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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 히어로즈 대표

“생각을 바꾸면 야구도 돈 된다”

하정민 | 42호 (2009년 10월 Issue 1)
2008
년 1월. 이름도 생소한 투자 전문 회사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현대 유니콘스 야구단을 인수해 ‘히어로즈 야구단’으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미 농협, STX, KT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유니콘스 인수를 마다한 상황에서 이름 없는 회사가 한 해 150억 원에 달하는 야구단 운영비를 댈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선이 많았다. 이 와중에 센테니얼의 이장석 대표는 “야구단은 소유하지만 팀 이름은 스폰서 기업명을 사용하는 네이밍 마케팅을 통해 운영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밝혀 세간의 궁금증을 더했다.
 
지난해 히어로즈는 몇 차례 위기를 겪었다. 야구단을 인수하자마자 선수와 코칭 스태프의 연봉을 깎았고, 메인 스폰서를 약속했던 우리담배는 시즌 중간에 스폰서 중단을 선언했다. 신생 팀 창단 시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납부해야 할 가입금을 내지 못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핵심 선수인 장원삼을 삼성 라이온즈에 보내는 대신 현금 30억 원을 받기로 하는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KBO의 불허로 취소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다시 1년이 흘렀다. 히어로즈는 KBO 가입금 120억 원 중 84억 원을 4차례에 걸쳐 분납했다. 선수단의 연봉도 올랐다. HP 등 서브 스폰서도 유치했고 팀 성적도 나아졌다. 무엇보다 야구계 안팎에서 이장석 대표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이 대표는 연세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딴 투자 전문가다. 보잉항공사 컨설턴트, 메릴린치 어소시에이트, 아서디리틀(ADL) 부사장 등을 거치며 투자 전문가로 이름을 높였다. 그런 그가 야구단을 인수했을 때 투자 전문가의 속성상 메인 스폰서를 유치한 후 히어로즈 소유권을 팔고 야구계를 떠날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예상과 달랐다.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자 사비를 털어 운영비를 댔다. 이 대표는 팀의 전 경기를 관전하는 유일한 구단주다. 최근에는 일일 해설자로 변신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야구단 운영을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목표를 고수하는 괴짜다.
 
베이징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대성공으로 프로 야구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높아졌지만 8개 구단 중 돈을 버는 곳은 어디도 없다. 구단을 소유한 대기업들은 그룹 홍보 차원에서만 접근할 뿐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장석 대표는 야구단 운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의 실험이 실제로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이 대표를 만나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선 이유와 비즈니스 플랜을 들어봤다. 그의 계획에 대한 판단은 독자 여러분께 맡긴다.
 

야구단 구단주의 꿈은 어떻게 키우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구단주의 꿈은 남자들의 허영심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투자은행이나 컨설팅 업계에 종사하는 남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번 뒤 처음에는 집을 삽니다. 더 많이 벌면 포르셰와 같은 스포츠카를 사죠. 거기서 더 많이 벌면 말을 사고 싶어 해요. 저는 모두가 목매는 스포츠카 소유보다는 좀더 멋진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미 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은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창업으로 억만장자가 됐고, 결국 농구단 구단주가 되겠다는 꿈을 이뤘습니다. 큐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돈이 많다고 될 수 없는 게 구단주 아닙니까. 아무나 될 수 없다는 점이 구단주에 대한 제 욕망을 더 부추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구단주가 될 만한 재력을 갖추기도 전에 구단주가 됐습니다. 농협, KT 등 현대 유니콘스 인수를 타진했던 대기업들이 이를 포기하면서 저에게 갑자기 인수 제안이 왔고, 그 기회를 잡은 것뿐이죠. 제가 수조 원의 재산을 가진 거부라면 야구단 운영을 비싼 취미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거부도 아니고 제 돈과 지인들의 자금으로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제 구단주는 제 꿈만이 아니라 인생을 걸고 승부해야만 하는 사업이자 직업입니다.”
 
투자은행과 컨설팅 업계를 거치며 비교적 많은 돈을 버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1년에 100억 원이 훨씬 넘는 야구단 운영을 할 정도는 아닐 텐데요.
“말씀 드린 대로 제 개인 재산만 따져보면 야구단 운영을 할 수준이 못 됩니다. 하지만 어려울 때 기회가 있지, 누구나 다 좋을 때 사업 기회가 생기겠습니까. 주위 사람들은 ‘야구단 사봤자 네 돈만 다 날릴 거다. 절대 돈 못 번다. 돈 못 벌면 야구단을 팔고 싶어도 팬들의 반발이 심해 팔기도 어렵다’는 말을 숱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남들이 안 된다고 하니 저 같은 사람에게도 기회가 온 거죠.
 
실제로 히어로즈를 인수하기 전 KBO에서 몇몇 대기업에 굉장히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아무도 인수하려 하지 않았잖아요? 연간 운영비가 100억 원이 넘고, 사업상 이유로 구단 운영을 접고 싶어도 국민 반발이 거세 함부로 접을 수도 없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투자 전문가로서 야구단 운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야구계에 왔을 때부터 제가 싸워야만 했던 견고한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아직 한국 프로 야구는 산업이 아닙니다. ‘프로’ 야구지만 비즈니스는 어디에도 없어요. 아직 고급 실업 야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로 야구는 대기업이 그룹 이미지 홍보를 위해 운영하는 거고, 산업이 아니니 악착같이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으며, 이 상황에서 돈 벌겠다는 사람은 이방인이자 사기꾼이고, 결국 ‘재벌만 야구단을 운영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을 아무도 못 깨고 있습니다.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우리 업계는 독특하다. 밖에서는 모른다. 반드시 A라는 관행을 고수해야 한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물론 산업별 특징은 있지만 관행에 목매기 시작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돈을 벌 수 없다는 야구계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습니다.
 
실제로 2년간 야구단 운영을 해보니, 하면 할수록 흑자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이 강해졌습니다. 야구단 운영은 분명히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입니다. 메인 스폰서가 없는 히어로즈도 서브 스폰서, 광고, 관중 수입, 중계권료 등으로 2년을 버텼는데 왜 흑자를 못 내겠습니까. 내년에는 야구단 운영으로 흑자를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히어로즈의 관중 수는 지난해보다 18% 늘었지만 티켓 수입은 2배나 늘었습니다. 유효 객단가가 3700원에서 6800원으로 올랐거든요. 그만큼 비싼 돈을 내고 야구를 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중계권료도 훨씬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케이블 TV 외에 IP-TV, DMB 등 배급 채널도 늘어났고, 공중파 산하 4개 케이블 TV 채널의 담합도 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절정기를 보낼 때도 중계권을 선점하려는 이합집산이 치열했죠.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인수 직후 자금을 구하러 다닐 때 ‘당신은 믿지만 야구 사업을 못 믿겠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제 돈으로 운영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제 돈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2년이 흐르면서 사업성에 대한 세간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작년에는 저를 포함해 구단주가 2명이었는데 지금은 5명으로 늘었습니다. 이 숫자를 10∼15명까지 늘려 기존 대기업 소유 구단이 아닌 구단주 개인 소유 구단의 새로운 형태를 확립시킬 생각입니다. 미래에는 대기업 소유 구단과 히어로즈 같은 개인 소유 구단의 비율이 반반일 겁니다.”

왜 한국 야구가 산업화에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한국 프로 야구에는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무조건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모기업의 위상과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 설사 우승을 못하더라도 라이벌 그룹보다는 반드시 성적이 더 좋아야 한다. 라이벌 그룹보다 좋은 성적만 나온다면 많은 돈을 써도 괜찮다’는 식이죠. 마치 대기업 운동회 같습니다.
 
솔직히 현재 서너 개 구단은 야구단 운영의 초점을 이 부분에 맞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두세 개 구단은 야구단 운영 자체에는 큰 매력을 못 느끼지만, 빠져나가기도 뭐하니 될 수 있는 한 돈을 적게 쓰자는 데 초점을 맞추는 듯하고요. 야구라는 웅덩이에 같이 발을 담갔지만 시선은 다 다른 곳에 두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구단의 전략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또 우승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문제는 우승을 하려면 반드시 적기가 있고, 그 적기에 어떻게 도달하느냐는 전략이 없다는 점이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빠른 시간에 우승해,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전략이 없습니다.
 
단적인 예가 ‘트레이드’입니다. 한국 프로 야구에는 기이할 정도로 트레이드가 없습니다. 같은 포지션에 비슷비슷한 기량의 선수가 두세 명씩 있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이런 비효율이 어디 있습니까. LG에서 1군 주전도 아니었던 김상현 선수가 올해 기아로 이적한 후 홈런왕, 타점왕을 휩쓸며 프로 야구를 초토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럼 더욱 트레이드가 활발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구단의 프런트들은 섣불리 트레이드를 했다가 상대 팀에 ‘제2의 김상현’을 안겨줄까 안절부절못하며 트레이드를 더욱 꺼립니다.
 
트레이드가 없으니 명색이 프로 야구인데도 선수의 시장 가격이 없습니다. 가격을 매길 수 없으니 트레이드 카드를 맞출 수도 없죠. 종목은 있는데 주식시장이 없는 겁니다. 선수 입장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낭비하는 불행입니다. 다른 구단에서는 주전 선수로 뛸 수 있는데, 트레이드가 이뤄지지 않으니 현 소속 팀에서는 매일 벤치만 지켜야 하죠. 물론 주전이 부상당했을 때를 대비한 백업 선수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백업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라는 거죠. 비즈니스 현실과는 동떨어진 야구단 운영이 산업화를 가로막고 있어요.
 
몇 년째 6000원에 머물고 있는 입장료도 문제입니다. 물가 상승률, 다른 나라 입장권, 심지어 영화표와 비교해도 너무 쌉니다. 지금 잠실, 목동, 광주, 대구 경기장은 시설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입장료를 올려 시설 개보수에 투자해야 더 많은 관중이 몰려오지 않겠습니까. 경기장 소유 구조도 문제죠. 다른 나라 프로 구단들은 경기장을 직접 소유하거나 장기로 임대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는 전 경기장을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데다 임대 기간도 3년에 불과해 수익 창출 활동을 할 수가 없어요.
 
이 문제에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분명히 구단 프런트에서는 매년 모기업에 입장료 인상 문제를 건의할 겁니다. 하지만 모기업에선 ‘입장료 올려서 우리가 얼마 벌지? 몇 억 원? 그 돈 벌려고 대기업이 표 값 장사한다는 비난에 시달리면 더 골치 아파. 그냥 놔둬’ 이런 식이거든요. 그러니 시설은 더욱 낙후되고, 야구장을 찾으려는 사람은 더 늘지 못하죠.”
장원삼 선수의 트레이드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KBO 가입 분납금을 못 낼지경이라 에이스를 다른 구단에 팔아넘긴다’는 비판이 있었는데요.
“에이스라는 단어의 정의부터 보죠. 에이스는 그 팀의 최고 카드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등판해도 승률이 최소 5할을 넘겨야 해요. 지난해 장원삼 선수가 12승을 거두며 히어로즈 최다승 투수였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화 류현진, SK 김광현, LG 봉중근, 기아 윤석민 등 다른 팀 에이스와 붙여놓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5할 승률이 안 나옵니다. 장원삼을 아끼지만 에이스라 부를 수는 없죠.
 
올해는 부진하지만 지난해 11승을 거둔 마일영 선수가 에이스 역할을 해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실제 상대 팀 에이스와의 대결만 보면 마일영 선수가 장원삼 선수 못지않은 성적을 내줬습니다. 또한 히어로즈에는 장원삼, 마일영 외에도 우수한 왼손 투수들이 많습니다. 오재영 선수도 있고, 올해는 이현승 선수와 강윤구 선수도 등장했습니다. 코칭 스태프도 왼손 투수가 많아 장원삼 선수가 없다고 팀이 한순간에 무너질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장 선수 대신 데려오려 했던 삼성 박성훈 선수도 괜찮은 선수였고, 투수 코치들도 박 선수를 더 좋은 선수로 키울 자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 박 선수가 올해 삼성에서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납금 때문은 아니었지만 돈 때문에 트레이드를 시도했던 건 맞습니다. 메인 스폰서가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지난해는 올해보다 사정이 더 안 좋았으니까요. 우리와 경쟁하는 나머지 7개 구단은 한국 굴지의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구단은 몇 백억 원씩 쌓아놓고 운동을 할 형편이 못 됩니다. 모기업의 자금 사정 악화로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 직원들은 5년 넘게 연봉이 묶여 있었습니다. 1년에 125명이 넘는 선수단 전체 인원의 월급을 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요. 이런 상황에서 이 많은 직원을 다 살리려면 최대한 많은 돈을 쌓아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가는 냉정해야 합니다. 아직 히어로즈에는 ‘이 선수가 빠지면 팀이 무너진다’고 할 만한 팀의 기둥이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그런 프랜차이즈 스타를 만들어야겠지만 아직은 그런 선수가 없고, 선수 자원의 효율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선수라도 트레이드 대상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죠. 그런데 한국민은 정서상 선수를 판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프로 야구 선수가 효녀 심청은 아니잖아요. 무조건 선수를 있는 대로 다 보유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자원의 효율화가 없다면 한국 야구의 발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팬들의 반발은 어떻게 극복하시려 했나요? 결국 야구단이라는 기업의 고객은 팬 아닙니까.
“제가 장원삼 선수를 트레이드하려고 했던 게 1997년 월드시리즈 우승 직후 팀의 주축 선수들을 대거 팔아버린 플로리다 말린스처럼 팀을 운영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팬들을 붙들어놓을 수 없죠. 다만 구단주가 적절한 청사진을 갖고 있고, 일부 선수가 대상이라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장원삼 선수를 넘겨주고 받은 자금을 히어로즈 운영에 투자하는 게 전략적으로 옳은 결정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이런 제 뜻을 팬들에게 직접 알리려고 노력했고, 팬카페 운영자와도 자주 만났습니다.
 
장차 히어로즈도 독보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를 키워야죠. 히어로즈 정민태 투수 코치가 예전 현대 유니콘스에서 했던 역할을 해줄 선수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택근 선수가 좀더 노력하면 가능할 듯한데 아직은 두고 봐야죠. 강윤구, 김영민 등 젊은 선수들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강윤구 선수는 잠재력으로만 따지면 류현진 선수와 맞먹는 역대 최고 재원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회사 경영과 야구단 경영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똑같습니다. 구단주인 저는 레스토랑 주인, 단장은 총지배인, 감독은 주방장입니다. 각자 맡은 역할이 분명하니 서로의 역할을 존중해야 합니다. 제가 음식 맛이 짜다고 주방장에게 불평할 수는 없어요. 제 역할은 ‘우리 음식을 먹어본 손님들이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더라’고 전달해주는 거죠. 중요한 건 이때 긍정적인 얘기만 전달해야 한다는 겁니다. 2년 동안 야구단을 운영해보니 현장에 부정적인 뉴스를 전해주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되더군요. 올해는 선수단 운영에 대해 감독님께 전권을 일임했습니다. 물론 저도 제 의견을 밝히고 싶을 때가 있지만, 올해는 무작정 지켜보려고만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다루는 원리는 변하지 않아요.
 
투자은행 및 컨설팅 업계에서 다른 사람 사업에 줄곧 훈수만 뒀습니다. 그러다 사업을 시작했고, 히어로즈 운영이 세 번째예요. 지난 두 번을 자평하면 한 번은 좋았고, 한 번은 실패했습니다. 나이가 더 어리고 뭘 잘 몰랐을 때는 오히려 성공했고, 제 딴엔 이제 알겠다고 생각했을 때 실패했죠. 돌아보니 겸손하지 못했기 때문이더군요.
 
똑똑한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오류가 ‘내가 어디 출신인데’ 운운하는 겁니다. 맥킨지 출신, 골드만삭스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죠. 맥킨지와 골드만삭스가 유명하고 우수한 거지, 그 사람 개인이 잘난 게 아니거든요. 훌륭한 컨설턴트들은 많지만 그 사람들이 직접 사업을 하면 그중 몇이나 성공할까요. 저도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경영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세종대왕입니다. 여섯 살짜리 자식을 두고 있는데, 애를 낳기 전에는 이순신 장군이 최고라고 생각했죠. 자식에게 위인전을 읽어주다 보니 영웅이라고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이들의 영토를 뺏은 사람뿐이더군요. 백성이 불쌍해 글을 만들어준 리더는 세종대왕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구단주는 선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히어로즈는 아직 재정 안정화를 이루지 못해 복지까지 논의할 수준은 아니지만, 선수 복지 문제는 8개 구단, KBO, 한국 야구계 전체가 정말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국 프로 야구의 시장 규모나 예산은 일본 프로 야구(NPB)의 15분의 1 정도입니다. 그런데 선수 1인당 급여는 30분의 1에도 못 미쳐요. 특히 2군 선수들의 급여나 운동 환경이 너무 열악합니다.
 
저는 2군 경기가 관중 없이 치러지는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2군 경기에도 관중이 입장해야 2군 선수들의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2군의 평균 유료 관중이 경기당 3000∼4000명만 넘어도 선수들의 연봉이 눈에 띄게 달라질 겁니다. 지금 2군 선수들 평균 연봉이 2000만원 정도인데 적어도 6000만 원은 돼야죠. 구장 현실은 또 어떤가요. 우리 홈 구장인 목동을 비롯해 광주, 대구 경기장의 시설은 정말 열악합니다. 2군은 이런 경기장도 사용하지 못해 연수원 같은 곳에서 경기를 치르고요. 더 많은 관중과 광고를 모으고, 이를 통해 야구단도 돈을 벌어야 선수들의 복지도 좋아집니다. 메이저리그는 1군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47만 달러에 달합니다. 한국 1군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그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5000만 원이죠. 한국 야구의 진정한 산업화가 이뤄져야 선수들의 복지도 향상됩니다.”
 
히어로즈를 인수하신 게 단기 차익을 노리기 위해서라는 일각의 시선도 여전한데요.
“저를 장사꾼, 투기꾼으로 보는 사람은 제가 10년 동안 구단을 운영해도 여전히 그 생각을 고수할 겁니다. 굳이 그런 사람들에게 대응할 필요는 없죠. 저는 한국 프로 스포츠 산업의 초석을 닦고 싶습니다. 한국 야구의 소프트웨어는 정말 뛰어납니다. 선수들의 프로 정신도 대단하고요. 시키지 않아도 경기가 끝나면 훈련에 매진합니다. 부족한 건 인프라와 하드웨어입니다. 야구를 진정한 프로 스포츠로 만들면 결국 그 혜택은 선수와 관중들이 누립니다. 올림픽 금메달, WBC 준우승을 통해 이미 한국 야구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콘텐츠임을 증명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만 한류의 대상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에서 구단을 운영할 수도 있고, 야구로 한류 붐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8개 구단과 KBO 관계자들이 힘을 합하면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을 소유한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까지는 못 되더라도, 한국 프로 스포츠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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