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브랜드 간 협업 사례
일본의 대표적 저가 브랜드인 유니클로와 하이엔드 디자이너인 질 샌더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J’ 라인은 일명 ‘유니클로 사태’로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10월, +J의 옷이 첫선을 보인 유니클로 명동점, 강남점, 압구정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국에서 세 군데의 유니클로 매장에서만 판매하기 때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하기도 어려워 유니클로는 홍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음알음 소식을 듣고 찾아온 고객들로 매장은 연일 북적댔다. 유니클로 명동점에서만 +J 출시 이후 3일간 6억 5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절제와 순수의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질 샌더와의 협업을 추진한 건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사장의 의지가 강력히 작용했다. 야나이 사장과 유니클로의 연구개발(R&D) 담당 임원은 한동안 패션계를 떠나 있던 질 샌더에게 협업을 제안했고, ‘미래를 향한, 가치가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일치해 교섭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질 샌더는 유니클로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J의 디자인, 제작, 마케팅 등 전 부서에 걸쳐 참여했다. 일본 유니클로의 +J팀과 완전한 의사소통을 위해 정교한 디테일까지 정확하게 전달해줄 수 있는 통역사를 찾는 게 급선무였고, 기대를 충족시키는 통역사를 만나 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J의 성공 요인은 질 샌더의 콘셉트, 디자인력과 유니클로의 상품화 노하우가 결합돼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주는 혁신적인 브랜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수백만 원을 넘는 질 샌더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10만 원 내외의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면서 이러한 상품에 목말라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폭발했다. 이번 협업으로 과거 하이엔드 브랜드, 저가 브랜드 제품만으로는 잡을 수 없었던 소비자들을 공략할 수 있었다.
+J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불황기를 막 벗어난 시대적 상황에도 잘 부합했기 때문이다. 유니클로는 현재 소비자들이 어려운 경제 환경으로 옷 구입비용은 줄이고 있지만 구입하는 옷의 소재나 디자인에 관한 눈높이는 크게 낮추지 않을 것으로 봤다. 오히려 비용은 아끼면서 스타일을 추구하는 절약형 감성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러한 소비자를 공략할 방법으로 질 샌더와의 협업을 추진했다. 질 샌더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은 ‘절제의 시기’에 사람들은 오히려 더 정직하고 순수하고 저렴한 옷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J는 이러한 가치와 부합한다”고 말했다. |
유통 업계 간 협업 사례
브랜드 유통의 대명사인 백화점 간 협업 사례도 나오고 있다. 2008년 10월 롯데백화점이 운용 중인 자사 단독 브랜드(PB·Private Brand)인 훌라가 1년여의 협상 끝에 현대백화점에 입점했다. 곧이어 현대백화점의 PB인 쥬시 꾸뛰르가 롯대백화점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2009년 8월 양사는 퍼스트룩이라는 PB를 공동으로 개발해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경방은 2009년 9월 영등포에 개장한 복합 쇼핑몰 타임스퀘어의 백화점 경영을 경쟁사였던 신세계백화점에 위탁했다.
사실 백화점 업계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로 ‘숙적’이라 부를 정도로 업계 내 경쟁이 치열했다. 자사에만 입점해 있는 패션 브랜드가 타사에 입점하면 퇴점 등의 강력한 보복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 쇼핑몰이 급성장하고 백화점형 아울렛 등의 대체 유통망이 등장함에 따라, 유통 업계 내 경쟁 구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백화점이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패션 등의 브랜드 업체 또한 자체 로드숍과 멀티숍 등 유통망을 늘리고, 디자이너와의 협업 등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키움에 따라 이들에 대한 교섭력(bargaining power)도 예전 같지 않게 됐다. 이런 악재에 고령화와 불황으로 인한 소비 둔화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백화점끼리도 협업을 추진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놀라운 일은 백화점 간 협업이 타 백화점과의 ‘차별화’를 주목적으로 도입한 PB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사실 할인 마트 등의 중저가 생필품 유통 업체에서는 PL(자사 상표) 상품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저성장이 일상화된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백화점 등 중고가 유통 업체의 PB 비중도 점점 높아졌다. 그동안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한국 백화점들도 경쟁 격화와 환경 변화라는 어려움이 겹치면서 매출 및 마진 압박을 받게 됐고, 결국 4, 5년 전부터 PB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런 PB는 △새로운 매출원의 확보 △유명 브랜드 대비 고마진 가능 △경쟁 백화점과의 상품 구색 차별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2008년 이후 저성장으로 인한 소비 위축까지 겹치면서, 직접 구매 또는 생산으로 인한 재고 부담 등의 리스크 증가라는 PB의 약점이 두드러졌다. 이런 환경 변화는 백화점들의 ‘인식의 변화’를 불러왔다. 다른 무엇보다도 PB 상품 자체의 매출 성장과 수익성 확보가 중요해졌다. PB를 담당하는 MD들에서 시작된 이런 변화는 구색 차별화를 중시하던 본사 마케팅 부서의 인식까지 변화시켰다.
롯데백화점 글로벌 패션 부문의 이정훈 MD 개발 담당 매니저는 DBR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브랜드 간 교류는 더 확산돼야 한다. PB를 브랜드 사업의 활성화 측면에서 봐야 할지 백화점 간의 차별화 요소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동종 업계 내 다른 경쟁사와 손을 잡는 전략이 필요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PB를 포기하고 브랜드로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적 변신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결국 백화점 간의 ‘적과의 동침’은 필요에 의해 이뤄진 제휴라고 볼 수 있다. 롯데백화점 글로벌 패션 부문의 오영세 지원팀장은 PB의 상호 입점 이유를 묻자 “훌라는 고급 브랜드인데 현대백화점의 상권이 주로 강남 쪽에 있기 때문에 (롯데백화점에 현대백화점이) 필요하고, 현대백화점은 점포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쪽 브랜드를 파는데) 롯데백화점의 점포를 활용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결국 서로 윈-윈 관계다”라고 설명했다.
양사가 공동으로 도입한 퍼스트룩은 공동 구매로 인한 원가 절감과 양사 매장 활용으로 인한 판매 역량 확대, 편집숍 활용으로 인한 판매비용 감소에 힘입어 3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한다. 당시 롯데백화점 측 담당자였던 이주현 과장은 “양사 담당자끼리 서로 가까워져서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PB를 발굴하는 등 실무 차원의 협업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경쟁 백화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확대됨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협업 사례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유통과 유통 간, 브랜드와 브랜드 간, 그리고 브랜드와 유통 간 경쟁과 협업 구도 또한 보다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