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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현실: 잡지 광고에 동영상 입힌다

박근태 | 43호 (2009년 10월 Issue 2)
싱가포르의 맥주 브랜드인 ‘타이거맥주’는 최근 국내 남성 잡지에 광고를 하나 실었다. 큰 맥주병 사진이 들어 있는 광고였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맥주 광고물. 하지만 잡지를 웹 카메라 앞에 가져다 대면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 개인용 컴퓨터(PC) 모니터에는 일단 웹 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캡처하는 화면이 나온다. 캡처를 끝내면 광고 안에 맥주가 가득 담긴 그릇을 든 본인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럴 수가! ‘광고 안의 나’는 심지어 움직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잡지는 실제 영상, 그릇을 든 사람은 가상의 그래픽이다. 타이거맥주는 광고에 특별한 표식(marker)을 해두고 PC가 웹 카메라를 통해 이를 인식하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게 했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AR)’이라 불리는 이런 기술은 현실과 사이버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www.tigerbeer.co.kr 참조).
 
타이거맥주가 야심 차게 시도한 AR 광고는 잡지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쏠쏠한 재미를 선사했다. AR 사진 캡처 공모전에 참가한 고객들은 너무나도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광고 효과는 물어보나 마나다.

 
실재하는 배경에 가상의 그래픽 접목
증강현실은 실재에 가상을 접목한다. 증강현실에서는 가상의 캐릭터나 물체(콘텐츠)가 실제 배경 위에서 움직인다. 콘텐츠와 배경이 모두 디지털 영상인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과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보다 기술적 장벽이 낮다. 가상현실을 구현하려면 테라바이트(TB·1TB는 1000기가바이트)급 컴퓨터가 필요한데, 증강현실은 일반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
 
증강현실 기술은 1968년 미국 유타대의 이반 서덜랜드가 개발한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HMD, 머리 부분 탑재형 디스플레이)에서 출발했다. 초기의 HMD는 2개의 소형 브라운관 모니터를 쌍안경 렌즈에 장착한 형태였다. 모니터 바로 위에는 영상을 촬영하는 소형 비디오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이 장치는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영상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씌워 사용자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무게가 너무 나가 천장에 매단 상태로 사용해야 했다. 그 뒤 브라운관 모니터가 가벼운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로 바뀌고, 카메라와 센서의 무게도 가벼워졌다. HMD는 헬멧 크기로 작아질 수 있었다.
 
1990년 미국 보잉 사의 엔지니어 톰 커델은 HMD를 이용한 항공기 조립 보조 장치를 만들었다. 엔지니어가 HMD를 착용하고 항공기 내부를 살펴보면 각 위치에 들어갈 부품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커델은 이 연구를 발표한 논문에서 ‘증강현실’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증강현실이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활용된 분야는 게임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이용해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이펫(Eye Pet)’ 게임을 선보였다. 이 게임에서는 화면에 등장하는 원숭이 모습의 애완동물이 사람의 동작에 반응한다. 웹 카메라 앞에서 손뼉을 치면 잠자고 있던 원숭이가 깜짝하고 잠을 깨고, 사용자가 그린 그림을 카메라 앞에 비추면 원숭이가 그대로 따라 그린다. 또 다른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인 ‘아이오브저지먼트(Eye of Judgements)’에서는 사용자가 카드를 게임판 위에 올려놓으면 미리 지정한 게임 캐릭터가 화면에 등장해 승패를 다툰다.

 
입체화면 구현하는 교과서
전문가들은 특히 증강현실과 인쇄 매체의 결합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거라 보고 있다. 잡지나 신문 지면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타이거맥주의 증강현실을 경험한 고객들도 정(靜)과 동(動)의 모순적 만남에 찬탄을 쏟아냈다.
 
증강현실은 ‘올드 미디어’에 여러 가지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도입기이긴 하지만 광고에서는 이미 가능성이 입증됐다. 또 증강현실은 인쇄 매체가 사진이나 도표, 일러스트레이션의 평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페이지마다 필요한 정보를 담은 코드를 미리 넣어두기만 한다면 독자들이 해당 지면에 나오지 않는 정보를 입체 그래픽이나 동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건축 잡지에 나오는 건물 사진에 웹 카메라를 갖다 대면 PC에 그 건물의 입체 영상이 구현되는 것이다. 이탈리아 과학자들은 웹 카메라로 신문 사진 옆에 인쇄된 마커를 비추면 PC에 관련 동영상이 재생되는 기술을 개발했다.
 
전문가들은 증강현실이 큰 영향을 미칠 또 하나의 분야로 교육을 꼽는다. 증강현실이 학생들의 이해력과 몰입도를 높여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학교 수업에서는 책을 통한 이론 강의와 실험이 따로 이뤄져왔다. 지구의 맨틀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외에 교육용 비디오를 따로 봐야 했다.
 
그러나 증강현실을 활용하면 책 한 권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 학생이 웹 카메라 앞에서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PC 화면에 관련 내용을 담은 입체 이미지나 도표, 동영상이 나타난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KAIST, 광주과학기술원이 증강현실을 활용한 도서를 개발 중이다.
 
유명 기업들, 증강현실 마케팅에 활용
증강현실의 형식은 점점 다양화될 전망이다. 이미 웹 카메라로 찍은 현실에 입체 디지털 이미지를 합성하는 방식 외에도 PC에 달려 있는 마이크를 활용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미국의 과학기술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는 최근 GE가 만든 풍력발전기를 표지 사진으로 실으면서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했다. 컴퓨터에 달려 있는 마이크에 바람을 세게 불어넣을수록 PC 화면에 있는 바람개비의 돌아가는 속도를 빨라지게 한 것이다.
 
유명 기업들도 증강현실을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업종도 기계, 자동차, 가방, 문구 등으로 광범위하다. GE는 환경 캠페인 사이트인 에코메지네이션(http://ge.ecomagination.com) 홈페이지에 증강현실 체험관을 만들어 자사가 만든 친환경 제품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BMW는 소형차 ‘미니’의 홍보 수단으로 증강현실을 사용했다. 이 회사는 사용자가 잡지 광고에 인쇄한 표식을 웹 카메라에 비추면 차량의 입체 이미지를 PC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지난해 시판한 X시리즈의 앞 유리창에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정보를 보여주는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를 설치했다. 이렇게 하면 운전자가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속도와 갈 길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올해 4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 모터쇼에서 증강현실을 활용해 홍보를 진행했다.
 
증강현실은 궁극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현실의 공간과 사이버 세계를 잇는 수단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 단편을 보여주는 게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 ‘전뇌(電腦) 코일’이다. 이 작품의 무대는 ‘전뇌 안경’이란 물건이 보편화된 근(近)미래의 일본 지방 도시. HMD가 진화된 전뇌 안경은 ‘전뇌 세계’라고 하는 가상의 공간을 현실에서 시각화해준다. 전뇌 안경을 쓴 사람은 현실 세계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PC가 없이도 언제 어디서든 홀로그래피나 데이터 등 가상현실의 도구들을 눈앞에 꺼내놓고 쓸 수 있다. 심지어 ‘전뇌 펫’이라는 가상의 애완동물까지 있을 정도다(동아비즈니스리뷰 13호 ‘무한 상상력의 원천 SF’ 참조). 전문가들은 이런 기술이 머지않아 실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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