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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업체, 절대 얕보지 마라

아드리언 라이언스 | 62호 (2010년 8월 Issue 1)

선두업체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후발 주자들은 값싼 제품 이상의 ‘무기’가 있다. 고급제품이나 브랜드를 보유한 기존업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저가 업체들의 출현에 대응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다. 저가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전략을 수정해야 할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기존 전략을 그대로 유지할지 말이다.
 
시장에 안착한 업체들은 저가 업체의 출현을 얕보기 쉽다. 기존 업체들끼리의 경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저가 업체들이 은연중에 세를 불리고 있는 것을 아예 눈치채지 못하기도 한다.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Ryanair)가 기존 항공사들의 점유율을 크게 잠식하며 유럽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사례는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세계 유수의 통신업체들이 방심한 사이 중국의 저가업체인 화웨이(Huawei)는 유선망과 이동통신망, 인터넷 스위치 시장의 선두를 모조리 차지해 버렸다. 무명의 액정표시장치(LCD) TV 공급업체이던 비지오(Vizio)는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 고급 브랜드들을 추월해 북미 대형 TV 시장의 선두업체가 됐다. 이렇듯 선발 업체들이 안이한 인식과 오만한 판단으로 발빠른 대응에 실패하고 허를 찔리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저가 업체들의 성장세에 발동이 걸리는 과정은 생각보다 서서히 그리고 은연중에 진행된다. 선두 업체들은 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가 업체들은 기존 시장에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수요층을 목표로 해서 소리소문 없이 점유율을 높여간다. 또 선두 업체의 디자인과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같은 납품업체를 이용해 품질의 격차를 줄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저가 업체들끼리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져 예상치 못한 2차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존 업체들은 방심하고 있다가 점유율을 심각하게 빼앗기고 난 뒤에야 후회하곤 한다.
 
성장에 속도가 붙기까지는 시간이 걸려
후발 저가 업체가 기존 시장에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수요층을 대상으로 사업할 때 초기에는 기존 업체의 매출 타격이 미미할 수도 있다. 즉, 기존 업체의 전체 시장 점유율은 조금씩 떨어지더라도 매출액은 늘거나 심지어 급성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별다른 문제 의식을 못 느낄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은 개발도상국 시장, 특히 중소도시나 지방에서는 선진국의 시장에 비해 정확한 시장 데이터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한다. 저가 업체가 노리는 수요가 늘어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다. 고객의 상당한 행동 변화가 일어나고 필요한 여건이 갖춰져야만 수요가 늘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보통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저가 항공사도 결코 짧은 시간에 성공하지 않았다.
 
이지젯(easyJet)과 라이언에어, 사우스웨스트 등의 항공사들이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리면서 항공기 이용객들은 어느 때부터인가 행동 패턴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시장의 규칙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주말 여행을 할 때 국내나 주변 국가를 벗어나지 않았던 유럽 사람들은 이제 먼 나라까지 간다. 유럽 근로자들은 이제 수백 마일 떨어진 곳의 일자리에도 관심을 갖는다. 유럽 내륙 국가에 사는 의사가 영국을 왕래하며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서 파트타임 진료를 한다. 비교적 저소득 직종인 건설 노동자도 중유럽이나 동유럽에 있는 집에서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직장으로 출퇴근하기도 한다. 항공료가 내려가고 새로운 행동 패턴이 정착되고 나면 성장 속도에 불이 붙는다.
 
생산력 및 기술 격차를 좁히는 방법
저가 업체는 고급 브랜드와의 기술 격차를 영리한 방법으로 좁혀서 예상외로 빠르게 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가 업체는 처음에는 고급 제품을 카피해서 디자인과 색상, 모델 번호, 홍보 자료까지 베낄 수가 있다(직물 가공 기계를 제조하는 한 중국 회사는 제품의 모델명이 아예 그 기계로 카피가 가능한 고급 브랜드명과 모델명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상당수 업종에서 지식 재산권은 얼마 간의 사용료만 내면 라이선스와 사용이 가능하다. 또 저가 업체는 필요한 기술과 유통망,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의 지분을 사들이기도 한다.
 
저가 업체는 또 고객이나 납품업체와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점을 이용해 고급 브랜드와의 품질 및 성능 격차를 줄이기도 한다. 고객은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되는 것을 반기며 저가 업체에 정보를 줘서 저가 업체의 품질이 개선되게 한다. 제조에 필요한 장비나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도 최신 장비와 부품을 저가 업체에 기꺼이 판매하려 한다. 이때 납품하는 물건에는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의 주문사항이 보통 반영돼 있기 때문에 이는 장기간 축적된 지식과 노하우가 넘어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2차 효과의 역할
저가 업체들이 시장에 진출한 상황 자체만으로는 기존 업체가 받는 타격은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입이 용이한 시장일수록 저가 업체는 얼마든지 생겨나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저가 업체들 사이에 직접적인 경쟁이 심하지 않아 이들 모두가 나름대로 자기 몫을 챙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경쟁이 붙으면 가격 전쟁에서 밀리거나 가격 전쟁을 피하려고 다른 저가 업체와 차별화하는 업체가 생겨날 수 있다. 이들은 차별화 수단으로 목표 고객을 고급층으로 바꿀 수도 있다. 가격 전쟁의 패배자가 택하는 전략은 기존 선두업체에 직접적인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이 피해는 저가업체가 기존에 펼쳤던 가격 공세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이들 회사는 저가 생산의 기반을 갖춘 상태에서 높은 품질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2차 효과의 좋은 사례는 유럽의 항공 시장이다. 라이언에어와 이지젯이 치열하게 다투는 과정에서 이들 업체는 각자의 역량을 쌓았다. 현재는 라이언에어가 순수 저가 시장을 접수한 상태다. 이지젯은 더 상위 시장으로 이동해 대형 항공사들과 취항 노선의 수와 서비스 질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대형 항공사들은 이제 거의 유럽 전역의 노선에서 피 말리는 경쟁을 하면서 비용 압박과 싸우고 있다.
또 저가 업체와 고객의 행동이 상호 작용을 하면서 2차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인도의 한 화학업체는 매우 적은 규모의 제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대량생산과 낮은 조업 변경 비용의 이점을 발판 삼아 유럽시장에서 미국 경쟁업체를 제치고 점유율을 높였다. 그러나 미국 업체의 패착은 그 다음이었다. 미국 업체는 고객사들이 아예 자신들 제품의 설계를 두루 바꿔 인도 업체의 싼 원료를 더 많이 이용하려 하리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결과적으로 고객은 인도 업체 쪽으로 이탈했고, 미국 업체의 경제적 매력은 점점 떨어졌다.
 
어떻게 맞설 것인가
프리미엄 브랜드가 저가 업체의 다양한 공격에 대처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가격을 싸게 책정한 제품을 내놓아 같은 수요층을 놓고 맞대결하는 방법이다. 또 전략을 수정해 기존 사업을 저가 공세로부터 방어하는 방법이 있다. 저가 공세에 가장 취약한 수요층에서 다른 수요층으로 이동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품질만 일정 수준 이상이면 된다는 고객은 저가 제품이라도 특정 기준만 충족하면 선택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탈 솔루션’, 즉 구매 시의 금융 혜택과 수준 높은 사후 지원, 보다 개인화된 서비스 등을 이유로 프리미엄 브랜드에 이끌리는 고객은 저가 제품에 곁눈질할 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프리미엄 업체는 제품 자체보다 솔루션을 파는 데 집중하는 게 좋다.
 
저가 업체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예로 노키아의 중국 시장 방어1)를 들 수 있다. 중국에 최초로 진출한 이동전화 단말기 업체는 1980년대 말의 모토로라였다. 에릭슨과 노키아가 그 뒤를 이었고, 삼성과 지멘스도 가세했다. 시장은 작았지만 꾸준히 성장했고 외국 업체들의 점유가 압도적이었다. 2002년까지도 당시 1위였던 모토로라와 2위였던 노키아의 중국 시장 점유율 합계는 50%나 됐다. 그러나 18개월 뒤 두 회사의 점유율 합계는 35% 이하로 떨어졌다. 닝보 버드, TCL 등 중국 국내 업체들이 40%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 업체들은 국내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단말기를 만들어 저가에 공급했다.
 
노키아는 신속히 대응했다. 노키아는 2005년까지 여러 모델의 보급형 신제품을 내놓았고 이 중 두 모델은 중국 시장 전용으로 만들었다. 또 한자를 휴대전화 전용 펜으로 입력하는 기능까지 만들었다. 또 노키아는 대도시 이외의 지역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는 중국 업체들에 대항하기 위해 유통 구조를 전면 쇄신했다. 이전에는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췄다는 사업자 몇 곳에 의존했었다. 따라서 이들의 유통망은 10대 대도시 밖에서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노키아는 이들 중 몇 곳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지방 유통사업자 40곳과 계약했다. 또 영업인력을 1000명 이상으로 확충했고, 이와 별도로 판매점 직원 4000명을 고용했다(성수기에는 판매직원이 2만 명 이상에 달했다). 또 2009년까지 판매점을 9만 곳, 고객서비스센터를 1000곳으로 확대했다.
 
이로써 노키아는 잃었던 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노키아는 다른 글로벌 업체나 수많은 저가 중국업체와의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중국 휴대폰 시장의 약 35%를 점유하고 있다. 노키아는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도 보급형 휴대폰 시장의 강자가 됐다.
 
저가 경쟁업체들의 위협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경영자들은 비일비재하다. 물론 경쟁자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의 특성과 그 위험을 이해하고 알아챌 수 있는 회사라면 적절한 수단을 강구해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후발업체의 추격을 봉쇄할 수 있을 것이다.
 
1) <Bloomberg BusinessWeek>, IBS Case Development Centre, McKinsey Quarterly, Shanghai Daily, Wired 등의 자료를 참고
 
편집자주 이 글은 <맥킨지 쿼털리> 6월호에 실린 ‘When companies underestimate low-cost rival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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