보조금

단말기 70%나 할인 해주고 남은 것은 점유율 제자리, 이익 급감, 고객 분노…

김상훈 | 118호 (2012년 12월 Issue 1)

 

 

 

기업이 제품 가격을 낮추면 소비자는 환호하고 때로는 고마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70% 할인을 해놓고도 감사는커녕 비판받는 기업들이 있다. 한국의 통신사들이다. 통신사들이 올해 3분기에 벌였던보조금 전쟁은 수많은 의아함을 자아낸다. 이 기간 동안 통신사들은 매출과 가입자 1인당 매출(ARPU)을 크게 늘리면서도 이익은 급감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들여다보기 위해 시계를 몇 달 앞으로 돌려 9월로 가보자. 당시 통신사들은 서로 전쟁을 벌였다.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쥐어줘 가며 경쟁사 고객을 빼앗았다. 급기야 당시에는 ‘17만 원짜리 갤럭시S3’까지 등장했다. 갤럭시S3 6월 말에야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한데다 공장 출고가격이 99만 원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이었다. 30만 원이 조금 넘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아봐야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단말기 가격은 60만 원이 넘게 마련이었다. 그게 불과 석 달 만에 17만 원으로 떨어졌다. 한 달에 15만 원씩, 하루에 5000원꼴로 값이 떨어진 셈이다.

 

3분기 단 석 달 동안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 세 곳이 쓴 마케팅 비용은 무려 23000억 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통신사가 새 스마트폰을 팔기 위해 가입자와 대리점에 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과 인센티브로 쓰였다. 대리점은 가입자를 더 모으기 위해 이렇게 받은 인센티브의 대부분을 또 한번 가입자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이 돈이 대부분 보조금으로 쓰인 셈이다. 17만 원짜리 갤럭시S3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무려 70%가 넘는 할인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얻은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마케팅비를 천문학적으로 쏟아부었지만 어떠한 마케팅 효과도 누리지 못했다. 시장점유율은 3개 통신사 간의 전쟁 같은 경쟁이 끝나고 나자 제자리로 돌아갔고 판매량은 막대한 보조금에 힘입어 9월에 반짝 늘었지만 10월에 그만큼 판매가 급감하면서 조삼모사가 돼 버렸다. 이익률도 물론 심하게 훼손됐다. 그리고 9월 전쟁에 앞서 갤럭시S3를 산 소비자는 통신사의 엄청난 가격할인에 분노했고 운좋게 이 값이 갤럭시S3를 구한 소비자들도 딱히 통신사에 감사하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마케팅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계속 달라지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공통점은 존재한다. 마케팅이란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기업이 사회 구성원들과 나누는 대화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제품을 알리기 위한 광고를 내보내고 캠페인을 벌인다. 또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점에 제품을 배치한다. 물론 합리적인 수준의 지불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격에 팔아야 하고 사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필요를 충족시키는 제대로 된 제품이어야 한다. 이른바 제품(Product)과 가격(Price), 판촉(Promotion)과 유통(Placement)이라는 마케팅의 ‘4P’.

 

통신사들이 올해 9월 갤럭시S3로 벌인 일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 모두를 망쳤는지 기가 찰 지경이다. 우선 통신사가 판매하는 제품은 단순히 스마트폰인 갤럭시S3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은 삼성전자가 만들었지만 통신사는 삼성전자로부터 이 제품을 구해와 소비자에게통신서비스와 함께 되판다. 통신사의 제품은 통신요금제로 상징되는 통신서비스다. 현대사회의 소비자들은 모두 이 통신서비스에 목말라한다. 국내 통신사의 통신서비스 품질은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통신사는 자기 제품을 판매하는 데 실패했다. 통신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리고 소비자들은 갤럭시S3를 사기 위해 통신사 대리점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주유소에서 기름을 파는데 A주유소에서 5만 원 이상 기름을 넣으면 목욕용품 세트를 덤으로 준다기에 목욕용품 브랜드가 주유소 브랜드보다 더 유명해진 격이다. 이렇게 되면 제품이 사라져서 경품 제공을 멈추고 난 뒤 소비자를 계속 유지할 수가 없다. 옆 주유소에서도 그 목욕용품만 가져오면 소비자를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전쟁 이후 통신사들의 시장점유율이 제자리로 돌아온 게 이런 까닭에서다.

 

 

 

사실 애초에 LTE라는 새로운 통신서비스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통신사들은 제품 경쟁을 벌였다. 전국 단위 커버리지가 중요한지, 아니면 통신망에 연결되는 속도가 중요한지, 해외 로밍은 잘 되는지 등의 차별점이 개별 통신사마다 존재했다. 그러다 8월부터 다시 목욕용품 싸움으로 상황이 변했다. 이들은 스스로의 제품을 버리는 마케팅 전쟁에 매달렸다. 사실마케팅전쟁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다.

 

가격도 말이 되지 않았다. 소비자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가격을 지불해야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시장 환경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경쟁 탓에 이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들쭉날쭉했다. 번호이동 통계를 한번 보자. 9월부터 10월까지의 두 달 동안 ‘17만 원 갤럭시 S3’가 풀렸던 9월 둘째 주에는 무려 68만 명의 이동통신 가입자가 번호이동을 했다. 그런데 10월 첫 주 번호이동 가입자는 5만 명에 불과했다. 13배가 넘는 이런 차이가 생기도록 만드는 가격경책은 합리적이라 볼 수 없다. 이제 소비자들은 통신사가 제시하는 가격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조금 없이는 어떤 제품도 사지 않기로 맘을 먹은 듯 보인다. 결국 이는 더 많은 보조금을 투입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값 자체도 크게 변했다. 처음 스마트폰을 도입하던 2009년 말에는 주력 요금제의 월 요금이 45000원이었지만 이듬해 SK텔레콤이 무제한 데이터요금제라는 새 요금제를 선보이면서 주력요금제를 1만 원 올라간 55000원으로 바꿔 놓았다. 곧 정부의 기본료 인하 권고 때문에 주력요금이 54000원으로 조금 줄어들었지만 2012년부터는 LTE 시대가 열렸다며 62000원 요금제가 주력 요금제가 된다. 그리고 보조금 전쟁을 거치면서 이익률이 떨어지자 통신사들은 유통매장에 대한 리베이트를 72000원 요금제에 맞춰 늘리기 시작한다. 72000원 요금 가입자를 유치하면 더 많은 돈을 주는 식이었다. 결국 3년 만에 스마트폰 신규 가입자의 일반적인 월 요금 수준이 3만 원 가까이 올라간 셈이다.

 

한국의 통신서비스 가입자는 5000만 명이다. 인구 수를 넘는다. 이들이 2년에 한번 정도 휴대전화를 바꾼다. 주기가 빠를 때에는 18개월이면 바꾼다는 통계도 나오곤 한다. 2년이라고 계산해도 1년에 2500만 명이 새 휴대전화를 사야 한다. 잠재적 번호이동 고객이다. 통신사들은 이들을 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겨우 68만 명이 17만 원짜리 최신 스마트폰의 혜택을 봤다. 다른 주에 번호이동을 통해 이득을 본 사람을 포함해도 100만 명이 된다고는 보기 힘들다. 나머지 2400만 명은 이런 사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통신사의 판촉도 독특하다. 8조 원 정도를 쓴다는 국내 거대 통신사 세 곳의 마케팅 비용 중 광고선전비는 약 4∼5% 정도를 차지한다. 4000억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한국의 연간 광고시장 규모는 10조 원에 조금 못 미친다. 그렇다면 이 세 회사가 전체 광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4%. 그 어떤 미디어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 광고주가 바로 이들이다. 하지만 통신사 입장에선 전체 마케팅비 가운데 광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일부일 뿐이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통신사들은 새 서비스가 나오면 그야말로 소비자들의눈 둘 곳모두를 새 광고로 뒤덮는다. 통신사의 LTE 광고는 TV, 신문, 라디오, 잡지, 인터넷은 물론이고 극장과 스마트폰, 옥외광고에 이르기까지 전국 모든 목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문제는 경쟁관계다. 이들이 들이는 엄청난 광고선전비는 소비자들에게 ‘LTE를 써야겠네라거나스마트폰으로 바꿔야지등 큰 트렌드의 변화를 촉진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특정 브랜드의 우수성을 알리기에 힘들었다.

 

<그림 1>은 네이버의 검색 빈도를 통계화한네이버 트렌드를 통해 살펴본 1년 동안의 검색량 비교다. 이를 살펴보면 KT LTE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던 2011 12월 말에 KT 관련 검색이 반짝 늘었고① LG유플러스가 본격적으로옵티머스 LTE’라는 LTE폰을 팔 때 검색량이 늘었음을 알 수 있다.② 이때만 해도 소비자들의 관심은 각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향해 있었다. LG유플러스가 커버리지를 빠르게 늘렸고 KT가 뒤늦게나마 LTE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선순환 경쟁 덕에 2월까지는 LTE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유지됐다. 그리고 스스로 서비스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LG유플러스에 대한 관심도가 7월 중순까지 경쟁사들보다 꾸준히 높았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8월이 가까워오면서 KT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9월 중순에는 보조금 경쟁이 일면서 3개 통신사 모두에 대한 검색량이 급격히 늘어난다.③ 이때는 꾸준한 하락세였던스마트폰이란 검색어에 대한 검색량도 덩달아 급증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통신사 사이의 차이가 줄었다는 점이다. 결국 차별화에 실패하고 통신사 모두가 무의미한 경쟁에 빠져든 시점이 바로 이때였다.

 

무의미한 경쟁으로 이들을 끌고 들어가는 족쇄가 바로 유통망이다. 통신사 유통망은 크게 직영매장인 대리점과 대리점의 하청 매장인 판매점으로 나뉜다. 하청은 재하청의 재하청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런 형태의 유통이 일반적인 건 이동통신 가입자가 신규 서비스가 등장하는 시점에만 급증하고 평소에는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모든 유통망을 직영점으로 관리할 경우 통신사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스마트폰 보급이나 LTE 보급 등 특정 시기에 한해 인센티브를 받고 일하는 판매점과 계약을 늘리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객은 통신사 대리점인 줄 알고 들어간 유통점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판매점에서도 소비자를 장기적 고객으로 보기보다는 한번 제품을 팔면 그만인 뜨내기 손님으로 대접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고객만족 하락으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브랜드 충성도를 낮춘다.

 

애초에 보조금이란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춰 수요를 늘리기 위해 사용되는 시장 왜곡 제도였다. 불황이 와서 가난한 사람들이 밥을 굶게 된다면 정부에서 이들이 당장 식료품을 구입하는 데 쓸 수 있는 현금(보조금)을 줘서 식량 소비를 늘리고 민생고도 해결했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 현금을 뿌리면 시장에는 왜곡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통신사들도 예외적으로 많이 사용한 보조금을 통해 스마트폰 수요를 일시적으로 왜곡시켜 크게 늘렸다. 정부의 빈민 보조금이 가난 구제를 위한 것이라면 통신사의 스마트폰 보조금은 서비스 전환을 위해서였다. 1인당 매출액이 월등히 높은, 그러니까 매월 더 많은 통신요금을 내게 되는 LTE 가입자를 단기간에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보조금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조금은 정체된 시장에서 사용할 때 효과가 있게 마련이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선 독이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3’ 자동차업체 제네럴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는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자동차 공장을 계속 돌리기 위해 보조금에 의존했다. 자동차 영업 딜러에게 주는 리베이트를 늘리면서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춰 수요를 높인 것이다. 이렇게 유지하던 수요는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경영위기로 찾아온다. 특히 GM과 크라이슬러는 파산위기 앞에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유가는 오르는 데 공장 폐쇄라는 체질개선을 하기 싫어서 연료효율이 떨어지는 대형 픽업트럭 등을 계속 만들어낸 결과였다. 결국 시장에선 연비가 좋은 유럽과 한국, 일본 차가 인기를 끌었다.

 

통신사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한국에선 이동통신시장이 처음 열렸던 초기부터 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후 시장이 계속 성장해왔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이동통신 가입자 5000만 명 시대인 지금은 다르다. 이미 통신사의 통제를 벗어난 10만 원 대 중국산 휴대전화가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매진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폰과 같은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휴대전화는 통신사의 기존 영업방식을 무력화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통신사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내일의 시장도 오늘 같을 것이라며 보조금에 안주해 현금보유고를 계속 줄여가다 보면 외부에서 전해지는 작은 충격에도 기업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필자는 동아일보 기자로 산업부에서 IT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 <빅 스몰, 인터넷과 공유경제가 만든 백만 개의 작은 성공> <스티브 잡스> <컴퓨터 의사 안철수, 네 꿈에 미쳐라> 등을 출간했다.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학사,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기술경영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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