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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계량경제학자 이안 아이레스가 말하는 ‘숫자의 힘’

모든 길은 숫자로 통한다

권춘오 | 7호 (2008년 4월 Issue 2)
미국의 ‘이하모니(eHarmony)’는 결혼을 전제로 미팅을 주선하는 온라인 회사다. 이들은 미팅을 주선할 때 독특한 예측 모델을 도입했다. 이하모니는 모든 고객을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엄청난 데이터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추천한 사람과 짝을 지어준다. 이 예측 모델은 ‘감정적 기질’부터 ‘인식 모드 선호도’와 ‘관계 역량’ 등과 같은 29가지의 다양한 변수를 토대로 한 통계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 이하모니는 연간 3만 건의 결혼을 주선했으며 이 서비스를 사용해 서로 짝을 찾은 커플이 다른 방법으로 배우자를 찾은 사람보다 훨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고 말한다.
 
결혼이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의 결합이라면, 두 사람이 잘 맞느냐 아니냐가 결혼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하모니의 예측 모델은 유효한 면이 분명 있다. 다만 ‘운명적인 만남’이냐 ‘숫자와 통계에 의한 확률’이냐의 차이뿐이다.
 
오늘날 세상은 ‘숫자’로 인해 크게 변하고 있다. 즉 탁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직관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하는 ‘슈퍼 크런칭(Super Crunching)’이라 불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백발의 베테랑들이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근원적인 관계가 밝혀지고 있다.
 
슈퍼 크런칭이란 디지털 의사결정 형태로, 직관 또는 전문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통계적으로 일어날 것 같은 일을 예측하며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방대한 정보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다. 슈퍼 크런칭을 활용한 기업은 놀랍게도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할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모든 대답을 이미 갖고 있다. 이는 말 그대로 비즈니스 분야에서 놀라운 신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비슷한 취향과 선호도를 가진 사람들의 충고에 영향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영화 애호가들은 과거 극장개봉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에 주목하며 관람 여부를 결정했다. 와인 애호가들은 뉴욕 타임스의 와인 비평가 칼럼을 믿고 와인 한 병을 구입했다. 하지만 오늘날 숫자 분석은 이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복잡성으로 끌어올렸다. 거대한 데이터 저장장치를 통해 기업들은 수백만 명의 고객 취향을 정교히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수학적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능력이 슈퍼 크런칭의 핵심 개념이다.
 
해라스(Harrah’s) 카지노는 슈퍼 크런칭을 이용해 도박꾼들이 한 세션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잃을 수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게임을 즐길 수 있는지 예측하고 있다. 회사는 자신만의 로열티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날 각 게이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땄거나 잃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게이머들의 나이와 거주 지역, 평균 수입과 같은 정보와 결합돼 게이머가 돈을 잃는 한계치를 파악하고, 게이머가 그 한계치에 이르면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도록 카지노 스테이크 하우스에서의 2인용 무료 식사권 같은 것을 제공하는 해라스의 ‘행운 특사’가 급파된다. 이렇게 해라스는 고객이 한방에 모든 것을 잃고 다시는 찾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고객에게서 얻을 수익을 장기간에 걸쳐 최대화한다.
 
기업이 이들처럼 슈퍼 크런칭을 활용하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는 ‘방대한 데이터’다. 이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모을 수도 있고 전문 데이터 회사를 활용할 수도 있다. 거대한 정보는 모든 종류의 다양한 분석을 시도할 수 있게끔 컴퓨터 데이터 시스템 안에 저장되어 있다.
둘째는 ‘컴퓨터 프로세싱’이다. 데이터 처리 능력과 비용 효율성을 꾸준히 높여 방대한 데이터에서 유용한 결론을 재빨리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는 ‘정확한 트래킹 시스템’이다. 기업은 다양한 테스트 결과를 집계하고 비교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며 발생한 일을 기록할 적절한 시스템도 확보해야 한다. 이런 트래킹 시스템이 없다면 숲을 보기가 힘들어진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실제 사례로 살펴보자.
구글은 사용자들이 다양한 광고를 테스트하고 결과를 쉽게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일례로 구글은 애드워즈(Adwords) 구매자들이 두 가지 광고를 테스트하게 했다. 우선 두 광고를 번갈아가며 사용자에게 노출했다. 이 과정에 소프트웨어는 어떤 광고의 클릭 수가 더 많은지를 계산한 다음 자동으로 클릭 수가 더 많은 광고를 전면에 배치했다. 며칠 안에 이런 식으로 광고에 대한 수십만 명의 반응을 집계할 수 있었다.
 
남아프리카에 본사를 둔 소액대출업체 크레디트 인뎀너티(Credit Indemnity)는 고객들에게 5만 건의 권유 편지를 발송했는데, 이들에게 3.25%에서 11.75%에 이르는 다양한 이율을 제시했다. 당연히 낮은 이율을 제공했을 때 응답률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편지 구석에 미소 짓는 여성의 사진을 첨부하면 이율을 4.5%로 낮췄을 때처럼 남성 고객의 응답률이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이 회사는 마케터가 1주일 먼저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조만간 제품을 구매할 것인지 그리고 대출이 필요한지 물어보면 응답률이 비슷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사람들에게 미리 전화를 하거나 즐거운 그림이 담긴 메일을 발송해 사전 정보를 제공하면 회사로서는 이율을 낮출 때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응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 크런칭은 상업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근거기반의학’으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정책과 의학 분야에도 슈퍼 크런칭 효과가 스며들고 있다. 1992년 두 명의 캐나다 의사는 ‘근거기반의학’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개념은 간단했다. 제공되는 치료 선택은 ‘의사의 개인적 선호도’보다는 ‘가장 적절한 근거’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의과대학과 개인 병원이 협업을 통해 현재 인터넷으로 접근이 가능한 ‘진단 결정 지원’ 소프트웨어 패키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좋은 예가 살을 파먹는 치명적 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수두로 오진을 받은 한 여아의 이름을 붙인 ‘이사벨(Isabel)’이란 진단 프로그램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이런 경험을 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사벨 데이터베이스는 의사들이 환자의 증상을 입력하면 4000여 가지의 약으로 가능한 치료법 또는 1만1000개 이상의 특정 질병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알려준다. 이사벨의 데이터베이스는 세계 유수의 의학 정기간행물 기사에 발췌 소개되며,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전체 의료 사고 중 3분의 1 정도가 오진이며 병원에서 20% 정도가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이사벨은 의료계의 구글로 부상하고 있다.
 
의료 기록 대부분이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됨에 따라 의학계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 대부분 의료 기록은 수기로 작성되어 왔기 때문에 확실한 공동 지식을 충분히 모아 결과를 집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디지털화한 의료 데이터가 활용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1차 진료 의사들이 실시간으로 엄청난 양의 새로운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환자 진단법에 대한 더 나은 결정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근거기반의학’ 도입에 대한 저항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슈퍼 크런칭은 예술 분야에도 전파되고 있다. 변호사 딕 코파켄(Dick Copaken)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인 ‘에파고긱스(Epagogix)’를 위한 신경망을 개발했는데, 이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신작 영화의 흥행 여부를 예측할 수 있다. 에파고긱스는 대본의 특성만으로 흥행을 예측하는데 스타 배우나 감독이 결정되기도 전에 대본을 토대로 영화에 대한 총 수익을 예측했는데 9번 중 6번이 정확했다. 별로 대단하지 않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을 때에 예측의 정확성이 33%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에파고긱스는 슈퍼 크런칭을 활용해 업계에서 가장 노련한 베테랑보다 2배나 더 뛰어난 예측 능력을 보여줬다.
앞으로 슈퍼 크런칭이 더 광범위하게 활용되면서 많은 직업이 위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험적 판단에 돈을 지불하는 대신 사람들이 점점 더 데이터 분석을 선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슈퍼 크런칭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성공의 기회를 상당 부분 포기하는 것이다.
 
저자 이안 아이레스(Ian Ayres)는 예일대 법학과 및 경영대학 교수로 <Journal of Law>, <Economics and Organization>의 편집자다. MIT를 졸업한 이안 박사는 계량경제학자이자 법학자로 활동중이다. 포브스 칼럼니스트, 공영 라디오의 〈Markerplace〉 고정 패널로 8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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