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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서체, 브랜드 목소리를 만든다

김현미 | 4호 (2008년 3월 Issue 1)

사람의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얼굴 표정이나 인상, 의상, 행동 등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 형성된다. 이 단계에서 이미 호감과 비호감 정도가 결정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수 있다. 호감을 가졌던 사람에게서 원하는 능력을 찾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선호도는 더 급증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좋았던 외형적 이미지는 오히려 가식처럼 느껴질 수 있다. 또 주변 환경이 변해 기존 능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량을 보여줘야 할 필요도 있다. 이때 유연하게 변화해 근사한 새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하다면 그 사람에 대한 만족스러웠던 인식은 점점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것이다.
 
소비자가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하는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의 소비자가 하나의 브랜드와 만나는 상황을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상황에 비유해 보자. 첫인상은 소비자가 매장에서 가능한 감각기관을 총 동원해 브랜드에 대한 유형, 무형의 정보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비슷한 기능과 가치를 가진 수많은 브랜드가 탄생하면서 이들 간의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따라서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타깃 소비자의 생활양식과 가치 변화를 따라잡고 이들이 원하는 것을 한발 앞서 제공할 수 있는 끊임없는 혁신이 필수적이다. 브랜드가 탄생하고, 살아남는 과정은 이처럼 ‘커뮤니케이션’, ‘상품력’, ‘혁신’ 등 3가지 요소가 맞물리면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바로 이 과정에서 브랜드를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수십 년, 또는 그 이상을 성공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서구 유명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브랜드 전용 서체’다. 한 사회가 소통을 위해 약속한 문자(文字)는 읽혀짐과 동시에 ‘보여진다’는 측면이 있다. 조금씩 다른 굵기와 모양, 비례, 디테일 등에 의해 구별되는 수많은 서체들은 같은 메시지에 다른 옷을 입혀주는, 시각 디자인의 중요한 형태 언어가 된다. 기업이나 브랜드의 전용 서체는 전달매체가 신문 광고든, 홍보 브로셔든, 웹 사이트든 지속적인 노출을 통해 시각적으로 일관된 컨셉트를 전달하고 메시지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 즉 브랜드의 ‘목소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독일 자동차 폭스바겐은 1960년대 이후 ‘퓨추라(Futura)’라
는 서체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 사용해 왔다. 퓨추라는 1927년 독일의 모더니즘을 반영해 디자인된 서체로 원, 삼각형 등의 원초적인 형태를 바탕으로 전체 알파벳을 디자인했다. 따라서 군더더기 없는 기능적 형태가 특징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형태적 특징은 폭스바겐의 탄생 배경, 우수한 기능, 친근감을 주는 곡선 형태 등과 완벽한 궁합을 이루며 폭스바겐이라는 브랜드를 구성하는 목소리 역할을 해왔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일찍이 전용 서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990년 ‘코퍼리트 A(Corporate-A)’를 개발했다. 코퍼리트 A 서체는 한글의 명조체에 해당하는 스타일로 날씬한 비례와 유려한 형태, 날카로운 획 마무리 등이 최고를 지향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잘 대변해 준다. 
   
 
 
 
 
1984년 IBM이 지배하던 컴퓨터 시장에 도전장을 낸 애플은 사용성을 현저히 높인 인터페이스 디자인으로 차별화를 꾀하면서 컴퓨터를 차가운 기계가 아닌 ‘사귀고 싶은 친구’처럼 여길 수 있도록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당시 시각 커뮤니케이션에 사용된 전용 서체는 ‘애플 개라몬드(Apple Garamond)’였다. 한글로 치자면 본문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친근한 인상의 명조체를 현대적 감각에 맞춰 날씬하게 변형한 형태다. 십수 년간 애플의 시각적 목소리가 되어준 애플 개라몬드는 기업이 혁신적 변화를 꾀할 때 청산의 대상이 됐다. 2001년 애플은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혁신적 제품에 걸맞은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로고, 전용 서체 등을 바꿨다. 현재는 ‘미리아드(Myriad)’라는 한글 고딕에 해당하는 양식의 서체를 사용해 간결한 디자인 속에 최대한의 가능성을 내포한 애플사의 제품들과 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기업이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구축을 위해 전용 서체를 개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카드는 2003년 기업 이미지(CI)작업을 하면서 전용서체 ‘유앤아이(Youandi)’를 함께 개발해 현재 마케팅 매체에 활발히 이용하고 있다. 2005년에는 아모레퍼시픽이 ‘아리따’라는 전용서체를 선보이는 등 현재 여러 기업이 전용 서체를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매체에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전달하는 개성 있는 ‘목소리’를 갖추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길 기대해본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광고대행사 오리콤의 그래픽 디자이너를 거쳐 현재 SADI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타이포그라피 혁명가 얀치홀트’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33가지 서체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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