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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만 생각한다

범상규 | 81호 (2011년 5월 Issue 2)

룰렛 구슬은 기억력이 없다!

당신은 카지노 안의 한 룰렛 판 앞에 앉아있다. 검은색과 빨간색 룰렛 판을 맞추는 도박게임에서 지금까지 당신은 칩을 계속 잃었다. 초초해진 당신은 룰렛 판에서 빨간색이 6번 연속해서 나온 것을 봤다. 당신이라면 아마도 검은색에 칩을 걸고 싶어 손이 근질거릴 것이다. 6번이나 연속으로 빨간색이라면 이번에야말로 검은색이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직관이 검은색에 걸라고 외치는 만큼 당신은 잘못된 베팅을 하는 것이다. 6번에 걸쳐 빨간색이 나왔다 하더라도 다음번에 검은색이 나올 확률과 빨간색이 나올 확률은 50 50으로 똑같기 때문이다. 룰렛 구슬은 이전에 무엇이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연한 결과가 도박의 정해진 규칙에 따를 것이라고 믿는 것을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라고 한다. 도박사는 동전 던지기에서 20번 던지는 동안 5번 연속해서 앞면이 나오면 이제는 뒷면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베팅해 큰 돈을 잃는다. 평균 3할을 치는 타자가 오늘 3타수 무안타에 그치고 있다. 다음 4번째 타석에 들어서자 해설자는 흥분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안타를 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믿는 것은 바로 3할이라는 확률이지만 이는 곧도박사의 오류라는 점을 해설자는 모르고 있다.

대표성 휴리스틱에 의한 오류

이와 같은 사례들은 휴리스틱(heuristic·단순화한 의사결정)을 활용하면서 빠지게 되는 대표성의 함정들이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불확실 하에서의 판단: 휴리스틱과 바이어스(Judgment under Un 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에서 대표성 함정을 소개했다.

가령 스티브라는 사람을 만나 얼마간 대화를 나눠 본 후 그의 성격을 간략하게 평한 내용이그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사람이지만, 약간 소심하고 내성적인 것 같다. 또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고, 세세한 부분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이면, 스티브의 직업은 무엇일까? 농부와 세일즈맨, 비행기 조종사, 도서관 사서, 의사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더니 대부분 도서관 사서라고 답했다. 카너먼에 따르면 스티브의 성격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서의 전형적인 모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A B와 유사하다면 A B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유사성을 근거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석도 상당부분 우리의 사고에 대해 대표성 휴리스틱 접근법을 이용하고 있다. 서덜랜드(S. Sutherland) 교수에 따르면 정신분석가들은 어린 시절 구강기에 고착돼 있으면 어른이 돼서도 입에 집착해서 흡연과 입맞춤,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대표성 휴리스틱은 간편하지만 편향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평가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판단에 이르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대표적 오류로는 평균회귀를 고려하지 않은 오류, 큰 수와 작은 수처럼 표본 크기를 무시한 오류가 있다.

평균회귀 현상을 고려하지 않은 오류

프로야구 기아타이거즈 김상현 선수는 2009년 홈런왕이다. 그러나 올해는 부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경기출장조차 드물었다.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이처럼 전년도 성적에 대한 여러 가지 징크스가 있다. 신인왕을 차지한 선수의 2년차 징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성적이 저조해진 것은 저주가 아니라 평균회귀 때문이다. 작년 성적이 좋았다면 올해에는 성적이 이보다 나빠지기 쉽다. 매우 훌륭한 소질을 가진 특출난 선수라면 매년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어 이러한 징크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극단가(extreme value) 뒤에는 대개 극단가보다 못한 값이 온다. 부모의 키가 크면 아이도 키가 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키가 극단적으로 큰 부모의 자식이라면 부모만큼 키가 크지 않고 평균 신장에 더 가까워진다. 반면 키가 아주 작은 부모에게서도 부모보다 큰 키의 자식들이 태어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평균 신장으로 회귀한다. 만약 평균회귀 현상이 없다면 이 세상엔 키가 아주 큰 사람들과 키가 아주 작은 사람들의 양 극단만 존재할 것이다.

평균회귀 개념은 교육현장이나 경영자에 대한 평가에도 적용 가능하다. 카너먼은 군대 경험을 토대로 비행 훈련과 관련된 실험을 했다. 이례적으로 이륙이 부드럽게 이뤄졌을 때 비행 교관이 학생을 칭찬해 주면, 다음 비행에서는 제대로 이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이륙이 거칠었을 때 꾸짖어주면 다음 번 시도에서는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한 교관이칭찬하면 성적은 악화되고 꾸중하면 성적은 올라간다는 원리를 도출했다면 이는 평균으로의 회귀 오류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표본 크기를 무시하는 오류

작은 표본이 보다 큰 모집단을 대표한다고 믿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많다. 다음은 표본크기를 무시하는 오류에 대한 대표적 사례다.

같은 도시에 두 개의 병원이 있다. 큰 병원에서는 매일 약 45명의 아기가 태어나고, 작은 병원에서는 15명이 태어난다. 이 두 병원에서 지난 1년 동안 신생아의 60% 이상이 남자아이였던 날들을 기록했다. 두 병원 중 이런 날이 더 많았던 병원은 어느 쪽일까? 카너먼의 실험에서는 큰 병원이라는 답이 21%, 작은 병원이라는 답이 21%, 거의 같다고 대답한 사람이 53%였다. 실제 조사해 보니 신생아의 60% 이상이 남자아이였던 날이, 큰 병원은 27, 작은 병원은 55일이었다. 표본 크기가 작으면 결과의 다양성이 더 커서 비대표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크기가 작은 표본일지라도 모집단의 성격을 대표한다고 여기는 것이작은 수의 오류.

작은 수의 법칙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수가 충분히 크다면 그로부터 추출한 무작위적이고 대표성을 가진 표본을 통해 보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표본이 큰 쪽이 모집단의 성격을 좀 더 잘 나타내는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다.

사람들이 특정 제품을 평가할 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소수의 몇몇 제품 사용 후기에 더 높은 신뢰를 보낸다. 왜 그럴까? 작은 표본 결과는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즉 작은 수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몇몇 사용경험자는 전체 소비자들과 전혀 다른 견해를 갖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대표성 오류, 피할 수 있다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대표성 오류에 쉽게 빠질 수 있는 흔한 경우는 바로 제품 구입 과정에서다. 구입 제품이 서비스 상품이거나 과거 사용해 본 경험이 없는 제품일 때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패밀리레스토랑이나 영화를 선택할 때 이미 경험해 본 사람이나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인다. 이럴 때 인터넷 댓글이나 전문가 인터뷰 기사 외에 보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청취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 대표성 오류를 겪는 사례로는 잠재고객들의 의견을 의사결정에 반영할 때다. 흔히 소비자조사 결과를 해석할 때 발생한다. 잠재고객 대상의 소비자조사 결과는 표본으로 선정된 극히 일부집단의 의견일 뿐인데 전체고객들의 의견인 양 확고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소비자조사를 근거로 신제품 출시 전략을 추진해 실패하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필자는 통계학과 마케팅을 전공한 경영학 박사로 현재 대학에서 통계학, 마케팅, 광고학을 강의하면서 심리마케팅 연구소 소장과 심리마케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NON 호모이코노미쿠스가 있고 심리마케팅을 주제로 한 블로그(blog.naver.com/skbeom)를 운영 중이다.

범상규 경영학박사·심리마케팅 칼럼니스트 http://blog.naver.com/sk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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