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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트렌드 변화와 대응 전략

소비자 마음속의 ‘빅3’를 노려라

이민훈 | 50호 (2010년 2월 Issue 1)
이번 경기 침체기도 과거 미국과 일본에서 그러했듯이 소비자의 태도와 가치관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소비자들의 알뜰 소비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황기 소비자는 가격에 큰 비중을 부여하기 때문에 설혹 부가 기능이나 서비스가 줄더라도 저가 제품을 선택하곤 한다. 가격 거품을 제거한 맥도날드 커피, 넷북(노트북) 등이 인기를 모은 것은 이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PB) 상품, 패스트 패션 등 저가 핵심 기능형 상품의 매출이 증가한 것은 이번 불황기의 전 세계적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더라도 세계 경제 패턴 및 질서가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즉, ‘고용 없는 저성장’과 더불어 이례적인 경제위기의 충격 경험이 글로벌 소비 시장 전반에 확산되는 ‘뉴 노멀’ 시대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뉴 노멀 시대에는 신중하고 절제된 소비 패턴이 어느 정도 경기가 회복된 이후까지 이어지고 가격 대비 가치를 꼼꼼히 따져보는 ‘가치 소비’가 새로운 소비 성향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경기 변화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가격’ 외에도 다양한 의미의 ‘혜택’을 포함한다. 즉, ‘가치(Value)=혜택(Benefit)/가격(Cost)’이라고 볼 때 가격을 줄이는 방법 외에도 여러 혜택을 늘리는 가치 지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글로벌 소비자가 지향하는 주요 혜택은 무엇일까? 최근 글로벌 메가 트렌드로 정착한 ‘친환경’ ‘하이브리드’ ‘안전과 보안’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소비 트렌드는 최근 불황기의 경험과 글로벌 메가 트렌드의 복합적인 영향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동인에 의해 경제위기 후 부상할 뉴 노멀 소비 트렌드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1.네오 럭셔리(Neo-Luxury):일반 제품과 럭셔리의 경계 해체
경기가 회복되고 구매력이 향상되면 단순 저가가 아닌, 가격이 다소 상승하더라도 핵심 기능에 ‘플러스 알파’ 요소를 겸비한 상품이 선호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차별화된 인터페이스 기능이나 맵시 있는 스타일 등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부가해야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PB 상품도 무조건 저가보다는 기존 스탠다드급 스타일에 이코노미급 가격을 갖춘 업그레이드 PB 상품이 인기를 끌 것이다.
 
이처럼 가능한 한 기존 제품의 거품을 제거하고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반 제품과 럭셔리의 경계가 급속히 해체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고가·고품격을 핵심으로 하는 럭셔리 소비는 금번 불황 중 세계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럭셔리 업계의 구조 개편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설립 이후 30여 년간 승승장구하던 독일 명품 패션 그룹 에스카다가 2009년 8월 파산했는가 하면, 프라다도 2008년 말 경영 악화로 인해 명품 최대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례적으로 예정에 없던 할인 행사를 단행했다. 경기 침체에도 끄떡없을 것처럼 보였던 샤넬도 심각한 매출 부진으로 경영에 압박을 받으면서 2008년 말 총 생산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200명을 해고했다. 또 럭셔리에 대한 소비자 태도가 과거 맹목적 추종에서 최근 지극히 이성적으로 돌변함에 따라, 일본에서는 1990년대 장기 불황 때에도 위풍당당했던 명품 거리 긴자(銀座) 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긴자 중심부 마쓰자카야 백화점 일대에는 스웨덴 H&M, 자라 등 해외 중저가 캐주얼 의류업체들이 들어섰다. ‘일본 명품 거리’의 대명사인 긴자가 ‘중저가 거리’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10월에는 캐주얼 의류에 주력하는 유니클로가 긴자점을 열었고 2009년 12월 미국 중저가 캐주얼 의류 아베크롬비&피치가 긴자에 아시아 1호점을 열었다. 이탈리아 명품 구치가 철수한 매장에 2010년 상반기 미국 중가 패션 브랜드 포에버21이 입점할 예정이며,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이 긴자 2호점 개점을 포기한 건물에는 미국 캐주얼 브랜드 갭이 2011년 2월 신규 점포를 열 계획이다.
 
따라서 긴자의 명품 시대가 지나고 대중 시대가 열렸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VIP용 럭셔리로 인기를 누렸던 수입차 시장이 침체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2009년 1∼9월 말까지 수입차 등록 대수는 4만2645대로 전년 같은 기간(5만381대)보다 15.4%나 감소했다.
 
이처럼 일반 제품의 끊임없는 업그레이드와 명품의 재편 현상은 두 시장 간 간극이 급격히 좁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심플하고 본원적인 매력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양 제품의 지향 가치가 완전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럭셔리 브랜드든 아니든 가격이 다소 오르더라도 스타일, 디자인 등 핵심 기능과 ‘플러스 알파’를 겸비한 상품이 선호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의 거품 기능과는 차별화된 인터페이스 기능이나 맵시 있는 스타일을 갖춘 브랜드가 소비자의 마음을 차지할 수 있다.

 
2.헬스 홀리즘(Health Holism) 1 조화·안심·감성 욕구 확산
2009년 전후의 경제위기 기간 중 정신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활 전반에서 육체와 정신의 균형이 잡힌 건강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사이코패스형 범죄, 유명인의 자살 등을 목격하면서 극도의 긴장감, 소외감, 우울증을 방치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최근 5년간 국내 항우울제 소비는 52% 증가했으며 2 , 세계보건기구(WHO)는 향후 20년 내에 우울증이 에이즈나 암보다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3
 
따라서 2010년에는 경제위기 중 누적된 스트레스와 퇴직 및 실직 등으로 인한 심리적 내상을 치유하기 위한 소비가 커질 전망이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완화되면서 퇴직으로 인한 경제적 및 심리적 상실감, 공허감을 치유하기 위해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약물 치료, 집중력 클리닉, 숙면 관련 상품 시장이 확대될 것이다. 몸에 대해서도 체격 개선, 질병 관리뿐만 아니라 만성 피로, 과다 영양, 운동 부족 등 생활 습관 개선이 관심사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여분의 염분이나 지방 성분을 배출해주는 음료, 수면 중 다리에 붙여 불필요한 성분을 빨아내는 ‘수액 시트’ 등 다양한 상품들이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에서는 2010년부터 베이비붐 세대 4 의 은퇴가 본격화됨에 따라 이 같은 욕구 변화가 더욱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1955년생이 55세를 맞는 2010년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경제 활동 현장에서 퇴직하는 인구는 무려 31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는 한국보다 약 10년 정도 앞서는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로서 사회의 중심에 서 있기는 한국과 마찬가지다. 단카이 세대는 약 680만 명으로 일본 인구 가운데 5%를 차지한다. 1960년대 후반에는 학생 운동 주역이었고 이후 산업 전사로서 고도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대도시 교외 뉴타운 건설과 마이카 붐을 불러일으킨 세대이다.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1990년대 초 단카이 세대의 은퇴 및 실직이 내수 시장 위축 및 투자 감소를 야기하여 ‘잃어버린 10년’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인구 비중만 보더라도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인한 사회경제적 영향은 일본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체 인구 중 무려 14.6%를 차지하는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활동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다. 1970, 1980년대 과밀 학급과 대학 정원의 증가를 야기했고 1990년대 자가 운전과 아파트 시대를 본격화시킨 주역이기도 했다. 또한 이들의 소비 성향에 따라 다양한 상품과 공간들이 창조되는 등 한국 소비 문화 창조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2010년 첫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이들이 지향하는 조화·안심·감성 욕구가 전체 소비 시장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특히 최근 광우병, 조류 독감, 멜라민 파동 등 각종 사건·사고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신뢰 및 안심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브랜드 신뢰가 곧 마케팅 성과 창출을 위한 핵심 요건으로 지적됨에 따라 정부 및 기업에서는 이 같은 욕구에 부합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추세이다. 정부는 광우병 사태 이후 도입한 쇠고기 및 쌀에 대한 원산지 표시제를 모든 음식점을 상대로 확대 실시할 예정이다. 기업도 제조 및 유통의 각 단계에서 제품 관련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여 신뢰감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우유는 2009년 7월 14일부터 유통 기한과 제조일자 병행 표기로 소비자에게 안전과 안심을 제공함으로써 식음료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식품 중심의 안전성 검증 트렌드는 정보기술(IT)과 연계되어 향후 주거 시설, 의류, 자동차 등으로 확산될 예정이다.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주거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양적으로 커지는 것 외에도 질적으로 안도 및 안락함을 증진하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폐쇄회로TV(CCTV) 등 주거 안전 장치 서비스에 대한 선호가 증가할 전망이다. 더욱이 2009년 경찰관 1인당 국민 수는 50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점을 고려할 때 2010년 이후 가정용 무인 전자 경비 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 세콤은 가방 제조업체 교와와 제휴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가 내장된 가방을 개발하고, 유사 시 경호 요원을 파견하는 안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이 같은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조화 및 안심과 더불어 감성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최신 기술과 융·복합 제품을 추종하던 디지털 소비 트렌드는 경제위기와 함께 단순 기능 제품에 대한 욕구가 확산되면서 다소 주춤해졌다. 기술적 성능 자체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고객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노년층은 빠른 신기술 교체 주기에 적응하기 어려운데도 ‘세대 간 기술 격차(Tech Divide)’를 당연시해왔다. 그러나 실버층에 편입된 베이비붐 세대의 요구가 증가하면서 신기술만 강조된 상품보다는 사용자의 감성적 체험과 혜택을 배려한 상품이 대거 등장하여 인기를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반다이가 내놓은 인형 ‘프리모 푸엘(Primo Puel)’은 원래 다른 계층을 타깃으로 개발됐지만, 탁월한 정서적 교감 능력 때문에 노인층으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100만 개 이상 팔렸다. 국내에서도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강화한 IT 상품들이 고독한 실버층에게 큰 인기를 누릴 수 있다. 실버층을 위해 글자 크기를 키운 휴대전화처럼 고도의 기술을 담고 있으면서도 기술의 얼굴을 하지 않은 ‘프티 테크(Petit Tech) 상품’이 히트할 가능성이 높다. 5
 
3.펀버전스(Funvergence·Fun+Convergence):일상에 지칠수록 ‘펀(Fun)’이 소비의 기본 요건화
2009년 경제위기 중 소비자의 항(抗) 스트레스 욕구가 부각되면서 생각 없이 편하게 웃을 수 있는 문화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었다. ‘개그콘서트’ ‘내조의 여왕’ 등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 등은 펀(Fun)을 소재로 하여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이다. 유통업체, 외식업체들도 소비자 마음을 흥겹게 하고 고객을 효과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Fun 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부산 ‘센텀시티’는 ‘서커스형 피트니스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자의 쇼핑과 Fun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 원정 쇼핑객을 대거 유치했다. 외식업체들은 개그맨을 브랜드명으로 내걸거나 비키니 차림의 고객에게 식음료를 무료 제공하고, 종업원을 디즈니 만화 캐릭터로 변신시키는 등 다양한 Fun 기법을 활용하여 주목을 끌었다.
 
제품 보호용에 국한되었던 제품 패키지나 정보 제공 기능에 초점을 두었던 광고의 주제도 ‘유머’ 중심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2008년 10월∼2009년 5월까지 히트한 광고 중 59%가 유머 및 감성에 호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6 유명 모델을 내세운 광고에 대한 선호는 줄고 웃음 화법으로 다가선 광고가 대인기를 끈 것이다. 대표적으로 KT가 선보인 쿡, 올레 등은 유머 코드를 적절히 활용한 시리즈 광고로 호감을 얻었다.
 
불황의 한가운데에서는 당장의 고통을 잊게 하는 ‘유머’ 중심의 Fun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2010년부터는 브랜드 전략 차원에서 다양한 Fun이 개발·활용될 전망이다. 경제적 안정과 더불어 심리적 안정을 회복한 소비자는 감각적이고 오락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이외에 감성적ㆍ감동적 Fun을 추구하는 경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황 중 일시적인 손님몰이를 위해 활용되었던 단기 Fun 이벤트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여 ‘브랜드 스토리가 담긴 장기 Fun 이벤트’가 주목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예컨대 아모레퍼시픽이 2009년 9월 연 브랜드 체험 공간 ‘아리따움’은 여성의 미와 행복을 지원한다는 브랜드 콘셉트하에 다양한 제품 체험, 피부 상담, 미적으로 뛰어난 휴식 공간을 제공하여 소비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불황기는 외출 활동(쇼핑, 외식)을 즐기기보다 집안에서 가족 혹은 지인과 인터넷, 게임 등의 활동을 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경기가 회복되면 해외여행 붐이 다시 형성되고 자연 친화 프로그램 및 문화 예술 상품 체험을 통한 Fun 추구가 증가할 전망이다.향후 환율이 안정되고 위험 요소가 줄어들어 해외여행이 활성화되면 패키지형 구경 관광(sight & site seeing)보다는 체험하고 탐험하는 관광 및 체류형 생태 관광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전북 ‘에움길’ 등 도보 여행은 금번 경제위기를 통해 인기를 끈 체험 여행으로 향후 해외여행에서도 얼마든지 적용·확산될 만한 콘셉트다. 특히 제주 올레길과 같은 도보 여행의 인기는 관광지 증명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여행에서 다양한 가치를 깊이 있게 체험하는 여행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해외여행의 대중화로 남들과 차별화된 여행 경험을 갖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새로운 관광에 대한 욕구가 갈수록 증대되고 있음에 비추어볼 때, 향후 하나의 장소 혹은 하나의 여행 형태(식도락 여행, 도보 여행 등)를 집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Fun을 찾는 마니아 여행가들도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소비자 마음속을 공략하라
기업들은 이 같은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기업들은 소비 트렌드의 변화 양상을 예의주시하면서 각 트렌드별 확산 시기를 보고 선별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불황기 생존에 최적화된 기업일수록 경기 호전을 대비해 더 긴장할 필요가 있다. 불황기에 효과를 거두었던 전략들이 경기 회복기에는 전혀 통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적인 업종 내 경쟁뿐 아니라 소비자를 중심으로 전 업종이 경쟁하는 ‘업종 간’ 무한 경쟁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이번 불황으로 주머니 사정이 악화된 소비자는 공급자 중심의 업종 구분보다는 상품군(群)을 뛰어넘어 소비 대상 전체를 구매 대안으로 고려하고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핵심 대안만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컨대 게임기, 놀이동산, 외식, 캐주얼 의류는 업종은 다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스트레스 해소’라는 동일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군이었기 때문에 업종을 넘어 접전을 벌였다. 따라서 언제 어느 분야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존 ‘제품군 내 Big 3’라는 일반적인 목표를 ‘소비자 마음 내의 Big 3’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즉 특정 업종 내에서의 시장 점유율 3위권을 의미하는 기존 Big 3 개념이 아니라 업종을 초월하여 소비자 마음속에서 Big 3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역량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타 업종 및 타 업체의 강점까지도 기꺼이 결합하는 지혜로운 하이브리드 접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첫 작업이 있는데, 바로 고객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다. 때때로 브랜드들 중에는 소비자 욕구를 예측하고 맞추는 노력을 아예 불가능한 일로 여기며 한탄한다. 일부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각종 프로모션 기법들을 동원하며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일인 소비자에 대한 끈질긴 관심은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영국 허트포드셔대 심리학 교수인 리처드 와이즈먼은 자신의 책에서 한 보일러공의 얘기를 전한 적이 있다.7) 어떤 남자가 보일러가 고장이 나자 직접 고치려고 해보았다. 몇 달이나 낑낑댔는데도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고치는 것을 포기하고 전문가를 불렀다. 그런데 기술자가 와서 별다른 조치 없이 보일러 옆구리를 툭 한 번 쳤더니 기적같이 보일러가 돌아가는 게 아닌가! 기술자는 높은 수리비를 청구했다. 남자는 쉽게 고쳐놓고는 이렇게 비싼 값을 부를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기술자는 그 수리비는 자기가 보일러를 툭 치는 데 걸린 시간에 대한 비용이 아니라, 정확하게 어디를 쳐야 하는지 오랜 경험을 통해 알아내는 데 걸린 세월에 대한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많은 평범한 브랜드들은 시장에 등장하자마자, 그것도 턱없이 높아 보이는 가격에 팔려나가 소비자 품에 안기는 소수 특별한 상품들을 보면서 한없는 부러움과 더불어 의구심을 느낀다. 어떻게 저렇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뭔가 속임수를 쓴 것은 아닐까? 관점을 바꾸어 찬찬히 생각해보자.
 
이야기 속의 보일러공은 어떻게 했기에 보일러 옆구리를 툭 쳐서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그가 보일러의 문제를 그렇게 간단히 해결해낼 수 있게 되기까지 그는 아마도 보일러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때로는 밥을 거르고 잠을 안 자면서까지 보일러 문제에 끙끙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소비자와 기업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에게 변함없이 선택받는 특별한 관계로 거듭나려면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그 관심이 깊고 오래 지속될수록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만족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그 이상으로 절감될 것이다.
‘싸고 좋은 상품’에 눈뜬 고객 어쩌지?
 
이 글은 맥킨지쿼털리 2009년 12월 호에 실린 ‘How the recession has changed US consumer behavior’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벳시 볼렌·스티브 칼로티·리즈 미하스
 
경기 침체로 경제 환경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수많은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 역시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소비자들은 이제 값비싼 상품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고급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많은 기업들은 과거 경기 침체기 이후의 상황처럼 소비자의 태도가 빠르게 정상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맥킨지의 최근 조사 a 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모든 상품군에서 평균적으로 생활 소비재(CPG) 소비자의 18%가 저가 브랜드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렴한 제품으로 전환한 소비자 가운데 46%는 기대했던 것보다 품질이 좋았다고 응답했으며, 이들 중 대다수는 기대 이상이었다고 응답했다. 그 결과 저렴한 상품으로 바꾼 소비자 중 34%는 고가 상품을 더는 선호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41%는 고급 브랜드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지불한 돈만큼 값어치를 하지는 못한다”고 답했다.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가 변화하고 있다. 그 비율은 고가 브랜드에서 전환한 소비자의 수, 저렴한 상품 사용에 대한 이들의 경험, 이들이 구매 의향을 전환하는 방식 및 상품 카테고리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맥주 구매자 가운데 저렴한 브랜드로 전환한 소비자는 12%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31%는 예상했던 것보다 만족도가 높다고 답했는데, 이는 전체 맥주 구매자 가운데 약 4%만이 소비 행태를 바꾸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감기약 및 알레르기 약 구매자의 20% 이상이 저렴한 제품을 사용해보았으며 이 가운데 48%는 예상보다 만족도가 높았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체 감기약 및 알레르기약 구매자 가운데 약 10%가 소비 행태를 바꾸었음을 의미한다.
 
소비 행태를 바꾸는 소비자의 비율이 1%만 돼도 브랜드 수익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 업종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심각한 일이다. 브랜드 선도 업체들이라 해도 이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올해 초 P&G는 선도 상품인 세탁용 세제 타이드의 저가 버전인 타이드 베이식을 내놨다. 이는 소비자들이 저렴한 브랜드로 전환하면서 타이드의 매출이 감소하자 내놓은 조치다. b

 
소비자의 태도 변화에 대처하려는 기업들은 현재 소비 행태의 변화가 일어나는 원인을 설명하는 경제 이론을 이해해야 의사결정에 참고할 수 있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과 이들이 받아들이는 가치에 대한 인식 간의 관계에 변화가 있을 때 소비 행태의 변화가 발생한다고 가정한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소비자가 고급 브랜드 제품(제품 A)에서 충분한 가치를 인식한다면, 그 기초적인 브랜드(제품 B)보다 값이 더 비싸다고 해도 고급 브랜드를 선호한다. 그러나 경기 침체기에는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려 하므로 수요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지고 일부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제품 A에서 제품 B로 이동한다.
 
과거에는 경기가 회복되면 고급 브랜드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되살아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맥킨지의 조사 결과 경기가 회복되면서 소비자의 지불 의향이 회복된다 해도 저가 제품 및 고가 제품의 가치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이미 변했기 때문에 구매하려는 제품도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이는 프리미엄 생활 소비재 생산 업체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소비자들이 고급 브랜드를 고수해야 할 정당한 사유를 찾지 못하면 프리미엄은 점차 사라지고, 상품 카테고리 내의 경쟁이 주로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순간까지 이익률의 감소가 진행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가공육과 슬라이스 치즈이다. 특정 제품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이 상품 카테고리에서는 가격에 의한 브랜드 차별화의 여지가 크지 않다. 그 결과 이 카테고리의 총 이익률은 다른 브랜드 식품보다 낮다.
 
생활 소비재 부문에서 맥킨지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소비자 태도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두 가지 분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첫째는, 일회성 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상세한 수준에서 상품 카테고리 내 경쟁 구도를 파악하기 위한 상황 평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평가에는 소비자들의 구매 태도 및 동기를 분석함으로써 소비자의 요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이러한 변화가 저가 및 고가 제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맥킨지 조사에서 대다수 소비자들은 저가 브랜드의 품질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다고 응답했지만, 그 이유는 각각 달랐다. 휴대용 생수 구매자의 33% 이상은 고가 브랜드가 제공하는 편익이 더는 필요치 않다고 응답했고, 수분 크림 소비자의 32%는 저가 브랜드를 사용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만족도가 높았다고 대답했다. 기업들은 추가적인 편익을 위한 소비자의 지불 의사를 측정하기 위해 전형적인 소비자 태도의 원칙이 어떻게 변화했는지(그림에서 선의 기울기로 표시), 소비자의 제품 사용 경험과 이들 제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파악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소비자 역학 및 경기 회복세에 편승할 수 있는 제품을 중심으로 실행 계획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가격과 편익 간, 다른 한편으로는 이익과 판매량 간의 상충 관계를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제품 포지션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생수의 경우 브랜드의 추가적인 편익에 더는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저가 제품을 내놓는 방안이 최선의 대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결정에는 이보다 폭넓은 카테고리 전략이 고려돼야 한다. 우리는 회복의 가능성이 낮거나, 브랜드 또는 카테고리의 경제성을 희생한 다음에만 회복할 수 있는 카테고리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면서, 신속하고 완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카테고리를 규정하고 이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면 이는 기울기의 변화가 적고 저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가 낮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은 생활 소비재 이외의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값비싼 제품으로부터 소비자들이 이탈하는 추세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맥킨지가 소비자 가전 분야를 조사한 결과, 최첨단 기술이 적용돼 다양한 기능을 갖춘 값비싼 제품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핵심 기능만을 갖춘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가 60%에 이르렀다. c 이와 유사하게 건축 자재 업계에서도 고가 디자인보다 단순한 기본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소비자 태도가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기업만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d 이는 경쟁사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차별화하는 기업만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벳시 볼렌은 맥킨지 시카고 사무소의 컨설턴트다.
스티브 칼로티리즈 미하스는 시카고 사무소에서 각각 대표와 이사로 일하고 있다.
 
  • 이민훈 | - (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브랜드, 기업이미지, 유통전략 연구
    - 삼성SDI 상품기획 및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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