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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기업의 손발’ 영업, 머리 역할도 하라

박정은 | 7호 (2008년 4월 Issue 2)
마케팅과 영업
마케팅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마케팅=영업”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마케팅을 전공한 사람들은 “마케팅은 머리의 역할을, 영업은 손과 발의 역할을 한다”고 답하기도 한다. 이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대답이다. 마케팅은 기업의 여러 자원을 엮어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창출,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고객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수단이다. 영업(sales)은 이런 마케팅의 여러 커뮤니케이션 수단(광고, 판촉, PR, 영업) 중 하나다. 일방적이고 일시적이라 할 수 있는 다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비해 영업은 지속적이고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중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즉 영업은 마케팅이 기획한 모든 것을 직접 수행하는 기능도 있지만 소비자와 경쟁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해 마케팅 기획에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따라서 영업은 기업의 손과 발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머리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인간의 지능이 손발의 감각적 통합 활동에 의해 발전한다는 신경과학의 발견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영업의 중요성
무한 경쟁 시대를 맞아 기업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과는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제 당연한 명제다. 그러나 실제로 한 기업이 이런 차별화 요소를 찾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영업도 마찬가지다. 기존 고객 유지가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는 것보다 기업의 이윤 창출과 성장에 유리하다는 것도 당연한 명제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기존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과정 도 결코 쉽지 않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영업 사원의 활동을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품과 서비스만으로는 차별화라는 중요한 마케팅 무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영업 사원은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과 고객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
 
마케팅 연구의 본산인 미국에서는 마케팅학회의 ‘영업특별 연구그룹(Sales Special Interest Group)’이 매년 미국 전역의 영업관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컨퍼런스(National Conference in Sales Management)를 개최한다. 이 컨퍼런스를 통해 학자들과 실무 영업 담당자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영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기업 내 영업 분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여러 활동도 펼치고 있다. 최근 한국의 기업들도 영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마케팅 학계에서는 영업에 관한 깊이 있고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업에서도 영업을 매우 경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업은 전문직(professional job)이다. 과학적 방법에 의해 교육받고 훈련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영업 교육의 현실은 참담하다. 경영대학과 같은 과학적 교육기관조차 체계적 접근법에 근거한 전문 영업 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오직 영업 기술 (skills)과 전술(tactics)만을 강조하고 있다. 실행 측면을 강조하는 교육만으로는 전문직인 영업의 특성을 살릴 수 없다.
 
전문 영업 교육에 관한 주요 이슈
마케팅 및 영업 과정
영업 프로세스 및 단계에 관한 연구는 효율적인 영업을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연구 분야다. 마케팅 계획을 실행하는 주요한 도구라는 점에서 영업은 마케팅 과정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림 1은 마케팅의 모든 과정에서 영업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준다. 영업 사원은 각 단계별로 정보원, 제품 기획자, 제품 전달자, 고객 구매 후 사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를 통해 영업 사원은 고객 및 시장 중심적 활동을 직접 수행하고 마케팅의 이념 및 목표를 직접 실행한다.
 
체계적 영업을 위해 학자들은 영업 프로세스를 보통 45단계로 구분해 제안하고 있다. 최근 이를 3단계로 줄여 제시하는 연구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여전히 영업 단계는 다음의 4단계로 구분한다. 첫째로 올바른 영업 사원의 선택 및 양성을 통해 영업 기반을 준비하고, 둘째로 고객의 확인 및 선택을 통해 목표 시장을 설정하며, 셋째로 고객과의 관계 형성 활동을 통해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영업 사원은 고객 지원 및 가격 협상 등을 통해 영업 과정을 종료한다.
 
물론 이런 과정은 제품군, 구매 상황, 시장의 지역적 특성, 해당 국가의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제품 및 구매 상황의 차이에 따른 영업 과정 및 단계 별 중요 사항에 대한 연구는 많다. 하지만 지역 및 국가 별 문화 차이에 따른 영업 과정 연구는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
 
판매 예측
판매 예측은 모든 마케팅 활동의 시작이자 기반이다. 특히 영업 관리에서는 판매 예측이 영업 인력의 확보와 운영 예산을 결정하는 근거다. 판매 예측은 영업 인력 개개인 및 영업 조직의 목표 설정과 성과 평가에 기초로 작용하는 매우 중요한 분야다. 그러나 기업뿐 아니라 학계에서조차 실제 예측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렇게 중요한 판매 예측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확한 판매 예측을 위해서는 기업의 구체적인 판매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연구자 개개인뿐 아니라 학계 전체로 봐도 이런 자료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워 관련 연구를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판매 예측의 방법론에는 크게 주관적 방법과 객관적 방법이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는 하향결정(top-down)과 상향결정(bottom-up) 방식이 있다. 최근 많은 기업이 의사결정에서 이 두 방법을 병행해 사용한다. 주관적 방법에는 경영자 및 관리자의 경험과 과거 실적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판단 방법이, 객관적 방법으로는 시계열 및 회귀 분석을 이용한 정량적 분석 방법이 가장 널리 쓰인다.
 
과학적인 영업 관리를 하려면 판매 예측 분야에서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계량적 방법(eco-nometrics)을 이용한 것이 가장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 방식은 다양한 변수를 성과 변수와 연결해 설명해줄 뿐 아니라 예측력도 뛰어나다. 다만 각 산업과 제품군 별로 볼 때는 이 방식의 예측 모형도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때문에 산업이나 기업별로 더 나은 예측 모형 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주관적 방법과 객관적 방법의 통합을 통해 정성적 방법과 정량적 방법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효과적 판매 활동
최근 영업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는 판매 활동 연구다. 많은 연구자가 특히 ‘현명한 영업(working smart)과 열심히 하는 영업(working hard)은 판매 성과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최소의 노력과 자원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것이 기업 활동의 궁극적 목표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는 성실한 영업보다 현명한 영업을 지향해야 한다. 마케팅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기업이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업 행위는 역시 현명한 영업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에서 현명한 영업은 자칫 기회주의자로 비치는 위험을 수반한다. 우리나라 고객처럼 까다롭고 요구가 많은 고객을 상대할 때는 현명한 영업보다 열심히 하는 영업이 적합할 수 있다. 이는 영업 사원의 성과와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만큼 열심히 하는 영업에 대한 연구 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1994년 로버트 모건(Robert Morgan)과 쉘비 헌트(Shelby Hunt)가 주창한 관계 마케팅(relationship marketing)의 중요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계 마케팅은 고객을 중심으로 한 기업의 주요 이해 관계자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창출하고 이를 장기적 관계로 유지하는 과정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는 마케팅이다. 관계 마케팅은 기업과 고객이 서로 신뢰(trust)를 구축하고 헌신적(commitment)인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하다. 오늘날처럼 경쟁이 심하고, 시장은 성숙, 포화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는 것 못지않게 기존 고객을 잘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업이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는 활동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활동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의 비용이 더 필요하다.
 
이처럼 기존 고객의 유지가 중요한 상황에서 기업이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단지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만족은 일시적이고 수시로 변할 수 있지만, 관계는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만족은 아침, 저녁, 오늘, 내일 바뀔 수 있지만, 가족 관계, 친구 관계는 지속적이다. 기존 고객으로 하여금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재구매하고 더 많이 자주 구매하게 만듦으로써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헌신의 고객 관계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의미다.
 
이제는 관계 마케팅의 효율성 및 성과에 관해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관계 마케팅을 직접 수행하는 영업사원의 영업 행위가 고객과의 관계 형성 및 유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관계 지향적 영업 행위라는 분야가 아직 미정립 상태인 만큼 이 분야에 대한 연구도 시급하다.
 


영업 성과 보상 및 평가
영업 사원의 성과 평가 및 보상 문제는 영업뿐 아니라 마케팅 전체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영업 사원은 이직률이 가장 높은 직업 중 하나다.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공정하지 못한 성과 평가 및 보상 문제가 영업 사원의 이직률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보상과 평가는 영업 사원의 직무 만족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다시 이직률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하느냐는 문제가 영업 사원과 관리자 사이에 끊이지 않는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성공적인 영업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영업 과정에서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 성과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를 적절히 확립하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영업 활동자와 관리자의 견해 차이가 너무 크다.
 
인사·조직 분야에서는 조직 구성원의 보상을 주제로 한 연구가 국내에서도 다뤄졌다. 그러나 외부 고객을 직접 상대함으로써 기업을 대표하는 영업 사원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며, 마케팅 분야에서는 이와 같은 연구가 더욱 적다. 영업 사원의 직무 만족도를 높이고, 이직률을 낮춰 효과적인 영업 활동을 격려하려면 반드시 보상 및 평가에 관해서도 활발히 연구되어야 한다.
 
한국 영업력 증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는 미국과 같이 경영대학을 위시한 교육기관들이 전문 영업과정 및 학위과정을 신설해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접근법으로 무장한 영업 인력을 배출하는 일이다. 그간 영업 인력의 개인 경험과 기술로만 접근하던 영업을 과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과 미국은 시장과 소비자의 특성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그에따라 한국 문화와 소비자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한 영업 및 영업 인력에 대한 고유한 연구가 필요하다. 미국적 이론 및 사례를 바탕으로 교육 체계를 마련하고 연구의 틀을 설정하는 것이 시작이기는 하나, 이를 한국 시장과 소비자 특성에 맞게 한국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나아가 이런 요구와 발전 과제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산학 협동의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학계와 산업의 리더가 절실히 필요하다.

필자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마케팅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작년 3월부터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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