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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브랜드 제조 유통, 神話를 만든 3자 협업

신수정 | 51호 (2010년 2월 Issue 2)
소비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협업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브랜드와 유통 업체 간 협업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 브랜드, 제조 기업, 유통 간 3자 협업이나 동종 업계 내 브랜드와 브랜드의 협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또 브랜드가 자체 유통망을 확대하면서 이를 견제하려는 유통 업체가 서로 손잡고 새 브랜드를 내놓는 협업 모델까지 나타났다.

‘협업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소비재 산업에서 기업 간 협력을 통해 성과를 높인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색조 화장품 브랜드인 ‘조성아 루나’가 꼽힌다. 이 브랜드는 2006년 9월 나온 이후 홈쇼핑 화장품의 역사를 다시 썼다. 첫 방송에서 55분 만에 매진되는 등 출시 5회 연속 매진 기록을 세웠고, 4년 연속 GS홈쇼핑 이미용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출시 이후 38개월 만에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색조 제품의 특성과 전체 화장품 시장의 20%에 못 미치는 시장의 규모를 감안했을 때 조성아 루나의 대박은 이례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루나의 신화가 가능했던 건 아티스트 브랜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루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제작을 담당한 애경, 조성아라는 걸출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홈쇼핑 업계 1위인 GS홈쇼핑 등 3자 간의 협업이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상호 보완적인 역량의 조합
2004년 당시 화장품 시장은 수입 브랜드와 저가 브랜드숍 상품으로 양분돼 있었다. 종합 생활 용품과 화장품 전문회사인 애경은 이 틈바구니에서 수입 브랜드의 트렌디한 감각과 높은 품질을 갖췄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2004년 10월, 제품 개발 및 콘셉트 연구에 착수했다. 애경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홈쇼핑 유통 채널을 활용한 아티스트 브랜드를 만들기로 하고 협업 파트너를 찾았다. 유통 채널 협업 파트너로는 홈쇼핑 업계 1위였던 GS홈쇼핑으로 일찌감치 정했다. 아티스트로는 소비자 사이에서 인지도가 있으면서, 홈쇼핑 방송에 직접 출연해 제품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언변이 뛰어난 인물을 찾았다. 두 명의 후보로 좁혀진 가운데 아티스트 브랜드에 대한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조성아 원장을 낙점했다.
 
브랜드, 제조 기업, 유통의 3박자가 맞아떨어진 조성아 루나는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당시 홈쇼핑 채널을 통해 주로 판매된 화장품은 커버덤, 커버퀸과 같은 베이스 제품이었다. 조 원장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1세대로 17년간 1만 명이 넘는 여성을 만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루나에 활용했다. 일례로 붓으로 펴 바르는 파운데이션, 에센스 성분이 함유된 듀어 컨실러, 3가지 색의 제형을 한 용기에 담아 하이라이트와 섀도우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멀티 크리미 섀도우는 당시 다른 화장품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제품들이다. 백화점과 로드숍이 아닌 홈쇼핑과 온라인을 통해 판매해 유통 마진을 줄이면서 8∼11종 색조 풀 라인을 9만 9000원에 판매했다.
 
조 원장은 “애경이 기존 브랜드 활용에 신경 쓰기보다는 아티스트 브랜드에 대한 시장성과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진 기업이기 때문에 협업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품 품질이 점점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브랜드가 가질 수 있는 경쟁 우위는 바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터치해주는 것인데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티스트”라며 “루나의 성공은 아티스트의 진정성을 제품에 100% 구현할 수 있도록 브랜드, 제조 기업, 유통의 3자가 협업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말했다.

보완적 서비스로 잠재 욕구 충족
일반적으로 히트 상품은 소비자 자신도 잘 몰랐던 ‘잠재 욕구(unmet needs)’를 채워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루나는 홈쇼핑이라는 유통 채널과 협업함으로써 기존 화장품이 제공해주지 못했던 보완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개발자인 조 원장은 루나 출시 이후 매회 방송에 직접 출연해 쇼핑 호스트와 함께 메이크업 테크닉을 자세히 알려줬다. 일반 화장품 브랜드들이 고객에게 제품을 팔고 알아서 화장하라고 했지만 루나는 소비자들이 필요로 한 메이크업 노하우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상위 욕구(higher-needs)를 해결해줬다.
 
이 과정에서 GS홈쇼핑 역시 단순히 방송 스케줄을 잡아주는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방송 콘셉트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조 원장, 애경과 함께 고민했다. 일례로 어떤 상품의 시연에 소비자들이 가장 매력과 관심을 느끼는지, 방송을 통해 소비자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화장법은 무엇인지를 사전 조사해 방송에 반영했다.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못 보거나, 방송을 보고도 잊어버리는 소비자들을 위해 제품별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이 곁들여진 10장 내외의 카탈로그 발송도 잊지 않았다.
 
브랜드 간 협업 사례
 
일본의 대표적 저가 브랜드인 유니클로와 하이엔드 디자이너인 질 샌더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J’ 라인은 일명 ‘유니클로 사태’로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10월, +J의 옷이 첫선을 보인 유니클로 명동점, 강남점, 압구정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국에서 세 군데의 유니클로 매장에서만 판매하기 때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하기도 어려워 유니클로는 홍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음알음 소식을 듣고 찾아온 고객들로 매장은 연일 북적댔다. 유니클로 명동점에서만 +J 출시 이후 3일간 6억 5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절제와 순수의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질 샌더와의 협업을 추진한 건 유니클로 야나이 다다시 사장의 의지가 강력히 작용했다. 야나이 사장과 유니클로의 연구개발(R&D) 담당 임원은 한동안 패션계를 떠나 있던 질 샌더에게 협업을 제안했고, ‘미래를 향한, 가치가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일치해 교섭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질 샌더는 유니클로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J의 디자인, 제작, 마케팅 등 전 부서에 걸쳐 참여했다. 일본 유니클로의 +J팀과 완전한 의사소통을 위해 정교한 디테일까지 정확하게 전달해줄 수 있는 통역사를 찾는 게 급선무였고, 기대를 충족시키는 통역사를 만나 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J의 성공 요인은 질 샌더의 콘셉트, 디자인력과 유니클로의 상품화 노하우가 결합돼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주는 혁신적인 브랜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수백만 원을 넘는 질 샌더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10만 원 내외의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면서 이러한 상품에 목말라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폭발했다. 이번 협업으로 과거 하이엔드 브랜드, 저가 브랜드 제품만으로는 잡을 수 없었던 소비자들을 공략할 수 있었다.
 
+J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불황기를 막 벗어난 시대적 상황에도 잘 부합했기 때문이다. 유니클로는 현재 소비자들이 어려운 경제 환경으로 옷 구입비용은 줄이고 있지만 구입하는 옷의 소재나 디자인에 관한 눈높이는 크게 낮추지 않을 것으로 봤다. 오히려 비용은 아끼면서 스타일을 추구하는 절약형 감성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러한 소비자를 공략할 방법으로 질 샌더와의 협업을 추진했다. 질 샌더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은 ‘절제의 시기’에 사람들은 오히려 더 정직하고 순수하고 저렴한 옷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J는 이러한 가치와 부합한다”고 말했다.
갈등 봉합보다 치열한 논쟁으로 경쟁력 키워
루나의 기획 및 제작까지 모든 단계는 애경, GS홈쇼핑, 조성아 원장팀에서 모인 20여 명으로 구성된 루나 태스크포스팀(TFT)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애경에서는 마케팅 3명, 영업 담당 2명, 연구소와 개발 담당 6명, 조성아 원장 쪽에서는 4명, GS홈쇼핑에서는 전담 MD가 참여하고 있다. 3년 넘게 진행된 협업 과정에서 TFT 멤버 교체가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같이 호흡을 맞춰오면서 강력한 팀워크를 발휘하고 있지만 매 시즌 진행되는 콘셉트 룩 아이디어 회의나 제품 개발 과정에서는 종종 충돌이 일어난다.
 
이들 3자 간 의견 충돌 시 해결법은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말고, 치열하게 싸우자’이다. 일정한 시점에서 어느 한쪽이 일부분 양보해야 협업이 속도를 내는 동종 업계 간 협업과 달리 브랜드, 제조 기업, 유통 등 이종 업체 3자 간 협업에서는 쉽게 양보하지 않으면서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제시해 각자의 핵심 역량이 제품에 최대한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공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루나의 론칭 시작부터 TFT 멤버로 일하고 있는 애경의 정지은 화장품 마케팅팀 과장은 “조성아 원장은 아티스트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놓고, 애경은 그 아이디어를 최대한 구체화하면서 소비자 언어로 풀어내기 위한 노력을 한다. GS홈쇼핑은 어떤 콘셉트와 아이디어가 방송의 스토리텔링에 잘 맞을지 고민하면서 그에 맞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서로 진정성을 다해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내놓다 보면 어느 순간 3자가 만족할 만한 최고의 해결책을 찾아낸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이러한 과정을 각 협업 주체가 가진 핵심 역량을 제대로 노출시키기 위한 작업이라고 본다. 조 원장은 “아이디어를 둘러싸고 3자 간 갈등이 고조되면 어느 순간에는 조금씩 양보하면서 평균점을 지향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기고 고객들에게 무한한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소구점, 즉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를 확보하면 그 시즌의 제품은 성공한다”고 말했다.
 
유통 업계 간 협업 사례
 
브랜드 유통의 대명사인 백화점 간 협업 사례도 나오고 있다. 2008년 10월 롯데백화점이 운용 중인 자사 단독 브랜드(PB·Private Brand)인 훌라가 1년여의 협상 끝에 현대백화점에 입점했다. 곧이어 현대백화점의 PB인 쥬시 꾸뛰르가 롯대백화점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2009년 8월 양사는 퍼스트룩이라는 PB를 공동으로 개발해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경방은 2009년 9월 영등포에 개장한 복합 쇼핑몰 타임스퀘어의 백화점 경영을 경쟁사였던 신세계백화점에 위탁했다.

사실 백화점 업계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로 ‘숙적’이라 부를 정도로 업계 내 경쟁이 치열했다. 자사에만 입점해 있는 패션 브랜드가 타사에 입점하면 퇴점 등의 강력한 보복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 쇼핑몰이 급성장하고 백화점형 아울렛 등의 대체 유통망이 등장함에 따라, 유통 업계 내 경쟁 구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백화점이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패션 등의 브랜드 업체 또한 자체 로드숍과 멀티숍 등 유통망을 늘리고, 디자이너와의 협업 등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키움에 따라 이들에 대한 교섭력(bargaining power)도 예전 같지 않게 됐다. 이런 악재에 고령화와 불황으로 인한 소비 둔화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백화점끼리도 협업을 추진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놀라운 일은 백화점 간 협업이 타 백화점과의 ‘차별화’를 주목적으로 도입한 PB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사실 할인 마트 등의 중저가 생필품 유통 업체에서는 PL(자사 상표) 상품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저성장이 일상화된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백화점 등 중고가 유통 업체의 PB 비중도 점점 높아졌다. 그동안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한국 백화점들도 경쟁 격화와 환경 변화라는 어려움이 겹치면서 매출 및 마진 압박을 받게 됐고, 결국 4, 5년 전부터 PB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런 PB는 △새로운 매출원의 확보 △유명 브랜드 대비 고마진 가능 △경쟁 백화점과의 상품 구색 차별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2008년 이후 저성장으로 인한 소비 위축까지 겹치면서, 직접 구매 또는 생산으로 인한 재고 부담 등의 리스크 증가라는 PB의 약점이 두드러졌다. 이런 환경 변화는 백화점들의 ‘인식의 변화’를 불러왔다. 다른 무엇보다도 PB 상품 자체의 매출 성장과 수익성 확보가 중요해졌다. PB를 담당하는 MD들에서 시작된 이런 변화는 구색 차별화를 중시하던 본사 마케팅 부서의 인식까지 변화시켰다.
 
롯데백화점 글로벌 패션 부문의 이정훈 MD 개발 담당 매니저는 DBR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브랜드 간 교류는 더 확산돼야 한다. PB를 브랜드 사업의 활성화 측면에서 봐야 할지 백화점 간의 차별화 요소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동종 업계 내 다른 경쟁사와 손을 잡는 전략이 필요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PB를 포기하고 브랜드로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적 변신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결국 백화점 간의 ‘적과의 동침’은 필요에 의해 이뤄진 제휴라고 볼 수 있다. 롯데백화점 글로벌 패션 부문의 오영세 지원팀장은 PB의 상호 입점 이유를 묻자 “훌라는 고급 브랜드인데 현대백화점의 상권이 주로 강남 쪽에 있기 때문에 (롯데백화점에 현대백화점이) 필요하고, 현대백화점은 점포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쪽 브랜드를 파는데) 롯데백화점의 점포를 활용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결국 서로 윈-윈 관계다”라고 설명했다.
 
양사가 공동으로 도입한 퍼스트룩은 공동 구매로 인한 원가 절감과 양사 매장 활용으로 인한 판매 역량 확대, 편집숍 활용으로 인한 판매비용 감소에 힘입어 3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한다. 당시 롯데백화점 측 담당자였던 이주현 과장은 “양사 담당자끼리 서로 가까워져서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PB를 발굴하는 등 실무 차원의 협업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경쟁 백화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확대됨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협업 사례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유통과 유통 간, 브랜드와 브랜드 간, 그리고 브랜드와 유통 간 경쟁과 협업 구도 또한 보다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편집자 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윤영 씨(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24세)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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