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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모델

저소득층 시장에서의 혁신? 유통망과 가격 장벽 잊지 마라

고중선 | 77호 (2011년 3월 Issue 2)
 

몇 해 전 인도 기업 Servals는 저소득층을 위한 신제품 조리기구를 개발했다. 인도의 저소득층은 석유 버너를 이용해서 음식을 조리하곤 했는데, 연료 값이 만만치 않았다. Servals는 이 점에 주목하고 일반적인 버너보다 30% 연료를 덜 먹고 크기도 작은 Venus라는 버너를 내놨다. 게다가 이 제품은 구조가 단순해 청소하기도 쉽고 안전하며 내구성은 기존 경쟁 제품의 두 배 이상이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적인 기능을 갖췄기 때문에 값은 기존 제품의 갑절에 이르렀다. 하지만 연료 효율성만 놓고 보면 2달 정도면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었다.
 
결과는 어떨까? 정보 유통이 자유롭고 합리적 소비자들이 많은 시장이라면 불티나게 팔렸어야 했다. 하지만 Venus의 초기 매출 실적은 유통망과 높은 가격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실망스러웠다. 소매업자들은 Venus 버너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소비자들을 납득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훌륭한 제품이었지만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한 것이다. 결국 2006년 Servals는 제품을 새로 설계해 가격을 낮추고 유통업자들을 위한 마진과 판매 수수료를 개선했다. 그 결과 Venus는 2008년 수백만 대가 팔리는 히트상품이 됐고 인도에서 가장 성공적인 신제품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Servals가 겪었던 문제는 오늘날 신흥국가 저소득층 시장, 즉 BOP(Base of the Pyramid) 시장 개척에 나선 수많은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골칫거리다. 제품의 기능이 훌륭하면 쉽게 팔릴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유통망과 가격 정책의 장벽에 부딪치게 된다. 시장의 특성과 고객의 니즈에 맞춰 어떤 가치(value)를 제시하고, 어떤 프로세스와 유통 채널을 통해 고객에게 다가가며, 이를 위해 어떤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는다면 낯선 BOP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모니터그룹이 지난해 3월 발표한 ‘신흥시장 신흥 비즈니스 모델(Emerging Markets, Emerging Models)’1 을 토대로 신흥시장의 저소득층, 즉 BOP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특징과 유형을 소개하고자 한다.
 
BOP 비즈니스 모델의 전략적 고려요인
BOP 시장의 장벽은 성공적인 사업 모델의 두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하기 어렵게 만든다. 첫째, 수익성(Profitability)이다. 저소득층-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스스로 존속하려면 사업 자체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정부 보조금이나 기부금에 의존한다면 이는 사업이라기보다 자선활동이라고 봐야 한다. 둘째, 규모의 경제(Scalability)다. 대다수 기업들은 고수익을 보장하는 고소득층에 대한 사업이나 마케팅엔 익숙하다. 저소득층 대상의 서비스나 재화는 시장에서 높은 마진이나 가격을 책정할 수 없기 때문에 존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려면 규모가 확보돼야 한다. 그렇게 다수의 고객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다수의 저소득층 대상 사업체가 내세우는 ‘빈곤층 삶의 개선’과 같은 숭고한 의도도 실현할 수 있다.
 
성공적인 저소득층 대상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려면 BOP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계 인구 50억 중 약 절반에 이르는 26억 명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약 10억에 해당하는 인구는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 과연 이들이 기본적인 의식주 외의 활동에 돈을 쓸 여력이 있을까. BOP 시장은 기업이 뛰어들 만한 충분한 시장 규모를 가지고는 있는 것인가.
 
모니터그룹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분포의 하위 60%를 대상으로 한 인도 교육사업 규모만 약 52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2007년 전세계의 전자태그(RFID) 시장, 2009년 전 세계의 태블릿 PC, 2010년 중국의 레이저 프린터 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즉, 시장의 규모라는 측면에서 기업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반면 이런 거대한 기회를 활용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느냐가 문제다. 인도의 저소득층 교육 시장의 예를 들어보자. 시장 규모에 대한 장밋빛 전망 뒤에는 이런 시장의 대부분이 비공식적이며 매우 파편화된 소규모 시장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전체 시장의 총합만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즉, 저소득층 시장은 다양한 작은 단위로 쪼개져 있는 데다 지리적으로도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기업들이 쉽게 상대하기 어렵다.
 

대다수의 기업이 익숙한 중산층 이상의 사업을 공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업 운영방식이 필요하다는 점도 기업 참여를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저소득층 대상 사업은 고객당 수익이 매우 적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 중산층 고객을 대상으로 각종 직업 학교의 자격 시험 준비를 돕는 교육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T.I.M.E.이라는 회사를 보자. 이 업체는 전국에 약 175개의 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3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만약 이 업체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비슷한 매출을 올리려면 거의 2500개에 이르는 센터를 건립해야 한다. 이는 현재의 약 15배의 규모다.
 
저소득층의 낮은 구매력도 문제다. 대다수의 저소득층은 일용직 같은 불확실한 직업을 갖고 있다. 벌어들이는 소득이 매우 낮고 불안정하다. 저축 수준도 낮고 달리 돈을 마련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저소득층에 환상적인 기능을 갖춘 Venus 버너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경제적인 효과가 확실해도 비싼 가격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저렴하고 더 낮은 품질의 대체재를 택하게 된다.
 
이런 특성이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은 낮은 소득을 가진 빈곤층의 구매력을 반영한 저() 원가 구조를 갖춰야 할 뿐 아니라 불규칙한 현금 흐름에도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가격 정책을 확보해야 한다. 저소득층이 필요성을 느끼고 원할 만한 품질을 갖췄다면 규모의 경제를 단시일에 확보할 수 있는 역량도 보유해야 한다.
 
 
 7가지 BOP 비즈니스 모델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성공적인 사업모델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극단적으로 낮은 원가에 의한 생산-운영방식을 갖추고, 구매력이 낮은 데다 불확실하기까지 한 고객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모니터그룹이 조사한 BOP 비즈니스 모델 사례에서 기존 시장에서 성공한 대기업보다 소규모의 사회적 기업이나 비정부기구(NGO)의 성공 사례가 더 두드러지는 이유도 이들이 기존 시장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새로운 모델을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BOP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고객으로서의 저소득층(The poor as customer)과 공급자, 생산자, 근로자로서의 저소득층(The poor as suppliers, producers, workers)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로 나눌 수 있다. 고객으로서의 저소득층 비즈니스 모델은 저소득층 소비자의 특성에 맞춘 4가지 비즈니스 모델이다. 공급자, 생산자, 근로자로서 저소득층 비즈니스 모델은 저소득층을 가치사슬의 공급자나 생산자로 편입하거나 근로자로서 참여시키는 3가지 유형을 말한다.
 
1.고객으로서의 저소득층
①Pay-per-use Model: 자산을 소유하기보다 사용료를 내게 하라 첫 번째는 Pay-per-use model이다. 이 모델은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대신 공동 소유의 제품-서비스 및 시설 사용에 따른 사용료를 지불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많은 저소득층 고객들의 소득이 불안정하고 낮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초기 구입 비용 부담을 덜어주면서 필요한 혜택은 누릴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인도 비라주재단(Byrraju Founda-tion) 정수 사업은 Pay-per-use 모델을 적용한 좋은 사례다. 인도에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정수 사업의 전형적인 모델은 개인 용도의 소형 정수 필터를 판매하는 것이다. 이런 정수기는 본체 가격이 900∼1500루피(18∼30달러)고, 보통 3∼6개월 사이 교환하는 필터 카트리지의 가격이 400루피(8달러) 정도다. 대략 월별로 60∼90루피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월 소득이 평균 3000루피 정도인 저소득층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비라주재단은 개인들이 각각 정수기를 구입하지 않고 깨끗한 물을 쓸 수 있도록 공동체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삼투압식 정수 시설을 마련했다. 주민에게는 기존 가격의 절반에 이르는 12L에 1.5루피(약 3센트)를 부담하게 했다. 정수 시설 건립에 필요한 초기 자본은 마을 주민, 지역 정부로부터 걷어들였고, 부족한 자본은 비라주에서 직접 투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공동 시설의 운영을 위해 ‘마을개발위원회’라는 지역별 조직에서 마을 주민 두 명을 고용했다. 비라주재단은 기술 지원 및 품질 관리를 직접 관할해 개인별 필터 장치를 이용하는 것보다 철저하게 위생 관리를 했다. 비라주재단은 남인도 지역에 약 57개의 정수장을 지어 85만 명 이상의 주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이 중 75% 이상의 정수장이 적자를 내지 않고 운영하고 있다.
 
Pay-per-use 모델의 핵심은 개인이나 개별 가정이 자산을 구매해 소유하는 방식에서 자산을 사용한 만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러 명이 모여 대용량·고효율 자산을 이용함으로써 서비스당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초기에 소요되는 투자 비용도 전체 가정이 투자하는 비용의 합보다는 훨씬 적다. 또한 전문적인 인력에 의한 관리가 가능하고 자산의 활용도도 높아 생산성이 좋아진다. Pay-per-use 모델의 또 다른 사례는 라오스 Sunlabob 에너지의 태양광 랜턴 사업이다. Sunlabob 에너지는 라오스 내 450개 소형 부락을 대상으로 태양광 충전소를 건립하고 이를 프랜차이즈 업자에게 대여했다. 프랜차이즈 업자는 태양광을 이용해 기존에 사용하던 등유 랜턴보다 더 밝고 더 경제적인 충전식 랜턴을 일반 소비자에게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다. Sunlabob의 태양광 랜턴의 대여료는 최저 월 4달러다. 이는 일반 등유를 쓸 때의 4∼7달러보다 훨씬 경제적이며, 위생적이고 화재 위험도 없다.
 
②No Frills Service: 군더더기를 없애라 저소득층 대상 서비스의 필요조건 중 하나는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이다. 최소한의 품질과 기본적인 니즈를 충족시키면서도 저소득층의 구매력에 접근하려면 이런 서비스 제공물의 모든 단계에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인도의 LifeSpring 병원은 일반적인 병원 서비스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과감히 생략해 보다 경제적이면서도 고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 사례다. 산부인과의 분만 서비스 및 일부 소아과 진료에 특화된 이 병원의 진료비는 자연분만의 경우 40달러, 제왕절개는 140달러로 일반적인 서비스 대비 20∼35%의 비용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LifeSpring은 어떻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비결은 극단적인 저비용 구조를 달성하는 효율적 사업모델이다. 첫째, LifeSpring 병원에는 출산 서비스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부차적인 것(Frills)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내 매점도 없고, 약국과 실험실도 외주로 해결한다. 병원 설비 및 자산은 대부분 빌려 쓴다. 심지어 병실에는 에어컨도 없다. 둘째, 고도로 특화된 서비스만을 제공해 저비용 운영구조를 달성했다. 이 병원은 90가지의 표준 수술 도구 및 진료 절차를 갖추고 있다. 장비와 약품도 특정 분야의 것만 사용한다. 이 때문에 대량 구매가 가능해져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또한 한정된 서비스를 매우 효율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자산의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예를 들면, 이 병원의 월별 출산 건수는 비슷한 규모를 가진 개인 병원의 약 5배에 이른다.
 

이 병원은 입지도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기 위해 고른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 부도심 지역을 선택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③Paraskilling: 복잡한 일도 쪼개면 누구나 할 수 있다 Paraskilling은 No Frills Service 모델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데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Para라는 영어의 어원은 ‘보조, 병렬적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Paraskilling은 ‘보조 기능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의료, 교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의사나 교사와 같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전문 인력을 꼭 채용해야 하는 서비스 모델은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고정비 비중이 높다. Paraskilling 모델은 숙련된 전문적 기능의 업무를 잘게 쪼개서 전문 지식이 필요한 영역과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표준화된 업무로 나눈다. 단순 업무는 덜 숙련되고 임금이 저렴한 인력이 수행하게 해 고정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인도의 지안 살라(Gyan Shala) 학교는 Paraskilling 모델을 교육사업에 적용한 좋은 사례다. 지안 살라는 전국적으로 약 330개의 학교, 8000명의 학생을 보유하고 있다. 월 수업료는 3달러다. 일반 공립학교의 25%, 사립학교의 6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저렴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성과는 놀랍다. 지안 살라 학생들은 언어와 수학 성적에서 일반 공립학교를 압도하는 학업 성취도를 보이고 있다. 교육의 질과 비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비결은 수업 방식을 혁신적으로 리엔지니어링 했기 때문이다. 지안 살라는 2단계로 구성된 교수진을 이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시니어 교수진은 교습 방식을 설계하고, 교재와 교육 보조 도구를 만든다. 학업 성취에 대한 감독도 수행한다. 하지만 교실에서 실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은 주니어 교수진이다. 주니어 교수진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정식 교사 교육은 받지 못한 마을 주민이다. 이들은 2주간의 집중적인 교육과 매월 지속적인 교사 교육 훈련을 받으면서 수업에 투입된다. 이런 획기적인 사업 모델을 통해 지안 살라는 비정규 사립학교 대비 30% 정도의 비용구조로 운영이 가능하게 됐다.
 
지안 살라 학교 모델의 또 다른 장점은 확장성이다. 교재 및 교수법, 학과 과정을 표준화 시켜 다른 지역에도 손쉽게 복제할 수 있다. 학교가 늘어날수록 규모의 경제 효과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을 통한 Paraskilling 모델의 또 다른 사례로는 Aravind Eye Care가 있다. 인도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Aravind는 매년 270만 명을 검진하고 약 29만 명에게 수술을 해준다. 의사 한 명당 수술 건수는 연간 2400건 정도로 일반적인 인도 병원보다 6배나 많다. 이런 놀라운 생산성의 비결은 법이 허락하는 한 의사가 최소한 관여하도록 준의료활동 종사자를 활용하는 프로세스에 있다. 의사는 초기 검진, 최종 진단 및 수술에만 관여할 뿐 기타 모든 서비스는 보조 직원이 한다. 이렇게 해서 인건비가 높은 의사 인력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④Shared Channel: 기존 유통망 공유 및 활용 저소득층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저렴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을 갖춘 글로벌 대기업도 막상 저소득층 시장에 진입해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실패 유형의 대부분은 유통망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저소득층은 거주비가 많이 들지 않는 도시 외곽이나 시골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이런 광범위한 지역에 자체 유통망을 구축하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므로 쉽사리 엄두를 내기 어렵다. 이런 지역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유통망을 설사 구축했다고 하더라도 비용 문제 때문에 확장이 어려워 저소득층 대상 사업의 필수 요건인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저소득층 대상의 제품을 판매할 때 이미 구축된 유통망을 찾아내 그 유통망과 경제적인 이익을 배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체계를 갖추는 게 성공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유통채널 공유의 대상으로 기존 마이크로 파이낸스(Microfinance) 지점망 등이 이용된다. 인도의 힌두스탄 유니레버사는 마이크로 파이낸스(Microfinance) 기관의 점포망을 활용하는 방식을 도입해 정수 필터를 판매했다.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관은 필터를 구매할 자금이 부족한 소비자에게 자금을 빌려준다. 금융기관은 추가적인 여신을 확보하고, 힌두스탄 유니레버는 필터에 필요한 판매망을 확보하는 윈-윈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공산품의 경우 구매 이후 애프터서비스나 기술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대대적인 확장이 불가능하다. 판매망으로 활용한 마이크로 파이낸스 지점의 모집원은 그런 기술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몇몇 제조업자들은 인도의 지방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복합유통센터를 구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런 유통센터는 비료, 농업 자재에서부터 몇몇 내구재나 의약품까지 광범위한 제품 믹스를 갖추고 자체적인 영업망을 통해 시골 구석으로까지 판매망을 확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통망의 공유는 더 나아가 사업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 공유로 확산될 수 있다. 인도 통신 당국은 통신 회사들이 외곽 지역의 무선 기지국 설비를 공동으로 부담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렇게 해서 통신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지방 거주민들에게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무를 다할 수 있다. 통신 회사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인프라 구축비용을 공동 부담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2.생산자로서의 저소득층 모델
저소득층 인구는 저렴하면서도 엄청난 양의 노동력 공급원이 될 수 있다. 단순 노동직에 종사하고 있는 수억 명의 인도 노동자들을 잘 조직화하면 엄청난 원가 우위를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저소득층을 공급자, 생산자 혹은 노동자로 활용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지역적으로 매우 분산된 곳에 거주하고 있어 한 곳에 모으기가 어렵다. 실제 최종적으로 생산물을 인도받기까지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투명한 공급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과정을 거쳐 최종 주문자에게 제품이 인도되고 나면 저렴한 임금에서 오는 생산비 우위가 사라져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대다수의 저소득층이 현재 종사하고 있는 직업을 다른 종류로 전환하는 데에는 초기 전환 비용(교육 및 훈련, 초기 자본 투자 등)이 든다. 게다가 이 인력을 과연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위험도 크다. 특히 기업에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안정적인 품질 관리다. 다음의 세 가지 사업 모델 사례를 통해 저소득층을 공급망의 일원으로서 활용하기 위한 접근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①Contract Production: 생산하기 전에 판매한다 인도의 칼립소식품은 남인도 지역의 2000명 이상의 농민들에게 유럽 시장 수출용 오이를 생산하도록 하고, 생산된 오이의 전량 구매를 보증한다. 이런 계약 생산(contract production)에 참여하고 싶은 농민은 관개 시설이나 토질 같은 품질 관리에 필수적인 몇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만약 일부 투자가 필요한 농가가 있으면 칼립소가 초기 투자 자본을 지원해준다. 칼립소는 농민들이 종자, 비료, 살충제와 같은 생산 요소를 현금이 없어도 신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 또 농민이 약속된 채소를 재배하는 동안 2주에 한 번씩 직접 농장을 방문하고 기술적 지원도 제공한다. 그 결과 칼립소는 실제로 시장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자사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해 재배하는 것보다 약 30∼40% 저렴한 비용으로 오이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 계약에 참여하고 있는 농민들은 기존 대비 약 125% 이상 소득이 증가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농민들은 고부가가치를 가진 작물에 대한 영농 기술을 습득하는 부가적인 효과도 거두고 있다.
 
②Deep Procurement: 직거래를 통해 저소득층에 돌아갈 부를 증진한다 Deep Procurement 모델은 소비자와 저소득 농민/생산자가 직접 거래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모니터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생산한 농산물이 창출한 최종 시장 가치의 25% 정도만 가져간다. 운반업자나 유통 상인들이 약 30∼45%의 수익을 가져가며 그 과정에서 망가지거나 폐기되는 손실분도 30%에 육박한다. 이런 사실은 효과적인 공급망 체계를 수립하면 소비자 및 생산자 모두 이익을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혁신적인 공급망 운영방식의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 ITC의 e-초팔(Choupal)이다. 초팔은 힌디어로 ‘마을, 만남의 장소’라는 뜻이다. ITC는 2000년 문을 연 농산물 인터넷 거래 사이트인 ‘e-초팔(Choupal)’을 통해 농민과 소비자 간 거래에서 브로커나 중개상을 배제하고, 이 사이트에 각종 정보를 올려놓아 농민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농민들은 e-초팔을 통해 실시간으로 농산물 가격 동향, 날씨, 과학적 영농 기술, 원재료 가격 정보를 얻고 있다. 농민들이 이 사이트에 소량의 농산품 샘플을 제시하면 e-초팔 상거래 절차에 따라 농산물 판매가격이 결정된다. 농민들은 가격 결정 후 ITC가 지정한 물류센터에 해당 농산물을 보내고 대금을 받는다. 이를 통해 농민들은 일반 경매방식으로 농산품을 처리할 때보다 상당한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콩은 t당 8∼10달러가 절감된다고 한다. 품질 좋은 농산물을 구매해 국제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윈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기업만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는 파키스탄에서 약 16만 명의 영세 낙농업자로부터 원유를 직접 수급받는 체계를 구축하고 5억L에 이르는 원유를 공급받았다. 네슬레는 먼저 마을마다 대리인(Agent)을 뽑아 원유 생산 농가와 낙농업체로부터 20분내 거리에 위치한 원유 냉장보관소에 이르는 공급망을 관리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수수료를 대리인에게 지급했다. 대량의 우유를 공급하는 낙농업자들이 관리 비용은 저렴할 수 있으나, 쉽게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반면 영세 낙농업자들은 협상력이 훨씬 낮아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유 수급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③Demand-led Training: 기업-인력 공급-노동자 간의 삼각 편대 주로 시골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노동자가 좀더 나은 보수를 받고 싶다면 도시 혹은 산업 시설이 밀집한 지역으로 이주해서 정식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저소득층 노동자가 새로운 취업/이직에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을 배울 수 있는 공공 교육기관은 매우 제한적이며, 노동자들의 지극히 제한된 수익을 고려할 때 사설 유료 기관을 찾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반면 기업체가 자격 요건을 갖춘 저렴한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와 기업체 사이의 이런 비효율성을 해결하는 사업 모델을 제공하고 있는 사례가 인도의 TeamLease 서비스다.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민간 기업인 TeamLease는 18개 도시에 20개의 사무소를 갖추고 1000개 이상의 기업체를 대상으로 8만 명 이상의 인력을 제공한다. 일반적인 아웃소싱 서비스 회사와 다른 점은 기업체의 사전 수요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필요한 인력을 채용-훈련-파견-관리한다는 점이다.
 
결론
저소득층 대상 사업은 기존 기업에 낯선 분야다. 전통적인 경영 전략의 관점에서 본다면 고객 가치가 낮은 저수익 시장을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다는 조언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인도, 중국, 아프리카 등 신흥국은 연간 10%가 넘는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특히 수십억 명에 이르는 저소득 빈곤층이 그 성장의 중심에 있다. 더군다나 이런 저소득층의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수십 년간 해결해오지 못했던 분야이고, 이런 저소득층이 야기하는 사회적-정치적 불안 요소는 장기적으로 반드시 풀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인도를 중심으로 한 7가지 사업 모델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선구적인 시각을 가진 소규모 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저소득층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재화-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저원가 구조, 소유하지 않고도 재화/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 초기의 시장 확산을 위해 필요한 자본에 대한 금융 서비스 동시 제공, 이미 구축된 타 산업의 유통망을 공유하는 것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개발돼 확산되고 있다.
 
이 사업 모델은 개별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모델의 핵심 구성요소들을 조합해서 활용되기도 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저소득층 대상 사업 모델 중 하나인 소액대출(Microfinance)의 사례를 보면 최소한 5가지 이상의 사업 모델 요소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No Frills Services: 마이크로 파이낸스에서는 일반 점포에서 운영되는 은행의 대출 창구, ATM, 복잡한 서류작업이 없다. 상품도 매우 단순한 단일 대출 상품이며, 대출 과정도 모집원의 간단한 대인 면접이 전부다.
 
- Low-cost, small product: 소액 대출상품은 일반 상업은행의 대출상품보다 규모가 훨씬 작고, 상환기한도 훨씬 짧다. 이는 저소득층의 낮은 구매력 및 불규칙한 수입의 흐름을 고려할 때 더 합리적인 상품이다.
 
- Group Products(공동 책임의 활용): Pay-per-use에서 개별적으로 소유하는 자산을 공동체 단위로 묶어서 활용했듯이, 소액대출 가운데 비교적 큰 규모의 대출은 개인이 아닌 Joint Liability Group(JLG·공동 채무 그룹)에만 주어진다.
 
- Pre-assured Demand(사전 확정된 수요): Demand-led Training에서 보듯이 수요가 확정된 상태의 상품/서비스 제공은 사업자의 여러 불확실성 및 비용을 줄여준다. JLG 대상 상품은 사전에 채무단이 결성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단지 심사만 하면 된다.
 
- Paraskilling: 일반은행의 대출 심사 업무는 대개 대졸 직원이 수행한다. 반면, 대부분의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관에서는 비교적 단순화된 대출 시스템을 이용해 비교적 낮은 교육 수준의 직원을 대출 심사 직원으로 활용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가 주창한 ‘혁신이론’에 따르면 시장 판도를 뒤엎는 ‘파괴적(Disruptive)’ 기술은 보통 수익성이 낮고, 고객이 불확실하며, 반드시 고도의 기술수준을 요구하지도 않는 특성을 가진다고 한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사업 모델이 지닌 속성 역시 이와 비슷하며, 그 때문에 혁신이론에서 보듯이 기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고, 고수익 구조에 의존하는 기존 기업이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시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저수익-저품질 시장에서의 혁신이 종국적으로 주류 시장을 뒤엎은 역사적 증거들을 볼 때, 저소득층 시장에서 혁신을 이루는 것은 신흥시장 진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신흥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내 기업 역시 신흥시장 진출에 목표를 두기보다 이런 혁신의 물결에 동참해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고 더 나아가 기존 주류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중선 모니터그룹 이사 jsko@monitor.com
 
고중선 이사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MBA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보통신, 제조업 분야의 사업 및 마케팅 전략 수립의 전문가다.
 
 
 
  • 고중선 고중선 | - (현)모니터그룹 이사
    - ADL(Arthur D. Little) 팀장
    - The Boston Consulting Group
    - IBM Korea
    ko.joongsun@adlitt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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