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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서울대CFO전략과정 CASE STUDY

제조업에서 브랜드 마케팅 기업으로… 국제상사 M&A와 프로스펙스의 부활

이방실 | 69호 (2010년 11월 Issue 2)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엔 소위 ‘신발 재벌’이란 게 있었다. 토종 운동화 브랜드 ‘프로스펙스’로 유명한 국제상사(현 LS네트웍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49년 부산진시장 한 켠에서 고무신 공장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1962년 국내 최초로 농구화를 수출하고,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후원 업체로 선정되는 등 비약적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모기업인 한일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국제상사 역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99년 1월부터 시작해 무려 8년여간 법정관리를 거쳤고, 프로스펙스는 중년층이나 기억하는 ‘한물 간’ 브랜드로 퇴색했다. 한때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를 제압하고 국내 운동화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프리미엄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하지만 2007년 LS그룹 계열사인 E1(옛 LG칼텍스가스)에 인수돼 국제상사에서 LS네트웍스로 간판을 바꿔 단 후, 이 회사는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거치며 제조 기업에서 브랜드 마케팅 기업으로 탈바꿈했고, 프로스펙스의 하위 브랜드(sub-brand)인 ‘프로스펙스 W’를 통해 ‘스포츠 워킹화’라는 신(新)시장을 개척,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DBR이 서울대 CFO 전략과정과 공동으로 국제상사 M&A(인수합병)와 프로스펙스의 부활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국제상사 경영권을 둘러싼 법정 공방
국제상사가 법정관리(창원지방법원)에서 벗어나 새 주인을 찾기까지는 약 8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회사가 부실해서가 아니었다. 경영권 인수를 둘러싸고 지루한 법정 공방이 4년여 간 지속됐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숱한 M&A 딜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 중, 그 복잡성과 규모 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송이 바로 국제상사와 이랜드 간 분쟁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랜드가 2002년 6월 국제상사 주채권 은행인 우리은행으로부터 보통주(224만주·11.5%)와 전환사채(주식 전환시 1200만 주)를 500억 원에 인수, 국제상사의 대주주(미발행 주식전환 포함시 45.2%) 지위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랜드의 목표는 국제상사의 경영권 획득. 통상 법정관리 기업을 M&A할 때는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이 사용됐지만, 당시 이랜드는 구주 인수를 통한 M&A를 추진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국제상사 측은 “법정관리 상태에서 구(舊)주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법정관리 상황에서는 부실 경영에 책임이 있는 기존 주주의 권리는 없어지고 대신 법원이 법정관리인을 지정해 경영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이랜드처럼 이미 경영권을 상실한 주식을 인수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게 국제상사측의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국제상사는 최대 주주인 이랜드의 동의 없이 제3자 매각을 추진했다. 정관 변경을 통해 수권 자본을 기존 4000만 주에서 8000만 주로 늘리고, 추가로 늘어난 4000만 주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식으로 발행해 매각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었다. 2003년 초, 국제상사는 공개 입찰을 통한 3자 매각 추진을 위해 투자의향서(LOI)를 접수 받기 시작했다. E1은 바로 이 시기에 입찰에 참여, 효성과 함께 예비 협상자로 선정됐다.
 
문제는 이랜드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며 복잡해졌다. 수권 자본금 증액 및 신주 발행을 통한 유상증자 등 일련의 과정이 대주주(이랜드)의 동의 없이 이뤄졌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랜드는 1심(창원지방법원)에선 패했지만 상급법원(부산고등법원)에서 승리했고, 이 과정에서 국제상사의 공개 매각은 중지됐다. 결국 2005년 6월 대법원마저 이랜드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제상사와 이랜드 간 법적 분쟁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국제상사가 당초 계획했던 제3자 배정 4000만 주 유상신주 발행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곧이어 2차전이 시작됐다. 국제상사는 대법원의 판결이 제3자 매각 자체가 아니라 정관 변경 추진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이를 보완해 제3자 매각을 재개했다. 그리고 2006년 4월, E1이 M&A 우선 협상자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또 다시 이랜드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매각 작업이 6개월 정도 다시 지연됐다. 그러나 법원은 그 해 12월 최종적으로 E1을 인수자로 하는 국제상사의 정리계획 변경안을 확정했다.
 
E1의 국제상사 인수 가격은 총 8550억9500만 원. 이 가운데 4049억9500만 원은 회사채 인수금으로, 나머지 4501억 원은 신주 9002만주 유상증자 대금으로 납입했다. 이를 통해 E1은 국제상사의 지분 74.1%를 확보, 최대 주주가 됐다. 기존 대주주였던 이랜드의 지분율은 유상 증자 후 13.4%로 떨어졌다. 이후 2007년 2월 이랜드가 유상 소각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E1의 지분율은 93.5%까지 뛰어올랐다.(표1)
 
 
이랜드와 국제상사, 그리고 E1은 이처럼 인수과정에서 법률 분쟁을 겪었다. 이랜드는 E1보다 먼저 국제상사 인수과정에 뛰어들고도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피인수 당사자인 국제상사나, 당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던 법원과 사전 조율 없이 인수 작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반면 E1은 인수 작업에 뛰어들기 전부터 법률적 사항을 충분히 검토한 후,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인수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표1>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랜드와 국제상사 간 분쟁은 E1이 입찰에 참여하기 전부터 이미 진행 중이었다. 당시 E1의 국제상사 인수 작업 실무자였던 안경한 현 LS네트웍스 경영지원본부장(상무)은 “쟁점의 핵심은 자본잠식이 되지 않은 법정관리 기업(국제상사) 주주(이랜드)의 주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였다”며 “법무팀과 사전에 면밀히 검토한 후 승산이 있다고 보고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E1이 M&A 우선 협상자로 선정된 후에는 매각 주간사 및 법무법인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주주, 채권자는 물론 정리법원인 창원지방법원, 상급법원인 부산고등법원 등과의 의견 조율에도 힘을 기울였다. 안 상무는 “M&A를 둘러싼 규제 환경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이해 당사자들과의 협의에 적극 나선 결과 몇 년 더 길어질 수도 있었던 소송을 ‘상대적’으로 짧게 끝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판결 후, E1이 곧바로 이랜드의 지분을 평화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추가적인 분쟁 소지를 일찌감치 잠재울 수 있었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국제상사 인수 직후 E1이 이랜드의 보유 지분을 모두 구입함으로써 장차 경영권을 둘러싸고 추가적인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없앴다”며 “만약 이런 대비가 없었다면 이랜드와 E1 사이에 장기적인 분쟁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고 그만큼 프로스펙스 부활 작업도 지연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1 인수 후 LS네트웍스로 재탄생
인수대금으로 따졌을 때 2007년 국제상사 인수는 LS그룹이 2003년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후 당시까지 추진해 온 일련의 M&A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그만큼 LS 그룹 차원에서 중요한 M&A다. 당시 E1은 LS 그룹 전체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대표 브랜드를 확보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국제상사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LS그룹은 전선, 전력 복구 등 기계 부품업을 주력으로 하는 B2B 기업들이 주축이다. 안 상무는 “업무 대부분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분야이다 보니 계열 분리 이후엔 ‘대체 LS가 뭘 하는 곳이냐?’는 질문이 많았다”며 “전략적으로 LS하면 딱 떠오르는 소비자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국제상사 인수를 적극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 상무는 “당시 내부적으로 국제상사의 자산가치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며 “그러나 성장 전망이 확실한 기업으로 평가했으므로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를 위해 최대한 많은 지분 확보를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E1이 안정적인 현금을 창출하는 우량 업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1은 당시 LPG 중심의 단일 수익 모델에서 벗어나 환경, 건강, 지식, 문화 등 삶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장기 발전 전략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전국적 유통망과 대형 건물을 보유한 소비재 전문 기업인 국제상사를 인수해 브랜드 사업과 스포츠, 레저 분야 서비스 사업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게 E1의 복안이었다.(DBR Tip 참조)
 


국제상사는 모기업인 한일그룹의 부도 여파로 부실 기업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실질적으로는 성장성이 높은 우량 기업이었다. 법정관리가 시작된 1999년부터 법정관리 졸업(2007 1 31) 직전인 2006년까지의 실적만 따져보더라도, 매년 2000억 원대 매출액에 300∼4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냈다. LS네트웍스에 인수되기 직전 3년간(2003, 2004, 2005)은 총 500여 억 원의 당기 순이익과 800여 억 원의 영업현금흐름, 600여 억 원의 잉여현금흐름을 기록했다. 주인이 없는 법정관리상태로, 적적할 투자나 기업의 장기 전략 방향성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이 정도의 성과를 올렸다는 점은 국제상사의 성장잠재력이 충분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E1이 국제상사 인수에 투입한 금액은 총 85509500만 원. 하지만 국제상사가 E1 인수 당시 보유한 현금 및 기타 단기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2005 12 31일 기준 약 1400억 원)을 고려하면, 실제 인수 자금은 약 7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E1이 국제상사 인수 후 국제상사의 현금성 자산을 내다 팔면, 곧바로 인수를 위해 투입했던 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E1은 총 인수금액 중 절반 가량인 40499500만 원을 국제상사의 채무 변제 및 운영자금 지원을 위해 3년 만기 무보증 사채를 매입(2006 7)하는 방식으로 납입했다. 그리고 이 사채 매입 분은, 국제상사 인수 후 국제상사가 보유하고 있던 단기금융상품 등을 팔아 전량 회수했다.

E1 M&A 자금 조달을 위해 금융기관 차입(2000억 원)과 사채(2500억 원·만기 1년 이하) 발행을 통해 총 4500억 원의 단기 차입을 결정했다. 나머지 절반 가량의 대금은 E1 사내 유보금으로 충당했다. 최종학 교수는인수 직전인 2003년에서 2005년까지 E1은 자체적으로 매년 500∼600억 원 정도의 당기 순이익과 500∼1300억 원대의 영업현금흐름을 기록하고 있었다모그룹인 LS그룹의 자금 사정까지 고려하면 국제상사의 인수 금액이 크게 부담 되는 액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 겉보기에는 자본 규모가 약 1000억 원에 불과한 회사를 약 8500억 원에 인수하므로 인수 대금이 비싸 보이지만, E1은 피인수 기업의 성장성을 확신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충분한 인수 금액을 제시했다는 설명이다.

무리 없는 M&A는 인수후통합(PMI·post-merger integration) 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막대한 부채를 동원해 인수를 하면, 부채를 빨리 갚기 위해 PMI를 통한 조직의 안정이나 장기적 기업 성장 전략 수립 등에 신경을 쓰기 보다, 이른바밀어내기식영업을 통한 단기 매출 증대에 경영의 초점을 맞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E1이 국제상사 대주주가 된 후 유상감자를 통해 이랜드의 주식을 곧바로 공개매수 할 수 있었던 것도, 이후 각계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을 영입할 수 있었던 것도, 또 상당한 자금과 시간을 투입해 시장 조사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무리 없는 M&A를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M&A 사례를 보자. 이 사례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과도한 인수 금액 투입으로 실패한 M&A의 전형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무려 6조 원이 넘는 금액을 들여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최 교수는대우건설 인수자금 중 금호아시아나가 자체 조달한 건 3000억 원 정도에 불과했다나머지 금액 중 약 25000억 원은 직접 차입금으로, 35000억 원은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풋옵션 형식을 빌려 차입 조달했고, 이것이 오늘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E1은 국제상사 인수 후 초대 사장으로 이대훈 전 동국무역 부사장(현 LS네트웍스 부회장)을 선임했다. 반도상사(현 LG상사), 동국합섬, 동국무역 등 유통과 섬유분야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전문 경영인을 영입, 회사 경영을 하루 빨리 정상화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와 함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LG투자증권 상무, 신흥증권 전무를 역임한 윤승현 감사를 영입했다. 실제 E1은 국제상사 인수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우선 고연령 저성과자들로부터 명예 퇴직 신청을 받았고, 유통의 핵심인 백화점 매장도 이익이 나지 않으면 과감하게 철수했다. 적자 사업부 아티스도 인적 분할했다. 아티스는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팔리는 중저가 아동 캐릭터 신발 브랜드로, 8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 제법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다. 하지만 LS네트웍스는 고가 시장(프로스펙스)과 중저가 시장(아티스)을 명확히 구분해, 주력 브랜드인 프로스펙스 회생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2008년 1월 아티스를 분할했다. 아티스 분할과 동시에 국제상사의 상호도 LS네트웍스로 변경했다. 이어 그 다음달에는 김해 신발생산공장의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김해공장은 1990년대 초반 생산 인력만 3만 명에 달했지만, 지속적으로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회사 내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였다. LS네트웍스는 디자인 및 연구 개발, 브랜드 마케팅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 하에 공장 폐쇄를 전격 결정한다. 국제상사를 인수했을 당시 직원 수는 600여 명. 하지만 아티스 분할과 김해 공장 폐쇄 등 구조조정이 끝난 후 남은 인력은 그 절반인 320명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브랜드 전략팀 신설, 외부 전문가 영입 통해 조직 쇄신
구조조정을 일단락해 비효율을 제거한 LS네트웍스 경영진이 그 다음으로 착수한 일은 브랜드 전략 및 마케팅을 총괄할 조직을 신설한 것이다. 원래 프로스펙스는 나이키 등과 어깨를 겨루던 프리미엄 브랜드였다. 하지만 수년간의 법정관리가 지속되면서 지방 변두리 지역에서 연중 세일을 하는 3류 브랜드로 전락했다. 프로스펙스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고객에 대한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을 명확하게 구축해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겠다는 전략적 방향성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직원들 사이에 패배 의식이 확산되다 보니, 예전 디자인에 색깔만 바꿔 신제품이라고 출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안 상무는 “한 마디로 브랜드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전무했다”며 “전사적으로 브랜드 콘셉트를 어떻게 설정하고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 전략적 방향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나이키처럼 명실공히 신발 제조업체에서 브랜드 전문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밟아야 할 수순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LS네트웍스는 2008년 8월 전사 브랜드 전략을 책임질 마케팅전략본부를 신설하고 산하에 브랜드전략팀과 통합마케팅팀을 만들었다. 특히 신설된 마케팅전략본부의 수장으로는 광고업계 베테랑인 박재범 전무를 전격 영입했다.
 
외부 인사 수혈은 비단 마케팅전략본부에 그치지 않았다. 유통 및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신동배 프로스펙스사업본부장(상무), 유럽 유수 백화점에서 의류 소싱 전문가로 활약했던 이강미 상품소싱담당(이사) 등 핵심 사업 영역별로 전문가들을 적극 영입했다. 안 상무는 “현재 420여 명 직원 가운데 외부에서 영입된 경력 직원들만 100여 명”이라며 “이 중 LS그룹에서 파견된 사람은 나와 김광연 신규브랜드본부장 단 둘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B2B 모기업(E1)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소비재 광고·유통 전문가들을 영입하다 보니 기존 국제상사 직원들의 반발도 적었다”며 “적당한 긴장감과 활기를 조직에 불어넣음으로써 활기찬 분위기를 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 ‘드림팀’을 꾸민 LS네트웍스는 이후 프로스펙스의 부활을 위해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하위 브랜드(sub-brand) 전략으로 프로스펙스 부활 도모
조직 개편과 함께 LS네트웍스가 당면한 과제는 쇠락한 프로스펙스 브랜드를 어떻게 부활시키느냐였다. 하지만 LS네트웍스는 1등 업체 나이키와 정면 대결하겠다는 허황된 욕심을 버렸다. 수년간의 법정관리로 쇠약해진 현재의 역량은 생각지도 않고 흘러간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 시장 점유율에서 몇 배 이상 차이가 나는 나이키와 정면대결을 펼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희미해진 지 오래인 프로스펙스를 단번에 부활시키겠다는 야무진 욕심도 버렸다. 그렇게 하기엔 이미 프로스펙스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 노후화된 상황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LS네트웍스는 프로스펙스의 브랜드 유산을 이어가면서도 참신성을 줄 수 있는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두 가지 방향성이 정해지자 브랜드 전략의 방향성이 잡혔다. 우선, 나이키가 간과하고 있는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데로 의견이 좁혀졌다. 나이키는 전통적으로 전문 스포츠 선수 이미지를 강조하는 브랜드다. 따라서 LS네트웍스가 나이키와 차별화하려면, 좀 더 대중적이고 일상 생활에서 늘 함께 할 수 있는 생활형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로 의견이 좁혀진 것이다. 현재 프로스펙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실용 운동 구간에서의 기능성과 전문성’은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결과다. 전문 스포츠 선수용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일반인 누구나 생활 체육의 연장선상에서 즐겨 찾는 신발을 만들되, 기능성과 전문성을 함께 추구하겠다는 것. 또한 여기에 하위 브랜드(sub-brand) 전략을 사용, 점진적으로 모 브랜드 이미지까지 업그레이드시킨다는 방향을 세웠다. 한꺼번에 프로스펙스 전체 브랜드를 젊게 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한정된 시장 영역에서부터 먼저 브랜드 재활성화(revitalization)를 시도한다는 전략이었다.
 
목표가 세워지자 제품 정리 기준이 명확해졌다. 복싱화, 레슬링화, 고산용 등반화 등 전문 스포츠와 관련된 신발들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문제는 앞으로 집중해야 할 제품이었다. 생활 체육과 관련된 신발 영역은 러닝화와 조깅화 정도인데, 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로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었다. 뭔가 새롭고 차별화된 제품이 절실했다. 이때 발견한 게 바로 ‘스포츠 워킹화’다.
 
생활체육 분야 대표 제품으로 키울 신발을 찾기 위해 자체 시장조사를 수행한 결과, LS네트웍스는 20세 이상 성인 인구들이 정기적으로 하는 운동으로 ‘걷기’를 꼽는 비율이 전체의 35%에 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 35%의 인구가 신는 신발은 70%가 러닝화였다. 나머지 30%는 캐주얼화나 스니커즈, 혹은 MBT 마사이 신발 같은 걸음 교정용 신발을 신고 걷고 있었다. 상당수 소비자가 운동을 위해 ‘걷고’ 있는데도, 업체들은 계속해서 ‘러닝화’만 찍어내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고객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잠재 욕구를 간파한 LS네트웍스는 러닝화 고객들을 워킹화로 갈아 신게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30도 깎인 발뒤꿈치, 설포(tongue) 없는 스포츠 워킹화 대박
전략적 목표를 설정한 후 LS네트웍스는 방대한 시장조사를 실시했다. 프로스펙스 사업본부는 물론 마케팅전략본부 직원들까지 양재천, 탄천으로 나가 시장 조사에 나섰다. 시장 조사를 위해 걷기 운동을 하는 여성들의 사진을 찍어대다 치한으로 오해 받아 경찰서로 끌려갈 뻔한 직원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도 바꿨다. 과거엔 프로스펙스사업본부 산하 상품기획팀에서 디자인해 일방적으로 마케팅과 영업팀에 전달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소비자 니즈에 맞는 워킹화 개발을 위해 마케팅전략본부 브랜드전략팀이 프로스펙스사업본부 상품기획팀과 제품 기획 단계부터 머리를 맞대고 개발에 들어갔다.
 
일단 걷기와 뛰기의 운동 역학적 차이부터 분석하기 시작했다. 러닝화를 신고 걷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많이 나오는 불만이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프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운동역학상 뛸 때는 발뒤꿈치 전체로 착지하지만, 걸을 때에는 발뒤꿈치 모서리가 가장 먼저 땅에 닿는다. 발을 땅에 디디는 시간도 걷기(평균 약 0.6초)가 뛰기(평균 약 0.2초)보다 세 배 이상 길다. 차연수 브랜드 전략팀 부장은 “이런 운동역학 상의 차이 때문에 러닝화를 신고 오래 걸으면 발이 쉽게 피로해진다”며 “워킹화의 핵심은 오래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게 발뒤꿈치 충격을 줄여주면서 발목이 잘 굴려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LS네트웍스는 신발 발뒤꿈치 부분을 30도 각도로 깎았다. (사진1) 육안으로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워킹 전문 신발의 탄생이었다.
 
 
이와 함께, 마케팅 사업본부는 한 가지 혁신적인 제안을 했다. 바로 설포(tongue·신발끈을 묶는 바로 밑에 발등을 덮는 부분)가 없는 워킹화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보통 신발은 ‘신발 혓바닥’이라고도 불리는 설포 부분이 발등 중앙에 따로 분리돼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힘차게 걷다 보면 미세하지만 발목이 전후좌우로 흔들리게 된다. 만약 설포를 분리시키지 않고, 신발 양쪽 측포(side vamp·신발 측면 부분) 부위를 겹쳐서 발등을 감쌀 수 있도록 디자인하면,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마치 발싸개처럼 발을 꽉 감싸주기 때문에 전후 좌우로 흔들림 없이 힘차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안에 대해 영업팀에선 극심하게 반대했다. 모양도 이상하고, 신고 벗기도 힘들지 않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마케팅 팀에서는 걸을 때 불편함을 호소하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설득에 나섰다. 그래도 확신이 없으면, 일단 시제품으로 한정 수량을 제작해 판매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2009년 4월, 발뒤꿈치가 30도 깎이고, 설포도 없는 스포츠 워킹화 ‘베스트 기어’ 2000 켤레가 전국 프로스펙스 매장 400곳에 깔렸다.(사진2) 결과는 대성공. 불과 일주일 만에 전 제품이 완판됐다. 워킹화 시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광에 확신을 얻은 LS네트웍스는 정식 제품 출시를 위해 양산에 박차를 가했다. 새롭게 출시할 브랜드명은 걷기(walking)를 뜻하는 영어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프로스펙스 W’로 정했다. 모브랜드인 프로스펙스와의 연속성을 추구하면서, 참신한 이미지를 덧입히기 위해 탄생한 이름이었다.
 
2009년 9월 1일, 드디어 스포츠 워킹화 브랜드 ‘프로스펙스 W’가 세상에 나왔다. LS네트웍스는 이때 또 다른 혁신적 시도를 감행했다. 무려 44가지에 달하는 W 신제품을 한꺼번에 출시한 것. 강도 높게 걷기 원하는 워킹 마니아용 신발 ‘W파워’, 가볍고 편안하게 걷는데 적합한 ‘W컴포트’, 올레길처럼 비포장 야외 도로에서 걷는데 안성맞춤인 ‘W트레일’, 허약한 초보 워커들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W 케어’, 일상 생활 속 출·퇴근길에 신기에도 무리 없는 ‘W캐주얼’ 등 걷기 목적에 따라 플랫폼 라인을 총 5개로 나눈 후 라인마다 성별, 색상, 소재 등에 따라 6∼10여 가지 디자인의 제품을 선보였다. 차연수 부장은 “통상 신발 신제품을 출시할 때 내놓는 디자인은 대개 5∼6개에 불과하다”며 “프로스펙스 W처럼 44가지를 한꺼번에 내놓은 시도는 1949년 창사 이래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소개했다.
 
 
세부 라인별로 다양한 디자인의 신발을 매트릭스 형태로 내놓은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스포츠 워킹화가 매우 정교한 기술력과 과학이 필요한 영역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된 계산이었다. 일반인들에게 아직까지 생소한 스포츠 워킹 시장에 대한 소비자 계몽 차원의 시도이기도 했다. 걷기라고 다 같은 걷기가 아니며, 운동 강도와 지면 상태에 따라 운동 역학이 달라진다는 점을 과학적인 매트릭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식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신발 제조 기술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과거 국제상사 시절의 핵심 경쟁력을 은근히 부각시킨다는 심산도 있었다.
 
제품 출시와 함께 브랜드 전략과 일관된 마케팅 캠페인을 위해서도 총력을 기울였다. 표적집단 조사, 심층 면접 등 무려 시장 조사에만 약 2억 원의 비용을 투입, 소비자들의 어떤 심리 타점(sweet spot)을 공략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 결과, 걷기에 열광하는 이들은 걷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에 대해 일종의 ‘피해 의식’이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나는 진지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그렇게 봐 주지 않고 있고, 특히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우습게(?) 본다는 것에 대해 은근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 이러한 시장 조사 결과 나온 광고 카피가 바로 ‘당신에게 워킹은 완벽한 스포츠입니다’다.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주문량이 밀려 발주 후 입고까지 한 달 넘게 걸리면서 고객들이 항의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판매 가격 단가가 11만∼13만 원에 이르는 고가 신발로 정찰 판매를 고수했는데도 주문은 계속됐다. W 출시 후 약 석 달 만에 W 판매량은 40만 켤레에 육박했다. 10만 원대 정찰표를 붙여놓고 곧바로 20∼30%씩 할인해 7만∼8만 원대에 내놓아도 거들떠보지 않던 일반 프로스펙스 운동화와는 현저하게 다른 반응이었다.
 
프로스펙스 W의 성공은 LS네트웍스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회사 전체 매출액의 40% 안팎에 해당하는 프로스펙스 신발 부문 매출액은, W 출시 전인 2008년 759억 원에서, W 출시 후인 2009년 914억 원, 2010년 1285억 원(예상) 등 해마다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9년 전체 매출액 성장률은 10.2%였지만, 신발 부문 매출액 증가율은 그 두 배인 20.5%를 기록했다.(표2) 안 상무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주요 7개 스포츠 브랜드 업체들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프로스펙스의 신발 시장 점유율이 2008년 11.5%에서 2009년 13.2%로 증가해 3위 업체와의 격차를 크게 줄였다”며 “이는 모두 프로스펙스 W의 매출 호조 덕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에 프로스펙스 W 신발로 209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며 “올해는 그 두 배 정도인 521억 원의 매출액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프로스펙스(신발 및 의류, 용품 등 기타 매출 포함)의 예상 매출액은 1980억 원, 예상 영업이익은 196억 원이다.
 
 
프로스펙스 W의 핵심 성공 요인 분석
LS네트웍스는 E1에 인수된 후 구조조정을 거치며 제조 기업에서 브랜드 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이 회사는 ‘실용 운동 구간에서의 기능성과 전문성’을 추구한다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브랜드 전략 목표를 일찌감치 구축한 덕택에, 경쟁사들이 간과했던 ‘스포츠 워킹화’라는 새로운 시장 창출 기회를 누구보다 먼저 잡을 수 있었다. 이는 시장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게임의 규칙(new rule of game)’을 적용해 시장 변화를 선도해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명확하게 부합하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마케팅을 실행함으로써, 워킹화에 대한 기존 소비자들의 인식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조정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제조 기업에서 브랜드 기업으로의 변신
프로스펙스 W 제품의 특징은 단연 ‘W 스포츠 워킹화 매트릭스’다. 파워 워킹, 트레일 등 걷기 목적에 따라 적합한 신발이 구비돼 있다. 출시 당시 총 44가지였던 제품 수도 현재 89개로 늘어났다. 신제품을 추가하는 것은 물론 동일 제품도 R&D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나가고 있다. 신발 내부 구조물 ‘무브 프레임’이 대표적 예다. 걸을 때 좌우 발목 흔들림을 제어해 주는 내부 구조물로, 8자나 안짱 상태로 격하게 운동을 하면 무릎과 골반에 해로울 수 있다는 임상 결과에 의거해 새롭게 고안됐다. 예전엔 “발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 걷고 싶다”는 소비자 니즈를 만족시켰다면, 지금은 “‘11자’ 직선 형태로 제대로 걷고 싶다”는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다양한 제품과 디자인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던 데는 제조 중심에서 연구개발과 브랜드 마케팅 중심으로 전사 전략을 바꿨기 때문이다. 생산 공장을 직접 운영하게 되면, 규모의 경제 논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소품종 대량 생산이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LS네트웍스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김해 공장을 폐쇄하고 현재 국내외에서 전량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대신 LS네트웍스는 내부 디자인 및 연구역량을 확충하는 한편 국내외 전문 디자인 업체들과의 용역 계약도 확대해 왔다. 소비자 니즈에 맞는 신발을 탄력적으로 생산해내기 위해서다.
 
시장 재정의 통한 ‘블루 오션’ 개척
LS네트웍스는 이전까지 운동이라고 인식되지 않았던 ‘걷기’를 운동의 일부로 재정의함으로써, 목표 시장을 새롭게 정의했다. 기존 운동화 업체들이 운동을 뛰는 것으로만 생각, ‘러닝화’라는 한정된 시장 영역에서 경쟁을 일삼은 반면, LS네트웍스는 ‘스포츠 워킹화’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LS네트웍스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경쟁사들이 간과하고 있던 소비자들의 가치 이동(value migration) 패턴을 성공적으로 간파한 덕택이다. 2000년대 들어 바쁜 일상에서 물러나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슬로 라이프(slow life)’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슬로 워킹도 하나의 라이프 패턴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나 자신과의 싸움’을 강조하며 땀 흘리며 뛰기보다, 자연과 벗하며 즐길 수 있는 ‘걷기’를 운동으로 여기는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걷기 전용 신발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신발 업체들은 여전히 러닝화, 조깅화만 팔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기업이 생각하는 시장 영역 구분과 소비자의 잠재된 니즈를 포함한 시장 영역 구분상의 부조화가 발생하고 있었고, LS네트웍스는 이를 잘 간파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었다.
 
시장을 확대 재정의함으로써 LS네트웍스는 나이키처럼 메이저 경쟁사들이 진입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진입할 가능성이 낮은 미개척 시장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테니스 제왕’ 피트 샘프라스, ‘인간 탄환’ 모리스 그린 등 세계적 스포츠 선수를 간판 모델로 내세우는 것에서도 잘 드러나듯, 나이키 같은 전문 스포츠 브랜드의 핵심에는 ‘프로 스포츠 선수(professional athletes)’가 자리잡고 있다. 100분의 1초에 목숨을 거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걷기는 운동이 될 수 없다. 결국 나이키 같은 업체들은, 설령 LS네트웍스가 ‘워킹화’ 시장을 선점하더라도 자사의 브랜드 정체성과 상반되는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섣불리 공세를 펼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LS네트웍스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그림1)
 
 
치료 신발에서 건강 증진 신발로 워킹화의 성공적 리포지셔닝
엄밀히 따져서 프로스펙스 W 이전에 워킹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MBT 마사이 신발 등 ‘1세대 워킹화’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애초에 워킹화 카테고리를 ‘걸음걸이 교정용’ 신발로 각인시키며 치료나 의학 목적으로 국한시켰다. 광고 모델도 의사 가운을 입은 외국인이 주로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다리나 허리에 문제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의료 목적으로 어필하는 신발로 인식돼 있었다. 소비자 마음 속에도 은연중에 ‘워킹화=교정 신발’이란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치료 목적 신발로 인식되다 보니 당연히 가격도 20만 원 중후반대의 고가였다.
 
하지만 프로스펙스 W는 애초부터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매스 마켓을 타깃으로 삼았다. 즉, 일반인 누구나 일상 생활에서 건강을 증진할 목적으로 신는 신발로 워킹화를 정의한 것. 이를 위해 광고 모델도 슈퍼모델 출신으로 출산 경험이 있는 30대 미시 주부를 기용했다. 60평 규모의 프로스펙스 W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를 개설하고 한국워킹협회와 워킹 교육 등을 실시하며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에 나섰다.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만큼, 프로스펙스 W의 가격은 11만∼13만 원대로 잡았다. 일반 프로스펙스 운동화 제품과 비교하면 고가에 속하지만, 소위 MBT 마사이 신발 같은 1세대 워킹화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이다. 그 결과, 소비자 마음 속에 있던 워킹화에 대한 기존 인식(교정용 신발)을 ‘스포츠 워킹화’의 개념으로 성공적으로 리포지셔닝할 수 있었다.
 
도전 과제
LS네트웍스는 현재 워킹 시장 규모를 약 5000억 원 정도(소매가 기준)로 추산하고 있다. 차연수 부장은 “현재 워킹화 시장에서 18% 정도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며 “내년엔 시장 점유율을 30%까지 확보한다는 목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워킹화의 성장성을 보고 경쟁 업체들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원래 워킹화 라인을 많이 갖고 있던 아식스도 한국 워킹화 시장의 성장성을 보고 워킹화 전문 매장까지 개설하며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리복에서는 각선미나 몸매 관리에 적합한 토닝 슈즈(toning shoes)형 워킹화로 20대 젊은 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 프로스펙스 W는 이 같은 경쟁 상황에서 어떻게 선발주자(first mover)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프로스펙스 W의 고객층 확대 역시 중요한 문제다. 현재 프로스펙스 W의 주 고객은 30∼40대 중년층이다. 20대도 서서히 유입되고는 있지만 중년층에게만큼 폭발적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의 생명은 ‘젊음’이며, 브랜드 이미지나 성과 측면에서 20대는 핵심 공략 대상이다. 프로스펙스 W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고객 연령층을 20대로까지 어떻게 확대시킬 것인가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프로스펙스가 워킹화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프로스펙스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발 시장뿐 아니라 연관 산업인 각종 스포츠 의류나 운동 용품 등의 시장에서도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향후 이런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 우위를 확보할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조직 문화 차원에서 LS네트웍스가 다른 LS그룹 계열사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갈지도 주목해야 한다. LS그룹은 B2B 사업을 주로 하는 제조업 중심의 그룹이다. 이에 반해 LS네트웍스는 이와 전혀 다른 소비재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인적 구성 측면에서도 국제상사 출신과 외부 영입 인사들이 모여있어 그룹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질적인 조직이다. LS그룹이 국제상사(현 LS네트웍스)를 인수했던 주 목적은 친숙한 소비재 브랜드를 통해 LS의 존재를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스포츠, 레저 분야 서비스 사업 등으로의 진출을 통해 수익원을 다각화하기 위해서였다. LS네트웍스가 LS그룹이 추구하는 신사업 추진의 첨병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LS 계열사와의 화합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김동혁(23,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편집자주
DBR이 서울대 경영대학과 함께 서울대의 임원 교육 과정(주임 교수 황이석 경영대학 교수)인 ‘서울대 CFO 전략과정’의 최신 경영 사례들을 연재합니다. 국내외 유명 기업의 임원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서울대 CFO 과정의 교육생들은 총 6개월간의 교육 기간 중 각자의 회사에서 겪은 경험과 강의를 통해 배운 지식들을 접목, 자사의 경영 사례들을 다른 교육생들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때 발표된 사례 중 특히 한국 기업에 많은 도움을 줄 만한 사례들을 엄선해 DBR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기업 현장에서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 담긴 이 코너를 통해 기업 경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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