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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보석에 푹 빠진 명품 패션

심정희 | 47호 (2009년 12월 Issue 2)
 

 
얼마 전 루이뷔통은 ‘람므 뒤 보야주(L’ame Du Voyage, 여행의 정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라는 하이 주얼리(초고가 보석) 컬렉션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를 디자인한 로렌즈 바우머는 “여행이나 산책할 때 머릿속에 떠오른 공상이나 꿈에서 본 장면 등을 보석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말대로 이 컬렉션은 일반 주얼리 브랜드와 달리 독특한 아이템들로 채워졌다. 하늘에서 화려하게 터지는 폭죽을 다이아몬드와 루비 등으로 표현한 목걸이, 만개한 벚꽃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팔찌 등은 너무나 화려한 나머지 예술 작품이나 장난감 같이 보이기도 한다. 일반 주얼리 디자인의 경계선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측면에서 1998년 크리스찬 디오르에서 내놓은 하이 주얼리 컬렉션과도 일맥상통한다.
 
 

 
“루이뷔통은 가방이나 신발로 유명한 브랜드 아냐? 크리스찬 디오르도 그렇고…” 라는 의문을 품을 이들이 많을 것이다. 패션 명품업체가 고가의 하이 주얼리를 생산하는 일은 누가 봐도 이례적이다. 때때로 한 제품에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을 능가하는 하이 주얼리는 세공 과정이 지극히 까다로운데다 가방이나 신발보다 훨씬 장인 정신이 중시되는 품목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대손손 보석상으로 명성을 쌓아온 주얼리 전문 브랜드 즉, 까르띠에, 반 클리프 아펠, 쇼메 등만이 내놓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람므 뒤 보야주’로 루이뷔통까지 하이 주얼리 시장에 뛰어들자 샤넬, 디오르, 에르메스 등 이름난 패션 명품업체들이 하이 주얼리 라인을 갖추는 일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왜 패션 명품업체들이 하이 주얼리 시장으로 속속 진출하는 걸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첫 번째 이유는 매출이다. 제품 하나의 가격이 보통 수억 원에 이르는 하이 주얼리는 하나만 팔아도 가방이나 신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이윤이 남는다. 패션 명품업체의 경우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고객을 다수 확보하고 있고, 그들 중 일부는 하이 주얼리를 향유할 경제적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므로 진입 장벽 또한 낮은 편이다. 신발이나 가방을 사는 고객 중 0.1%만이라도 반 클리프 아펠이나 쇼메 대신 자신들의 브랜드에서 하이 주얼리를 산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가 아닌가?
 
그러나 이는 1차 목적에 불과하다. 주얼리 라인을 만든 궁극적인 목적은 브랜드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하이 주얼리를 만드는 일은 가방이나 드레스를 만드는 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작업이다. 장인 정신으로 똘똘 뭉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심어주고 싶어 하는 패션 명품업체들은 가방이나 신발보다 훨씬 높은 전문성과 정밀함이 요구되는 하이 주얼리를 만들어 ‘정말 특별한 브랜드’ ‘극도로 고급스러운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다.
 
루이뷔통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고객 중 누군가가 매장 직원으로부터 “일반 다이아몬드는 58개 단면으로 커팅되지만 루이뷔통에서 특허를 낸 모노그램 플라워 커팅은 다이아몬드 단면을 65∼77개 면으로 커팅해서 광채가 더 뛰어나다”는 설명을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그 순간 그는 이런 감탄사를 터뜨릴 것이다. “역시 루이뷔통은 달라!” 반면 루이뷔통을 일개 여행 가방 제조업체로 여기고 있는 사람이 그 설명을 듣는다면 어떨까? 역시 “루이뷔통이 그런 브랜드였어? 괜찮은데?” 라는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명품 브랜드의 전략은 늘 이원적이다. 그들은 비교적 값이 저렴한 ‘진입 상품(엔트리 라인)’을 통해 명품에 대한 환상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직장인이나 학생 등을 유혹한다. 이런 제품에는 일부러 브랜드 로고를 대문짝만 하게 넣어 산 사람이 ‘과시’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한다.
 
반면 고가 제품으로는 정말 부유한 사람들을 유혹한다. 대체로 이런 고가 제품에는 상표를 오히려 숨겨놓는다. 가방 안쪽이나 한 귀퉁이에 자그마하게 숨어 있는 로고는 같은 브랜드라도 로고로 도배된 가방보다 훨씬 값비싼 가방을 구입한 사람으로 하여금 남몰래 ‘같은 브랜드를 쓰지만 난 너와는 달라’식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하이 주얼리는 이런 고가 제품 중에서도 최고 자리에 위치해 있는 아이템이다. 너도 나도 명품을 들고 다니는 ‘명품 대중화 시대’에 진저리치는 ‘진짜 부자’들에게 남들은 가질 수 없는 초고가 제품을 향유하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
 
한편 루이뷔통이 ‘람므 드 보야주’ 컬렉션을 내놓자마자 까르띠에에서는 ‘레 머스트(Les musts,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아이템이라는 뜻)’ 라는 컬렉션을 내놨다. ‘레 머스트’는 10만 원대 이하 카드 지갑, 20만 원대 수첩, 30∼40만 원대 반지 등 엔트리 레벨 제품으로 이뤄진 컬렉션이다. 까르띠에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브랜드’라 여기는 일반인에게 까르띠에 제품을 쉽게 접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하이 주얼리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하려는 패션 명품업체와 저가의 엔트리 라인을 통해 대중들이 쉽게 자신들 매장으로 들어설 수 있게 하려는 주얼리 브랜드의 행보는 얼핏 정반대로 보이지만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희소성)’이라는 명품의 기본적 습성과 ‘매출을 올려야 하는(영리 추구)’ 기업의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일이다.
 
패션 칼럼니스트인 필자는 남성 패션지 <에스콰이어>와 여성 패션지 <W Korea> 패션 에디터를 거쳐 현재 <에스콰이어> 패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10아시아> <한겨레21> 등 다양한 매체에 패션 관련 글을 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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