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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레저화

광고=레저, 깔깔 웃다가 고객된다

정성욱 | 38호 (2009년 8월 Issue 1)
광고, 광고, 광고. 사방에 광고가 있다. 길을 걸어도, 운전을 해도, 집 안에 앉아 있어도 피할 수 없다. TV를 볼 때도 줄거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라디오의 교통 정보 앞에도 빨판상어처럼 붙어 있다. 가끔은 길을 막고 강매하는 것 같아 시청자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려봐도 또 광고가 나온다.
 
 

 
시청자가 영상 프로그램 시청의 대가로 광고를 봐야 하는 TV의 경우에는 이런 불편함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때로 광고는 미움 받는 존재, 또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전락하기도 한다. 최근의 진화된 디지털 방송 기술은 TV 시청의 대가인 광고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광고는 그 존재 의의와 형태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직면하게 됐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광고의 위기
매스미디어 분야에서 지난 10년간 등장한 많은 신기술 중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 중 하나가 ‘DVR(Digital Video Recorder·디지털 영상 녹화)’이라는 기술이다. DVR은 방송국이 제공하는 영상 프로그램을 녹화해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예약 녹화 시스템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기술로, 신기술이라기보다는 예전 비디오 녹화 기능의 디지털적 진화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분야의 대표 주자는 1999년에 출시돼 2006년까지 4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유치한 티보(Tivo)다. 티보는 기본적인 예약 녹화 기능은 물론, 사용자의 시청 기록을 탐색해 그 취향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춰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기능까지 제공한다.
 
티보가 시장에 가져온 충격은 ‘TV 시청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표면적인 인식을 넘어섰다. 원하는 프로그램만 볼 수 있도록 영상 콘텐츠를 데이터 형식으로 저장한다는 건 방송 중간에 나오는 광고들 역시 자유로운 선택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티보 덕분에 TV 광고는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얼마든지 보고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광고를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는 의미로 ‘애드 스킵(ad skip)’ 혹은 ‘커머셜 스킵(commercial skip)’이라 불리는 이 기능은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방송 산업의 존재를 뒤흔들 만한 충격이었다. 애드 스킵을 둘러싸고 벌어진 몇 가지 에피소드가 이를 증명한다.
 
티보의 경쟁자이자 후발주자인 리플레이TV는 ‘앞으로 빨리 감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리모컨 버튼을 누를 때마다 30초씩 앞으로 진행되는 ‘30초 스킵 기능’을 추가하고 이를 적극 홍보했다. 방송국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선발주자인 티보를 따라잡기 위한 극단적 선택이었다. 리플레이TV는 결국 분노한 방송사들의 집단소송 공격을 받고 파산해버렸다. 사실 티보에도 리모컨의 5자리 비밀번호를 누르면 30초 스킵 기능이 활성화되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원래 개발자들의 편의를 돕기 위한 일종의 ‘백도어 서비스 모드(backdoor service mode)’지만, 이 비밀번호가 온라인에서 유출되는 바람에 티보가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수습에 나선 일 역시 유명하다.
 
수백억 달러의 소송 비용은 물론, 대규모 홍보 인력과 24시간 온라인 감시 인력의 인건비까지 들어가게 만든 이런 소동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씨 없는 수박의 개발 이면에 깔려 있는 ‘씨는 귀찮은 것’이라는 생각처럼 ‘광고는 피하고 싶은 것’이라는 상식이다.
 
TV라는 ‘레저 공장’ 안에서의 광고
9까지 귀가하기로 한 지미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버지 프랭크와 어머니 조슬린은 걱정하고 있다. 프랭크는 차고 있던 불로바 시계를 가리키며 “지금이 9시 42인데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라고 투덜댄다. 그리고 뜬금없이 “불로바 시계는 절대 틀리지 않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계잖아”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1940년대만 해도 TV 드라마에서 이런 뻔뻔스러운 PPL(Product Placement·특정 브랜드 상품 간접광고)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1950년대 말 미국 방송국에서 녹화 기술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모두 생방송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그램과 광고의 경계가 희미했다. ‘소프 오페라(soap opera)’가 연속극을 지칭하는 말이 된 건 비누(soap) 같은 생활 미용용품을 만드는 P&G나 유니레버가 주요 광고주였기 때문이다. 24시간 광고 없이 방송하는 리얼리티 쇼라는 설정의 영화 <트루먼 쇼>를 보면 초창기 TV 광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초창기 방송의 PPL 모습을 패러디했다.
 
TV는 레저다. 다양하고 새로운 세계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형태의 오락거리를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휴일에 TV 앞에 붙어 있는 이유는 TV가 가장 ‘비용 효율적’인 레저 형태이기 때문이다. TV는 레저를 제공하고, 사람들은 그 대가로 시간과 관심을 지불한다. 그 시간과 관심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 욕망의 씨앗을 심는 것이 TV 광고다. 여기서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공되는 상품이 더 훌륭해야 한다. 방송국용 녹화 기술의 개발로 화상 녹화가 가능해지면서 오락과 광고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는 자연스러운 품질 개선 욕구의 반영이었다. 프로그램은 광고와 분리되면서 더 재미있어졌고, 광고는 프로그램과 분리되면서 더 명확해졌다.
그러나 일견 ‘윈-윈’처럼 보이는 이 현상은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프로그램은 선, 광고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형성시켰다. 광고가 디지털 기술에 의한 회피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과도하게 단순화된 흑백 구도가 자리잡고 있다. 광고를 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광고를 피하고 싶어 하는 인식이 문제라는 말이다. 최근 뉴질랜드에서 티보의 출시가 예고되면서 광고 스킵 기능이 완벽하게 차단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광고를 피하고 싶어 하는 이상, 그 어떤 기술적 차단막도 완벽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광고가 기피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은 TV라는 ‘레저 공장’ 안에서 광고가 ‘레저의 대가’가 아닌 ‘레저 그 자체’가 되는 데 있다.
 
그 광고 봤어? 레저가 된 광고들
광고가 레저의 대가를 넘어 레저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잘 만들어진 광고는 단순한 메시지를 넘어 매우 흥미로운 오락거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서구의 예능 프로그램 중에는 한 시간 동안 전 세계의 웃기는 광고를 틀어주는 것도 있을 정도다.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광고를 찾아보는 현상은 TV나 신문이 아닌, 데이터의 공유와 확산이 용이한 인터넷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레저 대상으로 가치가 있는 광고는 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시청됐고, 사람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유통됐다. 일부 광고주들과 광고회사들은 온라인을 이용한 입소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그들은 TV나 신문 노출을 점화 플러그로 이용해 광고의 오락적 가치를 알렸고,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유통시키도록 유도했다.
 
CASE 1 BMW의 영화 광고 ‘하이어’
‘제임스 본드가 잘빠진 스포츠카로 스텔비오 파스(이탈리아 쪽 알프스 산맥 기슭의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를 질주한다. 본드가 민첩한 핸드 브레이크 턴으로 수상한 조직 요원들을 따돌리는 순간, 화면에는 본드가 몰고 있는 애스턴 마틴의 프론트 그릴이 커다랗게 잡힌다.’
 
 

BMW의 걸작 프로젝트 ‘하이어’. 4년 동안 자발적으로 1억 회 시청됐다. 이후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은 많은 프로젝트들이 실행됐지만, 아무도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재현하지 못했다.
 
‘청룽(成龍)의 귀여운 콘셉트카가 뜨거운 칼로 버터를 자르듯 홍콩의 지옥 같은 교통 체증을 헤치며 범인을 추적하고 있다. 길이 끝나는 항구, 카메라 바로 앞에 급정거하는 그의 차 앞에는 세 방향으로 펼쳐진 빨간색의 다이아몬드, 즉 미쯔비시의 엠블렘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빈번한 PPL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라도 액션영화 속의 멋진 자동차에 대해 욕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관객들의 아드레날린을 연료 삼아 스크린을 누비는 자동차들은 캐릭터를 묘사하는 장치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액션영화라는 장르와 매스 마케팅이 존재하는 동안,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수없이 많은 영화에 PPL을 해왔다.
 
2001년 BMW의 간부인 제임스 맥도웰은 인식의 전환을 통해 이전의 홍보 방법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남이 만드는 영화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BMW 필름즈’라는 영화사를 차려 직접 온라인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더 이상 변호사나 홍보 담당자를 앞세워 골치 아프게 로고의 노출 분량이나, 극 중 자동차의 운명에 대해 영화사들과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었다. 맘대로 만드는 영화이니 자사 제품의 노출 분량은 얼마든지 입맛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젝트 ‘하이어(The Hire)’는 광고와 오락에 대한 통찰이 풍부한 두 천재 감독, 데이비드 핀처와 리들리 스콧에 의해 기획됐다. 존 프랑켄하이머를 시작으로 가이 리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우위썬(吳宇森), 조 카나한, 토니 스콧 등 쟁쟁한 감독들이 연출한 총 8편의 단편영화가 탄생했다. 영화의 전제는 간단했다. 실력 좋은 프리랜서 운전사가 다양한 의뢰를 맡아 성공적으로 해결해내는데, 그는 언제나 BMW만을 몬다는 내용이다. 종군기자를 탈출시키는 이야기가 됐든, 불륜 남녀를 미행하는 이야기가 됐든, 납치된 여성을 구출하는 이야기가 됐든, 매회 반드시 BMW의 탁월한 성능을 과시한다. 좋은 광고 캠페인의 조건이 명확한 방향 설정과 실행의 단순성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8편의 단편영화들은 4년 동안 1억 회 이상 관람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온라인에서 이 영화들을 볼 수 없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지금도 계속 유포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시리즈를 광고보다는 레저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나오는 BMW와 끊어진 다리 앞에서 급정거하는 BMW를 보면서 클라이브 오웬이 연기한 신뢰감 넘치는 주인공의 모습에 BMW의 브랜드 이미지를 겹쳐 생각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발표된 해 BMW의 매출은 12%나 늘어났다.
CASE 2 버진그룹의 지면 광고 ‘당신의 음악 근육을 단련하라’
2005년 오프라인 음악 유통의 강자인 버진 메가스토어를 보유한 버진그룹이 애플의 아이튠스토어가 독주하고 있는 온라인 음악 유통 시장에 도전했다. 버진그룹이 버진 디지털이라는 서비스로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그들의 성공을 점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런 불투명한 전망과 높은 초기 투자비 때문에 정작 광고 홍보에 할애된 예산은 많지 않았다. 부족한 광고 예산으로 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알려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맡은 회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그라운드 제로라는 작은 광고회사였다. 버진 디지털의 지면 광고 ‘당신의 음악 근육을 단련하라’는 이렇게 시작됐다.
 
 

버진 디지털의 지면 광고 ‘당신의 음악 근육을 단련하라’. 음악가 65명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이 광고는 ‘숨은그림찾기’라는 놀잇감을 제공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오른쪽 하단에 호박을 부수는 남자는 록그룹 ‘스매싱 펌킨스’를 나타낸다.
 
이 광고에서는 합성이 분명한 사진 한 장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수많은 기괴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여왕이 망측하게 생긴 총으로 왕자를 위협하고, 빌딩 위에는 킹콩이 포효하며, 멀리 보이는 신작로에서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굴러온다. 길가의 꽃 가판대에는 장총과 장미가 같은 다발로 묶여 팔리고 있으며, 호박을 망치로 부수고 있는 남자도 보인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듯한 이런 이미지들이 정신없이 펼쳐져 있는 가운데, 왼쪽 상단에 조그맣게 ‘당신의 음악 근육을 단련하라(Exercise Your Music Muscle)’는 문구와 버진 디지털의 로고가 찍혀 있다. 미대 초년생이 재미로 만든 듯한 이 정신없는 지면 광고는 놀랍게도 소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고를 퍼 나르기 시작했고, 버진 광고는 결국 그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돌려본 광고가 됐다. 그 이유는 이 광고 자체가 사람들의 유희 본능을 자극한 놀잇감이기 때문이었다.
 
광고 안의 이 모든 기괴한 이미지들은 음악인 혹은 밴드의 이름을 상징하는 것으로, 무려 65명이 넘는 음악인들의 이름이 그 안에 숨어 있다. 사람들은 “넌 얼마나 찾을 수 있어?”라는 식으로 이 재미있는 유희를 함께 즐겼다. 심지어 광고를 싣지도 않은 주간지가 이 퀴즈의 정답을 특집 기사로 다루는 일도 있었으니 이 정도면 엄청난 성공이었다. 지면 광고와 더불어 유명한 히트곡의 제목들을 상징화해 담은 1분 15초짜리 브랜드 홍보 애니메이션 역시 200만 회 이상 관람이라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유튜브가 활성화되기도 전인 2005년의 일이었다.
 
CASE 3 EA의 게임 <타이거 우즈 PGA 투어 09> ‘예수 샷’
게임 소프트웨어의 버그는 게임 개발 회사에는 심각한 문제다.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오작동이 많으면 회사의 이미지와 개별 게임의 판매에 악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유튜브의 발전으로 버그가 회사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졌다. 즉 예전에 이런 버그가 있다고 주변 친구들끼리만 낄낄대는 걸 넘어, 그 버그가 나온 장면을 찍은 후 유튜브 등의 영상 사이트에 올려 전 세계와 함께 비웃는 유희 문화가 생겼다. 따라서 게임 회사들은 가능한 출시 전에 많은 테스트를 거쳐 버그를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하게 하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사용하는 제품이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예기치 않은 버그가 생겼을 때 이에 대처하는 모습은 브랜드의 신뢰성과 직결된다. 그 대처는 얼마나 빨리 패치를 개발해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2008년 EA(Electronic Arts)사가 자사의 대표적 게임 <타이거 우즈 PGA 투어 08>에 나타난 버그에 대응한 사례는 단순한 기술적 대응을 뛰어넘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2007년 8월 ‘Levinator25’란 ID의 미국인 브라이언 레비는 EA의 골프 게임을 하다가 조금은 우스운 버그와 맞닥뜨렸다. 분명히 골프공이 호수 가운데 떨어졌는데도 땅 위에 있는 것처럼 그대로 물 위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 속 타이거 우즈가 마치 ‘예수’가 된 것처럼 수면 위를 걸어 근처 홀에 칩 인을 하게 했으며, 이 모습을 녹화해 유튜브에 올렸다. 비디오 속에서 그는 “이것이야말로 EA가 넣은 새로운 기능인 ‘예수 샷(Jesus shot)’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이 사건은 보기보다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타이거 우즈 PGA 투어>는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매년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EA의 대표적 시리즈 게임이다. 물과 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식의 버그는 회사 전체의 신뢰성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게임 제작사 입장에서는 조용히 넘어가면서 패치나 해주고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EA의 대응은 모두의 상상을 초월했다.
 
EA는 1년 후 <타이거 우즈 PGA 투어 09>가 발매될 때, Levinator25가 올린 비디오에 대한 답변 영상을 올렸다. 그 영상은 놀랍게도 타이거 우즈가 직접 출연한 실사 영상이었다. 이 영상 속에서 타이거 우즈는 호수 쪽으로 샷을 날리고, 그 샷은 호수 한가운데 연꽃 위에 얌전히 떨어진다. 타이거 우즈는 신기하게도 물에 빠지지 않고 수면 위를 유유히 걸어가더니 호수 한복판에서 칩 인을 성공시킨다. 이어지는 문구, “그거 버그 아닙니다. 타이거 우즈가 실제로 그만큼 뛰어난 거예요”. 한마디로 예수 샷의 실사판인 셈이다.
 
당연히 예수 샷은 허구다. 타이거 우즈가 아무리 훌륭한 골프선수라 해도 물 위를 걸을 수는 없다. EA의 대응은 온라인 유희 문화의 역학을 잘 이해한 뛰어난 대응이다. 버그를 보면서 “이거 봐라, 웃기잖아” 하자 “이게 더 웃기잖아”라고 더 재미있는 농담을 던진 셈이다. 이 일은 온라인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3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영상을 시청했다. 사실 이 영상은 “예수 샷이란 게 진짜로 있거든요”라는 ‘웃기는 과장’의 메시지 이상을 담고 있다. 이 사례를 통해 EA는 타이거 우즈가 이런 소소한 영상물에까지 직접 출연할 정도로 이 게임 시리즈에 쏟는 정성과 열정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했다. 나아가 자신들이 소비자의 의견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얼마나 철저하게 접수하는지를 보여주며, ‘게이머들과 함께 노는 회사’라는 최고의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하고 있다.
광고의 ‘레저화’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레저의 대가를 넘어 레저 자체가 된’ 광고를 만들어 소비자들의 시간과 관심을 얻을 수 있을까?
 
 

 
①오락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라
BMW의 영화도, 버진 디지털의 숨은그림찾기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유희거리다. 광고이기 이전에 훌륭한 오락물이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게임이나 영화를 통해 자사 제품을 홍보하려고 하지만, 정말로 재미있는 것을 찾기는 힘들다. 길 잃은 강아지를 찾아주기 위해 그 회사의 개 사료를 길에 까는 게임 같은 것은 말만 들어도 재미없지 않은가? 심지어 그 게임을 제작한 사람들 역시 별 재미를 못 느꼈을 것이다. 만든 사람조차 빠져들어 즐길 정도로 재미있지 않다면 소비자들은 오죽할까?
 
정말 산을 넘고 물을 건너와서도 즐기려고 할 만큼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면 눈길을 끌기 힘들다. 광고를 유희거리로 만들려면, 광고주와 광고회사가 시청자들의 놀이 문화가 가진 맥락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②광고하고자 하는 제품과 구조적 연관성을 갖춰라
제품이 얼마나 광고에 등장하는가라는 내용적인 연관성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무조건 로고만 노출시키면 된다. 그러나 광고 형태의 구조적 특성과 홍보하고자 하는 제품의 특징이 얼마나 연관돼 있는가 하는 건 다른 문제다. 액션영화와 자동차의 연관성은 가장 기본적인 사례다. 음악 감상이 ‘누구 노래더라?’라는 추측이나 음악적 지식의 자랑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음악 감상은 ‘퍼즐’ 형태와 구조적 연관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게임 회사인 EA가 온라인 답변 영상으로 대응한 것 역시 게임의 제1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억지로 게임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례를 종종 본다. 대부분의 경우 시청자는 억지로 짜맞췄다는 느낌을 받는다. 제품과 광고 형태와의 구조적 연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오락거리라 하더라도 브랜드나 제품과의 연관성이 떨어지면 효과적인 홍보 도구가 될 수 없다.
 
③자발적으로 ‘퍼 나르게’ 하라
사람들은 왜 버진 디지털의 광고를 친구들에게 알리고 다녔을까? 보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은 왜 온라인을 통해 세상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일들을 남들에게 퍼뜨리고 다니는 걸까? 그것은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본능 때문일 수도 있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갖고 있다는 과시욕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배포자들이 친구들에게 즐거운 오락거리를 제공했다는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배포하는 데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단지 재미있다는 게 유일한 이유일까? 앞의 성공 사례들을 살펴보면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영화나 게임은 물론, 버진 디지털의 지면 광고 캐릭터 하나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광고 내용뿐만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광고를 만들었고 확산시켰는지를 스토리화하고, 또 그 스토리를 입에 오르내리게 한다. 그럼으로써 소비자는 더 재미를 느끼고, 공감하고, 더 오래 기억하고, 적극적인 옹호자가 되어 널리 퍼뜨린다.
 
시간 점유율 경쟁의 시대
정재윤의 책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다>에 나온 것처럼, 최근 브랜드의 성공은 시장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가보다 소비자들의 하루 중 얼마만큼의 시간을 차지하느냐로 결정된다. 기업들은 그 시간을 차지하고 광고를 보여줘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광고계도 역시 소비자의 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기업의 메시지가 편집당하는 일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자발성을 이끌어낼 맛있는 미끼가 절실해지고 있다. 예전의 TV 광고에서 볼 수 있었던, ‘TV 프로그램이라는 레저 옆에 붙어 있을 테니 메시지를 들어다오’라는 제안은 힘과 매력을 잃은 지 오래다. “나도 레저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광고만이 온전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필자는 미국 오스틴 텍사스주립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브랜드 필름 프로듀서를 거쳐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블로그 http://lanugo.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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