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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sh Idea

마케팅의 ‘렌즈’로 본 디즈니 공주들

이성욱 | 46호 (2009년 12월 Issue 1)
Born in 1937
1937년,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즈니는 ‘백설공주’란 작품을 발표했다. 16세 공주가 마녀인 새엄마의 박해를 피해 숲 속에 숨어살다가 왕자를 만난다는 아주 ‘진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공주와 왕자의 만남이란 진부한 스토리는 이후 70여 년 동안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디즈니의 공주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연로한 할머니라도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디즈니가 만들어낸 6명의 공주가 단순한 만화 주인공이란 사실 이상은 잘 모른다. 조금만 시선을 바꿔 이들을 관심 있게 연구해보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아마 디즈니의 공주들의 산업 및 문화적 의미와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 미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음에 놀라게 될 것이다.
 
 
 
디즈니 공주들의 성공 비결
디즈니(The Walt Disney Company)는 1923년 월트와 로이 디즈니 형제가 설립했다. 세계 최대의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디즈니랜드를 비롯한 11개 테마 파크와 영화사(월트디즈니 픽처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터치스톤 픽처스), 방송사(ESPN, ABC) 등을 소유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디즈니의 성장은 공주들이 주도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이 모두 공주가 주인공인 디즈니의 대표작들이다.
 
공주 시리즈의 첫 스타트는 ‘백설공주’가 끊었다. ‘백설공주’는 대공황(1929∼1939년) 시기 부모의 실직으로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던 어린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누군가 너를 구해줄 사람이 나타날 거야’란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줬다. 이런 공주 캐릭터는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형이 됐다.

 왼쪽부터 백설공주, 오로라공주, ‘알라딘’의 재스민 공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의 벨, 신데렐라.

1980
년대 말의 유동성 위기에서 디즈니를 구해낸 일등공신도 공주였다. ‘구원투수’로 영입된 마이클 아이스너는 ‘인어공주’(1989)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디즈니를 회생시켰다.
 
그렇다면 디즈니 공주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먼저 캐릭터 자체의 매력을 꼽는다. 공주 캐릭터는 빼어난 미모와 착하고 적극적인 성격, 아울러 공주란 고귀한 신분을 겸비한 모습으로 어린이들이 꿈꾸는 ‘이상형’이 됐다.
 
전래 설화를 흥행성 있는 동화로 각색해낸 점, 즉 ‘원작의 디즈니화’도 캐릭터 못지않게 중요한 성공 요소다. 사실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등은 유럽의 설화가 원작이며, 이들 원작은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고 동시에 선정적이기도 한 ‘성인용 콘텐츠’다. 백설공주의 원작은 어른이 읽기에도 낯이 뜨거울 정도다. 하지만 디즈니는 이런 설화를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내용으로 각색해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인어공주’는 원작에서 물거품으로 변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사람으로 변해 왕자와 행복한 삶을 산다.
 
마지막으로 뛰어난 비즈니스 기획을 들 수 있다. 디즈니는 어린이의 꿈을 키워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그 꿈을 현실에 구현한 디즈니랜드를 지었으며, 캐릭터 사업(장난감, 그림책, 문구류 등)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이런 맥락에서 디즈니는 1989년 ‘인어공주’부터는 극장판 애니메이션만이 아닌 DVD나 케이블 TV 등 2차 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을 채택했다. ‘신데렐라’ 등의 고전 애니메이션은 속편을 염두에 두고 기획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인어공주는 속편 제작을 겨냥해 상업성이 강한,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인어공주’는 상대역인 왕자와 악역인 문어 캐릭터의 마녀, 항상 인어공주와 함께 다니는 가재(세바스찬), 물고기(프라운더), 갈매기(스커틀) 등의 동물들에게도 의인화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개성 있는 캐릭터들은 작품에 재미를 더하는 것은 물론 캐릭터 판매나 속편 제작에도 도움이 된다. 디즈니는 ‘인어공주’ 이후에 조연 캐릭터가 속편이나 케이블 TV판 등에서 주연급 역할을 수행하게 하거나, 아예 조연들로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전략을 과감하게 채택했다. 이런 전략은 캐릭터 상품에 대한 시장의 요구는 무엇이며, 특정 캐릭터가 소비자들에게서 어떤 반응을 얻을 것인지를 철저하게 연구한 결과다.
 
디즈니는 일본 애니메이션 ‘밀림의 왕자 레오’ (데츠카 오사무 원작)를 ‘라이온 킹’(1994)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에서도 다중 캐릭터 전략을 구사했다. 원작에서 ‘사자’와 ‘기타 동물’로 나뉘던 캐릭터는 독특한 개성과 상품성을 갖춘 멧돼지, 하이에나, 원숭이, 미어캣 등으로 재탄생했다. 디즈니는 라이온 킹이 빠지고 주변 동물들이 주인공이 된 애니메이션도 제작함으로써 형식과 수행 전략에 있어서의 완결성을 이뤘다.
 
시대를 뛰어넘는 공주에 대한 몰입도
디즈니의 ‘간판 스타’인 공주 캐릭터들은 놀랍게도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점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도 1937년작인 ‘백설공주’와 1940년작인 ‘잠자는 숲속의 공주’ 속 오로라 공주에 열광한다.
 
이와 관련해 1990년대 말 디즈니는 매우 재미있는 이론을 내놓았다. 바로 디즈니의 공주 캐릭터에 대한 ‘7년 주기설’이다. 이 이론은 1989년 ‘인어공주’를 시장에 내놓은 이후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대한 연령대별 소비 행태와 반응을 조사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졌다.(표1)
 
 
 
디즈니는 조사에서 35세 전후의 어른들과 21세 전후의 젊은 여성 사이에서 디즈니 캐릭터의 소비가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캐릭터 소비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놀라운 결과였다. 7년 주기설은 이후 디즈니의 마케팅 방향성 결정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조사에 따르면 7세를 중심으로 한 아이들은 디즈니 캐릭터에 흥미를 느끼고 몰입한다. 이들은 부모에게 디즈니 캐릭터의 장난감과 DVD 등을 사달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7세 아동을 둔 부모의 나이가 보통 35세 전후라는 점이다. 즉 디즈니 제품의 사용자(user)는 7세 어린이이지만, 직접적인 구매자(buyer)는 약 35세의 어른들이란 말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구매를 하는 14세를 전후로 해서는 학용품과 의류 등 디즈니 라이센스 제품의 구매가 높아진다.
 
그리고 디즈니는 21∼28세 전후의 여성들이 공주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백마 탄 왕자 또는 우아한 삶에 대한 동경을 디즈니의 공주 캐릭터에 투영하는 것이다. 이들은 공주 캐릭터가 반영된 액세서리와 속옷 등을 주로 구매한다.
 
이에 따라 디즈니는 1990년대 이후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이전보다 공주를 더욱 여성스럽게, 그리고 상대인 왕자를 좀 더 젊은 여성에 어필하는 이상적인 캐릭터로 변화시켰다. 또 다양한 인종을 겨냥해 뮬란(동양인 여전사)이나 포카혼타스(미국 원주민 추장의 딸) 같은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런 방향성의 확보는 디즈니에게 매우 큰 시사점을 줬다. 앞서 지적한 대로 디즈니의 공주 캐릭터는 ‘바비 인형’처럼 완전한 8등신의 섹시한 미녀를 지향하게 됐다. 이는 어린이 위주를 벗어나 전 연령층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며, 디즈니의 마케팅이 7년 주기설에 맞춰지게 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혁신을 통한 마케팅 방법의 혁신
디즈니는 또 공주 캐릭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판매, 운영, 개발, 마케팅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본격화했다.
 
최근 국내의 어린이 서적 코너나 장난감 코너에 가보면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서 팔리는 디즈니 제품과 관련한 가장 큰 특징은 각각의 공주 캐릭터가 단독으로 주인공을 맡은 제품이 줄어들고, 6명의 공주(백설공주, 오로라 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벨, 재스민 공주)가 ‘그룹’으로 등장하는 제품이 늘었다는 점이다.
 
디즈니가 만들어낸 이 공주들은 현재 ‘디즈니의 여섯 공주’(Disney’s Six Princesses)라는 등록 상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1937년생인 백설공주와 1992년생인 ‘알라딘’ 속 재스민 공주가 힘을 합쳐 위력을 발휘한다. (최근에는 뮬란과 포카혼타스, ‘공주와 개구리’의 티아나 공주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여섯 공주의 그룹화는 각각의 캐릭터를 별도로 마케팅하지 않고, 전체를 통합 마케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당장의 비용 절감 효과뿐만 아니라 장기적 매출 증대라는 전략적 의미가 있다. 특히 디즈니는 여섯 공주를 묶어 인지도를 높이는 동시에 개별 캐릭터의 성격을 살려 각각 독자적인 사업을 벌였다. 이런 ‘따로 또 같이’ 전략은 자연스레 새로운 사업 영역의 발굴로 이어졌다.
 
디즈니는 대표적으로 어린이 의류 분야에서 개별 캐릭터와 그룹을 동시에 이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개별 상품으로는 인어공주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수영복 시리즈,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테마로 한 잠옷, 어린이 코스튬 플레이를 위한 백설공주 및 신데렐라 드레스 등 개별 상품을 내놓았다. 동시에 여러 공주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제품도 개발했다. 구매자들이 여러 공주 캐릭터를 한 번에 구입함으로써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마이클 포터의 5요인 모델(5 Forces Model)에서 기업이 구매자에 대한 교섭력을 강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사실은 과거의 개별 공주 캐릭터가 힘을 잃어갈 때, 여섯 공주가 하나의 그룹을 결성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낸 것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걸그룹의 벤치마킹 대상
최근 국내의 모 대학 경영학과 교수가 한국의 걸그룹들을 비빔밥에 비유한 적이 있다. 재료 하나하나를 별도로 먹으면 각각의 맛이 나지만, 이것을 밥과 함께 비벼 먹을 때는 모든 맛이 하모니를 이룬 독특한 맛(일종의 시너지)이 난다.
 
걸그룹도 마찬가지다. 멤버 개인이 MC를 하거나 TV 드라마에 출연할 때는 그 멤버만의 개성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뭉쳐서 활동할 때는 개별 활동에 따른 지속적인 인지도와 친근감, 멤버별 개성이 어우러져 한층 높은 효과가 난다.
 
이런 걸그룹의 전략은 확실히 디즈니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나아가 필자들은 한국의 걸그룹들이 디즈니 사례에서 좋은 시사점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즈니의 공주들은 길게는 70여 년, 짧게는 10여 년의 ‘활동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벤치마킹 포인트로는 디즈니의 공주들의 개성적인 성격과 캐릭터 콘셉트를 꼽을 수 있다. 백설공주는 고난의 극복을, 인어공주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이미지를, 재스민 공주는 유머러스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디즈니는 공주 캐릭터의 성격에 따른 차별화 포인트를 지속적으로 시장에 적용해 성공을 거둬왔다. 그리고 이제는 각각의 개성이 모여 이루는 ‘모자이크’ 혹은 ‘비빔밥’을 통해 새로운 감성을 전달하고 있다.
 
물론 현재 한국의 걸그룹들도 나름대로 각 멤버의 콘셉트를 설계하고 그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아직도 개인별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하는 듯하다. 소녀시대의 팬들에게 멤버 아홉 명의 개성과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물어본다면, 아마도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 이외의 것을 답변하기 힘들어할 가능성이 높다.
 
디즈니의 공주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이야기와 개성을 효과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차별적 강점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걸그룹뿐만 아니라 차별화를 고민하는 기업들도 충분히 연구해볼 만한 포인트다. 주말에 가까운 서점이나 장난감 가게에 들러 공주들을 유심히 관찰해보길 권한다.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인 이사는 공인회계사이며 서강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성장전략 수립과 혁신, 변화관리, 최고재무책임자(CFO) 체계 설계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이성욱 이사는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융권의 성장전략 수립과 혁신, 변화관리, 사회공헌 등에 대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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