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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슈 탐구

브랜딩 정석 깨고 한국 시장 장악한 1865

김유영 | 53호 (2010년 3월 Issue 2)

‘18세부터 65세까지 즐겨 마시는 와인’, ‘18홀을 65타에 칠 수 있게 해주는 와인’, ‘1865년산(産)으로 헷갈릴 수 있는 와인’
 
칠레 와인인 ‘1865’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이름이 특이한 만큼 이 와인에 대한 갖가지 스토리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 이름은 칠레의 와이너리 산 페드로(San Pedro)가 자사의 설립 연도를 따서 정한 것일 뿐이다. 또 1865는 수많은 나라에서 팔리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다양한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이런 이야기가 퍼지면서 한국은 1865의 최대 소비국이 됐다. 따라서 칠레 본사가 1865의 한정 와인을 만들 때 한국에 가장 먼저 제품을 공급한다. 심지어 베트남 등 신흥 와인시장에는 한국의 브랜드 마케팅 비법을 접목시킬 정도다. 한국의 브랜드 전략이 역수출되는 셈이다. 1865 본사 입장에서 한국은 효자 중의 효자다.
 
이는 국내 와인업계에서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국 시장에 수입되는 와인 브랜드가 워낙 많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가 매우 힘들다. 1865는 개별 브랜드로는 드물게 연간 1만 박스(750ml짜리 와인 12병이 1박스여서 약 12만 병에 해당) 이상 팔리고 있다. 1865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의 요소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그 결과, ‘1865=합리적이고 모던하며 세련된 사람들이 마시는 와인’이라는 핵심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한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1865 한국 수입사인 금양인터내셔날(이하 금양)관계자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와인 브랜딩의 정석에서 벗어난 1865
대부분 와인 이름은 와이너리, 산지(産地), 회사 이름 등에서 따온다. 예를 들면 △와이너리: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산지: 생테밀리옹(Saint-Emillion), 보졸레(Beaujolais), 포이약(Pauillac) △회사 이름: 켄달 잭슨(Kendall-Jackson),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가야(Gaja) 등이다.
 
대개 와인 제조 역사가 500년 이상인 구대륙 국가(이탈리아, 프랑스, 독일)는 와이너리나 산지 이름을 제품명으로 주로 활용한다. 구대륙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강조해 브랜드 정통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와인 역사가 500년 이하인 국가(미국, 호주,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는 회사 이름이나 포도 품종 이름을 브랜딩에 자주 활용한다.
 
하지만 1865는 칠레에서 쿠리오밸리에서 첫 와인을 생산한 연도에서 이름을 따서 읽기 쉬운 브랜딩을 했다. 이는 유난히 ‘브랜드 식역(threshold·문지방)’이 높은 분야에 속하는 와인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한국에서 골프의 드림스코어와 결부시킨 1865
1865는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판매됐다. 하지만 유난히 한국에서만 브랜드와 관련한 다양한 스토리가 퍼져나갔고 이를 토대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는 한국 유통업체의 조직적인 브랜드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브랜딩 전략이 없었다면 한국 소비자들에게 ‘1865라는 와인은 단순히 1865년에 세워진 칠레회사가 만드는 와인’ 정도로만 알려졌을 공산이 크다.
 
유통을 담당한 금양 마케팅 담당자들은 강렬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고심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는 와인이 유행했다. 비즈니스맨들은 바이어와의 식사 자리 등에서 필요한 적절한 와인 상식을 갖춰야 했다. 기업 임원진 사이에서는 이른바 ‘와인 스트레스’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들 임원들이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와인 리스트를 펼쳐 들면 주눅들기 십상이었다. 와인명은 대개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등 낯선 단어였다.
 
금양 담당자들은 1865를 골프의 ‘드림 스코어’와 접목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1865를 두 숫자씩 끊어 읽으면, 18과 65가 되는데, 이를 18홀을 65타에 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골프 경기에서 18홀의 매홀마다 파(Par·각 홀에서 정해진 스코어를 달성)를 기록해도 72타로 이는 프로 선수들이나 달성할 수 있는 점수다. 하물며 18홀 65타는 아마추어들에게는 꿈의 점수다.
 
때마침 2003년에 골프 인구도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국내 골프장 내장객은 연인원을 기준으로 1999년 1043만 명에서 2003년 1511만 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국내 골프 인구는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늘었다.
 
금양은 골프장 중에서도 비즈니스 골프를 많이 치는 안양베네스트 등의 클럽하우스 내 소믈리에나 종업원을 공략했다. 소믈리에나 종업원이 오피니언 리더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 매니지먼트의 석학인 장 노엘 캐퍼러 교수는 오피니언 리더가 지닌 요건으로 1. 전문성 2. 카리스마 3. 다른 사람과 다르고자 하는 욕망 4. 높은 사회적인 가시성(social visibility)를 꼽는다. 반드시 사회적인 지위나 영향력이 높다고 해서 오피니언 리더인 게 아니라 해당 제품(및 서비스) 분야에서 영향력이 높다면 오피니언 리더라는 뜻이다. 실제로 로레알은 미용사를 대상으로, 의약 화장품인 라로슈 포제는 피부과 의사에게 브랜드 마케팅을 펼쳐 톡톡히 효과를 봤다.
금양의 예측대로 클럽하우스의 소믈리에나 종업원들이 고객들에게 ‘18홀에 65타를 치라’는 행운의 뜻으로 1865를 권했다. 명절 때마다 지인이 골프를 즐겨서 와인을 선물하고 싶은데, ‘골프 와인(1865를 의미함)’을 구매할 수 있느냐는 전화가 이어졌다. 또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전 사장과 신세계 이마트 이경상 전 대표 등 최고경영자(CEO) 사이에서도 1865 마니아가 생겨났다. ‘와인 세계의 오피니언 리더(소믈리에 및 종업원)’를 공략한 덕분에 ‘한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대기업 임원 등)’를 주요 소비자로 확보할 수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맞춤형 스토리
이와 함께 금양은 1865에 대한 스토리는 맞춤형(customization)으로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접목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와인 애호가들은 상황에 맞게 1865의 스토리를 변형하면서 이 제품에 열광했다.
 
2007년 신세계 이마트가 자체 브랜드(PL) 신상품을 발표했을 때다. 건배 제의 요청이 들어오자 당시 이경상 이마트 대표는 평소 즐겨 마시는 1865를 주문했다. “18홀을 65타로 치라는 의미로 라벨을 읽기도 합니다만, 18세부터 65세까지 누구나 이마트의 PL 고객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1865를 마시고 싶습니다.” 이마트 PB 상품의 성공에 대한 이 대표의 바람까지 기자들에게 강하게 각인됐다. 이처럼 1865는 ‘18세부터 65세까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와인’, ‘18세부터 65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와인’, ‘18세부터 65세까지 우리 고객이 될 수 있게 기원하자’ 등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갔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1865의 브랜드 아키텍처(brand architecture)에서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나의 제품으로 독립적인 포지셔닝을 하는 ‘프로덕트 브랜드 스트래티지(product brand strategy)’의 특성상 광고비를 많이 집행해야 하는데, 스토리가 강력하면 광고비 지출을 줄이면서도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DBR TIP ‘브랜드명=제품명’ 전략과 엄브렐러 전략 비교 참조).
 
‘라인 익스텐션’으로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
브랜드 고급화도 적극 추진했다. 2000년부터 1865를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 단일 포도밭 한 곳에서 생산된 포도로 와인을 생산) 체제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여러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생산했다. 하지만 좋은 포도밭 한 군데에서 좋은 품질(quality)의 와인을 만든다는 점을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로 삼았다. 좋은 토양에서 자란 포도가 좋은 와인을 만든다는 생각에서다.
 
이는 구대륙 와인보다 정통성이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전략이었다. 유럽이 단일 포도원에서 와인을 생산해 와인명에 샤토(단일 포도원) 이름을 붙여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다만 싱글 빈야드도 가격은 5만8000원으로 그대로 유지했다. 품질 대비 가격 비율(quality-price ration)도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1865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도 내놓았다. 특히 이 제품은 금양 측이 기획 개발에 참여했다. 기존 와인보다 뛰어난 와인을 선보이기 위해 1997년부터 산 페드로 측은 새로운 땅을 찾아 다녔고, 10여 년이 지난 끝에 리미티드 에디션 와인을 생산할 만한 포도원을 찾아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포도품종인 쉬라를 65%, 까베르네 쇼비뇽을 35%의 비율로 섞었다. 이 제품은 연간 1000박스(1만2000병)를 생산해 이 중 300박스(3600병)가 한국에 우선 할당됐다. 가격은 기존 제품의 두 배 수준(10만 원)으로 책정해서 브랜드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부과했고 1865 마니아 중에서도 고급 와인을 원하는 사람이나 명절 선물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독창적 디자인과 합리적 가격이 브랜드 떠받쳐
이와 함께 1865가 한국에서 성공을 거둔 요인 중 하나는 금양 측이 한국 와인 시장의 특성을 간파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당초 한국에는 어중간한 가격대의 와인이 거의 없었다. 2000년대부터 국내에서 와인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1865가 여러 수입상을 통해 보급됐다. 금양은 2003년부터 산 페드로와 1865를 독점 공급받기로 계약을 맺었다. 1865의 가격은 5만 원대로 새로운 시장을 뚫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한국에서는 3만 원대 이하 저가 와인이나 10만 원대 이상의 고가 와인이 잘 팔리는 편이었다. 한마디로 ‘아주 싸거나 혹은 아주 비싸야’ 했다. 프랑스 등 와인 소비가 많은 국가에서 저가 와인의 비중이 80% 이상(물량 기준)인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따라서 한국 시장에서 5만 원대 안팎의 시장은 그야말로 ‘블루오션’이었다.
 
1865는 가격 대비 품질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1865(1865 까르미네르 2007)는 와인을 만화로 다룬 <신의 물방울>의 공동 저자인 나가 다다시 남매가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5만∼6만 원 대 와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 1865는 APEC 공식 와인으로 지정됐고, 2007 와인 챌린지 메달을 획득했다.
 
또 1865 와인 병의 디자인이 육중하고 남성적이며 강한 느낌인 것도 인기에 한몫했다. 와인 병 색깔은 검은색에 가까운데 와인 이름은 병의 상단에 은색 글씨로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병 하단에 부착된 종이 레이블에 와인 명이 작게 쓰여져 있는 다른 와인과는 다르다. 1865의 종이 라벨은 일반 와인의 절반 크기로 와인 병 하단에 작게 붙어 있다. 이는 골프 와인의 이미지와 잘 들어맞는다는 평가다. 또 병 하단에는 빨간 줄이 있어서 공교롭게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를 연상시켰다. 특히 대부분의 와인 라벨은 약 5년을 주기로 바뀌고, 1865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1865는 금양 측의 요청으로 기존 라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수렴한 1865
지금까지 살펴본 다양한 마케팅 요소들은 1865의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축에 기여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전략의 목표는 브랜드 연상이 명확하고 강력하게 전달되도록 브랜드의 다양한 연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체계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강력한 브랜드 자산을 구축하기 위해 8개의 브랜드 연상 요소를 체계적으로 고려한다(▶DBR TIP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8가지 요소 참조).
 
1865의 독특하고 차별화된 라벨 디자인은 고급스러우면서도 모던하고 심플한 1865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상징물(Symbol)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골프의 드림스코어와 연관시켜 1865를 마시는 소비자 본인은 ‘골프를 즐기며 모던한 감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자아 이미지(Self-image)를 연상하게 한다. 즉 소비자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브랜드가 이용되는 것이다. 또 1865는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은데 이는 곧 ‘특별한 지인에게 줄 수 있는 세련된 선물’이라는 관계(Relationship)에 대한 연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이면서도 좋은 품질과 맛을 제공한다는 점은 1865의 합리적인 가치(Value)에 대한 연상을 가능하게 한다. 라인 익스텐션 등을 통해 브랜드를 고급화하면서도 품질 대비 가격 비율을 고려해 ‘1865는 합리적인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갖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골프와인’이라는 1865의 별명은 ‘1865를 마시는 사람은 골프를 즐길 줄 아는 활동적인 사람’일 것이라는 사용자 이미지(Reflection)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주요 연상 요소를 통해 ‘1865는 합리적이고 모던하며 세련된 사람들이 마시는 와인’이라는 핵심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게 됐다.
 
다만 한국 와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높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유통 채널을 확보하고 1865의 소비층을 더욱 넓혀야 하는 점은 과제다. 조상덕 금양인터내셔날 마케팅 전략 부서장은 “‘1865=골프 와인’에 걸맞게 골프장 등 판매 채널을 추가로 확보하는 동시에 ‘1865=대중적인 퀄리티의 와인’임을 감안해 타깃 고객층별 더욱 세분화된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훈 연세대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Journal of Consumer Studies> 등 저명한 저널들에 마케팅과 브랜드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연세대 국제처장도 맡고 있다.

편집자 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홍세화 씨(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22)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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