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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5일장

화물기차를 추억실은 꼬마관광열차로… 지역 패키지 상품으로 오지에서 금맥 캐다

김유영 | 82호 (2011년 6월 Issue 1)
 

 

1960
년대 광산이 한창 번창하던 시절 강원도 정선에는 열차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탄광에서 캔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다. 하지만 석탄 수요는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다. 광산 여기저기가 문을 닫았다. 손님을 태우는 열차 수요도 덩달아 줄었다. 정선선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철도청은 1990년대 후반 결단을 내렸다. 정선선을 폐선키로 결정한 것. 하지만 정선군청과 지역 주민은 철도청에 제안했다. ‘정선오일장 관광 상품을 만들어 정선선을 살리자’는 내용이었다. 정선군은 철도와 연계해 정선5일장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1999년 서울 청량리역에서 ‘정선5일장 관광 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화물을 실어 나르던 기차는 2, 3량짜리 관광용 꼬마 열차로 바뀌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현재 정선5일장은 전국 최대 규모의 장터로 성장했다. 지난 5월 7일 방문한 정선5일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고, 재래시장 특유의 정겨움이 가득했다. 시장 거리 양편으로 좌판과 노점이 늘어섰다. 봄철 산나물인 곤드레와 곰취의 내음이 짙게 퍼졌다. 지금은 정선에서만 채취하거나 재배한 산나물의 수요가 달려서 강원 평창 등 인근에서 구해와 팔아야 할 정도다. 저잣거리에서 파는 메밀부치기, 전병, 빈대떡과 옥수수 막걸리나 곤드레 막걸리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정선군에 따르면 정선5일장을 본격적으로 상품화한 1999∼2010년 모두 168만6050명이 다녀갔다. 시장 좌판 중 하루 매출이 250만 원에 이르는 곳도 있을 정도다. 소박한 시골 장터가 ‘기업형 시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특히 정선5일장 방문객의 재방문 의사가 98%에 이르고, 5일장을 경험하지 못한 20∼30대가 전체 방문객의 20%에 육박한다. 최승준 정선군수는 “10여 년간 정선 군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며 “상인들은 물론 농민들과 식당, 숙박업소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사실 정선5일장의 여건은 다른 지역 재래시장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 총 길이 800m로 시장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기차는 서울에서 하루 한 편씩만 오갈 뿐이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정선역까지 꼬박 4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정선군은 각종 레일바이크와 화암동굴 등 각종 연계 코스로 체류형 관광지를 만들고, 지역의 스토리를 발굴해 불리한 여건을 극복했다. 정선군과 지역 상인 간의 단합된 노력도 성공에 한몫했다. 정선군 관계자와 정선 시장 상인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정선5일장의 운영 비결을 분석했다.
 

옛 것에 대한 향수와 지역 특산물 발굴
정선5일장은 1966년 주민들이 산골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생필품을 사고 팔던 시장에서 출발했다. 매월 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 등 끝자리가 2와 7인 날에 5일을 주기로 열린다. 시장에는 상점 230여 곳과 노점 160여 곳이 있다. 철도청이 1990년대 정선선 폐선을 결정했을 무렵에도 정선5일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역 상인과 주민들 정도만이 찾아와 장을 보는 수준에 머물렀다.
 
정선군은 당시 전국에 5일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도시인의 향수에 호소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5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장날이면 조용한 시골 마을에 생기가 돈다. 할머니들도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겨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토속 놀이를 벌이기도 한다. 정선군은 바로 이런 분위기라면 정서에 호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선5일장을 제대로 상품화한 1999년 이전, 정선5일장의 주력 상품은 공산품 위주였다. 하지만 제대로 상품화하려면 도시와는 다른 것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역 특산물 위주로 바꿨다. 특히 산나물과 건강상품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유병민 정선군 공보 담당 계장은 “사람들이 정선을 떠올리면 ‘백두대간 깊은 곳’과 ‘깊은 산과 맑은 물’ ‘청정 고원지대’를 떠올린다”며 “정선군 역시 이런 특징에 걸맞은 대표 상품을 발굴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수요를 읽어내고 업종을 전환했다. 봄철에는 곤드레와 냉이 달래 참나물 더덕 곰취 등과 같은 산나물을, 여름에는 옥수수, 가을에는 고추와 감자를 주력으로 판매한다. 장터에서 25년째 장사한다는 남매농특산 김덕수 사장은 “처음에는 정육점 앞에 좌판을 깔고 더덕을 함께 팔았다”며 “정선5일장에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더덕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서 정육점은 폐업하고 아예 더덕만 팔고 있다”고 말했다.
 
자장면이나 가정식을 팔던 식당 주인들도 장터에서 파는 음식을 곤드레 나물밥과 콧등치기 국수로 바꿨다. 곤드레 나물을 넣어 지은 밥으로 간장, 고추장, 된장 등으로 비벼 먹는 건강식인 곤드레 나물밥이 단연 간판상품이다. 옥수수를 재료로 올챙이 모양으로 면발을 만든 올챙이 국수와 메밀이 딱딱하게 굳어, 먹으면 콧등을 치는 느낌을 준다고 해서 콧등치기 국수로 불리는 메밀 국수도 인기다. 원래 이들 음식의 뿌리가 정선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즐겨 먹진 않았다. 정선5일장이 서면서 무엇인가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역의 향토 음식들을 간판 상품으로 내세웠다.
 
정선군은 장날에는 떡메치기나 짚신 만들기를 선보이면서 추억의 옛장터를 재현해 시골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게 했다. 또 ‘내가 누르고 맛보는 올챙이국수, 내가 부쳐먹는 메밀부치기 코너’ 등을 운영한다. 관광객이 향토 음식 만들기를 직접 체험해보게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선군은 정선의 스토리도 상품화했다. 정선은 ‘정선아리랑’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조선개국 초기 고려왕조를 섬기던 선비들은 송도를 떠나 정선 지방에 숨어 지냈다고 한다. 이들은 회한과 그리움을 한시로 표현했는데, 한시를 당시 구전된 토착요에 후렴을 달아 부른 게 지금의 정선아리랑이다. 정선군은 이를 활용했다. 4∼11월 정선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장터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정선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뮤지컬 형식의 아리랑 극을 무료로 공연한다. 출연진은 대부분 지역 주민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 우리 민족이 아리랑을 통해 한과 상처를 어떻게 달랬는지 구수한 가락으로 풀어냈다.
 

 

또 장터를 경유하는 ‘추억의 정선 시내버스’도 운행된다. 특히 이 버스에는 안내양이 함께 타고 있다. 5일장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버스 안내양이 있었던 시절의 추억도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특히 버스 안내양 가이드 코스는 정선5일장뿐 아니라 화암동굴, 정선아리랑극을 상연하는 정선문화예술회관 등을 경유한다. 추억의 정선 시내버스 안내양을 맡은 권인숙 씨는 “군청에서 관광 안내 자원 봉사를 하다가 버스 안내양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레일바이크 등 연계 상품으로 번들링
하지만 장터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했다. 서울에서 꼬박 4시간 기차를 타고 와서 장터만 둘러본다면 만족도가 낮을 게 뻔했다. 다른 곳과는 무엇인가 달라야 했다.
 
연계 관광의 일등 공신, 레일바이크: 3자 협업 성공
정선5일장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연계 상품이다. 그 중 청정 산속 7.2km 구간을 90분간 달릴 수 있는 레일바이크 상품의 인기가 가장 높다. 절반은 인터넷 예매, 절반은 현장 판매하는데 암표가 나돌기도 한다. 현장 판매 티켓을 얻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광산업 쇠퇴로 석탄을 실어 나르던 정선선 철로에는 기차가 달리지 않자 레일만 덩그러니 버려졌다. 이에 정선군은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도시 관광객을 유치하기로 했다. 정선군은 독일, 스위스, 프랑스의 레일바이크를 견학한 뒤 철도관광사업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2004년 철도청과 정선군, 코레일투어 서비스 간 철도관광 사업 추진을 위한 협약식을 맺었다. 철도청은 사업을 위한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까지의 기존 정선선 일부 구간을 폐선하고 이 구간에서의 철도 운행을 아예 중단했다. 또 철도 부지를 사용하게 하고, 정선5일장 관광열차와 꼬마열차 모터카를 임대해주는 등 인프라를 조성했다. 정선군은 철도청의 지원을 받아 레일바이크 운행에 필요한 부대 시설을 조성하고, 꼬마열차를 제작했다. 또 낡은 열차를 관광용으로 개조하고 레일바이크 출자 회사에 운영비를 댔다. 코레일투어서비스는 레일바이크 경영 전반을 맡고, 관광객 유치와 홍보, 광고, 판촉 활동을 한다.



 

이에 따라 정선군의 자원을 모두 동원해 패키지 연계 상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일단 정선군은 철도청과 협력해 기존 정선선 노선에 레일바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기존의 정선선 구간의 경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레저용 상품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관광버스 상품과 연결시켰다. 버스로 30여분간 이동하면 ‘풍경열차(아리아리 풍경열차)’를 탈 수 있는 역에 도착한다. 이후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 구간을 달리면서 편안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계곡과 협곡 사이의 자연을 따라 7.2km 구간을 올라간다. 마치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서 풍광이 좋은 구간을 따로 도는 관광용 ‘파노라마 열차’를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레일은 기존 정선선 구간 레일로 별도로 공사를 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했다. 풍경열차를 타고 올라갔다가 같은 구간을 내려올 때는 레일바이크를 이용한다. 바람을 맞으면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중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도 있다. 관광객은 페달을 이용해 철도 레일 위를 시속 15∼20km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열차를 개조해 여치의 모습을 형상화한 ‘여치의 꿈’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커피와 스파게티 등도 판매한다.
 
정선군은 레일바이크 이외에 다른 연계 패키지 상품도 만들었다. 화암8경과 아우라지, 정선의 가리왕산 등에서 즐기는 산악자전거(MTB) 레저 투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정선의 옛 주거 문화를 재현한 아라리촌도 조성했다. 여기에는 굴피집, 너와집, 돌집 등 전통 가옥과 주막, 물레방아, 방앗간, 농기구 농방이 있다. 체험숙박을 할 수도 있다. 화암8경에도 갈 수 있다. 기암 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정비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화암약수와 정선의 수호신적인 존재로 액운을 물리친다는 거북 바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정선군청은 이런 연계 상품 등을 전국에 홍보하고 있다. 고속도로 주요 휴게소와 수도권의 지하철 및 버스 외벽, 아파트 엘리베이터 등에 정선5일장 광고판을 설치했다. 전통시장 탐방단을 운영하는 동시에 인터넷 키워드 검색 광고도 실시하고 있다. 유승근 정선군 관광문화과장은 “주식회사 정선군을 세일즈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민간기업 못지 않게 홍보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힘 안들이고 장터 둘러볼 수 있게 편의성 높여
기차를 이용해 정선5일장에 갈 경우 당일치기 코스로 다녀올 수 있다. 오전 8시에 출발해 오후 12시 5분에 도착하고, 오후 5시 50분에 정선역에서 출발해 오후 9시 52분에 도착한다.
 
정선군은 관광 상품을 △화암8경 코스 △레일바이크 코스 △풍경열차 코스 △정선 자유여행 △정선5일장 1박2일 코스 등 소비자가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게 여러 개 만들었다. 코스는 각기 다르지만, 정선5일장을 둘러보는 코스가 꼭 있다.
 
편의성도 극대화했다. 코레일에 전화 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게 원스톱 서비스로 만들었다. 기차 여행은 물론 관광버스로 가는 여행 상품에 대한 대략적인 사항도 안내받을 수 있다.
 
시장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시장 초입에 관광안내 간이부스를 마련했다. 정선5일장이 서는 날에는 자원봉사 1, 2명이 하루 종일 서서 방문객(고객)을 응대한다. 방문객들은 시장 내 맛집에 대한 문의부터 인근 관광할 만한 곳에 대한 문의까지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다. 테이블에는 여러 개의 리플렛이 있다. 안내를 맡은 안영주씨는 “관광객들은 연계 관광 코스부터 장터 내 맛집까지 무엇이든 문의하는데, 나는 이들의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정선군청은 비슷한 내용의 안내 책자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서 상세하게 안내한다. 예를 들어 사물놀이, 콘서트 등 각종 문화행사를 안내하는 ‘문화배달부’, 정선군의 산과 MTB 지도를 담은 ‘정선의 명산&MTB 코스’, 시내버스를 타고 정선을 자유 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추억의 정선 시내버스’ 등의 책자가 준비돼 있다.
 
이와 함께 정선군은 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안내도 한다. 시장에는 QR코드가 보인다. 이를 스마트폰에 대면 정선군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을거리 등을 담은 정선여행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뜬다. 여기에는 정선5일장 이외에도 관광 명소, 추천코스, 정선아리랑, 숙박, 음식, 쇼핑 등 6개의 큰 카테고리에 100여 개의 세부 항목들이 있다. 관광지에 대한 소개와 사진은 기본이고 위치정보(GPS) 기능을 통한 여행지까지의 거리, 지도맵, 주변 음식점, 숙박시설 등의 콘텐츠도 볼 수 있다.
 
교통도 최대한 편리하게 했다. 승용차로 오는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장터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강변에 주차장을 조성했다. 누구나 무료로 차를 댈 수 있다. 정선5일장을 찾아 포항에서 온 김성주 씨는 “주차하기 불편하다는 기존 재래시장에 대한 편견과 달리 정선5일장은 매우 편리하다”고 말했다. 또 장터 근처 도로에 단 10초라도 승용차를 정차하면 경찰관이 가차없이 호루라기를 분다. 한때 주·정차 단속을 하지 않았던 때에 장터 초입에 8∼10km 정체 구간이 생겨났던 점을 감안해 교통흐름을 최대한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상인들의 주인의식+공동체의식 = 고객과의 신뢰라는 브랜드 관리
시장의 품질 관리에도 노력한 흔적이 여기 저기에서 보인다. 특히 소비자들이 먹을거리와 관련해 가장 관심을 두는 게 원산지라는 점을 감안했다. 상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은 중국산을 판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도 원산지 단속을 하지만 상인들 사이에서 서로 감시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한 번은 나물 수요가 달리자 한 상인이 서울 가락시장에서 나물을 떼어와 팔다가 적발돼 엄중한 경고 조치를 받았다. 또 지역 상인들은 믿고 사도 된다는 의미로 ‘신토불이증’을 발급하는 등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윤광 정선시장상인회장은 “우리 시장 브랜드를 걸고 지속적으로 장사를 잘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동료 상인들을 설득한다”고 말했다.
 
모든 상인들은 명함을 갖고 있다. 상인들은 제품을 판매할 때 명함을 같이 건네기도 한다. 한 번 방문하는 게 아니라 재구매를 유도하고 신뢰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한 번은 상인회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정선5일장에서 나물을 샀는데 너무 억세서 못 먹겠다’는 불만이었다. 상인회는 ‘나물을 보내달라. 교환을 해주겠다’고 했고, 실제로 품질이 좋은 나물을 골라서 부쳤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해당 상점의 주인은 나물 값을 지불했다. 이윤광 정선시장상인회 회장은 “과거에는 상인들이 내 장사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었지만, 점차 모두 잘 해야 정선5일장의 브랜드를 키울 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상인회는 필요할 때마다 ‘즉석 반상회’를 연다. 개선 사항이 눈에 띄면 상인회는 직접 시장 골목으로 가서 인근 상인들을 소집한다. 이들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교육을 실시한다. 예를 들어 저잣거리에서 전을 부치는데, 테이블보가 A상점은 천, B상점은 비닐 등 제각각 다른 재료를 사용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자 반상회가 열렸고 상인들은 깔끔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테이블보를 통일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또 배추전을 찍어먹는 간장을 처음에는 손님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큰 그릇에 담았다. 하지만 위생상 좋지 않다고 판단해 한 사람만 먹을 수 있도록 작은 그릇으로 바꾸기로 했다. 상인회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무실에 폐쇄회로 TV(CCTV)를 설치해 시장 골목골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화재나 도난 사고를 방지하고 방문객 동선도 점검한다. 인적이 뜸한 골목이 생기면 풍물 엿장수 등을 ‘출동’시켜 방문객들의 발길을 유도한다.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행사도 열고 있다.
 



정선5일장의 효과
이런 노력 덕분에 정선5일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정선5일장은 본격적으로 상품화된 1999∼2010년 모두 168만6050명이 다녀갔다. 이 기간 소득창출 효과는 1959억9400만 원으로 추산된다. 방문객들은 평균 6만2330원어치를 소비했다. 상품화 첫해인 1999년 방문객 6만3380명에서 2010년 27만5818명으로 늘었다. 특히 2010년 신종플루로 전국 관광 산업이 위축됐음에도 전년보다 방문객 수가 13% 증가했다. 시장 상인뿐 아니라 지역 농민들에게까지 파급효과가 퍼지고 있다. 주력 판매 제품인 산나물은 공급이 달려 못 팔 지경이다. 군청 작목반은 나물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농민들이 더 많은 나물을 재배할 수 있게 토지를 무상 임대하는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성수기에는 펜션 이외에 일반 가정집까지 민박을 할 정도로 숙박업이 활황이다.
 
정선군이 2010년 정선5일장 방문객 123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0∼50대 중장년층이 81%로 가장 많았지만, 20∼30대의 젊은 층도 19%나 됐다. 정선군 관계자는 “5일장에 대한 향수가 있는 중장년층이 주류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농특산물을 팔고 있는데다가 프로그램도 다채로워서 젊은층에 어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선5일장을 처음 와본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59%로 가장 많았다. 2회 이상 방문한다는 응답자가 전년보다 7% 증가한 41%나 됐다. 응답자의 98%가 재방문 의사를 밝혀 만족도도 높았다.
 
정선5일장의 성공 요인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선5일장은 다음과 같은 요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첫째, 다양한 스토리와 체험을 통해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했다. 정선아리랑이라는 스토리를 발굴해 정선아리랑극으로 만들어서 정선5일장이라는 물리적인 하드웨어에 옷을 입혔다. 또 5일장이라는 형식으로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했고 5일장을 체험하지 못한 젊은층엔 호기심을 줬다. 시장 내에 향토 음식 만들기 코너, 짚신 짜기 등 다양한 체험 코너도 만들었다.
 
둘째, 지역 자원을 재생해 비용 효율성을 추구했다. 정선군은 폐광으로 지역이 위기에 처하자 기존 5일장을 상품화했다. 5일장의 명맥을 유지하되 간판 상품을 공산품에서 농산품으로 바꿔서 지역 특성에 맞게 차별화했다. 곤드레나물밥과 콧등치기 국수 등 토속 음식도 전면에 내세웠다.
 
셋째, 공무원들의 세일즈 마인드와 상인들의 의식 개혁이다. 정선군 내 주무 부서인 관광진흥과는 정선아리랑극이 상연되는 문화예술회관에 사무실이 있어서 관광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상인들 역시 단기 이익만 추구하지 않고 정선5일장이라는 브랜드를 키우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점을 깨닫고 고객과의 신뢰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넷째,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했다. 재래시장 가운데 이례적으로 안내소를 설치했고 관광 안내 책자를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제작해 이용자 특성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기차 이용자들은 코레일 안내 전화를 통해 다양한 관광 상품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젊은층을 위해 QR코드를 제작해 시장의 특성과 인근 지역 관광을 안내하고 있다.
 
다섯째, 기본에 충실했다. 상인들은 정선 지역의 청정 고원에서 나는 산나물을 팔기 위해 원산지 단속을 강화하는 등 품질 관리를 중요시했다. 물건을 어디서 떼오는지 동료 상인들이 가장 잘 안다는 판단에 따라 동료 상인들끼리 자연스레 정선산 나물을 팔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또 신토불이증을 발급해 신뢰도를 높였다.
 

 

여섯째, 정선하면 소비자들은 ‘정선 아리랑’ ‘청정 고원지대’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런 브랜드 특성에 맞게 서비스와 상품을 정렬했다. 깨끗하고 안전한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웰빙 추세에 걸맞은 산나물을 주력으로 판매했다. 동시에 아리랑이라는 자원을 이용해 정선아리랑극을 제작하는 등 지역 문화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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