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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마케팅, 제대로 성과 내려면...

이방실 | 65호 (2010년 9월 Issue 2)
지난 6월 미국 최고의 부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자선 사업에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의사(The Giving Pledge)를 밝혔다. 이 발표 이후 불과 6주 만에 미국 억만장자 40여 명이 기부 서약에 동참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했고, 기부와 자선 활동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됐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우리 기부 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기업 활동에서도 기부나 자선 활동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마케팅 활동을 공익 활동과 연관시키는 ‘대의명분 마케팅(CRM·Cause-Related Marketing)’도 그 중 하나다. 상품 판매액의 일부를 결식아동 돕기에 활용하거나, 이자 소득의 일부를 자선 사업에 사용하는 금융 상품 등이 대표 사례다. 하지만 이런 ‘착한 마케팅’ 활동이 큰 성과를 거두는 사례는 드물고, 소비자의 호응도 크게 이끌어내지 못할 때가 많다. 왜 일까?
 
조직 행동 및 의사결정 분야의 저명한 저널 에 데보라 스몰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조지 로웬스타인 카네기 멜론대 교수, 폴 슬로빅 오리건대 교수 등이 2007년 발표한 논문을 참고해 볼 만하다. 이들은 기부에 대한 인간 심리와 그에 따른 행동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실시했다.
 
A그룹에는 “말라위에선 현재 300만 명의 아이들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잠비아 역시 300만 명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선 당장 1100만 명 이상에 대한 식량 조달이 시급한 실정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제시하며 국제아동구호단체인 Save the Children에 기부를 요청했다.
 
반면 B그룹에는 “여러분들이 기부하신 돈은 말라위에 살고 있는 일곱 살짜리 소녀 로키아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로키아는 매우 가난하고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재정적 지원으로 로키아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Save the Children은 로키아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기초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제시했다. 아무런 시각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은 A그룹과 달리 B그룹에는 어린 로키아의 사진도 함께 제공하며 기부를 독려했다. 실험 결과는? B그룹의 평균 기부금액이 A 그룹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300만, 1100만이라는 숫자의 위력보다 사진을 통해 전달된 한 소녀의 삶이 훨씬 큰 호소력을 가진 셈이다.
 
위 실험은 ‘인식 가능한 희생자 효과(identifiable victim effect)’라는 개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즉 인간은 숫자로 나열된 ‘통계적 생명(statistical lives)’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인식 가능한 생명(identifiable lives)’을 구하는 쪽에 더 열중한다. 정치적 대량 학살로 인해 수백만 명이 죽었다는 신문 보도에는 종종 무감각하면서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수십 년 동안 정든 집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 노인이나 쓰나미로 자녀를 잃어버린 어머니의 참담한 모습을 담은 TV 인터뷰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건 이 때문이다.
 
공익을 지향하는 많은 마케팅 활동이 기대했던 것보다 낮은 성과를 보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공익성을 너무 부각시킨 나머지 제품 본연의 기능과 품질에 소홀했을 수도 있고, 애당초 잘 팔리지 않는 제품에 공익성을 입혀 반짝 매출 상승을 꾀하려던 기업의 ‘꼼수’가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익성을 부각시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려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만 생각해 본다면, 인식 가능한 희생자 효과는 마케팅 전문가들이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이다.
 
많은 업체들이 “이 제품의 판매 수익 일부는 결식아동 돕기에 사용됩니다”라는 정도의 무미건조한 문구를 사용한다. 이런 문구만으로는 소비자들의 감성에 불을 붙이기 부족하다. 기부에 대한 의사 결정은 이성이나 논리보다 감성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구입하시는 이 제품의 수익 중 5%는 강원도 철원에서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사는 초등학교 2학년 이나래 학생에게 돌아갈 것입니다”라는 식의 구체적 메시지를 사진과 함께 제시한다면, 소비자들에게 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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