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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객은 은행에서 불안해 할까?" 3400명 관찰하고 답을 찾았다

신우정 | 111호 (2012년 8월 Issue 2)





고객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금융상품은 이제 일상재가 됐다(commoditized). 가격도 금융회사가 컨트롤할 수 있는 폭이 크지 않아 더 이상 경쟁 차별화 요소로서 기능하기 어렵다.1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하나은행에서는 고객 경험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서비스 전달과정(service delivery process)과 영업점의 차별화가 있다. , 영업점을 통한 긍정적인 고객 경험의 제공이 은행의 시장 경쟁력 확보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은행은 업무 공간을 고객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하는 데 서툴렀다. 상품 홍보물로 뒤덮인 폐쇄적인 출입구, 기능적이고 사무적인 분위기의 공간이 주는 답답함, 안락하지 않은 대기경험, 상담 프라이버시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것 같은 공간 구조 등으로 고객들은 방문의 목적만 달성하면 재빨리 빠져나와야 할 공간으로 인식했다. 심지어 시장조사 전문가인 파코 언더힐(Paco Underhill)은 은행 앞을 지나갈 때 사람들의 보행 속도가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2 원인은 간단했다. ‘와 관계없는 지루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은행 내부적으로도 영업점을 마케팅의 최접점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공간 기획은 대부분 시설 관점에서 이뤄졌다.

 

하나은행의 새로운 SI(Store Identity) 작업은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됐다. 영업점 공간을 단순히 시설로서가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공간으로 재정의했다. 관계 형성을 위한 시작도, 그리고 그 끝도고객의 시각에서 바라보기였다. 2009년 하반기에 시작한 작업은 2012년 상반기에 완성돼 매뉴얼로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Design Thinking이나 다른 어떤 거창한 콘셉트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이것이 Design Thinking에서 얘기하는 혁신과 동일선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객의 시각에서 바라보기위해 시작한 3418명의 고객 관찰 조사와 수많은 설문, FGI는 은행 혹은 은행 공간에 대한 고객의 생각과 요구, 그리고 객장 내 고객 행태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새로운 SI의 콘셉트 도출과정과 이의 디자인적 구현 사례 중 일부를 소개한다.

 



고객도 알지 못했던, 기대할 것 없는

은행 영업점에서 궁금한 은행 영업점으로

은행의 디자인은 고객들이 별로 기대할 것도 없을 만큼 은행 간 차별성이 없는 공간이다. 사무적인 분위기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특별히 이에 대한 호불호가 형성돼 있지도 않았다. 다만 딱딱한 분위기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금융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중된다는 반응이 일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동선, 객장 사이즈, 조도, 대기 공간의 배치, 상담창구와 대기공간 간의 거리 등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기대가 명확했다. 기능적 측면에서의 기대 불일치는 고객의 큰 불만요소였다. 요약하자면, 고객들은 은행의 공간에서 기능적인 부분만 충족된다면 정형화된 모습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양상을 나타냈으며 업무를 신속하게만 처리할 수 있다면 만족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기존 은행의 구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운 SI 작업의 과제는 고객이 바라는 기능적 효율성, 고객 공간이자 직원 공간인 은행 공간의 이중성, 은행 고유의 보안이라는 특성을 만족시키면서도 편안하고 고객이 기대할 만한 은행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사람이 중심이 되는 친근한 스토어로서의 공간 구현을 핵심 콘셉트로 정했다. 고객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화하는 소매업종의 공간적 특성과 고객이 은행에 바라는 기능적 특성을 결합해 콘셉트를 공간적으로 풀어가는 실마리로 삼았다. ‘고객을 환영하는 열린 공간(Welcome)’ ‘고객의 대기시간까지 배려하는 안락한 공간(Comfort Waiting)’ ‘상담에 집중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Private Consulting)’이라는 콘셉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런 콘셉트를 토대로 영업점 개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은행 맞냐고 물어보거나카페 같다고 말하는 고객들이 있었다. 과거 은행 영업점에 궁금해서 들어온 고객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고객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첫발이 내디뎌졌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고객이 은행의 영업 공간에서 바라는 것:

지체 없는 문제의 해결

고객이 은행에 들어선다. 순번 발행기를 찾아 두리번거리거나 이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직행한다. 간혹 concierge를 담당하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상담석으로 바로 안내되기도 한다. 순번표를 손에 넣은 안도감도 잠시, 순번표를 손에 쥔 순간부터 순번 호출을 기다리며 불안한 대기가 시작된다. 핸드폰이나 잡지, 혹은 TV를 보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차례를 지나칠까 싶어 연신 순번 호출기와 창구직원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마침내 상담창구에 착석을 하고 상담 서비스를 받는다. 은행 직원이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다. 홍보물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여유도 생긴다. 업무가 완료되면 서둘러 은행을 빠져나간다.

 

위의 사례는 고객 3418명을 대상으로 두 달간 이뤄진 고객관찰조사의 결과로부터 만들어낸 고객 이용 시나리오다. 은행에서의 고객 행태, 거래 동인, 평균 대기시간 및 평균 거래 시간 등을 파악하는 것이 조사의 목적이었다. 업무처리(상담) , , 후로 나눠 고객 입장시간, 고객 퇴장 시간, 상담 시작시간, 상담 종료시간, 주요 동선포인트, 행태 묘사, 홍보물과의 교류 조건 등을 확인했다. 특히, 고객의 행태는 상담 전, , 후로 세분화해 파악했다.

 

 

1차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다 깊숙한 분석에 들어갔다. 우리는 고객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그들이 하는 행동을순서를 기다리며 멍하니(aimlessly) 시간을 보냄, 홍보물을 봄, 은행에서 마련한 편의 시설 및 오락 요소를 즐김, 은행 직원과 인적 교류를 함등으로 나눠 파악했다.

 

고객관찰조사 결과는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에 대한 많은 인사이트를 제공했고 고객이 기대하는 본질적인 편익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이를지체 없는 문제의 해결이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규정했다. ‘지체 없음은 입장과 대기 환경에 대한 레이아웃 구성 및 디자인 시에 중요하게 고려됐으며문제 해결은 상담 환경에 대한 레이아웃 구성 및 디자인 시에 반영됐다.

 

‘지체 없음은 은행 공간 내에서의 안락함을 창출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지체라는 개념은 공간 차원과 시간 차원에서 고려할 수 있으며, 이는 또다시 물리적인 차원과 심리적인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공간 차원에서 지체가 없기 위해서는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거리가 짧거나 방해요소가 없어 짧게 느껴져야 할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효율적인 동선과 명확한 공간의 구성으로 표현된다. 고객이 영업점에 들어서는 순간 순번 발행기를 발견할 수 있거나 순번 발행기로의 유도가 인적인 방법(안내원)이든 물적인 방법(안내판)이든 간에 명확하게 이뤄진다면 고객은 공간 차원에서 자신의 순서가 지체된다는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있다.

 

시간 차원에서 고객이 느끼는 지체가 없기 위해서는 실질 대기시간의 감소나 혹은 고객이 지각하는 인지 대기시간의 감소가 필요하다. 매장 수와 직원이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의 고려 대상은 실질 대기시간이 아닌 고객이 지각하는 인지 대기시간의 감소였다. 서비스업에서 대기시간 관리는 실질적인 고객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로 연구되고 있으며 복수의 연구에서 대기하는 동안 고객의 관심을 대기 시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돌리면 지각된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3 , 고객이 대기하는 시간을 보상해줄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면, 그리고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을 바라보는 고객의 시선을 돌리고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다면 고객이 실제로 대기한 시간보다 대기했다고 느낀 시간을 줄일 수 있다.실제로 Bank of America는 레이아웃의 변화를 통해대기 시간이 과도하게 길다는 느낌을 32%에서 15%로 줄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구당 8.3달러의 매출 증대 효과를 창출하기도 했다.

 

기존의 하나은행의 순번 표시기기는 창구 쪽에 위치하고 TV는 객장 내 여유 공간에 위치해 고객들이 창구와 순번 대기기기 쪽으로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시간의 경과를 그대로 인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새로운 SI는 창구 방향과 겹치지 않는 곳에 미디어와 순번표시기가 함께 설치하도록 레이아웃에 변화를 주었다. (그림1)

 



그 다음은 우리의 목표인지체 없는 문제의 해결에서문제의 해결부분을 개선할 차례였다. ‘지체 없는에 해당하는 부분이 고객의 대기시간에 관련된 것이었다면문제의 해결부분은 상담 환경에 대한 고민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고객들은 은행 공간의 분위기나 디자인에 대해서는 높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상담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재정상황과 관련한 상담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중요한 이슈이므로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상담받고 싶은 고객이 많았다. 이는 상담 전의 대기 시간은 최소한이기를 원하지만 은행에 머무는 전체 시간을 최소한으로 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와도 그 맥을 같이한다.4

 

은행의 상담 환경은 옆 창구와의 거리, 상담 창구와 대기 좌석과의 거리, 혼잡도 등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매뉴얼상에 옆 창구와의 거리, 상담창구와 대기 좌석과의 거리는 사회적 거리 이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림 3)

 



또한 혼잡도가 높은 영업점이나 시장 특성상 상담 비중이 높은 영업점은 업무 공백을 고려해 근무 인원 수에 따라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거나 대기 공간만을 분리해 심리적 경계만을 형성하는 방법 등을 적용했다. (그림 4)

 



성과

그간의 파일럿 진행 결과에 대한 대내외적인 반응은 긍정적이다. 파일럿 진행 영업점의 고객 만족도는 30%에서 80%로 크게 늘었다. 은행 간 공간에 별 차이가 없다고 반응하던 고객들은 이제 하나은행의 새로운 SI가 타 은행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고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새로운 SI의 디자인 콘셉트는 금융회사의 공간 디자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세계 3대 디자인 상 중 IDEA IF Design Award를 동시에 수상하며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조직 내부적으로 얻은 효과도 있다. 고객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때 감성적으로 차별화된 은행으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음을 구성원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됐다.

 

 

 

 

신우정 하나은행 브랜드커뮤니케이션 과장 woojungshin@hanafn.com

신우정 하나은행 브랜드커뮤니케이션 과장은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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